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19년 12월 28일
☞ 산행날씨: 맑은날씨에 생각보다 추움
☞ 산행거리: 도상거리 13.1km / 5시간 3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옛고개 삼거리-경주이공 묘-임도-351봉-안부-오운터널위-410봉-안부-404봉
무명봉-387봉-무명봉-무명봉-안부-무명봉-452봉-안부-월봉산-성안고개-518봉
갈림길-무명봉-묘지-임도-405.1봉-갈림길-임도-387봉-선황재-386봉-공주이공 묘
392봉-401.9봉-안부-무명봉-437봉-봉서사 갈림길-쉼터-금계산-안부-490봉
진산강공 묘-378봉-안부-382봉-379봉-마점고개-369.8봉-무명봉-성황당재
348봉-두산리배수지-큰두무재-414봉-430봉-417.4봉-405봉-안부-무명봉
433봉-NO60 송전탑-안부-562봉-천등산 갈림길-갈림길-무명봉-갈림길-백현고개
☞ 소 재 지: 경북 안동시 녹전면, 북후면, 서후면 / 영주시 평은면
며칠전 크리스마스날 산행을 하여 쉴까도 생각을 해봤지만 이젠 산에 가지 않으면 할게 별로없다.
이번주 일요일(29일)에는 비가 온다고 하여 영강(운달)지맥 마지막 구간도 혼자 갔다왔다.
토요일 낮에 오랫만에 가족끼리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막내 형이 감기로 인해 취소되는
바람에 가볍게 산에나 갔다와야 겠다고 생각하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내성(문수)지맥 한 구간을
하기로 하고 이른 아침에 베낭을 메고 집을 나서는데 날씨가 생각보다 차갑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06시 15분 동서울발 → 영주행 버스표
집을 나와 버스를 타고 선릉역에 도착하여 지하철 2호선 첫 차(05:47)를 타고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한다.
터미널에 도착하여 예매한 버스표를 받아서 플렛홈을 향한다
28인승 리무진 버스에 영주가는 손님이라곤 달랑 6명이다.
버스요금이 19.500원인데 리무진 버스 맨 뒷칸은 요금이 10% 정도 할인되어 17.600원이다
돈이 없어 걸어 다니는 산꾼이 뭔 돈이 있다고 19.500원짜리 표를 사나...
17.600원짜리 표를 사도 자리가 텅텅 비었는데 앞자리로 가서 느긋하게 영주로 향한다
오늘 버스기사는 나이가 꽤 들었는데 성질머리하고는 꼬라지가 지랄같은 넘이다
차가 출발하여 잠을 좀 자려고 실내 소등을 요구를 했는데 들은척도 안한다.
나 말고 다른 승객이 다시 요구를 해도 眼下無人이라 내가 불친절하다고 회사에
신고를 하겠다고 하니 그때서야 불을 끄긴 끝는데 그 이후로는 급브레이크에다
난폭운전을 하면서 꼬라지가 났는지 지랄발광을 한다
나이 처먹은 넘이 뭔 지랄인지...
약간 불안한 가운데 영주터미널 입구에 도착한다.
나이 쳐먹어 퇴직이 없마 남자 않은거 같은데 운전하는 꼬라지하고는...
저 차량번호를 적어 경기고속 민원실에 신고를 할까 하다가 측은지심이 들어 참는다
영주터미널(08:35)
터미널 안으로 가서 간식으로 먹을 두유와 빵 하나를 사서 베낭에 넣고 고향 영주로 귀촌하여
고치령 아래 좌석리에서 포도농장 하는 친구넘 불러서 예고개까지 태워 달라고 하려다가
지금 친구넘한테 갑질을 하면 다음에 또 빚을 갚아야 하기에 그냥 택시를 탄다
택시를 타고 20분만에 닭발요리가 유명한 예고개에 도착한다.
지난 9월 1일에 3구간을 마쳤으니 4여개월만에 다시 온 셈이다
그 당시에 계속 산행을 하여 내성(문수) 지맥을 마치려고 했으니 이 지역은 그 당시 송이
버섯이 많이나는 지역이라 주민들과 마찰과 오해를 받기 싫어서 겨울철인 지금에 왔다
예고개 삼거리 주변에는 닭발이 유명한 지 닭발집이 많이 보인다
자료를 찾아보니 20여년 전, 가뭄에 콩나듯이 흙길을 지나가던 트럭의 기사들을 상대로 길가
외딴 함석집에서 술 안주로 팔던 닭발이 맛있다고 소문이 퍼져 영주, 안동, 봉화에서 닭발을 먹으러
식도락가들이 일부러 이곳까지 찾아오자 한집 두집 닭발집이 생기면서 이제는 '닭발촌'을 이루고 있다.
예고개 삼거리(高峴:301m:09:00)
영주시 평은면 오운리와 안동시 녹전면 녹내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구5번 국도와
915번 지방도가 만나는 지점으로 서쪽으로는 안동과 대구방향 가는 길이고 동쪽
북쪽으로는 봉화, 태백 방향으로 가는 길이고 남쪽으로는 영주와 예천 가는 길인데
생각보다 교통량이 많고 안동과 영주 방향쪽에 휴게소와 식당들이 많이 보인다
높은 고개라 하여 고현(高峴)이라 하였으나 지금은 한자의 ‘높을 고(高)’자를 ‘옛 고(古)’자
뜻을 빌려 옛고개라 한다고 한다
예고개가 있는 오운리의 모습
오운이란 지명은 마을 주변에 오동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오동나무 오(梧)자에 이를 운(云)자를
써서 오운(梧云)이라 했다고 한다. 오운리는 예고개를 기준으로 남쪽은 오운1리이고 북쪽은 오운2리다
“오운1리는 예고개에서부터 내려가면서 연당마을, 평지동, 오동마을, 금곡동 등 4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80가구에 170여명이 산다”고 말했다. 오운1리 중심마을인 ‘오동(梧桐)마을’은 예전에
고사동(庫舍洞, 곳지말)이라 불렀는데 어감이 좋지 않아 2012년 마을총회에서 오동마을로 변경
결의함에 따라 2013년 영주시가 심의·의결하여 공식지명으로 사용하게 됐다고 한다.
금곡동은 마을 뒷산에서 금이 났다고 하여
금곡동(金谷洞)이라 하였고, 평지동은 평평한 지형이라
하여 평지동(平地洞)이 됐으며, 연당마을은 마을 앞에 연못이
있어 연당(蓮塘)이라 했다고 한다.
예고개 영주쪽에서 안동쪽으로 가는데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날씨는 생각보다 상당히 춥다
예고개 안동쪽 휴게소에서 산행을
시작하다(09:10)
휴게소옆 공터를 지나 절개지로
올라선다
갑자기 땅굴 속에서 성질머리 지랄같은 개쉬끼 한마리가
나와서 지랄발광을 헤대는지...
오늘은 아침부터 일진이 않 좋은지 버스기사와 개쉬끼까지
지랄같은 넘만 만나냐
능선으로 올라서니...
잡목의 저항은 심하나...
등로는 비교적 뚜렸하다
오늘 처음으로 선답자의 시그널을 만난다
능선 우측 아래에는 농장이 있는 사과밭이
보이고...
잠시 후 묘지로
내려선다
경주이공 묘(09:17)
호조참판을 지낸 경주이공 묘지가
보인다
호조참판(戶
묘지 윗쪽으로 올라서니...
철조망에 입산금지 경고문이 보인다
임도(09:20)
좌측의 연당마을과 예고개로 이어지는 임도가
있다
안부 좌측 아래에는 연당마을이 보인다
연당마을은 마을 앞에 연못이 있어 연당(蓮塘)이라 했다고
한다
임도를 지나...
좌측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철조망이 있는 능선을 따라서 올라간다
351봉(09:25)
이곳에서
급하게 90도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안부(320m:09:28)
영주시 평온면 오운리 연당마을 윗쪽에 있는
고개이다
오운터널 위(09:29)
이 능선 아래로 영주에서 안동으로 이어지는 새로 생긴
5번국도 오운터널이 지나는 곳이다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시원스레 달리는 차량들이 보이는데
이 도로로 인해 조금전의 들머리인
예고개(高峴)가 오운터널로 인해 진짜
예고개(古峴:옛날고개)로 바뀌어 한적한 고개가 되버렸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410봉(09:30)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진다
안부(09:33)
안부를 지나서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선다
아직 그리움을 찾지
못하셨나요?
오르막 능선에 올라 좌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404봉(09:36)
능선으로 올라서니 또다른 시그널을 만나는데 산에 오래
다니니 다들 시인이 된 모양이다
무명봉에 오른
다음에...
뚜렸한 능선길로 내려간다
무명봉(09:41)
다시 완만한 등로로
내려섰다가...
오르막길로 올라 가는데...좌측의 샛길을 버리고 직진의
능선으로 오른다
387봉(09:47)
387봉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니 조금전 임도파들이 다니는
등로를 다시 만난다
송이가 나는 지역인가보다...하얀 노끈이
보인다
다시 오르막길
무명봉(09:54)
송이 채취를 표시하는 노끈이 보이고 등로는
희미하다.
무명봉(10:02)
고도차이는 별로 없으나 잔봉들이 많아 오르 내림이
많다
안부(10:04)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오르막길에는 등로가
희미하고...
무명봉(10:09)
등로는 좌측으로
꺽어졌다가...
다시 오르막길로 올라
가는데...
갑자기 등로가
사라져버렸다
급경사의 오르막에서 춤추는 소나무(Dancing 松)를
만난다.
452봉(10:17)
다시 내리막길인데 2년전인가 비슬(밀양)지맥 첫 구간을
같이 걸었던 향수님의 시그널을 만난다
안부(10:19)
안부에서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오늘은 초반부터 가슴에
통증이 오면서 힘이든다
이른 새벽에 나오느라 배가 살짝 고파오기에 양지 바른
등로에서 가져온 감과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10:25~10:40)
다시 월봉산으로 향한
오르막길
죽고 못사는
사이?
능선에 올라서 묘지가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올라서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월봉산에
도착한다.
월봉산(月峰山:532.7m:10:48)
영주시 평은면 오운리와 강동리, 지곡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산불감시 초소와
눈에 덮힌 묘지가 보이고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이 달려
있으나 월봉산의 표시는 없다
산불감시초소 북서쪽으로는 영주시가지와 백두대간 능선의
소백산 자락이 아련히 보인다
예전에는 강동리 성안마을 윗쪽에 있다고 해서
‘성안산’이라 하였으나, 성안마을에
있는
광명사란 사찰 일주문 편액에 ‘월봉산 광명사’라 되어
있고 지도상에도 월봉산이라 표기됐다.
월봉산에서 바라본 미세먼지에 갇혀버린 영주시의
모습
겨울 편지 /
양광모
월봉산 정상의 선답자 시그널
이곳에서 오랫만에 나산적 두목님의 흔적을 만난다.
두목님! 지난주 지리산을 갔었는데 젊은 산적이 엄청난
속도로 크고 있더이다...진작에 나를 부두목으로 옹립했으면
그런 불상사가 없을 터인데...나 역시 이제 독립군으로 자리를 잡아 부렀소
월봉산에서 되돌아 내려와 묘지로 내려선다
파묘한 묘지를 지나고 능선으로 내려간다
계속되는 내리막길...가는 소나무 사이로 넓은 임도가 보인다
성안고개(10:55)
영주시 평은면 강동리 성안마을 남쪽에 있는 고개라 붙혀진 지명이다
성안마을은 전에 이곳에 성이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인데 차량이
다닐만큼의 넓은 임도인데 강동리 성안마을에서 지곡리로 내려가는 임도이다
임도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간다.
뭔 연유인지?
원님 행차라도 있으신가?
거적이 깔린 방화선 능선을 따라서 올라간다
518봉(10:58)
‘山’이라 써있는 지적도근점이 보인다
남동쪽으로 위천(보현)지맥 능선들이 아련히 보이고 묘지 아래로 내려선다
묘지 아래로 내려서니 다시 등로는 좁아지고...
등로 좌측 아래로는 성안고개에서 헤어진 넓은 임도가 보인다
갈림길(11:01)
뚜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진다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이 보인다
군교통호처럼 보이는 능선으로 내려선다.
다시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계속되는 내리막길
무명봉(11:03)
무명봉을 지나 좁은 길로 내려가니 묘지가 나온다
묘지(11:05)
묘지의 좌측으로 내려가니...
다시 넓은 등로가 나온다
우측에서 넓은 임도를 만나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임도(11:07)
조금전 성안고개에서 헤어진 임도를 다시 만난다
임도에서 다시 좌측 능선으로 향한다
낡고 빛바랜 준.희 선생의 시그널
405.1봉(11:10)
405.1봉 삼각점(△안동421 / 2004 복구)
405.1봉 아래 양지바른 곳에 묘지가 보인다
갈림길(11:12)
묘지가 나오고 시멘트 도로가 있는 고개가 나온다
임도(11:13)
임도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오른다
387봉(11:14)
387봉을 내려서니...지도상 선황재가 나온다
선황재(315m:11:15)
영주시 평은면 강동리와 오운리를 잇는 고개로 우측 아래에는 강동리 금계마을이 있다.
강동리(江東里)는 구릉성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들이 넓게 펼쳐져 있어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며 작은 하천이 마을을 감싸 흐르며 강성동, 동막동, 금계동 등을 병합하면서 강성과
동막의 이름을 따 강동리라 하였는데, 자연마을로는 강성, 점촌, 신촌, 성안, 왕머리마을 등이 있다.
강성마을은 내성천 가가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점촌마을은 강동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옹기점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신촌마을은 점촌 서북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며
성안마을은 전에 이곳에 성이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왕머리(王遊)마을은 고려 제 31대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안동으로 가는 길에 이곳에서
머물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선황재를 가로질러...
오르막으로 올라가니 편안한 임도가 나온다
386봉(11:20)
386봉 정상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니 처사 공주이공 묘지가 나온다
공주이공 묘(11:22)
편안한 능선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392봉(11:24)
편안한 능선을 따라서 가다가...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401.9봉(11:27)
다시 내리막길
무명봉을 내려서 안부로 향한다
안부(11:36)
영주시 평은면 강동리쪽의 골짜기는 희미한 등로가 보인다
뭣이 저리도 좋을까?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1:40)
내리막의 뚜렸한 능선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437봉(11:43)
서레야 박건석님은 봉서사 윗쪽에 있는 봉우리라 해서 봉서산이라 붙혀놨는데 믿음이 전혀
안간다
봉서사 갈림길(11:44)
좌측 아래쪽 400m 지점에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인 고운사의 말사인 봉서사가 있는
곳이다
봉서사 보광전(普光殿)...사진 펌
금계산 자락에 자리잡은 봉서사는 고운사의 말사인 비구니 사찰인데 봉서사의 사찰의 창건과 관련된
의상대사의 창건 설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하고 나서 신통력으로 한지에 봉황을 그려 하늘에 날리니 살아있는 봉황으로
변해 사찰이 들어설 네 곳에 앉았다...이 때 봉황은 안동시 서후면의 봉정사(鳳停寺), 북후면 옹천리의
봉서사(鳳棲寺), 북후면 석탑리의 영봉사(詠鳳寺),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의 명봉사(鳴鳳寺)에 나타났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 절의 이름에 ‘봉(鳳)’자가 들어가게 되었는데, 봉정사는 봉황이 멈춘 곳이어서 가장
큰 사찰이 되었고, 봉서사는 봉황이 잠시 쉬었던 곳이었으며, 영봉사는 봉황이 새끼를 치기 위해
엎드렸던 곳이며, 명봉사는 봉황이 울었던 곳이라 한다
보광전 내의 주불인 석가모니불
금계산 가는 길
쉼터(11:48)
지도상으로 보면 이 고개 아래로 중앙선 열차가 지나가는 송리원굴일게다
안부를 지나고...
잠시후에...
금계산 정상에 도착한다
금계산 정상에 있는 데크목 평상
금계산(金鷄山:507.1m:11:57)
영주시 평은면과 안동시 북후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유서깊은 고찰 봉서사를 품고 있다
명산에 비해 지명의 유래에 대한 자료는 없으나 평은면 강동리 금계마을과 관련이 있는 듯
하다
정상에는 헬기장과 이정표, 데크목 평상 몇개가 보이고 멋진 정상석도 있다.
정상석은 이곳이 고향인 강일호 경상북도 청년유도회장이 부담했고, 표지석의 글은
서예에 능한 전 안동시청 공무원 김오현씨가 썼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
금계마을은 옛날에 금광산이 있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하는데 마을 안쪽 가장 높은 곳에
불가사의한 느티나무가 있어 보는 사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느티나무는 틈도 없는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바위와 한 몸이 되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바위에는 '금계옥대 공이산좌(金鷄玉垈 公李山座)무자소춘(戊子小春)'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선답자의 산행기 자료를 보면 산 서쪽에 닭만한 금덩어리가 묻혔다는 전설이 있으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이곳에서 금점(金占)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인증샷
금계산에서 바라본 학가산과 조운산의 모습
다시 길을 나선다
안부(12:02)
좌측으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는데 금학사로 내려가는 길이다
490봉으로 올라간다
490봉(12:05)
우측으로는 불로봉과 마점마을로 이어지는 등로 삼거리가 나오며 맥길은 좌측 90도로
꺽어지는데 서래야 박건석님은 삼거리봉이라 코팅지를 걸어놨는데 이건 아니다 싶다
길은 아주좋다
진산강공 묘(12:08)
무명묘지 옆을 지난다
가느다란 소나무숲 사이를 계속 걸어간다
좌측으로 내려서는데 송이버섯이 많이 나올만한 곳인듯...
378봉(12:12)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간다
등로는 생각보다 아주좋다
나만큼이나 힘들게 살아가는 나무도 만난다
안부(12:16)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본 안동시 북후면소재지가 있는 옹천리의 모습
안동시 북후면에 있는 옹천리(瓮泉里)는 마을 북서쪽으로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마치 단지처럼 생겼다고 하여 옹전(瓮田)이라 하였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옥계천이
맑고 깨끗하여
옥천(玉川)이라고도 하였고, 마을에 물맛이 좋기로 이름난 샘이 있어 옹기
‘옹(瓮)’자와 샘 ‘천(泉)’자를
써서 옹천(瓮泉)이라 하였다
조선시대부터 교통의 중심지로서 안기도(安奇道) 찰방이 관할하는 옹천역(甕泉驛)이
있었으며,
지금도 중앙선이 지나는 옹천역(瓮泉驛)이 있다. 옹천역은 1941년 7월 1일
보통 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고, 1997년 12월 31일 역사를 신축하였다. 인근에 ‘기찻길 속으로’라는 공원이
있다
382봉(12:18)
안부로 내려선 다음에...
다시 완만한 오르막길
379봉(12:21)
살짝 우측으로 꺽어진다
이른 아침보다 날씨가 많이 풀렸는지 땀이 난다
날씨가 굉장히 춥다고 해서 옷을 잔뜩 껴입고 왔는데...
능선에서 살짝 우측으로 꺽어진다
내리막길에는 잣나무들이 보인다
마점고개(麻店峙:12:30)
안동시 북후면 두산리 마점마을과 굴암마을 사이에 있는 고개로 대마(大麻)를 많이
재배하여
저저미, 마점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주로 고추농사를 많이 짓고 있는 마을이며,
굴암(窟巖)은
구멍이 뚫린 바위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굴방, 굴방우골이라 한다
다시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369.8봉이 나온다
369.8봉(12:38)
고도를 낮추면서 큰두무재로 향한다
무명봉(12:40)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진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무명봉에서 살짝 우측으로 꺽어진다
우측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나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등로는 아주 좋다
성황당재(城隍堂峙:12:45)
성황당은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원추형으로 쌓아 놓은 돌무더기 형태로, 그 곁에는 보통
신목(神木)으로
신성시되는 나무 또는 장승이 세워져 있기도 하며 이곳을 지날 때는 그 위에 돌 세 개를 얹고
절을 세 번 한
다음 침을 세 번 뱉으면 재수가 좋다는 속신이 있다.
성황당은 성황신을 모신 신성한 장소로 이곳을 내왕하는 사람들은 으레 돌·나무·오색 천 등
무엇이든지
놓고 지나다녔으며, 성황당의 물건을 함부로 파거나 헐지 않는 금기가 지켜짐은 말할 나위가
없다.
성황당이 경계를 표시한다거나 또는 석전(石戰)에 대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도
있으나,
민간에서의 성황당은 종교적 의미가 농후하다. 다른 말로는 서낭당이라고도 한다.
성황당재 우측으로는 민가들이 간간히 보인다
348봉(12:50)
큰두무재로 내려가는 절개지라 북후면 두산리 배수지 물탱크쪽으로 내려간다
두산리 배수지(12:52)
두산배수지를 지나 큰두무재로 내려간다
큰두무재로 내려서면서 바라본 불로봉(不老峰:482m)의 모습
큰두무재(大杜舞峙:337m:12:53)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에 위치한 고개로 928번 지방도가 지나가며 옹천리에서 두산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예전에 안동과 봉화, 영주를 왕래할 때 주로 다녔던 고개로 조선시대 때
이 고개를 넘기 직전에 옹천역(瓮泉驛)이 있었는데 옹천역은
『세종실록지리지』에도 기록되어
있는 오래된 조선시대의 역원(驛院)이었다.
두모현은 『안동도회좌통지도』(안동)를 비롯하여 여러 옛 지도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또 『조선지지자료』에는 옹천동의 두무현(斗舞峴)이 한글 명칭 '드뭇제'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두모현, 두무현, 드뭇제 모두 지금의 명칭 큰두무재와 관련이 깊은 지명인데 다만 큰두무재에서
접두사 '큰-'을 붙인 것은 연이은 두 개의 고개 중 더 길고 높은 고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지명의 유래는 고개마루에 팥배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어서 바람이 부는 날이면 가지가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춤을 추는 듯하다고 붙여 진 이름인데, 또다른 설은 '풍수객인 두부촌이 춤을 춘
재(고개)'
라고해서 두무재(杜舞峙)라고 한다
큰두무재를 지나 임도로 올라선 다음에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져 능선으로 올라간다
시멘트 도로 직진으로 올라가면 체육시설이 보이지만 지금은 폐허로 변해 버렸다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가 거칠어 지다가...
이내 뚜렸한 등로를 만난다
414봉(13:04)
좌측으로 살짝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 가운데 묘지를 지나고...
묘지 옆에는 소나무 무덤도 보인다
430봉(13:10)
430봉에서 안부로 내려서는데 좌측에는 묘지가 보인다
능선에서...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진다
삼각점이 있는 417.4봉에 도착한다
맥길은 좌측으로 확 꺽어지는데 우측으로도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지도상으로 안동시 북후면 두산리 음지마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음지마는 두산리의 가장 큰 마을로 서향(西向)을 하고 있어서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는 곳이라 하여 음지마라
한다
417.4봉(13:20)
판독이 불가능한 417.4봉 삼각점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고...
다시 살짝 우측으로 꺽어진다
405봉(13:26)
우측으로 꺽어져 내리막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뒤돌아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417.4봉이 보인다
안부(13:28)
무명봉(13:30)
또 다른 무명봉이 나오고 사면길로 맥길을 이어간다
계속되는 오르막길...오늘은 오전부터 이상하게 컨디션이 안 좋은지 숨이차고 힘이 든다
그래도 명색이 정통 산꾼인데... 좌측의 사면길을 버리고 직진 능선으로 올라간다
오르막길에는 갑자기 산행속도가 확 떨어진다
433봉(13:45)
다시 급한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음지에는 간간히 잔설(殘雪)도 보인다
무명봉에 올라서 다음에...
편안한 능선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낙엽속의 잔설은 생각보다 미끄럽다
송전탑을 바라보면서 올라간다
NO60 송전탑(13:55)
송전탑에서 바라본 안동시 북후면 도촌리(道村里)의 모습
도촌리(道村里)는 자연 경관이 가히 도(道)를 닦을
만한 좋은 곳이라 하여 도촌(道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학가산과 더불어 안동의 진산이라는 천등산 동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도촌리는 『영가지(永嘉誌)』에 의하면
지금부터 약 500년 전 안동인(安東人)
권사빈(權士彬, 1449~1535)이 서후면(西後面) 송파(松坡)에서
이곳으로 이주하여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전한다. 또한,
『영가지』에는 도촌리가 도기촌(道岐村)으로
나오는데 “도기촌은 부에서 북쪽으로 30리 떨어져 있다.
좌랑 정약(鄭若)의 별서(別墅)가 있다.
생원 권사빈이 와서 살았다. 그의 둘째 아들
권벌(權橃)이 이곳에서 태어났고 맏아들 권의(權檥)가
눌러 살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찰방, 넷째 아들 권장(權檣)은
부제학을 지냈다. 이 가운데 둘째 권벌은 봉화로 옮겨 닭실파[酉谷派]를
이루고 넷째 권장은 예천 은풍에 옮겨 살았다. 권의의
둘째 아들 권심언(權審言)은 예천 맛질파[渚谷派]를
이루고 넷째 아들 권심사(權審思)가
감천파(甘泉派)를 이루었으며 권의의 맏아들 권심기(權審己)와
여섯째 아들 권심행(權審行)이 도촌을
지켜 지금까지 세거해 오고 있다. 서쪽으로는 불로봉(不老峰:482m) 너머로 영주시내도 아련히 보이고 북후면 도촌리 마을이
보인다 불로봉은 마을 아래 이름을 부룻골 또는 불로곡(不老谷)이라 부르는 마을에 조선 중기
때 조그마한
이 마을에
70세 이상의 장수 노인이 5명이나 생존하였다 하여 붙혀진 지명으로 그 뒤 이
마을에 살면 늙지
않는다 하여
불로곡이라 하였으며 또는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의 형상이 부루잎(상추)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부룻골이라고도
한다.
송전탑을 지나...
안부(14:00)
다시 급경사의 오르막길을 오른다
급경사의 능선에 올라서니 넓은 임도가 나오고 맥길은 우측으로 향한다
오늘은 중간에 간식을 먹은 탓인지 점심시간이 좀 늦었다
양지바른 곳에서 컵라면 하나로 점심을 해결하는데 겨울철 나홀로 산행시에는
갈아입을 옷 때문에 베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먹거리를 줄일 수 밖에 없다
점심시간(14:10~20)
貧寒한 산꾼의 점심메뉴
다시 길을 나선다
능선에서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송이버섯 채취지역인가보다
시야가 열리면서 조운산이 얼굴을 내민다
562봉(14:28)
뭔 짓거리야...먹었으면 뒷처리는 깔끔하게 해야지
천등산 갈림길(14:30)
좌측으로 가면 천년고찰 봉정사를 품고있는 천등산(天燈山:575.4m)이 있으나 왕복
2.4km정도의
거리라 범여의 소걸음(牛步)으로는 감히 엄두로 못내는 焉敢生心이라 입맛만 다시고 우측으로
내려선다
천등산 정상석...사진 펌
천등산(天燈山:575.4m)은 안동시 서후면과 북후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산 서쪽이 서후면
자품리이고 동쪽은 북후면 도촌리이며 안동시의 명산으로 꼽히는 산이다. 산세가 부드럽고
솔숲이 울창하며, 역사유적도 많다.
의상대사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인 능인이 수도했다는 천등굴, 신라 고찰인 개목사,
홍건적을 막기 위해서 만든 개목산성(開目山城),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 있는
봉정사, 가뭄이 심할 때 기우제를 지내던 용샘 등이 대표적이며,『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천등산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다. 천등굴과 관련이 있는 이름이다.
원래는 대망산(大望山)이라고 불렀는데, 능인대사가 바위굴에서 수도를 할 때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비추어 득도를 하게 되자, 산 이름을 천등산, 바위굴을 천등굴로 각각 고쳐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많이 나는 까닭은 천등산의 기운 때문이라면서 산 이름을 개목산으로, 동쪽에 있던 흥국사
절 이름을 개목사(開目寺)로 고쳐 부르게 한 뒤 소경이 나지 않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개목산 봉수(烽燧)에 대한 기록이 『세종실록지리지』를 비롯한 여러 옛 문헌에 자주 등장한다
봉정사 일주문 편액...사진 펌
안동(安東)을 흔히 부르는 말로 ‘우리나라 정신 문화의 수도’라고 하여 유교의
고장이라고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유교 못지않게 불교 문화가 살아있는 곳이 또한 안동이다
1999년 4월 21일 한국을 방문한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가장 한국적인 것이
보고싶다’
하여 방문한 곳이 봉정사와 안동 하회마을이었다.
천등산 자락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봉정사(鳳停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인 고운사의
말사로 2018년 6월에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란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절집이다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께서 창건하신 사찰로 천등산은
원래 대망산이라 불렀는데 능인대사가 젊었을때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고 있던 중 스님의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으므로 '천등산'이라
이름하고 그 굴을 '천등굴'이라 하였고, 그 뒤 더욱 수행을 하던 능인스님이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서 날리니 이곳에 와서 머물러 산문을 개산하고, '봉황이 머물렀다.'하여 봉황새
봉(鳳)자에
머무를 정(停)자를 따서 봉정사라 명명하였다.
그 뒤 6차례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국보 제15호인 극락전, 국보 제311호인 대웅전, 보물
제1614호
후불벽화, 보물 제1620호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보물 제 448호인 화엄강당, 보물
제449호인 고금당,
덕휘루, 무량해회, 삼성각 및 삼층석탑과 부속암자로 영산암과 지조암, 중암이 있으며 특히,
고려 태조와
공민왕께서 다녀가기도한 아름다운 사찰이다.
봉정사 암타불 설법도(보물 제1643호)
조선조 후기 아미타설법도상의 규범이 되며 또한 17세기와 다른 18세기 초반의 화풍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어 불교회화사의 중요한 자료이며, 1713년 도익(道益)스님 등이 조성한
아미타불화로서
본존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10대 보살과, 범천, 제석천, 10대 제자, 벽지불, 사천왕,
팔금강 등을 배치하였다.
다른 불화에 비해 본존(아미타불)의 비중을 작게함으로써 다수의 권속을 표현함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이면서도
답답하지 않는 화면을 구성하였으며 원만한 상호 묘사와 균형잡힌 신체묘사, 유려한 필치, 금니의
화문 등
동일한 화승(畵僧)이 제작한 1731년 수다사 영상회상도 및 삼장보살도와 유사한 특징을
보여준다
봉정사 극락전(鳳停寺 極樂殿:국보 제15호)...사진 펌
봉정사 극락전은 영주의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한국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로
건립 시기는 주심포식인 점에서 고려 중기로 보는 견해와 고려 말기로 추측하는 두 가지 견해가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4칸의 단층 맞배지붕, 주심포의 건물이다
극락전은 원래 대장전(大藏殿)이라고 불렀으나 뒤에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972년 보수공사때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지붕을 크게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담긴 상량문을 발견하였는데, 우리 전통
목조건물은 신축후 지붕을 크게 수리하기까지 통상적으로 100~150년이 지나야 하므로 건립연대를
1200년대 초로 추정할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기둥은 배흘림 형태이며, 처마 내밀기를 길게하기 위해 기둥위에 올린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건물 안쪽 가운데에는 불상을 모셔놓고 그 위로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화려한 닫집을 만들었으며, 또한 불상을 모신 불단의 옆면에는 고려 중기 도자기 무늬와 같은 덩굴무늬를
새겨 놓았고, 봉정사 극락전은 통일신라시대 건축양식을 본받고 있다.
우측으로 꺽어져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정신 나간 넘...춥지도 않니?
갈림길
뚜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진다
우측 아랫쪽은 상당한 절개지이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무명봉(14:40)
가느다란 소나무 사이 급경사로 내려서는데 가을철에 송이가 많이 나올 듯 싶다
갈림길(14:48)
무명봉을 넘어선다
무명봉 내려서면서 바라본 안동시 북후면 월전리의 모습
북후면에 있는 월전리(月田里)는 동산마에 있는 동산을 중심으로 반달처럼 생긴 계단식
밭이 있어 월전(月田, 일명 달밭)이라 하였는데 자연마을인 큰마(일명 대촌)는 임진왜란 때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이 머물렀다고 전해지며,
김학달(金鶴達)과 이여송(李如松)의
원군이 왔을 때 피난민이 모여 300가구 정도의 큰 마을을 이루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평(庫坪)은 비교적 넓은 들이 있는 곡창지대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오른쪽 낮은 능선을 따라 나무숲을 이루었던 곳을 쑷등모테, 왼쪽 양지쪽을 양지모테라
부른다.
고지절(일명 탑모테)은 고지사(高芝寺)란 절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거칠어진 등로로 내려서니 묘지가 나온다
묘지로 내려서면서 바라본 조운산의 모습
묘지 4기가 나란히 있다
묘지 아래로 내려서...
...
백현고개가 나오는데 오늘은 컨디션 저하로 인해 생각보다 산행거리를 줄이지 못했다.
원래 계획은 조운산을 지나 무시골재 새터마을로 갈 계획이었는데 지금의 컨디션으론
역부족이라 좀 이른 시간이지만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기로 한다.
산악회를 따라 왔더라면 귀경하는 교통편이 문제가 되지 않아 가보겠지만 나홀로 산행이라
무리일 것 같아 이곳에서 미련없이 스틱을 접는다
백현고개(374m:14:50)
안동시 서후면 재품리 백현마을과 북후면 월전리 고지절 마을 경계에 있는 고개로
928번 지방도가 지나가는데 주위에는 과수원이 많이 보이고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있으나 교통량의 거의 없는 편이다
예전에는 자품리로 불리웠으나 2017년부터 재품리(才品里)로 지명이 바뀌었으며
지명의 유래는 고개 좌측 아래에 있는 재품리 백현마을에서
따온 듯 하다
서후면 재품리에 있는 백현마을은 북쪽에 흰 운모석이 나는
광산이 있는데, 운모를 실어
나르다가 흘려서 고개가 흰색으로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개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지나가는 차량을 상대로 앵벌이를
하려고 10분이상을 기다려도
차량은 커녕 개미새끼 한마리 지나가지 않는 한적한 고개라
부득히 옹천택시를 호출한다
옹천정류소(15:30)
옹천택시(054-859-5657)는 10분만에 도착하고
택시를 타고 10분정도 달려 옹천정류소에 도착한다
옹천 정류소에서는 영주와 안동을 잇는 직행버스표만 파는데
안동역 터미널까지 요금은 3.500원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요금은 1.200원이고
안동역까지 시간은 25분정도 걸린다
직행버스는 안동터미널로 바로 가지만 시내버스는 터미널이
아닌 역으로 향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안동도 서울처럼 버스 환승이 가능하여 시내버스가
요금이 훨씬 저렴하다
마침 옹천정류소 앞에 354번 시내버스가 가려고 시동을 걸고있어 서둘러 버스에 오른다
옹천정류소 앞에서 나혼자 버스를 전세(?)내어 안동시내까지 들어와 안동역 직전에 있는
교보생명 앞에서 기사가 내리라고 한다...이곳이 354번 버스 종점이란다(15:48)
참고로 이곳에서 옹천까지 가는 첫 차는 05시 50분이란다.
안동 교보생명 앞에서 내려 신호등을 건너 맞은편에서 11번 버스를 갈아타고 안동 터미널로
향한다
안동터미널(16:05)
안동터미널에 도착하니 성남으로 가는 버스가 출발하기 5분전이다
표를 예매하고 서둘러 화장실에 들렸다가 버스에 오른다
안동발 → 성남행 버스표
버스표를 예매하고 서둘러 버스에 올라 19시 10분에 성남에 도착하여 해를 넘기기 전에
밥을 한번 꼭 먹어야 할 친구들과 연락을 하여 번개 모임으로 회식을 하고 집으로
향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기도
마지막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아쉬운 시간,
저 멀리 지나가버린 기억
차곡차곡 쌓아 튼튼한
나이테를 만들게 하십시오!
한 해를 보내며
후회가 더 많이 있을
테지만
우리는 다가올 시간이
희망으로 있기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하십시오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감사와 안부를 띄우는
기도를 하게 하십시오!
욕심을 채우려 발버둥 쳤던
지나온 시간을 반성하며
잘못을 아는 시간이
너무 늦어 아픔이지만,
아직 늦지 않았음을
기억하게 하십시오~
작은 것에 행복할 줄 아는
우리 가슴마다
웃음 가득하게 하시고
허황된 꿈을 접어
겸허한 우리가 되게
하십시오!
맑은 눈을 가지고
새해에 세운 계획을
헛되게 보내지 않게
하시고,
우리 모두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모두가 원(願) 하는
그런 복(福)을 가슴마다
가득하게 하시고,
빛나는 눈으로
밝은 세상(世上)으로
걷게 하십시오
이해인 수녀님의
詩
올 한해 55번째의 지맥과 20여 차례의
일반 산행, 그리고 나의 건강 상태를 무시하고
옛날의 범여로 생각하고 3월말에 겁없이
떠난 8일간의 메리설산의 深雪산행에서
고산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나홀로 맥길을 걸으면서 아름다운 야생화에
참으로 황홀했고, 멧돼지와 뱀...그들과
담담하게
맞부딪치면서도 그들의 순수함에 반한게
맥길이었다.
흔히들 주변에서 나를 걱정하면서 혼자
다니면 뫳돼지가 무섭지 않는냐고 하는데 걔내들은
참으로 착하고 순수하다...나홀로 산행시
산에서 가장 무서운 건 갑자기 만나는 인간들이다.
己亥年 마지막 산행을 마쳤고 내년에도
여전히 범여의 발길은 맥길로 향할 것이다.
쥔장 잘못만나 범여의 두 다리(足)에
감사하고 고맙고 미안하다는 감정을 가지며...
부탁이 있다
첫눈처럼
찾아와다오
그리움으로 몇 번이고 하늘 바라볼
때
문득 내
가슴에 살포시 내려앉아다오
부탁이
있다
첫눈처럼은
오지 말아다오
닿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져
찾아온 듯
아닌 듯 애태우지는 말아다오
부탁이
있다
첫눈처럼도
아닌 척 찾아와다오
내 한 번도 본 적 없는 큰
눈으로
무섭게
무섭게 폭설로 쏟아져다오
부탁이
있다
첫눈처럼이
아니라도 찾아와다오
봄날에야 내리는 마지막
눈처럼이라도
한
번은 약속이었다는 듯이 내 가슴에 다녀가 다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두모현(豆毛峴)은 부의 북쪽 35리에 있다."라는 기사가 나온다.
권사빈의
네 아들은 모두 출중하여 맏아들 권의는 현감, 둘째 아들 권벌은 우찬성, 셋째 아들 권예(權欚)는
천등산은 개목산(開目山)으로도 부르는데 조선 초기 명재상 맹사성(孟思誠)이 안동에 소경이
첫댓글 올한해 생명의
걸음이었습니다ㆍ멧선생이 순수의 모습이라시면 득도 하신겁니다ㅎ 새해 복마이 받으십시요^^♡
득도라...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