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커피야 놀자!]
- 4.1 마음과 느낌을 담은 핸드 드립 커피
비미남경의 커피가 다른 커피집의 커피와 차별화되는 가장 큰 이유는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에 있다. 비미남경에서는 여타 커피집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핸드 드립이라는 방식으로 커피를 만들어서 서브를 하는데, 핸드 드립이란 커피메이커의 추출 원리를 사람의 손으로 대신하여 정교하게 커피의 맛을 선별하여 뽑아내는 기술 또는 그러한 방법을 의미한다.
기본적인 핸드 드립 추출 방법을 소개해보자. 먼저 깔때기처럼 생긴 드립퍼라는 용기에 종이 필터를 끼워 넣는다. 드리퍼에 분쇄된 커피 가루를 담은 후, 조금씩 물을 부어가며 커피를 내리게 되는데, 물의 양, 물의 온도, 물줄기의 두께, 물을 붓는 시간 등 모든 환경적 변수가 커피의 맛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계에 의존하여 커피를 추출하는 것과 달리 커피의 성분을 임의로 선별하여 뽑는 것은 물론 농도의 조절까지 가능하다는 것이 핸드 드립의 진정한 묘미이다.
핸드 드립 커피의 추출 과정은 요리의 '맛내기'에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요리사가 음식의 맛을 더하기 위해 조미료를 사용할 수 있는 것에 비해 핸드 드립 커피에는 맛을 보완해주는 특별한 조미료가 없다. 오로지 커피를 뽑는 이의 '손 맛'이 모든 역할을 대신한다. 놀라운 것은 핸드 드립 커피는 만드는 이의 그때그때의 마음과 느낌이 그대로 커피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커피를 뽑아내는 노하우, 즉 추출 기술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는 없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그 속에 존재한다. 그것이 핸드 드립 커피의 진정한 매력이다.
드립 커피는 시와도 같다. 시에서 문법을 파괴하는 시적 허용이 용납되듯이 드립 커피도 이론을 뛰어 넘는 그 무언가가 통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일본의 유명한 'SAZA커피'라는 곳의 커피장인은 모든 커피의 이론에 역행하는 방법으로 커피를 추출하고도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장인 소리를 듣고 있다.
비미남경은 달랑 열 평짜리 점포 하나 뿐인 작은 가게이지만 거의 모든 부분에서 메뉴얼화, 표준화 작업이 되어 있다. 이는 점포의 크기나 수에 관계없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점포 경영의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런데 웬만한 규모를 갖춘 프랜차이즈의 본사들도 메뉴얼이나 표준화 작업 없이 점포를 개설해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니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비미남경에서는 커피의 종류와 볶인 상태에 따라 각각 다른 드립 방식으로 커피를 뽑는다. 물론 이 모든 것에 메뉴얼 및 표준화 작업이 되어 있다. 그러나 핸드 드립에 있어서 메뉴얼이나 기술보다느도 중요하고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커피를 대하는 자세와 손님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가짐이다.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한 잔의 멋진 커피가 뽑아져 나오게 된다. 이러한 추상적인 노하우를 구체화시키는 작업이야말로 모든 커피인들을 평생 커피에 매달리게 만드는 유혹의 정체인지도 모르겠다.
- 4.2 커피의 영혼을 기술로 이끌어낸 에스프레소
드립식 커피 추출방식과 더불어 에스프레소 추출방식이라는 것이 있다. 이러한 추출 방식으로 만들어진 에스프레소가 지금은 세계 커피 문화의 트랜드를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에스프레소는 '커피의 영혼'이라 불릴 만큼 커피의 에센스를 모두 뽑아낸 커피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음과 느낌의 드립식 커피와는 대조적으로 완벽한 과학의 커피라고 부른다.
여기서는 어떻게 커피의 영혼을 기술로 이끌어내게 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탈리아어로 '빠르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에스프레소(Espresso)는 커피 원두의 화학적 특성과 기계라는 물리적 도구가 이상적으로 조화를 이룰 때에야 비로소 한 잔의 완성된 작품으로 승화된다. 모통 1mm 정도로 곱게 갈은 6~8g정도의 신선한 커피를 9기압의 증기압을 사용하여 90~92℃의 높은 온도로 약 25~30초간 30㎖정도를 추출한다는 과학적인 룰이 있는데 이외에도 바리스타가 커피를 포터필터 안에 다져주는 힘의 세기라든가 정수된 물인지 연수기를 통과한 물인지 따위의 물의 성분까지도 과학적인 근거를 통해 커피의 맛을 결정하는 요소로 데이터화 할 수 있다. 지금같이 한 잔씩 개별적으로 추출하는 현대적 개념의 가압 추출방식의 에스프레소 머신은 1905년 이탈리아인 '배째라(Bezzera)'에 의해 개발되었고, 1946년에는 드디어 현재의 에스프레소 기계와 동일한 방식의 추출기가 역시 이탈리아 사람 '가짜(Gaggia)'에 의해 발명되었는데, 훗날 추출기에 대한 특허 분쟁이 '배째라社'와 '가짜社'간의 숙명적 한판으로 벌어진 일이 있었으니 거기에는 이름도 한 몫 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숙달된 바리스타라 하더라도 품격 있는 한 잔의 에스프레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전히 초보자 못지않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잘 뽑은 한 잔의 에스프레소는 황금빛 크래마(crema)가 3~4mm정도로 층을 형성한다. 이 크래마라는 단어는 신조어로서 원래는 'Natural Coffee Cream'이라 불렀다고 한다. 혹시 어디를 가서든 에스프레소를 마시게 된다면 이 크래마가 잘 살아 있는지 살펴보시라. 그 커피를 만든 사람의 커피에 대한 소양과 수준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긴 여운을 남기는 한 잔의 이 신비한 액체를 'Small & Beautiful'이 전 세계에서 음용 되고 있는데, 아직도 한국에서는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에스프레소를 발견하기가 쉽지 안다. 후륭한 한 잔의 에스프레소를 발견하여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환상적인 미각 체험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 4.3 그린빈을 아시나요?
커피는 북위 25도와 남위 25도 사이의 열대, 아열대성 기후에서 재배된다. 여기에 걸치는 지역을 커피 존(Coffee Zone) 또는 커피 벨트(Coffee Belt)라고 부른다. 커피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커피나무에 하얀 꽃이 피고 그 자리에 달리는 빨간 커피체리 속에 들어 있는 생두(生豆)라 불리는 그린빈(green beans)을 볶아 만든 것이다.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그린빈을 일반인들이 구경하거나 만져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어느 인터넷 커피 동호회에서 한 회원이 게시판에 이런 질문을 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혹시 그린빈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없나요?"
그때 동호회의 주인장은 "쉽지 않은 질문이군요, 한번 알아는 보겠지만 조금 어려울 듯 합니다"라고 답변했다.
그 동호회는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커피 동호회로 꽤 크고 알려진 모임이었으나 매니아를 자칭하는 그들도 그린빈을 손에 넣기가 쉽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보가 공개되고 동유되는 시절인지라 구하려고만 한다면 얼마든지 그린빈을 구할 수 있다. 집에서 프라이팬이나 팝콘 만드는 기계로 직접 커피를 볶는 쏠쏠한 재미를 느껴볼 수 있게 되었으니 기회가 있다면 직접 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그린빈은 모통 두 쪽이 짝을 이루어 커피체리라 부르는 커피열매 안에 들어 있는데, 간혹 밤도 한 알만 달랑 들어 있는 알밤이 있듯이, 커피도 두 쪽이 아니라 동글동글한 한 알의 그린빈만이 들어 있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피베리'라 부르는데 '블루마운틴 피베리', 혹은 '킬리만자로 피베리' 등이 유명하다. 외롭게 짝 없이 홀로 자란 커피라 측은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외로움을 감내하며 인고의 시간 속에 성숙된 그린빈이라 그런지 맛이 특별해 피베리만을 따로 모아 비싸게 거래하곤 한다.
그린빈은 커피체리를 벗겨내었을 때 파치먼트라는 끈적끈적한 과육에 싸여 있는데, 이 파치먼트를 물에 씻어 내느냐, 아니면 그대로 나둔 채로 태양열에 말린 후 벗겨내느냐에 따라 커피의 고유한 맛과 향도 달라진다. 고추장도 태양초 고추장이 더 맵고 향기롭듯이 커피 역시 자연 건조식의 썬드라이(sun dried) 방식의 커피가 더 맛이 깊고 향이 풍부하며 커피 본연의 심오한 느낌을 잘 간직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모카커피는 이처럼 태양열로 말린 후 껍데기를 벗겨내는 건조식의 커피로 향과 풍미가 발군이다. 그러나 건조식의 커피는 물에 씻어내는 수세식의 커피에 비해 상품성이 떨어지고 질이 균일하지 못하여 현재는 커피를 생산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수세식의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생산된 그린빈은 볶아졌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알고 있는 모양의 원두커피(coffee beans)가 되는데 커피의 전문가라면 생두의 모양만 보고도 이것이 건조식으로 생산된 그린빈이지, 수세식으로 생산된 그린빈인지를 알 수 있다. 볶기 전의 생두만 보고도 어느 정도는 맛과 향을 미리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멋진 생두를 만나게 된 커피 로스터들은 흥분하게 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질 좋은 등급의 그린빈을 손에 넣기가 쉽지 않다.
잠깐 그 이유를 살펴보자. 커피를 생산하는 국가에서는 생산된 커피의 질에 따라 등급을 붙여 값의 차등을 둔다. '탄자니아 AA', 인도네시아 만델린 G-1' '브라질 No2' 등 대개의 경우 나라의 이름이 앞에 나오고 뒤에는 등급을 표현하는 기호나 숫자가 나온다. 나라마다 등급을 표현하는 방법은 각기 다르다. 예를 들면, 탄자니아에서는 등급을 AA, AB, BB와 같은 식으로 나누고 (AA+, AA++도 있다), 인도네시아 만델린은 Grade의 약자를 써서 G-1, G-2와 같은 식으로 나눈다. 자메이카나 브라질을 포함 하여 많은 나라에서는 No.1, No.2로 등급을 표기한다.
이러한 각 등급의 커피들 중 최상품의 질 좋은 생두들은 값이 고가이기 마련인데 이런 고가의 생두는 생두의 가치를 아는, 혹은 커피를 비싸게 유통할 수 있는 커피의 선진국들이 모두 사간다. 한국은 어떠한가. 그린빈을 보여줘도 그것이 커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을 정도로 일단 커피에 대해 무지하다. 그리고 대기업들이 커피 물동량의 키를 쥐고 있다 보니(참고로 세계에서 석유 다음으로 물동량 많은 것이 커피이다) 굳이 질 좋은 그린빈을 비싼 값을 주고 사들여 유통시킬 필요를 못 느끼게 되는 것이다. 또한 아직까지 한국의 원두 시장 규모가 미미하다보니 한국에 들어오는 생두는 커피 생산국들이 팔고 남은 찌꺼기 같은 수준의 생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한국에서도 질 좋은 그린빈이 유통되어야만 하고 손쉽게 생두를 구경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커피 시장도 커질 수 있다. 이것은 대기업에 책임을 전가할 문제가 아닌, 커피를 사랑하는 커피업계의지각 있는 자들이 감당해 나가야 할 문제이다. 물론 많은 벽들이 있다. 그린빈이 농산물이다보니 원산지로부터 수입하여 통관에 이르기까지 절차와 과정이 복잡할 뿐 아니라 식양청으로부터 농약잔류검사를 받는 비용도 만만치가 않다. 또 원가 절감의 차원에서 질 낮은 값 싼 생두만을 선호하는 중간 도매상들이 좋지 못한 관행도 큰 문제이다. 하지만 질 좋은 그린빈을 찾는 이들이 한 둘씩 늘어난다면 머지않아 우리나라에서도 최상품의 그린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비미남경의 생두는 한국의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질 좋고 다양한, 비미남경 최고의 자랑거리이다. 일본에서 다녔던 회사의 도움으로 일본의 미쯔비시 상사가 취급하는 세계 각국의 최고 쿼리티의 생두를 직배하기 때문이다. 쌀이 좋으면 어디다 밥을 짓든 맛이 좋은 것처럼 좋은 질의 최고급 생두라면 커피 맛에 있어서도 기본 점수 70점은 따고 들어간다. 이만하면 비미남경 최고의 자랑거리라 할 수 있지 않은가.
- 4.4 로스팅과 블렌딩의 세계
커피와 다른 차들의 차이점을 한마디로 표현해 보라면 나는 서슴없이 '자유'라고 말하겠다. 다른 어떤 차도 따라올 수 없는 '자유로움'이 커피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발효를 끝내버린 홍차에는 추출이라는 즐거움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커피에는 추출이라는 즐거움 외에도 로스팅과 블렌딩이라는 무한한 창조적 자유가 펼쳐져 있다.
로스팅과 블렌딩의 자유로운 세계를 살짝이나마 경험해 보자. '커피 로스팅'이란 쉽게 표현해 커피를 볶는 것을 말한다. 같은 커피라도 어떻게 볶느냐에 따라 그 맛은 격심하게 달라지는데, 땅콩을 살짝 볶는냐, 중간 정도로 볶느냐, 강하게 볶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을 생각해보면 커피의 로스팅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커피를 약하게 볶는 것을 약 볶음 혹은 약배전, 중간 볶음을 중배전, 강하게 볶는 것을 강배전이라고 한다. 조금 더 세분화하여 약한 볶음의 순서로부터 '라이트', '시나몬', '하이', '미디움', '시티', '풀시티', '프랜치', '이탈리안'의 8단계로 나누기도 하는데, 볶음의 세기가 달라짐에 따라 커피의 맛도 달라진다. 커피는 약하게 볶을수록 신맛이 강해지고, 강하게 볶을수록 쓴맛이 강해진다. 그래서 커피 로스터(커피 볶는 기술자)가 지향하는 커피의 맛에 따라 커피를 볶는 스타일도 달라진다.
훌륭한 커피 로스터라면 커피의 종류에 따라 가장 맛있는 쵲ㄱ의 로스팅 포인트를 찾아내는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같은 생두를 가지고 약하게도 볶아보고 강하게도 볶아보며 머리 속에 그린 이미지대로의 맛을 구현해 내는 예술가적 창조성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감(inspiration)은 커피 로스터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조건이라 하겠다.
한편 한 종류의 커피를 볶아서 만든 커피를 스트레이트 커피라고 하는데, 스트레이트 커피에서는 맛이 허전함을 느끼게 되기 쉽다. 그 부족한 맛이나 풍미를 보완해 주는 의미에서 각기 다른 스트레이트 커피를 섞어서 주게 되는데 이런 작업을 블렌딩이라 부른다. 블렌딩에도 유행이 있어 유럽의 커피집들 사이에는 시대를 풍미하던 블렌딩 방식들이 있다. 하지만 가장 바람직한 블렌딩이란 그 집만의 독특함이 묻어나는 블렌딩이 아닐까 싶다.
가장 기본적인 블렌딩을 한 두 가지 소개해 보자.
일반적으로 자기를 희생하며 다른 커피의 장점을 살려주는 중성적인 브라질 커피를 베이스로 하고 그 위에 콜롬비아를 얹어 풍미와 깊이를 더해주고 모카를 첨가해 향미를 강하게 해주는 클래식한 블렌딩이 유명하다. 여기에 과테말라 같은 커피를 조금 더 얹어 개성이 강한 커피를 만들기도 하고 만델린 같은 묵직하고 쓴맛이 강한 커피를 보태어 중후하고 무거운 맛의 커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간혹 원가 절감차원에서 인스턴트 커피의 원료로 쓰이는 인도네시아나 베트남의 값싼 로부스타를 사용하여 블렌딩을 하기도 하는데 로부스타는 극히 적은 양이라도 혼합되면 맛의 투명감이 사라지며 특유의 로부스타 냄새가 나기 때문에 일반 드립식의 커피를 위해서라면 가급적 섞지 않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아 커피를 다섯 가지 이상 섞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미구의 경우에는 열 가지 이상의 커피를 블렌딩하여 좋은 맛을 내는 커피를 만들기도 하니 블렌딩의 왕도는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다각도의 실험과 테스팅으로 최고의 맛을 발견해내는 기쁨은 아마 연구실에서 신약을 개발해내거나 새로운 원소를 발견해내는 기쁨에 비견할 만 할 것이다. 비미남경이 투철한 실험정신으로 블렌딩 세스팅을 거듭하는 것은 이러한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커피를 알게 되면 될수록 커피만의 자유스러운 권리를 행사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힐 것이다. 당장에라도 생두를 한줌 구해 프라이팬에 볶아 본다든지 냉동실 안에 꼭꼭 숨겨둔 커피 꾸러미를 꺼내어 두어 종류의 커피를 섞어 마셔본다든지 하는 창조의 자유에 동참해 보길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창조된 커피에 당신만의 이름을 붙여 보시라. '철수의 하우스 블렌드 커피', '영희의 No.1커피' 이런 식으로 말이다.
- 4.5 커피는 생선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비미남경의 멤버쉽 카드에는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커피 원두가 하나 그려져 있고 수학의 등호 표시, 그리고 물고기 한마리가 있는 그림이다. '커피는 생선이다'라는 의미의 이 그림이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커피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 암호 같은 그림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이 그림은 '커피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신선함이다'라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인데, '생선이 신선함을 잃으면 가치가 없듯이 커피도 신선함에 그 가치가 있다'라는 의미이다. 그만큼 비미남경에서는 커피의 신선함을 중요하게 여긴다. 커피만큼 쉽게 맛과 향이 날아가 버리는 음식도 드물다. 계절과 날씨, 습도, 기온 등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적어도 볶은 지 한 달이 지난 커피 원두는 가급적이면 처분하는 것이 좋고, 커피를 포장한 봉투를 개봉한 후에는 더더욱 빠른 시일 내에 소비해야 한다. 그래야만 맛과 향이 살아 있는 건강에 좋은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커피는 기름 성분이 많기 때문에 커피 알갱이가 공기와 부딪치는 그 순간부터 산화되고 부패되는 '산패현상'이 시작된다. 갓 구운 소금김의 고소함과 바삭거림도 며칠 그대로 방치해두면 사라지고 눅눅해지며 오히려 쾌쾌한 냄새까지 나기 마련이다. 김에 바른 기름이 산화도이ㅓ 버리기 때문이다. 커피 역시 갓 볶은 커피를 갈아서 마시는 것과 볶은 지 몇 달 지난 것을 마시는 것에는 엄청난 맛의 차이가 있다.
대기업들이 유통상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커피의 유통기한을 2~3년씩 잡아 놓은 것은 소비자들을 우롱하는 행위에 가깝다. 일반 소비자들 역시 다른 음식의 유통기한에 대해서는 극도로 민감하면서도 오래 묵힌 커피는 개의치 않고 마시고 있다. 이는 커피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니 대기업이나 소비자를 탓할 수만은 없는 문제이다. 커피를 마시는 소비자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커피에 대한 계몽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오래된 커피 원두에서는 고소한 냄새가 아닌 담뱃재 같은 쾌쾌한 냄새가 난다. 이런 원두를 가지고 커피를 만드는 곳에서는 커피에서 나는 찌들고 기분 나쁜 맛을 감추기 위해 다량의 우유와 시럽 혹은 설탕으로 커피 본연이 맛을 감추고 부수로 들어가는 재료의 맛을 강조하곤 한다. 커피 업계에서 꽤 유명한 어느 커피인의 이야기처럼, 한국 커피집에서는 커피를 파는 것이 아니라 시럽과 우유를 판다는 말은 근처 커피집에만 가보더라도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다량의 시럽과 우유가 들어간 커피는, 커피를 고소한 향과 맛이 아닌 달고 느끼한 맛으로 기억하게 만든다. 이렇게 찌든 맛의 커피를 한 번 경험해보면 커피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을 받게 되고 커피 맛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만 쌓이게 된다. 맛있는 커피를 경험하지 못하고는 커피에 대한 흥미가 생길 리가 없다.
갓 볶은 커피는 그 신선함 하나만으로도 세계 유수의 커피 브랜드의 커피 맛과 대적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는다. 세계적으로 아무리 유명한 커피 브랜드라도 그 나라에서나 맛있는 커피이지 몪아져서 몇 달간 배타고 건너 온 커피가 맛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혹 블렌딩의 미흡함이나 추출 기술의 미비함이 있을지라도 갓 볶은 커피의 신선함은 그것들을 충분히 상쇄시키고도 남는다.
비미남경의 매장 안에는 여기저기 커피 원두들로 넘쳐 나는데 특별히 한 쪽 귀통이에는 볶은 지 보름이 지나 폐기처분된 원두들이 쌓여있다. 주로 화장실에서 방향제로 사용되거나 디스플레이를 할 때 사용되는 것들이다. 오래된 커피를 버리는 것을 아까워하면 기본적으로 손님들의 건강을 책임질 수 없다. 신선한 커피를 사용하는 것은 비미남경의 가장 기본적이고 철저히 고수되어야 할 원칙이며 가장 큰 자부심이다.
우유를 구입할 때 제조일자와 유통기간을 확인하고 사는 것처럼 커피를 구입할 때도 볶은 날자를 확인하고 구입하는 것이 상식이 되는 그런 커피문화가 한국에도 빨리 정착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 4.6 블루마운틴 커피가 14,000원이라구요?
비미남경의 커피 가격은 대체로 싼 편이다. 비미남경 하우스 블랜드 커피가 3500원, 4000원 선이고 에스프레소가 2500원이니 가격적인 면에서 큰 부담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예외인 커피가 있으니 우리가 흔히 다방이나 커피집에 가서 삼사천원 주고 마시는 블루마운틴이라는 커피이다. 블루마운틴은 비미남경에서 14,000원에 팔린다. 커피 한 잔의 가격으로는 너무 비싸게 느껴지겠지만 이 가격은 100% 진품 No.1등급의 블루마운틴 커피의 가격대로는 적절한 수준이다.
일단 블루마운틴의 경우는 100% 진품을 구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No.1등급의 최상품을 구해서 늘 신선한 상태로 준비해 놓는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말이다. 더욱이 로스팅 해놓고 팔리지 않아 폐기 처분하면서도 지속적으로 보석 알갱이 같은 블루마운틴 원두를 볶아놓는다는 것은 그만한 수고와 고통이 수반되는 일이다.
시중에서 유통되는 원두커피 중 블루마운틴이라고 이름 붙어있는 것의 90%이상은 가짜이거나 블루마운틴을 아주 소량만 섞은 블렌팅 커피일 가능성이 크다. 유명 백화점에서도 블루마운틴 블렌팅 커피를 100% 블루마운틴 진품인 양 당당히 팔고 있는 형편이니 일반 시중에서는 어련하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좋은 커피집을 분별하는 아주 좋은 지표랄까, 척도를 하나 얻을 수 있다. 일단 커피집을 선택하는 기준이 분위기나 음악, 인테리어가 아니라 커피의 맛이라면 그 집의 메뉴판에 적힌 블루마운틴 커피의 가격을 보라. 그 가격대가 일반 커피와 비슷하다면 그 블루마운틴 커피는 십중팔구 아니 100% 가짜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더 나아가 그 집의 주인장 되슨ㄴ 분이 커피에 대해 무지하거나 별 관심 없이 커피를 만들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블루마운틴 커피를 주문하면 국적 불명의 향커피가 등장하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니 주의하시라.
비미남경의 메뉴판에 적혀있는 블루마운틴 No.1 커피의 설명을 짤막하게나마 옮겨본다.
"꼭 한번은 경험하고픈 세계 최고의 No.1커피.....자메이카 블루마운틴 No.1... 14,000원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커피로 감식가들에게는 꿈의 커피로 여겨지며 영국 황실에 납품되는 황실 커피입니다. 블렌딩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맛이 조화를 이룬 희소가치가 높은 최고의 커피입니다. 100% 블루마운틴 No.1커피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어쩌면 행운 입니다."
계속.....
첫댓글 커피한잔에 만사천원이라함은 아주 비싼것은 당연하겠지만 한번맛보고 싶은 사실을 감추기는 힘드네요 꼭저 비미남경이란집에가서 블루마운틴이란 좋은 커피도 맛보고 싶지만 저집에서 제일찐한,독한(?),젤쓰운커피한잔 꼭 마셔보고 싶네요
마셔!~~ 익숙한 단어네염~~^^*
익숙한기라~ 원샷노브레끼도 익숙하지요? ㅋㅋ
푸~후~~~아주 익숙하고 친숙한 단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