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일기장에 쓰던 봄이의 육아일기의
워드 화일이 회사의 엄마 컴퓨터 한구석에 남아 있었네요.
화일 하나로 되어 있어서 따로 게시판을 만들어 올리기도 그렇고 해서,
모양은 좀 사납지만, 그냥 일기 중간에 끼어올립니다.
이 게시판은 화일첨부기능이 없어 그냥 텍스트화일로 올리는데,
보기 좀 불편하겠죠?
그래도 다시 읽어보니 소녀 이봄의 아기 때가 생생히 떠오릅니다.
아! 그리워라~
5월1일
오늘은 노동절. 아빠의 휴일, 엄마의 반휴이다.
어린이집에서 일찍 퇴근한 이 봄은 엄마, 아빠와 함께 능동 어린이대공원으로 잠깐 나들이를 나왔다. 어린이대공원에는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코끼리, 호랑이, 곰과 같은 동물들이 이사를 왔다. 하지만 이 봄은 이런 동물들보다는 주위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비둘기가 더 좋은 듯 열심히 비둘기를 쫓아다닌다.
사슴에게 먹여 줄 과자를 사 주었더니 저 하나 먹고, 사슴 하나 먹이고 한다.
저녁이 가까워지면서 바람이 차가와져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5월2일
엄마와 그림책을 보던 이 봄은 어제 본 동물들이 생각나는 듯 현관쪽을 가르키며, 열심히 "응, 응"댄다. 이건 번역하자면 어제 밖에 나가서 본 것이란 의미이다.
저녁 무렵부터 이 봄은 미열이 있다. 37.5■. 그리고 어디가 불편한 지 밤새 칭얼대며 잠을 푹 이루지 못한다.
아! 엄마의 행복은 아이가 아프지 않고, 잘 먹고, 잘 놀아 주는데 있건만. 아가야, 부디 건강하게 자라다오. 엄마의 제일 큰 소원이란다.
엄마, 아빠는 다가오는 이 봄의 생일과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이 봄에게 어떤 선물을 할 것인지 고민 중이다. 2돌맞이 우리 아기에게는 어떤 선물이 좋을까?
5월4일
우리 아기의 두 번째 생일.
봄이야,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주어서 고맙구나. 그리고, 봄이가 건강하게 자라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봄이의 생일파티에는 엄마, 아빠, 할머니, 큰 이모, 큰 이모부가 참석. (할아버지는 대전 출장관계로 불참)
할머니 댁 거실에는 엄마와 아빠가 준비한 색색 풍선이 걸리고, 할머니가 준비해주신 맛있는 음식과 증조할머니의 선물인 수수팥떡이 생일 분위기를 돋구웠다.
봄이는 무엇인지 평소와 다른 날이라는 걸 느꼈는지 좀 들떠있다. 할머니의 선물인 예쁜 드레스와 모자를 차려 입은 이 봄은 주인공 역할을 썩 잘해낸다. 사진촬영에도 우아한 포즈로 응하고, 촛불끄기, 케익커팅 모든 순서를 잘 해낸다. (다만, 이 봄은 무슨 이유에선지 건배를 무서워해서 모두들 "생일축하"를 외치며 건배를 하자, 매우 겁을 내며 울었다.)
그리고, 선물증정순서. 이 봄은 이미 큰 이모에게 지난 주에 흔들의자를 선물로 받았다.
엄마와 아빠는 뒷면에 이름과 전화번호가 새겨진 미키마우스 은팔찌를 선물했다.
사랑하는 봄아,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건강하고 씩씩하게 무럭 무럭 자라주렴.
넌 엄마, 아빠의 제일 큰 기쁨이고 또 희망이란다.
5월5일
오늘은 어린이날. 이 봄에게는 축제의 연속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 봄은 컨디션이 저조해서 계속 칭얼거리고, 덩달아 엄마도 짜증을 내기 시작해서 어린이날의 나들이길은 출발부터 저기압으로 시작되었다.
엄마, 아빠와 함께 나선 곳은 집 근처의 올림픽공원. 푸-우정의 날 행사가 있다고 해서 왔는데, 막상 행사가 있는 잔디마당에 가보니 잔디밭에는 사람과 먼지가 가득. 토끼모양 풍선만 하나 얻어갖고 나왔다.
올림픽 공원의 다른 곳은 한적한 편이라 몽촌토성 부근을 산책했다.
이 봄은 역시 컨디션이 저조한지 축 늘어져서 안아달라고 칭얼대고 비방울까지 들어1시간도 채 못되어 퇴장.
그리고 근처의 중국집 어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이 봄은 의외로 선전하여 해산물 스프, 팔보채, 탕수육, 그리고 볶음밥까지 상당한 양을 먹어 엄마, 아빠를 기쁘게 했다.
참, 엄마는 봄이에게 약속한 대로 어린이날 선물을 따로 챙겨주었다.
엄마가 고심 끝에 장만한 선물은 토이플러스의 몬테소리책. 봄이는 떼었다 붙였다 하는 찍찍이 단추와 똑딱단추, 그리고 작은 손인형을 마음에 들어 한다.
5월6일
5월은 가족의 달이라는 말을 실감할 만큼 가족행사가 연이어 있다.
오늘은 어버이날 맞이 가족모임이 있는 날이다.
이모, 이모부들이 모두 모여9명의 가족이 하남의 음식점 "이랴"에서 어버이날 모임을 가졌다.
이 봄은 막내이모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꽃무늬 원피스를 꽃처럼 차려입고 길을 나섰다.
기분이 좋은 듯 음식점 안에서도 팔랑 팔랑 뛰어다닌다.(짬짬이 공기밥1개를 뚝딱 해치우기도 했다)
아빠와 이모부들은 오늘을 술마시는 날로 선포하고1박2일의 술자리를 갖기로 했다.
이 봄도 빠지지 않고 어울리다가 탈이 나고 말았다. 배탈이 난 것이다. 과식을 한데다 잠자기 전에 닭고기까지 먹었으니. 아기가 아플 때 만큼 엄마가 속상할 때가 또 있을까.
5월7일
봄볕이 따스한 일요일. 엄마, 아빠와 놀이터에 나왔다.
봄이는 비누방울을 제가 불어 보겠다고 떼를 쓴다.
요즘 들어 독립심이 강해지는 미운 세 살의 전형적인 특성을 나타낸다.
그래서인지 엄마도 하루에 한 번씩은 신경질을 내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한다. 그럴 때마다 이러면 안되는데, 좀더 참을걸 하고 후회하는 마음이 들지만, 그 때 뿐이다. 좋은 엄마가 되려면 먼저 마음 다스리는 법부터 배워야 겠다.
5월8일
이 봄. 한 밤중에 또 열이 올라 해열제를 먹다.
5월9일
오늘은 40도까지 열이 올랐다. 해열제를 먹여도 좀처럼 열이 떨어지지 않는다.
무슨 일인지 엄마, 아빠는 매우 걱정스럽다.
5월10일
할머니와 강세진 소아과에 가서 감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아! 3개월째 감기가 떨어지지 않는구나. 튼튼한 줄 알았던 우리 봄이가 왜 이렇게 비실비실해진 것일까? 엄마, 아빠는 정말 속상하다. 흑흑흑....
5월11일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
이 봄은 감기 때문에 하루 종일 집을 지키는 신세가 되었다.
봄이는 오늘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내었다. 두 손을 어깨 위로 올리고, "어흥"하면서 무서운 표정을 짓는 것이다. 무섭다는 듯 과장된 반응을 보이면 까르르 웃으면 즐거워한다.
10번 이상을 반복해도 싫증도 내지 않고 재미있어 한다.
그리고, 아빠와 앨범을 보던 이 봄은 백일사진첩에 있는 아기 때 사진을 보여줄 때는 "아까, 아까"라고 부르더니, 돌사진첩의 사진에는 그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제 눈에도 구별이 되는가보다.
병원에 다녀온 후로 열은 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기침과 콧물은 계속된다.
5월14일
화창한 일요일이지만 오늘도 이 봄은 방콕신세를 면치 못한다.
엄마가 감기가 떨어질 때까지는 먼 나들이는 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일요일인데도 아침 일찍 일어난 봄이는 눈 뜨자 마자 배가 고팠는지, "맘마, 맘마"를 외치면 밥 달라고 시위를 한다.
요 며칠전부터 원하는 걸 조금씩 말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말이 트여가는 걸까.
오늘 봄이는 인형놀이를 하며 놀았다. 흔들말에 푸를 태워주기도 하고, 똘똘이 인형에게 우유를 먹여주고, 머리를 빗어준다. 엄마가 꺼내 준 걸음마 프리마 수레에 똘똘이를 태우고 집안을 몇바퀴나 돌아다닌다. 엄마는 봄이가 똘똘이를 돌봐주는 걸 보고, 봄이 동생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봄이에게 아기 동생이 생기면 어떨까?
인형놀이는 잠들기 전까지 계속되어 봄이는 똘똘이를 옆에 누이고 잠이 들었다.
오후에는 놀이터로 비눗방울 놀이를 하러 나갔다.
오늘은 아빠가 불어주시는 커다란 비누방울 터뜨리기를 재미있어 한다.
근데, 지난 주부터 봄이는 놀이터 안으로 들어가는 걸 아주 무서워한다.
모래밭 안으로는 한발짝도 들여놓으려 하지 않는다. 언제 놀이터에 와서 넘어지거나 다친 일이 있는 걸까? 엄마도 모르는 사이에....
저녁에는 아빠, 엄마와 "울릉도"란 오징어 요리를 하는 음식점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그 곳은 맛은 그저 그렇고, 좀 지저분한 음식점이었다. 봄이는 날아 다니는 파리를 신기해 했지만. 그곳에서 봄이는 오징어 튀김을 꽤 먹었다.
5월15일
오늘은 증조할머니께서 퇴원하시는 날이다. 고모할머니, 고모할아버지, 작은 할머니까지 온 가족이 모였다. 봄이는 할머니의4발 지팡이가 신기한 지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걸어다니시는 걸 흉내내기도 하고, 지팡이를 짚고 걸어보기도 한다.
5월17일
확실히2돌이 지나더니 봄이의 언어 능력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엄마, 아빠, 맘마, 할머니, 아야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컨대 배가 고프면 맘마, 맘마라고 말하고, 물 먹을래, 우유 먹을래 하고 의견을 물으면 "물"이라고 대답한다. 봄이 입에서 하루 빨리 예쁜 말들이 터져 나왔으면....
오늘은 새 놀이감이 생겼다. 엄마가 나무블럭을 사주셨다.
봄이의 탑쌓는 손 놀림이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애써 쌓은 탑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비싼 놀이감이라 오래 망설이다가 샀는데, 봄이가 잘 노는 모습을 보니 엄마는 얼마나 기쁜지.
엄마는 자신의 공간지각능력 부족이 딸에게 대물림될 까 염려되어 블록 놀이를 열심히 권장한다. 봄아,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알아주렴.
5월20일
봄이 눈이 이상하다. 며칠 전부터 눈꼽이 끼지 시작했는데, 오늘 아침에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만큼 심해졌다.
오늘은 아빠의 놀토. 그래서 하루종일 아빠랑 둘이서 놀았고, 병원에도 아빠랑 함께 갔다. 의사 선생님 말씀이 감기의 후유증으로 결막염이 생겼다고 한다.
어휴, 우리 봄이가 감기로 톡톡히 고생을 하는구나.
저녁에는 큰이모의 생일파티가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이모부들과 함께 제주도 음식점에서 가서 맛난 음식을 먹었다. 큰이모, 생일 축하드려요! 언제나 우리 봄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5월21일
일요일. 봄이는 엄마. 아빠와 한강둔치로 산책을 나갔다.
수중보 아래에서 낚시하는 것도 구경하고, 비둘기 먹이도 주었다.
집 근처에서도 비둘기만 보면 "구구"라고 하면서 쫓아 다니던 봄이는 비둘기 먹이 주기를 무척이나 재미있어 한다.
5월22일
오늘은 봄이를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엄마가 오후 휴가를 내고 일찍 오셨다.
안과 의사선생님께서는 결막염이 꽤 심하니 당분간 병원에 와야 한단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에게 병을 옮길 염려가 있어 어린이 집에도 가지 못한다.
아! 슬픈 내 신세!
5월25일
눈병이 많이 나아서 오랜만에 어린이 집에 갔다.
봄이에게는 "지에"라는 친구가 생겼나보다. 어린이집에 가서 누구랑 놀았니? 라고 물으면 "지에"라고 대답한다.
5월26일~28
엄마, 아빠의 회사 야유회가 연이어 있어2박3일간의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장소는 홍천 대명 비발디파크.
엄마는 봄이가 눈병에 걸려 있고, 감기 기운도 있어 여행에 데려가도 좋을 지 걱정했지만 봄이는 예상외로 잘 놀았다.
엄마 회사 언니, 아저씨들 사이에서는 물론 귀여움을 독차지.
그리고 토요일에 도착하신 아빠 회사 아저씨들에게도 뽀뽀 사례를 퍼부으며 재롱을 피웠다.(이에 힘입어 아빠는 "봄이보다 예쁜 아이는 있을 지 모르지만, 봄이만큼 귀여운 아이는 없다"고 선언하기까지.)
그곳에는 여러 가지 놀이 시설이 있었는데 봄이는 그 중 회전목마에 열광해서 회전목마가 멈춘 후에도 목마의 목을 꼭 붙잡고 내려오려 하지 않는다. 결국2박3일 동안 모두5번이나 타게 되었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엄마는 앞으로 가족여행을 자주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5월29일
봄이의 언어사전에 또 한가지 단어가 추가되었다.
바로 "떡볶이"
엄마와 아빠는 떡볶이를 계기로 이 봄의 언어발달에 한 획이 그어졌다고 결론지었다. 드디어2음절 시대가 막을 내리고3음절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봄은 곧 "꿀꿀이"와 같은 난해한3음절 단어도 척척 발음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아가꺼"와 같은 두 단어 문장까지 말한다.
아! 장하다, 내 아기!
5월30일
이 봄이 "오리처럼 뒤뚱뒤뚱"을 꺼내 오더니 읽어달라고 한다.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하고 읽었더니 네 발로 엉금엉금 기는 흉내를 낸다.
특이한 것은, 무릎을 바닥에 붙이지 않고 긴다는 점이다.
"오리처럼 뒤뚱뒤뚱"에서는 엉덩이를 옆으로 흔들어 대며 "뒤뚱뒤뚱"을 표현한다.
그리고 "아기코끼리처럼 아장아장"에서는 발을 쾅쾅 내딛으며 걷는다.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요즘 이 봄은 하루가 다르게 행동, 말이 커나간다. 무럭무럭 자란다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겠지.
6월2일
퇴근하고 돌아온 엄마에게 할머니가 감격적으로 외친신다.
"얘, 봄이가 변기에 쉬했다!"
봄이도 쉬, 쉬 하면서 손으로 변기를 가르키며 "업적"을 자랑한다.
어떻게 마음이 내켰는지 변기에 앉는 시늉만 하던 봄이가 드디어......
곧 하기스 특대형 기저귀도 작아져서 못 차게 될 텐데, 그럼 어른 용 기저기(예를 들면 산모용)를 써야 하나 걱정했는데 역시 봄이가 엄마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이 봄의 변기 시승식 후에는 할머니와 봄이의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할머니는 계속 시계를 보시며, 봄이야 쉬하자, 봄이야 쉬할래?를 연발하시는데, 봄이는 이런 할머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야, 아니야" 하면서 고개를 잘래잘래 흔든다. 그리고는 곧 자르르 바지에 실례를 하고는 그때서야 "쉬-"라고 보고한다. 봄이의 실수가 거듭될수록 할머니의 노심초사는 깊어만 간다. 몇 번의 실수를 거치면서 차츰 배워가겠지.
기저귀를 떼내고 팬티를 입은 봄이 엉덩이가 너무 예쁘다.
6월3일
오늘은 토요일.
아빠가 친구 결혼식에 가셨기 때문에 엄마랑, 이모랑 같이 짐보리에 갔다.
짐보리 수업 전에 엄마랑, 이모는 봄이 옷을 사러가기로 했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팬티에 실례를 하는 봄이를 위해 예비팬티와 바지를 넉넉히 장만하기 위해서다.
잠깐 들른 장남감 가게에서 봄이는 이것 저것 만져보고 눌러보고 시간가는 줄 모른다.
다행히 아직은 사달라고 떼를 쓰지는 않지만, 오래 가진 않겠지.
엄마랑 이모는 백화점에 온 김에 여름옷을 사고 싶었지만, 이 봄이 팔을 위아래로 흔들어가며 빨리 짐보리에 가자고 시위를 해대는 통에 수업시작1시간 전에 짐보리 센터로 왔다. 2주만에 온 것이 반가운지 봄이는 재미나게 논다. 어린 동생들에게 시범도 보여가며.
6월4일
화창한 일요일. 집에만 있기는 아까운 날씨라 봄이네 가족은 미사리로 나들이를 갔다.
늦은 시간에 나왔기 때문에 가보고 싶었던 조정경기장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맛있는 두부찌게를 먹고, "쉘부르"란 라이브카페에 가서 멋진 노래를 들었다.
봄이는 노래에 맞춰 손뼉을 치며 즐거워한다. 그리고, 할머니의 애창곡인 "그 겨울의 찻집"이 나올 때는 "할미,할미-"라고 해서 엄마, 아빠를 놀라게 하기도.
6월6일
오늘은 현충일. 미루었던 동물원 나들이를 나섰다.
이모네서 빌려준 캠코더도 챙겨서. 봄이는 집에서 나서기 전부터 "어흥"을 연발하며 잔뜩 부풀어 있다.
동물원에 도착. 얼룩말, 타조, 원숭이를 보고 드디어 사자 우리에 도착했다.
봄이가 "사자,사자"라며 얼른 사자를 보러 가자고 졸라서 다른 동물들을 제쳐두고 사자우리로 왔는데 게으른 사자들은 모두 그들에 숨어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다.
게으른 녀석들.
봄이를 실망시키지 않은 건, 역시 어흥- 호랑이였다. 송아지만한 호랑이가 무섭지도 않은지 봄이는 어흥을 연발하다.
아빠는 동물들과 봄이 모습을 비디오에 담느라 바쁘시다.
곰, 물개, 코끼리, 캥거루, 기린까지 모두 둘러보고 동물원을 나섰다.
봄이는 동물원에서 와서 "코끼리" "하마" "곰"을 어휘사전에 추가했다.
봄이의 코끼리 발음이 얼마나 귀엽고, 예쁜지.
6월10일
오늘은 엄마의 놀토. 아빠는 회사에서 지리산으로 MT를 가셨다.
올해부터 뇌염예방주사 접종법이 바뀌어서 돌부터2돌사이에1차 접종을 해야 한단다. 오늘이 바로 봄이가1차 뇌염예방접종을 하는 날. 엄마는 미리 슈퍼마켓에서 사탕을 사놓고 단단히 준비를 했다.
의사선생님의 진찰에도 순순히 응하던 이 봄. 드디어 간호사 언니의 주사바늘이 오른쪽 팔뚝에 꽂히자, 으앙---. 그러나 준비했던 사탕이 입안으로 들어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뚝. 기특한 녀석.
1주일 후에 추가접종을 해야 한단다.
오후에는 엄마와 함께 택시를 타고 짐보리로 갔다.
오늘은 여름학기 첫 수업이 있는 날.
다른 친구들은 모두 익스플로러반으로 갖는지 러너반의 동창생은 대현이 뿐이고, 모두 봄이보다 어린 동생들이다.
수업 후에는 엄마와 장난감 가게에 갔다. 지난 주에 봄이가 자동차 안에 올라 타더니 이것저것 누르고, 핸들도 돌려보며 재미있어 하는 걸 본 엄마는 봄이가 탈 만한 자동차가 있는지 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장난감 가게에 있는 자동차들은 모두 붕붕차 정도로 간단한 것들 뿐이었다. 봄이는 수도꼭지가 달려 있는 치코 부엌놀이 장난감에 관심을 보이며, 딱 달라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닭고기를 미끼로 겨우 뗴어 놓았다.
파파이스에서는 너겟5조각을 거뜬히 먹어 치웠다.
그리고는 엄마 따라 해봐, "나는 꿀꿀이" 하니까 "꾸꾸리"하며 따라 한다. 아이고, 귀여운 녀석.
저녁에는 이모네가 모두 찾아와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이모들을 좋아하는 봄이는 기분이 날아갈 듯.
6월11일
모처럼 한가로운 일요일 아침.
엄마와 봄이는 한강변에 산책을 나갔다.
봄이는 비둘기들이 눈에 띄자 "까까"를 연발한다. 지난 번에 강변에 나와 비둘기들에게 과자를 주었던 일이 생각나선인 듯.
수중보를 지나 간이 매점 앞을 지나자 이 봄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애절하게 까까, 까까를 외친다.
결국 대형 꼬깔콘 한 봉지를 모두 비둘기들에게 먹이고 나서도 까까를 내 놓으라 떼를 쓴다. 이 녀석은 적당한 선에서 끝낼 줄을 모른다니까.
낮잠을 자고 나서부터 몸에 미열이 나기 시작해서는 저녁부터 열이 오르기 시작한다. 뇌염접종때문일까?
6월 12일
결국 또 감기에 걸렸다.
낮잠 잘 때 좀 서늘했던 것 같더니 그래서인지.
책읽어달라며, 엄마, 채액, 엄마, 채액 하고 조르는 게 귀엽다.
그런데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책이면 4,5번 씩 되풀이 읽어달라고 한다. 오늘은 아지씨 책을 읽어달라면 검피아저씨의 뱃놀이를 가져 왔는데 4번이나 읽어 주었다. 제법 이야기를 듣는 눈치다.
6월 13일
오늘은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있는 날.
봄이는 이런 역사적인 사건을 아는지 모르는지 짐보리 체조를 해달라고 조르기에 여념이 없다. 무엇에선지 짐보리가 연상되면, 영락없이 짐보리체조를 해달라고 조른다. 팔을 위아래로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하지만 14kg짜리를 위아래도 들었다 내렸다 하는 일이 장난이 아니다. 체조 한 번 하고 나면 허리가 뻐근하고, 하늘이 빙빙 도는 듯. 이녀석아, 네 덩치를 생각하고 졸라야지.
6월 14일
이 봄,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난투극을 벌이고, 몇몇 아이들에게 부상을 입혔다고 한다. 가끔 집에서도 사나운 모습을 보이더니, 드디어 밖에 나가서도. 따끔하게 야단을 치긴 했지만, 일단 사고 발생 후 한참의 시간이 지난 다음이라 약효는 별로인듯하다.
이녀석이 어디서 그런 못된 버릇을 배운 걸까?
6월 15일
이제 대소변을 모두 능숙하게 가린다. 놀다가도 쪼르르 달려와 쉬쉬, 또는 응아 라고 의사를 표현한다. 아기 변기에 앉아 쪼르르 하고 오줌싸는 소리가 너무 귀엽다.
요즘 봄이는 말 따라하기에 열심히다. "봄아, 많이 먹어." 라고 하면, "많이"라고 끝을 올리며 따라한다. 이렇게 어른들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봄이를 보며, 우리 아기에게 고운 말을 가르치려면, 어른들이 고운 말을 써야 겠구나 라고 생각한다.
6월 17일
오늘은 짐보리 여름학기 첫수업이 있는 날.
봄이의 동창생은 대현이와 민규 뿐이고, 모두 새 친구들이다.
6월 19일
내년 2월이면 봄이에게 동생이 생긴다.
동생을 맞이하는 봄이는 어떤 마음일까?
6월 24일
짐보리 수업 중에도 배가 고파 칭얼거리던 이 봄은 수업이 끝나고 들린 파파이스에서 닭튀김(너겟)을 무려 5쪽을 거뜬히 먹어 치우고 나서도 "고기" "고기"를 애처롭게 부르짖는다.
저녁 식사 후에는 엄마 아빠와 잠실 선착장에 가서 유람선을 탔다.
집에서 나설 때는 "배-" "배-"하며, 기대감을 보이던 이 봄은 막상 배에 오르니 잠이 오는지 손가락만 빨고 있다. 하지만 봄이 덕분에 엄마랑 아빠는 시원한 강바람을 쐬이고 왔다.
6월 25일
짐보리에서 등록선물로 받은 물뿌리개를 들고 나선 이봄.
경비실 옆 수도꼭지에서 물을 채워넣고서는 온 동네 화단 물주기에 나선다. 꽃, 아가, 물을 연발하며. (아가가 꽃에 물을 주겠다는 뜻이다.) 무거운 물뿌리개를 들고 몇번 왔다갔다 하다 지쳤는지 집에 들어가자고 하더니, 곧 곤히 잠이 들었다.
6월 26일
오늘은 엄마가 친구들과 모임이 있어서 늦게 귀가했다.
한참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중에 봄이 생각이 나서 집에 전화했더니 전화를 받은 이봄은, "엄마, 빨리"라며 엄마의 귀가를 독촉한다.
오늘 모임은 친구인 정은이의 딸 "서연"의 첫돌맞이 축하를 겸한 모임이라 서연이와 서연이 아빠도 느지막히 참석했다. 이 봄의 1년 전 모습을 보는 듯 하기도 하고, 또 1년새 봄이가 그 만큼이나 자랐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6월 29일
날씨가 더워지니 땀띠가 극성이다. 이 봄의 온 몸에 빨갛게 땀띠가 솟았다.
이 봄의 언어구사력이 날로날로 무궁한 발전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그 녀석이 가끔 어른들을 뒤로 넘어가게 하는 한 마디씩을 내뱉고는 한다. 예컨대, 공놀이를 하다 피곤해서 누워 계시는 할머니에게 "일어나~~"라고 한다거나, 물을 달라고 해서 물컵에 물을 떠와 먹여주려고 하자, "놔둬"라고 한다거나.
요즘에는 주로 어른들이 하는 말을 따라 하는 수준이었는데, 이런 경우를 보면 언젠가 어른들이 제게 한 말을 기억했다가는 적절한 상황에서 써 먹는 것 같다. 그 과정에 어떤 메커니즘이 있는 것인지 놀랍고 신기하기만 하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 제 크레용을 꺼내 다리 사이에 끼우고는 "아야야, 허 중"이란다. 텔레비전 드라마 허준에서 침 놓는 것을 보고 따라 하는 것이겠지. 재미삼아 큰 이모와 할머니가 "이 봄 선생님, 침 놔주세요" 했더니 손가락 사이마다 크레용을 갖다 끼우며 재미있어 한다. 지켜보고 있던 아빠가 봄아, 아빠도 침 놔줘 했더니, 제 뺨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손송님~~"이란다. 선생님라고 불러야지 감히 이름을 불렀다는 질책인 것이다.
7월 2일
아침부터 사자를 보러 가자고 조르는 이 봄 때문에 온 가족이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삼성동 코엑스 아쿠아리움.
알록달록 예쁜 물고기. 흉측하고 무섭게 생긴 물고기. 이 봄 보다 더 덩치 큰 물고기. 그리고 사나운 이빨을 드러낸 상어.
평소 보기 힘들었던 물고기들을 실컷 보았다. 이 봄은 올 봄 63빌딩 수족관에 갔을 때 보다는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다양한 어종의 모습과 생태에 관심을 갖기에는 아직 어린 듯.
하지만, 이런 것들도 제 머리속 어딘 가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가. 언제가 필요한 때 필요한 모습으로 꺼내 활용할지도 모르겠다.
가득이나 어린이집에서 단조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라도 생활에 자극과 활력을 주는 게 좋겠지.
40여분 만에 관람을 마쳤다. 비싼 입장료가 생각 난 아빠는 한 번더 돌아보자고 했지만. 이 봄은 배가 고픈지 맘마먹으러 가자고 졸라댄다. 눈물을 머금고 나와 근처의 우동집으로 향했다.
이 봄은 여기서 다시 한 번 놀라운 식욕을 과시했다. 우동 한 그릇을 국수 몇 젓가락 남기고 거뜬하게 먹어치운 것이다. 그리고도 빵집앞을 지날 때부터 빵을 사달라고 조르더니, 집에 와서까지 빵타령이다.
저녁에는 영국으로 공부하러간 승오아저씨의 귀국맞이 모임이 있어 따라 나섰다. 처음에는 낯선 사람들 틈에서 어색한지 할머니에게 가자고 조르며 떼를 썼지만, 조금씩 낯을 익히더니 웃음을 보이며 경계심을 풀기 시작했다. 제게 호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본격적으로 장난을 치며, 재롱을 떨기 시작한다. 식당 안팎을 돌아다니며 까불거리고, 심지어 엄마 아빠가 보이지 않아도 개의치 않는다. 아빠는 귀염둥이 딸 자랑에 입이 귓가에 닿는 줄도 모른다.
집에 돌아와서는 꽤나 피곤했는지, 일찍 곯아 떨어졌다. 새벽녁에는 이불이 펑 젖도록 실례를 해 놓고도, 세상 모르고 자고 있다.
녀석, 어지간히 피곤했다보다.
7월 3일
오늘은 엄마의 2번째 검진일.
봄이 동생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콩닥콩닥 작은 심장이 뛰는 것도 확인했다. 아가야, 너도 제발 봄이처럼 건강한 아기로 태어나다오.
요즘 봄이는 엄마의 출근 때마다 요란한 이별식을 치룬다. 예전에 없던 일이다. 새삼 엄마랑 떨어지는게 싫은 걸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엄마를 찾고, 또 엄마가 집을 나서기 전 인사를 하면 또 한차례 울음을 터뜨려 엄마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그렇다고 울음이 오래 가는 건 아니다. 제가 어떻게 하더라도 엄마는 나간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듯, 곧 체념하고 할머니를 찾는다.
엄마도 잠깐이지만 마음이 아프다.
그나저나 봄이를 빨리 공동육아어린이집으로 보내야 할텐데. 걱정이다.
7월 6일
오늘 이 봄은 어린이집에 결석했다.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안가겠다고 떼를 써서 별 수가 없었단다. 어제 어린이집에서 전기승압공사를 하느라 전기드릴이며 갖가기 공사소음으로 종일 시끄러웠다는데 그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건지.
어린이집 출근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어린이집 교사와 충분한 대화가 가능하다면 이런 일에 대해서도 좀 더 잘 대처할 수 있을텐데.
종일 할머니를 따라 다니느라 낮잠을 못 잤다고 하더니, 한강 둔치에 산책을 데리고 갔더니 유모차에서 곧 잠이 들었다.
7월 6일
요즘 이 봄 입에서 나오는 말의 70% 이상은 "안아주" "업어주"
전에 없이 응석을 부린다. 눈 앞에서 엄마가 안 보이면 자지러지게 울어 제껴서 깜짝깜짝 놀라게 하고.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뱃속 아우를 타는 거란다.
정말 그런 걸까. 아이들은 어른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한 구석이 있으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7월 8일
오늘은 이 봄의 치과 검진날. 엄마, 아빠와 함께 어린이 치과로 향했다. 이 봄은 치과에 들어서자 마자 대기실의 놀이방으로 향한다. 가끔 어금니가 아프다고 해서 충치가 아닌가 걱정했는데, 새로 어금니가 올라오느라 그런 거란다.
손가락을 빨아서 앞니가 많이 들려 있단다. 빨리 손가락 빠는 버릇을 고쳐야 할 텐데. 뾰족한 방법이 없을까.
병원에 다녀와서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는 짐보리 수업을 받으러 갔다. 충분히 쉬고 와서인지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오늘의 주제인 숨기와 찾기가 봄이에게 무척 재미있다보다.
짐보리에서 사온 zoo safari 테이프를 무척 재미나게 본다.
지난 번 동물원에 갔던 기억을 떠올리며 보는 것 같다.
7월 9일
엄마는 아침부터 어지럼증과 메슥거림으로 고생이다. 덕분에 엄마는 종일 누워 있었고, 봄이는 아빠와 일요일을 보내야 했다. 봄이 동생을 만나기까지는 여러가지 난관이 있을 듯하다.
(한동안 엄마의 게으름으로 일기장이 비워졌음)
* 그 사이 이 봄은 엄마, 아빠와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올 여름휴가는 지리산 부근의 남원으로. 올 여름휴가는 화엄사 계곡의 시원한 물놀이로 기억될 것이다.
7월 31일
지난 주말 봄이는 엄마 아빠와 함께 광주 할아버지 댁에 다녀왔다.
할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시다는 연락을 받고 가는 길이라 엄마, 아빠의 마음은 그리 편치 않지만, 봄이는 이런 엄마,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행기 타기에 마냥 들떠 있다.
공항으로 향하는 리무진 버스 안에서부터 "비냉기"(봄이 식 비행기 발음이다)를 연발하더니, 공항 대기실 창 밖으로 활주로에 늘어선 비행기를 보더니 "우와"하고 환성을 질러댄다.
엄마 아빠의 저녁 식사 대신인 햄버거에 탐을 내던 이 봄은 햄버거 먹기에도 대단한 실력을 발휘했다. 저녁 8시쯤 도착한 광주 공항의 더위는 대단했고, 슬라브 집 2층에 위치한 할아버지 댁의 공기는 바깥 공기보다 더 달구워져 있었다. 할아버지의 건강은 상당히 안 좋으신 듯 하다. 식사를 통 못하신다니 걱정이다. 이 더위를 잘 견디어 내셔야 할 텐데. 봄이는 오랫만에 만난 사촌 언니들과 잘 어울렸다. 쌍둥이 언니들과는 집안에서도 손을 꼭 잡고 다닌다. 쌍둥이 평온이, 정온이, 그리고 지은이 모두 봄이를 봄이를 잘 챙겨준다.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있는 봄이를 보니 역시 아이는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며 자라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 병 문안을 마치고, 오늘의 잠자리가 마련된 작은 할아버지 댁으로 향한다. 작은 할아버지 댁에는 예쁜 고모들이 있다.
봄이는 몇 번 만났기 때문인지 고모들과도 잘 어울린다.
지난 봄에 왔을 때보다 붙임성이 꽤 늘어난 듯 하다.
일요일 오후, 집에 돌아오니 이모, 이모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휴가 때문에 그냥 지나갔던 아빠의 지각생일파티를 위해서이다.
봄이는 파티 분위기를 알아차렸는지 아주 신이 났다.
피곤해서 누워 있던 엄마를 데리러 와서는 "엄마!, 생일~. 빨리, 빨리"라 하며 불러댄다.
흥겹게 생일축하노래를 부르고, 케익을 자르고. 오늘이 마치 봄이 생일인 듯.
오늘은 월요일. 어린이집 방학기간이라 봄이는 할머니와 집에서 지냈다. 저녁에 퇴근해서 돌아온 엄마에게 봄이는 열심히 오늘 있었던 일을 보고한다. 고모할머니도 왔었고, 이모도 왔었고, 놀이터에 가서 그네도 탔고.
엄마는 봄이가 처음 고개를 가누었을 때, 엎드려서 고개를 들어 보려고 낑낑 대다가 그 맑은 눈빛으로 엄마를 쳐다 볼 때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서 6-7개월 무렵, 작은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바닥을 기어다닐 때는 기어가는 그 뒷모습이 제일 예쁘다고 생각했다.
또,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는 위태위태하게 한 걸음씩 발걸음을 떼어 놓는 그 모습이 제일 예쁘다고 생각했다.
근데, 지금은 앵무새처럼 종알종알 말을 따라 하는 종달새같은 목소리가 제일 예쁜 것 같다.
7월 29일
엄마의 산부인과 정기검진이 있는 날이다. 오늘은 머리, 팔, 다리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는 초음파사진을 찍었다. 봄이 동생은 엄마 뱃속에서 팔,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엄마가 병원에서 받은 임신다이어리에 그 사진을 붙여서 봄이에게 동생 사진이라고 보여주었다. 봄이는 뭘 아는지 그 책을 들어와서는 동솅, 동솅하며 사진을 찾아달라 조른다.
내년에 동생이 태어나면 봄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엄마는 궁금하다.
8월 12일
<봄이의 그림책 읽기>
요즘 봄이는 그림책 읽기에 재미를 붙인 듯 하다.
봄이가 특히 좋아하는 책은 "유모차나들이"와 "내조끼 어디갔어?"
내 조끼 어디 갔어?란 책은 매우 단순한 구성으로, 아기 쥐가 엄마가 짜 주신 조끼를 친구들에게 자랑한다. 오리, 물개, 사자, 나중엔 코끼리까지 조끼를 빌려 입는데, 그 때마다 조끼가 점점 늘어나고, 작은 조끼를 입고 "좀 끼나?"라고 하는 동물들의 표정이 무척 우스꽝스럽다. 봄이는 동물들의 우스꽝스러운 표정이 나올 때마다 까르르 웃어댄다.
유모차나들이는 처음 사왔을 때는 별 흥미를 보이지 않더니, 며칠 전 잠자리에서 읽어주었더니 몹시 재미있어 하며, 몇 번씩이나 읽어달라고 한다. 그리고 요즘 들어 보이는 변화는 전에는 한페이지를 미처 다 읽기도 전에 책장을 넘겨버리곤 했는데, 요즘 들어서는 제법 주의깊게 듣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봄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는 태교를 한다고 그림책을 사다가 엄마랑 아빠랑 번갈아 가며 큰 소리로 읽어주곤 했는데, 봄이 동생은 언니(누나?) 덕분에 그림책 읽기태교만큼은 확실하게 하는 셈이다.
<봄이의 한강 둔치 나들이>
요즘엔 저녁 식사 후 정해진 일과처럼 한강 둔치의 놀이터에 간다. 그곳에서 봄이는 그네며 시소도 타고, 뺑뺑이도 타고, 또 버섯 모양으로 만들어진 오름대에도 올라간다. 올 봄까지만도 모래밭에 들어가는 걸 그렇게 싫어하더니, 요즘엔 틈만 나면 놀이터에 가자고 조른다. 하긴 지금도, 신발에 모래알이 한 알이라도 들어가면 모래, 모래 하며 빼달라고 한다. 얘가 웬 공주병인가 하다가도, 봄이가 손에 모래를 묻히며 장난을 할라 치면 지지묻는다고 질색을 하는 엄마를 보면 봄이 탓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봄아, 이제 엄마도 대범하게 생각할 테니 모래장난도 마음껏 하고 놀아보렴.
(또 엄마의 게으름으로 한 동안의 공백)
9월 14일
지난 일기를 읽어보니 불과 3~4개월 사이에 봄이의 언어능력이 얼마나 눈부시게 비약했는지 새삼 느낀다.
요즘엔, 충분히 봄이와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말이 늘었다.
오늘 엄마는 퇴근길에 백화점에 들러 임신복을 사 갖고 돌와왔는데, 이 봄이 쇼핑백을 보더니, 제 옷을 사왔는줄 알았는지 쇼핑백을 얼른 뺏어가며 입어볼래, 입어볼래라고 조른다.
이 녀석은 새 옷을 사 주면 얼마든지 모델 노릇을 한다. 귀찮을 법도 하건만.
저녁 식사 후에는 병원놀이 세트에 들어 있는 장난감 안경을 쓰더니 사진을 찍어달랜다. 모델 노릇에 재미가 붙었는지, 머리띠, 장난감 청진기까지 걸치더니 포즈를 취한다.
이 모습을 지켜보시던 할머니는 아기모델로 내보내야 겠다며 한 술 더 뜨신다.
9월 15일
오늘 엄마는 봄이 동생이 잘 자라고 있는지 살펴보러 병원에 갔었다.
오늘부터 다시 시작된 의사들의 진료거부로 인해 차병원 역시 비상진료체계 중이다. 그래서 주치의 선생님 대신 다른 선생님께서 봄이 동생을 살펴주셨다.
다운증후군 검사는 별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아기의 심음 소리를 들었는데 콩닥콩닥 힘차게 뛰고 있다.
봄이처럼 건강하고 예쁜 아기가 태어났으면...
저녁때는 광주에서 슬기 고모가 서울에 볼 일이 있어 온 김에 봄이네 집에 들렀다.
고모는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예쁜 원피스를 사다 주셨다.
봄이는 기뻐서 팔짝팔짝...
9월 16일
오늘은 증조할머니 생신이다.
낮에는 고모할머니, 고모부할아버지와, 작은할머니, 작은할아버지가 다녀 가셨고, 저녁에도 이모, 이모부가 와서 증조할머니 생신파티를 벌였다.
촛불끄기, 축하노래부르기, 모두 봄이가 주인공이다.
생일파티의 들뜬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아 봄이는 12시가 넘어서 검피아저씨의 뱃놀이 4번, 곰 사냥을 떠나자 3번을 읽고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9월 17일
오늘은 추석 때 찾아 뵙지 못했던 작은 할머니 댁에 인사를 갔다.
그곳에서 봄이는 생각지 않게 작은 인형 3개와 커다란 푸 쿠션을 선물로 받았다.
집에 인형이 그렇게 많아도 인형선물은 여전히 반가운지 몹시 좋아한다.
작은 할머니 댁을 나와 과천 동물원으로 향했다.
오늘은 소풍 분위기를 내느라 엄마가 이것 저것 먹을 것도 준비했다. 비록 김밥은 아니지만.
봄이는 동물원 보다도 코끼리 열차타는 게 더 좋은지 동물원에 가자고 할 때부터 코끼리 열차 타령이다. 동물원 입구에 도착해보니, 올 초부터 공사 중이던 어린이 동물원이 개장을 했다. 라마, 염소, 토끼, 나귀, 강아지..이런 작은 동물들을 모아 놓아 아이들이 직접 먹이도 줄 수 있고, 만져볼 수도 있도록 꾸며 놓은 곳이다. 염소를 만져보라고 했더니 봄이는 무서워한다. 녀석, 겁 많은 건 누구 닮아가지고...
북극곰 우리를 찾아 갔는데, 곰 두 마리가 모두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다.
봄이는 “고옴마~, 나랑 같이 노올자~”라며 곰을 깨운다.
어디서 많이 듣던 대사같다 했더니, 요즘 열심히 읽었던 “play with me"의 한 대목이다.
동물원에 올 때마다 봄이의 반응이 조금씩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어 재미있다.
9월 18일
오늘 봄이는 오랫 만에 어린이집에 다녀왔다. 추석 연휴 이후 처음인 듯.
봄이는 어린이집에 가서 뭘 했는지 물어보면, 항상 그날의 메뉴를 이야기해준다.
오늘은 딸기 요플레를 먹었다고.
저녁 식사 후에는 색종이 놀이를 했는데, 제법 가위질을 한다. 한참 동안 색종이를 찢으며 놀더니, 배를 만들어 달라고 하길래, 커다란 색종이 배를 만들어서, 검피아저씨의 뱃놀이를 했다. 검피아저씨 배의 승객으로 염소를 그려달라고 해서 색연필로 염소를 그려줬더니, “염소가 이상해. 이건 여우야” 하는게 아닌가? 이 녀석이 드디어 엄마의 그림 솜씨에 의문을 표하기 시작한 것이다. 염소 다음으로는 강아지를 태우고, 다음엔 누구 차례인지 물었더니,
“염소며, 강아지며, 양이며, 음매며....”하며 혼자말로 헤야려본다.
“■며, ■며, ■며” 하는 대목은 검피아저씨의 뱃놀이 책에 나오는 그대로이다. 억양까지도 엄마가 읽어줄 때와 똑 같다.
책 읽어 줄 때 그냥 듣고 있는 것 같아도 하나 하나 마음 속에 새겨 듣고 있나보다.
금방 색종이 놀이에 싫증을 낸 봄이는 이번엔 집 짓기 놀이를 하자고 한다.
나무 블록으로 호랑이 인형 집을 지어 주었더니, 제가 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그래서 레고블록으로 봄이가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큰 집을 지어 주었더니, 그 안에 들어 앉아서는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잠들기 전에는 엄마, 아빠랑 같이 그림책을 읽었다. 오늘은 장갑, 유모차 나들이, 그리고 커다란 순무를 읽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아빠가 낮은 목소리로 “낮잠자는 집”을 소곤소곤 읽어주는데, 갑자기 봄이가 “아빠는 방에 들어가” 하는게 아닌가. (아빠는 너무 슬퍼, 봄아. T.T)
게다가 아빠 등을 밀어대며, “일어나”라고 재촉하기까지 한다.
언제나 엄마가 읽어주는 그림책을 보다가 아빠가 책을 읽어주니 낯설어서 그랬을까?
9월 19일
아침에 일어난 봄이에게 엄마가 물었다. “봄아, 어제 왜 아빠보고 방에 들어가라고 했어?” 봄이, 왈 “아빠가 졸리대.” 제가 보기에는 아빠가 졸린 것 같아서 들어가 자라고 했다는 뜻일까? 이 녀석 머릿 속에 어떤 생각이 들어있는지 궁금하다.
9월 20일
저녁에 엄마가 집에 퇴근해서 보니 봄이가 머리를 곱게 땋고 있다. 할머니 솜씨인가보다. 요즘 들어 봄이와 얘기 나누는 재미가 쏠쏠하다.
혼잣말도 많이 하고.
근데 말이 늘고 나서는 사달라고 조르는 것도 많다.
오늘은 펭귄 비디오를 사달란다. 어린이집에서 핑구 비디오를 틀어주더는 걸 봤는데 아마 그걸 사달라는 모양이다. 또 책장을 살펴보더니 왜가리야 어디 갔니? 책이 없어졌다며 “엄마, 왜가리 어디갔니 책 사줘 한다.”
요 얼마 전에는 텔레토비에 나오는 비옷을 사달라고 하더니....
이를 닦고 나서 요플레를 달라고 하길래, 치카치카 한 다음에는 아무 것도 안 먹는 거라고 했더니, 어른들이 과일을 먹고 있는데도 “봄이는 치카치카해서 아무도 안 먹어. 까까도 안 먹어.”하며, 먹을 채도 안한다.
또 별안간에 젤라비 비디오를 틀어 달라기에 비디오는 하루에 한 번만 보는 거니까 내일 보자고 했더니, “내일?”하며 순순히 포기한다. 그러더니 “짐보 비디오도 내일, 메이지도 내일”하고 혼자말까지 한다.
오늘도 잠자기 전에 책을 읽었다. 며칠 전부터 작년에 이모가 사다준 “우리 아이 말 배울 때 읽어주는 동시”라는 책을 즐겨 본다. 한 동안 책장에서 잠자던 책인데 드디어 빛을 본 것이다.
페이지마다 다른 스타일로 그려진 그림이 봄이 마음을 끄는 것 같다.
엄마 무릅 위에 앉아 동시 책을 2번 보고, 갯벌이 좋아요, 아빠 달 따 주세요, 배고픈 애벌레, 잘자요 달님까지 보고 나니 좀 졸린 눈치다.
책을 몇 권 골라 매트 위로 가져가며 “엄마는 이제 누워서 읽을래” 했더니 따라 와서는 “봄이는 앉아서”하며 옆에 앉는다.
엄마가 누워서 책을 펴니까 “나도 누워서” 하며 따라 눕는다.
한가지 신기한 건 글씨도 모르는 녀석이 책등만 보고 책을 척척 골라 낸다는 거다. 엄마가 골라온 책을 다 읽고 나니, 저 혼자 책장으로 가서 “커다란 순무 볼래” 하면서 한 번에 정확하게 책을 뽑아 낸다. 신기하기도 하지.
10월 1일
2주일 동안 엄마의 회사일이 바빴던 관계로 엄마가 쓰는 봄이의 일기가 잠시 쉬었다.
이제 새로운 달이 시작되었으니 봄이의 일기 역시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
어제는 할머니와 새로 생긴 지내과에서 독감백신주사를 맞았다.
그리고 짐보리 수업 후 저녁에는 막내이모부 생일파티.
오늘은 오랜만에 엄마, 아빠와 함께 지내는 휴일이다.
9시쯤 일어나 “엄마~ 빨리 일어나~~”하며 엄마를 깨운 봄이는 아침부터 어야가자고 조른다.
엄마는 출장의 여독이 아직 남은 아빠를 쉬게 해 주려는 갸륵한 마음에서 봄이를 데리고 한강 둔치로 나갔다.
한강 둔치의 놀이터에 도착하자, 그네로 뛰어간 이 봄은 한 번 그네에 올라타더니 30여분간을 내려올 생각을 않는다.
오후에는 엄마, 아빠와 백화점에 쇼핑 겸 점심식사를 하러 나섰다.
봄이는 우동이 먹고 싶은지 차안에서부터 우동, 우동하고 노래를 부른다.
어지간히 먹고 싶었던지 우동 한 그릇을 따로 시켜 줬는데 반 이상을 먹어 치운다. 후르륵 하면 입안으로 빨려 들어오는 재미 때문인지 봄이가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은 단연 ‘우동’이다.
점심 식사 후 아동용품점에 가서 봄이의 새 카시트를 장만했다.
할머니 차에 달아놓고 쓰다가 봄이 동생이 생기면 물려줄 생각으로 엄마, 아빠는 거금을 들여 새 의자를 장만한 것이다!
무엇이든 새 것을 좋아하는 봄이는 거실에 놓인 새 의자에 올라 앉아 놀다가 의자랑 함께 옆으로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10월 7일
며칠 전부터 봄이의 눈병이 심해졌다.
눈가가 빨갛게 진무르고, 눈꼽이 끼어 아침에 일어나면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할 정도. 병원에 가려고 벼르다가 마침 엄마의 놀토를 맞아 드디어 병원에 가려고 했더니 때맞춰 의사들이 파업을 한단다. 큰이모와 의논 끝에 한방병원에라도 가기로 했다. 봄이는 병원이든 어디든 밖에 나간다고만 하면 신난게 따라 나선다. 이모네 병원의 안■이비인후과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선생님 말씀이 봄이 눈의 염증 정도가 상당히 심하기 때문에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만성결막염이 될 수도 있단다. 엄마는 진작 병원에 데리고 오지 않았던 걸 후회하지만 이제 와서 소용없는 일.
한약 처방을 받아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에 짐보리 수업 받으러 가는 길에 병원에 들러 한약을 찾았는데 약 먹을 일이 걱정이다.
10월 8일
봄이의 한약먹기 전쟁이 시작되었다. 치료용 약이라 꽤 쓴데다 먹는 분량도 한 번에 40cc, 보통 먹는 소아과 약의 10배 가량 되는 양이다. 꿀을 잔뜩 타 주었지만 한약의 역한 냄새는 가시지 않아 봄이는 어떻게든 약을 안 먹으려고 버틴다.
달래도 보고, 얼르기도 하다가 엄마는 드디어 “맴매”를 찾는다.
맴매로 위협해서 겨우 한 숟가락 받아 먹은 봄이는 이제 차라리 맴매를 맞겠단다. 어휴~ 앞으로 닷새 동안 이걸 계속해야 하는데 봄이 눈병 낫기 전에 엄마랑 할머니 홧병부터 생기겠다.
10월 9일
다행히 동네 소아과에서 오전 진료를 한다고 해서 드디어 봄이는 눈병과 감기 치료를 받았다.
10월 10일
엄마는 지난 주부터 과천에 새로운 공동육아 조합을 만드는 모임에 참석 중이다. 새로운 조합을 만드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엄마는 봄이를 위해 과감한 결심을 한 것이다.
공동육아 조합에 가입하기 위해 봄이네 가족은 여러 가지 변화를 겪어야 한다. 일단 지금 살고 있는 할머니네 집을 떠나 과천으로 집을 옮겨야 하고, 또 그렇게 되면 새로 태어날 봄이 동생의 육아 문제도 새로운 고민거리가 되고....
하지만 좀 더 먼 미래를 생각하면 봄이 동생에게도 좋은 결정이 될 것이다.
10월 14일
토요일이라 일찍 퇴근해서 돌아온 엄마와 함께 안과와 소아과 병원에 다녀왔다. 웬 아픈 사람이 그리 많은지 병원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다행히 봄이의 눈병은 거의 나았지만, 소아과에서는 기관지 쪽에 아직 가래가 많다며 한동안 병원에 다녀야 한다고 한다.
안과, 소아과, 다시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왔다 갔다 하느라 피곤했는지 봄이는 유모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오후에는 짐보리 수업. 자는 걸 깨워 왔더니 기분이 저조한 듯 수업 시간이 다 끝나갈 때 쯤에야 수업 내용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 주제는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들, 소방관, 청소부, 의사선생님 등등....에 대해 생각해보는 활동이었는데 봄이가 제일 관심을 보이며 적극적으로 참여한 건 역시 청소부 아저씨에 대한 대목. 청소하기 활동에서는 다른 아이들을 제치고 독보적인 활약을 보였다.
오늘은 토요일이니 봄이가 좋아하는 드라마 “왕건”을 보는 날이다. 봄이는 지난 봄에 허준을 방영할 때도 엄청난 관심을 보이더니 요즘은 왕 건에 빠져 있다. 아마 역사드라마에 관심이 있나보다. 의상이나 소품 등등이 신기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10월 15일
봄이는 일요일인데도 아침 일찍 “다 잤어.”하고 벌떡 일어나더니, “엄마도 일어나”하고 엄마의 모처럼의 늦잠을 방해한다. 어제 오늘 사이에 봄이의 수다가 끝이 없다.
똘똘이 인형을 데리고 노는데, “똘똘이가 열이 있어. 그래서 소아과에 가야돼. 주사도 맞아야돼. 그렇지만 똘똘이는 안 울어. 기침도 해. 눈에 하얀 게 있어서 눈에 약 넣어야 해.
똘똘이 손 씻고, 발 씻고, 치카치카 하고. 약 먹어.“ 등등...
어른들이 제게 하는 말을 그대로 똘똘이에게 하는 것이다.
한참 똘똘이와 놀더니 새 장난감을 사러 가잔다.
어제 짐보리 끝나고 장난감 사러 가자고 조르는 걸 내일 가자고 둘러 댔더니 그걸 잊지 않은 것이다. 할 수 없이 아침부터 백화점으로 향했다. 장난감 매장에서 이것 저것 둘러 보더니 인형 유모차가 마음에 드는지 그걸 한참 갖고 놀다가 “이거 집에 갖고 가” 하는 게 아닌가, 다른 장난감으로 관심을 돌려 보려 했지만 이 봄의 마음은 이미 유모차 장난감에 쏠려 버린 후.
할 수 없이 새 장난감 하나를 사 버렸다.
오후에는 엄마 친구 결혼식에 함께 참석했다.
낮잠 시간이라 졸음에 겨워 어쩔 수 모르던 봄이는 엄마 친구들과 함께 들른 “마르쉐”에서 곤한 잠에 빠져 버렸다.
10월 20일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을 맞이하여 가족여행을 떠나는 날. 첫 번째 목적지는 대전. 특허청에서 간단하게 엄마의 일을 마치고, 대둔산 자락의 진산 휴양림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새벽잠을 깨웠지만 봄이는 길 떠나는 설레임에 선선히 따라 나선다. 대전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 도착한 휴양림의 통나무 집은 인형이 사는 집처럼 아담하고 예쁘다. 게다가 봄이네가 묵을 통나무집 앞에는 예쁜 그네까지 마련되어 있어 봄이를 더욱 기쁘게 했다. 짐을 풀고, 봄이네 가족은 대둔산으로 향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다 보는 대둔산의 가을경치가 무척 아름다웠다.
10월 21일
어제 여정이 피곤했는지 8시쯤 잠이 들었던 봄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 엄마, 아빠를 깨운다. 봄이는 오랜만의 가족 나들이가 몹시 즐거운지 아침부터 방안을 팔짝 팔짝 뛰어다닌다. 아침 식사 후에는 통나무 집 근처를 산책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숲 길을 걷는 기분이란.... 봄이 역시 발이 땅에 닿을 겨를도 없이 뛰어 다닌다.
출발 전에 작은 사고가 있었다. 통나무 집 마당에는 작은 닭장 안에서 키우고 있는 암탉 한 마리가 있었는데, 봄이가 꼬꼬 구경을 한다며 닭장 근처에 갔다가 닭에게 손가락을 쪼인 것이다. 상처가 난 건 아니지만. 이번 사고를 계기로 봄이에게는 닭이 상당히 무서운 동물이 되었을 것 같다. 나중에 아빠가 “봄아, 호랑이가 무서워? 꼬꼬닭이 무서워?”하고 물으니 봄이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꼬꼬닭이 무서워”라고 대답했다.
봄이네 가족은 일찌감치 길을 서둘러 다음 행선지인 충주호 리조트로 향했다.
봄이는 차 안에서도 내내 즐거운 기분이다. 노래를 따라 부르고, 엄마랑 도깨비 장난을 하고... 차 안에서 까르르 웃음 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빨간 사과가 예쁘게 달려 있는 사과나무 가로수 길을 따라 충주 시내를 거쳐 충주호 리조트에 도착했다. 마침 봄이네가 묵을 방에서는 창 밖으로 그림 같은 호수풍경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짐을 풀어 놓은 봄이네 가족은 리조트 부근의 호숫가에서 오리보트도 타고, 휴양객을 위해 마련된 놀이공원에서 회전목마랑 꼬마기차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봄이는 피곤했는지 오리 보트 안에서 구명조끼를 입은 채로 잠이 들어 버렸지만...
저녁에는 아빠가 마련한 찌개와 삼겹살로 맛있는 식사를 했다. 아빠는 기막힌 찌개 맛으로 아직 녹슬지 않은 요리솜씨를 자랑했다. 봄이도 아빠의 찌개 맛에 감탄했는지 커다란 공기로 밥 한 그릇을 뚝딱.
10월 22일
오늘은 여행의 마지막 날. 예정대로라면 아침을 먹고 나서 곧 바로 길을 떠나야 하지만, 어제 뱃시간을 놓쳐 충주호 유람선을 타지 못했던 게 아쉬워서 아침 일찍 선착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10시에 떠나는 배표를 구할 수 있었다. 충주나루에는 누가 키우는지 청둥오리가 20여 마리 있어서 봄이는 오리 구경을 실컷 했다. 유람선에서도 봄이는 그 넓은 호수의 아름다운 풍경은 아랑곳 않고 나루터에서 본 오리들만 찾았다.
뱃길은 아름다웠지만 2시간의 여정은 좀 지루한 듯. 장회나루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곧바로 돌아오는 배를 탔지만 충주나루에 다시 도착한 시간은 어느덧 오후 3시가 돼 있었다.
오늘 저녁에는 집에서 막내 이모의 생일 파티가 예정되어 있어 봄이네 가족은 서둘러 집을 행해 떠났다. 이렇게 해서 즐거웠던 3일간의 여행길이 저물어 간다.
10월 28일
엄마가 퇴근해서 돌아오니 봄이는 고모 할머니와 함께 있었다.
고모 할머니랑 놀이터에 가서 놀다 왔다고 자랑이 한참이다.
오늘은 토요일, 짐보리 수업이 있는 날.
엄마는 점점 짐보리 수업에 회의를 느낀다. 수업 내용 자체가 비싼 수업료, 그리고 주말 오후의 금쪽 같은 2시간을 내줄 만한 가치가 있는 건지도 의심스럽지만, 무엇보다도 짐보리 수업을 같이 듣는 엄마들의 태도가 못마땅하다.
기본적으로는 아이들의 수업임에도 분위기를 좌우하는 건 엄마들의 극성이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대단히 경쟁적인 분위기이다. 게다가 자기 아이가 전체 수업 진행에 피해를 주고 있어도 아랑곳 하지 않는 부모들... 우리 사회의 평균적인 부모의 모습이겠지만. 매주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 가며 이런 모습을 봐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10월 29일
아침부터 봄이는 “나랑 같이 노올자”하며 엄마의 단잠을 깨운다. 봄이가 졸라 대는 통에 날씨가 꽤 쌀쌀했음에도 아침 식사 후에 놀이터로 향했다. 봄이는 집에서 나올 때는 비누방울을 불러 가자고 했지만, 막상 놀이터에 가서 맨발로 흙장난을 하고 노는 아이들을 보더니 비눗방울불기는 뒷전이고 흙장난이 하고 싶은 눈치다. 과감하게 모래를 만지지는 못하고, 손을 단풍잎처럼 펼쳐서 모래에 살짝 대어 본다.
그래도 “지지”라서 싫다며 모래 밭에 발 내딛는 것 자체를 거부하던 올 봄에 비하면 많은 발전을 한 셈이다.
집에 가서 옷을 더 두툼하게 끼어 입고, 목욕할 때 쓰던 플라스틱 양동이와 삽을 챙겨 들고 나왔다.
양동이에 흙을 퍼 담고, 작은 모래 언덕을 만들어 보고....
일단 모래놀이의 맛을 본 봄이는 쌀쌀한 바람이 마음에 걸려 그만 들어가자는 엄마의 하소연은 들은채도 않는다. 사탕, 심지어 초콜렛으로 유혹해도 끄덕않는다. 겨우 초콜렛을 입에 넣어 주고 데리고 들어 왔다.
오후에는 과천 튼튼 어린이집에서 공동육아 준비모임이 있었다. 처음 가본 튼튼 어린이집, “우와”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텃밭과 모래마당, 토끼장까지 갖춘 넓은 마당, 아이들이 생활하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게끔 개조된 집안 구조.
이런 환경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준비모임은 강아지똥 선생님의 강의, 그리고 회의로 이어져서 6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정말 많다. 사람을 모으고, 돈을 모아 어린이집을 세우고, 또 어린이집을 직접 운영하며 아이들을 함께 키워야 하는 일이 조금씩 실감이 나며 과연 잘 될까 하는 걱정도 든다. 하지만. 봄이가 넓은 마당에서 친구들과 함께 마음껏 뛰노는 모습을 그려보며 힘을 내기로 한다.
10월 30일
어제부터 콧물을 조금씩 흘리던 봄이가 드디어 본격적인 감기 증상을 보이고 있다. 소아과 약을 먹던게 불과 열흘 전인데...
그래도 봄이는 씩씩하게 논다. 그 작은 몸 안 어디에 그런 에너지가 숨어 있는지, 잠시도 쉬지 않고 콩콩거리며 온 집안을 뛰어 다니고, 재잘거린다.
저녁 먹으면서는 “시냇물은 깊대요”라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누구에게 배웠냐고 물으니 “황선생님”에게 배웠단다.
아마 어린이집에서 선생님들끼리 부르는 소리를 주워 듣고 제 나름대로 김선생님, 황선생님 하고 선생님을 구별하는가 보다.
서툰 발음으로 “황선생님”이라고 하는 걸 들으면서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교사의 이름 대신 “복숭아”니 “도토리”니 하는 아이들에게 친숙한 별명을 부르는 게 생각났다.
“황선생님”과 “복숭아”의 사이는 어느 정도 될까?
10월 3일
요즘은 봄이가 블록쌓기 놀이에 한참 재미를 들였다.
“엄마, 레고놀이하자.” 오늘도 저녁을 먹고 나서 엄마를 조른다.
요즘 특히 좋아하는 놀이는 집짓기놀이. 엄마가 가로 60㎝, 세로 30㎝ 정도의 기초공사를 해 놓으면 그 위로 봄이가 벽돌을 쌓고 장식을 해 가며 집을 완성한다. 오늘은 벽돌을 하나하나 쌓으면, “요즘에는~ 봄이 하나~ 엄마 하나~ 이렇게 하는 거야” 라고 재잘거린다. 무슨 뜻인지....
집이 완성되면 엉덩이를 들이 밀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처음에는 집 짓는 수고를 생각해서 훨씬 조그마한 집으로 시작했는데, 봄이가 자꾸만 집 안으로 쑤시고 들어 가려고 하는 통에 가능한 한 크게 짓게 되었다. 그래도 겨우 봄이 몸이 집 안으로 들어가기는 하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이쪽 벽이 허물어지고, 또 저쪽에 올린 지붕이 무너지고... 그래도 봄이는 재미있나보다. 집 짓기와 무너뜨리기가 끝나자 이번에는 나무블럭을 꺼내오더니 또 집짓기 놀이를 하자고 한다. 나무 블록은 끼우기 블록인 레고에 비해 훨씬 다양한 형태의 만들기가 가능하기 때문인지 봄이 혼자서도 곧잘 여러 가지 형태를 만들어낸다. 엄마가 보기엔 별로 비슷하지 않지만 봄이는 제멋대로 쌓아올린 블록을 보고 이건 빠방이구, 이건 트럭이구 하면서 이름을 붙인다.
10시. 집짓기 놀이에 한참인 봄이를 겨우 달래 잠옷으로 갈아 입히고, 씻겨 잠자리 분위기를 조성했다.
책꽂이에서 책을 한 아름 뽑아 오더니 읽어달라는데, 좋아하는 책이 한 일주일 단위로 바뀐다. 한 동안은 “세밀화로 그린 아기 그림책”이랑 다섯수레의 “우리아기 놀이책”을 열심히 보더니, 그 유행이 지나자 “잘자라 고릴라야”와 “다섯 마리 원숭이가 침대에서 뛰고 있어요” 시리즈에 열중했다. 그러더니 지난 주에는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엄마”와 “까치와 호랑이와 토끼”를 지겹도록 읽어줬는데, 오늘은 그동안 쳐다 보지도 않던 “엄마 배가 커졌어요”를 읽어달랜다.
11월 4일 토요일 (+915일. 30개월)
오늘은 원래 엄마의 놀토인데, 회사에 갑작스런 일이 생겨 출근을 하게 되었다. 할 수 없이 10시에 예약되어 있던 치과 정기검진은 다음주로 미루어 졌다. 아빠가 엄마를 회사까지 태워다 주기로 했다. 봄이는 엄마, 아빠랑 함께 차를 타고 나오니 마냥 들뜬다. “어디 가는거야?”
“응, 어야가는 거 아니고, 그냥 엄마 회사에 태워다 주고 다시 집에 갈거야.”
그래도 차를 타고 나온 것만으로도 신나는 눈치다.
엄마가 퇴근해서 돌아와 보니 곤히 낮잠을 자고 있다.
2시 쯤 잠들었다는데, 5시가 다 되어서도 일어날 기미가 안 보여서 할 수 없이 흔들어 깨웠다. ‘봄아, 짐보리 가자.’
잘 만큼 잔 후라 그런지 선선히 일어선다. 오늘도 짐보리 수업의 주제는 여러 가지 탈 것들.
수업은 선생님이 그날의 주제와 관련된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봄이는 그림책을 읽어줄 때에는 상당히 집중을 하는데, 그 순서가 끝나고 선생님을 따라 기차놀이, 로케트발사 흉내내기 등을 하는 순서에서는 슬금 슬금 아이들 사이를 빠져 나간다. 여전히 아이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불편해 하는 눈치이다. 혼자서 어떤 놀이에 재미를 보이다가도 아이들이 몰려 오면 얼른 다른 곳으로 피해 버린다. 어린이집에서는 어떤지 모르겠다.
집에 와서 어린이집 친구들 얘기를 곧잘 하길래 친구들과 별 문제 없이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녁에는 “흰곰” 그림책 - 프뢰벨 자연관찰전집 중 한 권인데, 장미상가 2층의 헌책방에서 1000원에 사 온 책이다 -을 보다가 별안간 동물원에 가자고 한다. 동물원에서 본 북극곰 생각이 나서 그랬는지. 그래서 잘 자라 고릴라에서처럼 밤에는 동물들이 모두 잠을 자니까 동물원에 못 가는 거라고 설명을 했더니 “동물들이 코 자니까 못 가?”하고 곧 납득을 하더니 손가락을 빨다 잠이 들었다.
11월 5일 일요일
부지런한 봄이는 일요일인데도 8시부터 일어나 엄마, 아빠의 단잠을 깨운다.
입맛이 없는지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꼬꼬마 친구들 비디오를 보겠단다.
막상 틀어주니 좀 보다가 노래책을 읽어달라고 조른다. 비디오 보기는 딱히 그 비디오를 지금 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예전에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있으니까, 아님 지금 심심한 데 마땅한 놀이가 생각나지 않아서 보여달라고 조르는 것 같다. 엄마가 귀찮아서 노래불러주기에 별 다른 성의를 보이지 않았더니 이번에는 지호언니 비디오를 보여 달라고 조른다. 비디오를 좀 보다가 또 그림책을 가져 오더니 읽어달란다. 어젯밤에 읽었던 “흰곰”책을 가져왔다. 책을 보다가 바다표범이 나오는 대목에서 “똑 같아” 하길래 “뭐가 똑 같은데”하고 물었더니 “내 표범팬티 어딨나” 책이랑 똑 같단다.
곰곰히 생각을 해 보니 그 책에 물개가 팬티를 모자처럼 머리에 쓰고 가는 대목이 있는 듯 싶다. 요즘 들어 이렇게 봄이에게 깜짝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틀어 놓은 비디오가 신경이 쓰여 비디오 끄고 책을 보자니 그건 싫다고 한다. 안되겠다 싶어 한강에 비둘기 먹이 주러 가자고 했더니 얼른 비디오를 끄고 나선다. 양말을 신고, 윗도리를 챙겨 입으며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엄마 동물들 일어났어? ”라고 묻는다. 별 생각 없이 “그럼, 아침이 되었으니 모두 일어났겠지”라고 대답했더니 동물원에 가겠단다. 아차. 어젯밤에 한 얘기가 생각났다. 알아듣던 말던 일단 설명을 했다. “오늘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 계시니까 엄마가 증조할머니 점심 맘마를 드려야 해. 그러니까 동물원에는 못 가는거야.” 그래도 계속 졸라 댄다. “동물원 갈래...”
옆에서 보고 있던 아빠가 강수를 들이 민다. “그럼, 한강에도 안 간다.” 그제서야 이 봄, 항복. “한강 갈래.”
비둘기 모이감으로 봄이가 먹다 남겨 눅져 버린 과자 봉지를 챙겨들고 길을 나선다. 아침 공기가 꽤 쌀쌀하지만, 아직은 햇살이 따스하다.
엄마가 노랗게 물든 나뭇잎을 따다 봄이에게 가져다 주었다. 봄이는 요즘 아파트 도로가에 떨어진 낙엽에 관심을 보인다. “엄마, 나뭇잎이 많이 떨어져버렸어.” “응, 가을이 되니까 나뭇잎이 노랗고, 빨갛게 물들고, 또 땅에 떨어지는 거야. 봄이 되면 또 새싹이 나올거야.”
좀 더 가다가 빨간 단풍잎을 집어다 주면서 “봄아, 날씨가 선선해 지니까 단풍잎도 빨갛게 물들었네.” 했더니, “아니야, 가을이 돼서 그런거야”라고 정정해준다.
엄마, 아빠는 오늘은 좀 멀리까지 나가서 선창장 부근의 자연학습장까지 가 보기로 했다. 봄이는 그네를 못 타는게 못 마땅한지 계속 그네 타령이다.
자연 학습장에는 가을꽃들만 좀 남아 있을 뿐이다. 엄마, 아빠도 화초 이름, 나물이름에 대해서는 봄이랑 수준이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에, 겨우 팻말에 붙어 있는 이름을 읽어나가는 정도이다. 그러다가 팻말이 안 붙어 있어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꽃 위에 앉아 있는 호랑나비를 보았다. 나비를 본 건 정말 오랜만인 듯하다. 봄이도 아마 처음 보았을 나비가 신기한 지 유심히 들여다 본다. 자연학습장 한 켠에는 텃밭이 있어 배추랑 무가 자라고 있다. 아빠가 무 하나를 뽑아 보았다. 잘 자란 무 하나가 땅 속에서 쑥 뽑혀 나온다. 엄마도 땅에서 무를 뽑아 본 건 처음이라 신기하기는 봄이랑 마찬가지이다.
저녁 때는 할머니 식사를 차려 드린 후 롯데월드에 갔다.
한 차례 회전목마를 타고, 저녁을 먹으러 중국식당으로 갔는데 이 봄은 짜장면 한 그릇을 2/3쯤 먹어 치워 봄이가 요즘 식욕이 없나 보다고 걱정했던 엄마의 걱정을 쓸데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저녁 식사 후에 꼬마기차, 회전목마를 한 번씩 타고 나니 벌써 9시.
집에 오는 길에 하늘에 떠 있는 반달을 보더니 봄이가 “달님, 똑 같아.”한다. 뭐랑 똑같은지 물었더니 그림책이랑 똑같단다. 엄마는 처음엔 “달님 안녕” 책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달님 안녕에는 둥그런 보름달만 나오는데.
“봄아, 무슨 책이랑 똑 같은데” “아빠, 달 따 주세요 책이랑 똑 같아”
아~ 그렇구나.
* 다시 엄마의 게으름으로 인해 봄이의 일기가 공백.
12월 18일
아침 10시쯤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늦잠 자느라 엄마에게 인사를 하지 못한 이 봄이 잠에서 깨어나서는 엄마에게 인사 안 했다며 울어대는 통에 할 수 없이 회사로 전화를 하신 것.
어른들이 깜박 잊고 이 봄에게 인사할 기회를 주지 않고 외출할 때면 늘 벌어지는 일이다.
“이~잉, 인사 안 했는데~ 그냥 가셨어~ 이잉”
봄이에게는 한 번 규칙으로 정해 놓은 것에 대해선 예외를 인정하지 않고 철저히 지키려는 성향이 있다.
또 다른 사례. 엄마는 봄이에게 잠들기 전에 치카치카를 하고 나서는 아무 것도 안 먹는 거라고 가르쳐 줬다.
봄이는 엄마와 약속한 이 원칙을 철두철미하게 지킨다. 가끔 어른들이 매정하게도 봄이만 빼고 과일이나 과자를 먹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흔들리지 않는다. “봄이는 치카치카 했으니까 내일 먹어”라며.
지난 번에는 양치질 하는 걸 깜박 잊고 어린이집에 갖다가 집으로 다시 돌아올 뻔 하기도 했단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봄이는 원칙주의자에요”라며 봄이의 이런 성격을 표현하신다.
어제는 레고 블록을 갖고 집짓기를 했는데, 40분 정도 갖고 놀더니 ‘정리할래’ 하며 장난감을 치우기 시작한다. 봄이의 장난감 정리는 말 그대로 예술이다. 커다란 상자 하나 가득 들어있는 블록을 모두 꺼내 집짓기를 했는데, 쌓아 올렸던 블록을 하나 하나 분해하고, 또 분류한다. 집짓기 블록은 그냥 상자에 담고, 동물, 사람 인형은 따로 분류해서 봉지에 담아서 넣는 것이다.
물론, 엄마가 처음에 이런 식으로 정리를 해 주었기 때문에 그걸 따라 하는 것이지만, 작은 인형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제자리를 찾아 정리한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엄마, 아빠는 잠시 할 말을 잃는다.
지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말도 있는데....
봄이 나름의 성격이겠지만, 융통성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 조금씩 가르쳐 줘야 할 것도 같다.
요즘 봄이가 즐겨 하는 놀이는 몸을 움직여서 하는 모든 종류의 신체놀이와 이야기하기.
“에너지의 화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잠시도 쉬지 않고 온 집 안을 뛰어다닌다.
오늘은 아빠와 말타기인지 비행기 타기인지 놀이를 하는데, 암튼 들고 흔들어 주니 재미있어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앞뒤가 맞지 않는 옛날 이야기 들려주기 놀이를 시작했다.
이 봄: 엄마, 옛날 얘기 해 주까?
엄마: 그래, 얘기해줘.
이 봄: 옛날에~, 꼬부랑 할머니가 살았는데, 토끼가 나타났대. 근데, 물고기가 ‘너 토끼냐?’ 했어.
엄마: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이 봄: 호랑이가 “저리 가!” 한거야.
엄마: 야, 정말 재미있다.
이 봄: 엄마, 옛날 얘기 또 해 주까?
엄마: 그래. 하나 더 해줘.
이 봄: 옛날에~
봄이는 또 한가지 새로운 놀잇감을 찾아 냈는데, 엄마가 붙인 이름은 “블럭 모래놀이”
작년에 엄마 회사 동료들이 봄이에게 블록 장난감을 선물했는데, 블럭 크기가 아주 작아서 봄이가 가지고 놀기는 좀 이른 놀잇감이었다. 손톱만한 크기의 블록을 한 군데 쏟아 놓으니 작은 상자로 하나 가득인데, 이걸 소꼽놀이용 국자나 대접에 담았다 쏟았다 하며 갖고 노는 거다. 아쉬운 대로 모래 놀이 대용으로 집안에서 쓸만한 놀잇감이다.
이런 다양한 놀이를 즐기느라 봄이의 취침 시간은 점점 더 늦어진다.
오늘도 11시가 되어서야 기나긴 놀이의 일정이 끝나고, 취침준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취침 준비를 시작하더라도 실제로 잠이 드는 건 12시가 넘어서이다.
오늘도 30분 가량 그림책을 읽어주고 겨우 침대에 눕혔는데, 엄마에게 옛날 얘기를 해 주겠단다. 처음 얘기를 시작할 때는 제법 잠자리 분위기가 조성되었는데, 어느 새 스스로 들려주는 얘기에 도취하더니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껑충껑충 뛰기까지 한다.
12시 10분 전, 드디어 얌전하게 누워서 “노래 불러줘”한다.
잠들기 직전의 상태이다. “잘자라 우리아가~ 앞 뜰과 뒷동산...”
“잘자야 우리아가~” 엄마의 자장가를 따라 부르더니 어느 사이엔가 잠이 들었다.
휴우~
첫댓글와! 추억의 종합선물세트! 언니랑 형부한테도 새로운 기쁨이겠지만, 이 큰이모한테도 정말 좋은 선물이다. 읽다가 다 못읽고 딸래미한테 가지만,며칠 걸려서라도 찬찬히 읽어야겠다. 일기 읽으면 그날의 기억이 다 떠오르는 거 있지? 내가 봄이랑 함께 했던 날들도 꽤 많구나도 싶구. 특히 이봄 많이 먹고 배탈나던날밤
첫댓글 와! 추억의 종합선물세트! 언니랑 형부한테도 새로운 기쁨이겠지만, 이 큰이모한테도 정말 좋은 선물이다. 읽다가 다 못읽고 딸래미한테 가지만,며칠 걸려서라도 찬찬히 읽어야겠다. 일기 읽으면 그날의 기억이 다 떠오르는 거 있지? 내가 봄이랑 함께 했던 날들도 꽤 많구나도 싶구. 특히 이봄 많이 먹고 배탈나던날밤
봄이 발가락 딴다고 붙잡고 씨름하던거,크레용 발가락 사이에 끼우고 침놀이 하던거,공항버스 마중나갔다가 이봄의 '비냉기"소리에 웃었던 거,병원놀이 안경쓰고 웃는 모습...아,정말 그리운 시절이다. 꼬물꼬물 아가들이 밑으로 셋이나 생겼지만,이봄은 역시 우리집안 최초,최고베이비인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