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광승(狂僧)
댕댕댕-
삼경을 울리는 종소리가 멀리서 밤의 적막을 가르며 소림의 장
경각 안으로 흘러들었다
그 소리와 함께 번을 서는 제자들이 교대를 하는 듯 잠시 짧은
술렁임이 일었다가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현 소림의 방장인 주해(周解)대사는 읽고있던 서책에서 잠시 눈
을 떼고 기지개를 켜듯 상체를 쭉 펴다 흠칫 몸을 굳혔다
서탁 위에 켜진 촛불의 밝음이 다 미치지 못하는 어둠 저쪽 한
자락에 흑의의 한 인영이 처음부터 그곳에 있은 듯이 석상처럼
서 있었다.
미동도 않고 호흡마저 죽인 그 모습이 마치 어둠의 일부인 듯
했다
"시주는 누구신가?"
차분한 목소리와는 달리 주해대사는 내심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소림의 한가운데를 소리 없이 스며든 수법도 놀랄 만 하지만 사
내의 무심한 기도가 측정을 불가능하게 했다
'선자불래 내자불선(善者不來 來者不善)이라... 아미타불!'
주해대사는 가슴속으로 불호를 읊조렸다
어둠과 동화 되에 암묵 속에 녹아있던 사내가 몸을 움직였다
"결례를 용서하소서!"
사내가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쓰고있던 복면도 벗었다
이십대 중반을 넘지 않은 영준한 얼굴이었다.
그 얼굴 어디에도 야음을 틈타 불의를 행할 기운은 찾을 수 없
었다.
그런 무리였다면 애초에 복면을 벗지도 않았을 것이다
긴장을 늦춘 주해대사의 얼굴에 온화한 표정이 되돌아왔다
"소생이 누구인지는 현재로는 밝힐 수가 없음을 양해해 주십시
오! 그 점에 대해서는 차후에 백배 사죄 하겠습니다. 지금은 단
지 대사님께 한가지 물음만을 드리겠습니다!"
온화한 주해대사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그래 무엇을 알고싶은가?"
잠시 머뭇거리던 청년이 결심한 듯 시선을 받아왔다.
"광승(狂僧)의 거처를 알고싶습니다"
"아미타불!"
주해대사가 못 볼 것을 본 듯이 눈을 감고 불호를 외며 염주를
굴렸다
"시주는 소림의 삼금(三禁)을 알고있는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중 제 일금(一禁)이 시주의 질문 속에 있네!"
청년이 긴 숨을 들이켰다.
주해대사는 그런 청년의 모습에서 꺽이지 않을 의지를 느꼈다
"내가 시주의 질문을 들은 것만으로도 사조들께는 씻을 수 없는
불경을 저지른 것이라네!"
"살아있는 자의 구제가 공덕의 우선이라 생각합니다만?"
"허어-"
주해대사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했다
"그래 시주의 질문이 어떤 구제를 할 수 있는가?"
"피를 흘리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피를 흘리게 되는걸 조금이라
도 막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한가지 구제가 아닐런지요?"
"글세!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더 많은 피를 부를 수 있지는
않을까?"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늘이 아닌 이상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
니까요. 하지만 있어야 할 것이 제 자리에 있지 않고 흘러가야
할 것이 막히고 쌓이게 된다면 혈겁의 윤회는 지속되지 않겠는
지요?"
주해대사의 눈빛이 흔들렸다
"혈겁의 윤회라... 아미타불!"
주해대사는 청년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았다
결코 사악하거나 음습한 얼굴은 아니었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이 정이 깊어서 한이 깊은 그런 유형의 청년이었다
어쩌면 사형인 광승의 모습과도 많이 닮았다
그 집요함과 치열함이 언뜻 언뜻 청년의 얼굴에서도 나타났다
'전생의 연(緣)이 있었던가?'
"구름이 머무는 곳에 백학이 둥지를 트는구나!"
서책에 눈을 돌린 주해대사가 책장을 넘기며 싯구를 읊었다.
'운학산(雲鶴山)!'
청년이 조용히 그 뜻을 음미하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청년이 사라지고 난 후 주해대사는 눈을 감고 염주를 두 손에
감아쥐었다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아미타불....!"
광승!
현 소림의 방장인 해(解)자 돌림의 주해대사와 같은 배분으로 법명은
광해(光解)였고 한때 주해대사의 사형이었다
그는 철저한 무공광으로 젊은 시절 불공시간도 빼먹고 무공에
몰두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급기야는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장경각을 쥐 쌀뒤주 드나들듯
이 숨어 드나들다 장로들의 원성을 샀고 금역에서 체벌을 당한
적도 많았다.
그래도 그의 무공에 대한 광적인 열기는 식어들지 않았고 지친
장로들도 왠만한 일이 아니고는 눈감아주는 지경이 되었다
어차피 소림이 불법(佛法)만을 구하는 일반 사찰은 아니었고 무
공을 배우러 온 많은 사람들과 속가 제자들로 인해 재정적인 기
반을 마련하니 그런 제자 하나쯤 있는 것도 별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의 발단은 매해 열리는 소림의 무술대회에서 였다
그 대회를 통해 선발된 소수의 사람만이 소림사 경내에서 정진
할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소림의 여러 제자들에게서 무공수련을 받은 각각의 훈도들이 대
결을 벌였다
그런데 그들 모두 광해에게서 훈련을 받은 훈도들에게 일초지적
도 되지 못했다.
그리고 광해의 훈도들이 쓰는 무공은 소림의 것과 기수식은 같
았지만 전개해 갈수록 판이하게 달랐다
놀람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고 다른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훈도들은 마치 사기를 당했다는 듯 노골적인 불평을 드러냈다.
즉시 원로회가 소집되었고 광해가 그들 앞에 불려 섰다
"자네의 무공은 어디서 연유한 것인가?"
한 원로대사의 젊잖은 물음이 던져졌다
"소림의 무학이외다 사숙조님!"
"네이놈! 누구를 기만하려 드느냐! 소림에는 그런 악독한 무학이
없거늘 어찌 그것이 소림의 무학이라 하느냐?"
금새 젊잖은 목소리가 노기 충천한 목소리로 바뀌었다
"제자 소림에 몸담은 후 단 한번이라도 소림의 담장밖을 나간적
이 있던가요?"
광해의 침착한 대답에 좌중이 술렁거렸다
"그렇다면 소림의 무학을 토대로 네 스스로 그런 악독한 수법을
개발했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네놈이 감이 이단을 저지르고도 살아 남을 생각이더냐?"
하얗게 탈색된 수염과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무학이란게 뭔지요?"
광해가 반문했다
"이놈이! 지금 네가 나를 능멸하러 드는 것이냐?"
"그럴 리 있겠습니까? 사숙조님! 달마 조사께서 처음 소림무학
을 창안하실 때는 여러 스님들의 오랜 수행 끝에 굳어진 몸과
약해진 기를 북돋우기 위한 공수(空手)체조가 아니었던가요?"
"그건 새삼스럽게 왜 묻는 것이냐?"
"그런 것이 점차로 무학으로 변형된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그렇다면 단순한 공수체조를 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는 탄지신
공이나 백보나한권, 백팔나한진 등으로 변형시킨 소림의 역사는
지탄받아 마땅한 것이 되지 않는가요?"
"아미타불!"
"어허 저-저런!"
할말을 잊은 원로대사들의 술렁임을 잠시 바라보던 광해의 음성
이 다시 이어졌다
"어떤 무학이던 궁극의 목적은 상대를 제압함이 아닙니까?"
아직까지 좌중은 진정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가장 단도직입적이고 가장 효과적인 공격법이 어떻게
이단이 되고 악독한 무학이 되는것입니까? 오히려 무고한 동도
들의 피를 한방울 이라도 덜 흘리게 하는 자비의 무학이지요"
"어허 그래도 이놈이!"
"장중하고 광오한 소림의 무학이라도 상대의 몸에 닿는 순간은
다른 어떤 무학이나 마찬가지로 똑 같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지요? 전 단지 그 불필요한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을 추구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악마의 무학이 아니더냐?"
"똑같은 결과인데 중간과정에서 단지 몇 가지 우아한 춤사위가
곁들여 진다고 그렇게 다르게 해석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그
건 잔혹한 결과를 화려한 과정을 통해서 희석시키기 위한 속임
수일 뿐입니다!"
"저놈을 당장 가두거라!"
그렇게 광해대사는 삼십대 중반의 나이에 금역에 가두어졌고 무
공의 폐지와 함께 오십 년의 면벽수련 이라는 형이 결정됐다
무공을 폐지시키기 직전에 그는 제지하고 있던 소림승들을 내치
고 금역을 천천히 걸어나왔다
놀란 소림승들이 막아섰지만 추풍낙엽이었다
십팔나한진 마저도 그의 단도직입적인 공격 앞에 채 진영도 갖
추기 전에 허물어졌다
만약 그가 손속에 정을 두지 않고 전력을 다하였다면 소림은 엄
청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어떤 무학을 쓰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
한 것이오! 그것을 구별하지 못한다면 언젠가 소림은 굴욕을 겪
을 것이오"
그는 쓰러진 소림승들을 무심히 바라보다 조사동을 향해 세번의
절을 하고 사라졌다
그후 이 사건은 소림의 삼금 중 제 일금을 차지하고 소림승 누
구도 그 말을 입밖에 내는 것조차 불경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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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ㅈㄷ
즐갑합니다~
즐,독. 감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