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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보이지 않는 미래의 부 - 지식은 권력이자 부(富)다
지식은 권력이자 부(富)다. 언뜻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 사실에 가장 처음 주목하고 이것을 가장 강력한 미래사회의 신호로서 유포한 사람이 바로 앨빈 토플러다.
지식과 상상력을 무기로 우리가 마주치고 있는 현재라는 거대한 골리앗에 맞서는 지식전사 앨빈 토플러, 그는 《이데올로기의 종언》으로 유명한 다니엘 벨, 《메가트렌드》의 저자 존 나이스비트와 함께 세계의 미래를 진단하고 예측하는 3대 미래학자 중 한 명이다.
1928년 미국 뉴욕에서 출생한 앨빈 토플러의 어린 시절은 매우 고단했다. 그는 10대 시절 뉴욕 브루클린의 세탁소에서 일했는데 일당으로 풍선껌을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받았다고 한다. 아마도 시급이 채 1달러도 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은 오늘의 그를 만드는 기반이 되었다. 1949년 뉴욕 대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5년 동안 공장의 판금 조립라인에서 작업을 하고, 자동차와 비행기 엔진, 백열전구, 엔진 모듈 생산작업 등을 했으며 주물공장의 송수관 속을 기어다니기도 했다. 또 바위에 구멍을 뚫는 착암기를 다루는 격렬한 육체노동도 경험하는 등 생산현장의 밑바닥을 직접 체험했고 심지어 실직자의 설움까지도 겪었다. 이런 현장경험에 바탕해서 앨빈 토플러는 노동조합 관련 잡지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그는 젊은 시절 마르크시스트였다.
처음에는 주로 정치와 노동문제에 관해 글을 썼으나 차츰 비즈니스 분야로 옮겨오다가, 1964년에 쓴 글 <문화의 소비자>에서 날카로운 통찰력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앨빈 토플러를 일약 세계적인 미래학자의 위치로 올라서게 만든 것은 역시 1970년 출간된 《미래쇼크(Future Shock)》였다. 그 후 10년 주기로 앨빈 토플러는 세계적인 관심을 집중시킨 저작들을 발간해 십년마다 어김없이 최고의 저작을 내놓는 인물로 유명해졌다.
하버드 대학교의 교육학과 교수 하워드 가드너는 자신의 저서 《창조하는 마음》에서 ‘
토플러는 1970년 《미래쇼크》 이후 10년간 미래학적 크리에이티브의 잉태기를 거쳐, 1980년 《제3의 물결》에서 미래학적 크리에이티브의 진가를 발휘한 후, 1990년 《권력이동》, 1993년 《전쟁과 반전쟁》 그리고 2006년 《부의 미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미래학적 크리에이티브를 확산시켰다.
창조적 대가의 선두에 서 있는 앨빈 토플러의 저작은 사실 여럿이면서 하나이다. 그의 새로운 저서는 늘 이전 저작들에서 추구한 관점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앨빈 토플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독법인 계측적 연관적 독법이 필요하다.
강조점은 미래가 아닌 쇼크
젊은 시절 노동과 정치 분야에 관심 있는 마르크시스트였던 앨빈 토플러가 미래를 연구하게 된 동인은 다름 아닌 변화였다. 세상이 너무도 급격히 변화한다고 생각한 그에게 미래의 모습을 살피는 일은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토플러에게 변화란 ‘미래가 우리 생활에 침투하는 과정’이었다.
그는 특히 변화의 가속도에 주목했는데, 1965년 <호라이즌>지에 발표한 글에서 너무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은 변화에 처함으로써 유발되는 파멸적인 스트레스와 방향감각의 상실을 설명하기 위해 ‘미래쇼크’라는 용어를 만들어 사용했다.
1960년대 미국은 정치 사회적으로 또한 문화적으로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전운동, 흑인민권운동이 활발했으며, 히피 등으로 상징되는 문화 현상 또한 새롭게 등장한데다, 1969년 인류가 달에 간 사건은 그야말로 사람들에게 일종의 쇼크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래서 앨빈 토플러는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디딘 그 해 7월 20일을 인류의 정체성 발견을 축하하는 범세계적인 연례 축일로 제정하자고 제의하기도 했다.
이때 앨빈 토플러는 그러한 시대 변화의 속도를 조절하고 그 변화에 적응할 방법을 모색하는 일이 매우 시급함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으면 대대적인 적응파탄(adaptational breakdown)에 빠져들 것임을 우려한 그는 이미 현재화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미래가 일상에 침투하는 과정에 예의 주목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새로운 적응이론을 제시하고자 했고, 그래서 쓴 책이 《미래쇼크》다.
이 《미래쇼크》에서 앨빈 토플러의 강조점은 ‘미래’가 아닌 ‘쇼크’에 있다. 인류가 미처 경험하지 못했던 가속화된 쇼크에 어떻게 적응할지가 당시 토플러가 고심한 문제의식의 핵심이었다. 윌리엄 오그번이 제시한 ‘문화지체(Cultural Lag)’이론에서 영향을 받은 토플러는 이 책에서 미래의 가속화된 침투과정을 살피고 이에 대한 인류의 적응방식을 모색해본 것이다.
《미래쇼크》에서 토플러가 선보인 미래의식은 그리 정교한 것은 못 되었다. 당시 그의 미래개념은 일종의 세대개념의 연장선에 있었다. 그래서 《미래쇼크》의 제1장 제목은 ‘800번째의 생애’다.
그는 인류생존의 최근 5만 년을 대략 62년의 생애로 나눈다면 그 동안 약 800회의 생애가 존재했던 것으로 가정했는데 그렇다면 인류는 그 중 650회의 생애를 동굴 속에서 보냈던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최근 70회 생애에 와서야 비로소 문자를 통해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특히 인쇄된 언어로 소통하게 된 것은 가장 최근의 6회 남짓한 생애를 통해서였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으로 상용하는 물품들의 절대다수는 800번째 생애 중에 개발된 것임을 지적한다. 바로 이 800번째 생애만큼 변화가 가속화되었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변화, 즉 미래 침투로 인한 쇼크와 그에 대한 적응문제는 인류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당면과제가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앨반 토플러의 미래학적 크리에이티브는 잉태기를 거치게 된다. 앨빈 토플러는 당시의 지배적인 견해에 반대해서 핵가족이 곧 균열을 일으킬 것이라고 보았고 이미 그 때 당시에 유전자 혁명, 일회용품사회의 등장 등을 예견했다. 그 10년의 잉태기 동안 준비되고 숙성된 문제의식은 《제3의 물결》을 통해 개화되고 발양되었다.
도도하게 흐르는 희망의 패턴, 제3의 물결
《미래쇼크》가 변화의 과정과 적응에 문제의 초점을 맞췄다면, 《제3의 물결》은 변화의 방향에 대한 본격적인 탐색이었다. 즉 변화의 가속화된 양상 그 자체보다 그렇게 빠른 변화가 우리를 이끌고 가는 방향이 어디며 그 패턴은 어떤 것인지를 중점적으로 다룬 것이다.
《미래쇼크》가 출간되기 직전에 1969년 ‘인류의 달 착륙’이란 쇼킹한 사건이 있었다면 《제3의 물결》이 출간되기 직전에는 1979년 ‘이란사태’가 있었다. 하지만 앨빈 토플러는 사태의 현상에 매몰되지 않고 그 바닥에 흐르는 저류를 주목했다. 현상으로는 시끄러운 불협화음으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바탕에서는 깜짝 놀랄 만큼 희망적인 하나의 패턴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음을 본 것이다. 즉 《제3의 물결》에서는 바로 도도하게 흐르는 희망의 패턴이 지닌 변화의 방향을 주목한 셈이다.
앨빈 토플러는 인류의 역사를 제1, 제2, 제3의 물결이란 비유어로 새롭게 패턴화했다. 그리고 제1물결인 농업혁명은 수천 년에 걸쳐 진행되었지만, 제2물결인 산업혁명은 300년밖에 걸리지 않았으며, 제3물결인 정보화혁명은 20~30년 내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1물결은 약 1만 년 전 농업의 발명과 수천 년에 걸친 농업혁명으로 집약된다. 한마디로 ‘쟁기문명’이다. 하지만 앨빈 토플러는 제1물결이 갖는 특징을 상세히 언급하진 않는다. 다만 제2물결의 6가지 지도원리를 통해 제1물결과의 차이점을 드러낼 뿐이다.
제2물결은 산업혁명에 따른 ‘공장굴뚝문명’의 도래다. 앨빈 토플러가 말한 ‘제2물결의 6가지 지도원리’는 이렇다.
1. 표준화(standardization): 도량화의 표준화, 표준도구, 표준방법, 표준시간 등
2. 전문화(specialization): 분업의 세분화에 따른 전문직화
3. 동시화(syncronization): 9 to 5, 등하교 사이렌, 시간엄수를 위한 손목시계와 벽시계의 등장
4. 집중화(concentration): 도시, 부, 화석연료사용으로의 집중
5. 극대화(maximization): 동양 최대, 세계 최고 등을 지향
6. 중앙집권화(centralization): 정치적 중앙집권화
제3물결은 정보지식혁명에 따른 새로운 문영의 도래를 말하는데, 제3물결은 제2물결의 6가지 지도원리를 차츰, 전격적으로 대체하게 된다.
표준화는 탈표준화(post-standardization)로 획일화의 옷을 벗고 다양성이 증대했으며, 전문화는 생산소비자화(presuming)로 탈바꿈해 생산소비자(prosumer) 개념이 출현했으며, 동시화는 비동시화(desyncronization), 집중화는 분산화(deconcentration), 극대화는 극소화(minimization)로 옮겨갔다. 실천적 경제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독일의 슈마허 또한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저서에서 극대화가 극소화로 가는 과정을 예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앙집권화는 탈중앙집권화(decentralization), 매트릭스조직화로 옮겨갔다.
변화의 방향과 패턴을 이해하면 이 가속화된 변화를 보다 전략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 점이 우리가 《제3의 물결》을 읽는 진정한 이유일 것이다. 특히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을 통해 생산과 소비가 하나로 융합되는 ‘프로슈머(prosumer), 생산소비자 = Producer+Consumer’의 출현을 주목했는데, 이것은 《부의 미래》의 핵심키워드 중 하나다.
물론 지구상에는 아직도 제1, 제2, 제3물결이 공존한다. 그리고 여전히 사회발전을 위한 제1, 제2, 제3물결 전략이 다양한 지역에서 구사되고 상호충돌하기도 한다. 세계가 동시에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나라는 특이한 에에 속한다. 반세기 남짓한 시간 동안에 제1, 제2, 제3물결의 격심한 파도를 한꺼번에 경험한 드문 경우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300년 걸려 진행한 산업혁명을 거의 30년 만에 이루었고, 남들이 이제 정보화혁명 길에 들어섰다면 우리는 어느새 그들을 선도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것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우리 안에는 제1, 2, 3물결, 그러니까 수렵 마인드, 산업화 마인드, 초정보화 마인드와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이것은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단점인 이유는 그것이 곧게 뻗어나가야 할 발전회로를 엉키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극복해야 할 문제점과 대한민국이 찬탄받는 위대함, 두 가지 모두 바로 여기에서 동시에 발원하는데, 그래서 이것이 앞으로 ‘한국적 미래학’이 풀어가야 할 과제가 되는 것이다.
밑동으로부터의 변화, 지식은 고품질 권력이다
《미래쇼크》가 가속화된 변화 과정과 그에 대한 적응 문제를 논하고 《제3의 물결》이 가속화된 변화의 방향과 패턴을 주목한 것이라면 《권력 이동》은 그 변화를 누가 어떻게 관리, 통제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다룬다.
앨빈 토플러는 일찌감치 마르크스적 세계관을 벗어버렸지만,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적 틀에는 여전히 마르크스적 방법론의 흔적이 남아 있다. 《권력 이동》에서도 그것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책에서 앨빈 토플러는 권력은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부의 창출시스템에 따라 이동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것은 마르크스의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인식틀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앨빈 토플러는 마르크스보다는 훨씬 유연하나 사고체계를 가진 인물이다. 그는 단지 권력투쟁과 새로운 부 창출시스템 간의 관계적 역동성을 주목했을 뿐이다.
앨빈 토플러는 권력의 3가지 원천을 폭력∙부∙지식으로 규정하고, 폭력을 저품질 권력, 부를 중품질 권력, 지식을 고품질 권력으로 자리매김했다. 흔히 토플러의 《권력이동》을 논할 때 폭력에서 부로, 부에서 지식으로 권력원천이 이동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전부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은 그것보다 더 진중하게 짚어볼 대목이 따로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새로운 부의 창출시스템이다. 새로운 부의 창출시스템이 야기한 것이 진정한 권력이동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앨빈 토플러의 《권력이동》이 출간되었던 1990년 직전에 동구블럭의 붕괴와 구소련의 해체가 가시화되었다. 여기에서 토플러는 권력의 대지각변동을 낡은 부의 창출시스템으로 대체하는 새로운 부의 창출시스템 도래와 연관짓는 관점을 피력했다. 오늘날의 권력투쟁은 전적으로 새로운 부의 창출체제와 연관되어 있다. 즉 엄청나게 빠른 흐름을 갖는 데이터, 아이디어, 상징체계 등 제3물결의 새로운 부 창출시스템이 공장굴뚝문명 즉 제2물결의 낡은 부 창출시스템과 전면적으로 충돌하는 과정이 오늘날의 전 세계적인 권력투쟁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혁명적인 부 창출시스템이 산업혁명시스템을 몰아내고 그 위에 새로운 권력을 세우게 되는데, 그 권력이 바로 지식권력이다. 2006년 <포브스>지가 선정한 세계10대 갑부를 보면, 1위는 마이크로소프트사 회장 빌 게이츠, 2위는 투자의 귀재 워릿 버핏, 3위는 멕시코의 통신재벌 카를로스 슬림 헤루였다. 모두 지식장사로 돈을 번 사람들이다.
4위는 니케아의 창업자 캄프라드 잉그바르인데, 그의 성공종목은 DIY 가구다. 바로 ‘DO IT YOURSELF’, 자기가 사서 조립해 만드는 가구로서, 이것이 바로 프로슈밍, 즉 생산자와 소비자가 결합된 형태인 것이다. 이렇게 세계 10대 부자 중 7명이 앨빈 토플러가 말하는 새로운 부 창출시스템인 데이터, 정보 및 지식 교환에 의존해 부자가 되었다.
캘리포니아의 금융업자 로버트 와인가튼은 기업 인수합병 과정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먼저 컴퓨터 스크린에 매수 기준을 점검한 후 맨 나중에 기자회견을 갖는다. 모든 과정은 컴퓨터로 시작해서 미디어로 끝낸다. 그 중간에 고도로 전문화된 수많은 지식노동자들 즉 세법전문가, 수학모델전문가, 투자상담가, PR전문가, 전략가 등을 불러들이는데 이들 대부분도 컴퓨터와 미디어에 크게 의존하는 사람들이다.”
결국 거래를 성사시키는 능력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돈보다 지식에 의존할 때가 더 많다. 지식이야말로 진정한 권력수단인 셈이다.
오늘날 돈은 ‘직접 손으로 셀 수 있는 돈’이 아니라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돈’일 뿐이다. 그것은 일련의 ‘0과1’들에 불과하다. 이것이 초(超)기호화된 돈(super-symbolic money)의 실체다.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잡아먹는다
1993년에 출간된 《전쟁과 반전쟁》은 앨빈 토플러의 저서라고 보기에는 특별한 맥락 없이 나온 듯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것은 1990년대 초반 걸프전에서 영감을 받아서 쓴 것이다.
1950년대의 한국전쟁과 1960~70년대의 베트남전쟁이 병력의 대량투입과 대량살상을 이용한 전형적인 제2물결의 전쟁이었다면, 1990년대의 걸프전은 하이테크에 의존한 최초의 제3물결의 전쟁이었다.
걸프전을 목도한 앨빈 토플러는 전쟁의 문명사적 분석을 시도했다. 물론 전쟁 자체에 매몰되지는 않았다. 여기서 토플러는 전면화된 권력투쟁으로서의 전쟁 방법이 곧 부의 창출시스템을 반영한다는 전제 아래, 21세기 전 세계적 권력투쟁에서의 핵심문제가 지식의 장악이며, 이 지식이야말로 진정한 권력과 부의 창출수단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른바 제3물결의 전쟁에서는 지식무사(knowledge warrior)가 중시된다. 미군은 오래전부터 지휘(Command), 통제(Control), 통신(Communication), 정보(Information)를 뜻하는 C3I개념을 설정해 현실화했다. 군대는 장소에서 시간으로 그 지향점을 전환하고 있다. 그래서 전선이 따로 없다. 미군의 신속이동군 개념도 이것에 기초한다. 여기에서는 기업도 예외일 수 없다.
기업들은 이미 시간중심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속도의 경제’가 ‘규모의 경제’를 대체하는 것이다. 결국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잡아 먹는 시대가 온 것이다.
혁명적 지식을 소유하라
《부의 미래》의 원제는 ‘혁명적 부(Revolutionary Wealth)’다. 왜 혁명적이라 했을까? 미래의 부란 것이 그것의 창출, 분배, 순환, 소비, 저축, 투자방식 등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수반되기 때문이며, 보이는 부와 보이지 않는 부, 화폐경제와 비화폐경제를 함께 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부의 창출에서 지식의 중요성이 가히 혁명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부를 주목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통상적인 경제학 틀에서 그것은 절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문제는 넘쳐나는 잡동사니 지식에서 진짜 알맹이 지식을 가려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만의 눈이 필요하다. 지식과 책은 넘친다. 이제는 메모리칩 10개만 있으면 책 220만 권의 내용을 담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220만 권을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것을 기뻐할 일이 아니라 문제는 단 한두 권이라도 그 내용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세상에 널려 흔하게 손에 잡히는 지식들, 앞으로 중요한 것은 그 지식을 나의 것으로 내면화하고 목록화하는 일이다. 그것이 자유자재로 가능해진다면 부는 이미 내 앞에 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부란 무엇인가? 부와 돈은 동의어가 아니란 말인가? 부란 일종의 소유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경제학자들은 부를 효용(utility)이라 본다. 부는 풍요로운 삶을 제공하거나 다른 형태의 부로도 교환가능하다. 하지만 그 모두는 욕망의 소산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결국 부란 갈망을 만족시키는 그 무엇을 의미하며, 부는 그것을 위한 모든 가능성의 축적물일 뿐이다.
인류가 최초의 부 창출시스템을 갖게 된 것은 경제적 잉여생산물을 추출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다. 앞서 언급했듯이 첫 번째 부 창출시스템은 쟁기로 상징된다. 씨앗을 뿌리고 수확해 부를 창출한 것이다. 두 번째 부 창출시스템은 공장 조립라인으로 상징된다.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육체 노동을 요하는 기술과 화석연료에너지의 결합이다. 세 번째 부 창출시스템은 컴퓨터로 상징되며 산업생산, 토지, 노동, 자본의 전통적인 요소들을 훨씬 정교한 지식으로 대체해나가며, 산업주의의 모든 원칙에 도전한다.
제1물결의 부 창출시스템이 주로 키우는(growing) 것이었다면, 제2물결의 부 창출시스템은 주로 만드는(making) 것이었고, 제3물결의 부 창출시스템은 서비스하는(serving) 것, 생각하는(thinking) 것, 아는(knowing) 것, 경험하는(experiencing) 것을 기반으로 한다. 결국 3가지 부 창출시스템은 근본적으로 다른 세 가지 생활양식을 만들어냈다.
오늘날 미국은 부를 창출하는 혁명적인 방식을 둘러싼 신문명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좋든 싫든 수십 억 명의 세계인이 이미 이 혁명적인 반미감정을 부추기는 진짜 이유는 혁명적 부와 그것에 동반되는 사회문화적 변화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이 혁명적인 부 창출시스템이 뿌리 내리기 시작한 때는 언제일까? 앨빈 토플러는 그 기점을 1956년으로 잡는다. 그 해는 미국에서 화이트칼라와 서비스업 종사자 수가 블루칼라 노동자 수를 넘어선 해이다. 말 그대로 지식기반의 부 창출시스템, 신경제(new economy)의 근간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부를 주목하라
산업혁명이 새로운 이념과 예술 그리고 가치관을 형성한 것처럼 지식기반의 신경제 역시 새로운 문화와 예술 그리고 가치관을 태동하고 확산시켰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로큰롤, 앤디 워홀의 팝 아트 등이 텔레비전의 급속한 보급과 맞물려 대중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고, 히피들의 ‘너 자신에 충실하라(Doing your own thing)’는 구호는 대량산업사회의 획일성을 공격했다.
“인류가 성공적인 진화를 이룩한 비결은 공유된 기억을 정리하고 재생시키는 주목할 만한 능력에 있다”고 말한 토플러의 예지는 인터넷을 통해 현실화되었다.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은 ‘인터넷’이란 표현 자체가 없던 시절에 나온 책이지만 ‘전혀 새로운 사회적 기억의 단계’라는 말로 그것의 출현을 예시하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전혀 새로운 사회적 기억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 제3물결 문영은 4반세기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을 정도로 자기 자신에 관해 더 많은 정보, 더욱 정밀하게 조직화된 정보를 가지게 될 것이다. (……) 우리는 지금 인간의 기억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혁명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 혁명과 더불어 일어나는 문명은 우리가 알고 있던 부에 관한 모든 사실에 도전할 것이다.
새로운 부 창출시스템은 새로운 삶의 방식, 즉 새로운 문명을 동반한다. 새로운 비즈니스 구조와 함께 새로운 가족형태, 새로운 종류의 음악과 미술, 음식, 패션, 신체적 미의 기준, 가치관, 종교나 개인 자유에 대한 새로운 태도 등이 함께 밀려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상호작용하며 새롭게 떠오르는 부 창출시스템을 구체화한다.
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를 형성하게 될 가장 강력하고 매혹적인 3가지 심층기반을 시간, 공간, 지식이라고 강조하면서 ‘보이는 부(visible wealth)’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부(invisible wealth)’를 주목하라고 말한다.
새로운 부 창출시스템은 통상적인 경제학의 틀 속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의 미래를 살짝 엿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 심층기반을 재검토해야 한다. 고대로부터 과거를 거쳐 현재 그리고 미래를 포함해 창조된 모든 부의 배후에 존재하는 원칙을 살펴야 한다.
어제의 시간표를 찢어버려라
부 창출시스템의 첫 번째 기반인 시간은 지금 혁명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제 스스로 빠르게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지점에서 앨빈 토플러가 한 재미있는 속도의 비유가 있다.
기업은 시속 100마일, NGO는 시속 90마일, 가족은 시속 60마일로 변화한다. 사회조직 중에서 가장 늦게 변화하기 마련인 가족체계가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가족형태, 이혼율, 성행위, 데이트 패턴, 자녀 양육방식 등이 빠른 속도로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시속 30마일로 1930년대 대량생산시대의 조직, 방법, 모델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정보관료조직과 규제기관들은 시속 25마일로 답답할 만큼 둔감하게 변해서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새로운 의약품을 시험하고 승인하고 데 걸리는 오랜 시간 동안 가망 없는 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세상을 떠난다.
더 심한 것은 학교다. 학교는 시속 10마일로 변화에 둔감하다 못해 저항적이다. 과연 10마일로 기어가는 교육체계가 100마일로 달리는 기업에 취업하려는 학생들을 준비시킬 수 있겠는가? 물론 이보다 더한 곳들도 얼마든지 있다. UN, IMF, WTO 등 세계적인 관리기구는 시속 5마일, 정치조직은 시속 3마일, 법은 시속 1마일이다.
기업이 그나마 속도를 내며 살아남는 이유는 끊임없이 가속화된 현실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기 때문인데, 이를 도와줄 경제 타이밍을 연구하는 크로노믹스분야는 아직 그리 발달하지 않은 상태다.
이제 경제 분야든 다른 어떤 분야든, 시작할 때와 끝낼 때, 들어갈 때와 나올 때를 잘 포착해야 하는 타이밍이 중요한 시대다. 기존의 시간개념은 우리를 구속하는 일종의 사슬과 같을 뿐이다.
과거에 노동자들은 시간당으로 임금을 지급받았고, 고리대금업자는 시간을 근거로 이자를 붙여나갔다. 결국 노동과 돈의 가치는 절대적 시간을 기초로 결정되었으며 출퇴근 시간을 찍는 펀치시계가 보급되고 시간을 중요시하는 테일러주의 경영방식이 번지면서 시간의 사슬은 갈수록 강해졌다. 어제의 노동계는 시간을 표준길이로 일괄처리했던 것이다.
하지만 부의 심층기반인 시간과 인간의 관계가 혁명적으로 바뀌고 있다. 가속화, 불규칙화, 연속적 흐름이 우리의 시간풍경을 바꿔놓고 있다. 패션, 영화, 음악 등 유행의 유효기간은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이제 인터넷에서 3분은 거의 영겁에 가까운 시간이다.
또한 동시화와 비동시화 사이의 긴장이 증가하고 있다. ‘9 to 5’로 일하는 사람은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 미만이 되었고, 가족이 다함께 모여 식사하고 함께 텔레비전을 보는 모습도 사라지고 있다. 각자 알아서 먹고 각자 보고 싶은 채널을 자기 편한 시간에 보며 자기 스스로 활동시간을 설정하는 프리에이전트 시대가 되었다.
현재 미국 노동력의 4분의 1이 프리에이전트다. 상품과 시장이 개인화되는 움직임과 병행해서 ‘비개인화된 시간’에서 ‘개인화된 시간’으로 빠르게 이동 중이다. ‘24/7’(하루 24시간, 한 주 7일 모두 문을 연다는 뜻)의 연중무휴 영업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래의 거래시스템은 확실히 24시간 체제가 될 것이다. 시장에서 상품이 얼마나 빨리 순환되는지를 생각해보라. 서적으로 예를 들면, 책이 출간된 지 3주 만에 움직임이 없으면 그 자리는 새로운 책이 대체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지금도 개개인은 상당 수준 비(非)동시화되어 있다. 모든 사람이 출근 러시아워를 겪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시간에는 이미 움직임이 필요 없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실업자가 아니다. 모두 다른 비동시화의 시간을 살고 있을 뿐이다. 부 창출시스템은 시간 속에서 혁명을 맞고 있다.
조지프 슘페터는 발전을 위해서는 ‘창조적 파괴’의 질풍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발전하려면 변화의 바람이 필요하다. 창조적 파괴가 가장 먼저 찢어버려야 할 것은 바로 ‘어제의 시간표’다.
경제 밖에서 사유하라
시간과 인간의 관계가 변하듯 또 하나의 심층기반인 공간과 인간의 관계도 변하고 있다.
대대적인 부의 지리적 이동이 전개되고 있다. 부의 이동이 아시아를 향하고 있다. 앨빈 토플러는 조금 난데없다 싶을 정도로 부가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중국 전문가 로버트 매닝 또한, 2050년에는 세계인구의 절반 이상, 세계 경제의 약 40%, 세계정보기술산업의 절반 이상, 세계 수준의 첨단 군사력이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충분히 예견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상호 교섭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오늘날 국경을 넘어 여행하는 사람들은 연간 세계인구의 약8%, 즉 약 5억 명에 이른다. 이는 1650년 당시의 전 세계인구와 맞먹는 수치다. 그만큼 우리는 국경 없이 넘나들고 있다. 경계가 무너지며 하이브리드 즉 잡종이 되고 있으며, 크로스오버해서 끊임없이 서로 엉키고 있다.
토플러는 1900년대 들어와서 이루어진 세계화의 첫 번째 물결이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탈(脫)세계화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1989년 동구블럭의 해체와 더불어 세계는 다시 재(再)세계화로 가고 있으며, 그 과정 속에서 퓨전, 크로스오버 등의 현상들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듯 공간 개념이 변화할 때, 겉으로 보이는 세계가 아닌 그 안에 숨어 있는 아주 작은 것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부를 창출하는 일은 점점 더 미세한 수준에서 일어날 것이다.
이제 점점 더 작은 수준에서 부를 창출하는 일이 가능해지고 그것은 단순히 나노단위에서 측정되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피코 pico, 펨토 femto, 아토 atto, 젭토 zepto에 이르게 될 것이며 결국엔 욕토yocto에 이르게 될지 모를 일이다. 욕토는 1미터의 0.000,000,000,000,000,000,000,001을 의미한다.
지식은 사용할수록 늘어난다
지식은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할 때 새로운 시너지로 나타난다. 이전에 관련 없던 아이디어와 데이터 그리고 정보와 지식을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하려면 상상력과 창의력이 필수적이다. 부의 또 다른 심층기반인 지식은 상상력과 창의력의 날개를 달고 사회경제적 환경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식의 고유한 특성을 정리하자면, 그것은 비경쟁적이고 형태가 없고 직선적이지 않고 관계적이며, 다른 지식과 어우러지고 어떤 상품보다도 이동이 편리하다. 그리고 상징이나 추상적인 개념으로 압축할 수 있고 점점 더 작은 공간에 저장할 수 있으며, 명시적일 수도 암시적일 수도 있고 밀봉하기 어렵게 퍼져나간다. 특히 그것이 상상력과 융합하면 그 가치는 폭발적으로 커진다.
이렇듯 상상력과 융합된 정보재(information goods)가 갖는 가치란 무궁한 것이다. 그래서 상상력과 융합된 지식은 미래경제의 석유에 비견될 만하다. 하지만 석유와 지식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무엇보다 석유는 쓸수록 줄어들지만 지식은 사용할수록 더 많이 창조된다는 것이다.
혁명적 부에서는 지식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됨과 동시에 문화, 종교, 도덕적 가치가 다시금 부각된다. 결국 시간, 공간 지식의 혁명적 변화는 전혀 예상치 않았던 역사적 사건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했다. 프로슈밍이라고 이름붙인 생산과 소비가 결합된 방식이 부활한 것이다.
제1물결과 제2물결의 경제에서는 프로슈밍이 계속 축소됐지만 새로운 제3물결에서는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다. 더욱 효과적이고 새로운 기술은 프로슈머의 생산성을 증가시킬 것이다. 종래엔 100만 명의 노동자들이 실직했을 경우, 이를 해결하기 위해 100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어야 하겠지만 프로슈머(생산+소비자)가 주도하는 지식집약적 경제에서 이런 가정은 옳지 않다.
더불어 부의 미래를 제대로 예측하려면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만이 아니라 우리가 의미지향적으로 행하는 프로슈머 활동도 살펴봐야 한다. 우리가 하루하루 무보수 산출물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충격을 받을 것이다. 예를 들어 UCC(User Created Contents)는 서비스 주체가 만든 콘텐츠(RMC, Ready Made Contents)와 달리 사용자가 직접 제작∙공급하는 콘텐츠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미래의 수익모델 기반이 될 UCC플랫폼을 포털들이 앞다퉈 ‘멀티미디어 UCC’ 서비스로 내놓고 있다. 최근 포털업체들은 지속적으로 UCC 서비스를 강화하면서 멀티미디어 UCC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UCC는 돈을 겨냥한 것이기보다는 자기만족과 ‘재미+의미’의 지향 속에서 나온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결국 부의 미래를 확실하게 느끼려면 프로슈밍을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이미 우리 사회 깊숙이 들어와 있다.
미래는 예측이 아닌 창조의 대상
미래를 보는 눈에 있어서도 긍정과 낙관의 미래관이 승리한다. “비관론자가 천체의 비밀이나 해도에 없는 지역을 항해하거나 인간 정신세계에 새로운 지평을 연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는 헬렌 켈러의 말이나 “비관론자는 어떤 전투에서도 승리하지 못했다”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말을 기억하자.
미래를 본다는 것은 지금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추측이나 예측이 아니다. 운명론적으로 이미 결정된 사안을 주술적으로 예단하는 것도 아니다. 미래를 본다는 것은 그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현재의 몸부림이다. 앨빈 토플러는 그것을 ‘미래의 인간화’라고 말했다. 다가오는 숙명적 미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력과 상상력을 총동원해 현재라는 시점에서 미래를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미래학은 ‘현실학’이다. 우리가 앨빈 토플러를 주목하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까닭도 실은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제대로 돌파하기 위해서다.
미래는 도둑처럼 우리 앞에 온다. 미래는 단지 예측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오늘 만들어가는 창조의 대상이다. 미래는 결정된 숙명이 아니라 미완의 씨름터요 싸움터다. 결국 미래는 지금 이 순간순간에 빚어지고 있는 우리 영혼의 도자기와 다름없다. 그 미래로의 흐름을 직시하고 미래를 단지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새롭게 창조하자.
앨빈 토플러가 예견한 ‘새로운 부 창출시스템’
1. 새로운 부 창출시스템은 더욱더 데이터, 정보 및 지식의 교환에 의존한다. 그런 점에서 ‘초(超)기호적 super-symbolic’이다. 지식의 교환 없이는 새로운 부가 창출되지 않는다.
2. 새로운 부 창출시스템은 대량생산을 탈피해서 탄력적인 주문생산, 즉 탈대량화 생산으로 나아간다. 이 시스템은 새로운 정보기술 덕분에 고도로 다양한 제품, 심지어 특별히 주문된 제품을 대량생산 비용에 근접한 원가로 단기간에 생산해낼 수 있다.
3. 종전의 생산요소- 토지, 노동, 원료 및 자본 – 는 기호화된 지식이 이를 대체함에 따라 그 중요성이 감소한다.
4. 금속화폐나 지폐 대신 전자적 정보가 참다운 교환수단이 된다. 자본의 유동성이 극히 높아져 하룻밤 사이에 거액의 자본 풀을 만들고 분산시킬 수 있다. 더불어 오늘날의 엄청난 자본집중화에도 불구하고 자본 공급원천의 수는 늘어난다.
5. 재화 및 서비스는 모듈화해서 표준의 증식과 끊임없는 수정이 요구되는 시스템을 구성한다. 이로 인해 표준의 기초가 되는 정보를 장악하기 위한 싸움이 일어난다.
6. 움직임이 완만한 관료체제는 탈대량화한 소규모의 작업단위, 임시적 또는 애드호크러시(ad-hocracy, 영속적 기수로 상정되는 전통적 관료조직의 기능적 부서들과는 달리 트랜스 산업사회에 적합한 조직형태로 여러 팀들이 모여 특수한 단기적 문제들을 해결하고 곧 해체하는 임시기구를 말함)적 팀, 더욱더 복잡해지는 기업협력체와의 컨소시엄에 의해 대체된다. 위계체계는 의사결정을 신속히 하기 위해 평면화되거나 폐지된다. 지식의 관료적 조직화는 흐름이 자유로운 정보체제로 대체된다.
7. 조직단위의 수와 다양성이 늘어난다. 이런 단위들이 늘어나고 그들 간의 업무처리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정보가 생성되고 전달되어야 한다.
8. 근로자의 상호교환성이 더욱 더 줄어든다. 과거에는 산업노동자가 소유하는 생산수단이 별로 없었으나 오늘날에는 가장 강력한 부의 증식도구가 근로자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기호와 상징이다. 그러므로 지금 노동자들은 생산수단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그리고 때론 대체할 수 없는 부문을 소유하고 있다. (결국 육체노동이 아니라 지식두뇌의 사용에 바탕을 둔 유식계급인 코그니타리아트cognitariat가 프롤레타리아트를 대체할 것이다.)
9. 이제 새로운 주역은 블루칼라 노동자도 자본가도 관리자도 아니며, 창의적 지식을 행동과 결합시키는 혁신자다.
10. 부의 창출은 폐기물이 다음번 생산 사이클을 위한 투입물로 재생되는 하나의 순환과정이라고 보는 인식이 늘어나고 있다. 이 방법은 컴퓨터화된 모니터 체제와 더욱 심오한 차원의 과학적, 환경적 지식을 전제로 한다.
11. 산업혁명에 의해 분리되었던 생산자와 소비자가 부의 창출 사이클에서 재결합해 고객은 비단 돈으로만 기여할 뿐 아니라 생산공정에 필수적인 시장 및 설계상의 정보를 제공해준다. 구매자와 공급자가 데이터, 정보 및 지식을 공유한다. 언젠가는 고객들이 단추를 눌러 원격지에 있는 생산공정을 작동시키게 될지 모른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생산소비자로 융합되는 것이다.
12. 새로운 부 창출시스템은 지역적이기도 하고 세계적이기도 하다. 강력한 마이크로 테크놀로지는 이 시스템이 종전에는 전국적 규모에서만 경제성이 있었던 일을 지역적으로도 할 수 있게 해준다. 또 여러 가지 기능이 국경선 밖으로 넘쳐흘러 여러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을 하나의 생산적 노력으로 통합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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