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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단조로운 나의 삶에 하나의 일과가 생겼다.
관찰할 대상이 생긴 것이다.
그 대상은 다름 아닌
전학생......
이.현.석!
그가 전학온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한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녀석은 좀 특이했다.
아니...
그걸로는 부족했다.
녀석은 엽기적이다.
그는...
하루종일 잠을 잤다.
성격이 예민한 몇 선생님들이 처음엔 현석을 혼내기도 했지만...
결국은 포기하는 듯 했다.(다만 국사 선생님은 수업 시간마다 꼭 한 번씩 현석에게 분필을 던졌다.)
그리고,,,
그는 전에 있던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한 듯 했다.
이런 일들이 있었다.
잠에 골아 떨어진 현석을 보다 못한 영어 선생님이
한번은 그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그는 잠이 덜 깬 듯 어리버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영어 선생님은 싸늘한 표정을 지으셨다.
"내 수업 시간에 계속 잠을 잔다는 것은 그만큼 영어에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
현석은 묵묵부답 말이 없었다.
"지금 내가 하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하면 더 이상 내 수업시간에 자는 것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선생님의 눈이 교활하게 빛나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대신 대답을 못 한다면 앞으로는 뒤에 가 서 있거라."
순간 현석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난 알 수 있었다.
만약 대답을 못하여 뒤로 가서 서 있게 된다면 그는 앞으로 잠을 자지 못할 것이다.
(물론 서서 잘수있는 재능만 있다면 몰라도...-_-;)
따라서 현석이가 최선을 다할 것을 예감했다.
영어 선생님의 입에서 영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현석을 꼼짝 못하게 하려는 듯 너무나 빠르게 말했다.
"#$$#% #%&$ %#%&%@ #%#"
(오죽 하면 그 알파벳의 조합들이 내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모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끄러미 현석을 쳐다 보았다.
현석은 조용했다.
우리반 아이들과 영어 선생님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그때였다.
"&% #$$% ^$%&$ $^$%"
현석이 대답을 한 것이다.
더군다나 외국인처럼 유창한 발음이었다.(왜 내겐 내용이 안 들리는 걸까...ㅜ.ㅜ)
영어 선생님의 눈에 순간 놀람을 담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
"$%% $#%#$ #%^"
"#@%$ #$ #$"
"$%$ $#%%$^"
"$%#$ #$ $%&%#&$"
"....."(슬프다..도대체 내용이 뭘까)
우리반 아이들은 놀란 눈으로 그들의 일문 일답을 쳐다 보고 있었다
(녀석들도 표정을 보아하니 이해 못하기는 마찬가지인 듯 했다. 다행이다...--;;)
잠시후,
영어 선생님은 입술을 지그시 물고는 현석이를 자리에 앉혔다.
그 뒤로 영어 선생님은 다시는 현석이의 잠에 대하여 뭐라 하지 않았다.
(국사 생님에 이어 영어 샘까지 패배시키다니...-_-;;)
수학 시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선생님은 잠만 자는 현석에 대하여 불만을 감추지 못하고는,,,
어려운 수학 문제를 칠판에 적어 풀게 했고
현석은 이를 모두 해결한 것이다.
선생님이 놀라운 목소리로 현석에게 물었다.
"넌 어떻게 잠만 자는 녀석이 이토록 문제를 잘 푸는 거지?"
"그러게 말입니다."
현석은 이렇게 대답했고
그 뒤로 선생님은 다시는 현석에게 태클을 걸지 않았다.
음...
현석이는 말수가 적었다.
그래서 대부분 현석이에게 말을 걸기 어려워했다.
전학을 왔으면
본인이 친해지려 노력해도 부족할 판인데,,,
현석은 혼자 있는게 좋은 듯 했다.
그리고 잘은 모르지만,,,
난 현석이가 클레식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점심 시간이면 방송부 아이들이 클레식 음악을 방송하는데...
현석은 창가에 몸을 기대어 음악에 맞춰 흥얼 거리곤 했다.
덧붙이자면
녀석은 돈에 환장한 녀석이다.
전에 교복을 살때부터 진작에 알아봤다.
오늘 미영이가 돈 500원을 책상밑에 떨어뜨렸었다.
동전은 데구르르 굴러 현석이 책상 아래로 향했고,
그때 난 보았다.
잠을 자던 현석이가 엄청난 속도로 500원을 발로 밟는 것을 말이다.
미영이는 잠시 500원을 찾다가 포기하고 화장실에 갔고,,
현석은 발을 들고 돈을 주웠다.
난 모든걸 보았지만 조금 우스워 미영이에게 말해주지 못했다.
녀석은 싱글 싱글 웃으며 좋아하고 있었다. (세상을 다 얻은 표정)
그때 현석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현석은 흠칫하더니 눈을 부라렸다.
이런 의미 같았다.
'떠들면 죽어!'
...
암튼...
여러모로 이상한 아이였다.
그리고 사고가 하나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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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와 함께 춤을>
우리반엔 왕따가 한 명 있다.
이름은 김전일.
같은 반이 되기 전까진 몰랐는데 그 애는 일학년 때부터 왕따였단다.
전일이는 몸이 외소하다.
내성적이며 설상가상으로 말을 더듬는 버릇까지 있다.
괴롭힘 당하기 딱 좋은 케이스였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여느때처럼 우리반 몇몇 남학생들이 쉬는시간에 전일이를 둘러싸고 있었다
괴롭히는 애들은 거의 고정되어 있다. (상훈, 정현, 민수, 춘식)
아이들이 짓궂게 전일이를 만지작 거렸다.
"오오오~~!!! 전일이. 이거 오늘따라 섹시해 보이는데~~"
"이... 이.. 이러지마."
"전일아~~ 엉아. 돈 좀 빌려줘라~~ 엉아 배가 고프다~~"
"나.. 돈 없어...."
"이 새끼가 정말!"
결국 전일인 울음을 터뜨렸다.
워낙에 자주 있던 일이라 나를 비롯한 여러 아이들은 '또 시작이야?'하는 시선을 주었다.
저렇게 당하기만 하는 전일이가 한심했고 한 명을 둘러싸고 괴롭히는 아이들도 유치하게만 보였다.
그때였다.
이때까지 퍼질게 자고 있던 현석이가 '정말 시끄럽군...' 하고 중얼거리며(근처에 있던 난 중얼거리는 목소릴 들을 수 있었다.) 몸을 일으켰다.
현석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또렷했다.
"조용히 해라."
아이들의 시선은 현석이에게 쏠렸다.
현석의 눈빛은 차가웠다.
주위의 이목이 집중되자 괴롭히던 아이들은 잠시 움찔 하는 듯했다.
그걸 의식한 춘식이가 강한 척하며 말을 했다.
"이봐, 전학생. 안 조용하면 어쩔건데."
민수는 침을 퉤 뱉더니 말했다.
"새끼야 너도 함 당해 볼래. 앙. x만한 새끼가 겁이 없네."
상훈, 정현이도 킬킬거리며 웃었따.
"얼굴만 곱상하게 생긴게 안 그래도 맘에 안 들더라구. 띠발"
정말 순식간이었다.
어느 사이엔가 현석인 그들 앞에 있었고 춘식이가 콰당 넘어졌다.
현석의 발길질에 넘어진 것이다.
"이 새끼"
민수가 달려 들었다.
현석이는 민수가 주먹을 날리는걸 슬쩍 피하더니 민수의 복부에 발을 꽃았다.
민수가 허공을 날았다.(괴력이었다.)
상훈, 정현이는 어쩔줄을 모르고 후다닥 뒤로 물러섰다.
현석은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도 않은채 순식간에 두 명을 쓰러뜨린 것이다.
와우!
굉장했다.
그들은 눈치만 보며 함부로 현석이에게 덤벼들지 못했다.
서로 노려보는 대치 상태가 계속 되었고 춘식이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아직 민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이 쳤다.
상훈, 정현, 민수, 춘식이는 노려보는걸 멈추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난 그 광경을 보며 현석이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성격은 좀(?) 괴팍하지만,,,
약자의 편에 설 줄 아는 남자다운 녀석이라고.
경황이 없던 전일이는 멍하니 현석을 쳐다보다가는 입을 열었다.
"저기.. 고마워..."
현석이가 전일이게 고개를 돌렸다.
"뭐가?"
"뭐라니, 저기... 방금 도와준거 말야."
현석이가 피식 웃었다.
"훗. 널 위해서가 아니였어."
현석이가 당당하게 엄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르켰다.
"다 나의 잠을 위해서지. 너무 시끄럽잖아."
잠시나마 현석이가 멋지다고 생각한 내가 바보같았다...-_-;;
그때 미영이가 내게 속삭였다.
"섹시해...."
얘는 취향도 특이하군.
아무튼,
그 날 이후 전일이가 현석이와 종종 함께 이야기 하는걸 볼 수 있었다.
현석이에게도 친구가 생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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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회와 자살커플>
5월엔 행사가 많다.
스승의 날, 어린이의 날,,,
그리고...
그리고...
우음..
또 뭐가 있더라?
-_-;;
암튼,,,
체육대회!
그렇다.
바로 오늘은 체육대회인 것이다.
보통은 체육대회가 가까워지면 친구들이 함께 모여 이것 저것 단체로 연습도 하며 들뜨기 마련이건만,,,
우리 고3에겐 현실적으로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아예 참가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지금은 물리 시간.
비록 수업 중이지만...
아이들의 귀에는 선생님의 말씀이 잘 들어 오지 않는 듯 했다.
창 밖엔 우리 후배들의 각종 경기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밖에서 환호성이 울려퍼질 때마다 아이들(특히 남자)의 시선이 종종 창 밖을 향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한결같은 수업 태도를 취하여 선생님을 기쁘게(?) 하고 있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현석이었다.
그는 오늘도 예외없이 자고 있었다.
선생님은 이래저래 수업할 맘이 나지 않았는지.
"모두들 자율 학습을 하도록!"
라는 말과 함께 교과서에 있는 종합문제를 풀라고 시키시고는 교실 밖을 나가셨다.
물론 우리 반 아이들은 결코 문제를 풀지 않고 있었다.(선생님도 이렇게 될거 뻔히 알고 있으실텐데...-_-;;)
남자 아이들은 모두 창가에 모여 밖에서 벌어 지고 있는 축구, 농구 등의 운동을 구경하기 시작했고
여자 아이들은 간만에 생긴 휴식을 만끽하려는 듯 모여 수다를 떨었다.
물론 나도 그 중 하나였다....(--v)
수다의 주제는 뻔했다.
어떤 선생님은 재수가 없다느니, 변태라느니
몇 반의 어떤 여자애는 재수가 없다느니, 그리고 어떤 커플이 이번에 깨졌다느니......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오갔다.
이렇게 수다를 떨면 각종 정보가 모인다.
정신없이 이야기들이 오가다가
주제가 이번에 전학 온 현석이에게로 넘어갔다.
여러가지 이야기가 분분했다.
지현이가 말했다.
"너무 잘 생겼어. 아니지.. 이쁘게 생겼어."
미영이가 대답했다.
"맞어. 그럼 그럼. 이쁘고 말구."
수진이도 한마디 했다.
"근데 너무 무뚝뚝해."
혜민이가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웃는걸 못봤어."
음...
난 현석이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교복 사러 갔던 날.. 본 그 웃음,,,,
따뜻했다.
현석인,,,
왜 아이들한테 그 매력적인 웃음을 보이지 않는걸까?
혜민이가 말을 이었다.
"암튼,,, 좀 신비해."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맞는 말이다.
그때 미영이가 말했다.
"나 현석이 넘 좋아~~ 내거 했으면 좋겠어."
"누가 누구 거라고?"
헉 !
깜짝이야.
바로 등뒤에서 들리는 남자의 굵직한 목소리에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리니 현석이었다.
그는 교실이 너무 소란스럽자 잠에서 깬 듯 했다.
잠이 덜깼는지 그의 눈이 부시시하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미영이는 얼굴이 새빨개 졌다.
잠시 후 수진이가 어색함을 모면 하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미영이가 너 너무 좋아하나 봐. 좀 잘해줘~~"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현석은 무표정한 얼굴로 미영이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교실 밖을 나갔다.
그의 태도가 어찌나 차가운지 냉기가 흐르는 듯 했다.
미영이가 울상을 지었다.
"나 어떻해..."
단짝 미영이의 우울한 표정을 보자,,
난 발끈 화가 치밀었다.
"나쁜 자식"
난 자리에서 일어나 현석이에게 한마디 하기 위해 교실 밖을 나왔다.
금방 뒤따라 나왔음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겁나게 빠르네...-_-)
화장실이라도 간 걸까....?
문득 계단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항상 굳게 닫혀 있던 옥상으로 향하는 대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혹시...
하는 생각에 옥상에 올라갔다.
짐작이 맞았다.
그가 있었다.
그것도 위태롭게 있었다.
난간에 엉덩이를 걸친채 다리는 밖으로 향해 있었다.
허걱
조금이라도 몸이 기울어 진다면 그대로 아래로 추락할 판이었다.
난 다급하게 외쳤다.
"얘, 너 위험하게 왜 그렇게 앉아 있어?"
현석이가 날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뭐가?"
"너...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래!! 위험하잖아. 얼른 내려 와."
현석은 피식 웃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아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난 현석이에게 다가가 그가 뭘 보고 있는지 보려 했다.
별게 없었다.
그저 경기를 치루는 아이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참 신기하지?"
응? 뭐가 신기하다는 거지?
"저길 좀 봐."
현석이는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손가락 끝을 쫓자 그 곳엔 응원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있었다.
아이들이 입은 빨강, 검정, 노랑 등의 유니폼이 어우러져 꽤 장관이었다.
조금 시간을 두고 보니 정말 굉장했다.
응원단 아이들이 파도타기를 할때는 정말 파도가 이는 듯 했다.
빨강, 검정, 노랑의 물결이 신비롭게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비록 조금 먼 거리였지만...
응원단 아이들의 열기가 여기까지 느껴졌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현석과 나는 열을 올리며 환호와 함께 응원단 아이들을 응원하고 있었다.(물론 우리의 응원이 저 아래까지 들릴리 없었다.)
마냥 신이 났다.
지금까지 난 모르고 있었다.
고1, 2때 운동은 하나도 안 하고(운동 신경이 워낙 잼병이라....-_-;;) 응원만을 했다.
운동을 잘해서 대중들 앞에서 활약하는 친구들을 보면,,
가끔 동경의 감정이 생기기도 했었다.
그랬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응원단도 이렇게 대단하다는걸 알 수 있었다.
내가 그 속에 있을때는 대단하다는 걸 몰랐지만.. 이렇게 밖에서 보면 굉장한 것이었다.
현석인 이런걸 알고 있었던걸까?
그를 곁눈질 하니 현석인 마치 아이 같은 표정으로 열심히 응원을 하고 있었다.
훗
저런 면도 있구나,,,
그가 정말 다양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나이에 엎드려 뻐쳐라니...
팔이 저렸다.
옆에서 같이 벌을 서는 현석은 욕을 중얼 거리며 벌을 서고 있다.
이유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현석이와 내가 나란히 난간에 앉아 응원단원들을 감상하고 있을 때였다.
체육대회를 관리하던 담당 선생님이 옥상에 앉아 있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기겁하며 이렇게 외쳤단다.
"투신자살이다!!"
그 선생님의 외침에(현석이와 내가 있는 곳까진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운동장의 막사 안에서 체육대회를 관리하던 모든 선생님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왔다.
선생님들이 모두 손을 허우적 대며 "안돼! 안돼!"를 외치고 있었다.
우리반 담탱이도 그 중 하나였다.(담탱이의 대머리가 맑은 하늘 아래 번쩍 빛을 발했다.)
현석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내게 물었다.
"뭐가 안 된다는 거냐?"
"...글쎄"
잠시 후 응원단원들을 비롯한 운동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선생님, 학생, 체육대회 참관 학부모) 학교 밑으로 달려 와서 외쳤다.
"안돼요!안돼!"
"선배님 이제 7개월 남았어요. 수능이 별건가요!!"
"안돼!!"
"얘들아! 너희 부모님을 생각해야지!"
...
한참후 그 난리가 수습되었고 우리는 교장실에 끌려갔다.
교장 쌤에게 별의 별 이야길 다 들어야 했다.
그 말의 요지는,
사랑은 아름답지만 죽음 앞에선 덧없는 것이며,,,
이왕 하려면 장소를 가려 가며 할 것이며,,
세상엔 아직 좋은 일들이 많고 어쩌구 하며.,,,
내일의 태양은 반드시 뜨니 어쩌니....-_-;;
-_-+
오랫동안 설교를 듣고 그 다음엔 교무실에까지 끌려와 이렇게 벌을 서고 있는 것이다.
벌을 다 서고 교실에 들어가니 반 아이들이 '나'와 '현석'이에게 의미심장한 웃음까지 던졌다.(미영이는 분노까지 하고 있었다....ㅡ.ㅡ^)
그 후로 현석이와 나 사이에선 공통으로 별명이 하나 붙었다.
'자살 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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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보호>
내일이면 모의고사다.
한숨부터 나왔다.
수능 날짜는 점점 다가오는데,,
성적은 오르질 않고.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내가 이렇게 성적에 매달려야 하는 이유는 뭘까?
내 꿈은 무엇일까?
난 뭘 위해 이렇게 고민하고 힘들어 하는걸까.
이런 생각을 하는데,,,
창가에 현석이가 눈에 띄었다.
옆에는 전일이가 있었다.
둘은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전에 전일이가 괴롭힘 당할때 현석이가 도움을(?) 준 까닭인지.
전일이는 종종 현석이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자살 커플'...-_-+ 도대체 어떤 넘이 지은 별명이지?)
체육대회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한 덕분인지
현석이란 아이와 조금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여전히 엽기적이고, 이해하기 어렵고, 다가서기 힘든 부분이 있었지만,
왠지 좋은 이미지였다.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을것 같았다.(시작은 안 좋았지만)
결심했다!!
오늘은 현석이와 친하게 대화를 나누기로~!
하지만 이런 것도 생각이 났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저 녀석은 상대방을 당황 시키는데 천부적인 녀석이었다.
음...
난 잠시 망설이다가 현석이에게 다가갔다.(왠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현석이는 분명 위험 인물이다.)
내가 가까이 온 것을 알아차린 현석은 전일이와의 이야기를 멈추고는 내게 시선을 주었다.
'헉!'
갑자기 긴장을 했다.
투명한 눈빛이 나를 날카롭게 향했다.
'긴장하면 안돼.. 긴장하면 안돼...'
난 이를 악물고 쥐어 짜듯이 외쳤다.
"안녕!"
너무 소리가 컸나 보다.
우리반 아이들의 시선이 내가 있는 곳을 향했다... 난 얼굴이 새빨개졌다...--;;
현석이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잠시 후 쿡쿡 거리며 웃더니 입을 열었다.
"안녕. 화창한 점심이야."
정말 특이한 인사법을 갖고 있다.
녀석과 나 사이에 침묵이 돌았다.
난 무슨 말을 건넬까 조금 고민하다가 말을 꺼냈다.(일단 무슨 말이든 붙여야 했다.)
"내일 모의고사인거 알지?"
"응."
"공부는 했니?"
"아니."
"긴장은 안돼?"
"전혀."
....
'응','아니','전혀'
이딴 식으로 대답을 해오니 도대체 말을 이어갈 수가 없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할까 고민했다.
(녀석이 길게 대답할 수 있는걸 질문해야 했다.)
내가 고민 중일때 현석은 나에게 요런 의미의 시선을 건네고 있었다.
'뭘 바래? 왜 아무 말도 없어?"
-_-;;
난 간신히 질문 하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꿈이 뭐야?"
난 말을 해 놓고 스스로 뿌듯했다.
이거라면 분명히 길게 대답하겠지.
현석이가 대답 했다.
"정의 실현."
...
내가 도대체 뭘 바란 걸까. 이 무뚝뚝한 녀석에게...-_-+
그때였다.
갑자기 현석이가 창문 밖을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뭐지?
나도 창문 밖을 보았다.
"야, 이 자식들아 니들 거기서 안 나와!"
현석이가 소리친 것이다.
밖을 보니 잔디 밭에서 학생들이 놀고 있었다.
그 아이들은 흠칫하며 위를 올려 보다가 소리친 대상이 선생님이 아닌 학생임을 확인하고는 마주 외쳤다.
"뭐 이 자식아! 네가 뭔데! 왜 나오라는 거야!"
현석이가 외쳤다.
"잔디를 보호해야지! 니들 식물이 없으면 죽어! 그거 알어!"
"저 자식 미친 놈 아냐!"
"뭐야 이 자식아!"
현석은 흥분하더니 교실 밖을 뛰쳐 나갔다.
잠시후 나와 창가에 있던 우리반 아이들은 잔디 밭에서 놀던 아이들에게 날라차기를 해대는 현석을 볼 수 있었다.
"우와악!!! 미친 놈이다!!"
아이들은 도망가기 시작했고 현석이가 그 뒤를 쫓았다.
"우워어어어어!!!"
잠시 후 현석은 담임 선생님께 잡혀 교실에 끌려왔다.
선생님이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넌 도대체 전학 온 녀석이 말썽이 많구나."
"......"
"왜 그랬던 거니?"
그가 대답했다.
"잔디를 보호해야죠."
선생님은 현석을 크게 나무라진 않으셨다.
오늘 이후 이 사건이 교내에 널리 알려진 뒤로,
잔디밭에서 뛰노는 아이들은 급격히 줄었다.
그리고 잔디는 이쁘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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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칼과 오빠, 그리고 나와 그>
아빠한테는 나무를 조각하는 취미가 있다.
대학때 동아리에서 심심풀이로 했던게 이제는 빼놓을 수 없는 취미가 되어 있다고 하신다.
실력은 매우 굉장하다.
좋아하는 사물을 나무에 그대로 옮기는 재주를 갖추셨으니 말이다.
아빠는 나, 오빠, 엄마의 모습도 나무로 옮기셨다.
안방 화장대 위에 있는 엄마 모습을 닮은 나무 조각은,,,
아빠가 프로포즈 하며 엄마에게 건낸 거란다.
그 말을 듣고 아빠가 참 근사하다는 생각을 했다.(우리 아빠 최고^^*)
난 이런 생각을 했다.
나도 아빠처럼,,,
마음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렇게 된다면,,,
그의 모습을 나무 조각에 담아 건내 겠노라고.
초등학생 적이었던가?
오빠와 함께 아빠에게 나무 조각을 배웠다.
그래서 우리 남매와 아빠의 합작품도 몇개 있다.
이제 고3이 되어 예전만큼 나무조각에 시간을 투자하진 않지만...
그래도 마음이 복잡하고 상념이 많을때면 나무에 조각칼을 얹고 조금씩 깎아 내린다.
그럴때면 마음이 편안해짐 느낀다.
흐유,,,
공부는 되지 않고, 잡념은 많고,,,
난 나무를 한 조각 들고 와 그 위에 조각칼을 얹었다.
무엇을 조각할까 잠시 고민을 했다.
흐흠,,,
별로 떠오르는 대상이 없다.
막연히 아무거나 깎자는 생각으로 조각칼을 내리그었다.
여러차례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데 갑자기 방문이 열렸다.
"보름아. 오빠 돈 좀 빌려줘."
"얼마?"
"한 2만원.. 허어억!!"
어라?
오빠가 내 손을 보면서 왜 그러지?
난 내 손에 눈길을 주었고 순간 경악했다.
조각칼이 내 손에 박힌 것이다.(내가 좀 심각한 둔치다...-_-;;)
"아얏!!"
시뻘건 피가 흐르는 수준이 아닌, 거의 뿜어지듯이 나오고 있었다.
오빠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고,,, 난 아퍼서 엉엉 울기만 했다.
오랫동안 한쪽은 당황하고 한쪽은 울기만 하던 우리 바보 남매는 5분여가 지나서야 진정을 하고 병원에 갈 생각을 했다.(그때 집에는 오빠와 나밖에 없었다.)
난 오빠랑 손을 잡고 훌쩍 거리며 병원을 향했다.
집에서 병원까진 15분 거리다.
손을 휴지로 두껍게 돌돌 말았는데도 피는 쉼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오늘따라 택시도 잡히지 않았다.
별수없이 오빠랑 걸어가기로 맘을 먹는데,,,
구석진 길목을 지날 때였다.
"흐흐흐. 거기 둘 이리 와 봐."
놀란 오빠와 내가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명의 남자들이 불량 불량한 태도를 취하며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마치 깡패라고 선전하는 듯 했다.)
셋 중 한명이 다시 말했다(이 남자는 눈가에 흉터가 있었다.)
"빨리 안 와!! 우리 바쁜 사람들이야."
"으아악! 깡패다!"
갑자기 오빠가 비명을 지르며 무시무시하게 도망을 갔고,,,
난 당황해서 오빠의 뒷모습을 보며 소리쳤다.
"오빠!! 나는!!"
"으아악!! 살려줘!!"
오빠는 그렇게 돌아보지도 않은채 사라지고 있었다...(오빠의 등이 너무나 야속했다.)
잠시동안 조용한 깡패.
턱에 흉터가 있는 깡패가 나에게 물었다.
"정말 네 오빠냐?"
"..."
난 기분이 절망적인지라 아무 대답도 않고 조용히 있었다.
깡패들이 날 보며 불쌍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이번엔 코게 칼자국이 난 깡패가 말했다.
"저런 오빠 만난건 네 사정이고... 암튼 우린 돈만 있으면 돼. 얼른 다 내 놔."
눈가에 흉터가 있는 깡패가 말을 덧붙였다.
"흐흐... 뒤져서 돈 더 나오면 십원에 한대야!"
이런 삼류 협박이 직접 경험하게 되면 너무나 무섭다는걸 첨 알았다.
난 눈물까지 흘리며 모든 돈을 털어 그들에게 주었다.
'이제 다들 가겠지...?'
하고 생각하는데....
턱에 흉터 있는 깡패가 날 보는 시선이.. 묘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야. 얘 그냥 보내기에는 좀... 아깝지 않냐. 이거 내 스타일인데."
코에 흉터난 깡패도 징그런 눈으로 날 보며 맞장구를 쳤다.
"그래... 좀 귀엽네."
난 순간 소름이 돋았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눈에 흉터난 깡패가 입을 열었다.
"아서라. 저기 사람 오는거 안 보이냐? 얼른 가자."
과연 조금 먼 거리지만 분명 사람이 하나 오고 있었다.
깡패들은 입맛을 쩝쩝 거리더니 슬그머니 사라졌다.
난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주저 앉았다.
그리고 얼굴을 무릎에 묻고 엉엉 울었다.
한참을 흐느끼고 있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보름이네, 왜 울고 있지?"
난 살며시 고개를 들어올렸다.
현석이었다.
멀리서 오던 누군가는 현석이었던 것이다.
아는 얼굴을 대하자(아무리 불만이 많은 얼굴일지라도...) 난 너무나 반가워 얼른 일어서려 했다가,,,
다시 주저 앉았다.
다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피도 너무 많이 흘렸고 깡패 때문에 너무 많이 놀란 탓인 듯 했다.
손가락에 묶어 놓았던 휴지도 깡패와의 실랑이 중에 떨어져 나간 듯 보이지 않았다.
현석은 잠시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 피로 얼룩진 내 손을 쥐어 주었다.
"손이 너무 차."
그가 중얼 거리며 내 상처를 보더니 눈을 찡그렸다.
"많이 아프겠네."
난 눈에 눈물을 가득히 담은 채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 병원에 가자."
현석이가 그렇게 말하며 일어서지 못하는 날 등에 엎었다.
그의 등은 따스했다.
난 조금씩 마음에 안정을 찾았다.
내 손이 현석의 목을 감싸면서 피가 그의 옷을 더렵혔지만...
현석은 개의치 않는 듯 했다.
너무 편해서 조금씩 졸음이 밀려 왔다.
십분 가량 걸었을까?
한참을 가던 현석이 돌연 멈췄다.
그리고 말했다.
"근데 병원은 어디지?"
그말에 난 잠시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고는 울상을 지었다.
"..."
지금까지 병원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오고 있었던 것이다.
page. 12
<믿어도 될까?>
"아얏!"
손에 격렬한 통증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어느새 병원에 온 걸까?
의사 선생님이 내 손을 잡고 몇가지 도구를 갖고 손을 놀리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현석이도 있었다.
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파도 조금만 참아... 곧 괜찮아 질거야..."
괜찮아 질거야...
괜찮아 질거야...
괜찮아 질거야...
마치 바법의 언어인 듯,,,
현석의 말을 곱씹으며 눈을 감았다.
어느새 수술은 끝나 있었다.
엄마에게 연락을 하고 현석과 함께 대기석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날 업고 병원까지 데리고 온 그가 너무나 고마웠다.
그에게 업혀 있는 동안 얼마나 의지가 되었는지 모른다.
"저기..."
"뭐가."
"고마워."
"...당연히 고마워야지."
훗...
이젠 저 퉁명스런 말투가 건방지다기 보다는...
왠지 귀엽게 느껴졌다.
"쿡."
난 웃음을 터드렸고 현석이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너 왜 웃어."
그의 인상 쓴 얼굴은 더욱 귀여웠다.
"호호호"
난 웃음을 참지 못했고,, 현석이는 계속 궁시렁 궁시렁 거렸다.
엄마가 근심스런 얼굴로 병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난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 드렸고 엄마는 현석이에게 고마움을 감추지 못했다.
"현석 학생. 너무 고마워서 그러는데 오늘 우리 집에서 식사하지 않을래?"
난 당연히 공짜를 좋아하는 현석이가 거절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현석이는 뺐다.
엄마가 몇 차례 계속 권유하자 현석이는 마지 못하듯 우리 집에 오기로 했다.
집에 가는 동안 엄마는 새 손님인 현석이를 위해 특별한 요리를 하시려는 듯 시장에 들러 이것 저것 구입하셨다.
우연찮게 집에 오는 길에 아빠를 만나 같이 오게 되었고 오늘 있었던 일을 들으신 아빠는 현석을 몹시 칭찬 하셨다.
(반면에 오빠 이야기를 듣고는 주먹을 부르르 떠셨다.)
현석은 아빠의 칭찬을 들으며 조금 부끄러워 하는 듯했다.(부끄러워 하는 모습은 또 처음 본다,,,정말 다채롭다.)
집에 도착해서 벨을 누르자 오빠가 웃으며 대문을 열었고
아빠는 웃는 오빠에게 주먹을 날렸다.
마당에서 오빠가 쓰러지고 아빠가 지끈 지끈 밟는 동안 우리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고 요리를 하시느라 부산을 떨고 있었고.
나와 현석은 창문을 통해 아빠가 오빠를 요리하는 모습을 신비롭게 구경하고 있었다.
잠시후 오빠가 혹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빠를 말려야 하기도 했다.
이윽고,
시퍼렇게 멍이 든 오빠를 포함한 우리 네 가족, 그리고 현석은 식탁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난 조금 놀랐다.
사실 현석이가 우리 집에 오게 됐을때 난 좀 신경을 썼었다.
그의 지나친 자유분방함과 천하무적 엽기력으로 인한 실수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그것은 기우였다.
오늘 보여 준 현석의 모습은 지금까지 내 또래 중 우리 집에서 놀러 왔던 그 누구보다도 격식과 기품이 있었고 유머도 있었다.
엄마, 아빠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종 웃음을 지으셨다.
그러다가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난 현석의 한 부분을 알 수 있었다.
"자네 아버지는 무엇을 하시는가?"
현석은 이때 조금 당황한 듯 했다.
그가 조금은 어색한 표정하게 입을 열었다.
"사업을 하셨는데... 그만 잘못되어 부도가 나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건강이 나빠지셔서 돌아가셨구요..."
"저런..."
"어머,, 세상에..."
엄마, 아빠가 동시에 탄식을 터뜨렸다.
잠시 모두의 얼굴이 어두워 지는 듯 했지만 현석이가 미소 지으며 몇가지 우스개 소리를 던지며 다시 분위기 밝게 만들었다.
하지만 유심히 현석의 얼굴을 보았던 난 그의 얼굴에서 옅은 그늘을 찾을 수 있었다.
식사를 끝마친 현석과 나는 율무차를 한 잔씩 들고 내 방에 갔다.
현석은 내 책상 위의 수많은 나무 조각들을 보며 놀람을 감추지 못했고, 그것이 내가 직접 만든 것이라는 데에 더욱 그랬다.
내 나무 조각들을 만지작 거리는 현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현석아."
"응?"
"넌 왜 우리 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질 않니? 아이들이 맘에 안들어서 그래?"
현석은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잠시후 그가 말했다.
"특별히 우리 반 아이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는 아니야 다만..."
"다만...?"
"내가 사람을 잘 못 믿어서 그래."
사람을 잘 못 믿는다라....
뭔가 사연이 있는 듯 했다.
다른 화제로 말을 돌리려는데 현석이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버지 친구분이 회사 재정을 횡령 했어. 회사가 부도가 난 이유도 그게 결정적이었지."
"아..."
안타까웠다..
"저기,,"
"응?"
"우리 친구 하지 않을래"
"친구?"
"그래! 야, 마음 좀 열어라. 언제까지 교실에서 무게 잡고 있을거야."
현석은 눈을 동그랗게 뜬채 날 바라보았다.
잠시후 그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믿어도 될까?"
난 기쁜 마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녀석이 찬물을 끼얹었다.
"좋아. 내가 확실히 손해긴 하지만 친구가 되어 주지."
...손해
그의 거만한 말투에 내 주먹에 힘이 좀 들어가긴 했지만...
아무튼 기분은 좋았다.
친구의 증표로 그에게 내가 조각한 '나무 갈매기'를 주었고, 그는 신기한 듯 이리저리 만지작 거렸다.
그가 잠시후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몇개 더 달라고 해서 내가 아끼는 나무 조각을 몇개 더 주었다.
그것들을 보며 그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고 있었고,,
밤이 깊었다며 집에 가겠다고 했다.
난 미소 지으며 그를 대문 앞까지 배웅했다.
집으로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그의 등에 업혀 병원에 갔던 기억이 떠오르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page. 13
<하나에 오천원>
다다다닥!
쓍~
난 엄청난 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나뿐만이 아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내 주위에 나처럼 달리는 학생들이 수십명이 넘었다.
이 시간에 학교를 향하는 녀석들이 다 그렇듯,,,
우리는 모두 죽을둥 살둥 달리고 있다.
내 앞 여학생의 교복 치마가 바람을 타고 미친듯이 펄럭 거린다.
숨이 차 호흡이 가쁘고 하늘은 노랗다.
난 달리는 자세 그대로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
이제 30초 밖에 남지 않았다.
바로 저기에 교문이 보이는데 지각으로 벌을 선다면 이는 너무나 억울한 일이다.
어쩔수 없이 난 파워엎을 했다.
내가 외쳤다.
"파워 엎!!"
순간 나의 속력이 수배는 빨라졌다.
난 주위의 나와 비슷한 속력으로 뛰어가던 아이들을 제치고 쭉쭉 뻗어가기 시작했다.
주위의 사람들이 놀란 시선으로 날 쳐다보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지나가던 한 할아버지가 날 보며 외친다.
"훌륭해!!! 애기도 쑥쑥 잘 낳겠어!"
...순간 넘어질 뻔했지만 난 달리는데에 집중을 했다.
"지각은 싫어!!!!!"
난 비명을 지르며 힘차게 달렸고....
어느새 교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헉! 헉!
교문을 넘어선 순간 숨을 헐떡 거리며 주저앉았다.
시계를 보니 정확히 정각이다.
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선도위원들은 안타까운 듯 발을 동동 굴렀다.
그들은 별수 없이 내 뒤에 우르르 달려오는 지각생들을 잡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난 바로 등뒤에서 울려퍼지는 지각생들의 서글픈 비명들을 뒤로하고 미소를 지으며 교실을 향했다.(1, 2초 차이에 희비가 엇갈리는 것이다.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_-v)
교실에 입장하는데,,,
뭔가 이상했다.
아이들이 교실 중앙에 몰려 웅성 웅성 거리고 있었다.
뭐지?
그리고 그 속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하나에 오천원!!"
"이건 얼만데?"
"흠... 그건 나뭇결이 너무 곱군. 팔천원이야!"
"웅.. 너무 비싸다. 좀 깎아줘~~"
"어허!! 이건 모두 수공예품이야! 수공예품! 귀한거라구! 요만큼도 깎아줄수 없어!!"
"우~~ 우~~ 깎아라!!"
모대체 무슨 일인걸까?
난 아이들이 너무 많이 모여 있는 까닭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 지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별수 없이 밑으로 기어가다시피 해서 아이들 속에 파고 들었다.
...
결국 아이들의 중심부까지 파고 든 나는 굉장한 것을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이들은 현석이와 전일이를 중심으로 모여 있었다.
현석인 옆에서 조용히 돈을 세고 있었고 전일이는 양 손에 나무 조각들을 든채 연신 외치고 있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날이 아닙니다!! 쌉니다!! 싸요!!"
"아싸! 좋은 날입니다!! 묶어서 한꺼번에 사면 더욱 할인 됩니다!!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ㅡ.ㅡ^
난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저것은 내가 어제 현석이에게 건내주었던 나무 조각들이다.
하나 하나 오랜 시간을 공들여서 만든 것들인지라.. 고이 간직하고 있던 것을 친구가 된 기념으로 준 것인데....
감히 팔아먹고 있다니...
내가 잔뜩 살기를 키우고 있을때,
순간적으로 현석과 나의 눈이 부딪혔다.
현석이는 나의 독기서린 눈빛을 보고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 같았다.
"저,, 저기 보름아. 난..."
"너....내가 준 것들을...!"
마침 내 옆에 빗자루가 있었다.
난 그것을 주워 들고 현석이에게 다가갔다.
현석의 표정이 창백해 지더니 돌연 전일이를 내게 밀어 붙히고는 날렵하게 교실 밖으로 도주했다.
난 날렵하게 전일이를 피하고(덕분에 전일이는 벽과 정면으로 충돌했다.)빗자루를 든채 현석이를 쫓아갔다.
"야, 이 자식아!!!!"
"으악!!! 살려줘!!!"
난 미친듯이 현석이를 쫓았지만 그가 어찌나 날렵한지 쉽게 잡을수 없었다.
우리의 쫓고 쫓기기는 정문으로 들어오던 '담임 선생님'과 달려가던 '현석'이가 부딪치고 넘어질때까지 계속 되었다.
담탱이의 분노로,,,
현석이는 가방을 든채 벌을 서고 있었고, 난 빗자루를 들며 벌을 서고 있었다.
"흐유,,,"
내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내가 도대체 너같은 놈한테 왜 아끼던 나무 조각을 준 건지..."
"......"
"바보야. 내가 얼마나 큰 맘 먹고 그거 준건줄 알어."
"......"
현석은 꿀 먹은 병아리였다.
잠시후 그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말이야..."
현석이가 자기가 들고 있는 가방의 자크 부분을 가르켰다.
"이건 팔지 않았어."
그것은 내가 우정의 표시로 처음 건넸던 '나무 갈매기'였다.
현석은 그것을 분흥색 리본으로 묶어 쟈크에 매달아 놓은 것이다.
"풋"
난 웃음이 나왔다.
사내 녀석이 가방에 리본을 묶어 놓다니..^^;;
녀석이 평소 하던 짓과 너무 안 어울려 웃음이 나왔다.
현석이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너 왜 웃어...-_-"
그 표정이 너무 귀여웠고,,, 난 그만 크게 웃고 말았다.
현석이는 계속 투덜 거리고 있었고,,
난 더욱 크게 웃었다.
잠시 후 시끄럽다고 수업하다 튀어 나온 담탱이로 인해...
벌을 오래 서야 했다....
난 벌을 서는 중에 현석이에게 말했다.
"너 내가 준 '나무 갈매기' 만큼은 절대 소홀히 하지 마."
"응..."
현석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page. 14
<아무렴 어때>
지금은 청소 시간.
현석인 빗자루질 중이었고 난 옆에서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그것은 즉,
[현석이랑 보름이랑 사귄데요~~]
...-_-+
놀라 자빠질 일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우린 결코 사귀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친!구!일 뿐이다.
어차피 현석이는 내 이상형과 전혀 동떨어진 스타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성상...
음...
자상하고,,,
부드러우며,,,
내 모든 이야기를 귀울여 들어주고,,,
힘들때면 옆에 있어주는...
그리고 나만을 생각해주는....(꺄아~~^^ 부끄러)
헤헤,,,
"입 좀 다물어라. 침 나올라."
같이 청소하던 현석이가 퉁명스런 목소리를 내게 던졌다.
...-_-
암튼 내 이상형은 저렇게 무뚝뚝하고 사람 곤란하게 하고 비매너적인 인간이 결코 아니다!!!
더군다나 난 아직도 현석이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루머가 나돌게 된 이유는 우리가 최근 급속하게 친해진 까닭에 있다.
예를 들어 볼까?
전일이를 제외하고 현석이가 유일하게 말을 거는 것이 '나'였다.
그가 유일하게 장난을 치는 상대가 '나' 였으며
유일하게 그의 잠을 깨울수 있는 상대가 '나'였고...
더군다나,,
요즘엔 방과후에 교실에 남아 매일 30분씩 현석이에게 수학을 배우기도 했다.(현석이가 가르켜 주는 수학은 너무나 쉽다.)
전에 현석이에게 업혀 병원에 갔다 온 뒤 생긴 급속한 변화다.
결과적으로,,,
계속 붙어 다니다 보니 이래저래 소문이 날 만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현석이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 시선 때문에 나의 행동에 스스로 제약을 거는것은 한심한 행동이라고 아빠는 누누히 말씀하셨다.
음-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소문이 퍼지는 것을 방관하는 것 또한 곤란한 일이다.
난 빗자루질을 하는 현석에게 말했다.
"현석아, 너 우리 둘 사이에 이상한 소문 도는거 알어?"
현석은 날 쳐다보지도 않은채 대답했다.
"무슨 소문."
"저기... 애들이... 우리 둘이 사귄대..."
이 말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
현석이 빗자루질을 멈추더니 허리를 펴며 내 얼굴을 보았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그의 눈빛은 정말 투명하다.
"아무렴 어때."
그가 말했고...
난 어색하게 웃음 지었다.
"그렇지?"
"싱겁기는."
현석은 다시 빗자루질을 시작했다.
난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옆에서 걸레질을 시작했다.
오늘따라 잘 닦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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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8.19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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