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白雲山
<단체기념사진>
Ⅰ. 개황(槪況)
1. 일 시 : 2014. 3. 13. 07:00
2. 장 소 : 백운산
3. 참석인원 : 27명(새내기 3명)
4. 등산코스 : 점재나루 - 정상 - 칠목령 - 하늘벽구름다리 - 제장나루
5. 교통정보
- 빠른 길 찾기 정보
▶ 검 색 지 : KBS춘천방송총국 ⇨ 정선군 신동면 운치리 266-2 ▶ 거 리 : 177,6km ▶ 소요시간 : 3시간42분
- 다녀온길 : 중앙고속도로 춘천IC, 제천IC - 38번국도 - 고무교차로 - 신동교차로 - 예미교차로 - 운치리 제장나루
- 동원차량 : 강원 70바 1713 권 희 성
6. 날씨예보상황
- 기 준 : 2014. 3. 13. 05:00기준 - 개 황 : 오전 흐리고 가끔 비, 오후 구름 많음 - 기상도 : 06:00 이전 우산, 09:00~12:00 구름, 15:00 이후 구름과해 ▶ 비 올 확 률 : 20% ▶ 기 온 : 1 ~ 5℃ 분포 ▶ 예상 강수량 : 1 ~ 4㎜
7. 활동상황
○ 07:00 --- KBS춘천방송총국 앞 출발(제천휴게소 경유) ○ 09:15 --- 점재나루 도착 ○ 09:23 --- 단체기념사진촬영 및 일정안내 ○ 09:26 --- 들머리진입 ○ 10:59 --- 정상도착 ○ 11:43 --- 문희마을 갈림길 ○ 12:40 --- 629봉 점심식사 ○ 13:34 --- 한비 이영미추모비 ○ 13:45 --- 문희마을 갈림길 ○ 13:57 --- 제장 갈림길 ○ 14:01 --- 제장, 문희마을 갈림길 ○ 14:03 --- 칠족령, 전망대 ○ 14:32 --- 하늘벽구름다리 ○ 15:16 --- 전망대 원점회귀 ○ 16:04 --- 제장나루 ○ 16:16 --- 제장나루주차장 도착 ○ 16:20 --- 제장나루주차장 출발 ○ 16:30 --- 캐슬가든 하산행사 ○ 16:50 --- 캐슬가든 출발 ○ 19:19 --- 남춘천역 도착
Ⅱ. 지역특성
<629봉에서 본 동강 전경>
1. 지역유래
- 오늘 나들목이 소재한 신동읍의 연혁을 살펴본다. 신동읍은 1906. 10. 1 평창군에서 정선군으로 편입, 1962년 함백출장소 설치, 1982. 12. 1 대통령령 제10050호에 의거 면에서 읍으로 승격되었다. 원래는 평창군 동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 정선군으로 편입되면서 신동면이 되었다. 1935년에는 천포리와 석항리 일부가 영월군 상동면 연당리로 1973년에는 천포리 일부가 영월군으로 이속되었다. 1948년 대한석탄공사 함백광업소가 개설되면서 인구가 증가되면서 신동면에서 읍으로 승격되었다. 행정구역은 8개 법정리, 26개 행정리, 132개 반, 69개의 자연부락이 있다.
- 오늘 들머리인 운치리(雲峙里)는 읍사무소에서 8 ~ 15㎞ 북쪽에 위치한 리로 남한강 상류의 동강 언덕 양편에 산재한 마을이다. 운치리라는 지명은 1914년 일제강점기에 토지를 빼앗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한 지방행정구역 통폐합 때 납운돌(納雲乭)과 돈니치(敦니峙)를 병합하면서 생겨난 이름이라고도 하고, 남한강 상류 강물이 흐르고 있어 늘 안개가 산마루를 떠돌기 때문에 운치라고 하였다고 하기도 한다. 곰봉의 험준한 산세가 남쪽에 솟아있고 백운산이 층암절벽을 이루었으나 사람 살 곳은 골골마다 있다. 과거 이곳은 세상이 싫어서 찾아든 사람이 숨어사는 곳이기도 했다. 동으로 정선읍 가수리와 인접하여 경계를 이룬다. 백운산(白雲山)과 곰봉(雄峰) 사이로 흐르는 동강 변에 형성된 마을로 알려지지 않은 석회암 동굴이 많고 깊은 골짜기와 기암절벽의 봉우리들도 많이 있다. 한창 때는 2백 가호가 넘게 살았다고 한다. 수동, 점치, 납운동, 돈니치, 설론, 터골, 번들 등지의 자연부락에서 고추, 콩, 옥수수 등의 밭농사를 경작한다.
- 오늘 날머리인 덕천리(德川里)는 정선군에서 가장 서남단에 위치하여 남한강 유역에서 영월군과 접경을 이룬 리로서 강남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잇다. 본래 평창군 동면 지역으로 고종32년(1895년)에 정선군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14년 일제강점기 때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소골(所洞), 바새(所沙),연포(硯浦), 제장(堤場)을 병합하여 큰 산을 뜻하는 덕산(德山)과 내(川)의 이름을 따서 덕천리(德川里)라 하였다고 하기도 하고, 강을 따라 왕기(旺寄)가 들어와 왕성하게 될 조짐이 보인다하여 덕(德)자와 내 천(川)자를 따서 덕천리라고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일명 원덕천(元德川)이라고도 한다. 지세는 갈벌등 남서에 신병산(687m) 연봉이 둘러서 있고 북으로 남한강 상류가 굽이굽이 돌아 운치, 고성리와 같이 평야는 희소하고 넓은 강이 유유히 영월로 흘러간다. 선사 때 유적이 있고, 후 백제의 결원 군사와, 후 고구려 왕건 군사와 격전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남한강 상류인 동강(東江)의 절경을 끼고 있는 마을로 물굽이가 심해 여러 곳의 모래 퇴적 지형이 형성되어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1990년 단국대학교 박물관 팀이 소골 지역에서 신석기시대의 유적들을 대량으로 발국 해 대학박물관에 보관하고 있으며, 발굴지 주변 밭에서는 지금도 깨진 토기 조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밖에도 소골 제장 등지에는 훼손된 고인돌 등의 유적이 남아 있고 아직도 채 발굴하지 못한 유물이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덕천리 강변지역은 40여 년 전 까지만 해도 서울로 목재를 운송하던 떼꾼들이 쉬어 가 던 객주집들이 들어서 강변 경제권을 이루기도 했다. 북서쪽 동강 하류로는 영월군 영월읍 문산리와 평창군 미탄면이 맞닿아 있다.
2. 백운산 살펴보기
<백운산등산로안내판>
- 백운산은 약65km에 이르는 동강의 중간지점에 동강을 따라 6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다. 동강은 강원도 정선, 평창 일대의 깊은 산골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들이 오대천, 골지천, 임계천, 송천 등이 모여 정선읍 내에 이르면 조양강(朝陽江)이라 부르고 이 조양강에 동남천 물줄기가 합해지는 정선읍 남쪽 가수리 수미마을에서부터 영월에 이르기까지의 구간을 동강이라고 따로 이름 했다. 이 동강은 영월읍에 이르러 서강(西江)과 합해지며, 여기서 강물은 남한강이란 이름으로 충주, 여주, 서울을 거쳐 서해 바다까지 흘러간다. 동강에서 바라보는 백운산은 정상에서 서쪽으로 마치 삼각형을 여러 개 겹쳐 놓은 듯한 여석개의 봉우리가 동강을 따라 이어져 있고 동강 쪽으로는 칼로 자른 듯한 급경사의 단애로 이루어 져 있다. 백운산은 동강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 경관이 아름답고, 조망이 좋으며 생태계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한국의 100대 명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점재나루에서 정상을 올라 제장나루까지 여섯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린다. 백운산 산행의 진미는 뱀이 똬리를 틀은 것 같은 굽이굽이 돌고 도는 동강의 강줄기를 능선 따라 계속 조망할 수 있는데 있다. 등산로는 6개의 봉우리를 가파르게 오르고 가파르게 하산하며 주로 참나무 군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능선 왼쪽 동강 쪽은 낭떠러지 같은 급경사가 단애를 이룬다.
<백운산등산지도>
- 인터넷 검색창에 백운산을 치고 들어가면 강원 정선군 신동읍 백운산(882.5), 강원 원주. 충북 제천 백운산(1,087.1), 전남 광양 옥룡면 백운산 도솔봉(1,218) 경기 성남 의왕. 수원 백운산 (567), 경남 함양. 전북 장수 백운산 (1,279), 경기 포천 이동 백운산(904) 등이 뜬다. 이중 정선 백운산, 원주.제천 백운산, 포천 백운산은 이미 다녀온바 있기 때문에 산 이름만 들어도 감이 잡힌다. 나머지 백운산 중 전남 광양의 백운산이 가장 마음에 와 닫는 산으로 기억된다. 몇 년 전 춘천시내 모 산악회와 동행하여 백운산 인근 전남 광양시 다압면에 있는 쫓비산(537m)을 다녀왔기 때문일 것이다. 쫓비산은 광양 매화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호남정맥 백운산에서 갈래 쳐진 산으로서 섬진강을 끼고 앉은 산이다. 그 당시 기회가 닫는 대로 계절을 잘 골라 정기산행을 염두에 뒀었는데 지금까지 차일피일하면서 기회를 잡지 못한 채 아쉬움을 갖고 있는 산이기도 하다.
- 백운산은 흰 白(백), 구름 雲(운)자를 쓴다. 백운산은 신동읍 운치리 와 덕천리를 비롯하여 평창군 미탄면을 가로막아선 산으로서 흰 구름을 연상하듯 능선에 항상 안개가 자욱하다 하여 백운산이라고 불린다. 백운산은 우리 모두산악회에서 하늘벽구름다리 개설과 때를 같이하여 2010. 5. 13 처음 다녀왔던 산이다. 그 당시의 향수를 다시금 누려 보고자 4년여 만에 또 다시 정기산행일정에 잡아 안내준비를 하였다. 백운산의 탐방로는 아래 세 코스가 일반적이다. 그중 1코스와 3코스를 연계하여 기본코스로 잡았고, 칠족령에서 하늘벽구름다리 까지 왕복 1시간 구간을 병행코스로 융통성 있게 운영할 요량이었다.
▶ 1코스 : 점재 ⇨ (30)점재2지점 ⇨ (1시간 30)정상 (총2시간)
▶ 2코스 : 연포생태체험학교 ⇨ (40)하늘벽유리다리 ⇨ (30)칠족령 ⇨ (2시간)정상 (총3시간10분)
▶ 3코스 : 제장 ⇨ (30분)칠족령 ⇨ (2시간)정상 (총2시간30분)
Ⅲ. 산길여정
<하늘벽 구름다리에서 본 동강전경>
- 수요일 밤은 늘 잠자리가 뒤숭숭하다.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꿈속에서 헤매기 일쑤였다. 내일 아침 신청하신 분 중 펑크 내는 분은 없을까? 들머리는 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까? 예정된 시간 내에 들머리에 도착할 수 있을까? 산행환경에 문제는 없을까? 탐방로 선정에 문제는 없을까? 처녀산행지인 경우 진로선도의 문제는 없을까? 예정된 운영시간 내 운영은 가능할까? 참석하신 분들께서 산에 대한 반응은 어떨까? 일상정리에 필요한 자료를 놓친 것은 없을까? 견문과 소양을 넓히는데 필요한 자료는 무엇을 챙길까? 일상정리 편집 방향은 어떻게 잡을까? 등에 대하여 궁상을 떨다 잠에 들다보니 꿈속에서도 늘 산을 다녀오기 마련이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 금주 간추린 주간 날씨는 기압골의 영향으로 12(수)일은 전국에 비가 오겠고, 남부지방은 13(목)일까지 이어지는 곳이 있겠으며, 19일은 서울. 경기도와 강원도 영서에서 비가 오겠다고 예보하였다. 한편, 동풍의 영향으로 강원도 영동은 13(목)일에 비 또는 눈이 오는 곳이 있겠고, 그 밖의 날은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들어 가끔 구름이 많겠다고 하였다. 기온은 15일까지 평년(최저기온 : -3 ~ 7도, 최고기온 : 9 ~ 15도)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겠으나, 16일 이후에는 평년보다 높으며 강수량은 평년(강수량 : 1 ~ 8mm)과 비슷하거나 조금 많겠다고 하였다. 12(수)일까지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는 점에 대해서는 긴장감을 감출 수 없었지만 중부지방을 제외한 남부지방과 강원도 영동지역은 13(목)일까지 비 또는 눈이 오는 곳이 있겠다는 점에 대해서 긴장감에 위축돼있던 분위기가 고무적인 분위기로 반전되면서 좋은 산행환경을 예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아침 정선지역 날씨 상황은 오전 흐리고 가끔 비가내리고, 오후 구름이 많을 것으로 예보되었기 때문에 비상이 걸리고 말았다. 그러나 예상 강수량이 1 ~ 4㎜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그 분의 선처를 바라면서 기대를 걸어보기로 하였다.
- 오늘 참석인원은 마의 30명 선을 무난히 넘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걸었었는데 다섯 분이 펑크를 내는 바람에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비가 내릴 듯 말 듯 한 어사무사한 날씨가 마음에 걸렸지만 현지 기온이 1 ~ 5℃로 영상권인데다가 예상 강수량이 1 ~ 4㎜ 정도로 미미하였기 때문에 그다지 걱정할 상황은 사실상 아니었다. 실제 걱정은 어제 내린 비였다. 평지에서는 비가내리더라도 산의 경우 해발고도가 높아지면서 눈으로 바뀌는 상황을 수 없이 체험한바 있기 때문에 현장을 보지 않아도 불을 보듯 뻔 한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적설량이 문제이긴 하지만 낮 기온이 영상권인 만큼 금세 녹아버릴 것 이라는데 에 비중을 두고 걱정 뚝하였다. 버스 내에서 톰보이님께서 현장의 상황이 궁금한 듯 말을 걸어왔다. 답변은 의외로 간단하였다. 어제 백운산에는 눈이 내렸습니다. 라는 얘기가 서슴없이 툭 튀어나왔다. 거기다가 한 수 더 떠서 오늘 날머리인 덕천리 제장마을에 사는 지인에게 확인해 봤다고 능청을 떨기까지 하였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걱정을 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역력히 떠오르는 바람에 죄송스런 마음 금할 수 없었다. 톰보이님! 웃자고 한 짓거리오니 나무라지 마시고 너그러이 넘겨주소서.
- 예미교차로에서 좌회전하여 고성리로 향하다 보면 운전면허시험장 S코스를 방불케 하는 고개를 넘는다. 연상리에서 녹전 넘어가는 수라리재나 춘천근교 배후령길이 연상될 정도이다. 어제 내린 비가 고개마루 S코스는 눈이 녹지 않고 쌓여 있어 오줌을 지릴 정도로 스릴을 느꼈다. 하필이면 급커브 구간이 말썽이었다. 또한 고개 중턱에는 일방통행인 터널이 하나 있다. 예전에 탐석 다닐 때 통과한 경험이 있어 기억이 새로웠다. 갑자기 고개이름과 터널에 대해 궁금증이 발동하였다. 정선에 사시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문의해 보았지만 모르겠습니다. 이었다. 친절하게도 1544-9053 정선군청 문화관광해설 부서를 안내해 주셨다. 관계부서 역시 이 고개에 대해 아는 바 없었고 이 지역에 거주하시는 문화관광해설사이신 오 광 호(010-3757-9549)님을 소개해 주는데 그쳤다. 오 광 호 해설사님에게서도 즉답을 얻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사료를 찾아보고 알려주겠다는 후렴을 남기셨다. 고성터널은 덕천리에서 동강물을 취수하여 신동읍에 보내기위한 水路(수로)와 고성리 및 운치리 주민들의 통행을 돕기 위해 뚫은 터널이고, 이 고개의 이름은 “구레기고개” 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구레기고개의 유래에 관한 흔적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어 아쉬음을 남겼다.
- 빠른 길 찾기 정보에 따라 10:00경 점재나루 도착을 예상했었는데 2시간15분만에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무려 45분 상당을 앞당겼던 것이다. 그로인하여 들머리 진입시간 역시 무려30여분을 앞당긴 셈이다. 그만큼 운영시간의 여유가 생겼던 것이다. 노련한 운전솜씨를 발휘해 주신 권 희 성 기사님께 감사드린다.
<점재나루 잠수교>
- 점재나루는 버스를 돌릴 공간이 없다. 현장의 여건이 이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마침 잠수교를 건너오는 트럭을 세우고 자문을 구해본즉 상류로 5분 상당 올라가야 회차 공간이 있다는 것이었다. 점재나루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이었다. 잠수교이지만 갈수기인 탓에 수면 위로 그 모습을 덩그러니 드러냈기 때문에 을씨년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한여름 장마철에 물에 잠긴 모습이 훨씬 나을 듯 싶었다.
- 점재마을은 백운산 아래 취락이 형성된 마을인데 인도선으로 강을 건너다니던 마을이다. 홍수 때는 인근 마을을 갈 때 백운산에 있는 몇 곳의 재를 넘어야만 하기에 띄엄띄엄 있는 재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속칭 이 마을에는 유명 점쟁이가 살았다고 해서 점치(點峙)라고도 한다.
- 오늘 산행 들머리는 잠수교가 있는 점재나루이다. 잠수교 건너 등산로방향과 마을안길 갈림길에 설치된 백운산 등산로안내판과 진행방향 안내표주가 세워진 지점이 사실상 등산기점이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포장길을 따라 0,4km를 더 내려가서 등산로입구가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그 지점에 간이화장실과 등산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여기서 정상까지 약 2km이다. 첫걸음부터 심상치 않은 바람의 세례를 피할 수 없었다. 모자를 깊숙이 눌러 쓰고 조임 끈을 꽉 조여 잠근 후 재킷 두건을 써야만 모자를 바람에 날리지 아니하고 견딜 수 있었다.
- 점재마을 민가 마당을 지나 뒤편의 벼랑 급사면구간을 비켜가기 위해 Z코스로 탐방로가 개설되었다. 예전에 없던 원목계단과 안전로프 시설이 갖춰져 있어 비교되었다. 비스듬히 난 길을 가로질러 능선 안부까지 올라가면서 굳었던 다리근육이 풀리면서 등줄기와 이마에 땀이 배기 시작하였다. 그제야 몸의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하였다. 능선 안부까지 가는 길은 비교적 완만하지만 마지막 급사면 구간은 저단으로 기어변속을 해야만 한다. 능선안부까지 약 0,9km/30여분 상당 소요되었다. 여기서 정상까지 능선길로 이어진다. 남은 구간은 약 1,1km정도이다. 이곳에서 왼쪽은 등산로 아님이란 안내판이 가로막고 있다. 오른쪽으로 난 백운산 정상방향으로 진로를 잡고 1시간 내지 1시간30여분 상당 올라가면 백운산 정상에 이른다. 능선 암릉길 난이도 높은 구간은 철제계단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편의를 제공하는 한편 추락위험을 경고하는 안내판이 있어 섬뜩함을 맛보아야만 했다. 해발고도가 차츰 높아지면서 어제 내린 눈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거북이걸음이 되었고 진행속도가 늦어지기 시작하였다. 적설량이 많아서는 결코 아니었다. 석회암에 물기가 배어 있어 착지가 불안했기 때문에 조심 또 조심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방심하면 미끄러져 낙상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뒤돌아보면서 전개된 풍광이 모든 것을 보상해 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능선 좌우로 전개된 동강과 어우러진 절벽 단애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오면서 탄성이 절로 터졌다. 연무가 끼어 있어 시계가 제한적이었지만 한 폭의 그림으로 머릿속과 마음속에 담아두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8부 능선에 접어들면서 겨울산행 환경이 시작되었다. 봄기운에서 겨울 분위기로 갑자기 바뀌면서 옷깃을 여며야만했다. 오늘따라 옷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점에 대해 후회막급이었다. 완전 봄 산행차림이었으니 그 값을 톡톡히 치른 셈이었다. 어찌하여 있는 옷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였는지 납득이 가지를 않았다. 마누라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고 했는데 집을 나서면서 아내가 옷이 너무 얇지 않아요? 하는 얘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뛰쳐나왔는데 마누라 말을 잘 들을걸. 잘못했구나. 하고 뉘우쳐 보았지만 이미 때는 늦으리. 이었다. 이런저런 궁상을 떨며 오르다 보니 어느덧 정상에 발도장을 콱 찍고 정상에서 또 다른 새로운 풍광을 만끽하는 영광을 누렸다.
<백운산 정상석>
-10:59 정상도착
- 11:00가 다돼가면서 선발팀에서 정상에 도착하였다. 들머리에서 1시간30여분 상당 걸린 셈이다. 후미기준 2시간을 예상했었는데 어지간히 맞아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눈발이 간간히 날리고 한겨울 칼바람처럼 느껴지는 바람 세례를 맞다 보니 체온이 급격히 저하되어 손끝이 아려오면서 아랫도리에서 쌍방울 소리가 요란히 울렸다. 지난겨울에도 이런 경험은 없었는데 춘분을 일주일여 남긴 시점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운 셈이다. 정상에는 정상석을 가운데 둔 3기의 돌탑과 정상석 바로 앞에 삼각점이 있다. 정상 일원은 예전과 달라진 모습은 없었지만 정상 좌. 우에 있는 돌탐이 허물어져가고 있어 안타까웠다. 정상석과 함께 인증 샷을 남기는 것은 좋지만 훼손되지 않도록 각자 주의를 요한다고 주문해 마지않는다.
- 후미 맨 마지막 분이 정상에 도착한 시간은 11:33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2시간7분여 만에 정상을 밟은 것이다. 2시간을 예상했었는데 그만하면 어지간히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오늘 남은 일정운영에 대한 판단이 섰다. 정상에 33분 머문 시간이 꽤나 지루하게 여겨진 것은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복장에 대한 허술함 때문이었다. 뼈저리게 실감한 일상으로 기억되리라 본다. 춥다는 소리는 못했지만 동태 된 듯 한 얼굴표정에 그 심정이 잘 나타나 있던 모양이었다. 아이구! 우리 대장님! 얼굴 좀 봐. 아주 시퍼렇게 얼었네. 하며 안타까워하던 일행 분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을 생생히 맴돌았다. 정상까지는 선두팀과 동행하였지만 정상에서 부터는 후미팀과 동행하였다. 정상을 출발하면서부터는 아이젠을 착용해야만 했다. 눈도 눈이려니와 겉만 살짝 녹은 현장의 상황이 낙상하기 딱 좋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 백운산은 신동읍 운치리와 덕천리, 평창군 미탄면 동강 변에 있는 해발 882.5m의 산이다. 신동읍 운치리와 덕천리, 평창군 미탄면을 가로막아선 산으로 흰 구름을 연상하듯 능선에 항상 안개가 자욱하다 하여 '백운산'이라고 한다. 산세가 험한 산으로 1968년 울진, 삼척으로 침입해 북상하던 북한 무장간첩 15명이 백운산에서 예비군과 교전을 해 희생자를 내기도 했다. 병풍과도 같은 벼랑을 한 곳에 모아놓은 것과 같은 산으로 동강의 굽이치는 절경을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산이다.
- 오늘 하산구간 중 정상에서 칠족령 어간에 문희마을갈림길 세 곳이 있다. 그 중 첫 번째 갈림길을 11:43분에 경유하였다. 이곳에 정상 0,2km, 문희마을 1,7km, 제장 2,8km를 안내하는 이정표가 있다. 정상에서 0,2km지점이니까 내려오자마자 있는 셈이다. 정상에 이정표가 없어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 지점에 오면서 현장의 소요제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상에서 점재 2,0km, 제장 3,0km, 칠목령에서 제장 1,0km, 하늘벽구름다리 0,9km 이니까 오늘 총 소요거리는 6,8km에 불과하다.
- 오늘은 정상을 포함하여 넘어야 할 봉우리가 크게 봐서 총 6개, 작게 봐서 7개이다. 그 중 정상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가 629봉이다. 이 지점까지 오는 동안 밥자리가 마땅치 않아 애를 먹었는데 선발팀에서 629봉에 밥자리를 잡아 놓고 기다린다는 전갈이 왔다. 점심시간을 훨씬 넘긴 시간대이기 때문에 배꼽시계가 자명종을 울렸지만 꾹 참고 오면서 이 지점에 이르러 두 번째 합류가 이뤄졌다. 629봉에는 정상까지 동행했던 여섯 분들은 이미 앞서 가신 듯 안계셨다. 629봉 정상은 밥자리도 괜찮지만 점재에서 제장으로 흐르는 동강물줄기가 S자형 굴곡을 이뤄 수태극을 정교하게 빚어 놓아 눈을 즐겁게 하였다. 제장나루 잠수교와 더불어 주차장에 대기 중인 버스가 바로 코앞에 건너다 보였다. 오늘 점심을 먹으면서 화두는 등산구간과 이 지점까지 하산 구간 중 있었던 미끄럼 탄 일화가 단연 압도적이었다. 누구는 어디를 다쳤고, 누구는 몇 번을 미끄러졌고, 누구는 데굴데굴 굴렀고, 누구는 스틱이 부러지는 사고가 있었다는 둥 입담은 끝일 줄을 몰랐다. 후미팀에서 현장을 목격한 사례는 몇 번 없었지만 귀동냥을 통하여 대충 정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찔한 순간순간을 넘기면서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아니한 것에 대해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또한 이 구간을 지나면서 힘들었던 점 하나를 간과할 수 없기에 간략히 소개한다. 아이젠을 착용한 신발창에 진흙이 범벅이 되어 떨어지지 않고 붙잡고 늘어지는 바람에 아이젠 발은 커녕 미끄럼을 조장하는 역할을 하는 바람에 모두가 혼쭐이 났다는 점이다.
<고 한비 이 명 미추모비>
- 13:34 고 한비 이영미추모비 경유
- 629봉을 출발하여 15분쯤 지나면서 고 한비 이 영 미추모비 앞을 경유하였다. 돌탑 직전에서 추모비 나올 때가 됐는데 왜 아직까지 나오지 않는 거야 하고 중얼거리던 참이었는데 돌탑과 함께 조성된 추모비가 눈에 들어왔다. 돌탑만 보고 웬 돌탑? 하고 지나치면 놓치기 십상이다. 돌탑 앞 난간으로 발길을 돌려 그 앞으로 시원하게 전개된 동강풍광을 조망하는 여유를 갖아야만 추모비를 접할 수 있다. 먼저 가신 이 영 미님 영영이시여! 고이 잠드소서! 아멘. 이란 짧은 기도를 남기고 발길을 서둘렀다.
<칠족령갈림길 이정표>
- 14:03 칠족령. 전망대 경유
- 정상에서 이 지점까지 오는 동안 문희마을갈림길 3곳, 제장갈림길 1곳을 경유하면서 이곳에 이르렀다. 마지막 봉우리 정상에는 칠족령전망대 0,1km 하늘벽구름다리 0,9km, 백운산 2,4km, 문희마을 1,5km를 안내하는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 상에는 제장방향 안내가 없었지만 제장방향으로는 반질반질하게 길이 나 있었다. 이 지점에서 대장의 곤혹스러움을 맛보았다. 느닷없이 대장님! 하늘벽구름다리를 갔다가 여기까지 다시 올라와야 되나요? 라는 질문공세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준비 안 된 상황에서 갑작스런 질문을 받았기 때문에 당황스럽기 그지없었지만 전망대가 0,1km 불과하였으므로 무심코 툭 튀어나온 대답이 저 아래 전망대에서 샛길이 있으니 염려 마세요. 이었다. 실은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예전 기억이 어사무사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만약 샛길이 없다면, 없으면 말구! 라고 응수하면서 위기를 모면할 요량이었는데 샛길은 있었다. 죽으라는 법은 없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데 전망대에서 본길로 이어지는 샛길이 없겠어? 라고 쾌재를 불렀다.
- 백운산 정상에서 칠족령까지는 약2시간 남짓 걸린다. 정상을 포함하여 크고 작은 봉우리6 ~ 7개로 이어진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는 독특한 등산로이다. 등산길 내내 굽이굽이 흐르는 동강과 주변 산들이 연출해내는 절경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이곳의 매력 중 매력이다. 단애를 이룬 절벽경과 수태극을 이룬 물줄기가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섰다. 마지막 봉우리인 칠족령(또는 칠목령)에 다다르면 능선이 좌우로 갈라진다. 진행방향 왼쪽은 제장마을 하산길이고, 오른쪽은 하늘벽구름다리나 문희마을, 거북마을로 이어지는 능선길이다. 이곳에서부터는 길이 완만하여 산책로를 걷는 기분이다.
- 칠족령은 소동(일명 소골)앞 벼랑 위의 고개로서 덕천리 제장에서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뉘룬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고갯길을 만들 때 개발에 옻칠을 하여 개가 가는 데로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제장 마을에서 옻을 끓이던 이진사 집의 개(犬)가 발바닥에 옻을 묻혀서 고개 마루턱을 올라 다니며 발자국을 남겼다고 해서 옻 칠(漆) 자, 발 족(足) 자를 써서 '칠족령'이라 했다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본래는 절벽을 이루며 삐죽삐죽하게 대나무 순처럼 솟은 고개가 일곱이라 해서 칠죽령(七竹嶺)이라고 불렀다는 얘기가 있으나, '칠족령'(七足嶺)으로 부르는 것이 맞다고 한다. 조선시대 여러 문헌에도 보면 산허리를 산맥(山脈)으로, 산기슭을 산족(山足)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 소골 쪽으로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는 여러 굽이의 산기슭을 상징하는 숫자인 '칠'(七)로 보아 '칠족령'(七足嶺)으로 부른 것이다. 라는 유래에 수긍이 간다.
- 칠족령 이정표 바로 아래 절벽 시작점에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서 보는 제장하류 우안으로 펼쳐진 절벽경이 오늘 일정 중 마지막 볼거리답게 극치를 이룬다. 거침없이 한 눈에 들어오는 풍광은 두말할 것 없이 오늘의 압권이다. 하늘벽구름다리에서 유연하게 흐른 능선은 제장하류 강변으로 흘러 물속으로 가라않는다. 그 지점의 잠수교로 눈이 빠져들면서 볼거리, 즐길 거리가 갈무리된다. 후미 팀에서는 하늘벽구름다리를 먼저 갔다가 나오는 길에 잠시 머물렀다.
<하늘벽 구름다리>
- 14;32 하늘벽구름다리 경유
- 제장갈림길에 이르러 하늘벽구름다리를 경유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고민에 빠졌었다. 하늘벽구름다리는 오늘 일정 중 보너스코스였기 때문에 기본코스에는 포함되지 않은 병행코스 구간이다. 그래서 입산 전 일정안내시간을 통하여 각자 산행능력을 감안하여 칠족령에서 하늘벽 구름다리까지 연장 운영하거나 아니면 칠족령에서 곧바로 제장나루로 하산하도록 일정을 안내한바 있다. 후미 팀에서도 왕복 1,8km/1시간 정도면 충분하였기 때문에 시간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지치지 아니하고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겠느냐가 관건이었다. 일부 몇 분을 제외하고 모두가 뜻을 함께하였기 때문에 하늘벽구름다리를 경유하였다.
- 하늘벽 구름다리는 2009. 12. 21일 완공되었다. 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과 절벽 사이를 잇는 투명 유리다리인 ‘하늘벽 구름다리’는 동강 사행천 수면에서 오금이 저릴 듯한 105m 높이에 폭 1.8m, 두께 3.6㎝두께의 투명 유리로 설치된 하늘벽 구름다리는 총 연장 13m에 이른다. 또 유리다리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위해 총 13m가운데 8m가 방탄유리로 이뤄져 있으며 성인 40여명이 동시에 올라설 수 있고 시속 40m급 상급 태풍에도 견딜 수 있게 제작되었다. 이와 함께 H형강의 주탑과 보조탑, 측면 트러스트 및 고장력 케이블 등 신소재를 사용한 하늘벽 구름다리는 적재하중 4kn/㎡로 성인 140명이 동시에 지나갈 수 있도록 시공되었다. 그러나 규모면에서 여타 다른 산에서 체험한 구름다리와 비교되었기 때문에 실망의 눈초리가 역역하였다. 한마디로 개고생하면서 경유하였지만 볼거리면에서는 별로였다는 후문이었다.
<제장마을안내도>
- 16:04 제장나루 도착
- 오늘 하산예정시간 15:30을 30여분 상당 지체하면서 날머리에 도착하였다. 제장에서 점재로 이어지는 강변은 본인이 소속된 수석회 탐석활동이 자주 있는 곳인데다가 함께 수석활동을 하던 분께서 이 곳 풍광에 매료되어 거주지를 제장으로 옮겨 터 잡은 곳이기 때문에 가끔 왕림하던 곳이다. 사실 그래서 오늘 들머리 접근은 누워 떡먹기 보다 더 쉬웠던 것이다. 총무님으로부터 대장님 이곳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란 말이 나올 만도 하였다. 堤場마을도 점재마을가 같이 잠수교로 건너다니는 마을이다. 지인의 얘기에 의하면 조만간 교량이 들어선다고 하였다. 아마도 오늘 이 잠수교를 건너는 것이 마지막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제장마을은 민박촌이 조성되어 주말이면 혼잡을 이루는 곳이다. 마을 안 공터에 주차장 조성과 더불어 잘 정비된 제장마을안내도가 이를 대변해주었다.
- 제장(堤場)마을은 덕내 동북쪽 강 건너에 있는 마을이다. 일설에는 큰 장이 서던 곳이라고 하지만, 물굽이에 의해 형성된 지형이 마당처럼 평탄하게 생겼다고 해서 '제장'이라고 한다. 마을 앞으로 물이 휘도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으로 고인돌과 같은 청동기 시대 유적과 적석총 등 초기 철기시대 유적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오래 전 부터 사람들이 거주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수년 전에는 마을 뒤쪽에 큰 절이 들어선다는 얘기가 나돌던 곳으로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로 넘어가던 길이 나 있었다.
- 제장나루에 도착하면서 승차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등산화에 덕지덕지 묻은 진흙을 제거하는데 상당시간이 소요되었다. 해빙기이기 때문에 물이 상당히 차가웠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누가 더 깨끗이 제거하기 내기라도 하는 듯 전념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쓰러운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누가 시켜서 하는 짓이라면 웃돈을 준다고 해도 마다할 짓거리였을 터이기 때문이다.
- 제장나루 잠수교를 건너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우리가 거쳐 온 백운산 봉우리들이 정상에서 칠족령 정상에 이르기까지 나란히 차례대로 늘어선 모습이 한 눈에 잡혔다. 저 봉우리를 넘을 때는 우리가 시방 몇 번째 봉우리를 넘었느냐는 질문을 수 없이 받기도 했었는데 여기서는 하늘금을 그으며 늘어선 높고 낮은 봉우리가 크게는 여섯 개, 작게는 일곱 개가 확연히 나타났기 때문에 질문의 여지가 없었다.
- 오늘 하산행사는 현장에서 갖을 요량이었는데 현장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공간적 문제가 아니라 때가 때인 만큼 산불조심이 문제였다. 점재와 제장갈림길에 조성 된 캐슬가든 쉼터로 자리를 옮겨 총무님께서 하늘벽구름다리 경유를 포기하시고 서둘러 하산하여 준비해 주신 동태찌개를 안주로 이슬이를 기울이며 정담을 나눴다.
Ⅳ. 주변볼거리
- 오늘 주변 볼거리 편은 백운산자락을 유유히 흐르는 “동강”, 세계 유일의 특산종 식물인 “동강할미꽃”, 덕천리 하류 미탄면 마하리에 있는 “백룡동굴(白龍洞窟)” 강원도 기념물 제68호인 “고성산성”을 소개한다. 독자의 견문과 소양을 높이고자 올린 자료이오니 관심 있으신 분들께서 부담 없이 살펴보시기 바란다.
- 동강 길이는 약 65㎞에 이른다.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五臺山:1,563m)에서 발원하는 오대천과 정선군 북부를 흐르는 조양강(朝陽江)이 합류하여 흐르는 동강은 완택산(完澤山:916m)과 곰봉(1,015m) 사이의 산간지대를 감입곡류하며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下松里)에서 서강(西江)과 만나 남한강 상류로 흘러든다. 유역은 4억 5000만 년 전에 융기되어 형성된 석회암층 지역으로, 약 2억 년 전에 단층운동과 습곡운동의 영향으로 현재의 지형이 형성되었고, 현재도 하천운동으로 인한 퇴적작용과 침식작용 등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또 동강 유역에는 지표운동과 지하수·석회수의 용식작용 등으로 인해 많은 동굴이 형성되었는데, 2002년 현재까지 보고된 동굴만도 256개나 된다. 그 가운데 백룡동굴(白龍洞窟)은 천연기념물 206호로 지정되어 있다. 생태계 역시 잘 보존되어 수달, 어름치·쉬리·버들치, 원앙·황조롱이·솔부엉이·소쩍새·비오리·흰꼬리독수리, 총채날개나방(미기록종)·노란누에나방, 동강할미꽃(미기록종)·백부자·꼬리겨우살이 등 미기록종을 포함해 많은 천연기념물·희귀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 산자락을 굽이굽이 헤집고 흘러내리는 동강은 마치 뱀이 기어가는 듯한 사행천(巳行川)을 이루고 전 구간에 걸쳐 깎아지른 절벽지형이 형성돼 자연풍광이 아름답다. 뗏군들이 뗏목을 타고 넘나들던 여울에서 지금은 래프팅을 즐기는 마니아들의 단골 명소가 되었다. 그 밖에 수석을 사랑하는 분들이 즐겨 찾는 탐석지 중 한곳이기도 하다. 전국의 이름난 산지들은 이미 소재가 고갈 된지 오래되었다. 그렇지만 동강은 아니올시다. 이었다. 동강 일원에서 탐석되는 다양한 소재의 수석들은 아직도 애석인들의 애간장을 태우기에 충분조건을 갖추고 있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사랑을 받고 있다. 본인도 그 대열에 낀 수많은 사람 중 한사람일 것이라고 스스로 인정해 마지않는다.
<동강할미꽃>
- 동강할미꽃은 정선군의 군화(郡花)이자 동강유역에서만 유일하게 서식하는 세계 유일의 특산종 식물이다. 동강할미꽃을 감상할 수 있는 동강할미꽃축제가 매년 정선에서 열린다. 금년에 제8회 축제가 열린다. 동강할미꽃축제위원회가 주최하고 동강할미꽃보존연구회가 주관하는 동강할미꽃축제는 정선읍 광하리 동강생태체험학습장 및 동강할미꽃 자생지 일원에서 열린다. 동 축제에서는 동강할미꽃 사진전시회, 자생지 견학, 동강변 걷기, 동강할미꽃 심기 체험행사, 동강할미꽃 홍보 등 다양한 행사가 다채롭게 열린다. 동강할미꽃은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동강 주변의 바위틈에서 자라는 한국의 특산 식물이다. 꽃은 4월에 피고, 잎은 7~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동강할미꽃 학명: Pulsatilla tongkangensis Y.N.Lee &T.C.Lee, 이명: 바위할미꽃 /영명: Pulsatilla tongkangensis /원산지: 한국, 분류: 쌍떡잎식물강 미나리아재비목)
<백룡동굴(白龍洞窟)>
- 백룡동굴은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에 위치한다. 동강을 따라 해발고도 235m, 즉 수면 위로부터 약 10 ~ 15m 지점에 입구가 있다. 동굴입구 주변으로는 뛰어난 경관을 보이는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과거에는 배를 타야만 접근이 가능한 석회동굴이었다. 백룡동굴은 오래 전부터 마을주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동굴로서, 1996년 동강 댐의 건설발표이후 수몰될 위기에 있다가 관계 학계 및 온 국민의 반대운동으로 2000년 동강 댐의 계획이 백지화되면서 백룡동굴 역시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지게 되었다. 동굴 입구 부근에는 아궁이와 온돌 흔적이 남아 있고, 그 주위에 토기들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오래전에는 우리 조상의 거처로도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76년에 주민에 의해 동굴의 주 통로 중간에 있던 주먹만 한 좁은 통로(일명:개구멍)가 확장됨으로써, 전 구간에 대한 실제적인 동굴의 조사가 가능하게 되었으며, 백룡동굴 내부의 경관과 학술적 가치가 학자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로서 이 동굴을 배태하고 있는 백운산의 “백”자와 발견자 정무룡씨의 “룡”자를 따서 “백룡동굴”로 명명된 후, 1979년에 천연기념물 제260호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른다.
- 백룡동굴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76년 1월로 그해 4월 한국동굴학회의 조사가 실시되었고 이어 1977년 6월 한국동굴보존협회의 종합조사를 거쳐 1979년에 천연기념물 260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백룡동굴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학술조사는 1989년 강원대학교 지질학과에 의해 이루어졌고, 1999년 영월 댐 수몰지 동굴 세부조사보고서가 역시 강원대학교 지질학과에 의해 백룡동굴의 내부가 체계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하였다. 이 후 2006년 백룡동굴에 대한 종합학술조사를 통하여 백룡동굴 부근의 자연환경과 지질, 동굴의 발달과정, 동굴 내부의 형태와 동굴생성물, 그리고 동굴 내에 서식하는 동굴생물에 대한 정밀조사를 수행하여 학술적 가치를 재조명 받았으며, 이와 동시에 백룡동굴을 생태체험의 장소로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조사도 함께 이루어졌다. 이후 평창군은 2007년 백룡동굴의 실시설계를 실시하여 문화재청의 승인을 얻어 2008년 공사를 착공하여 2010년 7월 백룡동굴 생태체험학습장을 열었다.
- 동굴 내에는 다양한 동굴생성물, 동굴생물과 동굴 내의 미지형을 가지고 있는 학술적, 경관적 가치가 매우 높은 동굴로 평가된다. 특히 동굴 내에는 종유관, 종유석, 석순, 석주, 동굴방패 등 매우 다양한 동굴생성물이 다수분포하며 특히 에그후라이형 석순을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를 가지는 기형의 동굴생성물이 많이 성장하고 있어서 국내에서는 경관적, 학술적, 생물학적, 고고학적으로 매우 뛰어난 가치를 보이는 동굴로 평가받고 있다.
<고성산성>
- 고성산성은 말 그대로 산세를 따라서 산의 경사면을 이용하거나 천험(天險)의 절벽을 이용해 산에 쌓은 성이다. 말뚝을 박아 만든 울타리인 목책(木柵)과 흙으로 만든 보루인 토루(土壘)·석축을 포함해 산의 정상부나 사면을 이용, 적으로 하여금 많은 힘을 기울여 공격하게 하고 아군이 적을 내려다 보며 방어하려는 의도에서 축조된 것의 총칭이다. 정선 신동읍 고성리와 덕천리 경계지점 해발 425m의 산능선에는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오래된 산성인 고성산성(古城山城)이 있다. 강원도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가장 오래된 성곽 유적으로 1994년 강원도 기념물 제68호로 지정됐으며 쪼개짐이 특히 잘 발달된 점판암을 이용해 산의 정상부만을 띠로 두른 듯이 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정선군의 동쪽 5리 지점에 둘레 782척(237m), 높이 8척(2.4m)으로 돌을 쌓아 올렸고, 그 안에 성황사가 있었으나 절반이 무너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점판암 성벽의 가장 높은 곳은 약 8m 정도이고 안쪽은 약 4m . 성벽의 바깥으로는 ㄷ자 모양으로 또 하나의 성벽을 튀어나오게 쌓아 방어력을 높였는데 폭은 5m, 길이 6m, 높이는 3.7m이다. 성 안에는 1650여㎡의 평지가 있는데 건물터로 짐작된다. 현재 출입구로 이용되는 곳에는 건물터의 기단으로 보이는 돌들이 약 15m 길이로 2단이 드러나 있다. 성의 남쪽에는 문터로 짐작되는 출입구가 남아 있으며 성 안의 서남쪽 가장 높은 곳에 봉수대터라고 전하는 흔적이 있다. 대체적으로 원형을 이루고 있는 고성산성은 네 부분으로 나뉜다. 특이한 것은 성곽 전체를 연결하지 않고 중요한 곳은 석축을 쌓고 사이 사이에는 토축 방식으로 다져 놓았다. 본래 구간 구간별로 나눠서 축조한 것인지, 선후 관계가 있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복원은 남아 있는 석축을 기준으로 4지점의 석축이 동서남북 방향으로 나눠 구성됐다. 2004년 강원문화재연구소의 부분적 발굴 조사 결과 조사구역 내에는 토루가 먼저 만들어지고 나중에 석축이 만들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산성 내의 시설물로는 집수시설과 추정 문지 각 1개소에다 건물지 각 1동 등이 조사돼 우리나라 성곽 발달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됐다. 당시 고구려는 한강 상류를 따라 남하하면서 충북 단양군 영춘면에 온달산성을 전진 기지로 삼고 영월 뱃나들이의 김삿갓면 대야리 산성과 영월읍 정양산성과 완택산성 등을 연결해 한수(漢水)유역을 확보하려고 애를 썼다. 성곽 축조 방식은 직사각형인 장방형(長方形)의 모가 난 돌을 아래에 쌓고 위로 올라갈 수록 10∼15도 정도 기울여 쌓는 물림쌓기 방식이다. 그러나 고성산성을 둘러보면 누구나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아 성을 쌓았을까?”하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만든다. 다름 아닌, 산성에서 내려다 보는 풍광이 기가 막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진풍경을 찾아 성을 쌓았을리가 만무하기에 사방의 풍광에 흠뻑 취하게 만든다. 동강 넘어 북으로 솟아 있는 백운산과 함께 동쪽으로는 정선읍 가수리에서 운치리를 서두르지 않고 휘돌아 가는 동강 상류가 한눈에 들어 온다. 남쪽으로는 구레기고개, 서쪽은 동강 자연이 빚은 연포·구포·가정마을이 겹겹 벼랑에 몸을 숨긴다. 고성산성은 정선 신동읍 국도 38호선 예미교차로에서 동강로를 따라 승용차로 10여 분간 달리면 고성분교가 나온다.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산길을 따라 20여 분간 오르면 옛 정취를 가득 품은 고성산성이 반갑게 마중을 나온다. 정선 방기준님의 글을 옮겼다.
Ⅴ. 특기사항
- 오늘 公傷(공상)입은 신 분 : 회장님, 총무님, 김송춘님, 김용애님, 오경희님, 김옥희님, 윤미정님, 이미정님, 정숙희님 등등. 쾌유를 빕니다. 자수하지 않으신 분 자수하여 광명 찾으시기 바랍니다.
Ⅵ. 산행을 마치고
<제장나루에서 본 백운산 6봉~7봉 원경>
- 오늘 백운산 일상을 정리하면서 과연 여행(旅行)이란 무엇인가? 가 갑자기 궁금해 졌다. 사전에서는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나 유람을 목적으로 객지를 두루 돌아다니는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위키백과 에서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자기 거주지를 떠나 객지(客地)에 나다니는 일, 다른 고장이나 다른 나라에 가는 일” 등이라고 알려줬다. 또 어떤 이는 여행이란 모든 걸 비우고 떠났다가 마음 깊숙이 새로운 생각들을 채우고 오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때때로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에서 과도한 에너지를 방출하게 되고 사회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알게 모르게 쌓여갑니다. 무념무상 그런 경지가 여행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허탈함도 있지만, 두고두고 가슴속에 남아 있는 추억은 살아가면서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라고 기술하였다. 어떻든 집 떠나면 개고생인데 이를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천방지축[(天方地軸)몹시 급하게 허둥지둥 함부로 날뜀]싸돌아 치는 것도 여행의 범주에 조금이나마 근접할 수 있겠구나 하고 자위하면서도 뭔가 석연치가 않았다. 아무튼 지금까지의 삶 속에서 이어진 강 따라, 물 따라. 산 따라, 길 따라 다닌 시간들을 여행의 범주에 포함시키기 보다는 그냥 허송세월한 쪽으로 무게의 중심을 뒀기 때문일 것이다. 먹고 노는 주제에 남는 것, 이룬 것 하나 없이 늘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쪼들리는 일상에 시달리다 보니 모든 것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스스로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철이 들었다는 얘기인가? 그렇지만 결코 아니올시다. 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철들기는 아직 멀었지 싶다. 눈만 뜨고 나면 가야할 곳,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 들이 즐비하게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제 철이 든단 말인가? 철들자 망령이란 얘기가 나를 두고 한 얘기인가? 철드는데 철이 약이 될까? 약이 된다면 얼른 끝내고 철공소를 찾아 가야되겠다. 쇳가루라도 한 줌 얻어먹고 얼른 철이 들어 앞으로는 무게 있게 철든 얘기를 해야겠다. 여기까지 오다 보니 결국 철든 얘기로 끝나고 만 듯 싶다. 이쯤 되면 철이 든 것 아닌가요?
- 오늘 고르지 못한 날씨에 봄과 겨울을 오가는 일상 속에서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자빠짐의 연속이었다고 간략히 정의해 본다. 오름 구간에서는 앞서가느라 몰랐고, 내림 구간에서는 후미와 동행한 관계로 몰랐지만 구전을 통해 전해들을 때 마다 가슴 철렁했던 순간들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아니하고 그 정도의 선에서 갈무리된 점에 대하여 천만 다행스러웠다고 자위해 보았다. 오늘 일정운영에 도움 주시고 협조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 마지막으로 오늘 원뻥의 헛뻥 사실을 고백하고자 한다. 고백하지 않으면 위에서 언급한 한 부분이 뻥이 되기 때문이다. 제장마을 검은 기와집 앞 공터 299평 땅이 본인 소유라고 너스레를 떤 바람에 철석같이 믿고 계신 몇 몇 분들 죄송하지만 아니올시다. 입니다. 300평을 채워 주시기 위해 한 평, 두 평 어렵게 보태 주신 분들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아무리 뻥이라고 하더라도 그 마음만은 감사하게 접수합니다. 이젠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을 앞날이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매롱으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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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장님 수고 많이 하셨읍니다.
미끄러워서 혼이났지만요.
지금 생각하니 재미잇네요.
산이 아름다워 좋앗어요.
비가오지않아 다행이였구요.
항상 감사합니다.
일덩 방문을 환영합니다.
댓글까지 남겨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고르지 못한 날씨에
봄과 겨울을 오가면서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자빠지면서 보낸 일상
지금 생각하니 아찔한 순간순간들이 넘 많아 애을 태웠습죠
천만다행으로 그 정도에서 갈무리 되어 다행스러웠습니다.
수고 넘 많으셨습니다.
대장님 진흙에 미끄럼 묘하게 쨍했습니다
정말 땅 많이 사놓고 왔는데 제값 팔고 이문좀 남을나나 걱정됩니다 ㅎㅎㅎㅎ
아름다운 절경에 불순한 일기로 인해 아쉬움이 남습니다!!
대장님 후기로 심신을 위로하며 들려갑니다.
땅 사서 보태 주시느라 넘 수고 많으셨습니다.
한 평, 두 평 모은 땅이 제법 많더라구요 ~~~
제장나루에 교랑이 놓아지고
접근성이 좋아지면 값이 제법 나가겠지요 ㅎㅎㅎ
수고 많으셨습니다.
@원남산 ㅋㅋ 땅값 오를때가 올때까지 기다려 봐야 겠습니다 ㅎㅎㅎㅎㅎㅎ
도장 찍고 오신 분들 잘 기억해 뒀다가
일괄 처분 후 고르게 분배코자 하오니
기둘러 주소서 ~~~
@원남산 회장님 대장님 책임 지고 땅값올려 남는 장사 하게 해 주세요ㅋㅋㅋ
다리가 많이 아파요~~~
@토마토 때되면 연락 드릴께여 ㅎㅎㅎㅎㅎㅎ
승질두 급하셔 ~~~
염려 놓으시고
맏겨 주세유 ㅎㅎㅎ
봄과겨울도함께하고 산행도하고 거기다 넓직한땅도 사놓고
그야말로 넘 넘 바쁘셨겠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
봄에서 겨울을 넘나드는 일상이었지만
돌이켜 보니 추억에 남는 산행으로 기억되리라 봅니다.
대장님 ~땅300평 처음엔 뻥인줄 알았어요 근데 기와집에 지인분 사신다고 하실때는 그럴수 있겠다 싶어 쬐금은 믿어었는데 ~ㅎㅎㅎ역시 삥이였네요~ 감사합니다~존경하고요~^^
눈치도 빠르셔라 ~~~
수고 많으셨습니다.
대장님~~덕분에 아주 아주 좋은 경험과 추억 담아왔습니다~~백운산 신령님 고약하다고 뒤돌아 투정도 했지만~애교로 봐 주시겠죠?? 걱정과 염려에 감사드리고 부디 철들지마시고 지금 그대로 남아주심이~~~ㅎ
철좀 들어볼까 했더니 ~~~
걍 이대로 살라구요 ㅎㅎㅎ
뭐 어렵게 생각할 것두 없구
그럽시다요 ㅎㅎㅎ
대장님누워서산행잘하구감니다감사함니다
다녀가심 환영합니다.
언제나 들려 주시고, 읽어 주시고, 댓글 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