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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세계 뉴스]
427년 역사, 세계 최대 발행 부수의 독보적 신문.
세계 표준력 1998년 9월 이니그마(Enigma) 주간.
<특보, 잉그릿드 누이치(Ingritt Nuitchii) 헌터로서의 은퇴를 선언하다>
먼저 본지는 십 년 이상의 긴 세월 동안 귀사에 많은 정보와 기삿거리를 제공해 주신 역사적인 불세출의 사냥꾼 잉그릿드 누이치에게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표하며 공로패 및 본지의 명예이사 직함을 그에게 수여함을 지면을 통해 미리 밝힌다. 그가 헌터로서의 삶을 더 이상 영위치 않음은 본지는 물론 누이치의 지지자들에게 대단히 서글픈 일일 것이나 그의 판단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후세의 사가들에게 미뤄야 할 것이며, 이 슬프고 아쉬운 마음들에 대한 보답을 그는 헌터답게 몬스터들에 대한 장문의 투고로 대신하겠다고 사의를 표한 것을 전하는 바이다.
*잉그릿드 누이치 저 : 몬스터 일람 - 드래곤 편(1)
먼저, 그 동안 미천한 일개 사냥꾼을 넓은 아량과 하애와 같은 사랑으로 나를 지지해 주었던 다양한 종족의 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나는 내 일생 일대의 선택이 어쩌면 앞으로 사냥꾼의 역사상 두 번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를 기념비적인 대기록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 밖에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가 오크라는 태생의 숙명을 타고난 이상 내 조국이 이종족에게 짓밟히고 있음을 외면하고 개인의 영달과 번영만을 추구할 수만은 없다는 소소한 변명을 남기려 한다.
특히 내가 어려움에 직면하였을 때 항상 내 편이 돼주고 나를 믿어 주었던 오크족과 인간족의 팬들에게 충심으로 고마워 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토로하는 바이며, 그리고 빼 놓고 이야기 할 수 없는 사실 하나는 나를 사랑해 주고 있는 일부 바바리안의 청년들에게 우리가 전장터에서 만나는 날은 더 이상 헌터와 지지자의 관계가 아닌 서로 목숨을 담보로 죽여야 하는 적으로 조우하게 될 수밖에 없는 역사적 현실을 잊지 말아달라는 비통한 현실을 말해 주고 싶다. 나는 이처럼 감내하기 힘든 운명의 장난에 형언할 수 없는 서러움을 느끼지만, 젊은이여 역사는 비정한 것이다. 젊은이여, 나를 적으로 만나는 날엔 검의 손길에 추호의 사정을 두지 말라. 나는 그대를 찌르는 검에 개인의 정을 잊을 것이다.
나는 한편으로 저물어 가는 늙은이로서 이제는 구차한 변명을 들지 않고도 헌터로서의 인생을 마무리하게 되었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엘프의 삶을 이야기 할 때 300년을 이야기하고, 바바리안의 삶을 이야기 할 때 200년을 이야기하며, 인간의 삶을 이야기 할 때 100년을 이야기한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오크의 삶은 70년에 불과하다. 내가 건강하여 조금 더 살지라도 혹은 위대한 마법사의 힘을 빌려 수명을 좀 더 연장한들 인간보다 오래 살겠는가? 젊은이들이여, 그대의 태생과 그대의 삶에 충실하라. 나는 단 한번도 오크로 태어났음이 엘프로 태어났음 보다 못하다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나는 범윤회론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다음 생에는 설혹 다른 종족으로 태어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택할 기회가 있다면 주저 없이 오크로 다시 태어날 터이다.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절절한 사연들이 가슴에 남아 있지만 젊은이들이여, 흐르는 강물을 되돌릴 수는 없는 법, 역사는 거꾸로 흐르지 않는 법.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만약 신이 있다면 오크와 인간과 바바리안이, 그리고 각자의 고유한 언어가 있지만 역시 우리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엘프와 비스티안과 드워프와 하플링과 조인족 기타 수많은 종족들이 전 세계에 같은 언어를 가지고 있음을 그것이 신의 은총이라 생각한다. 젊은이들이여, 지난 시대의 과오들은 늙은이들이 가져갈 짊. 그대들은 앞을 바라보고 전진하라. 미래를 향하여 걸어라. 온 몸으로 역사를 부대끼고 헤쳐 나아가라.
배운 게 없어 학문적 소양이 얕은 미천한 헌터로서는 그대들에게 삶의 귀감이 될 만한 교훈을 남길 능력은 없다. 그러나 오직 하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사냥꾼 중 하나’라는 세인들의 과장된 칭찬에 의탁하여 후세의 사냥꾼들을 위해 그리고 나를 사랑해 준 지지자들을 위해 사냥에 지침 할만한 현실적인 조언들을 남기기로 마음먹었다. 이 기고가 앞으로 얼마나 길게 이어질지는 스스로도 아는 바 없다. 그것은 역사만이 알 것이다.
몬스터라는 부류는 사유하는 사회적 공동체들과는 달리 주체의 본능과 야만의 충족만을 위하여 모든 객체적 생명체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부류들을 말한다. 몬스터 연구의 첫 장을 드래곤으로 장식한 이유는 이 생명체가 다른 어떤 존재들 보다 강력하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인간이나 바바리안(내가 알기로는 이 들만이 신의 존재를 믿는다.)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신의 형태가 어떤 면에선 드래곤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후세의 사냥꾼들이여. 나는 그대들이 최고의 사냥감으로 간주하는 대상이 드래곤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하여 사냥꾼으로서의 최고로 영광된 호칭이 프리 헌터나 현상금 사냥꾼이 아닌 ‘드래곤 슬레이어’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렇기 때문에 이 극악하고도 경이로우며 상상을 초월하는 생명체에 대하여 많은 사전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현재 ‘드래곤 슬레이어’의 직함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드래곤을 두려워하거나 공포에 질리거나 무서움에 떨어선 안 된다. 동시에 드래곤이 얼마나 두렵고 공포스러우며 무서운 존재인지를 알아야 한다. 이율배반적이지만 드래곤에 대한 공포를 뼛속 깊이 알고 그 근원적인 공포를 지울 수 있을 때만이 드래곤 앞에 나설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초월적 존재 앞에서 그러한 만반의 자세가 갖추어 지지 않은 상태로 드래곤과 맞부딪치게 된다면 그대에게 남는 것은 삶의 막을 내리는 것뿐이다. 마음의 준비를 갖는 다는 것은 말로 하는 것보다 천만 배쯤 어려운 일이다. 마음을 먹는 것에만 수십 년의 세월을 허비할 수도 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마음을 갖는 것은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기 위한 첫 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내가 하는 말들이 과장인 것 같은가? 그러한 의심이 바로 초월적 존재에 대해 그대가 무지하기 때문이다.
젊은이여, 그대가 드래곤 슬레이어의 길을 걷게 된다면 절대로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되는 드래곤들에게 대해 미리 언급하겠다. 내가 보기엔 인간과 바바리안이 주장하는 신의 모습과 이들의 모습은 적어도 힘과 권능에 대해서는 동급이라 여겨진다.
- 범접할 수 없는 드래곤
- 에이션트 드래곤, 에이져 드래곤, 골드 드래곤, 블랙 드래곤, 다이아몬드 드래곤, 러스트 드래곤, 에우고 드래곤, 이드 드래곤, 맥 드래곤
아마 그대의 일생에 단 한번도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드래곤들이다. 엘프들도 평생에 몇 번 볼까 말까할 존재들이며 그 수명은 거의 무한으로 알고 있다. 사유 공동체들의 세계에 거의 출현하지 않는 존재들이므로 솔직히 말해서 신경 안 써도 되는 존재들이다. 그들을 만난다면 재주껏 피해라.
- 대항할 수 있는 드래곤
- 레드 드래곤, 화이트 드래곤, 실버 드래곤, 그린 드래곤, 블루 드래곤, 메탈 드래곤, 오팔 드래곤, 크로매틱 드래곤, 브론즈 드래곤, 쥬얼리 드래곤, 로우풀 드래곤, 카오틱 드래곤, 고스트 드래곤, 페어리 드래곤, 맥이 드래곤, 시더펜트, 히드라, 와이번
대항할 수 있다고 해서 사유 생명체 몇이 잡을 수 있는 대상들이 아니다. 레드나 실버, 그린, 크로매틱, 메탈, 쥬얼리 드래곤 같은 경우에는 한 국가의 전체 군사력에 맞먹는 위력을 가진 드래곤들이다. 참고로 내게 ‘드래곤 슬레이어’의 명성을 부여해준 대상은 화이트 드래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