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선거와 관련해 건강세상네트워크는 '누구나 건강한 서울, 건강격차 없는 서울'을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울시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1차보건의료에 대한 입장과 계획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1차의료연구회'의 회장을 맡고 계신 이재호 선생님이 '마을건강센터'를 한국 1차 보건의료의 대안적 모델로 제시하였습니다. 이 내용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개혁을 생각하는데는 물론이고 지역사회 차원에서의 접근 방법을 모색하는데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건강세상네트워크에 보내주신 이재호 선생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한국 일차의료의 대안, 마을 건강센터]
일차의료연구회 이재호 (가톨릭대)
일차의료는 보건의료체계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최근 30여년간의 연구 결과들에 의하면, 강한 일차의료 기반을 가진 국가들은 그렇지 못한 국가들보다, 국민 건강수준이 더 높으며, 의료 서비스 제공이 보다 형평적이며, 그리고 건강 서비스가 보다 효율적으로 제공되고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한편 일차의료 의사를 주치의로 두고 있는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환자들보다, 권장되는 예방 서비스를 더 잘 받고, 위중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필수적 치료를 더 잘 받으며, 불필요하게 응급실을 방문하거나 병원에 입원하는 빈도가 더 낮은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일차의료 의사가 충분한 지역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주민의 사망률이 보다 낮고, 기대수명이 보다 높으며, 자가 평가한 건강수준이 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일차의료는 ‘최초접촉’, ‘포괄성’, ‘조정 기능’, ‘관계의 지속성’이라는 4가지 핵심속성들과 ‘전인적 의료’, ‘가족 및 지역사회 지향성’, ‘지역사회 기반’이라는 3가지 부속성을 갖는다. 일차의료란, 건강을 위하여 가장 먼저 대하는 보건의료를 말한다. 환자의 가족과 지역사회를 잘 알고 있는 주치의가 환자-의사 관계를 지속하면서, 보건의료 자원을 모으고 알맞게 조정하여 주민에게 흔한 건강 문제들을 해결하는 분야이다. 일차의료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 보건의료인들의 협력과 주민의 참여가 필요하다.(일차의료연구회 2007)
노인인구 증가와 만성질환 관리가 중요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선진국들은 보건의료체계의 변화를 도모하고 있는데, 일차의료 개혁이 변화의 중심에 있어왔다. 일차의료는 일차의료 팀과 바람직한 지불제도를 갖추는 등 기반이 공고해야 그 업무 수행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일차의료의 기반 측면에서는 상당한 수준에 도달 해 있는 영국의 경우에도 지불제도 개편 등을 통해서 서비스 질 향상을 도모해 왔으며, 유럽에서 의료체계가 느슨했던 프랑스의 경우에도 인센티브를 통해 환자의 의료이용 행태 변화를 유도하는 선호의사제도(2006)를 도입하였다. 선진국 중 의료체계를 시장에 맡겨온 유일한 국가인 미국의 경우만 해도, 이미 일차의료 전담 의사의 범위를 설정하였으며, 여러 지불제도 방식을 실험적으로 경험해 왔다. 최근에는 환자 중심 주치의 의원(medical home) 시범사업과 책임의료 기관(ACO) 모형 도입 등 지속적인 일차의료 개혁을 도모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경우 1965년부터 시작된 마을 건강센터(community health center)가 보다 양질의 지역사회 일차의료 서비스를 제공해 오고 있다. 현재 미국 전역에 약 8천개의 마을 건강센터가 기능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노인인구 증가속도와 의료비 증가 속도를 보이고 있는 한국은 보건의료체계 개혁은 매우 중요하면서 급한 문제이다. 특히 그 주요 내용은 일차의료 강화일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국내에서 일차의료 강화는 현재와 같이 시장의 지배를 받는 상황에서 국가의 바람직한 정책적인 개입과 지원이 필요하다. 그 동안 바람직한 일차의료를 경험해 보지 못한 국내에서, 현재의 일차의료 구조를 그대로 두고 새로운 서비스를 추가시키려는 시도가 종종 있어 왔는데, 구조적 취약성을 그대로 두는 정책은 필연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의료체계가 정립된 선진국들의 경우, 일차의료 기관은 그룹 진료 형태가 발달해 있지만 국내에서 일차의료 기관의 대부분인 개인 의원은 단독개원 형태가 90%이상이다. 또한 국내 진료비 지불제도가 행위별수가제로만 되어 있어서 서비스의 왜곡을 피하기 어렵다. 따라서 국내에서 일차의료 강화를 시도하고자 할 때 이 같은 구조 개편의 내용을 담을 수 있는 표준 모형을 설정하고 시범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과 같은 ‘마을 건강센터(community health center)’ 모형을 제안한다.
-표는 링크를 통해 확인하세요
지역사회 개인 의원들이 짧은 기간 동안에 표준 모형 ‘마을 건강센터’로 전환하는 일은 불가능하므로, 국가 차원의 중장기적으로 계획이 필요하다. 정부 또는 보험자가 지역사회 개인 의원과의 계약을 통해서 일차의료 기관의 구조적 요건들을 갖추도록 지원하면서 표준 일차의료 기능을 수행하도록 장려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보건소, 의료생협, 개인의원에 바탕을 둔 세 가지 유형의 일차의료 기관 표준 모형인, ‘마을 건강센터’가 가능할 것이다.
한편, 국내의 의료생협은 그 기능상 마을 건강세터 기능의 상당부분을 이미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표준 일차의료 기관으로서의 마을 건강센터 시범 운영이 가장 용이할 것이라고 보인다.
마을 건강센터 의료생협 모형은 의과대학과의 협약에 의해 일차의료를 전공하는 의과대학 교원의 근무가 가능하도록 하여, 의료생협의 안정적 의사 인력 수급이 가능 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의과대학 입장에서는 학생들에게 지역사회 일차의료 학습의 장이 마련될 것이고, 일차의료 전공의에게는 지역사회 일차의료 수련의 기회가 제공될 것이다. 의료생협이 가지고 있는 특징인 지역사회 기반과 주민 참여는 일차의료를 구조적으로 튼튼하게 할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마을 건강센터 의료생협 모형은 바람직한 일차의료의 대안으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도 현재의 개인의원, 보건소 등을 점진적으로 마을 건강센터 모형에 근접할 수 있게 정부의 구조지원을 추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수가체계는 기반을 둔 모형에 따라서 달리 적용할 수 있을 것이지만, 현재의 행위별 수가제로부터 혼합형 지불체계로의 변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향후 10년 이내에 표준 일차의료 기관으로서의 마을 건강센터가 사람들의 삶의 터전 곳곳에서 제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