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아내의 사진 한 장
솔향 남상선/수필가
우리의 삶은 희로애락의 반복적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박진선의 트로트 가요 가사에도‘인생은 희비의 쌍곡선’이라 하지 않았던가!
한 번 울면 한 번은 웃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셈이니 고난 속에서도 해 뜰 날은 있다 하겠다. 아름다운 비단도 날줄과 씨줄로 짜여 있듯이 우리 인생살이도 기쁨과 슬픔의 날줄 씨줄이 사람들을 웃게도 울리기도 하는 것이어라.
나는 15년 전만 해도 매일같이 아내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그것도 출근 전 아침 산책으로 하루도 빠지는 날이 없었다. 무슨 잉꼬부부라고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날도 어김없이 새벽 5시경에 산책을 나갔다. 출근 전 1시간 정도는 산책한다는 신념으로 고집한 것이 평생을 한으로 얼룩지게 만들었다.
아내는 1m 정도 앞서 가고 나는 뒤를 따르고 하다가 내 반쪽은 사고를 당했다.
1m의 거리, 이것은 바로 이승과 저승의 거리였다. 1m 앞서가던 아내는 승용차에 받히어 저승길로 갔고, 나는 그걸 지켜보는 비정한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나는 아내를 허망하게 보냈다. 그 바람에 인생 지향점까지 잃게 되었다. 삶의 지표까지 흐려졌으니 살아서 무얼 하나! 하는 식의 회의감에 빠지고 말았다.
어느 새 나는 염세주의자가 돼가고 있었다. 그 때에 제자, 친구, 지인들의 따뜻한 손길과 사랑이 없었다면 나도 아내를 따라 갔을 것이다.
생사기로에서 허덕이던 나에게 따뜻한 가슴으로 큰 힘이 돼 주셨던 모든 분들께 느꺼운 감사를 드린다. 특히 대전여고졸업생 정길순 제자 선생님을 비롯하여 충남고 졸업생 부국건설 대표이사 정지식 제자, 홍상순 교장님, 전용우 교장님, 자미지미 남성문 여사님, 김순자 소화데레사, 오기환 친구, 친구이자 대부인 전용돈 스테파노, 이용만 선배님! 사람의 가슴이 뛰고 있다면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가슴이 따뜻한 분들 위력으로 천붕지통(天崩之痛: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괴로움과 슬픔)보다 더한 고분지통(叩盆之痛:아내의 죽음에서 오는 마음 아픔과 슬픔)을 딛고 용기백배하여 일어선 것이다.
아내 보내고 한참 힘들어 할 때, 딸애가 걱정이 됐던지 제 엄마 사진이 들어 있는 사진첩을 다 가져가 버렸다. 아빠가 엄마사진 보고 날마다 운다고 제 엄마 들어 있는 사진은 한 장도 남기지 않고 모두 치워 버렸다. 그 바람에 그 많던 사진을 딸애한테 말 한 마디 못하고 강탈보다 더한 강탈로 다 빼앗기게 되었다.
그 바람에 아내의 흔적은 우리 집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딸애의 빈틈없는 수색에도 허점은 있었다. 내 낡은 가죽 지갑 속의 빛바랜 아내의 흑백 사진 한 장은 어쩌지 못하였으니 말이다. 거기다 내 방송국에서 TJB 교육대상을 받을 때 시상 장면을 담아 놓은 DBD 속의 저의 엄마 영상과 음성은 그냥 두고 갔으니 주도면밀한 딸애이지만 옥에도 티가 있다 하겠다.
낡은 내 지갑 속엔 아내의 빛바랜 사진 한 장이 아직도 들어 있다. 사진 한 장이지만 나에겐 사연이 있는 골동품과도 같은 귀한 보물이다. 아내의 처녀 때 찍은 흑백 사진으로 결혼 전 맞선 보기 전에 큰처남이 갖다 준 값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초임지 덕산고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할 때 처남 차제를 다 가르쳤다. 또 처남 처제가 중매인이 되어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큰처남이 된 그 당시 성덕모 학생은 고3때 붓글씨도 잘 쓰고 미술에 재능이 뛰어났었다. 그래서 박정래 미술 선생님의 총애를 받으며 미술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박 선생님은 나와도 친분관계가 있어 나도 미술실을 자주 드나들곤 하였다.
어느 날 미술실을 갔는데 성덕모 학생이 나에게 다짜고짜 하는 말이,
“선생님 결혼하셨어요?”
“아니, 어디 중신할 아가씨라도 있냐?”
“예, 저희 누나 한 분이 있어요. 내일 누나 사진 갖다 보여드릴게요.”
하더니 다음날 자기 누나 사진을 갖다 주는 거였다. 바로 그 사진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빛바랜 아내 사진이다. 아내가 처녀 때 찍은 사진으로 맞선보기 전에 큰처남이 가져다 준 것이다. 빛바랜 사진이지만 이걸 보고 있으면 36년의 세월, 아내와 같이 했던 추억들이 맥질을 해 준다.
빛바랜 사진이지만 지나간 순간순간에 관련된 일들이 봇물 터지듯이 회상으로 밀려와 나를 울리곤 한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으로 나를 어렵게도 한다.
아내는 보고 싶은데, 꿈에 한 번도 나타나질 않는다. 돈으로 볼 수 있는 얼굴이라면 빚이라도 얻어 100원 어치 아니, 10원 어치만이라도 보고 싶은 생각 간절하다.
찰리 채플린은 삶이란‘멀리서 보면 희극인데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했다. 진정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
빛바랜 아내의 사진 한 장
빛바랜 사진 속의 내 반쪽
만날 수도 없지만 잊을 수도 없구나.
빛은 바랬지만 불러올 추억은 모두 다 챙기는구나.
총각 땐 그리도 맘 설레게 했지만 지금은 마음을 아프게 하는구나.
영민 보라 낳고서 환한 얼굴에 염화미소를 짓던 그런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세상에서 가장 먼 나라의 이국동포의 추억이 돼 버렸구나.
여름날 유성고로 내 출근할 때 땀날까 걱정하여
출근 책가방 도솔산까지 메고 와 건네주던 그 모습이며
31번 이사할 때 혼자 짐 싸던 천사 모습아 지금도 보이는구나.
방광암환자 시아버지 모시고 병원마다 쫓아다니던 선했던 당신
우리 영민이 서울대 합격소식 듣고 밥먹다 같이 울던 모습이
빛바랜 당신 사진 속에 어리비치며 이리도 날 어렵게도 하는구나.
낡은 지갑 속의 빛바랜 사진 한 장
빛은 바랬지만 추억은 천 배 만 배 생생하게 하는구나.
노산 이은상님의 시조까지 편들며, 거들며, 날 울리는구나.
뵈오려 안 뵈는 임 눈감으니 보이시네.
감아야 보이신다면 소경되어지이다.
첫댓글 사모님을 그리며 아쉬웠던 순간들을 잊지 못하시는 선생님의 "빛바랜 사진한장" 을보며 눈앞이 흐려졌습니다.
만남은 헤어짐이라 했던가요?
얼마나 아프셨을까?
감히 그 큰아픔의 흔적들을 헤아리지도 못 하겠습니다.
사모님의 빛나던 사랑.
선생님의 지고지순한 그 사랑은 세월을넘어 지상과천상의 경계를 허물어 갈것입니다.
먼 훗날 지상에서의 애절한 만남처럼 천상에서의 짙은만남을 염원하고 또 염원 드립니다.
다만 그리움 조각들이
또 만날수있다는 희망의 조각들로 선생님의 가슴을 가득 채워 주시기만을 간절하게 바랄뿐입니다.
아득히 저멀리에 빛바랜 사진은 갈수없는 슬픈 그리움,,
사모님을 향한 그 깊은 사랑이 잘 전해져옵니다. 당시 얼마나 충격이 컸을런지 마음이 무겁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