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될걸 알긴 허지만....그래도...
오늘은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입니다.
이날은 우리 신앙의 기본을 이루는 7성사 중, 으뜸 성사요,
교회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거룩한 미사의 근간을 이루는 성체성사를
되새기는 가장 중요한 축일 중 하나입니다.
이 뜻깊은 날, 우리는 성체성사의 의미를 기억합니다.
성체성사의 의미는 "감사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이 감사함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과 피를 온전히 우리에게 주시어 태초에 있었던
하느님과 인간의 사랑의 관계가 온전히, 완전히, 영원히 회복됨에 대한 감사함입니다.
우리는 종종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에게 가장 감사했던 일과 날들을 기념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온 마음을 다하고 그 마음이 드러나는 행동으로 감사함을 표시합니다.
사실 아무리 진실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그것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모습으로 드러내려 한다 해도 그 안에
진심을 담지 못하면 어색해질 뿐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런데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께 깊게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정말, 정말로 성체성사를 세워주신 예수님께 진정 감사하고 계십니까?
미사 5분 전 고해실을 나서 제의방으로 향하면 아직 휑하게 비어 있는 성전 좌석이 눈앞에 들어옵니다.
5분 후 다시 그 자리에 서면 어느샌가 꽉 차있는 신앙의 신비를 목격합니다.
목소리에 힘을 주어 복음을 읽고 강론을 합니다.
여지없이 4번째 줄 자매님이 3분 후 주보를 펼칩니다. 강론소리가 더 커지는 걸 막기 위해
고개를 숙입니다. 이제 성가책은 필요가 없습니다. 핸드폰만 열면 성가책이 나오니
편리해도 너무 편리합니다. 하지만 카톡도, 메신저도 여지없이 성가책과 함께 등장합니다.
성가도 부르고 문자도 하고 일석이조입니다.
저기 8번째 줄에 앉아 계신 형제님, 봉헌성가할 떄 들어와 다리 꼬고 앉아서
핸드폰하고 계신 분인데 영성체하러 나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어김없이 적중합니다.
영성체 성가는 늘 오르간 독주로 이어지고 아멘 소리는 들이지 않은 지 오래요,
그 아멘을 대체해 버린 목례하는 영성체, 무릎을 구부리는 영성체, 두 발자국 떨어져서
배달하라는 영성체 그리고 묵언수행의 영성체가 일반화된 우리 성당의 모습입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공지사항에 얘기할까 말까 수없이 망설이지만,
이야기하면 꼰대라 말할까봐, 이야기하면 화냈다 얘기할까봐, 이야기하면 잔소리한다
투덜댈까봐 또 여지없이 좋은게 좋은 거지, 성당 나오는 게 어디야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사목자로서 하지 말아야 할 불의한 타협을 시도합니다.
진정 신앙인이 성체성사를 대하는 것이 감사함의 의미를 담고 있다면,
그것이 마음을 담은 행동으로 드러나면 좋겠습니다.
지금과는 좀 다른 모습으로 바뀌고 달라지면 좋겠습니까.
에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목숨까지 바치셨는데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사실 안될 거라는 거 알긴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이야기해 봅니다.
조금은 바뀌어 보.... 자.... 고..... 좀...... 제..... 발!!!
대전 주보 -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 성혈 대축일 - "말씀의 향기편"에 올려 주신
둔산동성당 주임 송준명 프란치스코 신부님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