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대하여
장인 정신이 살아있는 단단한 시인
김병수는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일생 공무원으로 봉사해 온 시인이다. 이런 분이 첫 시집에 이어 두 번째 시집을 내었다. 특히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두 번째 시집을 계기로 시단에 당당히 인정받고자 하는 장인匠人 정신이다. 장인 정신은 자기 작품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고 떳떳하다는 자부심과 튼실함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의 시를 읽으면 ‘볼펜 똥을 밥 삼으며/ 안광으로 블랙홀을 뚫어'(「돼지꿈」)의 가난함 속에서 아픔을 딛고 일어난 눈물겨운 감동이 있고 ‘용궁의 와불이다/ 두 손에 두 눈 가지런 모은/ 번뇌는 한 획의 물결조차 없다.’라는 「광어」에서 사물을 보는 신선함이 묻어나며 ‘극락이 따로 없다/ 흰 구름 위/ 가부좌 튼 큰 바위 하나’ 「백운대」의 사물에 대한 정확한 묘사 능력, 또 「동백」에서 보이는 ‘꽃이 피어서만 봄이더냐/ 죽어서도 봄이다/ 장렬한 죽음이야말로 진짜 봄이다’라는 편향되지 않은 다양성 등이 김병수 시인이 가진 시적 능력을 십분 나타내고 있음의 징표다. 뿐만 아니다. 시 「2022. 5.10」의 한 구절처럼 ‘잔도 없는 한잔 술에 지화자니/ 소생하던 민주주의 허리 숨을 쏟는다/ 그래도 아서라/ 허튼 꿈이라도 꿀 수 있는 땅이 민주주의가 아니런가’처럼 시집 전편에 간간히 보이는 시인의 사회를 보는 날카로운 시각도 장인 정신이 살아있는 기개와 시를 읽는 재미를 충분히 돋울 것이라 믿는다. ― 강우식 시인. 전 성균관대학교 시학교수
김병수 시인의 시편들은 대부분 짧은 잠언箴言과 경구警句, epigram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시인의 시적 영역이 풍자시에 속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다양한 시편들에서 시인은 핵심을 찌르는 경구로 한 개인과 사회가 지닌 부조리한 국면을 드러내거나 혹은 정서적 동인의 정곡으로 파고들어 깊은 울림과 감동을 자아내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미학을 실현하고 있다. 군더더기 없는 생략과 비약, 그리고 인간의 생리와 사회의 속성에 대해 근원적인 곳으로 파고 들어가는 통찰력 등이 빛을 발하고 있다. 물론 이 시집의 곳곳에 서정적인 시편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풍자와 비판의 본질이 지적인 영역의 것이어서 기본적으로 기지機智와 위트wit가 발휘되는 곳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김병수 시학의 본질적 영역과는 거리가 있다. ― 황치복 문학평론가
탄소가 아니다/ 문제는 욕망의 온난화다/ 허나 밥상머리 훈육은 죽었고/ 수능서 쫓겨 난지도 오래/ 나는 오늘도 TV 자율학습을 나선다.// 채널의 강마다 사이렌이다/ 미어터지는 군침/ 눈동자 잡아 빼는 물욕/ 허영의 알코올 허기에/ 은밀한 색정의 도발을 견뎌내야 한다.// 학습은 인내만이 아니다/ 종강은 아홉시 뉴스/ 유혹을 못 이겨 얼굴에 똥칠하는/ 검찰청 포토라인/ 현장중계 생방을 목도해야한다.// TV는 바보상자가 아니다/ 판도라의 시대/ 패가망신을 떨치고/ 용케나마 가여운 팔자 부지케 하는/ 지상 최고의 학교다. ―「TV는 바보상자가 아니다」 전문
근대문명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는 텔레비전이라는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통해서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집어내고 있다. “욕망의 온난화”라는 표현이 함축하고 있듯이 텔레비전은 현대인들에게 온갖 욕망을 자극하는 기제로서 작동하고 있다. “미어터지는 군침/ 눈동자 잡아 빼는 물욕/ 허영의 알코올 허기에/ 은밀한 색정의 도발”이라는 표현이 바로 텔레비전이 시청자들에게 자극하는 욕망의 물목들인데, 식욕을 통한 소비의 조장, 화폐의 증식에 대한 욕망, 그리고 과시 소비 등의 허영심의 자극, 성적 욕망의 도발 등이 그 내용물이다. 또한 텔레비전은 그러한 욕망의 과도한 발현이 야기하는 재앙적인 모습을 생중계함으로써 반면교사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이행하는데, 시인은 이러한 텔레비전의 유혹과 그 파멸적 결과가 “판도라의 시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백신과 같은 역할로 작동할 수 있다며 그 효과를 조롱하듯이 칭찬한다. “패가망신을 떨치고/ 용케나마 가여운 팔자 부지케 하는/ 지상 최고의 학교다.”라는 진술 속에는 병 주고 약 주는 텔레비전의 아이러니한 모습이 포착되어 있는데, 이러한 이중성은 현대사회가 얼마나 모순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는지를 함축적으로 표상해준다. 구조적인 모순 가운데 시인이 직접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권력의 문제이다.
난중의 난/ 열정 밑천마저 동이 난 시대/ 꿀 단지 취업 장에/ 핏줄 땅줄에 가오리 연줄까지 똥줄이 타니// 썼다 찢었다 추천장사에/ 못 먹을 바에는 광을 파니 마니/ 이기는 게 내 편이다/ 제비집 뜯어오고 뜯어가기 혈안이니// 또다시 신물 나는 윤회에/ 속이 쓰린 유권자/ 해 드시더라도 구토 안 날 만큼만/ 기표지에 엎드려 큰절이다. ―「지방선거」 전문
욕망 가운데 물욕만큼이나 큰 것이 권력욕일 터인데, 권력의 근원이 인민에 있다는 생각을 망각하고 그것을 장사하듯이 거래하는 현실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바로 권력의 원천에 대한 생각을 망각하고 모두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광적인 열정을 보이는 상태를 묘사하고 있거니와 “난중의 난”이라는 표현이 그 발광하는 모습을 예리하고 암시한다. 어지러움 가운데 가장 어지러운 것이 “지방선거”라는 것인데, 그것이 그처럼 어지러운 것은 “제비집 뜯어오고 뜯어가기 혈안이니”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먹이감을 둘러싼 쟁탈전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니까 풀뿌리 민주주의의 초석으로서 지방 주민들의 자치를 실현하기 위한 지방선거가 지방 주민들의 바람과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기득권자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실현하기 위한 거래소처럼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꿀단지 취업 장”이라든가 “추천장사”라는 말들이 민중의 대리인을 뽑는 선거가 아니라 경제적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이는 시장으로 전락한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시인이 보기에 선거라는 권력 분배의 제도가 민의를 왜곡하고 기득권자들의 이윤을 추구하는 장으로 변질되었다면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법정 역시 다음 시에서처럼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다.
눈은 노예다/ 소나가 타전하는/ 디케의 치마 속/ 법정은 막장 드라마였다.// 권력은 포상휴가 중/ 물정모른 족속이 또 하나 짤렸군/ 허나 사인은 늘 자살/ 대리인만이 각본을 만지작거렸다.// 증인은 포승 없는 포로/ 이마에 새겨진 밥줄의 생존법/ 밑줄 쫙 그으며/ 핏방울 떡고물 입맛을 다셨다.// 판관은 안대가 두려웠나/ 23.5도 기운 실눈으로/ 노회하게 모범답안을 썼다/ 권력은 무죄다// 원고는 웃음으로 울었다/ 생매장 진실이 슬퍼/ 인간이 가여워/ 판결문 골마다 눈물이 흘렀다. ―「행정법원」 전문
잘 알려져 있듯이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와 테미스의 딸인 정의의 여신 디케(Dike)는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손에는 칼을 거머쥐고 있는 조각상으로 표현된다. 디케의 눈을 가렸다는 것은 만인에게 공정하고 선입견이 없음을 뜻하고, 그녀가 든 저울은 형평성을, 그리고 칼은 정의 실현을 상징하는 것으로, 어떤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는다는 불변의 가치를 의미한다. 법의 상징으로서 대법원 앞에 설치되어 있는 디케의 조각상은 우리 사회가 법에 기대하고 바라는 가치를 함축하고 있는데, 이 시에서 시인은 그러한 가치의 표상인 “법원은 막장 드라마였다”라고 하면서 전도된 법정의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디케의 치마 속”이라는 표현 역시 법정은 부끄러움으로 난무하는 장소라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으며, “권력은 포상휴가 중”이라거나 “핏방울 떡고물 입맛을 다셨다”는 표현들이 왜곡된 사법 정의의 현실을 고발한다. 결국 “판관은 안대가 두려웠나/ 23.5도 기운 실눈으로/ 노회하게 모범답안을 썼다/ 권력은 무죄다”라는 표현 속에 저간의 사정이 요약되어 있는데, 만인에게 공정하고 선입견이 없이 판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안대”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지구의 기울기인 23.5로 기울어 진 현실을 반영한 판결이 횡행하며, 권력의 입맛에 맞는 선고가 모범답안이 되는 법정의 현실이 정의의 여신이 목도하고 있는 광경인 것이다. 욕망을 부추기며 그 파멸적 결과를 경고하는 텔레비전이나 이윤추구의 장으로 전락한 지방선거, 그리고 권력의 입김에 의해 좌우되는 법정의 현실 등의 사회는 총체적 난국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사회는 곧 기적이 일반화된 사회이기도 하다.
동백은 지지 않는다.
보이지 않느냐
엄동에 부릅뜬 눈동자
겨울을 떨치는 외로운 투신이다.
벚꽃은 지지 않는다.
들리지 않느냐
대지를 울리는 아우성
새 봄 외치는 척후의 나팔이다.
꽃 진다 말하지 마라.
세상에 지는 꽃은 없다
죽어 다시 피어나는 몸부림이
진정 꽃이다. ―「세상에 지는 꽃은 없다」 전문
시인이 “동백은 지지 않는다”라고 하거나 “벚꽃은 지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결국 “세상에 지는 꽃은 없다”라고 진술할 수 있는 것은 동백이나 벚꽃이 바람과 같은 외부의 힘에 의해 몰락하면서 마음이 꺾이거나 좌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엄동에 부릅뜬 눈동자”라든가 “대지를 울리는 아우성”이라는 표현에 주목해 보면, 동백이나 벚꽃은 의지적 존재로 그려져 있는데, 이러한 구도로 인해서 그들의 낙화는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니까 동백이라든가 벚꽃 등의 세상의 꽃들은 자발적인 낙화를 통해서 세월의 흐름에 순응하면서 자연의 이법과 섭리를 실현하는 과정에 동참하는 셈이다. 결국 자신의 삶이 짊어져야 할 운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그것을 의지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운명애적 삶, 곧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이러한 삶에 대해서 “겨울을 떨치는 외로운 투신이다”라고 하거나 “새 봄 외치는 척후의 나팔이다”라고 하면서 주체적인 삶이 실현하는 생명성의 고양을 암시한다. 그리고 “죽어 다시 피어나는 몸부림이/ 진정 꽃이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욕망과 집착을 벗어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온전한 본성을 실현하는 삶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시인의 문명비판과 사회비판, 그리고 세속적 인간의 속물적 삶에 대한 비판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지점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 김병수 시집 『세상에 지는 꽃은 없다』, 도서출판 지혜, 값 10,000원 저자 소개
김 병 수
김병수 시인(1962년 생)은 충남 논산 출신으로 강경상고, 성균관대와 암스테르담대에서 공부했다. 행정고시 30회 출신으로 정보통신부, 지식경제부, 국무총리실에서 30년 근무하였다. 2020년 계간 『계간문예』로 등단하였고, 현재 Passion · Open · Strategy · Try를 핵심가치로 하는 《라이브 POST 경영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김병수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인 『똥밭길 먼 새벽을 걷는다』에 이어서 그의 두 번째 시집인 『세상에 지는 꽃은 없다』는 우리사회와 현대문명에 대한 현상학이자 해부학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풍자와 해학을 통하여 깊은 울림과 감동을 자아내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이메일 kbsrokk@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