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팍상한 폭포 기행
필리핀 마닐라 남부에 위치한 팍상한 폭포 (Pagsangjan fall)다.
안내를 해주신 조앤실장이 상세한 필리핀 역사와 팍상한 폭포에 도산안창호 선생께서 1928년 다녀갔다는 말에 귀를 쫑끗하게 했다.
이곳이 이름은 흔히 팍상한 폭포라고 알고 있지만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름이 무려 3개나 된다고 한다.
팍상한 폭포는 행정구역 상 팍상한 마을에 있는게 아니고 폭포로 가는 카약을 닮은 보트를 타는 선착장이 팍상한 마을에 있기에 팍상한으로 알려졌으며, 실제로는 이웃인 카빈티 Cavinti 마을에 있기에 정식명칭은 Cavinti fall이라고 한다.
또 다른 이름은 막다피오 폭포Magdapio fall인데 이 이름은 전설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옛날 그곳에 팍상한 폭포는 없었고
그저 밀림으로 덮인 고원과 두줄기의 강만 있었다.
그곳에 Baludad와 Magdapio라는 형제가 살았다.
어느 해, 몇 달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지독한 가뭄으로 식물이 말라죽고 동물은 사라지고, 강도 메말라 버렸다.
고통을 겪던 형제는 비를 내려달라고 밤낮으로 기도했지만 신들은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몸이 약했던 형 Baludad는 먼저 갈증으로 죽었고 동생 막다피오는 슬픔 속에 강이 내려다보이는 산비탈에 형을 묻었다.
그 산이 있는 곳은 Baludad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막다피오는 말라붙은 강바닥을 거슬러 상류까지 올라갔다.
바위 절벽으로 막힌 곳까지 갔지만
역시 그곳에도 물은 없었다. 그는 흐느끼며 외쳤다.
'신들이여! 물은 어디에 있습니까?'
막다피오는 화가나서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힘껏 바위에 내리 꼿았는데 지팡이가 세워진 자리에서 물이 솟아났나 폭포가 되어 지금까지 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방카라는 카누에 2~3명씩 나누어 타고 카누 앞쪽에 한명 뒷쪽에 또 한명이 급류를 타고 거슬러 올라 간댜. 강물의 수위에따라 좁은 강을 맨 몸으로 이끌고 발로 바위를 차며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데 카누 위에 앉아 있기가 미안함을 금치 못했다.
하필 일행중 체중이 가장 많이 나가는 세명이 탄 가누는 중간에 출발 했으나 맨나중에 도착했다.
카누도 찟껴다는데 괜찮은지 몰라~
올라갈 때는 약 한시간 가량소요되며 내려올때는 약 20분 가량으로 순식간에 내려온듯하다.
올라갈때 사진을 담아야는데 아쉬움이 크다.
방카라 불리는 카누는 아주 가늘고 길게 생겼다.
길이는 7미터 가량폭은 가장 넓은 곳이 1미터도 안되보였다.
한국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하라는 조앤실장이 이야기에 동감이 되었다.
이곳에서 빙카를 다루는 사람틀은 대부분 인근 마을 사람들로 엄격한 자격시험을 통과한 자만이 비로소 빙카맨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예전에 보트맨은 약 2,000명이나 되었으나 코로나 여파로 줄어 들었고 조합이 있어 일하는 순번을 정해 나오며 보통 일주일에 1~2번 정도 일을 한다.
이들은 강물길을 훤하게 꿔뚫고 있었다. 14곳의 급류를 거슬러 올라갈 때는 노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발로 물속 바위를 딛고 방카를 위로 끌어올리기도 하고 물이 없는 곳은 배를 들어 올려 밀어야만 지나갈 수 있었다.
잠시 잠시 쉬면서 숨을 가쁘게 내뿜고 다시 출발한다.
팍상한 폭포입구에서 내려 폭포앞에 대기하고있는 '발사'라는 뗏목에 올라 폭포동굴속으로 진입하여 폭포수를 온 몸으로 물을 맞으며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하니 너도나도 두손모아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전에는 강 절벽위로 난 길을 따라 신비에 막대기도 볼 수 있다고 하다 워낙 미끄러워 패키지에서 재외되었다고 한다.
팍상한 폭포는 3단, 92m에 달한다고 하지만 강에서 보이는 폭포 높이는 눈에는 약 40미터 가량될듯 하다.
강이 절벽은 수성화산이 특징인 응회암층이 화산재갸 켜켜이 쌓이고 탄낭구조도 보인다.
급류타기 의 기원은 팍상한 폭포는 음기가 강한 곳이라 예로부터 딸을 낳길 바라는 필리핀 여인들이 치성을 드리러 많이 찾는 곳이었다고 전해온다.
배트남이나 필리핀 등이 나라는 여성중심 모계ㅈ사회라 여아를 선호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 카톨릭 선교사들이 폭포가 어떤 곳인가 궁금해 찾아가면서 외부에 그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고 하며 팍상한 폭포의 급류타기는 스페인이 필리핀을 점령하고 있던 19세기 말, 스페인 귀족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해온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 최초로 팍상한 폭포로 갔었던 것으로 보인다
1929년 4월, 도산 안창호 선생이 팍상한 폭포에서 방카를 타고 급류타고 사진을 찍은 것이 획인 되었다.
잘 알려져있지는 않지만 도산은 당시 보기 드문 세계 여행가로 소련에서 발급 받은 여권을 최초로 사용했다고 하며 평생동안 여권을 4~5권 갱신해가면서 여러 나라를 돌아봤다.
당시 여권이란 명칭 대신 여행권, 집조, 호조라고 불리웠다.
1902년, 도산은 대한제국 명의의 집조를 발급받아 부인 이혜련여사와 함께 일본, 캐나다, 미국을 방문했다.
1911년에는 러시아를 횡단해서 유럽을 방문하고 런던에서 배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여 미국으로 가면서 세계일주를 하기도 했다.
1917년에는 멕시코 한인들의 초청을 받아 멕시코 일대를 순회하기도 했다.
1919년에는 상하이에서 독립운동활동하였고 1925년에는 미국 동부지역을 순회했다.
1929년 2~3월에는 필리핀에 살고 있던 50여명의 한인 초청을 받아 필리핀을 방문했다.
이때 한인단체 대한인국민회 필리핀 지부를 설립하여 독립운동을 지원하였고 마닐라에서 삼일절 기념행사를 거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필리핀을 방문한 목적이 또 있었는데 앞서 길림에서 실패했던 한인 이주민촌 건설을 위한 부지를 찾는 것이었다.
1929년 4월, 도산은 동서인 김창세 박사 부인 이혜련 여사의 여동생인 이신실과 혼인하여 함께
한인 이주촌으로 '파인즈'라는 마을을 둘러보았다고 한다.
아쉽게도 필리핀 이주민촌 건설사업은 실패하고 도산은 우리나라와 기후가 비슷한 마닐라 북부 고산지대의 바기오를 후보지로 정하였으나 당시 필리핀의 미군정이 땅값을 너무 높게 불러서 결국 무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높이가 100여미터나 되는 협곡을 지나 한시간 반가량 방카맨 1인당 2~3달러 팀을 주는데 별 아까움이
마닐나 시내에서 팍상한 폭포까지
오가는 시간이 6시간이나 소요되 하루를 공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가는길에 조앤일장이 쏘는 아주맛있다는 부코파이는 내 입맛에는 그냥딱히 생각나는 맛이 아니다.
첫댓글 멋진 여행하셨군요.
20년쯤 전엔가 저도 한 번 가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