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페
폴페는 개안에 있었던 포구의 이름이다. 1934년부터 시작된 일제의 적기만 매립 당시 폴페를 완전히 매립 하지는 않았고 소형 선박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을 남겨놓고 방파제까지 조성하였으나 새로운 도로와 8부두 조성시에 완전히 매립되어 이제는 그 이름도 흔적도 사라지고 말았다.
아래의 지도는 1905년도에 발행된 부산항지형도의 감만동 부분인데 120여 년 전 폴페의 완전한 모습을 짐작해 볼 수가 있을 것이다.(붉은 색 원내)
넓다란 해변에 길이 나 있고 나지막한 산지가 포구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폴페라는 이름은 포이포(包伊浦)의 속음(俗音)으로 원주민들이 그렇게 불러왔고 향토 사학자 길포(吉浦) 박원표(1910-1986)씨도 그렇게 추정하였다. 박원표씨는 녹음기를 메고 부산 곳곳을 현지답사 지역 고로(古老)들의 이야기를 채록하는 등 부산 향토사 연구와 발굴에 큰 기여를 하신 분이다. 최초의 경상좌수영이 감만동에 있었을 때는 포구의 고유한 이름도 없어 단순히 고을 이름을 따서 감만이포라 한 것 같고 포항 장기현(현재 포항 남구)에 있는 포이포진이 뒤에 민락동 수영천으로 옮겨졌다가 다시 감만동으로 옮겨진 이후부터 폴페(포이포)로 불리어진 것 같다(군대의 진(鎭)이 타 지역으로 옮겨가도 그 진 이름이 바뀌지 않는 것은 현재도 부대의 위수지역이나 주둔지가 바뀌어도 고유 부대명은 바뀌지 않는 것과 상통)
감만동 선대 지역민들에 의해 폴페(포이포包伊浦-포리포-폴페)라고 분명히 불리어져 왔음에도 그것을 알고 있는 후세 사학자는 아마도 없는 것 같다. 현재의 지도에도 민락동 수영천에만 포이포 진터 표시가 되어 있다.
여러 자료에 기록된 좌수영 관련 내용.
포이포 만호영(부산시사 釜山市史 1권)
포이포 만호영은 원래 포항 장기(長鬐,현 남구)에 있었으나 임진란 이후에 동래 남촌으로 이진(移鎭) 하였다.
*동래 남촌 - 동래부 남촌면으로 관할지는 감만 우암 용당 대연 용호 남천 광안 수영 민락 일대.
경상좌수영(동국여지승람. 문헌비고. 비변사 등록)
조선조 최초의 경상좌수영 소재지는 동국여지승람 문헌비고 비변사 기록 등에 의하면 태종(재위기간 1400-1418)이전에는 부산 감만동에 있었으나 태종 때 이를 울산 대현면 개운포로 이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개운포 만호영(부산시사 1권)
개운포 만호영은 원래 울산에 있었으나 임진란 이후 부산포로 이전하였는데 그 위치는 동구 좌천동 정공단 부근이었다.
*동해선 종착역인 태화강역 바로 앞의 역이 개운포역인데 한때 좌수영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울산시에서 새로이 성벽을 쌓는 등 대대적으로 홍보하 고 있음.
경상좌수영과 그 관할하의 각진(鎭) (부산시사 1권)
원래 좌수영은 동래부 감만이포 즉 지금의 남구 감만동에 있었는데 태종때 울산 개운포로 옮겼다가 다시 1592년(선조25년)에 동래 남촌(동래부 남촌면) 남구 수영동으로 옮겼다.
그 후 1635년(인조13년) 수영천의 수로가 매몰되어 뱃길이 통하지 않게 되자 다시 감만이포로 옮겼으나 이곳은 왜관과 마주보는 가까운 곳이라 군사상 기밀 누설의 우려가 있어 1652년(효종3년) 다시 수영으로 옮겼다. (수영유사水營遺事에도 같은 내용)
첫댓글 석전님, 고향의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여 소개해주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