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hua Channelings
질병과 건강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여러분을 반갑게 맞이하며, 여러분 모두에게 내 사랑을 전합니다. 나는 진정으로 여러분 모두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 대한 내 사랑은 사실 보편적인 것이며, 또한 개인적인 손길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여러분들 가운데 지구에서 살았을 때부터,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예수아입니다. 나는 지구에서 예수로 살았으며, 우리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근원으로부터 우리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 사람들 가운데 살았습니다. 이 횃불을 이제 여러분이 이어받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씨앗들이며, 오늘날 꽃으로 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한때 지구에 살았던 한 인간으로서, 나는 다시 지구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보편적인 그리스도라는 에너지의 힘이 이제 여러분의 내면에서 태어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여러분과 함께 함으로써, 이러한 과정을 지원할 수 있게 되어 대단히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모임을 시작할 때, 파멜라와 게릿은 내가 오늘 어떤 주제들을 이야기할 것인지에 대해 물어보았으며, 나는 “그것은 중요치 않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단지 그들과 함께 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다시 말해, 단지 여러분과 접촉하여, 여러분이 위대하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고 싶을 뿐입니다. 내 에너지를 여러분에게까지 확장하는 이유는 오로지 여러분이 명료함의 화염, 즉 여러분의 진리의 화염을 느끼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에너지가 지니고 있는 본질입니다.
이 화염을 이전에는 내가 지녔었지만, 이제는 여러분이 이 횃불을 지녀할 때입니다. 내면에 존재하는 참된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이 횃불을 지니고, 세상 사람들에게 이 횃불을 보여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이 이 횃불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변형의 시기, 즉 어둠과 빛 모두의 얼굴들이 드러나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입니다. 지금은 폭넓은 식견을 지니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 상태에서, 어둠과 빛을 나타내고 있는 모든 것들을 지켜보면서도, 판단하지 않고 사랑 속에 존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나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오늘 나는 질병과 건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기억해두세요: 기본적으로 내 관심사는 내가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느끼고, 여러분은 나와 동등하며, 나 역시도 여러분과 동등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느끼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이며, 우리는 특별한 빛의 에너지를 운반하고 있으며, 여러 생에 걸쳐 오랫동안 이 에너지를 접지시켜, 지구에 뿌리내리도록 하는 일을 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해야 하는 일이며, 여러분의 사명입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우러러보는 존재로서의 나를 내려놓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형제이고, 친구이지, 여러분이 따라야 하는 마스터가 아닙니다. 나는 사랑과 진리의 에너지로 여러분을 에워싸고자 합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이제는 여러분 스스로가 일어나, 자기의 횃불이 지닌 빛을 비추어야 할 차례입니다.
질병과 건강 - 이것은 머지않아 모든 사람들의 삶 속에 당면하게 되는 주제입니다. 먼저 질병이 실제로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모든 질병은 영적인 근원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서로 다른 몸들을 구별함으로써, 이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볼 수 있는 육체 외에도, 여러분은 감정체, 정신체 그리고 영체(靈體:spiritual body)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지니고 있습니다.
질병은 주로 감정체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여기에서부터 어떠한 장애들이 물질 차원의 육체 속에 자리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대개는 정신체로부터의 믿음들이 감정적인 장애들을 커지게 함으로써, 질병으로 나타나게 하는데 한몫을 하게 됩니다.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몸에 깊이 배어 있는 믿음들 혹은 사고의 습관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대개 이러한 믿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에 관한 것들입니다.
글자 그대로, 판단을 하는 것은 감정 에너지 시스템에 장애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장애가 생기는 부위들, 즉 감정의 에너지들이 자유롭게 흐르지 못하는 곳의 오라 속에서 어둠의 에너지를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에너지는 몸속에 터를 잡게 될 수도 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과정은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되며, 질병으로 나타나기 전에, 모든 것들이 감정적으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바뀔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에너지가 제대로 흐르지 못할 때, 감정들은 이러한 사실, 즉 에너지가 원활하게 흐르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알려주게 되며, 이 메시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존중해주게 되면, 장애는 곧 해소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특정한 일을 해야 할 때마다, 속이 상하거나, 화를 낼 수도 있으며, 만약 이러한 감정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분이 참된 자신 및 자신이 되고자 하는 존재와 맞지 않는 것을 자기 자신에게 행하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것을 이러한 감정들이 말해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분노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느낌이 좋지 않은 것을 정말로 자신에게 강요한다면, 감정은 말하자면 지하로 숨게 됩니다. 감정은 여러분의 의식에서 사라지게 되고, 여러분의 육체를 통해 자기 자신을 표현하게 됩니다. 억눌린 감정은 여러분이 들어주기를 바라는 에너지입니다. 몸을 통해 자기 자신을 표현할 때, 감정은 육체적인 통증으로 표현하게 될 것입니다.
대개 육체적인 통증이나 질병은 주로 여러분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내면의 감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증상을 통해, 여러분은 또 다른 측면에서 감정을 볼 수 있게 되며, 이런 식으로 감정은 장애와 접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육체적인 증상이나 아픔은 영혼의 언어인 것입니다. 영혼은 자신의 모든 부분들 간에 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영혼은 에너지가 자유롭게 흐르고, 자신의 모든 측면들이 지속적으로 새로워질 때,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장애들은 에너지가 자유롭게 흐르는 것을 방해하게 되며, 또한 영혼의 힘을 약화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질병은 표시기(신호)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질병은 치유가 필요한 곳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온갖 증상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의미에서, 여러분에게는 질병이 부정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열쇠는 질병을 메시지 혹은 이정표로 인식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질병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과 협력하는 것이 더 쉬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은 여러분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많은 방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혼이 선호하는 방법은 직관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말 없는 느낌, 예감, 가슴의 부드러운 속삭임 등. 이런 방법으로 여러분과 접촉할 수 없다면, 감정은 여러분을 긴장하도록 만들 것입니다. 감정은 큰 소리로 말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고, 무엇이 그러한 감정적인 반응을 촉발시키는지 찾아낼 수 있도록, 감정은 확실하게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감정적으로 강한 영향을 받게 될 때마다, 감정이 일어나는 이유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찾아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인다면, 영혼은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에 저항하거나, 부정하게 된다면, 영혼은 여러분의 몸을 통해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몸도 지능(知能)을 지니고 있으며, 여러분이 흡수하는 물질, 즉 음식과 음료수뿐만 아니라, 감정, 느낌 그리고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생각들에 아주 잘 반응하게 됩니다. 몸은 의사소통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몸은 거주하기 위한, 단순한 용기(容器)가 아닙니다. 몸은 영혼이 자기 자신을 물질로 표현하고, 자기 자신을 알 수 있도록 돕는, 지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감정이 육체를 통해 질병으로 표현될 때, 어떻게 해야 영혼의 언어를 이해할 수가 있을까요? 질병이 나타날 때, 그 질병이 여러분에게 무슨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지 명확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사실, 영혼이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표현해온 감정을 여러분이 부정해왔기 때문에, 정의상, 질병이 무엇을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는지가 명확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질병이 지니고 있는 영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목적을 달성해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점차적으로 의사소통의 과정을 회복해가는 내적인 여정이며, 탐구입니다.
이러한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 먼저 여러분의 질병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질병에 대한 반응은 대개 부정하거나, 아니면 저항하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질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여러분은 가능한 빨리 질병이 사라지게 되기를 바라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실패, 몰락, 불완전함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육체적인 결함이나, 질병에 접하게 되었을 때, 자신을 사로잡는 공포로 인해, 보다 넓은 시각으로 질병을 바라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질병을 또 다른 관점에서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질병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메신저로, 즉 잃어버렸던 귀중한 것으로 돌아오도록 초대하는 메신저로 인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질병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이정표적인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분의 몸을 통해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증상들과 고통에 대해 “알겠어”라고 말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알았어”라고 말할 때, 즉 몸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영혼이 몸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자 할 때, 실제로 문제의 절반은 이미 해결되는 것입니다. 진짜 문제는 질병 그 자체가 아니라, 질병이 나타내고 있는 근원적인 장애(들)입니다.
말하자면, 질병은 여러분을 붙잡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며, 근원적인 장애들 살펴보도록 여러분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질병에게 눈길을 돌리고, 가슴과 영혼에게 알았다고 이야기할 때, 심지어 질병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미 장애의 일부는 벌써 해결이 될 것입니다. 목전에 다가와 있는 이러한 내면의 여행을 하겠다는 여러분의 의지, 인내심 그리고 결심으로 말미암아, 의사소통의 일부가 복원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알았어”라고 말하면서, 질병을 받아들이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쉽지가 않습니다. 질병을 받아들이는 것에 저항하고, 화를 내게 되거나, 아니면 질병에 대해 절망할 수도 있으므로, 기능의 장애가 이미 여러분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흔히 여러분은 특정한 실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몸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어떠한 의무감을 버리고, 혼자서 조용한 시간을 더 많이 보내면서, 활동을 줄이고, 내적인 요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라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육체적인 상황을 어떻게 영적으로 해석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질병이 여러분에게 강요하는 행위가 곧잘 큰 실마리가 됩니다. 어떠한 장소에 여러분을 제한시킴으로써, 이전에는 어두워서 보지 못 했던 것을 부각시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다정하게 지낼 수 있는 능력이란 것이 어떤 것일까요? 여러분은 정말로 육체 및 감정적인 욕구들을 잘 보살필 수가 있나요? 질병은 언제나 이러한 의문을 불러오게 되며, 이러한 의문들이 환기시켜주는 감정들과 대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치유 과정의 일환이 되는 것입니다.
정말로 치유의 과정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 즉 아픔, 불편, 걱정, 불안 그리고 분노에 “알았어(yes)”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이것들을 똑바로 쳐다보고, 잘 지내야 하며,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치유를 위해, 이것들은 여러분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가능한 빨리 피해야 하는 것들이 아닙니다. 이러한 것들이 여러분의 삶 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몸이 말하는 것을 무시하고, 질병에 계속 저항한다면, 질병이 지니고 있는 영적인 본질과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훨씬 더 많은 분노와 두려움이 질병을 둘러싸게 될 것입니다. 질병, 아픔, 불편함 그리고 두려움 및 혐오감과 직접 대면하는 과정 속에서, 진정한 내적인 자유를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받아들인 다음, 조용히 열린 의식으로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니?”하고 물어보세요.
여러분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자신의 몸과 친숙해진다는 것이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사랑하고 존중해줄 가치가 있는 존재처럼, 자신의 몸에게 말을 한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이 어떻게 보여야 하며, 신체단련과 건강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먹고 마셔야 하며, 무엇을 먹고 마시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사회에서 말하는 많은 이상적인 이미지들을 여러분은 지니고 있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에 대해서도, 온갖 종류의 원칙들과 기준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상적인 그림들은 영혼의 가야 하는 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들입니다. 영혼의 길은 대단히 개인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몸으로 겪고 있는 질병, 질환 그리고 괴로움에 대한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아주 친숙한 방법으로 자기 자신에게 파장을 맞추고, 이러한 일반적이고, 대개는 인위적인 모든 기준과 원칙들을 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외적인 모든 기준을 버리고, 내면 깊숙이 존재하고 있는 자신의 진실을 찾으라고 요구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는 커다란 도전과제입니다. 왜냐하면 질병에 걸렸을 때, 여러분을 사로잡는 두려움과 공포로 인해, 외부에 존재하는 권위 있는 사람을 아주 신속하게 찾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외부의 권위 있는 사람에게 조언과 위안을 얻으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의사나 대체의학의 전문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큰 차이는 없습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책임을 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인해 그러한 책임을 다른 누군가에게 부분적으로 떠넘기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전문가의 조언을 듣는 것에 물론 잘못된 것은 없으며, 대개는 분별 있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지식을 언제나 자신의 내면에서 얻고, 그것을 자신의 가슴속에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조언이 자신의 마음에 와 닿는 것인지, 아닌지도 느껴보기 바랍니다. 오로지 여러분만이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참된 창조자이며, 자기 몸의 주인입니다. 오로지 여러분만이 자신의 몸에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여러분은 자기 몸의 창조자인 것입니다.
부분적으로, 질병은 여러분의 의식이 미치지 못하는 정체된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질병이나 증상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를 알기가 항상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특정한 질병을 통해, 영혼이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가 대단히 어려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종류의 에너지가 자기 자신을 질병으로 표현하고 있는지 그리고 여러분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점차적으로 알아가게 된다는 의미에서, 이 시점에서 내면으로 들어가,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몸과 친근감을 되찾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훈련은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쉽게 포기하지는 마세요. 만성적인 질환들을 다룰 때, 그러한 질환들을 한 번 더 조사해보세요. 잠시 긴장을 풀고, 중립적인 의식으로, 질병으로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부위로 가보세요. 고통과 질병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살아 있는 존재의 모습을 취하라고 요청하세요. 질병에게 동물, 아이 혹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라고 요청하세요. 아니면, 어떤 모습이든지, 가이드로 나타나달라고 요청해 보세요.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상상력을 이용하세요! 상상력은 가장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영혼의 움직임을 찾아낼 수 있는 소중한 도구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고 몸이 이미지나 느낌으로 응답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기쁨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친근감을 되찾게 됨으로써, 행복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몸이 여러분에게 말을 걸어옴으로써, 의사소통자로서의 역할을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획기적인 일입니다. 내면으로부터 몸을 알 수가 있으며, 자기 자신을 위해 여러분이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여러분은 더 큰 자신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자신감으로 인해, 질병이 여러분에 하고 싶어 하는 말을 보다 더 쉽게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면의 자아로부터 받게 되는 해답들을 무시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해답들은 바깥세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일반적인 개념들과는 맞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몸과의 친근감은 모든 상황에서 아주 소중한 것이지만, 몸이 아프고, 병이 들었을 때, 특히 대단히 소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몸이 말을 하도록 하는 방식은 사랑입니다. 치유의 확언들과 시각화를 열심히 되풀이함으로써 질병을 없애려고 한다면, 몸과의 의사소통은 촉진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여전히 투쟁하거나, 저항하는 형태입니다. 문제는 몸이 병이 들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데 있습니다. 그 원인을 이해하게 되면, 모든 것들이 변형될 것이며, 감정적인 장애들도 제거될 것입니다. 어떻게든 질병과 싸우지 않고, 질병을 올바른 방향을 가르쳐주는 친구로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치유의 과정이 작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질병은 여러분을 놀라게 하고, 고통스럽게 만들기 때문에, 이것을 이해하기 쉽지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질병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 참된 치유의 유일한 방법입니다. 질병은 집으로 여러분을 다시 데려다주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만성질환과 불치병
질병이 생기게 되는 이유는 여러분이 자기 자신을 더 잘 그리고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 점을 잘 이해하고, 내적인 치유 과정을 따라간다면, 그 결과로서 육체는 대개 회복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항상 이런 식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떠한 질병들은 숨어 있는 감정적인 장애의 뿌리까지 여러분이 내려갔다고 여겨질 때까지도, 사라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만성질환의 경우입니다.
만성질환의 경우에는 육체적인 문제들이 계속해서 재발하게 됩니다. 특히, 자신의 내적인 자아와 거의 접촉할 수 없게 되는 취약한 시기에 증상이 재발하게 되며, 때로는 증상이 심해지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의기소침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넓은 시각에서 질병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아주 고된 일을 해야 합니다. 영혼의 차원에서, 이들은 질병과 관련하여 나타나는 두려움과 대면하고, 누군가는 삶에서 꼭 완수해야 하는 이상적인 그림과 대면하겠다고 동의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힘이 드는 과제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커다란 용기를 지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대개 영혼은 특정한 주제를 집중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만성질환을 선택하게 됩니다. 질병으로 인해, 매번 특정한 감정의 상태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질병에는 감정적인 패턴들이 수반됩니다.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이러한 감정들을 다루어야 하는 것은 대단히 힘이 드는 일이지만, 영혼은 많은 결실을 얻게 됩니다.
대개 이러한 삶 속에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대단히 심오하고, 내적인 풍요로움이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질병을 지속적으로 호전시키려고 하거나, 희망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사실은 대개 질병은 나선형의 운동을 지속하게 되며, 육체적으로는 분명히 매번 동일한 증상이 재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적인 차원에서는 위를 향해 원을 그리면서 성장하도록 돕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차원에서 보면, 뒤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심지어 이전의 생들에서 여러분이 간과해왔던 감정들을 다루는데 있어, 이전보다 더 깊은 곳에 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유전적이고, 선천적인 신체의 결함에도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 때때로 여러분은 카르마에 대해 언급하지만, 카르마를 범죄 및 처벌과 결부시키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카르마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카르마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영혼은 자기 자신에 대해 최대한으로 알고자 하며,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진지한 열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혼이 지니고 있는 가장 깊은 열망입니다. 이러한 진지한 소망으로부터 시작하여, 영혼은 그러한 소망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는, 크고 작은 질병들 그리고 신체적인 결함들을 이따금씩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확실하게 말해, 이것은 빚을 갚은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의 신체 내에서 극도로 어려운 상황을 체험하는 것은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깊은 의지의 표현이며, 때로는 자유롭게 되는 최선의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얼마나 기능을 잘 하고, 유용하며, 아름답고, 성공적인 것인가 하는 것에 있어, 특히 인간적이지 못한 이상적인 이미지들이 귀하게 여겨지는 사회에서, 이러한 의지를 지닌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커다란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이상적인 개념들로 인해, 핸디캡 지니고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더 힘들어지게 되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체험을 한다는 것은 의미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기쁜 일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치유가 불가능한 불치병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질병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이 분명히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질병에게 서서히 몸이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틀(몸)”은 계속 존속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지막의 순간에, 몸속에서 영혼이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무엇일까요? 질병에 계속 저항하는 한, 자신의 영혼 및 이제 작별을 고해야 할 때라는 것을 알려줄 내적인 앎과도 여러분은 접촉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때로는 떠나야 한다는 것을 미리 인지할 수도 있지만, 슬픔과 공포에 질려 계속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엄습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또 다른 치료를 받거나, 새로 출시된 신약을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충분히 이해할만하며, 이러한 태도에 대해 비난하고 싶지는 않지만, 여러분은 끔찍한 방법으로 자기 자신을 해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죽음이 가까이 다가올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죽음이 적이 아니라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죽음은 투쟁에서 해방시켜주는 것입니다.
죽음이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을 따라간다면, 죽는 과정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여러분은 몇 개의 단계들을 거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단계들은 모든 세속적인 것들, 즉 사랑하는 사람들, 세속적인 환경들, 주위의 모든 것들을 살펴보고 있는 의식으로부터 점차적으로 해방되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삶을 고수하려는 전투적인 마음자세로 인해, 이러한 과정이 빛을 잃게 되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대개 그 무렵이 되면, 몸은 이미 다 망가져서, 더 이상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무의미해지게 됩니다. 그냥 놔두세요. 죽음은 여러분을 돕기 위해 그곳에 존재하는 해방자입니다. 죽음은 여러분의 적이 아닙니다. 죽음이 여러분에게 새 생명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 그리고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보세요. 숨이 넘어가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위안이 됩니다.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위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가장 사랑스럽고, 소중한 것은 그 사람들 옆에 앉아,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죽어가는 사람과 함께 하면서, 여러분이 알아야 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은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사는 사회에는 “임종의 간호(terminal care)”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여러분들 모두는 가족이나 친구 관계에서 이러한 임종과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냥 죽어가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끝나가고 있는 여정을 느껴보세요. 영혼이 육체를 떠나, 다른 세계, 즉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위대하고도, 강렬한 순간을 느껴보세요.
죽음으로 이어지는 질병을 결국에는 지게 되고 말 적이라고 여기지 마세요. 이것은 전투가 아닙니다. 흔히 죽음은 여러분을 더 심한 고통과 불행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해주기 위해 찾아오게 됩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패자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단지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길을 계속해서 가게 될 것입니다.
이번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때로는 겪어 보고 싶어 했거나, 극복하고 싶어 했지만, 끝마칠 수 없었던 특별한 주제들이 남아 있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뿐만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러분이 평화롭게 떠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더 심오한 지혜가 작용하고 있으므로, 이 지혜가 여러분을 인도하고, 여러분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새롭고, 더 좋은 환경으로 데려다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언젠가는 또다시 함께 하게 될 것이며, 삶을 축복하게 될 것입니다.
질병과 관련하여, 오늘 가장 간청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질병을 정말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사랑과 자각으로 질병을 에워싸고, 질병이 여러분을 자신에 대한 더 깊은 이해로 인도하도록 하세요. 질병에게 자기 자신을 내맡기고, 자기 자신과 더 깊은 대화를 시도해보세요. 내맡긴다는 것이 수동적이거나, 자기의 질병에 대해 괴로워한다는 말이 아니라, 친구처럼, 적극적인 방식으로 질병과 서로 협력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 모두를 내 사랑으로 포옹하며, 부디 내 존재, 즉 그리스도 에너지의 현존을 느껴보기 바랍니다. 아플 때나, 건강할 때에도 여러분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사랑을 느껴보세요. 여러분 주위의 모든 곳에 많은 사랑이 존재하며, 판단을 버리는 순간, 여러분은 그 사랑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해야 하는 것과 할 가치가 없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옳은 일과 옳지 않은 일에 대해, 그리고 해야만 하고, 성취해야 하는 것에 대해, 여러분은 너무 많은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세요. 여러분들 모두를 위해 지금 여기에, 사랑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Yeshua Channelings
번역 - 목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