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Super Korean)조의 과제입니다.
200510059 이 은 정
고대 미술
이시기에는 신화와 종교, 그리고 정치가 뒤섞여 인간의 정신과 삶을 이끌어갔다. 아울러 모든 창조의 역량과 정력도 신이나 최고 지도자를 위한 거대한 축조물이나 장식에 집중되어 많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서양의 고대 미술은 일찍부터 문명이 발달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로마 미술들로 서로 집이나 무덤의 벽에 그린 그림들이 많다.
고대 이집트 무덤의 벽에는 신과 여신, 사냥, 축제의 장면이 주로 그려져 있다.
그리스의 미노스 화가들은 집과 궁전에 춤추는 사람, 새, 꽃 등을 그렸고 로마의 화가들은 신과 여신, 고대 신화의 장면을 주로 그렸다.
중세 미술
초기 기독교, 비잔틴, 로마네스크, 고딕미술 등 14세기까지 서양의 화가들은 대부분 예수나 성인의 일생과 같은 기독교적인 주제를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종교화를 더욱 성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화가들은 풍부한 색채와 금도금을 이용해 그림을 그렸는데, 오늘날에는 단조롭게 보일지도 모를 이들 그림들이 중세인들에게는 매우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중세 시대는 다른 여러 시대하고는 달리 이질적이고 특색있는 미술을 만들어 전개하였다.
그 특색은 당시의 미술이 모든 의미에 있어 기독교 미술이었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중세 이후에 있어서도 기독교 미술은 풍부한 전개를 다 하고 있다.
중세의 예술가들은 신앙과 교리란 틀 안에 있으면서 신의 지배와 교회의 권위 아래서 작품을 제작하였다. 예술적 개성은 종교적 권위의 규범과 제약 아래서만 성립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중세 예술의 대부분은 '무명의 예술가'들의 작품이며, 때로는 집단적인 협동 제작이었다. 그들 위에 있는 것은 교회이며 교리이며 또 민중의 신앙이었다.
이와 같은 기독교 미술로서의 조건이 중세미술과 기타의 여러 성격을 대부분 규정짓는 것이었다 해도 무방하다.
르네상스 미술
르네상스란 '재생', '부흥' 을 뜻하는 말로서.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16세기 유럽을 풍미하며 정점에 이르렀던 인간 중심의 미술 경향를 말한다."
여기서 재생, 부활 한다는 의미의 내면에는 고대와 르네상스 사이의 기나긴 기간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가 작용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데, 르네상스란 말은 16세기 이탈리아의 미술사가였던 바사리의 레나시티에서 유래했다. 인간 정신의 회복을 바탕으로 중세의 신중심의 미술에서 인간 중심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했으며, 초자연적인 중세 미술에 반대하여 인간과 자연의 현세적인 아름다움을 긍정하는 사실적인 미술이다.
회 화
㉠이탈리아(피렌체): 르네상스 회화가 시작된 것은 이탈리아 회화가 처음으로 비잔틴 전통의 종교적 상징에서 탈피하면서부터라고 보는 것이 관례이다. 이 변화를 일으킨 사람이 지오토이다. 그를 필두로 15세기 후반 르네상스 회화에서는 고전 세계의 재창조 작업이 일어났다.
르네상스 회화의 특징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투시도법에 의한 원근법의 성취이다. 이는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처음 알려졌는데, 이 기하학적인 원리는 마사치오의 작품에 의해 훌륭하게 회화에 구현된다. 마사치오의 위대함은 2차원의 화면에 원근을 이용하여 3차원의 공간을 구축한데에 있었다.
시대의 그림은 투시 원근법과 더불어 사실적 묘사의 해부학이 모든 회화에 적용되어 그림이 구체성을 더하는 시기이다. 만테나의 경우는 우선 해부학에 의해 인체를 그린 후 사건이 벌어진 시대에 맞게 옷이나 도구 등을 그려 넣었다.
하지만 보티첼리나 안젤리코 등은 이러한 분석적인 면보다 화면의 법칙에 충실하여 꼭히 원근과 해부학에 적용하려하지는 않았다.
-페루지오, 보티첼리, 지오반니 벨리니 등의 작가가 있다.
㉡북유럽(플랑드르): 피렌체에서는 현실에 대한 자각이 고대의 재인식에서 시작하였다면, 플랑드르 르네상스는 자기 주변의 생활에 대한 관찰로 출발한다. 특히 당시 템페라나 프레스코 기법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미묘한 음영의 차이를 해결한 유화 기법을 발명한 반아이크는 해부학에 맞춰 뼈대를 세우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화가들과는 달리 보다 현실을 치밀하게 관찰하여 사물을 그려나갔다.
이외에도 15세기 중엽 독일에서는 동판화 기법이 발명되고 이러한 동판화의 발전으로 미술가들은 다른 지역 미술가들의 구성과 착상을 배우고 발전 시켜나가게 된다
* 이번 자료를 검색하면서 고대부터 과도기인 르네상스 미술까지 접하면서 서양의 중세 문화까지 알아보았는데 특히 신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문화 즉 르네상스 문화가 특히 마을을 끌었다. 인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둔 르네상스 문화는 기존의 신화적 요소보다는 좀더 인간적인 미술을 느낄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바로크 양식의 건물(베르사유 궁전)을 보면서 웅장함과 화려함을 엿볼수 있었고 로코코 양식의 건물을 보면서 소박하면서 인간적인 면을 느낄수 있어서 좋았다.
200510037 성 희 경
1. 사진의 개념
사진이란 빛을 매체로 해서 물체의 상(像)을 감광성기록재료 위에 기록하는 방법 또는 이렇게 하여 얻은 화상(畵像)을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렌즈가 장착된 카메라에 감광성기록재료로 만든 사진필름을 넣고, 빛이 있는 곳에서 피사체를 촬영하여 현상함으로써 사진화상을 얻는다.
2. 사진의 역사
일식, 최초로 간행된 카메라옵스쿠라의 도해, 1544
“사라져 버리는 영상을 잡으려는 생각은 독일 사람들이 해온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불가능 할 뿐만 아니라 단지 욕망에 불과 한 것이며, 그런 외도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 따라서 인간이 만든 어떠한 기계도 신의 이미지를 잡을 수 없다.” 1839년에 성공적인 사진 프로세스의 발명에 관한 최초의 공식발표에 대해서 독일의 <라이프치히 시정신문>은 심한 비난을 퍼부었다. 시정신문은 만약 과거의 아르키메데스나 모세와 같은 현인들이 “거울에 비춰진 것을 영원히 있게 하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그런 것을 떠벌리는 프랑스의 다께르를 우리는 당장에 바보 중의 바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비난했다. 이러한 극도의 오해는 매우 놀라운 일이다. 왜냐하면 사진의 프로세스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인 광학적, 화학적 원리들이 그 시대 훨씬 이전부터 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카메라 옵스쿠라는 현대카메라의 효시이다. 적어도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바늘구멍으로 통해 들어온 광선이 영상을 만든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다. 10세기의 아라비아의 학자 알하젠(Alhazen)이 그 효과에 대해 아주 자세히 설명하였고, 바늘구멍으로 밖으로 뚫은 암실인 카메라 옵스쿠라(글자뜻 그대로 ‘어두운 방’)속에서 일식을 보는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하였다.르네상스의 시기에는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구멍에 렌즈를 끼워 넣게 되었다. 그리고 카메라 옵스쿠라는 더 작아져서 가지고 다니기에 더욱 편리 해졌다. 그것은 방에서 작은 오두막으로, 거기서 일종의 작은 가마로, 작은 천막으로, 결국에는 쉽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작은 상자로 축소 되었다.
3. 느낀점
사진이란것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는데, 요번에 레포트를 하게 되면서 사진에 대해 조금이나마 관심이 생겼다. 이제, 사진찍는 거에도 관심을 좀갖고, 멋진 건물들이 있으면 많이 찍어볼생각이다.
==============================
김 희 재 작가님 특강
200510011 김 영 표
실미도 사건이 처음 언론에 공개된 것은 1993년경 입니다.실미도 훈련을 맡았던 교관 한분이 칼럼에 기사를 쓰면서 알려 졌습니다.그 전까지는 실미도에 대한 확실한 공개가 없었 습니다.다만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아니라는 사실만 밝혀져 있었져..
실미도 영화는 93년 경에 칼럼에 실린 글을 읽고 작가가 현지 실존인물들과 대면하고,답사하고,증언을 통해 지은 소설을 강우석 감독이 영화화 한 것입니다.
99년인가 2000년인가 모 프로 '이제는 말할수있다에서 실미도 특수부대원들에 대한 타큐멘터리 방송을 한 적이 있는데,그때 그 방송내용만 해도 실미도 특수부대원들의 훈련내용,실미도 부대의 목적,생존 기간병들의 증언만 있었지 실미도 부대원들의 출신이나 신상공개가 전혀 없었 습니다.
근데 저번주 토요일날 모 프로 '그것이 알고 싶다 에서 방송된 내용을 보니까 정말 국가가 국민들 한테 저럴수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더 군여..
이 방송에선 실미도 부대에 대한 추적과 답사,증언,제보를 통해 완전히 실미도 부대를 파했 쳤습니다. 방송을 보니 장난이 아니더군여..
생존 기간병들의 얘기론 중형의 범죄자는 없었 답니다.
출신을 살펴보니 30-40% 는 소매치기,절도, 때론 서커스 종사자도 있었고, 절반 정도는 거의 일반인들 이었다고 합니다.실미도 부대를 모집하는 모집관들이 돈을 많이 벌수 있다고 속여 19-20 세 젊은이 들을 끌어드린 거라고 하더군여..
더 많은 내용이 있었는데,직접 그 방송을 보시는게 빠를것 같네여..
영화의 내용을 본 실존 기간병들이 많은 부분이 왜곡 됐다는 증언도 합니다.근데 그건
영화로서 픽션이 들어가 그런 것이니 영화로만 즐기세여..
친구,살인의 추억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들도 실제와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이건 영화이다 보니까 픽션이 들어가는건 당연한 겁니다.
너무 사실적으로 그리면 흥행에 성공할수 없기 때문에 영화는 좀 왜곡되는 겁니다.
소설 실미도 또한 픽션이 많이 들어 갔습니다.왜냐면 실미도 작가가 소설을 집필할 당시만 해도 실미도에 대해서 사실이 많이 알려져 있던 시대는 아니기 때문 입니다.또 소설이기 때문에 영화처럼 픽션이 들어 간거져..
영화는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 졌기 때문에 소설또한 실제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sbs 사이트에 방문 하셔서 '그것이 알고 싶다' 2월7일 방송분을 한번 보세여.정말 충격적 입니다.
짧게 실화를 적겠습니다.
1968년 1월 21일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위해 북괴 민보성 정찰국 산하 124군부대 소속
무장공비 31명이 남한에 침투 합니다.하지만 청와대 인근지역에서 국군과 경찰의 검문에 걸려 교전이 벌어졌고 30명이 사살되고 1명이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31명의 실미도 부대원들이 조직돼 북한 김일성을 암살하기 위해 3년2개월 동안 혹독한 훈련을 받습니다.하지만 2번의 작전 취소로 인해 실미도 부대원들은 지쳐만 가고,이들에 대한 금전적인 지원또한 약화되고,언제 제대 할지도 모르는 기약없는 나날을 보냅니다.
실미도 부대원들은 마침내 폭동을 일으키고,버스를 탈취해 청와대로 향하던중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군인들과 총격전이 벌어 집니다.결국 대부분의 부대원이 수류탄 자폭으로 사망하고,생존자 4명은 사형 당한다.
{느낌점}
나도 그것이알고싶다 를 봤다. 영화가 천만관객돌파하고 나온 것이라 느낌이다르다.
실재로 상상이상이다. 사람들이 실미도에 사람들이 가서 울부짓음과 정부에 말도안돼는
소리에 사람들이 열받았다. 나도그장면보고 열이받았다. 앞으로 정부가 우리국민들에게
좀더 헌신적으로 대해주었으면좋겟다. 자기이익만챙기지말고
학 과 : 건 축 학 부
학 번 : 200510015
이 름 : 김 준 영
10월 5일 오늘 문화와 예술시간에 특별한 선생님이 한 분오셨다.
선생님 성함은 김희재....대한민국사람이라면 한 번씩 보았을 영화 실미도의 작가님이시다. 또한 모 대학교의 교수님이시기두하다. 우리가 영화를 볼때 주연 배우와 내용만 볼뿐 그 영화를 찍는데 누가 누가 참여했는지는 다들 눈여겨 보지는 않는다. 나 역시 영화내용만 보았을 뿐 다른 것들은 눈여겨 보지를 안았다. 김희재 선생님의 작품으로는 지난 10여년간의 만화와, 우리들이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영화 “ 국화꽃향기”, “ 실미도 ”, “ 공공의적2”등 이다. 영화가 흥행하냐 못 하냐는 작가의 탄탄한 구성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과, 모든 스텝들의 노력이 조화되어야 흥행이 한다고 들었으며, 생각하고 있다. 난 영화를 좋아한다면 좋아한다는 사람 축에 낀다고 몰하고 싶다. 영화관에서 볼 때도 있고...그 후에 볼 때도 있지만.... 유명한 영화는 뭐 든지 보고야 만다. 실미도사건에 대해서 나는 잘 알지 못 한다.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던 것도 아니고, 어디서 듣지도 못했기에 알수가 없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실미도사건은 1971년 8월 23일 이 섬에 있던 북파부대원들이 자신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은 기간병들을 살해하고 탈출하여 인천에서 버스를 탈취한 뒤, 서울로 진입해 청와대로 향하던 중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한 사건을 말한다.
이 부대는 1968년 4월 창설되었고, 일명 '684부대'로 불린다. 같은 해 1월 북한의 특수부대인 124군부대 소속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 세검정고개까지 침투해 많은 인명피해를 냈던 1·21사태에 대한 보복을 목적으로 창설되었다. 창설 목적은 북한에 잠입해 김일성(金日成)을 죽이는 것이다.
창설 이후 이들은 실전과 똑같은 훈련과 철저한 인민군식 훈련을 받으며 단 3개월 만에 북파가 가능한 인간병기로 탈바꿈하였다. 그 뒤 3년 4개월 동안 출동명령만을 기다리던 중 1970년대 초 국제적인 긴장완화와 남북화해 분위기가 조성됨에 따라 이들의 존재가 불필요해지자 정부는 기간병들에게 이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인간병기로 길들여진 훈련병들 앞에서 기간병들은 손 쓸 틈도 없이 전체 24명 가운데 18명이 희생당하고 6명만이 살아 남았다. 이것이 1971년 8월 23일 6시경의 일이다. 기간병들을 살해한 북파부대원 24명(나머지 7명은 훈련 기간 중 사망)은 12시 20분경 인천 독배부리 해안에 상륙한 뒤, 버스를 빼앗아 서울로 향하였다. 이어 인천에서 육군과 총격전을 벌인 뒤, 두 번째 버스를 탈취해 14시 15분경 영등포구대방동유한양행 건물 앞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마지막 총격전을 벌이다 스스로 수류탄을 터뜨려 부대원 대부분이 죽고, 4명만이 살아 남았다. 생존자 4명은 1972년 3월 10일 사형당하였다.
정부는 이 사건을 '실미도 난동사건'으로 규정하였는데, 이후 이 사건의 진상은 갖가지 의문점을 간직한 채 30여 년 간 베일에 싸여 있었다. 684부대의 훈련병들이 겪은 3년 4개월 동안의 실상을 파헤친 백동호의 소설 《실미도》(1999)와 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강우석(康祐碩) 감독의 동명영화(2003년 12월 개봉)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2004년 초에는 1968년 3월 충청북도옥천군의 한 마을에서 실종된 7명의 청년이 684부대원이었다는 사실이 국방부에 의해 확인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684부대의 구성원들이 범죄자들이었는지, 아니면 민간인들이었는지를 비롯해 많은 점들이 아직도 의문에 싸여 있다
다. 그러나 인간병기로 길들여진 실미도훈련병들에게 일반사병들이었던 담당 기간병들은 속수무책이었고, 단 십여분만에 실미도를 접수한 훈련병들은 인천으로 상륙, 송도외곽에서 버스를 탈취, 서울로 향한다. 전군 비상경계령이 발동된 가운데 이들은 진압군과 교전 끝에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전원 자폭이라는 최후를 선택한다.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신속히 이 사건을 종결지었다.
위의 글이 실미도 사건에 대한 내용이다. 나는 북한에서만 공작원을 보내고 우리나라는 공작원양성이라는 것 자체를 안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시 공작원을 양성한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실미도에서 훈련을 받은 병사들은 대부분 범죄자들 이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렇치 안은 사람도 있었으며, 실미도에 끌려간 사람들의 주민번호는 모두 없는 번호가 되었다. 주민번호가 없다는 것은 어느나라 법에도 속하지 안 으며 세계어디에도 마음데로 다닐수 없는 생명이 있으면서도 세상에 존재가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참으로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을 수가 없다. 주민번호가 없다는건 자아 정체성이 상실된다는 말로도 해석이 가능하겠다.
아무리 군부 정권이었다지만 너무나 과격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영화를 보고 내가 화가 났던 것은 처음 이었던 것 같다. 지금이야 민주주의 시대 기에 지금 시대에 살고 있는 나는 이해가 안 가는 것이기에 그런 것 일까?
지금 시대에 저런일이 벌어 진다면 참 으로 모든 사람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내가 화가 날 정도였다면 영화 내용이 참으로 탄탄했으며, 실제 있었던 일이기에 영화로 잘 그려낸 것이기에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오늘 강의로 인하여 영화를 볼때 한층더 성숙한 영화관람 습관을 가지게 될 것 같다.
200510024 남선영
문화와 예술 수업대신 영상시나리오창작특강 듣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김희재 작가님을 보게 되었는데 포스터에 나온 사진은 머리도 길고 무언가가 차갑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실제로 봤을 때는 머리도 짧고 너무나도 외소해 보이고 여성스러우시면서 차갑다는 느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강의를 편안하게 잘 이끌어 가시면서 강의 시작했다.
김희재 작가님께서 강의를 하시면서 많은 말씀들을 해주셨는데 처음에는 단순히 작가라는 것 밖에는 몰랐는데 강의를 들으면서 '실미도, 국화꽃 향기, 공공의적 ' 을 작가하신지는 뒤늦게 서야 알게 되었었다. 처음 그냥 실미도만을 생각했어도 남자 분이 썼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김희재 작가님께서 썼다는 걸 알았을 때는 느낌이 새롭게 느껴졌었다.
처음 강의를 하실 때는 '공공의적'내용을 쓰면서 있었던 에피소드 같은 내용도 말씀해주셨는데 그때 물뽕 대한 얘기도 해주셨는데 아무래도 공공의적 같은 일들은 내가 직접 접해 볼 수 없었던 일이고 경찰서에서 일어날수 있었던 내용들이라서 그런지 물뽕얘기를 들을 때는 한편으로는 신기하면서 그런 일들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리고 실미도에 대한 내용 , 글을 쓰면서의 심정 등 여러 가지 말씀을 해주셨는데 처음 실미도를 쓰게 된 이유가 수많은 작가 분들이 풀지 못한 미스테리를 자기가 풀게되서 실미도를 쓰게 되었다면서 실미도에 대한 얘기를 해주셨는데 김희재 작가님은 '국화꽃향기' 같은 차분한 이미지보다는 실미도 같이 강하고 액션이 들어가는 이미지를 좋아한다고 말씀도 해주시고 글을 쓰면서 난감했던 적도 있고 결론부분을 내용을 수정해야 해서 옆에서는 폭탄 등 터져는 촬영장 한곳에서 대본을 수정하는데 실미도 감독이신 강우석 감독이 처음에는 김희재 작가님을 보시고는 이런분이 어떻게 이런 내용을 썼을까? 혹시 누가 대신 남자 분이 써주신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었는데 마지막 내용을 수정한걸 보고 그제서야 김희재 작가님에 대해 알아주셨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실미도에서 684부대의 관한 한 부분의 영화 내용을 말씀을 해주시는데 마지막 부분쯤에 보면 684부대가 있는 곳인 섬에서 나와 버스 안에서 수류탄을 터뜨려 자살을 하는데 그때 버스 안에서 각자 주민번호를 하나 하나 쓰는데 그 684부대원들 같은 경우는 북한으로 가기 위해 만들어진 부대이기 때문에 북한으로 갔을 때 잡혔을 경우 남한사람으로 밝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 주민등록번호를 다 말소 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자살을 하기 전 버스 안에서 자기들 주민번호 하나 하나 세기는거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나는 살아 있는데 주민등록번호도 없이 자신의 정체성이 없다는 건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체성의 대한 예로 실미도 얘기를 해주시다가 한국계 야쿠자 1세에 대한 얘기도 해주셨는데 그 야쿠자에 대한 내용은 부모님은 한국 사람인데 전쟁 때 일본으로 넘어가 그쪽에서 자기를 낳아서 7살이 되었을 때 부모님들이 말씀해주시기 전까지는 자기가 일본사람인줄만 알았었는데 전쟁이 끝나고 부모님들이랑 한국에 다시 돌아왔는데 자기는 한국말도 모르고 한국에서 애들은 쪽발이라는고 놀리니깐 한국생활에 적응을 할 수가 없어서 혼자 일본으로 넘어와 야쿠자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일본에서는 한국계 야쿠자 1세가 되었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자기에 대한 정체성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국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한국으로 돈도 많이 보내고 도움을 줬다는 얘기도 해주셨다.
이런 얘기를 해주시면서 결론으로 말씀해주신건 정체성에 대한 중요성 말씀해주시기 위해 예로 많은 얘기들을 해주셨는데 그 중이 실미도와 한국계 야쿠자 1세에 대한 얘기이다. 처음 이 강의를 들으면서 김희재 작가님께서 처음 실미도 얘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그때는 단순히 영화에 대해 글을 쓰면서 있었던 에피소드 같은걸 얘기 해주시는 줄 알았는데 그 내용에 뜻을 알고 나서 내 자신에 대해 생각 해봤을 때 그동안 살면서 나한테는 실미도나 한국계 야쿠자 1세처럼 그런 상황이 나한테 닥쳐오질 안아서 인지 몰라도 내 자신의 정체성의 대해 많은 중요성을 느끼지 못했는데 내 주민등록번호 그냥 하나만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정체성의 중요성을 지금에서야 다시 느껴진다. 김희재 작가님의 강의를 듣기 전에 생각하기로는 영상시나리오창작특강이라고 해서 딱딱하고 지루할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그와 달리 시간가는 줄 모르게 듣고 정말 김희재 작가님을 처음 봤을 때는 고정관념 때문인지는 몰라도 국화꽃향기처럼 차분하고 로맨스 있는 그런걸 썼을꺼라고 생각했었는데 실미도 같은 강한 이미지의 내용을 써서 조금은 놀랍기도 했었고 우리들에서 강의 내용을 실감나게 전해주기 위해 이런 저런 예를 들어가면서 방송용어가 아닌 비속어들을 사용하면서 말씀해주셨는데 어느 때 강의보다 영화 속에서 뜻하는 한 소제에서 이런 깊은 뜻이 있다는 걸 다시 알게 되었고 실미도와 김희재 작가님의 강의를 통해 나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번 뒤돌아 볼 수 있었던 같아서 좋았다.
200510075 건축학부 조기희
특강듣기전에 공공의적2와 실미도는 이미봣었다. 다시한번 특강시간에 영화를 볼줄알고 자양홀로갔지만, 영화보다는 공공의적과 실미도를 작가를 맡으신 김희재님의 강의였다. 실제로 영화 작가선생님을 처음봣는데 처음에는 남자 작가인줄만알았다.
하지만, 이게 웬일? 작가선생님은 여저분이셨다 그래서 한번 더 놀랬다 강의를 시작하면서 약간의 설명만하시구 영화를 보겟다
근데 영화보다는 김희재작가님의 설명을 듣는 순간, 딱! 내스타일이야하는 생각이 들엇다. 보기와는 다르게 너무 털털하시구 꼼꼼하시구 센스있는 분이신것 같고, 어떻케 그런 시나리오를 쓰셨는지 궁금하다. 설명을 듣던 도중 처음알게된게 너무나 많았다.
영화 감독님들은 옛날분들이셔서 우선 멋있고 대규모적인 장면을 연상한다는말에 정말 웃겼지만, 더 웃긴거는 김희재 작가님이 넓은 길에서 홀로 노트북과 둘이서 외로히 시나리오를 쓰시는것에 대해서 정말 웃겼다. 나는 집에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집에서 하는줄만 알았는데 그것만이 아니엿다는 생각이 들엇다.
이를 계기로 영화에 대한 관심을 좀더 가지게 되고 한번 시간이 되면 김희재 작가님들 따로 만나므로서 영화의 애기를 해보구 싶다.
[건축학부] 200510037 성희경 / skybluehk@hanmail.net
이번강의를 듣기 전까지 나는 영화에 별관심이 없었다. 그냥 영화 개봉해서, 쫌 괜찮을꺼 같다, 재밌을꺼 같다하면 그냥 함 봐볼까 하는 정도였다. 그렇다고 김희재 작가님께서 쓰신 그 유명한 실미도를 안 보았다는 것은 아니다. 한참 개봉할때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보긴봤었다.
재밌기도 하면서 영화 참 잘만들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김희재 작가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제대로 된 영화와 관객에게 조금이라도 흥미를 주면서재밌는 영화를 만들기까지는 정말 힘들은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글 쓰는 걸 너무나도 싫어하는 나에게는 남들보다 두배 세배로 힘든일 인거 같다. 김희재 작가님이 실미도 마지막 장면 찍을때 옆에서 상자 두개를 놓고 앉아서 글을 쓰셨다는 말씀을 듣고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글을 쓰시는 분들 보면 조용한 환경에서 써야 글이 잘써진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열악한 상황에서도 마지막 장면을 위해 그렇게 노력하시는 모습이 멋지다. 이 강의를 듣기 전에 실미도의 마지막 장면은 정말 불쌍하면서도 멋진 장면이라 생각했었는데 강의를 듣고나서 마지막 장면을 생각하니까 더욱더 멋진장면인거 같다.
한번 기회가 되면 실미도와 공공의 적2를 다시 한번 더 봐야겠다. 그 때는 강의를 들었던 내용을 생각 하면서 이장면은 어떻게해서 이렇게 나왔고 이장면은 머가 중요한 포인트인지 찾아보면서 내용을 이해하며 볼것이다.
다시한번 이번강의를 들으면서 김희재 작가님이 정말 훌륭하고 멋진분이신거같고 다음에 쓰시는 글도 좋은 영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만번 만나뵈어 특별한 강의를 한번더 듣고 싶다.
200510011 김 영 표
실미도 사건이 처음 언론에 공개된 것은 1993년경 입니다.실미도 훈련을 맡았던 교관 한분이 칼럼에 기사를 쓰면서 알려 졌습니다.그 전까지는 실미도에 대한 확실한 공개가 없었 습니다.다만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아니라는 사실만 밝혀져 있었져..
실미도 영화는 93년 경에 칼럼에 실린 글을 읽고 작가가 현지 실존인물들과 대면하고,답사하고,증언을 통해 지은 소설을 강우석 감독이 영화화 한 것입니다.
99년인가 2000년인가 모 프로 '이제는 말할수있다에서 실미도 특수부대원들에 대한 타큐멘터리 방송을 한 적이 있는데,그때 그 방송내용만 해도 실미도 특수부대원들의 훈련내용,실미도 부대의 목적,생존 기간병들의 증언만 있었지 실미도 부대원들의 출신이나 신상공개가 전혀 없었 습니다.
근데 저번주 토요일날 모 프로 '그것이 알고 싶다 에서 방송된 내용을 보니까 정말 국가가 국민들 한테 저럴수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더 군여..
이 방송에선 실미도 부대에 대한 추적과 답사,증언,제보를 통해 완전히 실미도 부대를 파했 쳤습니다. 방송을 보니 장난이 아니더군여..
생존 기간병들의 얘기론 중형의 범죄자는 없었 답니다.
출신을 살펴보니 30-40% 는 소매치기,절도, 때론 서커스 종사자도 있었고, 절반 정도는 거의 일반인들 이었다고 합니다.실미도 부대를 모집하는 모집관들이 돈을 많이 벌수 있다고 속여 19-20 세 젊은이 들을 끌어드린 거라고 하더군여..
더 많은 내용이 있었는데,직접 그 방송을 보시는게 빠를것 같네여..
영화의 내용을 본 실존 기간병들이 많은 부분이 왜곡 됐다는 증언도 합니다.근데 그건
영화로서 픽션이 들어가 그런 것이니 영화로만 즐기세여..
친구,살인의 추억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들도 실제와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이건 영화이다 보니까 픽션이 들어가는건 당연한 겁니다.
너무 사실적으로 그리면 흥행에 성공할수 없기 때문에 영화는 좀 왜곡되는 겁니다.
소설 실미도 또한 픽션이 많이 들어 갔습니다.왜냐면 실미도 작가가 소설을 집필할 당시만 해도 실미도에 대해서 사실이 많이 알려져 있던 시대는 아니기 때문 입니다.또 소설이기 때문에 영화처럼 픽션이 들어 간거져..
영화는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 졌기 때문에 소설또한 실제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sbs 사이트에 방문 하셔서 '그것이 알고 싶다' 2월7일 방송분을 한번 보세여.정말 충격적 입니다.
짧게 실화를 적겠습니다.
1968년 1월 21일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위해 북괴 민보성 정찰국 산하 124군부대 소속
무장공비 31명이 남한에 침투 합니다.하지만 청와대 인근지역에서 국군과 경찰의 검문에 걸려 교전이 벌어졌고 30명이 사살되고 1명이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31명의 실미도 부대원들이 조직돼 북한 김일성을 암살하기 위해 3년2개월 동안 혹독한 훈련을 받습니다.하지만 2번의 작전 취소로 인해 실미도 부대원들은 지쳐만 가고,이들에 대한 금전적인 지원또한 약화되고,언제 제대 할지도 모르는 기약없는 나날을 보냅니다.
실미도 부대원들은 마침내 폭동을 일으키고,버스를 탈취해 청와대로 향하던중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군인들과 총격전이 벌어 집니다.결국 대부분의 부대원이 수류탄 자폭으로 사망하고,생존자 4명은 사형 당한다.
{느낌점}
나도 그것이알고싶다 를 봤다. 영화가 천만관객돌파하고 나온 것이라 느낌이다르다.
실재로 상상이상이다. 사람들이 실미도에 사람들이 가서 울부짓음과 정부에 말도안돼는
소리에 사람들이 열받았다. 나도그장면보고 열이받았다. 앞으로 정부가 우리국민들에게
좀더 헌신적으로 대해주었으면좋겟다. 자기이익만챙기지말고
건축학부 200510059 이은정 eunjungu0@hanmail.net
처음 국화꽃향기랑 영화를 보고 , 국화꽃향기에 나오는 희재란 이름이 , 작가의 이름이라는 것을 들은적이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작가님의 특강이 너무 궁금했고, 작가님이 너무 궁금하기도 했었다.
내가 생각하는 김희재 작가님은 여성스럽고 , 청순함이 물씬 풍기는 그런분인줄알았는데 , 막상 처음 뵌 김희재 작가님은 ...... 사진으로 볼 때에는 50대넘은 약간은 늙은 아주머니인줄 알았다 .
하지만 , 실제로 뵌 김희재 작가님은 사진과는 다른 40대 그냥 평범한 주부같고 , 편안한 동네 아주머니같은 인상이었다.
단지 다른점이 있다면 , 말을 잘하시고 , 설득력있는 말솜씨와 그냥 아줌마들에게는 없는 자신감과 억척스러움보다는 당당함이 보였다 .
김희재 작가님은 특강을 하시면서 , 많은 말씀을 해주셨다 .
그중에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실미도와 일본의 야쿠자를 예로들어 정체성의 중요를 알려주셨다 .
작가님은 처음 실미도를 보았을때 몇가지의 의문점을 갖고, 많은 작가들이 풀지못한 의문점을 푸셨다고 한다.
그중에 한 의문점이 3년동안 실미도란 섬에 잘있다가 갑자기 육지에 나와 버스를 훔쳐 청화대로 돌진하는 장면이었다고 한다 .
그들은 나라를 위해 몇년동안 열심히 훈련을 받으며 살았지만 , 나라는 그들을 버리게 되었다 .
그들은 자기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위해 육지로 나오게 되었고 , 존재를 알리기위해 서울의 중심지인 청화대로 돌진하게 된것이다 .
그리고 , 그들은 그들이 간첩으로 불리운것을 알게 되고 , 자신의 신분이 밝혀질까 해서 나라에서 그들의 주민등록을 말소한 사실을 알게 되어 , 그 자리에서 폭탄을 터뜨려 자살을 하게되었다 .
그리고 또한 예로는 한국계야쿠자 1세의 예이다 .
그들의 부모는 전쟁을 피해 일본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고 , 일본에서 아이를 낳게 되었다 .
일본인으로 살던 야쿠자는 7살이 되던 해, 한국인이라는 사실과 한국으로 넘어온 야쿠자는 한국에서도 일본인이라는 따돌림과 놀림으로 인해 야쿠자는 얼마 살지못하고 일본으로 넘어오게 되었고 , 그는 일본에서 야쿠자가 되었다 . 하지만 그는 조국의 그리움으로 조국을 위해 깨끗하게 번 돈은 아니지만 , 그래도 뜻 깊은 마음으로 돈을 보내주곤 했다고 한다. 그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한국계야쿠자는 한번쯤 조국에 도움을 줬다고 한다 .
이 두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람은 정체성 없이는 행복할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고 , 내가 이 나라에 정체성 있는 국민이라는 사실이 너무 뿌듯하고 , 좋았다 .
특강을 들으면서 작가님은 학교에서 개인적으로 찍는 동영상에 신경을 쓰셨다 . 거기서 나는 역시 유명한 작가는 다르구나! 라는 생각을 하지않을 수 없었다.
그냥 보통 사람이라면 신경안쓰고 넘어갈일을 김희재 작가님은 자기 자신이 말을 하다가 혹시 불쾌스러운 말이 다른 방송으로 나가면 뒷감당 일이나 , 만약 방송에 나가는 방송이라면 말조심을 해야 하고 , 말조심을 하다보면 우리에게 실감나는 강의를 할수없게될까 해서 물어 본것이라고 하셨다.
나는 이번 특강으로 인하여 , 그냥 의미없이 보던 영화도 한번쯤 더생각하며 이영화가 사람들에게 말하려는 목적이 머구나 라는 생각을 한번더 생각하게 되었고, 약 120분의 영화를 위해 작가는 몇달 몇일 몇날밤을 고생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 작가는 ꡒ힘들겠다ꡓ 라는 생각을 하였다 .
이번특강은 정말 재미있었고 , 궁금했던 김희재 작가님이라 더 좋았던것 같다 .
P.S 늦게 올려서 정말 죄송스러우며, 몇 몇 파일에 오류가 생겨서 다 올리지는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