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문은 늘 그랬다 그녀가 떠나고 절룩이며 걸어가는 잠의 저편 웅숭깊은
할머니 우뚝 서서 얼시구절씨구 장단을 맞추는 동안 수런거리는 이승의 그
림자, 언제부터인가 내 안 깊숙이 도사리고 있는 어둠이 외진 시궁창에서
파닥이다가 때론 그슨대*로 까마득한 시공을 건너오다가 밤새 사악한 피
로 얼룩진 문밖 내쳐진 육신이 세파에 갇혀서 오지도 가지도 못한다는 소
식 바람결에 듣던 날 불타오르는 하늘길 따라 성큼성큼 천계의 허한 내장
밑바닥까지 휩쓸고 간 제주들판 낮은 풀잎 도란도란 모여 사는 할머니 나
라 그 잠은 깊은가요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을 향해 울부짖는 거룩한 비명만
남아서 몰락하는 잠의 이족 서늘한 어둠 건너오신 할머니 그늘에 묻힌 토
산마을 갯가 구시렁거리는 소리, 금성산 구렁이 한 마리 똬리를 틀고 나앉
아 못 잊을 누군가의 살과 뼈를 조각조각 모자이크하면서 제발무사하기
를, 선간을 건너며 휘청이는 그녀가 다시 돌아오기를, 숭숭 뚫린 돌담 사이
불의 나라 제단을 떠도는 탕아처럼 이렁이는 풍문에 갇혀서
*'그슨대'는 어둠을 실체화한 요괴로, 컴컴한 밤 한없이 큰 형상으로 나타난다
는 귀신.
무심을 따라가다
ㅡ하롱베이
남녘에는 맑은 별들이 오숭도순 모여 산다
비릿한 바다 냄새를 뚫고 곳곳에 박혀 있는 휑한 눈망울
아무래도 무릉도원인가 싶은데
한때 삼신할망을 따라나섰다가 잠시 의탁했던 비양도, 그 건너
남극성쯤은 아닐까
내가 만일 샤먼의 눈 속에 들어 부표처럼 마냥 흘러왔다면
방울소리 북소리 징징 울어대는 하늘 문전에서
천지가 솟구치던 그날처럼 앵앵 울어볼 참인데 할머니는
자꾸만 나를 붙들며 칠성으로 가자 하고 돌아보면
언제부터인가 내밀한 곳에 침잠된 설렘이 넘실대는
별 무리 사이
단 한 번 눈길이 딱, 머물렀을 뿐인데
제주에서 따라온 적막이
하늬바람에 떠밀려서 죄다 지워질 것만 같은
배방송*으로 띄워보낸 허망한 꿈일 지도 모를 일인데
어쩌자고 몸 안 깊숙이 적멸의 길을 닦아 놓았는지
곳곳에 불을 켠 영등이
무심(無心)인 듯
무심(巫心)일 듯 하롱하롱
떠도는 남녘
*'배방송'은 제주 영등굿에서 영등신을 본국인 '강남천자국' 또는 '외눈박이섬'
으로 보내기 위해 짚이나 널판지로 만든 작은 배에 여러 가지 재물을 조금씩
실어 바다에 띄워 보내는 제차(第次).
김원욱 1993년 '예술세계'로 작품활동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