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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청춘을 꿈꾸며
청운/ 홍현서
“김 형, 오랜만이요 허허”
“네, 잘 지내시지요!”
언제나 겸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는 지인의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누구라고도 할 것 없이 산책길에 있는 낡은 나무 벤치에 앉았다. 걷기도 숨이 차는지 수인사를 마치고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사실 서로 딱히 묻지 않고 얼굴만 보아도 알만한 사이여서 허물없이 지내고 있다. 김형은 사회에서 만난 두어 살 아래이다. 피곤했는지 아니면 햇살에 얼굴을 맡기는 것인지 졸고 있었다. 청춘이 밖의 일에 메여 자신을 위한 여유가 없었던 것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했다. 굳이 깨우지 않았다.
내가 밖을 나와 본지가 꽤 되었나보다. 한 동안 나오지 못한 사이에 붉은 꽃이 피어있었다. 잎도 없이 약한 줄기에 의지한 채 붉은 실이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한다는 이 꽃을 보고는 나와 같다는 생각에 이르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모두들 엊그제 같다고 한다.
매 순간을 기억하듯 살아가는데 매미의 울음소리가 자아들던 그 날이 점점 희미해진다. 마지막 이파리가 가지를 붙잡는 까닭을 알 것 같은 나이에 이제 아니면 언제 쓸 수 없을 것 같은 이 글을 잡고 무엇을 했는지 삶에게 물어보고 싶다. 인생은 길어졌다는데 왜 그리 짧은지를 저 산을 넘어가는 황혼은 알아 줄 것이다.
돌아보면 그랬다. 사람 사는 것이 별것이었다. 오롯이 자신만 할 수 있고 또한 해야 하는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 역시 그 명리(命理)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도 나의 것이다. 세상이 그렇다. 인간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천체, 산천, 동식물 등 모든 피조물 따위의 모든 세계는 사계절과 흡사하다. 그 속에서 살아온 한 일생을 스치고 있는 것이다.
작은 지면에 담을 수 없는 줄을 아는데도 웃을 수 없는 것은 이렇다. 알 수 없는 그 때로 어찌 돌아 갈 수 있을까마는 초봄과 같은 유년기에는 미생처럼 살고 죽음이 무엇인지조차 알지도 못하면서 오직 먹는 그 자체로 ‘젖 달라고 그리고 밥 달라’고 울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듯 했다. 울기만 하면 해결되던 때에 어머니께서 당신의 속도 많이 끓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부끄럽고 안타깝게도 이때를 넘긴다 해도 새로운 고갯길이 기다린다. 배움과 싸우듯 직면하게 된다. 과외 공부, 입시 준비 등으로 진학의 싸움터에서 일대 전쟁을 치러야 하며 철이 조금 든다. 꽃시샘 추위 속에서도 피는 여린 싹이 맞는 계절의 환희와 만만치 않는 세상살이를 배우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도 그 때가 좋다.
누구나 다 그러하듯이 다 아는 일이다. 막연하면 불안하고 안보이면 초조해 하고 그러다가 보일 것 같으면 또 다시 보이지 않는 것이 삶의 고통이면서 묘미이기도 하다. 얼어붙은 개울가에 살얼음이 녹을 때면 물기에 해살이 들어오고 어느 새 연둣빛 싹이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아마, 십 수 년 동안 보았을 것이지만 마땅히 그런 것이라고 여기며 무심히 지나쳤던 것이다.
가끔은 그렇다.
여느 때와 같으면서도 문득 어느 날에 팍팍한 삶을 고민하다가 하늘을 보고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보고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발밑에 차이는 낙엽의 무더기를 보면서 생각하게 한다. 인생을 닮았다고 할까. 나는 그렇게 보고 싶었다. 시샘에도 싹을 틔우고 무더운 여름을 견디던 그 세월 속에서 연둣빛 이파리는 사라지고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무릇 군(群)이 붉은 빛으로 오를 때, 그 때 비로소 잎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파리를 그리워하는 꽃무릇이다. 삶을 닮은 꽃이다.
가느다란 6매의 꽃잎으로 이루어져 붉은 수술들이 휘어지는 모양으로 피어있다. 선선한 바람이 이는 계절이 오면 피는 것이다. 잎이 피고 사라지고 다시 꽃이 피고 그렇게 지고 난 다음에야 잎이 생겨나는 것이다. 볼 수 있을 만 하면 사라지고 잊을 만 하면 피어난다고나 할까. 이루었다 싶으면 세월은 지나가고 세월이 지나서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으면 사라는 것들의 연속 속에서 삶의 여운은 길어진다. 그리고 이 잎은 긴 겨울 동안 흙속에 있다가 춘삼월을 기다려야 한다. 하기야, 이 꽃에 담긴 그 사연들이 얼마나 많을지는 알 수 없다. 불공드리러 왔던 처자를 사모한 수도승의 아쉬움이 죽어 꽃이 되었다는 전설은 인생의 여정에서 맞닥뜨린 선택과 결정으로 인한 기회의 비용과 그 결과의 괴리가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계절의 섭리라고 치면 그만이지만 때로는 꽃무릇의 이파리와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것처럼 선택과 결정이 온전히 나의 것은 아니다. 갈수록 힘들다는 취업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적성과 적극적 관심으로 선택하지 못했던 대학진학처럼, 먹고사는 데 지장 없고 번듯한 모양새를 갖추기를 원한다면 그만한 요건을 쌓아두고 있어야 한다. 마땅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무수하게 기도하며 어머니의 정화수가 다 마를 만큼 직장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처럼 느껴졌다. 학생 모자를 눌러쓰고 보았던 아름다운 밤하늘은 직장 구하기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일하기의 과정에는 없었다. 산다는 것이 그렇다. 보기보다 그리고 듣는 것 보다 더 힘든 세상이다.
“홍과장, 무슨 일을 이렇게 합니까!”
며칠을 새며 온갖 서류를 정리하여 결재를 기다리는 중에 허다하게 들었던 소리이다. 나의 실수도 있지만 상사의 자기감정을 쏟아내는 말에 그리고 억지스러운 그의 말투에 견디기 힘든 일이 다반사이다. 이제와 후회스럽지만 아마도 나도 후배사원들에게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 비와 구름 그리고 바람이 세차다 하여도 이것을 견디어 내면 찬란한 햇빛만 비추는 날을 기대하였는지 모른다. 어리석다는 것을 알 때면 우습게도 비워야 하는 나이에 접어든다. 여전히 웃음이 나온다. 다 알 것처럼 행동했던 그 때가 그렇다. 자기 인생에 대하여 진로를 놓고 고민도 하고 사랑에도 눈을 뜨기 시작하여 마음을 바로잡지 못해 방황하던 때도 많았다.
여름과 같은 중년기를 맞이할 때도 그랬다. 아침 일찍 일어나 빈틈없이 터져나가는 전철을 타고 출근을 해야 하고 새로운 아이템의 프로젝트가 생기면 관련 자료를 구하느라 동분서주하였다. 늘 같은 바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대가 변하면 바람의 세기도 다른 것이다. 자료는 새로워야 했고 새로운 자료는 가까이 있지 않았다. 자료를 위해 대학 도서관으로, 외국 대사관으로, 정부기록보존소 또는 중앙도서관으로 심지어는 외국으로 출장을 가야 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더니, 새로운 것도 그리고 탐구해야 할 것도 많았다.
새로운 바람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뚫고 나가야 했다. 해외 등 현지의 사례와 문제점을 발굴하고 해결점을 찾는 등 새로운 아이템의 계획수립을 완성하기까지 많은 노력도 필요하였다. 이렇게 해도 나의 결실은 햇살을 받는 것만은 아니다. 땀으로 이룬 젊은 날의 피로는 그러한 것들의 훈장이 아니었다. 아직도 들리는 듯 질책이 아련하다.
“홍과장, 이렇게 밖에 못합니까!”
기가 죽은 나에게 한 번 더 자존심을 밟는 소리는 크게 울린다.
“이래 가지고 승진할 수 있겠어요?”
풀이 죽어 회사 모퉁이에서 생각에 빠질 때, 어깨를 ‘툭’ 치는 친구의 이끌림으로 대폿집에서 그날을 달랬다. 화려하지 않은 이력과 경력 그리고 학력은 척박한 땅에서 올라온 가녀린 꽃무릇의 줄기처럼 보인 것이다. 부족한 실력도 채워야 하고, 자존심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은 길어도 짧다는 생각에서 살아야 한다는 독한 마음을 먹게 된다. 막상 독하지도 못하면서 그랬다. 이러다 보니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도 마음 놓고 다녀 올 수도 없었다. 물론 시대가 어려운 당시의 상황이다. 잘 해야 가까운 온천을 다녀오는 것으로 일생의 기념을 보냈다. 그렇게 다녀와서인지 그에 대하여 내자의 질책을 지금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아쉽게도 그 이후 여행은 없었다. 더러 동료들이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가족여행은 꿈꾸지 못했다.
삶의 요령을 배우지 못한 탓에 결혼 생활하면서 아들딸 손 잡고 가족과 함께 휴양지 한번 제대로 다녀 보지도 못하고 새워놓은 계획의 추진과 성과를 올리기 위하여 현장 확인 출장과 잦은 시간 외 근무 등으로 가족 중심의 생활과 기쁨을 누려보지도 못한 세월이 흘러갔다.
아직도 꽃무릇처럼 길게 오른 줄기가 인생의 세월처럼 여린데 줄기보다 크게 보이는 꽃을 이고 서 있는 느낌을 가진다. 낙엽이 내는 소리는 이슬에 젖어 짓이겨지는 계절에 아침저녁으로 차가움이 부쩍 가슴에 들어온다. 늦가을이 그렇다. 가을과 같은 장년기는 더 그렇게 매섭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그리고 가을은 가을대로 바쁘기는 매 한가지이다.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하여 간부 회의에 참석해야 하고 관계 직원에게 추진상황을 보고 받아 문제점과 대책을 찾아 당면 과제를 지시하며 다독여야 했다. 추진실적이 목표에 미달 하거나 문제가 발생하여 사업추진이 어렵게 되면 입안이 바삭바삭 마르고 식욕이 떨어지며 밤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는 머리 아픈 일을 겪어야만 했다.
짧은 가을 햇살에 들판의 추수는 찬바람 속에서 더 분주하다는 것도 알았다. 늘 싱그러운 이파리로 가득할 줄 알았던 나무이다. 까치밥을 남긴 감나무가 몇 장의 이파리에서 지난여름을 그리워하는 슬픈 계절의 미상(微傷)이다. 이파리들이 떨어져서야 갈라져 버린 껍질이 보이고 그 겉껍질이 떨어지는 것은 몸이 삵아 진다는 것이다. 간부가 되면 가을날의 열매가 익어 결실을 따는 것이라 생각했다. 수확만 보인 까닭이다. 세월은 길지만 열매를 거두는 것은 짧았다. 세미나 참석이며 해외 연수에 국내 출장 해외출장 등으로 몸이 아파도 병원 가볼 시간조차 힘든 때가 수없이 많았다. 이러고 보면 자기 맡은 일만 충실히 하면 되는 평직원 때가 그리웠다.
이파리를 보고 싶어 하는 꽃무릇의 붉은 꽃의 심정이랄까! 아이들 공부시키랴, 좁은 집에서 조금 더 넓은 집을 마련하랴, 가족의 부양책임을 지고 앞만 보고 살아오다 보니 인생에 가을이 가까이 찾아오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낙엽을 짚고 벤치에 앉아 ‘이것이 인생인가보다!’라고 외치는 햄릿처럼 고독한 소리를 하늘에 넣어보기도 하였다.
서산을 넘는 황혼이 아름답다고 누가 말했는지는 모른다. 이 말이 왠지 낯설지 않지만 아직은 듣고 싶지 않다. 세월을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노년기 초반에 접어들어 귀밑머리 밑자락에는 흰서리가 둥지를 틀고 눈 고리 가는 섶에는 실주름이 골을 짓는다. 마음은 상록이다. 이제는 바랜 청춘으로 살아도 원시가 근시로 바뀌어 볼록렌즈로 바뀔 즈음에 이르고 있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은 많다. 하지만 세월은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집에 가서 애기나 보셔요!”
간곡하게 팔을 붙들고 커피를 내민다. 부아를 내는 소리보다도 더 서럽게 들린다. '이 나이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하늘을 본다. 허무하게 흘러가는 구슬픔이 가슴에서 쏟아진다.
고운 세월을 보리라 / 홍현서
인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긴 인생길 여행을 떠난다
동리 개구쟁이와 모여 놀고
철모르는 젊음을 앞세워
만만한 폐기와 젊음의 정력을 쏟고
잊지 못할 사랑바다를 헤엄쳐도 보았다
시간이 쌓여 세월이라지만
힘든 인생 아랑곳 하지 않고
세월은 길어도 인생은 짧더라
무정한 세월은 저 혼자 흘러가고
나 또한 힘들게 달려온 꼭지 점에
황혼의 저 빛이 허무하지만은 않으니
남은 노을빛은 더 황홀한 것이라 여기고
오늘도 느긋하게 마침표를 찍는다
물론 푸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손에 마땅히 쥐어진 것이 없다고 하면 몹시 욕심 사나운 심보이다. 충분히 이를 알면서도 새삼 나이를 확인해주는 세상의 소리에서 이제는 무엇을 준비하기 보다는 내려놓아야 하는 나이라는 것을 안다.
이제는 이 글도 정리해야겠다. 딱히 ‘인생은 이것이다’라고 할 만한 것을 제시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 하여도 사람의 머릿수만큼 다양한 삶을 두고 확정적인 말투를 감히 내리는 것도 두렵기 때문이다.
다만, 인생을 살면서 가는 길이 아무리 바빠도 여유로움을 한번이라도 돌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여전히 무엇이 삶의 보람인지는 알 수 없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 마음에 걸린다. 힘든 인생살이에 전진, 진보, 속도, 빠름이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가끔은 쉬어 가야 한다. 그러면 삶은 훨씬 윤택해질 것이다. 그 동안 진정한 나의 꿈을 깨닫지 못하고 삶의 방식에 치어서 "고약한 생존의 요건뿐만 아니라 성공도 함께'라고 생각하며 부의 증식과 신분 상승에만 눈이 어두웠던 느낌이다.
이제는 내 인생에 가을이 찾아 왔음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한때는 남부럽지 않은 젊음과 사랑과 애환도 있었건만 예약된 황혼이기에 석양의 고갯마루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해를 아쉽게 바라보면서 젊은 시절 모든 영욕을 뒤로 한 채 활동의 나래를 접고 인생 사계절의 겨울 준비를 하고자 한다.
이 긴 동면의 겨울 동안 하고 싶은 것이 있다. 다행히 두 가지로 남아있는 삶에 여유의 씨앗을 심으려고 한다. 늦게 알게 된 시(詩)가 그것이다. 시는 짧은 데 담을 것은 많다. 얼마나 담아낼지는 알 수 없다. 게다가 제대로 할지도 모르고 누구도 읽어줄지 아니면 들어 줄지도 알 수 없다. 개의치 않는다. 이 나이에 하는 것은 부끄럽지만 나만을 위로하여도 족하다. 또 하나는 이제껏 내자에게도 꺼내지 못한 말을 오늘은 해야겠다. 전원생활을 하고 싶다는 내자의 말을 들어주어야겠다. 이 나이에 이것을 바랜 청춘이 할 수 있는 새로운 것으로 삼아야겠다. 그리고 먼저 전원생활을 하는 선배의 허튼소리라도 다시 듣고 싶다.
‘어이, 홍부장, 농사 어떻게 짓는 거야 ㅎㅎ’
누구도 묻지 않는데 속으로 웃어본다. 아파트들 사이로 넘어가는 햇살이 희미해지고 있다. 아직도 조는 김 형을 깨우고 집에 들어가서 내자와 이야기를 해야겠다. 아, 가슴이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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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은글 감사합니다 늘 성필 하시고~
오늘을 감사 하며 사랑과 겸손 맛과 멋 향기로
고은 인생 삶 즐거운 시간 행복 하시고 항상 건강 조심 하세요~
봉황덕룡시인님 한결같이 창주시고
좋은 덕담까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ㅣ
좋은 글 마음에 담아 갑니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사랑으로
영원히 남아 있었으면.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날
되시길 기도합니다
애천이종수 시인님 부지런하시고 사랑도 많으셔요
아름다운 글로 정성어린 덕담을 주셔서
무한히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오랫만에 긴글 보네요 청운님
수고 하셨어요
잼있게 가을 독서 하듯 읽었습니다 ㅎㅎㅎ
이글을 수필 방으로 옮겨 놓겠습니다 시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