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호랑이 굴로 들어가다
군유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소.』
조돈력은 찬 바람을 들이키며 긴장된 어조로 물었다.
『오늘 밤입니까?』
군유명은 싸늘히 웃었다.
『그렇지 않으면 명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가?』
조돈력은 목쉰 소리로 웃더니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그런데 저를 부르신 것은… 공자의 뜻은 제가 나서서 무슨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군유명은 차갑고 무뚝뚝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의표가 혈뢰에 갇혀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가?』
조돈력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절대 틀림이 없습니다. 만약 차질이 있다면 내 목을 내 놓아도 좋습니다.』
군유명은 야릇한 웃음을 지었다.
『매우 좋아. 당주에게 먼저 부탁할 것이 있네. 동가가 혈뢰 안팎에 어떤 수작을 부려 놨으며, 어떤 함정을 파 놓았는지를 알려주게.』
조돈력은 침을 삼키고 급박한 어조로 물었다.
『오늘 이른 아침에 나는 철위부로 달려오자마자 이미 애써서 알아보았소이다. 내가 얻어낸 소식에 의하면 혈뢰에는 모두 다 열여섯 명이 갇혀 있는데 다른 열다섯 명 역시도 공자의 옛날 형제들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혈뢰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본방의 저단(猪壇)의 제자들인데 약 삼십 명 정도가 된다더군요. 그런데 그 삼십 명의 제자들 가운데는 저단의 행형수(行刑手) 열 명이 있는데 행형수란 저단에서 힘꼴이나 쓰는 자들이며 본방의 저단은 바로 전문적으로 형벌을 관장하는 책임을 지고 있지요. 행형수는 이십 명이 넘는데 그들 외에도 저단 단주 역시 바로 그 옆에 있는 정사(精舍)에서 기거하고 있답니다. 이 사람의 성은 탁(卓)이고 이름은 사(斯)이며 별호는 무정마면(無情馬面)이라고 하지요. 그는 바로 육친(六親)도 인정하지 않는 매서운 인물이며 우리 방주의 심복(心腹)이지요.』
군유명은 냉랭히 입을 열었다.
『나의 생각인데 동강이 의표의 목숨을 오늘까지 보류한 채 살해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철위부에 충성을 다하고 있는 형제들이 돌아와 구원하도록 유인해서 포위, 섬멸함으로서 뿌리까지 뽑겠다는 수작이지. 따라서 그는 수십 명을 파견해서 혈뢰를 지키는 것만 아니라 달리 함정을 파 놓았을 거네.』
조돈력은 군유명의 발끝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천천히 말했다.
『군 공자, 당신의 추리가 매우 정확하오. 동강은 바로 그와 같은 계산을 하고 있지요.』
군유명은 두 눈에 형형한 광채를 번뜩이며 한 마디를 했다.
『그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네.』
그는 다시 이어 말했다.
『그가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 혈뢰로 잠입하여 의표를 구하려고 하는 사람을 함정에 빠뜨려 해칠 준비를 하고 있는지 말해주게나.』
조돈력은 무겁고도 시원스럽게 입을 열었다.
『반드시 공자에게 일일이 명백하게 말씀을 드리도록 하지요. 동강이 사용하는 방법은 지극히 간단하면서도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삼십 명의 수위들 개개인에게 모조리 하나의 은으로 만들어진 피리를 갖추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떤 중대한 조짐이 막 일어나게 되었을 적에 그들은 언제 어디서든 즉시 은으로 만들어진 피리, 즉 은초(銀哨)를 불어 대는 것이지요. 그 피리 소리는 뾰족하고 가늘면서 맑고 똑똑하지요. 그리하여 그 피리소리가 울려 퍼지면 전체 철위부에 분포되어 있는 각처의 사람들이 즉시 혈뢰쪽으로 집결하게 되고 모든 통로는 차단되는 것이고 혈뢰의 사방을 겹겹이 포위하게 되고 모든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게 되지요…』
그는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다시 말해서 삽십여 명의 수위들은 그저 구색만 갖추어 놓았을 뿐이며, 그들은 바로 경고를 발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지요. 실제로 행동을 하는 사람은 경고를 듣고 사방에서 달려오는 고수들입니다. 이와 같은 안배는 매우 무서운데 철위부 안에서는 이미 여러 번이나 연습을 했었지요. 일단 그와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모든 사람들은 될 수 있는 한 재빨리 자기의 위치에 가서 철저하게 소탕작전을 펴는 것이지요. 익숙하고 노련하며 그야말로 파고들 빈틈이 없지요.』
옆에 있던 금우마가 싸늘히 코웃음쳤다.
『파고들 빈틈이 없는 것 좋아하네, 소형. 제미랄, 당신이 그와 같이 말한 데 대해서 나는 도저히 승복할 수 없소. 천하가 넓다 해도 완전한 일이 어디 있느냔 말이오? 설사 한 조각의 생철판이라고 하더라도 자세히 살피고 꼼꼼히 찾아보게 된다면 바늘구멍과 같은 빈틈이 있기 마련이외다. 더군다나 단지 한 떼의 깡통들, 그 못난 새끼들이야 더 말할 것 있겠소? 만약 그와같은 개새끼들이 바짝 포위를 해온다면 우리들은 마구 죽여 짓이겨 그 새끼들로 하여금 네 활개를 쫙 펴고 뻗도록 만들면 될 게 아니겠소?』
조돈력은 가슴 가득 노기가 치밀었다. 그렇다고 성질을 낼 수도 없어 억지로 참으며 웃었다.
『이분 형씨는, 아, 물론 당신의 말도 일리가 있소이다.』
금우마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그 말을 가로채듯 입을 열었다.』
『나는 금우마라고 하며 대녕하 금씨 집안의 백년지객이오!』
마치 단번에 호도알을 목구멍을 삼킨 것처럼 조돈력은 하마터면 숨이 콱 막힐 뻔한 것을 느끼면서 커다랗게 한 쌍의 눈동자를 부릅뜨고 놀라서는 물었다.
『그렇다면 독괴?』
금우마는 껄껄 소리 내어 웃었다.
『바로 이 재주 없는 놈이라오!』
조돈력은 더듬거리듯 물었다.
『그렇다면… 금씨 집안의 사람들은 모두 다 군 공자를 돕게 되는 것인가요?』
금우마는 눈을 부라리며 그 말을 받았다.
『조형, 그것은 모두 다 쓸데없는 말이 아니겠소. 만약 우리 금씨 집안에서 모두 다 군 공자를 돕지 않는다면 내가 어찌 또 이곳에서 이 짓을 하고 있겠소?』
독괴 금우마는 근 이십 년 동안 북쪽 지방에서는 매서운 인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었다.
그 역시 흑도에서 명성이 쟁쟁한 괴걸이었다. 비단 사납고 용맹하기로 이름이 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음씨가 독하고 손이 매섭기로 유명하였다. 그의 이름만 들어도 울던 아이가 울음을 그칠 정도였다.
조돈력은 강호에서 오랫동안 떠돌아다녔기 때문에 금우마가 어떤 인물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눈앞의 금우마를 대하고 보니 새삼스럽게 군유명의 무서움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비방의 당주는 더욱더 간담이 서늘해져서 엉뚱한 생각을 감히 할 수 없었다.
군유명은 다시 나직하고도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동강의 그와같은 방법은 간단하고도 치밀하군.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할 필요도 없고 많은 사람의 손을 빌릴 필요도 없이 그의 음독(陰毒)한 성격을 똑바로 달성할 수 있겠군.』
다시 얼굴을 조돈력쪽으로 돌렸다.
『그 방법 외에 조 당주, 혈뢰에는 또 어떤 수작이 부려져 있는가?』
조돈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이외는 저도 잘 모릅니다.』
금우마는 두 손을 부비면서 매서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공자, 저의 뜻은, 이 사악한 후레새끼들이 그 빌어먹을 은초를 숨이 끊어질 때까지 불더라도 우리들은 그까짓 것은 무시해 버리고 공자가 뇌옥을 깨드리고 들어가 사람을 구하도록 하시고, 나로 말하면 라곤 라 노제와 밖에서 그들을 때려잡겠습니다. 공자께서 사람을 구하여 나오게 되면 우리들은 다시 하나의 혈로를 뚫고 그곳을 빠져나오면 될 것이외다.』
한참동안 침묵하고 있던 라곤 역시 입을 열었다.
『공자, 내가 보기에도 그 방법밖에 없는 것 같군요…』
군유명은 입을 꼭 다물었다가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조 당주, 혈뢰를 지키는 삼십 명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일거에 섬멸할 수 있는 방법은 없겠소?』
조돈력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럴 가능성은 없지요. 그곳은 내가 오늘 정오 무렵에 친히 구실을 붙여서 앞으로 가 한 번 살펴보았는데 삼십 명이나 되는 수위들 가운데 다섯 명은 혈뢰 안에서 머물며 지키고 있었고 다섯 명은 혈뢰의 문 밖에서 지키는 이외에 나머지의 이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모조리 혈뢰 사방을 에워싸듯 하고 서 있더군요…』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똑바로 군유명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공자, 공자께서도 틀림없이 알고 계시겠지만 그 혈뢰 사방에는 몸을 감출 만한 물건이 없습니다. 스무 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모두 다 다른 곳에 서 있고 피차 서로 똑똑히 볼 수가 있지요. 거기다가 밤에는 등롱과 횃불을 밝혀 대낮처럼 환하게 해 놓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간격이 약 십 보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제아무리 고강한 재간을 지니고 있고 제아무리 빠른 솜씨를 지닌 사람이라 하더라도 절대로 똑같은 시간에 그 혈뢰의 밖에서 지키고 있는 스물다섯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모조리 처치할 수는 없지요. 다만 눈 깜짝할 만한 사이라도 있게 된다면 이미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든 은초를 입으로 가지고 가서 미친 듯 불어제쳐 경보를 알릴 것이 아니겠소이까…』
이에 금우마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점에 대해서 그 동가라는 후레자식 역시 이미 헤아려본 모양이군요.』
군유명은 담담하게 웃었다.
『내가 곧장 뚫고 들어가기를 싫어하는 이유는, 그만한 까닭이 있기 때문이오.』
금우마는 재빨리 물었다.
『어떤 이유가 있소?』
군유명은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동강은 혈뢰 안에서 지키는 다섯 명의 수위들에게 경보를 알리는 피리소리를 듣자마자 즉시 손을 써서는 의표 등을 살해하라고 미리 비밀지령을 내리고 당부를 했을 것이오. 그렇다면 설사 우리들이 문을 깨뜨리고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하더라도 시기적으로 늦고 말 것이 아니겠소. 그 때 설사 우리들이 피에는 피로 보상하고 백 배의 대가를 되찾아온다 하더라도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는 금우마를 바라보고는 계속해서 말했다.
『동강의 위인이나 일을 처리하는 수단으로 말할 때에 그가 그렇게 할 가능성은 지극히 큰 것이오. 우리들이 만약에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하고 공개적으로 싸우게 된다면 아무래도 부질없는 수고만 하고 공을 세우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의표 등의 죽음을 더욱 앞당기게 될 것이오.』
잠시 생각을 해 보더니 금우마는 끝내 동의를 했다.
『음, 공자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군요.』
어장살 라곤은 성질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또 어떻게 해야지요?』
군유명은 한참동안 생각하더니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오직 조 당주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겠군!』
조돈력은 전신이 갑자기 차가와지는 것을 느끼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놀람과 공포로 입마저 제대로 놀리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저는… 저는… 공자… 저는… 저는 결코… 잘못한 일이 없소이다. 공자는… 저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응낙을 한 바가 있지 않소이까…』
군유명은 조돈력이 자기의 뜻을 오해했다는 것을 알고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조 당주, 너무 당황해 하지 마시오. 나의 뜻은 결코 당신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아니오. 이번 일 때문에 당신의 목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오. 다만 이번 일 때문에 당신은 앞으로 대비방에서 밥을 빌어먹기가 어려워지게 될 것이오. 그래도 좋소. 최후에 가서 밝히는 것보다 차라리 오늘 어둠을 버리고 광명을 찾아 악의 소굴에서 나오시오!』
조돈력은 놀람과 의혹을 금하지 못하면서 더듬거리며 물었다.
『공자의 뜻은…』
군유명은 천천히 설명하듯 말했다.
『매우 간단하오. 의표를 구출한 후 우리들은 즉시 철위부를 정면으로 공격하게 될 것이오. 그 때는 안에 박은 첩자고 뭐고 가릴 필요가 없는 것이며 모두 다 힘을 합쳐 해치우는 것이오. 그런데 만약에 당신이 그 가운데 끼어 있다면 적이나 우리 쌍방에 똑같이 걸림돌이 될 것이고 당신은 그들을 도와 우리를 상대로 정말 싸워도 좋지 않고 거짓으로 싸울 수도 없는 일이지. 그리고 우리들이 일단 당신과 맞닥뜨리게 된다면 자연히 손발을 움직이는 데 지장을 가져오게 될 것이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니 아예 오늘 밤 당신은 정식으로 반기를 들고 우리 쪽으로 돌아섬으로서 이후 당신이 매일과 같이 안절부절 못하면서 당신 곁의 동료들을 경계하는 일이 없어야 우리들도 거리낌이 없이 제치고 들어갈 것이 아니겠소.』
조돈력은 어안이 벙벙해서 망설이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러나… 공자, 대비방과 동강 등은 나를 놓아주지 않으려고 할 것이외다.』
군유명은 냉랭히 웃었다.
『그들에게는 당신을 찾을 여가가 없을 것이오. 조 당주. 그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발버둥 치며 살아남기도 바쁠 것이오.』
조돈력은 식은땀을 흘리며 얼굴이 새파래져서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하지만… 하지만… 동강의 좌우에는 뛰어난 사람들이 무척 많소이다. 군 공자, 이 사람들도 장래에 나를 찾아 앙갚음을 하려고 할 것이외다.』
군유명은 냉혹하게 말했다.
『당신이 나에게 돌아선 이상 조돈력, 나는 당신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것이오. 더군다나 당신으로 하여금 그 대가를 습득하도록 해야 될 것이 아니겠소. 이제 정사(正邪)와 명암(明暗), 그리고 승부의 형세는 모두 다 당신 앞에 펼쳐져 있소. 조돈력. 나는 당신에게 강요를 하지 않을 테니 당신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시오!』
조돈력은 벌벌 떨면서 입술마저 경련을 일으키듯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고통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며 또 한편으로는 당혹과 불안에 휩싸여 거듭 생각을 했다.
한참 후에야 그는 이빨을 깨물며 입을 열었다.
『그럽시다. 나 역시 이 길을 따라 당당히 가는 수밖에 없겠소이다! 군 공자, 군 공자를 따르겠소이다!』
군유명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것이야말로 총명하고 슬기로운 선택일세.』
금우마 역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조형은 아직도 완전히 멍청한 것은 아니군. 종이가 불을 감싸지 못하듯이 당신이 군 공자를 위해 첩자가 되는 일은 조만간 들통이 나게 마련이오. 그 때에 가서 동강과 당신네들의 대비방의 동료들이 가볍게 당신을 용서할 것 같소? 그들이 당신을 산 채로 껍질을 벗기려 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해가 서쪽에서 뜨겠지. 정말이지 지금 입장을 표명하고 이쪽으로 돌아서는 것이 나을 것이오. 그렇게 되면 비단 군 공자의 비호를 받게 될 뿐만 아니라 훗날 철위부가 다시 빛을 되찾게 되었을 때에 논공행상에서 조형의 한 몫이 어찌 없을 수 있겠소?』
조돈력은 힘없이 입을 열었다.
『다만 군 공자께서 저를 한 번 이끌어 주시고 나를 문 밖으로 내던지지 않는다면 다시 나를 낳아준 은혜를 베푸신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러기만을 바라는 바이외다. 그리고 여러분, 나는 이제 의지할 데가 없게 되었으니 저를 잘 돌봐 주시기 바랍니다.』
군유명은 정색하고 말했다.
『당신은 안심 하시오. 조돈력, 오늘부터 당신이 나를 따르게 되었으니 내 수하의 어떤 옛 형제들과 다름없는 대접을 받게 될 것이오. 그들과 똑같이 형제처럼 여길 것이고 이 군유명의 사라지지 않는 한 당신은 나의 수족으로서 나의 보호를 받게 될 것이며 나와 더불어 진퇴를 함께 할 것이오.』
너무 격동하여 조돈력은 온몸을 모두 벌벌 떨면서 움직이지 못하였다. 그는 지금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똑똑히 말할 수가 없었다.
마치 허공에서 떨어진 것 같기도 하고 눈물이 글썽하면서 모든 것이 아득하기만 했다.
그런가 하면 흥분된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무엇을 잃어버린 것 같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가슴속에 많은 것들이 가득 메워진 것 같기도 하고 가슴이 텅텅 빈 것 같기도 했다.
그는 한참동안 입을 열지 못하다가 겨우 음성을 떨면서 말했다.
『공자께서 거둬들이고 돌봐주시겠다는 커다란 은혜에 감사드리오. 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이상… 저도, 저도 별로 달리 할 말이 없소이다. 아무쪼록 이후 공자께서 밥이라도 먹여주시어 이 목숨만 보존토록 해 주시길 바라는 바이올시다.』
군유명은 굳건하고도 힘에 찬 어조로 입을 열었다.
『물론이오. 이 모든 것은 나에게 맡기시오, 조돈력. 이 군유명이 언제 입 밖에 내 놓은 말에 책임을 지지 않은 적이 있었소?』
조돈력은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다.
『저는 믿을 수 있소이다. 공자, 저는 전적으로 믿을 수가 있소이다.』
그는 다시 숨을 들이마시며 불안한 듯이 물었다.
『이제 공자께서는 제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지시하시지요.』
군유명은 나직하고도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당신은 혈뢰로 가서 동강의 명령이라고 거짓을 하고 방법을 강구해서 혈뢰 안으로 들어가서는 그곳에 갇혀 있는 다섯 명의 인물들을 죽이도록 하며 그런 후에 다시 의표 일행을 연못에서 들어 올려 주시오. 확실하게 의표 등의 목숨과 안전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바깥의 일은 대수로울 것이 없소. 내 물론 말은 이렇게 하지만 우리들은 역시 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들에게 발각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고 의표 등의 안전을 확보한 후에 당신이 다시 방법을 강구해서 혈뢰 밖의 수위들을 혈뢰 안으로 유인해 들여서 하나하나 섬멸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네.』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들에게 은초를 불어서 경고를 알릴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실제에 있어서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억지로 뚫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일세.』
조돈력은 생각해 보더니 입을 열었다.
『거짓으로 동강의 명령을 빌어 혈루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저로서도 어느 정도 자신 있소이다. 왜냐하면 대비방 안에서 나는 당주의 지위에 있는 만큼 혈뢰를 지키는 저단 단주와 같은 위치에 있으니 저단에 예속된 제자들은 의심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은 일이 밝혀지기 전에 결코 내가 수작을 부리리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못할 것이외다. 그러나 밖에서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혈뢰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은 아무래도 수월할 것 같지 않소이다. 그들은 동강의 몸소 내린 명령을 받들고 있기 때문에 반걸음도 자기 위치에서 벗어날 수가 없답니다. 내가 만약에 그런 수작을 부리게 되었을 때 일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 자리에서 당장 꼴사나운 일을 당할 것이 아니겠소이까?』
군유명은 매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먼저 혈뢰 안으로 들어가 의표 등을 구출하여 살해되는 일이 없도록 한다면 바깥에서 지키고 있는 수위들은 별 문제가 아닐세. 방법을 강구해서 살그머니 해결하는 것도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별 상관이 없네. 기껏해야 한바탕 격전을 벌이는 것뿐일세. 그들이 의표 등을 인질로 삼지 못하는 이상 우리들은 조금도 거리낄 바가 없는 것일세.』
조돈력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내가 전력을 다해서 해 보기로 하지요…』
그는 다시 길게 한숨을 토해 내더니 입을 열었다.
『아, 이런 일이 일단 드러나면 동강과 본방의 조 방주는 뛸 듯이 화를 내게 될 것이고 당장이라도 내 조상의 무덤을 파헤치려고 들 것이 분명하오.』
군유명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조돈력 당신은 내가 이렇게 하는 습관을 명심하고 용감하게 곧장 앞으로 나가 결코 뒤를 돌아보는 일이 없도록 하게.』
조돈력은 가슴이 쿵, 뛰는 것 느끼고 말했다.
『예, 저도 알고 있소이다, 공자. 잘 았겠소이다.』
이 때 금우마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군 공자, 사람은 어떻게 분배할 것이오?』
군유명은 이미 세워진 계획이 있는 듯 차분한 어조로 설명을 했다.
『혈뢰의 위치는 천패당 앞쪽인데 혈뢰의 뒷쪽은 널따란 백석이 가로지른 길이 있고 그 가로지른 길 뒷쪽에는 한 곳의 화원이 있다오. 그리고 단루와 봉루가 바로 그 화원의 좌우에 세워져 있다오. 애시당초 내가 이 뇌옥을 짓게 되었을 적에 만일에 대비해서 뇌옥의 사방에는 나무 한 그루 심지 않았소. 그것은 어떤 좋지 못한 생각을 품은 자들이 그 나무 뒤에 몸을 감추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었지…』
그는 다시 한숨을 쉬듯 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우리들 자신의 행동에 지장을 초재하게 되엇구려. 나중에 우리들이 혈뢰로 잠입해 들어가게 되었을 적에 금형과 라곤은 그 혈뢰 뒷쪽의 그 화원에 몸을 숨기고 출현할 준비를 해주시오. 그리고 나와 조돈력 두 사람은 뇌옥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인데 우리들이 들어가게 된 이후 만약에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고 혈뢰 밖의 시위들이 계책에 말려들어 혈뢰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두 분은 즉시 빠른 기세로 수위를 잡아 죽이도록 하시오. 우리들 역시 의표 등을 데리고 뛰쳐나와 접응을 하겠으니 모두들 지금 이곳에서 담장을 넘어 도망을 치도록 합시다.』
금우마는 생각을 해 보더니 입을 열었다.
『몇 가지 문제에 대해서 저로서는 여쭤보지 않을 수가 없군요.』
군유명은 재빨리 대답했다.
『그런 말씀은 감당할 수 없구려. 금형은 의견이 있으시면 얼마든지 물어보도록 하시구려.』
금우마는 입술을 핥고는 입을 열었다.
『첫째로 만약 조형이 혈뢰 밖의 수위들을 혈뢰 안으로 유인해서 죽일 수 없을 때 우리들은 반드시 공개적으로 살륙전을 펼쳐야 하는데 그와 같이 공개적으로 살륙전을 펼치게 된다면 반드시 철위부 아래위의 모든 사람들을 경동(驚動)하게 될 것이고 그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포위를 해 버리게 되었을 적에 우리들을 그 개새끼들을 상대하며 또한 혈뢰 안에서 구출한 동료들을 돌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사방에다가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니 매우 힘겹게 될 것이고 이곳에 이른 즉시 담장을 넘으려고 한다면 혈뢰 안에 갇혔던 동료들은 반드시 우리들이 업거나 부축을 해야만이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이외다. 만약에 추격해 오는 자들이 많을 때는 그러한 일들을 행하기에는 진정으로 번거로울 것이외다.』
군유명은 차분한 어조로 되물었다.
『금형의 뜻은 어떠하오?…』
금우마는 대답했다.
『매우 간단하오. 반드시 한 사람이 있어서 뒤를 끊어서 동료들이 여유 있게 철수하는 것을 엄호해야 할 것이외다!』
군유명은 미미하게 웃었다.
『내가 뒤를 끊으리다!』
금우마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공자, 공자가 나를 높이 사시고 좌우에서 거들도록 했는데 어찌되든 간에 이렇게 수월히 되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소. 어느 정도 힘을 써서 내 나름대로의 표현이 있어야 할 것이외다. 그렇기 때문에 뒤를 끊는 사람은 좀 건방지지만 제 자신을 추천하는 바이니 그 자리를 제가 메우도록 해 주시구려.』
군유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금형에게는 따로 임무가 있으니 그 일에 대해서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소이다.』
금우마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군 공자…』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군유명은 온화한 가운데도 뭐라고 말할 수 없이 꿋꿋한 어조로 그 말을 받았다.
『금형, 내가 뒤를 끊겠소.』
금우마는 두 뺨의 비곗살을 한 번 실룩이더니 길게 토해 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공자께서 그렇게 굳이 주장을 하신다면 저로서야 무슨 할 말이 있겠소이까.』
군유명은 나직하고도 느릿한 어조로 물었다.
『금형의 두 번째 문제는 무엇이오?』
금우마는 탄성을 발하며 입을 열었다.
『아, 두 번째는 만약에 오늘 밤 성공하여 의표 등을 구출해서 나가게 되었을 적에 공자가 최후에 남겨둔 오백 명의 충성스러운 수하들이 재난을 당하리라고 보아지는구려. 동가는 공자가 몸소 다시 나타난 것을 알든 모르든 간에 그리고 오늘 밤의 일이 공자의 그 수백 명이나 되는 옛 부하들과 관련이 있든 없든 간에 좀처럼 그들을 가볍게 용서하지 않을 것이외다. 생각해 보구려. 그가 어찌 그 한 떼의 끝내 자기에게 불리하게 될 사람들을 남겨 두겠소이까?』
군유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말했다.
『금형이 깨우쳐 주었구려. 그 점에 있어서 나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소이다.』
한켠의 라곤은 조그만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공자, 동가는 결코 우리의 그 옛 형제들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외다.』
군유명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입을 열었다.
『라곤, 자네는 즉시 앞쪽으로 빨리 가서 내 명령을 전달하도록 하게. 모든 우리에게 충성하는 형제들은 방법을 다해서 날이 밝기 전에 철위부에서 빠져나가 조봉산 입운대의 도자장으로 달려가도록 하되 그들은 모두 전박의 명령을 받도록 할 것이며 전박이 모든 그 일을 결정하도록 하게!』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일을 처리한 후 자네는 즉시 혈뢰의 뒤에 있는 화원으로 돌아와 금형과 회합을 하게. 명심할 것은 그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밖에 없다는 것일세!』
라곤은 총총히 대답을 하고 감히 주저하지 않고 몸을 낮추어 살쾡이처럼 민첩하게 밤빛 속으로 뛰어들더니 어느덧 사라졌다.
라곤이 막 떠나자 군유명은 계속해서 물었다.
『금형은 또 문제가 있소?』
금우마는 나직이 소리 내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세 번째로 흐흐흐, 오늘 밤 공자께서는 여산(廬山)의 진면목을 드러낼 참인지요?』
그는 그 즉시 보충해서 말했다.
『여전히 은밀을 기하고자 한다면 우리들은 벙어리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공자의 대명을 밝히게 되었을 적에 어쩌면 대외적으로 상대방에게 충격을 주어 압도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외다. 『
군유명은 그만 웃었다.
『은밀을 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외다. 어찌 됐든 간에 오늘 밤 이후 우리는 즉시 공개적으로 수작을 해치울 뿐만 아니라 나흘 동안 당당하게 천하에 이번 일을 알리고 동강에게 폭로할 것이오.』
금우마는 가볍게 손뼉을 쳤다.
『좋소이다. 모두들 완전히 밝히는 것이 가장 좋죠!』
군유명은 말했다.
『다른 고려해 볼 문제는 없소?』
금우마는 나직이 소리 내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허, 없소이다.』
군유명은 칭찬의 말을 했다.
『금형이 천하에 명성을 떨치게 되고 북쪽 지방에서 유명을 누리게 된 것은 무리가 아니구려. 금형이 가지고 있는 재간이 놀라운 것은 고사하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더더욱 치밀하고 완전하기 이를 데 없으니 말이외다.』
금우마는 헤벌쭉 큰입을 벌리고 나직이 웃었다.
『허허허, 저야 그저 겉으로 보기에는 우둔한 사람 같을 뿐이죠!』
군유명은 가볍게 금우마의 비곗살이 두둑한 어깻죽지를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돌리고 조돈력을 바라보았다.
『조돈력, 우리 가세!』
조돈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공자. 공자의 옷은 너무나 눈에 띄기 쉽소이다. 만약에 공자께서 저를 따라 혈뢰 안으로 뛰어들려고 한다면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쉽게 정체가 탄로날 것 같소이다.』
군유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어디 가서 옷을 구해 이 몸을 가리지?』
조돈력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자기가 겉에 걸치고 있는 잿빛 장포를 벗어서는 군유명에게 주었다. 그가 안에 입고 있는 옷은 자색의 경장이었다.
군유명은 잿빛 장포를 받아 신속하게 걸쳐 입고 조돈력의 움츠린 모습을 보며 물었다.
『춥소?』
조돈력은 힘주어 두 팔을 한 번 움직이더니 웃었다.
『춥지 않습니다. 춥지 않아요!』
금우마는 어깨를 으쓱했다.
『조형, 춥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야!』
조돈력은 메마른 음성으로 나직이 소리 내어 웃었다.
『헤헤헤, 그럼 우리 이만 가죠.』
군유명은 더 말하지 않고 금우마에게 손짓을 했다. 조돈력이 앞장을 서고 군유명 등은 뒤를 따라 조심스럽게 몸을 숨겨가면서 혈뢰쪽으로 갔다. 다행히 조돈력이 앞장을 서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초소의 위치를 알고 있는 데다가 군유명이 지세에 익숙하였다.
세 사람은 이리 돌고 저리 돌아 별다른 귀찮은 일을 겪지 않고 혈뢰의 왼쪽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들 세 사람은 한 무더기의 상록수 뒤쪽에 몸을 숨겼다. 이곳에서는 앞쪽 공터의 거대한 석뢰를 바라볼 수 있다.
그 석뢰는 무쇠처럼 단단한 화강석을 쌓아 만든 것이다. 견고하고 두껍기 이를 데 없었고 창문이 없어 겉보기에 하나의 무덤 같았다. 심지어 그 한 짝의 정면에 나 있는 생철로 만들어진 조그만 문은 겨우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이곳이 바로 그 유명안 혈뢰였다. 무공에 조예가 깊고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첫눈에 혈뢰 안에서 사람을 구하는 것이 하늘에 오르기보다 어려운 것을 알고 있었다.
혈뢰는 약 삼 장 둘레였다.
지금 이십 명이나 되는 잿빛 장포를 걸친 대한들이 혈뢰의 사방을 에워싸고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누구의 엄호도 받지 않고 빈 터에 서 있었는데 모든 사람들의 손에는 한 자루의 소나무가지로 만들어진 횃불이 들려 있었다.
청홍색의 불꽃은 퍼덕거리면서 솟아올랐다가 작아졌다가 하면서 번뜩이고 있었다. 그 횃불에 비친 얼굴들은 횃불이 번쩍거림에 따라 더욱 흉측하고 포악해 보였다.
이십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똑같이 대감도(大坎刀)를 들고 있는데 도신(刀身)에서는 살벌한 광채가 빛나고 있었다.
그들은 차가운 밤빛 속에 끊임없이 서성거리고 있었지만 그 서성거리는 범위가 석 자를 넘지 못해 모든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볼 수 있었다.
횃불의 광채도 있고 혈뢰의 철문 가장자리에 높다랗게 달아 놓은 그 커다랗고 붉은 등롱이 비추고 있어서 빈터는 대낮처럼 환했다. 살아 있는 사람은커녕 한 마리의 나는 새도 모습을 감출 수 없었다.
날씨는 꽤나 추웠다.
지금은 약 삼경이 다 된 시간이었다.
나무 뒤에 몸을 숨긴 금우마는 나직이 혀를 차더니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대단하네요. 저 혈뢰는 그야말로 한 채의 돌무덤과 다를 바 없소이다. 보기만 해도 심장이 멈출 것만 같구려. 정말 저 혈뢰 안에 갇히면 기분이 착잡하게 될 것입니다.』
군유명은 나직하고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물론 사람으로 하여금 유쾌한 기분을 느끼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오.』
조돈력 역시 그 말을 받았다.
『나는 모두 합쳐 서너 번 들어가 보았소이다. 하지만 한 번 들어갈 때마다 지옥에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곤 하죠. 그곳은 정말이지 사람이 머물 만한 곳이 아니죠.』
금우마는 다시 물었다.
『공자, 저것도 공자가 설계한 것이죠?』
군유명은 고개를 끄덕엿다.
『그렇소.』
금우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혈뢰의 모양을 두고 말할 때 정말 공격할 빈틈은 전혀 없구려. 첫눈에도 속사정을 환히 알고 있는 익숙한 자의 걸작이라고 보이는군요. 단지, 악독한 것이 결점이라면 결점이겠지요.…』
군유명은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나 역시도 같은 생각이요. 물론 저 혈뢰는 전적으로 큰 죄를 지어 용서받지 못할 자들을 감금하려고 만들었지만 너무 음산하고 냉혹하기 때문에 나 자신도 버려둔 채 사용하지 않았다오. 그런데 뜻밖에도 동강이란 녀석이 이번에 이곳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나에게 충성을 다하는 형제들에게 써먹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소?』
금우마는 잠시 침묵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군 공자, 통로나 문 같은 것이 있는지요?』
군유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소.』
조돈력 역시 입을 열었다.
『이전에 우리들도 이미 자세히 검사해 보았지요. 그 한 짝의 무겁고 두꺼운 생철로 만들어진 혈뢰의 문은 하나의 빈틈조차 찾아볼 수 없었소이다. 통풍구도 모두 석면(石面) 밑에 감추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위에 철책까지 쳐 놓았더구려. 이 혈뢰의 설계야말로 엄밀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하겠더군요…』
그는 군유명을 힐끔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따라서 공자는 천재 중의 천재라고 일컬어질 수 있지요.』
군유명은 그만 어처구니가 없는 느낌이 들어 입을 열었다.
『누에가 실을 뽑아 자기 자신을 묶는다고, 자기가 저질러서 자기 자신이 보답을 받는 꼴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만약에 내가 이번에 이와같은 뇌옥을 만들어 세우지 않았더라면 오늘 밤 이렇게 커다란 위험을 무릅쓸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골치를 썩일 필요도 없었을 것이오.』
조돈력은 조심스럽게 웃음을 띠우고 그 말을 받았다.
『그렇기는, 하지요…』
금우마는 봉루 아래쪽의 잿빛 옷을 걸친 수위들이 나른하게 서성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더니 나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군 공자, 나는 저 누각의 뒷쪽을 돌아 저쪽 화원으로 가야 되는 것이 아닌지요?』
군유명은 혈뢰의 뒷쪽 십여 장쯤 되는 곳을 손가락질하며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그렇소이다. 화원은 바로 그쪽에 있소.』
금우마는 자세히 한 번 살펴보더니 불현듯 눈살을 찌푸렸다.
『공자, 화원의 위치가 뇌옥과 먼 것 같군요. 행동을 하게 되었을 적에 약간 불편한 점이 있으리라고 생각되는군요.』
군유명은 웃으면서 그 말을 받았다.
『그 곳 말고는 몸을 숨길 만한 장소를 찾을 수 없는 것이오. 우리가 지금 위치하고 있는 이곳 또한 안전하지 않소이다. 더군다나 이곳과 혈뢰와의 거리는 화원과 혈뢰와의 거리보다 더욱 멀다오.』
금우마는 나직하고도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그렇다면 저는 행동을 좀 더 빨리 해야 되겠군요.』
군유명은 웃었다.
『물론이오. 동작이 빠르면 결코 손해를 보지 않소.』
금우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자, 그렇다면 제가 먼저 가겠소이다.』
군유명은 당부하기를 잊지 않았다.
『한 잔 차를 마실 시간이 지나도록 보초를 서고 있는 적들이 계책에 말려들지 않으면 즉각 때려잡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금우마는 손을 쳐들어 보였다.
『잘 기억해 두겠소.』
그 말의 여운이 아직도 한랭한 어둠의 장막 속에서 흐르고 있는데 금우마의 굵고 거대한 몸이 가벼운 연기처럼 쏜살같이 쏘아져 나갔다.
순간 번쩍하더니 즉시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조돈력은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더니 찬탄을 금치 못한다.
『금형의 덩치가 아주 큰 데도 재간은 정말 놀랍구려. 얼마나 영활(靈活)하고 민활합니까? 눈깜짝할 사이에 종적을 감추고 말았군요. 허 참! 정말 대단합니다.』
군유명은 빙그레 웃고 그 말을 가로챘다.
『그렇지 않다면 저 사람이 오늘의 명성을 어찌 얻었겠소?』
조돈력은 겸연쩍게 웃었다.
『공자의 말씀이 옳소이다.』
군유명은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들이 나설 차례요.』
조돈력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군유명은 바짝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백석을 깐 길로 들어서서 가슴을 편 채 곧장 혈뢰 앞쪽으로 걸어갔다.
혈뢰와 약 삼 장 정도의 간격을 두게 되었을 적에 그들은 첫 번째의 수위와 맞닥뜨렸다.
그 사람은 체격이 우람하고 얼굴이 거무튀튀한데 눈길에 사람의 그림자가 부닥치자 마자 즉시 횃불을 앞으로 내밀어 무기를 비스듬이 쳐들고 나직하고 흉악하게 호통을 내질렀다.
『누구냐, 게 서라!』
그 한 차례의 호통은 즉시 다른 수위들의 경계심을 불러일으켜 횃불이 다투어 높다랗게 쳐들리게 되었으며 대감도들이 일제히 이쪽으로 겨누어지게 되었다.
동시에 몇 명은 은초를 어느덧 입에 물리기까지 했다.
조돈력은 가슴이 쿵쿵 뛰고 식은땀이 배어나오는 것을 느끼며 억지로 침착하려고 애썼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두 손으로 뒷짐을 진 채 일부러 기세등등하게 호통을 질렀다.
『자네는 흑우(黑牛) 하근(何根)이 아닌가? 본당주도 몰라본다는 말이냐?』
그 대한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자 횃불을 높이 쳐들고 바라보더니 조돈력을 알아보자 재빨리 앞으로 몇 걸음 나서서 공손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소인은 직책과 관계가 있고 거기다가 밤이 어두워 당주님을 일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위엄을 거슬린 점, 아무쪼록 당주께서는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시오.』
조돈력은 흥, 하고 코웃음 치며 위엄 있게 말했다.
『이상 없느냐?』
흑우 하건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
『당주님께 알립니다. 아무 일도 없습니다.』
조돈력은 고개를 끄덕이며 뒤에 있는 군유명에게 손을 내저었다.
『나를 따라 들어가세.』
흑우 하건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는 망설이다가 옆으로 몸을 움직여 조돈력을 가로막았다.
조돈력은 안색을 굳히고 차갑고도 매서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무슨 짓이냐? 감히 나의 앞을 막으려는 거냐?』
하건은 재빨리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급히 허리를 굽혔다.
『소인이 어찌 감히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다만… 당주께서는 어떤 중요한 일이 있길래 혈뢰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지 모르겠군요.』
조돈력은 소맷자락을 걷어붙였다.
『대담한 후레자식 같으니, 네가 감히 본당주의 머리 위에 올라타려는 거냐! 뭐냐?』
하근은 안색이 변하여 두려움에 찬 어조로 말했다.
『소인이 어찌 감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당주께서 그저 어떤 한가한 사람이라도 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거듭 당부를 하고 거기다가 동 나리께서 몸소 반드시 엄밀히 지키고 조심해서 경계하여 간악한 사람들이나 나쁜 자들이 기회를 틈타 뇌옥을 덮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분부가 계셨기 때문에 소인이 당돌하나마 당주에게 찾아온 뜻을 밝혀달라고 청하는 바입니다.』
조돈력은 싸늘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본당주가 할일이 없어서 왔다는 거냐, 아니면 간악한 자나 나쁜 자들의 조종을 받고 갇힌 자들을 꺼내 주러 왔다는 거냐?』
하근의 거무튀튀한 얼굴에 식은땀이 배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진퇴양난의 지경에 처하여 더듬거렸다.
『당주님, 용서하십시오. 소인은 결코 그런 뜻이 없습니다. 소인은 다만 한 말씀 여쭈어 보고 내일 방주께서 하문을 하실 때 변명할 말을 마련해 두려는 것입니다.』
조돈력은 코웃음 쳤다.
『흫, 너희들의 당주를 내세워 나를 겁주려는 거냐? 이놈이 본당주를 어떻게 보고 감히 그 따위 수작을 부리지?』
그는 곧 하근의 따귀를 한 대 올려붙였다. 그리고는 두 눈을 부릅뜨고 다시 입을 열었다.
『좋다. 본당주는 너에게 분명하게 말해주겠다. 이 혈뢰의 안전과 수위의 직책은 모두 다 탁 형의 저단에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가 본당주에게 관리를 맡아달라고 해도 본당주는 귀찮은 일을 맡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데 본당주가 재수가 없느라고 이런 심부름을 하게 됐단 말이다.』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조금 전 본당주는 혼루에서 내려와 별일이 없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본 철위부의 괴수(魁首)인 동 나리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왔다고 하면서 잠을 자고 있는 탁 형에게 일어나라고 할 수도 없었던 차에 마침 본당주가 마침 혼루에서 내려와 살피는 것을 보았다는 거야. 즉시 본당주에게 혈뢰를 한 번 돌아보라고 당부를 하지 뭐냐? 본당주는 내키지 않았지만 거절하기도 뭣해서 탁 형이 할 일을 한 번 대신해 줄 생각으로 이렇게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뭐가 어떻다고? 본당주가 잘못했다는 것이냐? 아니면 본당주가 다시 돌아가서 동 나리에게 자네 하근이 본당주를 믿지 못하고 돌려보냈다고 품해야 한단 말이냐?』
하근은 우물쭈물하더니 용기를 내어 재차 물었다.
『당주님께 여쭤보겠는데요… 혹시 혈뢰 안을 조사할 수 있는 응익영전(鷹翼令箭)을 지니고 계신지요?』
조돈력은 침을 탁, 뱉고는 얼굴이 두 눈을 부릅떴다.
『이 새끼야, 동 나리가 당부했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우리들은 공교롭게 마주치게 된 것인데 본당주가 그에게 응익영전을 줘야 한다고 우겨야 한단 말이냐? 본당주는 오뢰당의 우두머리이다. 더군다나 정식으로 명령을 받들어서 단주를 대신하여 조사를 하려는 것인데 이 대담한 병신 같은 녀석이 감히 본당주를 이렇게 멸시할 수 있단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