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전거를 타고 여러 마을을 떠돌아다녔다.
저물어서 당도한 산골의 마을회관이나 농부의 너와집 건넛방에서 잠들었다.
아직도 사람들은 충분히 착해서 저물녘에 나타난 과객을 재워준다.
거기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또 알게 되었다.
한글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고
조선일보나 동아일보가 뭔지 모르는 노인들도 많았다.
그 노인들은 학교 문턱을 넘어 본 적이 없었고
책을 읽어야 할 일은 아예 없었다.
한평생 허리를 굽혀서 코를 땅에 박고 오직 먹고살기 위해
노동을 해온 사람들이었다.
노인들의 몸은 강팔랐고 노인들의 방은 어두웠다.
그 노인들은 세상의 모든 질서와 이치를 체득하고 있었다.
그 노인들은 인간과 작물(作物)과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이웃이 무엇이고 혈육이 무엇이고 마을이 무엇이고
공동체가 무엇인지, 환경은 어째서 중요한지,
인간은 왜 남에게 점잖고 너그러워야 하는지,
물건은 어째서 소중하고 시간은 어째서 아까운 것인지,
마당에 내리쬐는 햇볕이 어째서 소중하고 고마운 것인지를 환히 알고 있었고
그 앎을 자신의 생애 속에서 실천하고 있었다.
그 노인들은 삶의 경건성을 제사 지내는 성직자들처럼 보였다.
아마도 한 생애에 걸친 고난과 시련 속에서
작물을 가꾸고 거두어들인 사람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진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맞설 줄 알고 피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버틸 줄 알고 숙일 줄 알았다.
배움이란 학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그 노인들의 건넛방에서 잠들면서 나는 행복했고, 더 많이 부끄러웠다.
아, 그러니 내 자전거란 얼마나 요망하고 천박한 물건이겠는가.
자전거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다음날 나는 또 자전거를 타고 다음 마을로 향하였다.
나를 재워준 노인은 떠나는 나의 배낭에 오이 몇 개를 넣어 주었다.
노인은 말했다.
“목마를 때 맹물보다 나을 거야.”
첫댓글 역시 작가는 작가네요. 어쩜 단어가 저리 명요하고 작가틱?한지... 그나저나 이양반, 4천만원짜리 자전거 산다 하더니 샀나 모르겠네. 아직, 내한테 온 적은 없는데...흐흐;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