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촌 성북동 명사들
1. 신문재 전 교보문고 회장
성북동은 60년대 정권 요직에 있던 인물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70년대에 재계 인사들이 이곳에 자리 잡으면서 전통의 부촌으로 불리게 됐다. 성북동에는 고급 단독주택단지가 조성돼 있어 눈길을 끈다. LIG건영이 2010년 공급한 성북더게이트힐즈는 아파트의 보안과 단독주택의 개별성이 조화된 특이한 지역이다. 삼청터널 인근에 위치한 성북더게이트힐즈는 단독주택 12개동이 모여 있는 주택단지다. 신창재(60) 교보생명 회장의 동생인 신문재(52) 전 교보문고 회장도 이곳에 단독주택 한 채를 보유하고 있다. 신 전 회장 보유 주택은 지하1층 지상2층으로 연면적이 530.04㎡(160.3평)에 달한다. 신 전 회장은 이곳 주택을 2011년 33억5300여만원에 매입했다. 연면적 기준으로 3.3㎡(1평)당 2000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신 전 회장은 지난해 7월 공정위에 친인척 계열분리 신청을 해 승인받았다. 형인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독립적으로 경영을 하겠다는 승인으로 공정거래법 상 교보그룹으로부터 분가해 나간 것이다. 한때 교보그룹의 계열사인 교보문고의 회장까지 맡았던 신 전 회장은 지난 2005년 교보생명과 계열사의 보유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그룹 경영에서 빠졌다. 이후 지난해 ‘디자이너이미지’라는 회사를 설립했는데, 이 회사를 교보그룹과 관계없이 운영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디자이너이미지는 해외 유명 브랜드 중에서도 창의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한 제품들을 판매하는 생활디자인 편집숍이다. 이는 미국 디자인학교를 나온 유학파인 신 전 회장의 이력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런 신 전 회장의 모습은 아버지인 창업주 고 신용호 회장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고 신용호 회장은 한국 보험업계 최초의 아이디어 뱅크였다. 전쟁 직후 소득이 낮아 생명보험을 든 사람도 찾아보기 힘든 시기였던 1958년 신용호 회장은 교육보험이라는 상품을 만들어 오늘의 교보 신화를 만들었다. 당시로서는 도무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70~90년대 성장기의 교보는 이른바 ‘아줌마 군단’(보험모집인·설계사)을 통해 승승장구했다. 당시 교보의 모집인들은 집요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만큼 교보와 창업주는 독하게 소문나기도 했다. 하지만 창업주의 아들들은 의사와 디자이너라는 전문 직종 출신이고, 차남은 그 직을 찾아 지분도 팔고 총총히 독립했다. 스카이데일리가 보험재벌가에서 떠난 신문재 전 교보문고 회장이 보유한 성북동 주택 및 근황과 교육보험 성장과정 및 지배구조 등을 취재했다.<편집자 주>
▲ 삼청터널 인근에 있는 성북더게이트힐즈는 부촌 성북동에서도 명사들이 모여사는 단독주택 단지다. 신문재 전 교보문고 회장도 이곳에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신 전회장의 소유주택 위치도(맨위)와 북악산에서 바라본 성북동 일대 단독주택 전경(가운데 사진 앞쪽의 흰색 주택이 성북더게이트힐즈 단지). 맨 아래 사진은 성북동을 조망할 수 있는 북악산 성곽 모습. ⓒ스카이데일리 <그림도표·=최은숙>
성북동은 60년대 정권 요직에 있던 인물들이 모여살던 곳이다. 70년대에 재계 인사들이 이곳에 자리잡으면서 전통의 부촌으로 불리게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남동 등이 부자들의 명소로 떠올랐지만 전통의 부촌인 성북동에 자리잡은 명사들도 여전히 많다.
만해 한용운이 노년을 보내다 세상을 떠난 심우장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요정정치의 산실이었던 삼청각도 이곳에 위치해 있다.
성북동에는 고급 단독주택단지가 조성돼 있어 눈길을 끈다. LIG건영이 2010년 공급한 성북 더게이트힐즈는 아파트의 보안과 단독주택의 개별성이 조화된 특이한 지역이다.
삼청터널 인근에 위치한 성북더게이트힐즈는 단독주택 12개동이 모여 있는 주택단지다.
도로에서 보면 담장 너머로 주택들의 윗 모습이 보이지만 전체를 한 눈에 들여다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북악산 성곽길로 올라가면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성북더게이트힐즈를 비롯한 성북동 주택단지 전체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입구는 막혀있고 경비업체가 출입을 제한한다. 보안 수준이 고급 아파트를 연상시킨다.
▲ 성북더게이트힐즈의 입구(위 사진)는 보안업체가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단독주택단지지만 담장에 둘러싸여 있고 입구가 막혀 있는 모습이 고급 아파트단지와 유사하다. 아래 사진은 대사관로 너머로 보이는 성북더게이트힐즈(하얀집)의 모습. ⓒ스카이데일리
북악산 자락에 위치해 경관이 뛰어나고 전통있는 부촌단지인데다 보안까지 뛰어나 부자와 명사들이 다수 살고 있다.
신창재(60) 교보생명 회장의 동생인 신문재(52) 전 교보문고 회장도 이 곳에 단독주택 한채를 보유하고 있다.
신 전 회장 보유 주택은 지하1층 지상2층으로 연면적이 530.04㎡(160.3평)에 달한다.
신 전 회장은 이곳 주택을 2011년 33억5300여만원에 매입했다. 연면적 기준으로 3.3㎡(1평)당 2000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주택단지가 위치한 성북동 330-84의 대지 7844㎡의 지분 7844분의 653.28도 함께 보유하고 있다.
성북더게이트힐즈는 단지 전체의 대지가 하나의 필지로 구성돼 있고 주택 매입자는 필지 지분의 일부를 보유한다. 아파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이 고급 단독주택 단지에서 사용된 것이다.
고급 아파트 단지를 연상시키는 성북더게이트힐즈에 주택을 보유한 신 전 회장은 지난해 7월 공정위에 친인척 계열분리 신청을 해 승인받았다. 형인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독립적으로 경영을 하겠다는 승인으로 공정거래법 상 교보그룹으로부터 분가해 나간 것이다.
한때 교보그룹의 계열사인 교보문고의 회장까지 맡았던 신 전 회장은 지난 2005년 교보생명과 계열사의 보유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그룹 경영에서 빠졌다. 이후 지난해 ‘디자이너이미지’라는 회사를 설립했는데 이 회사를 교보그룹과 관계없이 운영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상재 넘치는 아버지와 재능 다양한 아들들 인생 대비
신 전 회장이 설립한 디자이너이미지는 해외 디자이너와 유명 브랜드의 제품 중 디자인의 가치가 뛰어난 제품을 엄선해 수입 판매하는 편집숍이다.
핸드메이드 인형, 도자기, 디자인생활용품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용산구 한남동에 한남점을 출점한 데 이어 올 3월에는 강남구 청담동에 청담점을 출점하며 회사를 키워가고 있다.
다른 편집숍들과 달리 디자이너이미지의 제품들은 ‘명품’보다 ‘유명한 디자인’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는 신 전 회장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신일고와 경희대를 졸업한 신 전 회장은 산업디자인으로 유명한 미국 파슨스디자인학교에서 수학한 바 있다.
▲ 자료: 교보생명 대규모기업집단 현황 공시(2013. 2. 28 공시) ⓒ스카이데일리
이 전 회장은 90년대 들어 교보문고의 계열사인 교보문보장에서 경영에 참여했다. 법인 등기부등본 상에는 1994년부터 2005년까지 교보문보장의 대표이사로 등기돼 있었다.
교보문보장은 교보문고 내에서 문고와 액세서리, 음반, 팬시용품 등을 판매하는 매장을 운영하는 회사였다. 현재 사명을 교보핫트랙스로 변경했다.
이 회사는 신 전 회장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었다. 신 전 회장이 2005년 교보생명 관련 주식을 처분할 때 교보문보장 지분 전량을 교보문고에 매각했다.
신 전 회장은 1999년부터 2000년 사이 1년여간 교보문고의 대표이사로 등기된 바 있지만 이후에는 교보문보장 사업에 집중했다.
2003년에는 대학로에 디자인 생활브랜드를 파는 생활용품점을 출점하는 등 교보문보장을 이끌던 시기부터 디자인 편집숍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런 신 전 회장의 모습은 아버지인 창업주 고 신용호 회장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고 신용호 회장은 한국 보험업계 최초의 아이디어 뱅크였다. 전쟁 직후 소득이 낮아 생명보험을 든 사람도 찾아보기 힘든 시기였던 1958년 신용호 회장은 교육보험이라는 상품을 만들었다. 1960년대 언론보도에 이미 ‘우골탑’이란 단어가 등장할 만큼 교육비 부담은 한국에서 오래된 사회문제였다. 신용호 회장의 교육보험은 자녀의 초중고 진학에 따라 학비를 지원하는 보험상품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 신논현역 사거리에 위치한 교보생명의 교보타워. ⓒ스카이데일리
이어 군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단체 저축성 보험을 도입해 1967년 육군을 시작으로 해군 등과 계약을 맺어갔고 공기업 시장도 공략하면서 회사를 크게 키웠다. 70년대에는 전산화를 도입하는 선구자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 결과 60년대 이미 교보생명은 보험업계의 선두권에 올라섰다.
지난 2011년 4월1일부터 2012년 3월31일까지 연결기준 교보생명의 매출액은 14조6479억원, 영업이익은 7817억원에 달했다.
이처럼 사업감각이 뛰어난 신용호 회장이지만 자식들에게 경영수업을 시킨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큰 아들인 신창재 회장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산부인과 의사 출신이다. 둘째인 신 전 회장 역시 디자인 공부를 한 유학파다.
일각에서는 신용호 회장이 전문경영인 체제를 염두에 뒀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1993년 암을 크게 앓아 대수술을 한 뒤 두 아들을 회사로 불러들였다.
실제 경영권 승계는 1999년 신창재 회장이 교보생명 부회장을, 신 전 회장이 교보문고 회장을 맡을 때 이뤄졌지만 신용호 회장의 와병 이후 경영권 승계에 대한 입장이 변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2. 정몽윤 현대해상화재 회장
부촌인 성북동에는 일본 대사관저 등 다수의 대사관저가 위치해 있다. 길 이름이 대사관로인 이유다. 이곳 일대는 고 정주영 회장 가족들이 다수의 토지와 주택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가의 일원인 정몽윤(58)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 역시 1996년 증여를 통해 이곳에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의 7남인 정몽윤 회장은 1996년 증여 이후 이곳 주택으로 주소를 옮겼다. 정 회장 보유 주택은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로 연면적이 379.5㎡(114.8평)에 달한다. 대지는 648㎡(196평)다. 인근 토지시세는 3.3㎡(1평)당 2000~2500만원 선을 보이고 있어 땅값만 4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2004년 이곳 주택 인근에 주택 두 동을 추가로 매입했다. 단층 주택과 지하 1층, 지상 2층 주택이 나란히 붙어있는 곳이다. 연면적은 각각 138.4㎡(41.9평)와 298.43㎡(90.3평)에 이른다. 두 건물의 대지는 994㎡(300.7평) 규모다. 앞서 1996년 증여받은 주택의 대지까지 합치면 정 회장 보유 토지는 총 500평에 달한다. 땅값만 100억원 선으로 추산된다는 게 부동산들의 설명이다. 정 회장은 잘 알려진 주식부자이기도 하다. 재벌닷컴이 지난 24일 종가기준으로 상장사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보유 주식지분의 가치를 평가한 바에 따르면 정 회장 보유주식은 6148억원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정 회장은 ‘왕자의 난’ 이전에 계열분리한 뒤 상속재산을 둔 현대가의 다툼에서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2003년 이후에는 고 정몽헌 회장이 구단주를 맡았던 현대 유니콘스를 유지하기 위해 현대그룹 측과 현대기아차 측의 재정 지원을 끌어내기도 했다. 현정은 회장과 정몽구 회장의 유일한 ‘화해의 접점’이었다는 점에서 현대 유니콘스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일이었다. 스카이데일리가 범현대가의 잇따른 큰 집안싸움에서 욕심을 내지 않는 행보를 뚜벅이처럼 보여줘 온 정몽윤 회장 보유 성북동 세 채의 주택과 회사 현황 및 현대가 등에 대해 취재했다.<편집자 주>
▲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이 보유한 성북동 주택(위·위치도)은 대사관저가 다수 자리한 고급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스카이데일리 <그림=최은숙>
성북동은 부촌으로도 유명하지만 대사관 관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삼청각 인근 주택가 골목을 들어서면 골목 안에 경찰들이 상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이곳에 일본 대사관의 관저가 위치해 있다.
가까운 곳에 수단공화국의 관저도 있다. 조금 떨어진 한국가구박물관 뒤편에는 독일대사관저도 위치해 있다. 이 일대 도로의 이름이 ‘대사관로’인 이유다.
대사관저들 사이에는 고급 주택들이 다수 위치해 있다. 골목 초입부터 CCTV가 녹화중이라는 안내문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이곳 일대는 고 정주영 회장 가족들이 다수의 토지와 주택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가의 일원인 정몽윤(58)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 역시 1996년 증여를 통해 이곳에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의 7남인 정몽윤 회장은 1996년 증여 이후 이곳 주택으로 주소를 옮겼다.
정 회장 보유 주택은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로 연면적이 379.5㎡(114.8평)에 달한다.
대지는 648㎡(196평)에 달한다. 인근 토지시세는 3.3㎡(1평)당 2000~2500만원 선을 보이고 있어 땅값만 4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2004년 이곳 주택 인근에 주택 두 동을 추가로 매입했다. 단층 주택과 지하 1층, 지상 2층 주택이 나란히 붙어있는 곳이다. 연면적은 각각 138.4㎡(41.9평)와 298.43㎡(90.3평)에 달한다.
▲ 정 회장은 이곳 일대에 총 세 곳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두 건물의 대지는 994㎡(300.7평)다. 앞서 1996년 증여받은 주택의 대지까지 합치면 정 회장 보유 토지는 총 500평에 달한다. 땅값만 100억원 선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100억원대의 토지를 보유한 정 회장은 잘 알려진 주식부자이기도 하다. 재벌닷컴이 지난 24일 종가기준으로 상장사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보유 주식지분의 가치를 평가한 바에 따르면 정 회장 보유주식은 6148억원으로 평가됐다.
이는 한국의 상장사 주식부호 중 24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정 회장은 현재 현대해상화재보험의 최대주주다. 지난해 6월 공시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현대해상은 2011년 4월 1일부터 2012년 3월 31일 사이 매출액 11조5690억원에 당기순이익 4139억원일 기록한 바 있다. 손해보험업계에서 1위인 삼성화재에 이어 동부화재와 함께 치열한 2위 싸움을 벌이고 있다.
▲ 자료: 주식등의대량보유상황보고서(2013. 2. 5 공시) ⓒ스카이데일리
지난 2월 5일 신고한 ‘주식 등의 대량보유상황보고서’에 따르면 정 회장은 현대해상화재의 주식 21.80%를 보유하고 있다.
아들인 정경선(27)씨와 딸인 정정이(29)씨는 각각 0.17%와 0.03%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특수관계인의 지분은 총 22.0%에 이른다.
정경선씨는 현재 자선단체인 사단법인 루트임펙트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자선 자문서비스와 사회공헌 컨설팅 등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단체다. 아버지의 회사와 관계없이 자신이 직접 단체를 설립해 활동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정정이씨는 지난 2009년 김인규 KBS 전 사장의 장남과 결혼해 가정주부의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자녀 모두 부친의 회사와 관계없이 스스로의 인생을 설계해 나가는 모습이다. 아버지의 재산과 경영권을 물려받기 위해 진력하는 여느 재벌가 2세들과 다른 모습이다.
이는 부친인 정 회장 역시 마찬가지다. ‘왕자의 난’ 이전 계열분리한 뒤 상속재산을 둔 현대가의 다툼에서 정 회장의 이름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야구단 지원으로 갈라진 현대가 접점 역할
고 정주영 회장이 5남인 고 정몽헌 회장을 현대그룹 총괄회장으로 지목하면서 2남인 정몽구(75) 현대차그룹 회장과 대립한 이른바 ‘현대가 왕자의 난 당시 정몽윤 회장은 태풍의 눈 바깥에 있었다.
정 회장이 이끄는 현대해상은 1999년 1월 현대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해 독립경영에 들어간 상태였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이후에도 고 정몽헌 회장의 부인이자 형수인 현정은(58) 회장과 정몽구 회장의 접점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바로 야구단 지원을 통해서다.
현대가 하면 먼저 떠오르는 스포츠는 축구다. 정몽준(62) 의원이 축구협회장을 지냈고 정몽규(51)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현재 축구협회장을 맡고 있다.
전통의 축구가문에서 유독 야구에 관심을 기울인 것이 고 정몽헌 회장이다. 야구단 현대 유니콘스를 창단해 직접 구단주를 맡았다.
정몽헌 회장이 2003년 세상을 떠난 뒤 현대 유니콘스는 해체의 위기를 맡는다. 위기의 현대 유니콘스를 해체하지 않고 현대가가 지원을 이어간 이유는 정 회장의 노력 덕분이다.
정 회장은 아마추어 야구단체인 대한야구협회의 회장직을 1997년부터 2000년까지 맡은 바 있는 야구팬이다.
하지만 정 회장의 유니콘스 지원은 개인적인 야구사랑으로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
2003년 위기의 유니콘스에 재정지원을 한 주체는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과 정몽구 회장의 현대기아차, 그리고 정 회장의 현대해상이었다.
▲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사진 앞쪽)의 야구단 지원활동은 현대그룹과 현대기아차그룹의 유일한 접점이라는 점에서 관심거리였다. <사진=뉴시스>
고 정몽헌 회장이 남긴 유니콘스에 정몽구 회장측과 현정은 회장측이 함께 재정을 지원하는 모습은 여러모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이후 2007년 현대그룹이 지원중단을 결정하면서 현대 유니콘스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현대그룹과 현대기아차 그룹의 유일한 접점이 사라진 것이다.
정 회장은 이 과정에서 양 측의 접점을 마련했을 뿐 계열사를 놓고 집안싸움이 벌어질 때 보인 행보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한 뒤 보험업과 소비자금융업, 자산운용업을 중심으로 계열사를 늘려 나갔지만 금융업 외에 다른 업종에 뛰어들지도 않았다. 자신이 80년대부터 이끌어온 보험업이 지금도 회사의 근간이다.
2000년대 들어 수많은 평지풍파를 겪은 현대가에서 정 회장의 이름이 크게 거론되지 않은 이유는 이런 무욕의 행보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3. 조현강 DSIV 대표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명단을 발표하면서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달 22일 공개된 명단에는 조욱래(64) DSDL 회장과 장남인 조현강(37) DSIV 대표도 포함됐다. 뉴스파타에 따르면 이들 부자는 2007년 3월 15일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Quick Progress Investment Ltd’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조욱래 회장은 조석래(78) 효성 회장의 막내동생이다. 효성가의 둘째인 조양래(76) 한국타이어 회장은 이명박(72) 전 대통령과 사돈지간으로 유명하다. 뉴스타파의 폭로 이후인 29일에는 국세청이 효성그룹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효성 측은 정기 세무조사라고 밝혔지만 국세청이 역외탈세에 대한 전면조사에 들어간 시기와 일치해 조사의 향방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설상가상 조욱래 회장과 부인이 DSIV에 지분을 증여한 것과 관련해 법원은 지난달 28일 증여세 부과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페이퍼컴퍼니 설립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약 화제의 중심에 선 조현강 대표는 부촌 성북동에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조 대표가 보유한 주택은 길상사와 정법사 등 사찰들이 다수 위치한 북악산 기슭에 위치해 있다. 조 대표는 건물 대지 658㎡(199평)를 2003년 모친인 김모씨로부터 증여받았고, 2010년 지금의 주택을 새로 지었다.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단독주택이며 연면적은 418.17㎡(126.5평)에 달한다. 인근 토지시세가 3.3㎡(1평)당 2000만원을 웃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땅값만 40억원이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효성그룹은 조 대표와 아버지 조욱래 회장이 효성그룹과는 관련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조욱래 회장은 선친인 고 조홍제 회장으로부터 대전피혁을 물려받아 계열사를 늘려갔으나 1997년 효성기계가 부도를 맞으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현재는 부동산개발과 임대사업을 영위하는 DSDL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이 회사의 최대주주는 지분 93.30%를 보유한 DSIV다. 바로 조 대표가 대표이사로 있는 곳이다. DSIV의 최대주주는 조 대표로 지분 45%를 보유하고 있다. 조 대표의 동생 두 명도 각각 35%, 2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로 주목받고 있는 효성가의 조욱래 회장 장남 조현강 대표 보유 성북동 주택과 효성가(家)에 닥친 잇따른 악재를 취재했다.<편집자 주>
▲ 효성가 3남인 조욱래 회장의 장남 조현강 DSIV대표가 보유한 성북동 주택(위·위치도)은 대사관과 사찰이 많은 북악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스카이데일리 <그림·도표=최은숙>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명단을 발표하면서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진행하는 ‘조세피난처 프로젝트’의 한국 파트너로 참여해 공동 취재한 결과 한국인 245명의 명단을 확보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지난 22일과 27일, 30일 세 차례에 걸쳐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의 실명을 공개했다.
22일 공개된 명단에는 조욱래(64) DSDL 회장과 장남인 조현강(37) DSIV 대표도 포함됐다. 뉴스파타에 따르면 이들 부자는 2007년 3월 15일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Quick Progress Investment Ltd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조욱래 회장은 조석래(78) 효성 회장의 막내동생이다. 효성가의 둘째인 조양래(76) 한국타이어 회장은 이명박(72) 전 대통령과 사돈지간으로 유명하다. 조양래 회장의 둘째 아들 조현범(41) 한국타이어 사장의 부인이 이 전 대통령의 셋째딸인 이수연(38)씨다.
뉴스타파의 폭로 이후인 29일에는 국세청이 효성그룹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효성 측은 정기 세무조사라고 밝혔지만 국세청이 역외탈세에 대한 전면조사에 들어간 시기와 일치해 조사의 향방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페이퍼컴퍼니 설립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약 화제의 중심에 선 조현강 대표는 부촌 성북동에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조 대표가 보유한 주택은 길상사와 정법사 등 사찰들이 다수 위치한 북악산 기슭에 위치해 있다. 가까이에 독일 대사관저 등도 위치해 있다.
▲ 조현강 대표 보유 주택은 계단식 디자인의 담장이 인상적이다. ⓒ스카이데일리
주택은 회색의 높은 담장에 둘러싸여 있다. 입구 쪽으로 점차 높이가 낮아지는 계단식 구조의 담장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사각형의 주택은 세련된 디자인의 현대식 건물이다.
조 대표는 건물 대지 658㎡(199평)을 2003년 모친인 김모씨로부터 증여받았다. 이후 2010년 지금의 주택을 새로 지었다.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단독주택이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연면적은 418.17㎡(126.5평)에 달한다.
인근 토지시세가 3.3㎡(1평)당 2000만원을 웃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땅값만 40억원이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뉴스타파, “페이퍼컴퍼니 설립은 증여 수단”
효성그룹은 조 대표와 아버지 조욱래 회장이 효성그룹과는 관련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조욱래 회장은 선친인 고 조홍제 회장으로부터 대전피혁을 물려받았다. 이후 계열사를 대성, 효성알미늄, 효성금속, 효성기계, 동성, 동성개발 등 8개로 늘려 나갔으나 1997년 효성기계가 부도를 맞으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현재는 부동산개발과 임대사업을 영위하는 DSDL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DSDL은 호텔업, 부동산임대업, 주택분양사업 등을 하는 회사다. 4월 1일 공시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액은 213억원, 영업이익은 43억원을 올렸다.
이 회사의 최대주주는 지분 93.30%를 보유한 DSIV다. 바로 조 대표가 대표이사로 있는 곳이다.
▲ 자료: DSDL, DSIV 감사보고서 ⓒ스카이데일리
조 대표는 지난 2010년 대표이사직에 취임해 지금까지 임기를 이어가고 있다. 부친인 조욱래 회장도 2001년부터 현재까지 이사로 등기돼 있다.
DSIV의 최대주주는 조 대표로 지분 45%를 보유하고 있다. 조 대표의 동생 두 명도 각각 35%, 2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DSIV는 2007년 12월 DSDL의 최대주주가 된다. 이전 최대주주인 조욱래 회장과 부인이 보유한 지분을 DSIV에 증여한 것이다.
과세당국이 이에 대해 법인세 120억원과 별도로 증여세 254억원을 부과하자 조 대표와 동생 두명은 증여세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미 부과된 법인세와 양도소득세 등과 이중과세가 된 셈이라는 것이 조 대표측의 주장이었다.
4. 이우영 그랜트힐튼서울 회장
남과 북의 당국자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소는 모두 현대사에 남은 역사적인 명소다. 70년대 남북 대화의 장이 성북동의 요정 삼청각이었다면 2000년대 들어서 남북 당국 간 대화의 장은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 위치한 그랜드힐튼서울 호텔로 옮겨왔다. 2000년 시작해 총 18번 열린 남북 장관급 회담 중 그랜드힐튼서울을 이용한 것이 8차례에 달한다. 2007년 마지막으로 열린 남북 장관급 회담의 장소이기도 하다. 오늘(12일) 열릴 예정이었다가 하루 전 취소된 남북회담 장소도 바로 이곳이다. 그랜드힐튼서울은 1988년 개관한 스위스그랜드호텔이 전신이다. 2002년 그랜드힐튼서울로 이름을 바꿨다. 호텔을 소유해 운영하던 유한회사렌사는 2001년 사명을 유한회사 동원아이엔씨로 변경하기도 했다. 이름에 동원이 들어가지만 동원그룹과는 무관한 회사다. 이 회사는 이우영(74) 회장이 소유한 회사로 알려졌다. 현재 이 회장의 아들인 이윤기(46) 대표가 대표이사로 등기돼 있다. 이우영 회장은 성북동에 주소를 두고 있다. 북악산 자락에 위치한 성북동 주택가 한 켠에 이 회장이 보유한 주택이 위치해 있다. 이 회장은 1983년 이곳 토지 949㎡(287.1평)를 매입했으며 건물은 2010년 새로 지었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단독주택으로 연면적이 654.2㎡(197.9평)에 달한다. 대표적인 부촌 성북동에 주택을 보유한 이 회장은 그랜드힐튼서울의 부지 지분도 일부 보유하고 있다. 이 땅은 이 회장이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팔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의 할아버지는 황실의 종친인 청평군 이해승이다. 이해승의 증조할아버지이자 이 회장의 5대조 할아버지인 영평군은 조선 25대 왕인 철종의 형이기도 하다.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숙종과 영조, 사도세자 등을 찾을 수 있다. 숙종 아들 대에서 2남 영조대왕의 직계 후손이다. 흥선대원군과 고종은 숙종의 3남 후손이다.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팔아 호텔을 지었다는 사실 때문에 이 회장은 재산을 국가로부터 환수당할 뻔 했으나 소송으로 이 땅을 지켜냈다. 청평군 이해승의 친일 행적 때문에 겪은 일이었다. 스카이데일리가 그랜드힐튼서울을 보유한 황실종친 이우영 회장 보유 주택과 주변 정황을 취재했다.<편집자 주>
▲ 성북동에 주택(위·위치도)을 보유한 이우영 그랜드힐튼서울 회장은 영조대왕의 직계 후손인 왕가의 후예다. ⓒ스카이데일리 <그림=최은숙>
남과 북의 당국자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소는 모두 현대사에 남은 역사적인 명소다. 70년대 남북 대화의 장이었던 성북동에 위치한 요정 삼청각이 대표적인 예다. 7·4남북공동성명 이후 남북적십자 회담 등 남북 당국간 대화 다수가 삼청각에서 열린 바 있다.
2000년대 들어서 남북 당국간 대화의 장은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 위치한 그랜드힐튼서울 호텔로 옮겨왔다. 2000년 시작해 총 18번 열린 남북 장관급 회담 중 그랜드힐튼서울을 이용한 것이 8차례에 달한다. 2007년 마지막으로 열린 남북 장관급 회담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랜드힐튼서울이 남북 당국간 대화의 장으로 애용되는 이유는 위치적 이점 때문이라고 한다. 호텔이 백련산 자락에 위치해 주변에 높은 건물이 드물고 보안 유지에 유리하다. 게다가 청와대와 정부종합청사에 가까운 점이 큰 장점으로 꼽힌다.
▲ 오늘(12일) 열릴 예정이었던 남북 당국회담 장소인 그랜드힐튼서울 호텔에는 국내외 취재진과 방송 중계차량들이 대거 몰려들어 취재열기로 후끈 달아올랐지만 하루 전날인 11일 전격 취소됐다. 사진은 그랜드힐튼서울호텔과 방송 중계차량들 모습. ⓒ스카이데일리
그랜드힐튼서울은 1988년 개관한 스위스그랜드호텔이 전신이다. 체인호텔 모회사가 파산한 뒤 힐튼코퍼레이션과 계약해 2002년 그랜드힐튼서울로 이름을 바꿨다.
호텔을 소유해 운영하던 유한회사렌사는 2001년 사명을 유한회사 동원아이엔씨로 변경하기도 했다. 이름에 동원이 들어가지만 동원그룹과는 무관한 회사다.
이 회사는 이우영(74) 회장이 소유한 회사로 알려졌다. 현재 이 회장의 아들인 이윤기(46) 대표가 대표이사로 등기돼 있다.
이우영 회장은 성북동에 주소를 두고 있다. 북악산 자락에 위치한 성북동 주택가 한 켠에 이 회장이 보유한 주택이 위치해 있다.
주택은 짙은 회색의 담장에 둘러싸여 있다. 외벽은 아이보리색에 세련된 외관이 돋보인다.
▲ 이 회장이 보유한 성북동 주택은 회색빛 담장에 둘러싸인 건물이다. ⓒ스카이데일리
이 회장은 1983년 이곳 토지 949㎡(287.1평)를 매입했으며 건물은 2010년 새로 지었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단독주택으로 연면적이 654.2㎡(197.9평)에 달한다.
대표적인 부촌 성북동에 주택을 보유한 이 회장은 그랜드힐튼서울의 부지 지분도 일부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지분은 호텔 운영사에 현물출자와 매매를 통해 넘겼다.
이 회장이 홍은동의 호텔 부지를 매입한 시기는 분명치 않다. 등기부등본에는 1962년 5월 신탁 종료로 인해 신탁재산을 이 회장이 인계받았다는 사실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 땅은 이 회장이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팔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의 할아버지는 황실의 종친인 청평군 이해승이다. 이해승의 증조할아버지이자 이 회장의 5대조 할아버지인 영평군은 조선 25대 왕인 철종의 형이기도 하다.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숙종과 영조, 사도세자 등을 찾을 수 있다.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팔아 호텔을 지었다는 사실 때문에 이 회장은 재산을 국가로부터 환수당할 뻔 했으나 소송으로 이 땅을 지켜냈다. 청평군 이해승의 친일 행적 때문이었다.
황실의 후손, 할아버지는 친일파명단 오른 이해승
이 회장의 5대조 할아버지는 조선 25대왕인 철종의 형인 영평군이다. 영평군과 철종의 할아버지인 은언군은 22대왕 정조와 형제지간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숙종과 영조, 사도세자로 이어지는 왕가의 혈통을 찾을 수 있다.
이 회장의 할아버지인 청풍군 이해승은 대한제국 멸망 시기 황실의 종친 중 가장 주목받던 인물 중 하나다.
20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이해승은 21세의 나이에 일본정부로부터 후작 작위와 16만여원의 은사공채를 받는다. 오늘날 기준으로 수십억원 상당의 채권이다.
은사공채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한 뒤 감사의 뜻으로 제공한 채권으로 한국인들은 매국공채라 부르기도 했다.
1928년 식민통치에 적극 협력한 공으로 ‘쇼와대례기념장’을 받았고 1941년에는 자발적 황국신민화운동을 위해 결성된 조선임전보국단의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1942년 ‘총독이 내선일체에 큰 공적을 남겼다’는 글을 신문에 게재했고, 1943년에는 징병제 실시 감사헌금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때 납북됐으며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행적으로 인해 이해승은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 모두 포함됐다.
이 회장은 2009년 이해승에 대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지정처분을 취소해달라며 행정안전부 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법원이 이해승의 친일행적을 인정한 것이다.
이와 별도로 2005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그랜드힐튼서울 부지 중 이 회장 보유 지분이 국가의 환수대상이 됐다. 이에 따라 2006년 12월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낸 가처분이 받아들여져 건물 부지 중 이 회장 보유 지분은 매매나 증여 등 처분행위가 금지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소송을 벌여 2010년 친일재산의 국가귀속 결정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얻어낸다. 이해승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친일재산이라는 결정도 취소됐다. 이해승의 친일행적은 인정됐지만 한일 강제병합에 공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어 국가귀속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법원의 결정 내용이었다.
5. 김윤수 한국프렌지공업 회장
성북동 일대는 1970년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토지를 사들이면서 지가가 크게 상승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이곳에 토지와 건물을 보유한 현대가 일원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 주택을 보유한 김윤수(67) 한국프랜지공업 회장 역시 범현대가의 일원이다. 김 회장의 모친인 정희영(88)씨가 바로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유일한 여동생이다. 김 회장이 보유한 주택은 성북동에서도 대사관저가 집중적으로 위치한 대사관로 인근에 있다. 낮은 경사로에 걸쳐 있는 지하1층 지상2층의 이 건물은 연면적이 410.8㎡(124.3평)이며 대지면적은 856㎡(258.9평) 규모다. 인근 부동산은 이 지역 토지시세가 3.3㎡(1평)당 2000~2500만원 선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건물의 땅값만 6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김 회장은 1990년 이곳 건물 부지를 매입했고 건물은 1993년 지어졌다. 김 회장이 이끄는 한국프랜지공업은 자동차 부품과 프랜지 등을 만드는 회사다. 지난 5월 16일 공시된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한국프랜지공업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 9542억원, 영업이익 203억원을 기록했다. 이 회사의 창업주는 김 회장의 부친인 고 김영주 회장이다. 김 회장의 모친과 결혼하면서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유일한 매제가 되기도 한 인물이다. 정 회장은 매제가 되기 전부터 김 회장을 크게 아꼈다고 한다. 생전에 출간한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에서는 김 회장을 ‘기계박사’라 극찬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1950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현대그룹을 함께 일으켜 나갔다. 매제라는 관계에 창업 초기멤버라는 점이 겹쳐 한때 ‘왕상무’라고 불리기도 했다. 스카이데일리가 고 정주영 회장의 유일한 매제였던 고 김영주 회장의 장남 김윤수 회장이 보유한 성북동 주택과 회사 지배구조 등을 취재했다.<편집자 주>
▲ 성북동에 주택을 보유한 김윤수 한국프랜지공업 회장(위·위치도)은 고 정주영 회장의 매제인 고 김영주 회장의 장남이다. ⓒ스카이데일리
성북동 일대는 1970년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토지를 사들이면서 지가가 크게 상승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이곳에 토지와 건물을 보유한 현대가 일원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 주택을 보유한 김윤수(67) 한국프랜지공업 회장 역시 범현대가의 일원이다. 김 회장의 모친인 정희영(88)씨가 바로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유일한 여동생이다.
김 회장이 보유한 주택은 성북동에서도 대사관저가 집중적으로 위치한 대사관로 인근에 있다.
인근에 대사관저가 위치한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조경수들 사이로 붉은 벽돌의 담장이 보인다. 이 건물이 바로 김 회장이 보유한 주택이다.
▲ 사진 왼쪽 붉은 벽돌담장 건물이 김윤수 회장 보유 주택이다. ⓒ스카이데일리
담장과 마찬가지로 주택도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다. 화려한 꾸밈이 없는 단정한 외관에서 풍기는 멋이 인상적이다.
낮은 경사로에 걸쳐 있는 지하1층 지상2층의 이 건물은 연면적이 410.8㎡(124.3평)이며 대지면적은 856㎡(258.9평) 규모다.
인근 부동산은 이 지역 토지시세가 3.3㎡(1평)당 2000~2500만원 선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건물의 땅값만 6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김 회장은 1990년 이곳 건물 부지를 매입했고 건물은 1993년 지어졌다.
김 회장이 이끄는 한국프랜지공업은 자동차 부품과 프랜지 등을 만드는 회사다. 프랜지는 영어 flange의 일본어식 발음으로 건설 및 플랜트 제작 시 배관을 연결하는 부품이다. 한국프랜지공업이 만드는 프랜지는 주로 현대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등에 납품된다.
자동차 부품의 경우 주로 제동장치와 구동장치 등을 만들며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등에 납품된다.
▲ 김윤수 회장 보유 주택이 있는 성북동 대사관로 일대의 모습 ⓒ스카이데일리
이외에 선박용 엔진부품 등을 만들어 현대중공업에 납품하기도 한다.
지난 5월 16일 공시된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한국프랜지공업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 9542억원, 영업이익 203억원을 기록했다.
범현대가의 일원답게 과거 현대그룹 계열사와 주로 거래를 하는 이 회사의 창업주는 김 회장의 부친인 고 김영주 회장이다. 김 회장의 모친과 결혼하면서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유일한 매제가 되기도 한 인물이다.
정주영 회장이 ‘기계박사’라 극찬한 김영주 회장 장남
김영주 회장과 정주영 회장의 인연은 1940년대에 시작됐다. 자동차 정비공장을 운영하던 정 회장이 운전기사로 일하던 김 회장과 의기투합한 것이다.
정 회장은 매제가 되기 전부터 김 회장을 크게 아꼈다고 한다. 생전에 출간한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에서는 김 회장을 ‘기계박사’라 극찬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1950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현대그룹을 함께 일으켜 나갔다. 매제라는 관계에 창업 초기멤버라는 점이 겹쳐 한때 ‘왕상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후 현대건설 부사장, 현대중공업 사장, 현대중전기 사장, 현대엔진공업 사장 등을 지냈다.
1982년부터는 한국프랜지공업 회장직도 맡았다. 이후에도 현대중전기 회장과 현대건설 비상근고문 등을 맡으며 현대가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김영주 회장은 2010년 지병으로 별세했다. 회사는 이미 장남인 김윤수 회장이 이끌던 중이었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김윤수 회장은 지난 3월 31일 현재 한국프랜지공업의 지분 23.49%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세 아들과 관계사 등 특수관계인 보유지분의 합은 42.91%에 달한다. 아들 중에는 첫째인 김용석(41) 서한산업 대표의 지분이 11.16%로 가장 많다.
▲ 자료: 한국프랜지공업 분기보고서(2013. 5. 16 공시) ⓒ스카이데일리
김 대표가 이끄는 서한산업은 한국프랜지공업의 계열사다. 김 대표가 58.33%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한국프랜지공업과 김 대표의 두 동생이 각각 13.89%씩의 지분을 나눠갖고 있다.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인 서한산업은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납품단가를 인하하고 이를 소급적용한 데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5억4400만원을 부과받기도 했다.
서한산업은 2·3차 협력업체에게서 사들인 부품을 이용해 자동차 부품을 제작, 현대자동차 등에 공급하는 1차 협력업체다.
공정위에 따르면 서한산업은 2009년 협력업체의 납품단가를 인하하고, 인하된 단가를 소급적용하는 방법으로 총 13개 업체에 2억원이 넘는 하도급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후 자진해서 미지급금을 지급했으나 공정위는 지연이자 등에 대해서도 지급을 명령했다.
6. 장세희 동국산업 부회장
성북동은 다른 지역보다 전통의 부자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유명하다. 50년대 설립돼 60년대에 일찍이 재벌 반열에 들어선 부자집안들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 주택을 보유한 장세희(45) 동국산업 대표이사 부회장 역시 60년대부터 기업이 크게 융성한 동국제강 가문의 일원이다. 장세희 부회장의 부친인 장상건(78) 동국산업 회장은 고 장상태 동국제강 명예회장의 동생이다. 장상태 회장의 장남인 장세주(60) 동국제강 회장과 장 부회장이 사촌지간이라는 의미다. 장 부회장은 1988년 성북동에 지하1층 지상2층의 주택을 매입했다. 건물의 연면적은 266.24㎡(80.6평)에 달한다. 건물이 서 있는 부지는 660㎡(199.7평) 규모다. 인근 부동산에 따르면 이 지역 토지시세가 3.3㎡(1평)당 2000만원에서 2500만원 사이인 점을 고려할 때 부지면적의 가격만 5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장 부회장 보유 주택 바로 옆에는 부친인 장상건 회장 보유 주택도 위치해 있다. 담을 맞대고 나란히 붙어 있는 지하1층 지상2층의 단독주택은 1998년 지어졌다. 장 회장이 토지를 매입한 시기가 1975년인 점을 미뤄볼 때, 이전에 살던 주택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지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택의 연면적은 566㎡(171.2평)이며 대지면적은 1074㎡(324.9평) 규모다. 장 회장 보유 토지는 8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됐다. 부자가 이끌어온 동국산업은 1967년 9월 1일 설립됐으며 냉연강판의 가공과 판매가 주업종이다. 지난 5월 공시된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동국산업은 지난해 한 해 동안 5019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영업이익은 163억원을 기록했다. 동국산업은 동국제강의 계열사였으나 2001년 계열분리됐다. 창업주의 5남인 장상건 회장이 동국산업을, 6남인 장상돈(76) 회장이 한국철강을 분리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동국산업의 최대주주는 지분 20.56%를 보유한 장세희 부회장이다. 부친인 장상건 회장 역시 17.05%의 지분을 갖고 있다. 동국산업과 동국제강 등은 여전히 주업종이 철강이어서 50년간 철강의 한길을 판 동국제강의 역사가 계열분리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스카이데일리가 동국산업 장세희 부회장 보유 주택과 회사 지배구조 등에 대해 취재했다.<편집자 주>
▲ 동국제강에서 계열분리한 동국산업의 장세희 부회장도 성북동에 주택(위·위치도)을 보유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그림=최은숙>
성북동은 다른 지역보다 전통의 부자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유명하다. 50년대 설립돼 60년대에 일찍이 재벌 반열에 들어선 부자집안들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 주택을 보유한 장세희(45) 동국산업 대표이사 부회장 역시 60년대부터 기업이 크게 융성한 동국제강 가문의 일원이다.
장세희 부회장의 부친인 장상건(78) 동국산업 회장은 고 장상태 동국제강 명예회장의 동생이다. 장상태 회장의 장남인 장세주(60) 동국제강 회장과 장 부회장이 사촌지간이라는 의미다.
장 부회장은 1988년 성북동에 지하1층 지상2층의 주택을 매입했다. 건물의 연면적은 266.24㎡(80.6평)에 달한다.
건물이 서 있는 부지는 660㎡(199.7평) 규모다. 인근 부동산에 따르면 이 지역 토지시세로 3.3㎡(1평)당 2000만원에서 2500만원 사이인 점을 고려할 때 부지면적의 가격만 5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 장세희 부회장 보유 주택과 나란히 위치한 장상건 회장 보유 주택. ⓒ스카이데일리
장 부회장 보유 주택 바로 옆에는 부친인 장상건 회장 보유 주택도 위치해 있다. 담을 맞대고 나란히 붙어 있는 지하1층 지상2층의 단독주택은 1998년 지어졌다. 장 회장이 토지를 매입한 시기가 1975년인 점을 미뤄볼 때, 이전에 살던 주택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지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택의 연면적은 566㎡(171.2평)이며, 대지면적은 1074㎡(324.9평) 규모다. 장 회장 보유 토지는 80억원이 넘을 것으로 인근 부동상은 추산했다.
등기부등본에는 장 회장이 2006년 이곳에서 다른 지역으로 주소를 옮긴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앞선 2005년 장세희 부회장이 부친 소유 건물에 주소를 옮겨둔 상황이었다. 이후 2009년 다시 주소를 본인 명의 주택으로 옮겼다. 수년 새 나란히 붙어 있는 두 건물을 오가며 주소를 옮긴 것이다.
▲ 장세희 부회장 보유 주택이 위치한 성북동 고급 주택가 일대. ⓒ스카이데일리
부자가 이끌어온 동국산업은 1967년 9월 1일 설립됐으며 냉연강판의 가공과 판매가 주업종이다.
지난 5월 공시된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동국산업은 지난해 한해동안 5019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영업이익은 163억원을 기록했다.
동국산업은 동국제강의 계열사였으나 2001년 계열분리됐다. 창업주의 5남인 장상건 회장이 동국산업을, 6남인 장상돈(76) 회장이 한국철강을 분리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자료: 동국산업 분기보고서(2013. 5. 29 공시) ⓒ스카이데일리
현재 동국산업의 최대주주는 지분 20.56%를 보유한 장세희 부회장이다. 부친인 장상건 회장 역시 17.05%의 지분을 갖고 있다.
장세희 부회장의 모친과 누나, 여동생도 각각 소량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장 부회장은 1996년 동국산업에 입사한 뒤 2004년 전무이사, 2006년 부사장을 거쳐 2007년 대표이사 직을 맡기 시작했다.
동국산업과 한국철강, 동국제강의 주업종은 여전히 철강 계열이어서 50년간 철강의 한길을 판 동국제강의 역사가 계열분리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철강 한길로 50년 이어온 살아있는 제조업 역사
동국제강은 창업주인 고 장경호 회장이 1954년 설립한 회사다. 부산에서 태어난 장경호 회장은 1930년대 가마니를 만들어 팔아 큰 돈을 번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일본이 한국의 쌀을 일본으로 내어가는 통로가 부산항이어서 이 지역에 가마니 수요가 크게 늘었다고 전해진다.
해방 직후부터는 작은 못을 생산하면서 처음으로 철과 인연을 맺었다. 한국전쟁 이후 철사와 못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회사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1957년 압연공장을 건설했고, 1959년에는 국내 업계로는 최초로 와이어로드를 생산했다. 또 1963년에는 민간 기업으로는 최초로 대규모 철강공장을 부산에 지었다. 1966년에는 국내업계 최초로 전기로(電氣爐) 제강공장을 준공하기도 했다.
60년대에 동국제강은 베트남 공화국(월남)으로 철강재를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일약 재벌 반열에 올라섰다. 1965년부터 시작된 베트남전쟁은 철강업계에게 전쟁특수를 제공했고 이로 인해 회사는 크게 성장했다.
재벌반열에 들어선 동국제강은 1972년 한국철강을 인수하는 등 덩치를 키워나갔다.
동국제강은 국제그룹이 해체되자 주요 계열사를 인수하기도 했다. 재계 순위 7위까지 오른 바 있는 국제그룹은 1885년 부실을 이유로 채권단에 의해 전격 해체됐고 계열사들이 주요 재벌에 넘겨졌다. 이때 동국제강은 연합철강과 국제공합기계, 국제통운을 인수했다.
동국제강은 창업주의 뒤를 이어 3남인 고 장상태 회장이 이끌어 왔으며, 현재는 장상태 회장의 장남인 장세주 회장이 이끌고 있다.
2001년 두 삼촌이 계열분리한 뒤에도 동국제강과 동국산업, 한국철강은 거래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8. 천신일 (주)세중 회장, 권력 후유중
검찰이 CJ그룹의 비자금 의혹에 대한 전방위 조사를 벌이면서 2009년 이재현(53) CJ 회장에 대한 검찰 조사가 다시금 화제에 오르고 있다. 당시 이재현 회장은 천신일(70) (주)세중 회장을 통해 세무조사 무마를 청탁했다는 의혹을 산 바 있다. 천신일 회장은 최시중(76)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함께 이명박(72) 전 대통령의 오른팔과 왼팔로 꼽히던 인물이다. 정권말 나란히 재판을 받고 옥살이를 하는 신세가 됐으나 올해 1월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는 공통점도 있다. 천 회장 역시 부촌으로 유명한 성북동에 주소를 두고 있다. 토지를 매입한 것은 1988년이며 현재의 건물은 1990년 천 회장이 새로 지은 것이다. 천 회장이 보유한 주택은 지하1층 지상2층의 단독주택으로 연면적은 643.04㎡(194.5평) 규모다. 대지면적은 847㎡(256.2평)에 달한다. 인근 부동산은 이곳 토지시세가 3.3㎡(1평)당 2500만원 선으로 천 회장 보유 토지의 시세는 60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천 회장은 이 주택 외에도 성북동 끄트머리에 토지 1008㎡(304.9평)를 더 보유하고 있다. 이곳 토지는 천 회장이 허태림 전 세중 사장과 함께 1991년 사들였으며 천 회장이 지분 3분의 2를, 허 전 사장이 3분의 1을 보유하고 있다. 토지에는 2011년 부동산 시행사가 보유한 주택이 지어졌다. 천 회장이 1982년 설립한 (주)세중여행은 대기업의 해외출장 대행업무를 담당하며 크게 성장해왔다. 2006년 ‘나모 웹에디터’로 유명한 IT회사 (주)나모 인터랙티브를 합병해 (주)세중나모여행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후 2011년 지금의 상호인 (주)세중으로 재차 이름을 바꿨다. 천 회장은 전 정권 초기부터 대통령 최측근이라는 점 외에 화려한 인맥으로 주목받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는 고려대 61학번 동기다. 대선 기간 천 회장은 고려대 교우회장을 맡아 이 전 대통령을 지지하기도 했다. 삼성그룹과도 막역한 사이로 알려졌다. 선대인 고 이병철 회장의 개인적인 일을 맡아주는 친밀한 사이였다는 것 때문에 삼성그룹과 남다른 관계를 맺고 있다. 삼성과의 인연에는 고 박태준 전 포항제철 회장도 등장한다. 박 전 회장이 천 회장과 이병철 회장 사이의 연결고리였다는 것인데, 이 인연은 천 회장의 포스코 회장 인사 개입 의혹이 제기됐을 때 다시 한 번 회자되기도 했다. 스카이데일리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천신일 세중 회장 보유 성북동 주택을 취재했다.<편집자 주>
▲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천신일 (주)세중 회장은 1990년부터 성북동에 주택(위·위치도)을 보유해 왔다. ⓒ스카이데일리
검찰이 CJ그룹의 비자금 의혹에 대한 전방위 조사를 벌이면서 2009년 이재현(53) CJ 회장에 대한 검찰 조사가 다시금 화제에 오르고 있다. 당시 이재현 회장은 천신일(70) (주)세중 회장을 통해 세무조사 무마를 청탁했다는 의혹을 산 바 있다.
천신일 회장은 최시중(76)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함께 이명박(72) 전 대통령의 오른팔과 왼팔로 꼽히던 인물이다. 정권말 나란히 재판을 받고 옥살이를 하는 신세가 됐으나 올해 1월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는 공통점도 있다.
천 회장이 공직에 오르거나 특정 직위에서 권력을 행사한 적은 없다. 따라서 각종 로비의혹이 불거질 때 마다 천 회장은 ‘그럴 만한 지위나 처지가 아니었다’고 반박해왔다. 하지만 대통령 최측근이라는 사실이 세상이 널리 알려진 이상 공직이나 직위에 따른 권력과는 다른 형태의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것으로 지적된다.
천 회장 역시 부촌으로 유명한 성북동에 주소를 두고 있다. 토지를 매입한 것은 1988년이며 현재의 건물은 1990년 새로 지은 것이다.
천 회장이 보유한 주택은 지하1층 지상2층의 단독주택으로 연면적은 643.04㎡(194.5평) 규모다.
▲ 천 회장 보유 성북동 주택의 뒤편 모습 ⓒ스카이데일리
대지면적은 847㎡(256.2평)에 달한다. 인근 부동산은 이곳 토지시세가 3.3㎡(1평)당 2500만원 선으로 천 회장 보유 토지의 시세는 60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천 회장인 이 주택 외에도 성북동 끄트머리에 토지 1008㎡(304.9평)를 더 보유하고 있다.
이곳 토지는 천 회장이 허태림 전 세중 사장과 함께 1991년 사들였으며 천 회장이 지분 3분의 2를, 허 전 사장이 3분의 1을 보유하고 있다. 토지에는 2011년 부동산 시행사가 보유한 주택이 지어졌다.
이곳 토지 인근에도 천 회장 토지가 더 있었으나 2008년 매각한 것으로 등기부등본에 나타난다.
▲ 천 회장이 허태림 전 세중 사장과 공동으로 보유한 토지 위에 지어진 주택. 주택의 소유주는 부동산시행사로 등기돼 있다. ⓒ스카이데일리
천 회장이 이처럼 성북동에 토지를 보유할 수 있었던 것은 여행사업의 성공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졌다.
1982년 설립된 (주)세중여행은 대기업의 해외출장 대행업무를 담당하며 크게 성장해왔다. 2006년 ‘나모 웹에디터’로 유명한 IT회사 (주)나모 인터랙티브를 합병해 (주)세중나모여행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후 2011년 지금의 상호인 (주)세중으로 재차 이름을 바꿨다.
지난달 30일 공시한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주)세중은 지난해 연결기준 206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영업이익은 178억원을 기록했다.
▲ 자료: (주)세중 분기보고서(2013. 5. 30 공시) ⓒ스카이데일리
(주)세중의 최대주주는 지분 13.73%를 보유한 천 회장이다. 천 회장의 아들인 천세전(39) 부사장 역시 지분 7.25%를 보유하고 있다.
회사 지분 5% 이상 보유 주주는 이들 외에 한국자산관리공사(10.26%) 뿐이다.
화려한 인맥으로 로비 의혹 끊이지 않아
천 회장은 전 정권 초기부터 대통령 최측근이라는 점 외에 화려한 인맥으로 주목받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는 고려대 61학번 동기다. 대선 기간 천 회장은 고려대 교우회장을 맡아 이 전 대통령을 지지하기도 했다.
삼성그룹과도 막역한 사이로 알려졌다. 선대인 고 이병철 회장의 개인적인 일을 맡아주는 친밀한 사이였다는 것 때문에 삼성그룹과 남다른 관계를 맺고 있다.
이로 인해 세중은 삼성그룹 임원진의 해외출장 대행업무를 담당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과의 인연에는 고 박태준 전 포항제철 회장도 등장한다. 박 전 회장이 천 회장과 이병철 회장 사이의 연결고리였다는 것인데, 박 전 회장 역시 천 회장과 막역한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회장과의 인연은 천 회장의 포스코 회장 인사 개입 의혹이 제기됐을 때 다시 한번 회자되기도 했다.
2009년 초 현 정준양 포스코 회장의 선임과정에서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차장이 개입했다는 내용의 의혹이 야당의원을 통해 제기됐는데, 이 과정에서 천 회장이 ‘대통령의 뜻’을 포스코 관계자들에게 전한 결과 정준양 당시 포스코건설 사장이 회장직에 오를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이 의혹은 천 회장이 대통령 최측근이면서 박태준 전 회장과 지우라는 점이 부각돼 많은 뒷말을 낳았다.
이상
국제빌딩, 삼일빌딩 등 스토리
서울에서 70~80년대를 지냈던 중장년층이라면 삼일빌딩, 교보문고, 종로서적, 국제빌딩 등의 이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시내에서의 약속장소로 이런 ‘랜드마크’ 만큼 만한 것이 없던 시절이었다. 요즘이야 잘 모르는 장소라 해도 스마트폰이 있어 길 찾기가 어렵지 않거니와 또 근처에서 서로 통화할 수 있어 약속이 엇갈리는 경우가 드물다. 부촌 한남동과 서래마을 탐방기사의 인기가 여전한 가운데 이번 주에는 새로 선보인 랜드마크 빌딩과 부촌 성북동 탐방기사가 관심을 끌었다. 특히 군사독재 시절 해체의 비운을 맞은 기업 국제상사가 소유한 국제빌딩, 63빌딩이 지어지기 전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았던 삼일빌딩 스토리가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금도 용산역 앞에 있는 LS용산타워(옛 국제빌딩)는 용산지역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빌딩이다. 크기도 크기지만 외관이 평범한 직사각형 빌딩과 사뭇 달라 눈길을 끈다. 건물은 지하4층, 지상28층 규모로 연면적이 10만5527㎡(3만1921.8평), 대지면적이 1만1703.4㎡(3540.3평)에 달한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이 진행되면서 용산역과 지하철 신용산역 인근 땅값이 한때 치솟았지만 현재는 땅값이 크게 내려 시세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부동산 관계자들에 따르면 대지가 워낙 넓어 땅값이 크게 떨어져도 2000억원대는 충분할 것으로 추산된다. 또 1970년 청계천에 지어진 삼일빌딩은 1985년 63빌딩이 있기 전까지 국내 최고층 빌딩이었다. 지하2층, 지상31층의 삼일빌딩은 연면적이 3만5245.48㎡(1만661.8평), 대지면적이 1877.4㎡(567.9평)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들은 이 땅의 가격을 3.3㎡(1평)당 1억원선으로 보고 있어 땅값만 570억원으로 추산된다. 2000년대 들어 청계 고가도로가 해체되면서 지금은 탁 트인 청계천 일대에서 돋보이는 건물로 옛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편집자 주>
▲ 용산역 인근에 있는 LS용산타워의 옛 이름은 국제빌딩이다. 바로 전두환정권에 의해 해체된 국제그룹이 소유했던 건물이다. 현재는 LS네크웍스가 소유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국제빌딩, 주인의 저주 벗었나…무탈한 LS그룹
용산역 앞에 있는 LS용산타워는 용산지역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빌딩이다. 지하철역 신용산역 2번 출구를 나오면 바로 보이는 새하얀 건물이 LS용산타워다.
건물은 지하 4층, 지상 28층으로 지어졌다. 연면적이 무려 10만5527㎡(3만1921.8평)에 달한다. 건물이 서 있는 대지는 용산구 한강로2가 191과 191-1, 191-2, 191-3 등 네 필지로 면적이 1만1703.4㎡(3540.3평) 규모다.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이 진행되면서 용산역과 지하철 신용산역 인근 땅값이 크게 치솟아 한때 인근 땅값이 3.3㎡(1평)당 1억8000만원대를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는 땅값이 크게 내려 시세를 가늠하기 힘든 수준이다. 하지만 대지가 워낙 넓어 땅값이 크게 떨어져도 2000억원대는 충분할 것으로 추산된다는 게 인근 부동산들의 설명이다.
LS용산타워는 이름 그대로 LS그룹의 계열사인 LS네트웍스가 보유한 건물이다. LS네트웍스는 브랜드·유통 사업, 글로벌 상사 사업, 자산개발 사업 등을 하는 회사다. LS용산타워의 임대와 운영도 하고 있다.
LS네트웍스의 최대주주는 지분 81.79%를 보유한 E1이라는 회사인데, 이 회사는 구자열(60) LS그룹 회장 동생인 구자용(58) E1 회장이 함께 회장직을 맡고 있다. LS그룹의 세 형제 중 한명인 고 구평회 명예회장 자식들이 LS네트웍스를 보유한 모습이다.
용산역앞 랜드마크로 잘 알려진 건물이지만 용산 지역에 오래 머문 이들이 기억하는 이 건물의 이름은 LS용산타워가 아니라 ‘국제빌딩’이다. 건물이 LS 소유가 되기 이전 이름이다.
2007년 국제상사가 LS그룹에 인수된 뒤 회사와 건물의 이름이 바뀐 것이다. 국제상사는 전두환 정권에 의해 해체된 국제그룹의 모기업이다. 건물이 지어진 1985년은 공교롭게도 국제그룹이 해체된 시기와 일치한다.
국제상사는 양정모 회장이 1947년 세운 고무신 공장이 모체다. 양 회장은 부친이 운영하던 부산 지역의 정미소 한켠에서 고무신을 만들기 시작했다. 양 회장은 2년 뒤인 1949년 국제화학(주)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사장에 오른다. 첫 브랜드는 ‘왕자표’ 고무신이었다. 8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국산 운동화 브랜드 중 독보적인 위치였던 ‘프로스펙스’ 역시 이 회사의 브랜드다.
이후 국제그룹의 핵심회사인 국제상사가 주인을 바꿔가면서 건물의 운명도 바뀌게 된다. 주인이었던 한일그룹도 해체의 비운을 맞았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이를 두고 ‘주인의 저주’라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새 주인 LS그룹은 무탈할 뿐만 아니라 탄탄대로다.
박정희 조국근대화 500억 마천루 ‘남의 손에’…삼일빌딩
▲ 63빌딩 이전 국내 최고층 빌딩이었던 삼일빌딩은 청계2가 사거리 삼일교 정면에 위치해 있다. 이 빌딩은 교과서에 삼일고가도로와 함께 실렸을 정도로 조국근대화를 외쳤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개발시대 당시 상징적 건물이 됐다. ⓒ스카이데일리
한국 최고층 빌딩의 대명사는 63빌딩이다. 현재는 최고층 자리를 타워팰리스 3차에 내줬지만 여전히 최고층 빌딩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물이다.
63빌딩이 지어진 1985년 이전 국내 최고층 빌딩은 청계천에 있는 31층 높이의 삼일빌딩이었다. 삼일로에 인접한 삼일빌딩의 본래 이름은 삼일로 빌딩이었다. 건물은 지금도 청계천변인 청계2가 사거리에 서 있다. 1970년 지어진 이 건물은 당시 국내 최고 높이로 유명했다.
지하2층, 지상31층의 삼일빌딩은 연면적이 3만5245.48㎡(1만661.8평)에 달한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건물이 서 있는 종로구 관철동 10-2 필지의 넓이는 1877.4㎡(567.9평)다.
인근 부동산은 이 땅의 가격을 3.3㎡(1평)당 1억원 선으로 보고 있다. 땅값만 570억원 선이라는 의미다. 현재 건물은 임대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산업은행, 외환은행, 대우정보시스템 등이 입주해 있다.
건물의 소유주는 홍콩에 주소를 둔 스몰록인베스트먼트컴퍼니리미티드란 회사다. 산업은행이 2001년 현재의 소유주에게 502억원에 매각했다. 산업은행은 1985년 삼일빌딩을 매입했다.
이전 소유주는 건물을 지은 삼미그룹이었다. 고 김두식 회장이 설립한 삼미그룹의 모태인 대일목재공업이 1968년 사옥건물로 쓸 삼일빌딩을 짓기 시작해 1970년 완공했다.
1960년 설립한 무역업체인 삼미사가 대일목재를 역으로 인수해 모기업이 됐고, 이후 1982년 사명을 (주)삼미로 바꾼다. 삼미는 60년대 특수강 사업에 뛰어들어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의 수혜를 입었다.
이후 80년대에는 매출액 기준 17위에 오르는 재계의 숨은 강자로 떠올랐다. 대중적 인지도가 낮았지만 82년 출범한 프로야구에서 인천 연고의 삼미슈퍼스타즈를 운영하기도 했다.
슈퍼스타즈가 매각된 1985년은 삼미가 삼일빌딩을 산업은행에 매각한 해와 일치한다.
2000년대 들어 청계 고가도로가 해체되면서 지금은 탁트인 청계천 일대에서 돋보이는 건물로 옛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독한 신화 교육보험 거탑서 ‘분가한 동생은’…신문재 전 교보문고 회장
▲ 삼청터널 인근에 있는 성북더게이트힐즈는 부촌 성북동에서도 명사들이 모여사는 단독주택 단지다. 신문재 전 교보문고 회장도 이곳에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사진은 북악산에서 바라본 성북동 일대 단독주택 전경으로 사진 가운데 앞쪽의 흰색 주택이 성북더게이트힐즈 단지다. ⓒ스카이데일리
성북동은 60년대 정권 요직에 있던 인물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70년대에 재계 인사들이 이곳에 자리 잡으면서 전통의 부촌으로 불리게 됐다.
성북동에는 고급 단독주택단지가 조성돼 있어 눈길을 끈다. LIG건영이 2010년 공급한 성북더게이트힐즈는 아파트의 보안과 단독주택의 개별성이 조화된 특이한 지역이다. 삼청터널 인근에 위치한 성북더게이트힐즈는 단독주택 12개동이 모여 있는 주택단지다.
신창재(60) 교보생명 회장의 동생인 신문재(52) 전 교보문고 회장도 이곳에 단독주택 한 채를 보유하고 있다.
신 전 회장 보유 주택은 지하1층 지상2층으로 연면적이 530.04㎡(160.3평)에 달한다. 신 전 회장은 이곳 주택을 2011년 33억5300여만원에 매입했다. 연면적 기준으로 3.3㎡(1평)당 2000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신 전 회장은 지난해 7월 공정위에 친인척 계열분리 신청을 해 승인받았다. 형인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독립적으로 경영을 하겠다는 승인으로 공정거래법 상 교보그룹으로부터 분가해 나간 것이다.
한때 교보그룹의 계열사인 교보문고의 회장까지 맡았던 신 전 회장은 지난 2005년 교보생명과 계열사의 보유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그룹 경영에서 빠졌다. 이후 지난해 ‘디자이너이미지’라는 회사를 설립했는데, 이 회사를 교보그룹과 관계없이 운영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이런 신 전 회장의 모습은 아버지인 창업주 고 신용호 회장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고 신용호 회장은 한국 보험업계 최초의 아이디어 뱅크였다. 1958년 신용호 회장은 교육보험이라는 상품을 만들어 오늘의 교보 신화를 만들었다.
70~90년대 성장기의 교보는 이른바 ‘아줌마 군단’(보험모집인·설계사)을 통해 승승장구했다. 당시 교보의 모집인들은 집요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만큼 교보와 창업주는 독하게 소문나기도 했다. 하지만 창업주의 아들들은 의사와 디자이너라는 전문 직종 출신이고, 차남은 그 직을 찾아 지분도 팔고 총총히 독립했다.
‘에스콰이아 신화’의 아들 800억 매각 뒤 홀연…이범 전 회장
▲ 한남동 유엔빌리지에 있는 고급빌라 헤렌하우스의 1개 호실을 이범 에스콰이아 전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스카이데일리
한남동 유엔빌리지에 위치한 헤렌하우스는 2002년 완공된 지하4층, 지상3층 건물로 총 16세대가 있는 집합건물이다. 고급빌라로 명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이범 전 에스콰이아 회장 역시 헤렌하우스 1개 호실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스카이데일리 취재결과 확인됐다.
이 전 회장은 이곳 242.92㎡(73.5평)를 2002년 분양받았다. 건물이 준공된 후인 2003년 이곳으로 주소지를 옮기기도 했다. 부동산에 따르면 현재 이곳 빌라는 가구당 45억원 가량으로 시세가 형성돼 있다. 3.3㎡(1평)당 6000만원이 넘는 수준이다.
한남동 유엔빌리지에 고급빌라를 보유한 이 전 회장은 제화 명문 에스콰이아의 창업주 고 이인표 회장의 장남이다. 이 전 회장은 지난 1999년 이인표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면서 회장직에 올랐다. 이인표 회장은 2002년 작고했다.
고 이인표 회장은 1957년 서울 명동에 대동영화를 세우는 등 양품점으로 큰 성공을 이룬다. 1961년에는 수제화점인 에스콰이아제화를 설립하고 제화사업에 나섰다. 시작 당시에는 이 회장이 10평 남짓한 가게에서 손수 신발을 만들었다고 한다.
1966년 국내 최초로 구두의 대량생산에 들어갔으며, 1970년에는 성수동에 공장을 세우기도 했다. 70년대 들어 에스콰이아는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한다. 1977년에는 (주)에스콰이아핸드백을 설립해 핸드백 사업에 뛰어들었고 1981년에는 (주)영에이지를 설립해 의류업에도 나섰다. 디자인과 품질에서 인정받은 에스콰이아는 80년대 들어 금강제화와 함께 한국 구두시장을 양분했다.
이 전 회장은 1988년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회사를 이끌기 시작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제화업계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상품권 발행을 크게 늘렸고 이것이 경영악화로 연결됐다. IMF의 파고가 지나간 2000년대 초에는 패션산업에 투자를 늘렸다가 2003년 터진 카드대란 사태로 경영에 직격탄을 맞았다.
계열사를 처분하며 회사를 수습했지만 회생은 쉽지 않았다.
2009년 7월 이 전 회장은 자신과 가족 등 특수관계인들이 보유한 지분 100%를 미국의 투자전문회사인 H&Q에 매각한다. 매각액은 800억원 선으로 알려졌다. 현재 에스콰이아의 지분은 H&Q가 만든 사모펀드 H&Q EFG투자목적회사가 100% 보유하고 있다.
국내 제화 명문의 주인이 2대째 만에 바뀌게 된 것이다. 회사 매각 이후 이 전 회장의 행적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두산 3·4세’ 삼각편대 가족경영…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
▲ 한남동 유엔빌리지에는 두산가의 3세대인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소유한 주택과 4세대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의 고급빌라도 위치해 있다. 박 부회장이 소유한 두산빌라의 높다란 회색담벽이 인상적이다. ⓒ스카이데일리
1896년 창업해 117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최장수 기업 두산은 그룹의 지배권을 가족들이 나눠 갖고 있는 공동경영으로 화제다. 두산건설, 두산인프라코어 등 두산의 핵심계열사들은 대부분 두산중공업이 대주주다.
올 3월31일 두산중공업 분기보고서(금융감독원 5월15일 공시)에 따르면 핵심계열사를 지배하는 두산중공업의 대주주이자 그룹의 지주회사는 (주)두산이다. (주)두산의 대주주는 박용곤 명예회장 등 친인척들로 이들 특수관계인이 43.0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구조다. 특수관계인에는 친인척 33명과 연강재단 및 (주)두산 등기임원이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두산가의 4세인 박지원(49) 두산중공업 부회장이 3.42%의 지분을 갖고 있다. 4세 그룹 선두주자인 박정원(52) 두산건설 회장이 5.15%로 가장 많다. 그룹 총수인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도 3.38%의 지분을 갖고 있다.
두산중공업의 경우는 (주)두산이 41.23%를 갖고 있으며 박용만 회장과 박정원 회장·박지원 부회장이 각 0.0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두산그룹은 3세인 박용만 회장이 그룹과 두산인프라코어, 4세인 박정원 회장이 두산건설, 박지원 부회장이 두산중공업을 이끄는 삼각 편대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두산중공업 회장은 고 박두병 초대회장의 3남인 박용성 회장이 맡고 있다. 조카인 박지원 부회장은 두산중공업 부회장 겸 대표이사다. 박 부회장은 두산가 3세대의 장남인 박용곤 명예회장의 차남이며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은 장남이다.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은 한남동에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등기부등본과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두산빌라는 모두 2개동이며 각 동마다 지하 2층, 지상 3층 그리고 옥탑으로 구성돼 있다. 공동주택(연립주택)으로 모두 6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그 중 박 부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곳의 각 층은 504.62㎡(152.65평) 규모다. 중개업소에 따르면 “워낙 비싸 실제 거래가 없어 가격추산이 쉽지는 않지만 시세는 55억원 수준에 형성돼 있다”고 소개했다.
한남동 유엔빌리지에는 두산가의 3세대인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소유한 주택도 있다. 박용만 회장은 박지원 부회장의 삼촌이 된다.
언론갑부 영욕 부침 끝 파행국면 ‘한국일보’…장재구 회장
▲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은 서래마을에 있는 고급빌라 프레스턴 1개호실을 보유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서래마을에 있는 프레스턴은 2005년 지어진 고급빌라다. 빌라로 불리지만 층수가 6층이어서 건축법상으로는 아파트에 해당한다. 건물은 하단부가 회색 벽에 둘러싸여 있고 상단이 황금빛이어서 고급스런 느낌이 강하게 느껴진다.
분양평수 기준 100평이 넘는 대형 세대가 총 36세대로 이뤄져 있다. 분양당시 가격이 3.3㎡(1평)당 1600~2000만원에 달했다.
인근 부동산과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곳 빌라 전용면적 243.83㎡(73.8평)를 장재구(66) 한국일보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스카이데일리 취재결과 확인됐다.
장 회장은 2005년 건물이 완공되자 소유권 보존등기를 했다. 건물이 지어지기 이전에 선분양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부동산의 설명이다. 그로부터 3개월 후 건물 지분 절반을 신모씨에 증여해 주택을 나눠 갖고 있다.
장재구 회장은 한국일보의 초대 회장인 고 장기영 회장의 둘째 아들이다. 장기영 회장은 1954년 태양일보를 인수해 제호를 한국일보로 바꿨으며, 1964년 박정희 정권의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맡기도 했다.
60년대 동아일보에 이어 국내 2위의 신문사로 도약한 한국일보는 80년대까지도 조선·중앙·동아와 함께 4대일간지로 꼽혔다.
한국일보는 부동산갑부라는 이야기도 오랫동안 회자됐다. 70년대 장기영 회장이 세상을 떠난 뒤 한국일보는 장기영 회장의 첫째 아들인 고 장강재 회장이 이끌었다. 장강재 회장이 1993년 작고한 뒤에는 넷째아들인 장재국 회장이 회사를 경영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신문사들 간에 증면바람이 부는 등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결국 한국일보는 2002년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장재국 회장은 경영부진을 이유로 해임됐고, 장재구 회장이 한국일보 회장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채권단은 한국일보의 중학동 사옥을 매각할 것과 200억원대의 추가증자를 요구했다. 장 회장은 사옥을 한일건설에 매각하면서 부지개발 이후 새로 지어진 건물의 일부를 우선적으로 살 수 있는 청구권을 받았다. 이 우선매수청구권의 가치는 200억원대였다.
2011년 중학동 한국일보 사옥부지의 개발이 끝난 뒤 한국일보는 새 건물로 사옥을 이전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뒤늦게 장 회장이 우선매수청구권을 포기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장 회장이 추가증자를 위해 마련한 200억원이 사실은 한일건설에서 빌린 돈이며 이 과정에서 우선매수청구권을 포기했다는 정황이 알려지면서 노조가 반발에 나섰다.
이후 장 회장은 서울경제신문 등 주요 계열사의 매각을 추진했고 올해 들어서는 모기업인 한국일보의 매각까지 검토했다. 매각 추진은 이달 초 중단됐다.
매각 중단이 결정되기 전인 지난달 29일 노조는 장 회장이 임의로 청구권을 포기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검찰에 장 회장을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검찰은 이달들어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발 이후 편집국장을 교체하고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지만 기자들이 거부하면서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