Ⅵ. 생로병사의 신비 사람이 태어나 자라고 병들고 늙어서 죽는 순환은 누구도 비켜 갈 수가 없다. 하지만 한 번 사는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는 사람마다 같지 않다.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아옹다옹하다가 결국 빈손으로 가는 사람도 있고, 성실한 생활과 넉넉한 마음으로 주변에 많은 기쁨과 감동을 남기고 가는 작은 거인(巨人)들도 많다. 어떤 삶을 사느냐 하는 것은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1. 탄생과 성장 아니, 벌써 준선이 백일이에요? 대학생이 그런 유치한 말을 하면 안 되지.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도 못 들었단 말인가? 저 사람은 약관의 나이에 벌써 출세를 했군. (1) 백일(百日) 잔치는 왜 하나? 생명의 탄생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벅찬 감동을 준다. 탄생 자체가 커다란 승리요, 기적이다. 아기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열 달을 채워 태반이 돌아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참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임신(姙娠)을 나타내는 한자에는 포(包)와 잉(孕)이 있다. 포(包)는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글자이다. 감싼다는 뜻의 포(勹) 안에 아직 사람의 형체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아기(巳)가 들어 있다. 임신 초기의 모습이다. 잉(孕)은 태아의 모습이 완전히 갖추어진 형태이다. 아기(子)가 태(胎) 아래쪽으로 내려와 있으니 배가 꽤 부른 상태를 나타낸다. 잉태(孕胎)·회잉(懷孕) 같은 말들은 모두 임신과 같은 의미로 자주 쓰던 표현이다. 한편, 동양에서는 태아가 어머니의 태 속에 자리잡는 순간부터 생명이 시작된 것으로 생각했다. 아기가 태어난 후 삼칠일(三七日), 즉 21일까지는 금줄을 걷지 않고 이웃은 물론 가족들도 출입을 삼갔다. 혹 상가(喪家)와 같이 부정(不淨)한 곳을 다녀온 사람은 절대로 아기가 있는 방에 출입할 수 없었다. 산모도 닭고기나 개고기,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 삼칠일이 지나면 이것을 축하해서, 새벽에 삼신상(三神床)을 올리고, 수수 경단을 만들어 일가친척과 손님을 청해서 대접하였다. 아기가 태어난 지 백일(百日)이 되면 백일상(百日床)을 차렸다. 아기가 아무 병 없이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백(百)은 꽉 찬 숫자이므로 아기가 이날까지 탈 없이 자란 것을 축복하고, 한 인간으로 성장을 시작하는 출발점으로 인식하는 의미였다. 백일상은 삼신상(三神床)이라고도 한다. 삼신할머니에게 장수를 빈다는 뜻이다. 백일에는 여러 가지 떡을 했다. 백일떡에는 백설기·수수팥떡·인절미·송편을 하였다. 여기에도 다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백설기는 정결(淨潔)과 흰머리가 될 때까지 장수(長壽)하라는 의미를, 수수팥떡은 부정(不淨)한 기운을 막는 주술적인 뜻을 담고 있다. 인절미는 찹쌀로 만들어 차지고 단단하라는 축복을 담았다. 송편은 속을 넣은 것과 넣지 않은 것 두 가지를 만들었다. 속이 꽉꽉 찬 사람이 되고, 또한 속이 넓은 사람이 되라는 뜻을 담았다. 백일떡은 100명에게 나누어 주어야만 백 살까지 산다고 믿어 이웃과 나누어 먹었다. 우리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한 살로 친다. 그 까닭은 어머니의 뱃속에 있던 열 달을 계산하였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태어난 지 1년이 지나야 한 살로 친다. 뱃속의 아이를 어떤 존재로 바라보느냐가 나이를 셈하는 방법에서 이미 드러난다. (2) 유치(幼稚)하기 짝이 없다 아기가 자라 아이가 된다. 한자로는 아기는 아(兒), 아이는 유(幼)자를 쓴다. 아(兒)는 갓난아이다. 아(兒)는 숨구멍 신(囟)자와 사람 인(人)자를 합친 글자이다. 신(囟)은 아기의 정수리에 있는, 천문(天門)이라 부르는 말랑말랑한 숨구멍을 말한다. 갓난아이는 입과 코 외에 머리로도 숨을 쉰다. 그러니까 아(兒)는 아직 정수리의 숨구멍이 막히지 않은 어린아이를 뜻한다. 유(幼)는 작고 약하다는 뜻의 요(幺)와 힘 력(力)을 합한 글자이다. 힘이 약한 사람을 뜻한다. 치(稚)도 어리다는 뜻이 있다. 이 두 글자를 합치면 유치(幼稚)가 된다. 아기가 자라, 걷고 말을 배워 학교에 가기 이전까지의 아이를 일컬어 유치(幼稚)라 하였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아이들이 다니는 교육 기관을 유치원(幼稚園)이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어른이 나잇값을 못 하고 어린아이처럼 굴면 유치하다고 말한다. 어린아이를 뜻하는 한자에 아이 동(童)자가 있다. 유치(幼稚)보다 조금 더 큰 아이에게 쓴다. "그런 것은 삼척동자(三尺童子)도 다 안다."고 할 때 삼척동자는 키가 1미터 남짓 되는 아이를 말한다. 동(童)은 본래 아이의 뜻이 아니었다. 갑골문을 보면 윗부분은 문신 새기는 칼을 형상화한 매울 신(辛)자를 썼고, 그 아래 눈 목(目)자, 다시 그 아래에 흙 토(土)자를 썼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칼로 땅 위에 있는 사람의 눈을 찌르는 모습이다. 예전 전쟁에서 사로잡은 포로들 가운데 남자 노예인 경우 반항하지 못하게 하려고 한쪽 눈을 칼로 찌르던 관습이 있었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남자가 죄를 지으면 노예가 되는데, 이를 동(童)이라 한다."고 적고 있다. 전쟁에서 포로가 되는 것은 성숙하지 못했거나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노예를 나타내던 이 글자가 점차 미성숙한 사람, 약한 사람을 뜻하는 글자로 바뀌었고 뒤에 아이의 뜻으로 굳어졌다. 예전에는 늙은이, 젊은이라는 말은 있어도 어린이라는 말은 없었다. 옛말 '어리다'는 '어리석다'의 의미였다. 그러니 '어린애' 또는 '어린아이'라는 말은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아이라는 뜻이었다. 한자로는 동몽(童蒙)이다. 그런데 어린이날을 제정한 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 1899~1931)이 '늙은이', '젊은이'와 대등한 개념으로 '어린이'란 어휘를 사용하였다. '이'는 인격을 갖춘 존재를 나타낸다. 선생은 나이 어린 사람도 인격을 갖춘 존재이니 마땅히 인격을 존중해서 어린이로 불러야 한다고 하였다. ※ 어린아이를 가리키는 총각(總角) 지금은 결혼하지 않은 젊은 남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는 총각(總角)은 원래는 어린아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총각은 머리털을 뿔(角)처럼 묶었다(總)는 뜻이다. 예전 중국에서 어린아이들이 양쪽 머리끝을 뿔처럼 묶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다. 아래의 두 그림에서 양쪽 머리 끝을 뿔처럼 묶은 모양이 보인다. (3)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란? 어린이가 자라면서 남녀의 분별이 생겨난다.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은 지금도 흔히 쓰는 말이다. 글자대로 풀면 남녀는 7세가 되면 자리를 같이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말은 《예기(禮記)》 <내칙(內則)>편에 나온다. "아이가 여섯 살이 되면 수와 방향을 가르쳤고, 일곱 살이 되면 자리를 같이하지 않으며, 여덟 살이 되면 소학에 들어간다."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은 남녀가 일곱 살이 되면 같은 자리에 앉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자리 석(席)은 원래 석(蓆)에서 나왔다. 석(蓆)은 깔개나 돗자리, 까는 요를 말한다. 그러니까 부동석(不同席)은 한자리에 합석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고, 한 이불에 잠을 재우지 않는다는 말이다. 남녀유별(男女有別), 즉 남자와 여자는 구별이 있다는 윤리를 유난히 강조하였던 조선 시대에 대한 선입견(先入見) 때문에, 한자리에 같이 있는 것조차 안 된다는 뜻으로 오해한 것이다. 이렇게 남녀의 구분이 생기면서 청소년(靑少年)의 시기로 접어든다. 청소년(靑少年)이란 청년(靑年)과 소년(少年)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나이라는 뜻이다. 예전에는 없던, 새로 생긴 말이다. 청소년은 어린이가 아니며, 그렇다고 성인은 더더욱 아니다. 이런 시기를 과도기(過渡期)라고 한다. 자아는 불완전하고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해진다. 그래서 이때를 달리 말해 사춘기(思春期)라고도 한다. 봄은 만물이 약동하는 시기이다. 인생의 본격적 출발점인 청소년기를 청춘(靑春)이라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봄이 갖는 약동성, 푸름은 늘 젊은이를 연상시킨다. (4) 약관(弱冠)은 몇 살? 청소년의 개념이 없던 시절에는 아이와 어른의 중간이 없었다. 아이에서 훌쩍 어른으로 넘어갔다. 남자는 상투를 틀어 갓을 쓰고, 여자는 쪽을 찌고 비녀를 꽂는 것으로 성인이 되었음을 표시하였다. 성인이 되는 의식을 관례(冠禮)와 계례(笄禮)라고 하였다. 관(冠)은 '갓', 즉 머리에 쓰는 모자이다. 멱(冖)과 원(元), 촌(寸)이 합쳐진 글자이다. 머리가 큰 사람(元)에게 손[마디 촌(寸)은 원래 팔꿈치 주(肘)의 본 글자다.]으로 모자(冖)를 씌우는 모습을 나타낸다. 곧, 남자에게 상투를 틀어 관을 씌우는 의식이 관례(冠禮)이다. 본래의 유교 규범에 따르면 이 관례는 20세 때 행하였다. 20세가 되면 상투를 틀고 관을 씌워 준다고 해서, 20세를 약관(弱冠)이라고 하였다. 성인이 되기는 하여도 아직 약하기 때문에 약할 약(弱)자를 앞에다 붙였다. 여자는 쪽을 찌고 비녀를 꽂았으므로 비녀 계(笄)자를 써서 계례(笄禮)라고 하였다. 여자도 비녀를 꽂으면 어엿한 성인으로 대접을 받았다. 관례와 계례는 성인이 되었음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의식이므로 지금의 성년식(成年式)에 해당한다. 옛사람들은 관례를 혼례(婚禮)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겼다. 관례를 치러야 비로소 어른 대접을 받았다. 아이 때 부르던 아명(兒名)을 버리고 어른에게서 자(字)나 호(號)를 받았다. 자(字)는 이름 대신 부르는 별명인데, 여기에는 그 사람에 대한 바람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자를 광지(光之)라 하면 빛나는 사람이 되라는 뜻을, 순보(純甫)라고 하면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사람이 되라는 뜻을 담았다. 호(號)도 보통 스승이 내려 주는 것을 받았는데, 간혹 자기의 호를 직접 지어 쓰기도 하였다. 관례를 올리기 전에는 어른들이 낮춤말인 '해라'체를 썼지만, 일단 관례를 올리고 나면 '하게'체로 높여 인격체로 대우해 주었다. 이전에는 어른이 앉아서 절을 받았지만, 이때부터는 어른도 답례를 하였다. 나비의 화려한 모습을 보면서 누가 애벌레 시절을 상상이나 하겠는가? 여름 매미는 단 열흘을 울기 위해 7년을 땅속에서 지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사랑 속에 성장하면서 많은 시련과 역경을 통하여 점차 책임감을 지닌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해 가는 것이다. 2. 질병과 인간 예전에는 얼굴에 난 마마 자국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 사람 어찌나 질긴지 학을 뗐네그려. 온 몸이 성한 곳 없이 만신창이가 되었다더군. 절제를 못 하고 낭비벽이 심하면 못쓰네. (1) 마마(媽媽) 자국과 박색(薄色) 인류는 끊임없이 질병(疾病)으로 고통받아 왔다. 의약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사스(SARS)1)나 각종 변종 독감(毒感)들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질병 가운데서도 인류를 가장 괴롭힌 것이 흔히 역병(疫病)으로 불리는 돌림병, 즉 전염병이었다. 역병 중에서도 가장 혹독한 것은 두창(痘瘡) 또는 두진(痘疹)이라 불리는 천연두(天然痘)였다. 민간에서는 천연두를 마마(媽媽) 또는 호환마마(虎患媽媽)라고 불렀다. 두창은 큰 마마, 홍역은 작은 마마라고 하였다. 창(瘡)은 부스럼이 생기는 병이고, 진(疹)은 돌기가 피부에 솟아오르는 증세를 말한다. 콩알(豆두)만한 돌기가 피부에 솟아 부스럼이 생기기 때문에 생긴 명칭이다. 예전에는 누구든 이 병에 걸리기만 하면 죽는 줄 알았고, 실제로도 대부분 죽었다. 사람들은 마마신(媽媽神)이 찾아오기 때문에 이 병이 생긴다고 믿었다. 마마는 국왕이나 왕비 등 지극히 존귀한 사람에게 붙이는 존칭이었는데, 두창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으면 범에게 물려 가는 호환(虎患)에다 마마까지 붙여 불렀을까? 마마신은 절대적인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므로 무조건 섬겨야 하였다. 《무당내력(巫堂來歷)》이란 책에는 호구거리(戶口巨里) 굿 그림이 있는데, 천연두를 몰고 오는 신을 호구(戶口)라고도 불렀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이 굿은 집안에 아직 천연두를 앓지 않은 아이가 있을 때 큰 탈 없이 잘 넘어가게 해달라고 비는 굿이다. 마마신께 절을 올리며 잘 가시라고 전송한다는 뜻으로 배송(拜送)굿이라고도 한다. '마마손님 배송하듯'이라는 속담은 귀찮은 손님이 찾아왔을 때 해코지하지 않을 만큼만 대접하여 얼른 떠나보낸다는 의미이다. 마마로 목숨을 잃는 경우는 수없이 많았고, 다행히 병을 이긴다 해도 얼굴에 심각한 곰보 자국을 남겼다. 특히 여자들에게는 살아나는 것 이상으로 마마를 곱게 앓아 얼굴에 곰보 자국을 남기지 않는 것도 중요했다. 못생긴 여자를 박색(薄色)이라고 하는데, 원래는 얽은 얼굴이란 뜻의 박색(縛色)에서 나온 말이다. ※ 장티푸스와 콜레라 천연두 외에 조선 후기에는 앞서 본 염병(染病)으로 불리는 장티푸스(腸 typhus)와 콜레라(cholera) 같은 돌림병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장티푸스는 한자로 장질부사(腸窒扶斯)라 했다. 장티푸스는 티푸스(typhus)균이 장(腸)에 감염되어 발병하는 급성 전염병이다. 장질부사는 중국음으로 읽으면 '장디푸스'이다. 콜레라는 한자로 호열자(虎列刺), 또는 호열랍(虎列拉)으로 적었다. 역시 cholera(콜레라)를 중국음으로 옮긴 것이다. 호열자(虎列刺)는 원래 호열랄(虎列剌)이라야 하는데, 글자 모양이 비슷한데다가 랄(剌)자는 자주 쓰는 글자가 아니어서 호열자(虎列刺)로 잘못 바뀌었다. 호열랄(虎列剌) 또는 호열랍(虎列拉)은 중국음으로 모두 '후리에라'로 읽혀, 콜레라의 음을 적은 것이다. 이런 전염병이 돌기만 하면 한 고을은 물론이고 온 나라를 쑥밭으로 만들었다. 역병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는 곳을 버리고 떠나는 일이었다. 조선 시대에 전쟁으로 죽은 사람보다 역병으로 죽은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는 기록은 질병으로 고통받았던 선조들의 고단한 삶을 잘 대변해 준다. ※ 종두법(種痘法)과 지석영 종두(種痘)라는 말은 천연두(痘)를 심는다(種)는 뜻이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예방 주사를 맞는 것이다. 19세기 전반기에 영국 의사인 제너가 소를 이용한 우두법(牛痘法)을 개발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석영(池錫永, 1855~1935) 선생이 종두법을 배워 와 1894년 이후 국가에서 종두소(種痘所)를 설치하여 종두법을 시행하였다. 다산 정약용 선생도 천연두의 예방과 치료에 관한 책인 《마과회통(麻科會通)》을 지은 바 있다. (2) 학질(瘧疾)을 뗀 사연 괴롭거나 성가신 일에서 어렵사리 벗어났을 때, 학(瘧)을 뗐다거나 학질(瘧疾)을 뗐다는 말을 한다. 몹시 혼이 났다는 뜻이다. 학질(瘧疾)은 말라리아(malaria)이다. 모기로 전염되는 말라리아 충이 핏속에 기생(寄生)하여 날마다 일정한 시간에 오한이 나면서 발작적으로 심한 열이 나는 병이다. 옛날에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이 병으로 죽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학질이 돌면 절구를 집 앞에 내놓거나 방망이를 새끼로 엮어 걸어 놓는다. 학질을 치료하기 위해 민간에서는 여러 방법을 동원하였다. 가장 많이 쓴 방법은 경아법(驚訝法)이다. 글자 그대로 깜짝 놀라게 하는 방법이다. 남산 밑에 있던 관운장(關雲長) 사당에 학질 걸린 사람을 들여보내고 나서 문을 꽝 닫아 못 나오게 하거나, 절벽 위에 앉아 있게 하고는 갑자기 등을 치면, 너무 무섭거나 놀라서 학질 귀신이 그만 뚝 떨어진다고 믿었다. 학질은 한번 걸리면 좀체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 호되게 앓고 나서야 학질을 겨우 뗄 수가 있었다. 그래서 학을 뗐다고 하면 죽을 고생을 했다는 말과 같다. (3)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되다 글자에 병들어 기댈 녁(疒)자가 들어가면 모두 질병과 관계된다. 온몸에 성한 데가 없이 상처를 입거나 다쳤을 때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되었다고 말한다. 어떤 일이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엉망진창이 되었을 때도 이 말을 쓴다. 창(瘡)과 이(痍)에는 모두 녁(疒)자가 들어 있다. 창(瘡)은 원래 부스럼이나 종기를 말한다. 하지만 칼과 같은 쇠붙이에 찔리거나 베인 상처도 창(瘡)이라 한다. 이(痍)는 상처다. 이 둘이 합쳐진 창이(瘡痍)는 칼과 같은 무기에 다친 상처를 말한다. 만신(滿身)은 온몸이니까, 만신창이는 온몸이 칼이나 창 따위의 날에 베이거나 찔린 상처투성이라서 어떻게 해 볼 수조차 없는 상태를 말한다. ※ 역신(疫神)과 처용(處容) 질병에 대한 지식이 없던 옛날에는 역병(疫病), 즉 돌림병을 모두 역신(疫神)이 하는 짓으로 여겼다. 그래서 역병이 돌면 이를 퇴치하기 위한 벽사(辟邪) 의식을 베풀었다. 벽(辟)은 물리친다는 뜻이고, 사(邪)는 사악한 기운을 말한다. 신라 때 역신이 처용(處容) 아내의 미모(美貌)를 탐하여 모습을 바꾸어 잠자리를 같이했다. 밤중에 돌아와 그 모습을 본 처용은 오히려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물러났다. 서울 밝은 달밤에 밤 늦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아내)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처용가(處容歌) - 그러자 역신은 처용 앞에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었다. 그러고는 처용의 얼굴이 그려진 곳에는 절대로 나타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그 후 역병이 돌면 처용의 얼굴을 그려 대문 앞에 붙이곤 하였는데, 그러면 그 집에는 역병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처용은 역병으로부터 사람들을 지켜 주는 수호자(守護者)가 되었다. (4) 낭비벽(浪費癖)과 도벽(盜癖) 벽(癖)이나 고(痼)·치(癡) 등에도 모두 병들어 기댈 녁(疒)자가 들어 있다. 벽(癖)은 의학적으로는 오른쪽 갈비뼈 아래 비장(脾臟)에 나쁜 기운이 쌓여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낭비벽(浪費癖)·도벽(盜癖)·방랑벽(放浪癖)이란 말에서 보듯 어떤 것에 대한 기호나 집착이 너무 지나쳐 도저히 억제할 수 없는 병적인 상태를 가리킬 때 쓴다. 고(痼)는 고질(痼疾) 또는 고질병(痼疾病)이란 말에서 보듯 오래 앓아 고치기 힘든 병을 말한다. 치(癡)는 치(痴)로 쓰기도 하는데, 백치(白痴)·천치(天痴)란 말에서 보듯 바보라는 뜻으로 쓴다. 뭔가 자꾸 의심(疑心)하는 병이 치(癡)이고, 앎(知지)에 문제가 있는 병이 치(痴)이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는 어떤 일에 미쳐 다른 것을 돌아보지 않고 몰두하는 이런 벽(癖)과 치(癡)를 찬미하고 예찬하는 풍조가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병적(病的)이고 바보 같지만, 무슨 일이건 이렇게 미친 듯이 몰두하지 않고서는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미쳐도 곱게 미치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그저 남들 하는 만큼 적당히 해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덕무는 책만 읽는 바보라고 해서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痴)라고 하였고, 벼루를 만드는 데 뛰어난 재능이 있었던 정철조 같은 분은 자기 호를 석치(石痴)라고 하였다. ※ 미치광이들 이야기 '벽(癖)'이란 글자는 어떤 것을 좋아하는 것이 지나쳐서 병적인 상태를 말한다. 낭비벽(浪費癖)은 아낄 줄 모르고 낭비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을, 도벽(盜癖)은 남의 물건을 자꾸 훔치는 버릇이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데 도리어 이런 벽을 예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좋은 의미에서 볼 때, 벽이란 무엇인가 한 가지 일에 온전히 미치는 것을 말한다. 한자로 불광불급(不狂不及)이란 말이 있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무엇엔가 미친 듯이 몰두하지 않고는 결코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다는 뜻이다. 남들 하는 만큼 해서는 남보다 뛰어난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남보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어떤 한 가지 일에 미친 듯이 매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 조선 시대 최흥효(崔興孝)는 유명한 서예가였다. 그는 늘 중국의 서예가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를 보고 수도 없이 연습을 하곤 하였다. 그가 과거 시험장에 가서 답안지를 쓰는데, 우연히 한 글자가 왕희지의 글씨와 꼭 같게 써졌다. 평소에는 아무리 연습해도 되지 않던 글씨였는데, 똑같이 써지자 그는 매우 기뻤다. 그래서 하루 종일 그 글씨만 바라보다가 차마 아까워 시험 답안지를 그대로 품에 넣어 돌아오고 말았다. 그는 글씨벽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글씨에 몰두한 끝에 그는 누구나 알아주는 훌륭한 서예가가 되었다. 또 조선 시대 왕실의 친척이었던 학산수(鶴山守)란 이가 있었다. 그는 노래를 잘하는 명창으로 이름났었다. 노래 공부를 하기 위하여 산에 들어가면 신발을 벗어 앞에 놓고, 노래 한 곡을 부를 때마다 모래 한 알을 주워 신발에 담았다. 몇 년이고 그렇게 해서 모래가 신발에 가득 차면 그제서야 산을 내려왔다. 나중에는 신발에서 풀이 싹텄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진다. 공부를 하더라도 이렇게 미친 듯이 하지 않고는 결코 높은 성취를 이룰 수가 없다. 뜻을 세우고 목표를 정한 뒤에는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와 인내가 있어야 한다. 3. 늙음과 건강 그는 젊은이들 앞에서 노익장을 과시하였다. 그만하면 오복을 다 누렸다고 할 만하다. 젊은 사람이 벌써 치매에 걸렸나? 그는 누구나 존경하는 학계의 원로이다. (1) 노익장(老益壯)을 과시하다 행복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건강이다. 서양 속담에는 '재물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친구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건강(健康)은 굳셀 건(健)과 편안할 강(康)을 쓴다. 건(健)은 사람 인(人)과 세울 건(建)을 합한 글자이다. 사람이 몸을 똑바로 세운 모양으로, 힘이 센 사람을 뜻하는 글자였다. 강(康)은 경(庚)과 쌀 미(米)를 합친 글자인데, 절구공이로 벼를 찧는 모습을 나타낸다. 결실이 많아 편안하다는 뜻이 나왔다. 글자로 보면 건강이란 몸이 굳세고 편안한 상태이다. 사람이 늙으면 약해져 건강을 잃고 만다. 그런데 늙어서도 젊은이 같은 열정과 기력으로 주변을 놀라게 하는 분도 있다. 이럴 때 흔히 하는 말이 노익장(老益壯)을 과시한다고 한다. 노익장은 노당익장(老當益壯)의 줄임말이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늙음에 당하여 더욱(益) 씩씩하다(壯)는 뜻이다.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 마원(馬援)이란 장수가 "대장부가 뜻을 품었으면, 궁하게 되어도 더욱 굳세고, 늙어서도 더욱 씩씩해야 한다."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사람이 나이 들어 기력이 떨어지면, 괜스레 기운이 꺾여 자신감을 잃게 된다. 그럴수록 마음을 다잡아 노익장의 기개와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화가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은 "나이가 들수록 눈이 밝아져 세상이 더 많이, 속속들이 보인다."고 말하였다. 현대 의학의 발달은 고령화 사회를 더욱 앞당기고 있다. 노인들이 단지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소외되어 아무 할 일이 없이 그저 세월만 보내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2) 누구나 누리고픈 오복(五福) 새해가 되면 만나는 사람마다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사람들은 누구나 복을 받아 마음껏 누리고 싶어한다. 누구나 누렸으면 하는 복이 오복(五福)이다. 다섯 가지 복인 오복(五福)의 으뜸은 수(壽)다. 말 그대로 오래오래 장수(長壽)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부(富)다. 가난하게 먹을 것도 없이 오래 산다면 그것은 복이 아니라 재앙이다. 셋째는 강녕(康寧)이다. 오래 사는 것도 좋고 돈 많은 것도 좋지만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넷째는 유호덕(攸好德)이다. 유(攸)는 닦는다는 뜻이니, 좋은 덕을 닦는 것을 말한다. 저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참된 의미에서 복된 삶이라고 할 수가 없다. 남에게 베풀고 이웃과 나누는 덕을 갖추어야 한다. 다섯째는 고종명(考終命)이다. 타고난 수명을 다 누리고 고통 없이 세상을 뜨는 것이다. 늘그막에 고통스럽게 병마(病魔)와 싸우다 죽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고통이다. 그러니까 오복은 넉넉하고 건강하게 오래 살며, 따뜻이 베푸는 삶을 살다가 병 없이 곱게 죽는 것이다. 이런 것은 결코 아무나 누릴 수가 없다. (3) 치매(癡呆)와 노망(老妄) 치매(癡呆)는 정상이던 사람이 뇌질환으로 지적 능력을 상실하는 병을 말한다. 대뇌(大腦)의 신경세포가 손상되면서, 기억력이나 이해력에 장애가 오고, 정서가 불안정해지고 같은 말과 행동을 되풀이하는 증상을 가져온다. 치(癡)는 어리석다 또는 미쳤다, 매(呆)는 미련하다는 뜻이 있다. 치매에는 유전적 원인으로 단백질이 뇌세포를 파괴하는 알츠하이머병(Alzheimer 病)이나,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 뇌세포를 파괴하는 혈관성 치매가 있다. 모두 노인들에게서 나타나는 퇴행성 질환(退行性 疾患)이다. 노인이 치매에 걸려서 이상한 행동을 하면 노망(老妄)이 들었다고 한다. 망령(妄靈)을 부린다거나 망령이 났다고도 한다. 치매에 걸려 정신이 흐려져서 말과 행동이 비정상적이라는 말이다. 정(精)·기(氣)·신(神), 이 셋은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삼보(三寶), 즉 세 가지 보배이다. 이 중에서 기(氣)가 끊어진 것을 기절(氣絶)하였다고 하고, 기가 소통이 안 되면 기가 막혔다고 한다. 기가 막히거나 기절하게 되면 정신(精神)을 차릴 수가 없다. 사람은 정신을 차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정신 나간 사람이 된다. 치매에 걸려 뇌세포가 파괴되면 기의 흐름이 끊겨 정신을 놓게 된다. 사람은 기를 펴야 하고, 다른 사람의 기를 살려 주어야 한다. 일시적으로 깜빡 잘 잊어버리는 것을 건망증(健忘症)이라 한다. 건(健)은 튼튼하다는 뜻이지만, '몹시'의 뜻도 있다. 건망증은 몹시 잘 잊어버리는 증세이다. 건망증은 잊어버렸다가도 금세 기억이 되돌아오지만, 치매는 그렇지가 않다. 오래 사는 것도 좋지만 정신과 육체가 모두 건강하지 않고는 아무 의미가 없다. (4) 원로(元老)와 기로회(耆老會) 원로(元老)는 으뜸가는 어른이란 말이다. 세상이 하도 급하게 변하다 보니, 어른이 어른 대접을 받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무조건 새것만 좋다고 하고, 옛것은 낡고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세상을 사는 이치는 옛날과 지금이 다를 게 없고, 여기와 저기가 차이나지 않는다. 정보나 지식만을 추구하는 사회는 아무리 기술적인 진보를 이룬다 해도, 그 지식은 지혜로 갈무리되어 문화로 축적되지 않는다. 기술의 진보는 오히려 인간의 정신을 더 황폐하게 만들고, 물질의 노예가 되게 만든다. 조선 시대에는 국가에서 기로소(耆老所)를 운영하였다. 기(耆)는 70세 이상의 늙은이를 뜻한다. 기로소는 연세가 높은 임금이나, 70세 이상의 문관(文官)으로 정이품(正二品) 이상의 노인이 들어가 대우받던 곳이다. 말 그대로 국가의 원로들을 모아 그동안 나라를 위해 헌신(獻身)한 것에 감사하고, 이들이 노년(老年)을 편안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예우(禮遇)하였다. 지금은 정년(停年)이 앞당겨졌지만, 예전엔 나이 70이 되어 벼슬에서 물러나는 것이 관례였다. 이것을 치사(致仕)라 하였다. 사(仕)는 벼슬이고, 치(致)는 그만둔다는 뜻이다.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한 원로가 치사(致仕)하여 벼슬에서 물러나게 되면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고 편히 쉬라는 뜻으로 임금은 지팡이와 의자를 선물하고 큰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 힘 력(力)을 부수로 하는 한자 4. 죽음과 장례 문화 그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운명하였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이 한이 됩니다. 강시가 나오는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 요즘은 사람이 죽으면 화장하여 납골당에 모신다. (1) 운명(殞命), 숨이 끊어지다 흔히 하는 말에 '배고파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는 말이 있다. 심지어 재미있어 죽겠고, 웃겨 죽겠다고도 한다. 이 표현은 중국어에도 있다. '으어쓰러(餓死了아사요)'라고 하면 굶어 죽었다는 말이 아니라 '배고파 죽겠다'는 말이다. 그 정도가 심함을 강조한 표현이다. 하지만 막상 진짜 죽음에 대해서는 '돌아가시다', '잠들다', '눈감다', '세상을 등지다'와 같이 완곡하게 돌려서 말한다. 죽음이 두렵기도 하고, 직접 죽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송구스럽기 때문이다. 한자 말로는 사람이 죽은 것을 운명(殞命)하였다고 표현한다. 한자에 앙상한 뼈 알(歹)자가 들어가는 글자는 대부분 죽음과 관련된다. 운(殞)은 떨어지다, 죽다는 뜻이 있다. 운명(殞命)은 목숨이 끊긴 것이다. 목숨은 말 그대로 목으로 쉬는 숨이다. 어머니 뱃속의 태아는 탯줄로 호흡을 한다. 아이 적에는 단전(丹田)으로 깊은 호흡을 하는데, 성장하여 나이를 먹어가는 동안 숨은 자꾸 위로 올라온다. 그래서 숨이 목까지 차올라와 헐떡이다가, 목의 숨마저 끊어지면 사람이 죽는다. 목숨이 질기다는 표현이나 모진 목숨이란 말은 목숨이 끊어질 듯 쉽게 끊어지지 않는 데 빗대어 하는 말이다. 죽음을 나타내는 한자에 사(死)·붕(崩)·훙(薨)·몰(歿)·졸(卒)·시(弑)·살(殺) 등이 있다. 예전 역사책에는 신분에 따라 죽음을 표현하는 말을 달리 사용하였다. 같은 죽음이라도 황제에게는 붕(崩)이란 표현을 썼고, 공(公)과 그의 부인(夫人)에게는 훙(薨)을 썼다. 제후나 대부(大夫)의 죽음은 졸(卒)로 적었다. 일반인은 사(死)로 적고, 역적이 죽으면 폐(斃)라고 썼다. 이런 표현들은 모두 자연사(自然死)의 경우에 해당하고, 타살(他殺)일 경우 제후는 시(弑)로, 대부는 살(殺)로 적었다. 또 같은 죽음이라 해도 죽은 곳이 정침(正寢), 즉 대궐의 침실이라고 적은 것은 수명을 다 누리고 세상을 뜬 것을 말하고, 다른 땅 이름으로 되어 있으면 전쟁이나 그 밖의 일로 나갔다가 비명(非命)에 객사(客死)하였다는 뜻이 된다. 이렇게 죽는다는 표현 하나만 보아도 죽은 사람의 지위나 그 죽음에 대한 평가까지 알 수가 있었다. 이런 표현법은 공자가 엮은 노(魯)나라의 역사책인 《춘추(春秋)》에서 처음 보이므로 춘추필법(春秋筆法)이라고 한다. ※ 춘추필법(春秋筆法)이란? 역사가는 역사책에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술할 뿐, 주관적 평가를 넣을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일은 너무 부끄럽거나 직접 말하기가 민망하여 곧이곧대로 쓸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춘추(春秋)》에서는 어떤 특정한 표현 속에 일정한 의미를 담아, 역사를 기술한 사람의 견해를 간접적으로 밝히는 방법을 썼다. 이러한 표현법을 춘추필법(春秋筆法)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알고서 글을 읽으면 일상적인 표현 속에 담긴 깊은 뜻을 확실히 알 수가 있다. 예를 들어 두 나라 군대가 싸울 때, 두 집단의 세력이 대등하면 칠 공(攻)자를 쓰고, 강한 세력이 약한 세력을 칠 때는 칠 벌(伐)자를 썼다. 상대방의 분명한 잘못을 응징하기 위해 칠 때는 토(討)라고 하였고, 천자가 친히 전쟁에 나설 때는 정(征)이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정벌(征伐)은 천자가 친히 나서 지방 세력을 친 것을 말하고, 토벌(討伐)은 반란 세력을 응징하기 위해 치는 것을 말한다. 또 싸워서 땅을 빼앗을 때 쉽게 얻으면 취할 취(取)자를 썼고, 어렵사리 빼앗은 경우에는 이길 극(克)자를 썼다. 상대방이 항복할 때도 몸만 투항하면 항복할 항(降)자를 썼고, 땅을 함께 바치면서 투항하면 부(附)라고 썼다. 또 이쪽을 배반하고 저쪽으로 귀순하면 배반할 반(叛)자를 쓰고, 한 나라 안에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도전했을 때는 뒤집을 반(反)자를 썼다. 이런 표현들은 지금도 대부분 위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라크 전쟁에서 탈레반 반군(叛軍)이라고는 해도 반군(反軍)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극일(克日)이라고 하면 일본과 싸워 이기자는 결의가 담겨 있다. 그냥 백기(白旗)를 들고 항복하면 투항(投降)이지만, 땅과 사람이 함께 오면 귀부(歸附)라고 한다. 나라의 역적은 반역(反逆)이지만, 다른 나라로 건너가면 반역(叛逆)이다. ※ 앙상한 뼈 알(歹)을 부수로 하는 한자 (2) 임종(臨終)을 지키다 부모나 조상의 죽음을 지켜 보는 일을 임종(臨終)이라 한다. 임(臨)에는 '임하다', '그 때에 당하다'는 뜻이 있다. 종(終)은 실 사(糸)자와 겨울 동(冬)이 결합된 형태이다. 겨울은 한 해의 끝이니 '마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예전에는 부모님이 세상을 뜨실 때 곁에서 임종(臨終)하지 못하는 것을 큰 불효로 여겼다. 한편으로, 예전에는 임종은 반드시 자기 집에서 맞아야 하였다. 오복(五福)의 하나인 고종명(考終命)은 자기 집에서 자손들이 임종한 가운데 편안히 눈을 감는 것을 뜻하였다. 만일 그렇지 않고 집 밖에서 세상을 뜨면 객사(客死)가 된다. 객사를 하면 시신(屍身)을 자기 집으로 들여오지 못하였다. 이런 인식이 지금까지 남아 있어 노인 중에는 세상을 뜨기 전에 병원에서 퇴원하여 굳이 자기 집에서 운명(殞命)하려 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서 돌아가시면 병원 영안실(靈安室)로 모셔 장례를 치르지만,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 죽음을 나타내는 여러 표현 죽음을 나타내는 표현 중에 '유명(幽明)을 달리했다'는 말이 있다. 유(幽)는 은미할 유(幺幺 )와 산 산(山)을 합한 글자이다. '산(山)의 은미한(幺幺 ) 곳'이란 의미에서 '어둡다', '그윽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유명(幽明)이라 할 때 유(幽)는 어두운 저승, 명(明)은 밝은 이승을 말한다. 유(幽)와 명(明)이 달라졌으니 죽었다는 뜻이다. 그저 저승만을 말할 때는 어두울 명(冥)자를 덧붙여 유명(幽冥)이라고 한다. '타계(他界)했다'는 표현도 쓴다. 타계(他界)란 지금 여기와 다른 세계이니, 곧 유명계(幽冥界)를 말한다. 사람이 죽으면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간다. 신분 높은 사람이 죽었을 때는 사거(死去)라 하지 않고 서거(逝去)라고 한다. 우리말로 하면 돌아가셨다는 말이다. 이승을 하직(下直)했다고도 한다. 스님들은 평생 열반(涅槃), 즉 완전한 깨달음의 경지에 들기 위해 수양을 쌓는다. 열반은 범어로는 nirvana(니르바나)라고 한다. 고통과 번뇌의 사슬을 끊고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적멸(寂滅), 해탈(解脫)에 다다른 경지를 말한다. 그래서 스님이 세상을 뜨면 '열반에 들었다'고 하고, 적멸에 들었다는 뜻으로 입적(入寂)이라고도 한다. (3) 강시(殭尸)와 미라(mirra) 한때 강시(殭尸)가 등장하는 영화나 만화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무덤 속에서 나온 강시들이 두 손을 앞으로 뻗치고서 겅중겅중 뛰는 모습이 기억날 것이다. 강시(殭尸)는 원래는 얼어 죽어 뻣뻣해진 시체를 뜻하는 말이었는데, 지금은 죽어 썩지 않고 딱딱하게 굳은 시체, 즉 미라(mirra)를 뜻하는 한자말로 쓰인다. 강(殭)은 앙상한 뼈 알(歹)과 딱딱하다는 의미의 강(畺)을 합한 글자이다. 죽어 딱딱해진 시체가 바로 강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사람이 죽으면 육체 속에 깃든 혼백(魂魄)은 혼비백산(魂飛魄散), 즉 하늘로 올라가거나 땅으로 흩어지고, 육신은 썩어서 흙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육신이 썩지 않은 채로 그대로 있으니 혼백이 육신을 떠나지 못하고 머물러 귀신(鬼神)이 된다고 믿었다. 강시(殭尸) 귀신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미라는 이집트가 유명하지만,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찮게 출토되어 세상을 놀라게 한다. 그중에서도 기원전 2세기경 한(漢)나라 귀족의 무덤인 마왕퇴(馬王堆) 유적에서 발굴된 2,200년 전의 미라는 조금도 썩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 식도에서 참외씨까지 그대로 나왔다. 머리카락은 물론 신체 기관까지도 온전한 채 발굴되어, 그녀가 앓았던 질병까지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해 전 420년 전의 미라가 애절한 사연의 편지와 함께 발굴되어 세상을 놀라게 한 일이 있다. 미라는 이렇게 타임캡슐처럼 우리를 아득한 과거의 현장으로 안내하기도 한다. (4) 여러 가지 장례법(葬禮法) 사람이 죽으면 장례(葬禮)를 치른다. 장사 지낼 장(葬)자는 잡풀 우거질 망(茻)자와 죽을 사(死)를 합한 글자다. 망(茻)은 풀[屮]이 우거진 모양이고, 사(死)는 앙상한 뼈 알(歹)에 사람 인(人)자를 합쳐 죽는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까 장(葬)은 원래 죽은 이를 풀밭에 버린 모양이다. 예전에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풀밭이 무성한 곳에 버린 풍습과 관련이 있다. 장례(葬禮)는 나라나 민족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치른다. 여기에는 풍토 환경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가장 일반적인 장례 방식은 매장(埋葬)이다. 말 그대로 땅을 파고 묻는[埋]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흙을 돋우고 표지를 세워 사람이 묻힌 무덤임을 표시한다. 육신(肉身)을 덧없는 것으로 여기는 불교에서는 화장(火葬)을 한다. 시신(屍身)을 불에 태우는 것이다. 특별히 불교에서 행하는 화장을 다비(茶毘)라고 구분해서 말하기도 한다. 시신을 태워 유골만 수습하여 매장하는 장례법이다. 다비는 범어(梵語) 'jhāpita'를 한자로 적은 것인데, 불에 태운다는 뜻이다. 인도 사람들은 죽으면 갠지스 강가에서 시신을 화장한다. 돈이 없어 시신을 다 태울 만한 나무를 살 수 없으면, 그냥 갠지스 강에 떠내려 보내기도 한다. 티베트에는 천장(天葬)이란 독특한 장례 방식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산꼭대기로 옮겨와 제사 지낸 뒤, 그대로 독수리의 밥이 되게 하는 것이다. 시신에 독수리 떼들이 달려들어 살점을 뜯어먹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이 곳은 화장을 할 만한 나무도 구할 수가 없고, 땅은 온통 바윗돌로 되어 있어 매장을 할 수도 없다. 억지로 매장을 한다 해도 워낙 높고 추운 곳이라 시신이 썩지 않는다. 천장은 이런 풍토 환경이 만들어 낸 풍습이다. 시신의 살점을 새들이 다 파먹으면, 비로소 이승의 인연에서 벗어나 영혼이 새들처럼 자유롭게 하늘로 훨훨 날아갈 수 있다고 티베트 사람들은 믿는다. 고대에는 왕들이 죽으면 살아있는 그의 아내나 신하, 그리고 종들을 산 채로 함께 묻었다. 이것은 순장(殉葬)이라고 한다. 순(殉)은 따라 죽는다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고대 은(殷)나라 때부터 시작되어 서주(西周) 시절까지 성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 시대 이전부터 순장의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망인(未亡人)이란 말이 그래서 나왔다. 미망인(未亡人)은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남편이 죽으면 함께 묻혀 따라 죽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살아있어 죄스럽다는 뜻을 담고 있다. 중국 춘추 전국 시대 제(齊)나라 경공(景公)은 말을 너무나 아낀 나머지, 죽으면서 자신의 말 수백 마리를 같이 순장(殉葬)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순장이 국가에 미치는 손실이 너무 컸기 때문에 후대에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장례는 전통적으로 매장(埋葬)의 방식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묘지(墓地)가 차지하는 땅이 너무 넓어져서 더 이상 매장할 곳이 없어짐에 따라, 최근에는 화장(火葬)으로 장례를 치르고, 유골(遺骨)을 수습하여 납골당(納骨堂)에 모시는 방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 – 중에서
다음에 계속 <가족과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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