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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 만점, 경치 만점의 칼날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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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룡산 천왕봉에서 한 가닥 산줄기가 남으로 뻗친다. 거의 일직선으로 연산까지 뻗은 이 산줄기의 중간쯤에 향적산이 자리 잡고 있다. 향적산은 동서 비탈이 급경사로 거의 절벽에 가깝다. 특히 주봉 일대의 서면과 농바위 일대의 양면이 깎아지른 바위 벼랑으로 장관이다.
◈ 향적산 산행을 안내하며 산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향한리 강선구 전 이장은 향적산에서의 조망이 계룡산 천왕봉에서의 조망보다 오히려 좋다고 자랑했다. 향적산에서는 계룡산을 바로 올려다 볼 수 있고 산줄기 너머로 대전시가지도 조망된다. 뿐만 아니라 서대산, 진악산, 대둔산, 덕유산, 운장산, 오서산 등이 조망된다.
◈ 여기 향적산의 조망에서 감회가 깊은 것은 남쪽과 남서쪽의 드넓은 황산벌을 보는 것이다. 옛날 백제군과 나당 연합군이 결전을 벌였던 황산벌이 내려다보이고 백제군을 지휘했던 계백장군의 묘소가 있는 부적면 일대도 보인다. 서쪽 자락 논산 땅에는 구인사 계통의 규모가 큰 금강불교대학도 있다.
◈ 향적산에는 거북 모양의 기묘한 바위가 두 군데 있다. 산제당과 귀룡선원에 있는 거북바위의 위는 거북이 등처럼 판판하고 아래는 5~6평의 굴처럼 되어 있으며 거기에서 약수가 나온다.
◈ 산제당 아래에는 용바위라는 신기하게 생긴 긴 바위도 있다. 맨재저수지 바로 위에는 규모가 큰 국제선원 무상사가 있다. 숭산 큰스님이 “이곳은 국가에 크게 쓰일 스승이 날 곳”이라며 세운 선원이다. 하버드대학 출신의 유명한 미국인 현각 스님이 여기에서 수도한 바 있고 지금도 여러 나라 외국 스님들이 상주하며 수도에 정진하고 있다 한다.
◈ 향적산(香積山)의 이름의 뜻은 ‘향이 쌓인 산’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유래는 알 수 없다. 지도에는 향적산 아래에 국사봉(437m)이 있다. 조선조 태조가 신도안을 도읍으로 삼으려 했을 때 국사봉에 올라 계룡산 일대의 지형을 살핀 바 있고 나라의 큰 스승이 나올 곳이라 하여 국사봉을 한자로 ‘國事峰’ 또는 ‘國師峰’이라 쓰고 있다는 것이다.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천지창운비와 오행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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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향한리 원점회귀 |
◈ 대전에서 출발한 일행은 청산산악회 김종규 고문과 이춘강·강도현·하희상 회원이다. 마침 향한리 전 이장이며 향적산 사랑이 남다른 강선구씨와 그의 친구 유용선씨가 동행하게 되었다. 강선구씨와 유용선씨는 농번기 외에는 매일 향적산에 오르는 것을 일과로 삼고 있다 한다.
◈ 마을 위 골짜기 들머리에 맨재저수지가 있다. 저수지를 지나 느티나무가 있는 무상사 들머리를 거치면 길은 맨재를 향해 숲 속 계곡을 따라 오른다. 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신당과 굿당이 있는 약수터에 이른다. 약수터에서 5~6분이면 맨재에 올라선다. 맨재에 오르면 우선 계룡산 천왕봉이 바로 앞에 올려다 보인다.
◈ 맨재부터는 길도 넓고 나무계단 손잡이 밧줄 안내표지 등 시설도 좋다. 맨재에서 서쪽으로 조금 오르면 갈림길이 있다. 이 갈림길에서 곧장 오르면 가파르게 513m봉으로 올라 주릉을 타고 헬기장을 거쳐 주봉으로 가게 되지만 좀 멀다. 왼편 길로 들어서면 비탈을 평탄하게 가로질러 기도터를 지나 헬기장을 거쳐 고스락으로 오르게 된다.
◈ 이 헬기장에서 고스락으로 오르는 길도 두 갈래다. 가파른 등성이를 고집하는 길과 왼편 비탈을 돌아 작은 산등으로 오른 다음 고스락으로 오르는 길이다. 어느 길로 가든 10분이면 고스락에 오를 수 있다.
◈ 고스락은 서편으로 천길 바위 벼랑을 이루고 있으며 시원하고 조망이 좋다. 삼각점이 있고 예의 천지창운비와 오행비가 있다. 서대산·진악산·대둔산·운장산·칠갑산을 볼 수 있었다. 날이 맑으면 덕유산과 오서산도 보인다. 고스락에서 농바위까지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등성이를 걸으며 좌우를 조망하는 맛도 좋지만 농바위 일대의 경관이 뛰어나 향적산 산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 농바위 일대는 동서가 깎아지른 바위 벼랑으로 되어 있고 여러 개의 기암과 괴봉이 솟아 있어 탄성이 절로 나온다. 동쪽과 서쪽이 천길 벼랑으로 되어 있어 양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없다. 우리는 다시 주봉으로 돌아가 올라왔던 길로 기도터에 내려간 다음 산제당으로 내려갔다. 산제당 위쪽 들머리에 일부 선생이 ‘하도’로 지목한 거북바위가 있고 오른편 아래쪽에 ‘낙서’라 했던 용바위가 있다.
◈ 강선구씨는 용바위가 옛날 향한리의 8문장이 시를 짓고 향적산의 경개를 즐긴 곳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 산제당까지 차가 올라와 있었다. 산제당에서 5분쯤 내려가니 이번엔 왼편에 양옥으로 커다랗게 잘 지은 귀룡정사가 있었다. 입구에는 ‘국조선원 아산학회 정신수련도장’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여기에도 산제당 것과 비슷한 거북바위가 있고 용바위도 있다는 안내판이 있다. 귀룡정사 아래에서부터 길은 개울을 따라간다. 길은 무상사 뒤를 지나 큰 길로 이어지고 이어 맨재저수지 둑에 이르게 된다.
2. 산행일시 : 2010년3월28일(일요일)
3. 산행거리(시간) : 약 3 시간소요(왕복)
무상사▶물탕집▶맨재▶능선길▶헬기장▶국사봉▶상여바위▶
국사봉▶국사암▶거북암▶무상사
향적산(香積山) 국사봉(國事峰)의 碑
이 비석의 유래에대해 소개해본다.
이길구씨의 저서 "계룡산맥은 있다."에서...
국사봉 정상엔 오(五),화(火),취(聚),일(一),의 네글자가 음각된 오행비와
천지창운비 이렇게 두개의 비가 있다.
천지창운비는 높이 2m로 동서남북의 네면에
천계황지(天鷄黃地),불(佛),남두육성(南斗六星),북두칠성(北斗七星)이란 글씨가
음각되어져있다.
이 비석은 평양에서 이곳으로 이주한 조(趙)씨 성을 가진 할머니가
매일 국사봉에서 기도를 하다가 황해도의 묘향산과 구월산에 산재한
단군성조의 얼이 이곳으로 옮겨왔다며 국사봉을 신격화하기 시작하였다 한다.
이후 조씨 할머니는 8.15광복과 6.25전쟁을 정확히 예언하는등
많은 것들을 예언하였다고 알려지기 시작하며
전국각지에서 굴지의 정치인이나 재계인사들이 드나들게되었고
할머니는 이들의 점을 보아주며 돈도 많이 벌었다 전해진다.
1948년 조씨 할머니가 죽자 며느리 손씨부인이 시어머니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이 비석을 세웠는데
내용은
한반도가 천년이상 동방예의지국으로 유지되도록하는 단군성조의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한다.
이곳에서는 봄 가을 두차례 제를 올리는데 그때에는 전국에서
많은 무속인들이 몰려든다는데 이 국사봉을 적지않게 올랐지만
아직 한차례도 목격하지는 못하였다.
펌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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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봄산행과 문화생활 보기 좋습니다....이번주 토요일 올라볼까 하는데...좋은 정보되었습니다
즐거운모습 잘봤습니다~~
각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 가는 우리들에겐
보기드문 원초적 미술관을 찾아 비너스 와
로뎅을 보는 듯한 흥미로움을 친구들은 만끽
하였지만 참석하지 못한 것이 아타까울 뿐이네.
하지만 ,
친구의 배려로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어
친구에게 감사 할 뿐이네.........
보기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