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사 솔바람길
추석을 한 주 앞둔 구월 첫째 토요일이다. 가을 태풍의 위력은 대단하다고 하는데 며칠 뒤 경남 해안을 스쳐 갈 강력한 태풍 내습이 예상된다. 내 나이와 연륜을 함께 하는 사라나 서울 월드컵 이듬해 매미의 대형 태풍이 추석에 닥쳐와 역대급 재난이 발생했더랬다. 자연의 위력 앞에 우리 인간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실감하면서 태풍 피해가 최소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말에는 태풍 전조 현상으로 연일 비가 부슬부슬 내려 야외 활동에 제약이 따른다만 동선을 멀게 잡았다. 이른 아침밥을 해결하고 날이 덜 밝아온 다섯 시에 집을 나서 퇴촌삼거리로 나가 창원대학 앞에서 창원중앙역으로 향했다. 마산에서 동대구로 운행하는 첫차 무궁화호가 창원중앙역에서 여섯 시 출발했다. 내가 가려는 기차역은 청도로 운문사를 찾아가려고 나선 걸음이었다.
비음산터널을 통과한 열차가 진례와 진영을 지나니 날이 밝아왔는데 화포천 습지 인근 야산에는 엷은 안개가 번져갔다. 모정터널을 지난 삼랑진 강심에 걸쳐진 철교를 건너 철길 방향은 크게 북으로 선회해 밀양을 거쳐 청도역에서 내렸다. 역전의 버스터미널에는 운문사로 가는 버스 출발 시각은 여유가 있어 한동안 어정대다가 김밥집이 보여 간식으로 삼을 김밥을 한 줄 샀다.
승객이라곤 나와 또 다른 한 사내를 태운 버스는 청도 읍내를 벗어나 곰티재터널을 지나 매전과 동곡을 거쳐 대천으로 갔다. 대천은 운문댐으로 수몰된 운문면이 이전해온 신시가지에 해당하였다. 대구광역시 동부권 상수원을 공급하는 운문댐을 돌아가니 담수량은 바닥을 드러내 저수지는 풀밭이 되어 있었다. 지난해 가을부터 올여름 강수량이 턱없이 부족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운문사 터미널에 닿아 매표소를 지난 아름드리 송림이 우거진 솔바람길을 따라 걸었다. 공공 근로 할머니들은 이른 아침에 솔숲 바닥의 풀을 뽑고 있었다. 곧 피어날 꽃무릇이 잘 드러나도록 환경을 정비하는 듯했다. 운문사 들머리로 향하는 포장된 차도보다 솔바람길이 더 운치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었다. 통도사 산문에도 찻길보다 무풍한송로로 걸어가는 솔숲길이 훨씬 좋았더랬다.
운문사 경내로 드니 조경 인부들이 제초와 전정 작업으로 예초기와 전기톱 소음으로 귀가 쟁그러웠다. 아까 매표소에서 문화재 관람료를 내었지만 예닐곱 점의 보물은 살피지 못하고 천연기념물 처진소나무만 폰 카메라에 담고 경내를 벗어났다. 산문 들머리 솔바람길에 이어 사리암 가는 숲길을 더 걷기 위해서였다. 자동찻길과 나란한 숲속에 테크를 따라 호젓한 산책길이 나 있었다.
소나무와 참나무의 혼효림인 숲길을 끝난 곳 사리암 주차장엔 일찍 들린 신도들의 차량이 더러 보였다. 낙엽 활엽수림이 우거진 산비탈의 시멘트로 된 좁다란 길을 따라 경사가 더 가팔라지니 수백 개에 해당하는 계단을 디디고 바위 벼랑을 타고 올라갔다. 절벽이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에 처마 밑 제비집을 짓듯 들어선 사리암 관음전에서는 비구니 주재로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소프라노나 메조소프라노가 아닌 알토 음역의 독경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암자 경내에 울려 퍼졌다. 신도들이 모두 일어서서 유인물로 된 법문을 따라 외우고 있어 법당 안으로 들어가 볼 엄두가 나질 않아 바깥에서 서성이다가 발길을 돌려 계단을 따라 내려왔다. 내가 워낙 이른 시각에 암자를 찾아 뒤이어 법회 참여하려거나 산행을 나선 이들이 다수 줄을 이어 암자로 올라왔다
암자 주차장 쉼터에서 간식으로 준비했던 김밥을 먹고 숲길 산책 테크를 따라 운문사로 나가 솔바람길을 되짚어 나갔다. 산문 바깥 주차장에서 청도로 가는 버스를 타고 나가 읍내에 닿아 창원으로 가는 열차표를 예매해 놓고 시간이 남아 역전의 추어탕집으로 들어 맑은 술과 함께 점심 요기를 때웠다. 정한 시각에 동대구에서 내려오는 열차를 타고 밀양을 거쳐 창원으로 돌아왔다. 22.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