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麟趾 序
有天地自然之聲 則必有天地自然之文. 所以古人因聲制子 以通萬物之情 以載三才之道 而後世不能易也.
천지자연에 소리가 있으면 곧 필히 천지자연에 맞는 글자가 있는 것이니라. 이에 옛 사람들이 3재[천부 : 천지인]원리로써
소리글자를 만들어 만물끼리 서로 통하게 하였다. 이 글자는 후세에 능히 쉽게 바꾸지 못하고 오래도록 사용하였다
然四方風土區別 聲氣亦隨而異焉. 盖外國之語 有其聲而無其字. 假中國文字以通其用 是猶 鑿之也.
豈能達而無乎. 要皆各隨所處而安 不可强之使同也. 吾東方禮樂文章 擬華夏.
但方言之語 不與之同. 學書者患其旨趣之難曉 獄者疾其曲折之難通.
昔新羅薛總 始作吏讀 官府民間 至今行之. 然皆假字而用 或澁或窒.
非但鄙 無稽而已 至於言語之間 則不能達其萬一焉.
예컨데 동서남북의 위치에 따라 각 나라별로 바람이 부는 속성이 다르고, 또한 흙의 특징도 각 나라별로 모두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다.
마찬가지로써 소리기운 또한 다른 각 나라별로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다.
중국 이외의 다른 나라들은 말은 있으나 문자가 없다. 그래서 중국문자를 빌려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잘 맞지 않는다
본시 모든 것은 그 장소에 것을 따라야 하는 것이지 억지로 강요하여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이니라.
우리나라에 있는 예와 악과 문장은 중국과 유사하나 방언은 중국과 같지 않다.
그래서 글을 배우는 사람은 그 내용을 깨닫기가 매우 어렵고, 또한 관료들도 해석하기에 어려움이 크다.
그래서 옛날에 신라 설총이라는 분이 이두를 만들었는데 아직까지 관청과 민간에서는 이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
허나 모두 한문을 빌려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것은 어색하고 어떤 것은 잘 맞지 않는다.
비단 속되고 이치에 맞지 않고 우리말을 사용할 경우에는 만분에 1도 표현하지 못한다.
癸亥冬. 我殿下創制正音二十八字 略揭例義以示之 名曰訓民正音.
象形而字倣古篆 因聲而音犀七調. 三極之義 二氣之妙 莫不該括
以二十八字而轉換無窮 簡而要 精而通.
故智者不終朝而會 愚者可浹旬而學 以是解書 可以知其義.
以是聽訟 可以得其情. 字韻則淸獨之能辨 樂歌則律呂之克諧.
無所用而不備 無所往而不達. 雖風聲鶴 鷄鳴狗吠 皆可得而書矣.
그리하여 계해년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 28자를 창제하시고 예의를 갖추시어 훈민정음이라 이름 지으셨다.
이 글자는 상형문자로써 옛글자를 본따서 만드셨다. 소리원리로써 글을 만들었기 때문에 7음에 정확히 맞는다
또한 3극사상과 태극사상도 들어있어 갖추지 않은 것이 없는 글자다.
단지 28자만 가지고도 변화가 무궁하여 간단히 소통할 수 있는 글자니라.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이 오기 전에 배울 수 있고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10흘이면 배울 수 있느니라.
이 글자로써 글을 쓰면 그 뜻도 알수 있게 되고 들음으로써 그 감정까지도 알 수 있게 되느니라.
한문소리는 청탁을 구별하여 적을 수 있고 음악의 가락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글자다.
사용하는데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고 또한 도달하지 못할 곳도 없게 만든 글자니라.
바람소리, 학의 울음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일지라도 모두 이 글자를 가지고 적을 수가 있다.
逐命詳加解釋 以喩諸人.
於是 臣與 集賢殿 應敎臣 崔恒 副敎理 臣 朴彭年 臣申叔舟 修撰 臣 成三問
敦寧府 注簿 臣 姜希顔 行 集賢殿 副臣撰 李塏 臣 李善老 等 謹作諸解及例
以敍其傾槪. 庶使觀者 不師而 自悟.
若其淵源 精義之妙 則非臣等之所能發揮也. 恭惟我殿下
天 之聖 制度施爲超越百王. 正音之作 無所祖述 而成於自然.
豈以其至理之無所不在 而非人爲之私也. 夫東方有國 不爲不久
而開物成務之大智 盖有待於今日也歟.
세종대왕님께서 이 글자을 상세히 해석하여 모두에게 가르치라 명령하시니라.
이에 신(臣)은 집현전 응교 최 항, 부교리 신 박팽년, 신 신숙주, 수찬 신 성삼문, 돈녕부 주부 신 강희안, 행(行) 집현전 부신찬 이
개, 신 이선로 등은 해설을 만들고 예를 지어서 그 개념을 서술하여 보는 사람이 스승 없이도 깨달을 수 있도록 하려고 하였으나만
그 연원이나 정의는 너무도 묘하여 신하들로써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습니다. 공손하게 표현하옵는데 우리 전하는 하늘이 내신 성
인으로써 제도함과 베푸심이 백왕을 초월하신 분이며 정음을 지으심도 스승없이 스스로 완성한 것임이라.
그 지극한 이치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고 또한 사사로운 것도 찾아 볼수 없느니라.
대저 동방의 나라가 오래되지 않음은 아니나 만물을 여는 큰 지혜의 완성은 이때를 기다렸음이라.
正統 十一年 九月 上澣. 資憲大夫 禮曹判書 集賢殿 大提學 知春秋館事 世子 右賓客 臣 鄭麟趾 拜手 稽首謹書.
정통 11년 9월 상한, 자헌대부· 예조판서· 집현전 대제학· 지춘추관사· 세자 우빈객, 신 정인지는 두 손 모아 절하고 머리
조아려 삼가 씀.
위 내용을 읽어 보시면 옛날에 3극사상이 담긴 소리글자가 존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글은 옛 전자를 본땃으며 한글은 뜻글자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글은 세종께서 완성하셨다고 합니다.
이를 조합하여 보면 본래 기호는 예로부터 있던 기호인데 세종께서 그 기호에 소리값을 대응하셔서 한글을 완성하셨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기호는 있었고 소리값만 완성시켰다는 이야기입니다.
<일설에는 신미대사의 많은 도움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어찌 되었든 해례본의 내용데로라면 한글기호는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3재사상이 담긴 소리글은 한글이 가장 정확하기 때문입니다.
해례본의 기록이 이러함에도 한글기호도 세종의 작품이라 주장함은 무슨 근거에 의함인지 필자로써는 이해가 가지 않는 주장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프린트해서 정독을 해보아야겠습니다.
사람들이 하도 해례본을 읽어 보라 해서 직접읽고 해독하여 본 글입니다.
그런데 초장부터 소리글자는 예로 부터 있었다고 나왔습니다. 그런데도 해례본을 읽은 사람들은 그 당시에는 소리글자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영어만 해도 소리글자고 티벳어도 한글원리와 동일한 소리글자인데 소리글자가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역사를 조금 만 알아도 소리글자는 분명히 있었을 것이며 고조선문자도에도 한글기호가 있고 가야도기에도 한글기호가 발견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천부경을 통하여도 입증해 보이겟습니다.
한글속에는 사상이 있기에 사상만 알아도 입증이 됩니다. 때가 되면 서서히 방송에서도 이야기를 하게 되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차후에 역사참여방으로 옮길게요.
좋은글 잘 올려주셨습니다~결국 옛글자를 본받았다는게 고대한글 즉, 가림토문자인 것이고 가림토는 이것과 저것을 가리다 하는 뜻의 가림다문자 이름으로 봅니다. 고 송호상(중국 길림)선생님께서 고대한글을 발견하신 글도 소개했는데 탄소연대 측정으로 4천년 다 된다니 환단고기의 가림토문자 관련기록은 정확히 입증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6/23 구리시 고구려 학술행사에 부디 참석하셔서 고견을 들려주시고 식구의 정을 느끼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감사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아직은 더 정리하여야 합니다.
더 정리한 다음 참석하겟습니다.
아직은 부족함이 많습니다.
구리도 천부경 의 9궁사상과 연결이 됩니다.
부여도 천부와 연결되지요.
이 부사상은 매우 뿌리가 깊답니다.
부중 부가 둥근이랍니다^^
그 시절에는 중국이라는 나라명은 없고요 명제후국은 있었조 중국은 대조선 중앙조정 명칭으로 중조로 불리나 제후국들도 조정이 있어 차별화 하여 높여부른 것잊 중국이다 중국은 대조선 중앙조정 명칭이다 ,,,,500년후 손문이 중국을 중화국가명으로 사용 했다 ,,,
네 이 부분에 대한 해석에서 두가지가 있습니다.
그 해석이 중국이건 중앙정부이건 그렇게 중요한 사한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필자가 중국으로 해석한 이유는 우선 國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假[빌릴 가]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는 사대사상이 있었으니 중국은 현 중국으로 보아야 맞지 않나 생각됩니다.
만약 조선을 중국이라 칭했다면 외교상으로도 문제가 있엇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중국이란 황제가 사는 곳이라 했읍니다.
조선시대 그 당시에 황제칭호을 쓰신 분이 있는지도 검토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중앙정부글자라면 우리글인데 빌린다는 표현이 필요했을까요?
그 당시에는 세종도 한문을 중국글자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중국이란 현 중국이 더 합당한 해석으로 봅니다.
그 당시에 중국이 없었더라도 중국이란 중심국가로써 그 당시의 시대상황을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중국이란 그냥 중심국가란 소리로 풀림니다.
만약 조선이 중심국가란 생각이 있었으면 조선이 중국이란 표현도 맞습니다.
그런데 빌렸다는 표현이 조선으로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좀더 연구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