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아 왜 도망가
장맛비 오는 오후에는 책을 읽는다.
최근 ‘피천득’의 ‘인연’(이년이 아니다)을 읽어 그 마지막 부분을 가져왔다.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꼬(朝子)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마치 느티나무 가로수에 내리는 장맛비를 내다보며 듣는 임영웅의 ‘사랑은 늘 도망가’를 듣는 듯하다.
수필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Thema essay이고 다른 하나는 Miscellany이다. 사람에 따라서 중수필과 경수필로 분류하기도 한다.
Thema essay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고 객관적이고 Miscellany는 고백적이고 개성적이며 주관적이다. 털실로 짠 스웨터 끝이 풀린 줄 모르고 가는 서정의 꼭지들이다.
위의 피천득 선생은 Miscellany의 대가이시다.
당신도 세 번째는 만나지 말았어야 좋았을 그런 사람 하나 두었을 것이다.
반면 Thema essays는 썩 마음에 빨래집개를 물리는 글은 아니다. 맷돌을 돌려 콩을 가는 것 같은 지루함이 상존하는 글이다. 내가 좋아하는 유시민 씨가 가장 뛰어난 수필이라 극찬한 Henry David Thoreau의 월든(Welden)을 읽었을 때 나는 그리 큰 감흥을 얻지 못하였다.
그것이 Thema essay인 까닭에 지인을 문상가는 고속버스에서 읽는 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법정 스님, 마하트마 간디, 윌리엄 셰익스피어, 레오 톨스토이 거기다 내 좋아하는 로버트 프로스트까지 그토록 흠모한 사상에 내가 설익은 까닭이다.
거기에는 걷는 것이야 말로 산 자의 특권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환경운동, 시민불복종 운동이 썩 재미가 있는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삶도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재미가 좀 덜한 삶이 더 이윤을 남기는 삶인지도 모른다.
요즘 Miscellany들은 너무 디지털을 표방하여서 수필인지 소설인지 아리송할 때가 있다, 그러나
수필은 없고 소설에는 인위적 갈등이 있다. 공연한 갈등을 제가 만들에 제가 푸는 것이 바로 소설이다.
비오는 날은 창밖을 내다보며 ‘월든’을 읽어보자.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