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 스님의 금강경 핵심 강좌
4강 4부 대한불교조계종 부산연합회 2011.11.21
第十九 法界通化分
제십구 법계통화분
第十九 法界通化分 (十六, 斷福德例心顚倒疑)
제십구 법계통화분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若有人이 滿三千大千世界七寶로 以用布施하면
수보리 어의운하 약유인 만삼천대천세계칠보 이용보시
是人이 以是因緣으로 得福多不아
시인 이시인연 득복다부
如是니이다 世尊하 此人이 以是因緣으로 得福이 甚多니이다
여시 세존 차인 이시인연 득복 심다
須菩提야 若福德이 有實인댄 如來가 不說得福德多어니와
수보리 약복덕 유실 여래 불설득복덕다
以福德이 無故로 如來가 說得福德多니라
이복덕 무고 여래 설득복덕다
그 다음
第十九 法界通化分
제십구 법계통화분
法界通化分(법계통화분) 第十九(제십구),
수보리야!, 이거‘法界通化(법계통화)’이건, 제목은 상당히 그 내용이 아주 큰~ 뜻을 품고 있어요.
법계 그대로 ‘通(통)’자는 전체란 뜻이니까 ‘전체를 교화하다’, 化(화)자니까, 교화한다는 뜻이니까, ‘법계를 하나로 보다’, 이런 의미도 있어요.
‘通化(통화)’‘通(통)’자가 ‘하나’란 뜻이니까,‘전체’.
第十九 法界通化分 (十六, 斷福德例心顚倒疑)
제십구 법계통화분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若有人이 滿三千大千世界七寶로 以用布施하면
수보리 어의운하 약유인 만삼천대천세계칠보 이용보시
是人이 以是因緣으로 得福多不아
시인 이시인연 득복다부
須菩提(수보리)야 於意云何(어의운하)오,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若有人(약유인)이 滿三千大千世界七寶(만삼천대천세계칠보)로 以用布施(이용보시)하면,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 대천세계에 가득한 금․은․보화를 가지고 널리 보시한다면,
저 앞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是人(시인)이 以是因緣(이시인연)으로 得福多不(득복다부)아, 이 사람이 이 인연으로 얻는 복이 많겠는가?”
저 앞에 있었던 내용입니다.
如是니이다 世尊하 此人이 以是因緣으로 得福이 甚多니이다
여시 세존 차인 이시인연 득복 심다
須菩提야 若福德이 有實인댄 如來가 不說得福德多어니와
수보리 약복덕 유실 여래 불설득복덕다
以福德이 無故로 如來가 說得福德多니라
이복덕 무고 여래 설득복덕다
如是(여시)니이다 世尊(세존)하 ,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此人(차인)이 以是因緣(이시인연)으로 得福(득복)이 甚多(심다)니이다
이 사람은 이 인연으로 얻은 복이 매우 많습니다.”
須菩提(수보리)야 若福德(약복덕)이 有實(유실)인댄, 이게 이제 중요한 대목입니다. 복덕이 실로 있는 것[有實(유실)]이라면, 있음이 사실이라면은, 고렇게 새길 수도 있어요. ‘有實(유실)’이라고 했으니까.
如來(여래)가 不說得福德多(불설득복덕다)언마는, 복덕이 많다고 여래가 말을 아니했겠는데,
以福德(이복덕)이 無故(무고)로,
있음이 사실이 아니고, 있음이 사실이라면 복덕이 많다고 하지 아니했을 거야.
왜냐? 그 있다고 하는 것은 사실은 한계가 있으니까. 한계가 있는 건 그건 많은 게 아니야. 많은 게 아니라구요. 그게 결국은 뭔고 하니, ‘卽非福德(즉비복덕)’입니다. 여기서 ‘복덕이 곧 복덕이 아니다’, 이 뜻이에요. 그 이치를 밝히는 것이 이렇게 문장이 좀 달라져서 그렇지, 복덕이 즉비복덕이다. 그러니까 조건을, 만약에 복덕이 있음이 사실이라면 여래가 복덕이 많다고 하지 아니할 것이다.
福德(복덕)이 無故(무고)로 如來(여래) 說得福德多(설득복덕다), 그랬어요.
복덕이 없어. 복덕이 복덕이 아니야. 是名福德(시명복덕)이야.
복덕이 즉비복덕일 새, 이 이름이 복덕이다.
無故(무고)로 如來(여래)가 說得福德多(설득복덕다),
없는 복이 많은 복이다, 없는 복이 많은 복이다.
저 앞에서 ‘무위법’ 이야기가 있었죠. 그래서 이건 이제 ‘법계통화’하고 어떻게 매치를 시킬 것인가? 이걸 내가 많이 이것저것 참고도 하고 고민을 해보니까 이 금강경을 통해서 복덕 이야기가 많았잖아요.
이 복덕의 문제를 우리가 이렇게 이해한다면은, 이 법계 존재하는 모든 문제가 다 여기에 다 따라간다, 다 따라간다, 通化(통화), 다 따라간다. 복덕의 문제 하나를 통해서 다른 모든 세상의 문제까지도 다 따라간다.
그래 있음과 없음, 이 이야기를 아주 앞에서 뭐 이런 이야기가 여러 번 있었으니까 여기는 아주 간략하게, 뭐 서로 다 잘 알고 있는 관계처럼 이렇게 간략하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금강경을 조금 세세하게 눈 여겨 보는 이들은 이게 法界通化(법계통화)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 여기서 고민하게 되어 있는 부분이에요. 제 아는 대로 말씀드리면 그와 같습니다.
金剛般若波羅密經(금강반야바라밀경)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十九 法界通化分(법계통화분)
金剛般若波羅密經
금강반야바라밀경
구마라집(鳩摩羅什) 한문 번역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十九 法界通化分 (十六, 斷福德例心顚倒疑)
제십구 법계통화분
제19. 법계를 하나로 보다(전체를 두루 교화하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若有人이 滿三千大千世界七寶로 以用布施하면
수보리 어의운하 약유인 만삼천대천세계칠보 이용보시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 대천세계에 가득한
금, 은, 보화를 가지고 널리 보시한다면
是人이 以是因緣으로 得福多不아
시인 이시인연 득복다부
이 사람이 이 인연으로 얻는 복이 많겠는가?”
如是니이다 世尊하 此人이 以是因緣으로 得福이 甚多니이다
여시 세존 차인 이시인연 득복 심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이 인연으로 얻은 복이 매우 많습니다.”
須菩提야 若福德이 有實인댄 如來가 不說得福德多어니와
수보리 약복덕 유실 여래 불설득복덕다
“수보리여! 만약 복덕이 그 실체가 있는 것이라면 여래가 ‘복덕을 얻는 것이 많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以福德이 無故로 如來가 說得福德多니라
이복덕 무고 여래 설득복덕다
복덕이 본래 없으므로 여래가 ‘복덕을 얻는 것이 많다’고 말하느니라.”
第二十 離色離相分
제이십 이색이상분
第二十 離色離相分 (十七, 斷無爲何有相好疑)
제이십 이색이상분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佛을 可以具足色身으로 見不아
수보리 어의운하 불 가이구족색신 견부
不也니이다 世尊하 如來를 不應以具足色身으로 見이니
불야 세존 여래 불응이구족색신 견
何以故오 如來가 說具足色身이 卽非具足色身일새 是名具足色身이니이다
하이고 여래 설구족색신 즉비구족색신 시명구족색신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를 可以具足諸相으로 見不아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가이구족제상 견부
不也니이다 世尊하 如來를 不應以具足諸相으로 見이니
불야 세존 여래 불응이구족제상 견
何以故오 如來가 說諸相具足이 卽非具足일새 是名諸相具足이니이다
하이고 여래 설제상구족 즉비구족 시명제상구족
그 다음
第二十 離色離相分
제이십 이색이상분
離色離相分(이색이상분)입니다.‘색도 떠나고 상도 떠났다’.
‘色(색)’은 말하자면 여기 이제 32상 ‘具足色身(구족색신)’하고 ‘具足諸相(구족제상)’, 두 가지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具足色身(구족색신)’,‘具足諸相(구족제상)’!
제대로 모양 갖춘 육신, 그 육신은 그냥 육신만이 아니야.
‘色(색)’자는 육신이고, 육신이, 사람마다 육신이 다 다르잖아요. 사람마다 그 모양이 다 달라. 그게 ‘상(相)’이야.
그래 부처님은 32상 80종호도 갖췄고, ‘具足色身(구족색신)’하면은 그냥 육신의 모습, 제대로 갖춘 육신의 모습, 이런 뜻이 구족색신이고, ‘具足諸相(구족제상)’하면 거기다 32상 80종호 제대로 갖춘, 뭐 어떤 입장으로 보던지, 어떤 입장으로 보던지 그런 뜻입니다.
第二十 離色離相分
제이십 이색이상분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佛을 可以具足色身으로 見不아
수보리 어의운하 불 가이구족색신 견부
不也니이다 世尊하 如來를 不應以具足色身으로 見이니
불야 세존 여래 불응이구족색신 견
何以故오 如來가 說具足色身이 卽非具足色身일새 是名具足色身이니이다
하이고 여래 설구족색신 즉비구족색신 시명구족색신
須菩提(수보리)야 於意云何(어의운하)오,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佛(불)을 可以具足色身(가이구족색신)으로 見不(견부)아, 잘 갖춰진 육신의 모습으로써 부처님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여래가[佛(불)]을 可以具足色身(가이구족색신), 여기 ‘색신’나오죠? 이건 단순한 육신의 모습, 얼굴 모습으로 견부아?
不也(불야)니이다 世尊(세존)하,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如來(여래)를 不應以具足色身(불응이구족색신)으로 見(견)이니,
응당히 갖춘, 제대로 갖춘 색신으로서 보지 않습니다. 부처님 뭐, 얼굴 아무리 잘 나고 무슨 몸뚱이가 아름답게 생겼다 하더라도 그것 가지고 여래라고 보지 않습니다. 부처를 부처라고 보지 않습니다. 여기 여래라고 했다가, 부처라고 했다가 이제 그러네요.
何以故(하이고)오, 왜냐하면
如來(여래)가 說具足色身(설구족색신)이 卽非具足色身(즉비구족색신)일새 是名具足色身(시명구족색신)이니이다.
부처님인데(께) 배운 이야기입니다마는, 부처님 뭐, 아무리 이야기해봐야 무슨 이야기를 해도, ‘如來(여래) 說具足色身(설구족색신)’ 아주 제대로 몸뚱이를 타고 났다하더라도 그건 ‘卽非(즉비)’야. 즉비.
卽非具足色身(즉비구족색신) 是名具足色身(시명구족색신)이다. 즉비.
具足色身(구족색신)이다, 이렇게 하고, 그 다음에, 그러면 부분적으로 한번 다시 좀 색신을 분석해보자. 그건 이제 상으로 분석하죠. 32상 80종호로.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를 可以具足諸相으로 見不아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가이구족제상 견부
不也니이다 世尊하 如來를 不應以具足諸相으로 見이니
불야 세존 여래 불응이구족제상 견
何以故오 如來가 說諸相具足이 卽非具足일새 是名諸相具足이니이다
하이고 여래 설제상구족 즉비구족 시명제상구족
두 번째 이야기는 그겁니다.
‘색신[具足色身(구족색신)]’은 그냥 몸뚱이를 일반적으로 거론한 것이고, ‘具足諸相(구족제상)’하면 부분적으로 32상 80종호로 비춰서, 이렇게 본다는 거죠.
須菩提(수보리)야 於意云何(어의운하)오,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如來(여래)를 可以具足諸相(가이구족제상)으로 見不(견부)아, 여러 가지 상호를 잘 갖추고 있는 것으로써 여래라고 볼 수 있겠는가?”
不也(불야)니이다 世尊(세존)하,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如來(여래)를 不應以具足諸相(불응이구족제상)으로 見(견)이니, 여러 가지 상호를 잘 갖추고 있는 것으로써 반드시 여래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여래를 제대로 갖춘, 32상과 80종호를 제대로 구족한 것으로서도 보지를 않습니다.
何以故(하이고)오, 왜냐하면,
부처님이 뭐 잘났다고 하는 입장이던지, 32상 80종호를 갖춘 입장이라고 하던지 간에,
如來(여래)가 說諸相具足(설제상구족)이 卽非具足(즉비구족)일새 是名諸相具足(시명제상구족)이니이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여러 가지 상호를 잘 갖추고 있다는 것은, 곧 여러 가지 상호를 잘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름이 여러 가지 상호를 잘 갖추고 있는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如來(여래)가 說諸相具足(설제상구족)이 卽非具足(즉비구족)일새, ‘卽非(즉비)’ , 벌써 우리가 대충 잡아도 뭐 20개 넘죠, ‘卽非(즉비)’란 낱말이.
卽非具足(즉비구족)일새 是名諸相具足(시명제상구족)이니이다, 그 뭐 상호가지고, 아무리 32상 80종호라 하든지, 그 우리, 32상의 키가 몇 자다, 조건이 그건 없죠. 그건 없습니다. 뭐 어떻게 생겼다, 뭐 어떻게 생겼다, 그런 말은 있어도, 아무튼 뭐 잘 생긴 모습이든지 또 구체적으로 상호에 들어가서 그 어떤지 간에, 그 뭐 크게 문제 삼을 거 아닙니다. ‘卽非(즉비)’니까, 없는 것으로 봐야 하니까. 아닌 것으로 봐야하니까. 또 아닌 것이고.
그 상이야 뭐 상이 아닌 것은 틀림없는 것이고.
그거 이제 아니다, 라고 하는 것으로 또 우리 아는 상식으로 또 설명을 하기로 하면은 뭐, ‘空(공)’하기 때문에 아니다, ‘緣起(연기)’기 때문에, 이것저것 조건으로써 이뤄진 상이기 때문에 아니다, 그런 표현을 해요. 그러니까 이게 공, 모든 존재의 空性(공성)을 이야기할 때, 대개 이제 제일 이제 수준 낮은 세속적인 입장으로 모든 존재의 공성을 이야기할 때는 ‘分析空(분석공)’이라 그래요, 분석공.
예를 들어서 이 마이크가 있다. 그럼 마이크를 하나하나 분해할 때는, 이런 마이크란 실체가 없지 않느냐? 자동차도 뭐 2만 개의 부품으로 이뤄졌는데 그 2만 개의 부품 하나하나 분해해 버리면 그 자동차란 실체가 없지 않느냐? 이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분석공이에요. 분석공.
그건 이제 聲聞(성문)들의 안목이야, 성문의 안목. 제일 낮은 수준, 성문의 안목.
그럼 성문, 緣覺(연각) 아닙니까? 그 다음 연각의 안목은 뭐냐?
연기고 공이라, 그래요. ‘緣起空(연기공)’이라 그래. 그냥 분석공 위에 연기공이 있어. 연기공.
모든 것이 ‘緣起(연기)’로 되어 있다, 이 말이야.
연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인연이 흩어지면 공한 것이다. 이거 분석하곤 조금 차원이 다릅니다. 엇비슷한 거 같으면서도 달라요. 그 연기공이다 그래요.
모~든 존재는 인연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그래서 연기공이다.
요고는 이제 연각의 차원입니다. 그 우리가 공성을 설명할 때 막, 연각의 차원에서 이야기하다가, 성문의 차원에서 이야기하다가, 막 두루뭉실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제 우리가 교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의 그 설명이 고런 점이 다릅니다.
그게 우리 불교 그냥 대충 알아가지고 허~ 空(공)한 것이다, 그래서 분석으로도 이야기하고, 연기로도 이야기하고 뭐, 편리할 때도 설명을 하는데, 엄연히 달라요. 분석공하고 연기공하고 달라요.
요즘 선사분들이 공이야기를 하면서, 분석공으로도 이야기하다가, 연기공으로도 이야기하다가, 그래서 뭐, 연기공 이야기를 많이 하죠. 연기이기 때문에 공이다.
왜 공이라고 하느냐? 연기니까. 모든 존재가 연기로 되었으니까 공이다. 좋아요. 거기까지만 해도 좋아요. 그런데, 그것은 연각의 수준이다. 연각의 수준이다.
그럼 여기는 보살이야기야.
보살은 뭐냐? ‘卽空(즉공)’입니다.
‘色卽是空(색즉시공) 空卽是色(공즉시색)’ 아니에요?
여기도 ‘卽非(즉비)’라고 했어요. 뭐 분석이다 연기다 그런 말 없습니다.
‘卽非具足(즉비구족)’이에요. 바로 ‘卽空(즉공)’이에요. 즉공.
그 요건 보살차원이여. 그대로 보고, 이건 뭐 마이크를 이걸 보고, 아, 이건 분석했다, 분석해보고 아니면 뭐 인연으로 결합된 것이다, 이런 구구한 소리 없어요.
그냥 그대로 보고 ‘卽空(즉공)’으로 보는 거요.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그냥 두고 ‘空(공)’이라고 보는 게 이게 보살의 견해입니다.
뭐, 우리 그 저기 그, 본인의 견해가 어떠냐 하는 것은 이건 별개의 문제라.
본인의 수양이라든지, 본인의 안목이라든지 이것이 그럼 어디까지 갔느냐, 이건 별개의 문제고, 우리는 이론적으로 표현할 때, 분명히 성문의 空觀(공관)이 있고, 연각의 공관이 있고, 보살의 공관이 있어.
보살의 공관이야, 般若心經(반야심경)이나, 金剛經(금강경)이나, 전부 보살의 공관, 여기 ‘卽空(즉공)’이라고 했고, ‘卽非(즉비)’라고 했지, 무슨 연기 때문에 공이다, 이런 말 없어요.
왜 대승경전을 놓고 성문 연각 이야기를 합니까?
고런 차원도 우리가 이런 기회에 확실하게 짚고 넘어갈 내용이죠.
그 ‘卽非(즉비)’, ‘卽空(즉공)’, ‘色卽是空(색즉시공) 空卽是色(공즉시색)’,
바로 그대로, 우리 몸뚱이 그냥 두고, 그대로 공이라고 보는 거죠.
절대 분해 안 합니다. 분해하면 안 되죠.
연기 갖다가 끌어대도 안 돼요. 연기 갖다 끌어대 가지고 반야심경, 공을 설명하면 틀립니다. 그건 안 맞아요. 그냥 그대로 보는 거야. 우리 눈에 그렇게 안 보이죠. 공으로 안 보입니다. 안 보여서 그렇지, 이론은 즉공이다,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金剛般若波羅密經(금강반야바라밀경)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二十 離色離相分(이색이상분)
金剛般若波羅密經
금강반야바라밀경
구마라집(鳩摩羅什) 한문 번역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二十 離色離相分
제이십 이색이상분
사물도 떠나고 상도 떠나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佛을 可以具足色身으로 見不아
수보리 어의운하 불 가이구족색신 견부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잘 갖춰진 육신의 모습으로써 부처님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不也니이다 世尊하 如來를 不應以具足色身으로 見이니
불야 세존 여래 불응이구족색신 견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잘 갖춰진 육신의 모습으로써 반드시 여래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何以故오 如來가 說具足色身이 卽非具足色身일새 是名具足色身이니이다
하이고 여래 설구족색신 즉비구족색신 시명구족색신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잘 갖춰진 육신의 모습이란 곧 잘 갖춰진 육신의 모습이
아니며, 그 이름이 잘 갖춰진 육신의 모습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를 可以具足諸相으로 見不아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가이구족제상 견부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러 가지 상호를 잘 갖추고 있는 것으로써 여래
라고 볼 수 있겠는가?”
不也니이다 世尊하 如來를 不應以具足諸相으로 見이니
불야 세존 여래 불응이구족제상 견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러 가지 상호를 잘 갖추고 있는 것으로써 반드시 여래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何以故오 如來가 說諸相具足이 卽非具足일새 是名諸相具足이니이다
하이고 여래 설제상구족 즉비구족 시명제상구족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여러 가지 상호를 잘 갖추고 있다는 것은, 곧 여러 가지 상호를
잘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며, 그 이름이 여러 가지 상호를 잘 갖추고 있는 것일 뿐이기 때문
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만 더 할까요?
第二十一 非說所說分
제이십일 비설소설분
第二十一 非說所說分 (十八, 斷無身何以說法疑)
제이십일 비설소설분
須菩提야 汝勿謂如來가 作是念호대 我當有所說法이라하라 莫作是念이니
수보리 여물위여래 작시념 아당유소설법 막작시념
何以故오 若人이 言如來가 有所說法이라하면 卽爲謗佛이라 不能解我所說故니라
하이고 약인 언여래 유소설법 즉위방불 불능해아소설고
須菩提야 說法者는 無法可說을 是名說法이니라
수보리 설법자 무법가설 시명설법
爾時에 慧命須菩提가 白佛言하사대 世尊하 頗有衆生이 於未來世에
이시 혜명수보리 백불언 세존 파유중생 어미래세
聞說是法하고 生信心不잇가
문설시법 생신심부
佛言하사대 須菩提야 彼非衆生이며 非不衆生이니
불언 수보리 피비중생 비불중생
何以故오 須菩提야 衆生衆生者는 如來가 說非衆生일새 是名衆生이니라
하이고 수보리 중생중생자 여래 설비중생 시명중생
第二十一 非說所說分
제이십일 비설소설분
非說所說分(비설소설분), ‘설과 소설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能說(능설)과 소설(所說)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불교에는‘주(主)’·‘객(客)’이라는 말 대신에 ‘能(능)’·‘所(소)’라고 하는 말을 잘 씁니다. 능은 주체적인 입장이고 소는 객체적인 입장입니다.
‘能說(능설)’은 능히 주체적인 입장에서 설명하는 것, 설하는 사람을 말하고 그 설할 거리, 대상이 ‘소설(所說)’이지요.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입장은 능설이 되고 그 이야기 거리인 금강경은 소설이 됩니다. 그래서 ‘설과 소설이 아니다’라고 하는 이 제목에서 설은 능설이 되는 것이지요. 이것을 풀이해 보면 ‘설하는 나도 없고, 설할 금강경도 없다’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설과 소설이 아니다.
설은 ‘능설(能說)’, 능히 설하는, 넉자를 맞추기 위해서 한 겁니다. 능히 설하는 사람.
설할 것, 설할 대상, 이게 ‘소설(所說)’, 설과 소설이 아니다. 그 이제 부처님께서 뭐, 저 앞에서 無得無說分(7.무득무설분)참고)에서 이야기한 건데, 여기서 다시 복습합니다.
참고)
第七 無得無說分 (三, 斷無相云何得說疑)
제7. 무득무설분 (얻음도 없고 설함도 없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가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耶아 如來가 有所說法耶아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야 여래 유소설법야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는가? 또 여래가 설법 (說法)한 바가 있는가?”
須菩提가 言하사대 如我解佛所說義컨댄 無有定法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며
수보리 언 여아해불소설의 무유정법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
亦無有定法如來可說이니이다
역무유정법여래가설
수보리가 사뢰었습니다.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기에는 고정된 그 무엇
으로써 최상의 깨달음이라고 할 것은 없습니다. 또한 고정된 그 무엇으로써 여래께서 설법
하신 것은 없습니다.
何以故오 如來所說法은 皆不可取며 不可說이며 非法이며 非非法이니
하이고 여래소설법 개불가취 불가설 비법 비비법
왜냐하면 여래의 설법은 모두가 취할 수가 없으며, 말 할 수도 없으며, 옳은 법이 아니며,
그른 법도 아닙니다.
所以者가 何오 一切賢聖이 皆以無爲法으로 而有差別이니이다
소이자 하 일체현성 개이무위법 이유차별
왜냐하면 일체 성현(聖賢)들은 모두가 조작이 없고 꾸밈이 없는[無爲(무위)] 법으로써 온갖 차별을 꾸며서 펼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 무비스님의 금강경 핵심 강좌 2강 2부 第七 無得無說分 (7.무득무설분)
第二十一 非說所說分 (十八, 斷無身何以說法疑)
제이십일 비설소설분
須菩提야 汝勿謂如來가 作是念호대 我當有所說法이라하라 莫作是念이니
수보리 여물위여래 작시념 아당유소설법 막작시념
何以故오 若人이 言如來가 有所說法이라하면 卽爲謗佛이라 不能解我所說故니라
하이고 약인 언여래 유소설법 즉위방불 불능해아소설고
須菩提야 說法者는 無法可說을 是名說法이니라
수보리 설법자 무법가설 시명설법
須菩提(수보리)야, 수보리여!
汝勿謂如來(여물위여래)가 作是念(작시념)호대,
너는 이런 말 하지 말아라, 이렇게 여기지 말라, ‘勿謂(물위)’, 또 이렇게 생각하지 말라. 여래가 이렇게 생각하되,
我當有所說法(아당유소설법)이라하라 莫作是念(막작시념)이니,
여래 스스로 팔만대장경 설했으니까, ‘당신 그렇게 설했으니까 내가 마땅히 설한 바 법이 있다’고 그런 생각을 하지 마란 말이야. ‘莫作是念(막작시념)’그런 생각을 하지 말지니,
何以故(하이고)오, 왜냐하면
若人(약인)이 言如來(언여래)가 有所說法(유소설법)이라하면,
若人(약인)이 言(언),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가 설법한 바가 있다[如來(언여래)가 有所說法(유소설법)]라고 하면
卽爲謗佛(즉위방불)이라, 곧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다.
내가 언제 설했다고? 입 싹 닦는 거죠. 팔만대장경 설해놓고 입싹 닦아 버리는 것입니다. ‘卽爲謗佛(즉위방불)’이다, 너희들 설법을 많이 했다고 하면 너거는(너희는)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不能解我所說故(불능해아소설고)니라, 능히 내가 이해한 바, 내가 설한 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 뜻하고는 전~혀 관계없이 너거(너희는) 알고 있다 말이야.
須菩提(수보리)야 說法者(설법자)는 無法可說(무법가설)을 是名說法(시명설법)이니라,
이 ‘ 無法可說(무법가설)’도 ‘卽非說法(즉비설법)’이죠, 사실은. ‘是名說法(시명설법)’, 내용은 그렇습니다.
설법자는 즉비설법일 새, 시명설법이니라.
그걸 조금 글을 바꿔놨죠. 법, 가히 설할 것이 없을 새, 이 이름이 설법이다!
야! 우리 이 설법에 얼마나 의지하고 있습니까? 설법에 울고 웃고, 설법에 뭐, 내 죽을 곳을 얻었다, 이렇게 표현하는 사람도 있고요.
爾時에 慧命須菩提가 白佛言하사대 世尊하 頗有衆生이 於未來世에
이시 혜명수보리 백불언 세존 파유중생 어미래세
聞說是法하고 生信心不잇가
문설시법 생신심부
爾時(이시)에 慧命須菩提(혜명수보리)가 白佛言(백불언)하사대,
그때 혜명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올리되,
世尊(세존)하 頗有衆生(파유중생)이, 세존이시여! 저 많고 많은 중생이,
‘頗(파)’자는 그런 뜻입니다. 여기서. 저 많은 중생이,
於未來世(어미래세)에 聞說是法(문설시법)하고 生信心不(생신심부)잇가,
하, 부처님도 염려스럽지마는 수보리는 더 염려스러워요. 왜냐?
‘說法者(설법자)는 無法可說(무법가설)을 是名說法(시명설법)’했으니까.
오로지, 우리가 후대 사람들의 의지할 바는 설법, 부처님이 가르친 법, 법 뿐인데, 부처님은 이미 열반하셨고, 의지할 것은 오직 법뿐인데 법을 갖다가 이리 깡그리 부정해버렸으니까, 그 의지할 법을 이렇게 부정했으니까 이 야단났거든요.
그러니까 거기다 ‘慧命(혜명)[慧命須菩提(혜명수보리)]’이라고, 수보리 위에다가 지혜로써 목숨으로 삼는, 지혜를 목숨으로 삼는 혜명수보리, 이렇게 표현한 겁니다. 이 글자 하나하나가요, 그 그냥 놓은 게 아니에요. 아~주 그 의미를 우리가 곱씹어보면은, 왜 실컷 있다 여기와서 ‘慧命(혜명)’이라고 했는가?
설법의 문제를 부처님 스스로 부정했으니까 이 얼마나 중대한 문제입니까?
爾時(이시)에 慧命須菩提(혜명수보리)가 白佛言(백불언)하사대,
世尊(세존)하 頗有衆生(파유중생)이 於未來世(어미래세)에 聞說是法(문설시법)하고 生信心不(생신심부)잇가,
그 말, 설법을 부정하는 그 말을 듣고,
生信心不(생신심부)잇가, 믿겠습니까?
믿겠습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佛言하사대 須菩提야 彼非衆生이며 非不衆生이니
불언 수보리 피비중생 비불중생
何以故오 須菩提야 衆生衆生者는 如來가 說非衆生일새 是名衆生이니라
하이고 수보리 중생중생자 여래 설비중생 시명중생
佛言(불언)하사대, 부처님이 척~ 말씀하시기를,
須菩提(수보리)야 彼非衆生(피비중생)이며 非不衆生(비불중생)이니,
수보리여! 저 중생은 중생이 아니야[彼非衆生(피비중생)].
彼非衆生(피비중생)은 非不衆生(비불중생),
그들은 彼(피), 중생도 아니야[非衆生(비중생)].
중생도 아님도 아니야. 非不衆生(비불중생).
何以故(하이고)오 須菩提(수보리)야, 왜냐하면 수보리여!
중생, 중생, 우리가 중생, 중생, 참 얼마나 많이 말합니까?
우리가, ‘四相(사상)’설명할 때 말씀드렸습니다마는, 그 뭐 잘못해놓고 뭐 핑계 댈 때, ‘하이고, 중생이 그러면 그렇지.’그러잖아요.
衆生衆生者(중생중생자)는 如來(여래)가 說非衆生(설비중생)일새 是名衆生(시명중생)이니라
衆生衆生者(중생중생자)는 如來(여래)가 說非衆生(설비중생)일새, 여래가 말하기를 중생이 중생이 아니다. 是名衆生(시명중생)이다.
‘衆生衆生者(중생중생자)는 卽非衆生(즉비중생)’,
중생도 역시 즉비의 원리에 포함됩니다. 포함 안 될 개념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즉비의, 즉비의 원칙에 포함 안 되는 개념은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如來(여래) 說(설) 非衆生(비중생),
‘卽非衆生(즉비중생)일 새 是名衆生(시명중생)’이다, 그랬습니다.
중생이 중생이 아니라, 부처다, 이래도 상관없어요.
또 부처다, 하면 또 그걸 또 물고 늘어질 까 두렵죠. 그러니까,
‘如來(여래) 說(설) 非衆生(설비중생)일새 是名衆生(시명중생)이다’
참! 금강경, 시원시원하고 그래서 선사스님들이 그렇게 좋아했고, 그래서 조계종에서 所依經典(소의경전)으로 삼았던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고 다음에 이제 한번만 하면 이제 회향이네요.
죽비소리
金剛般若波羅密經(금강반야바라밀경)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二十一 非說所說分(비설소설분)
金剛般若波羅密經
금강반야바라밀경
구마라집(鳩摩羅什) 한문 번역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二十一 非說所說分 (十八, 斷無身何以說法疑)
제이십일 비설소설분
말과 말할 것이 없다
須菩提야 汝勿謂如來가 作是念호대 我當有所說法이라하라 莫作是念이니
수보리 여물위여래 작시념 아당유소설법 막작시념
“수보리여! 그대는 이러한 말을 하지 말지니, ‘여래는 스스로 ‘나는 반드시 설법한 것이
있다.’라고 생각할 것이다.’라고 하지 말라. 그런 생각도 하지 말라.
何以故오 若人이 言如來가 有所說法이라하면 卽爲謗佛이라 不能解我所說故니라
하이고 약인 언여래 유소설법 즉위방불 불능해아소설고
왜냐하면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래는 설법한 것이 있다’라고 한다면, 이것은 곧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 되며, 내가 말한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須菩提야 說法者는 無法可說을 是名說法이니라
수보리 설법자 무법가설 시명설법
수보리여! 설법이라고 하는 것은 설할 수 있는 법이 없다. 그 이름이 설법일 뿐이니라.”
爾時에 慧命須菩提가 白佛言하사대 世尊하 頗有衆生이 於未來世에
이시 혜명수보리 백불언 세존 파유중생 어미래세
그때 지혜를 생명으로 삼는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매우 많은 중생들이 이 다음 세상에
聞說是法하고 生信心不잇가
문설시법 생신심부
이러한 도리를 설명하는 것을 들으면 믿는 마음이 나겠습니까?”
佛言하사대 須菩提야 彼非衆生이며 非不衆生이니
불언 수보리 피비중생 비불중생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여! 그들은 중생이 아니며 중생이 아님도 아니다.
何以故오 須菩提야 衆生衆生者는 如來가 說非衆生일새 是名衆生이니라
하이고 수보리 중생중생자 여래 설비중생 시명중생
왜냐하면 수보리여! 중생, 중생하는 것도 여래는 말하기를 ‘중생이 아니라 그 이름이 중생
일 뿐이다.’라고 하기 때문이니라.”
4강 4부(2011.11.21) 마침
첫댓글 삼보에 귀의합니다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생활속불교에서 삶의 지혜를 배웁니다 나무관세음보살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