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시23:1-6.
https://www.youtube.com/watch?v=0T88WgVmzxY 유기성
https://cafe.daum.net/rnjstlgur/9oZk/41 권시혁
시 23:1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언제부터인가 제 마음속에 예수를 믿게 될 때 우리에게 허락되어지는 행복에 대하여 말씀을 전할 부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몇 번 그런 설교를 하기도 했고 다른 교회 설교 요청으로도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라는 제목으로 설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주제에 대해서 좀 더 풍성하게 나눌 말씀이 있다는 것을 항상 부담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행복의 시작입니다. 라고 하는 이 제목으로 설교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번에 미국 집회 가는 동안 렌디 알콘 목사님이 쓰신 행복이라는 책, 우리 서점에도 있는 아주 두꺼운 책입니다.
그 책이 상당히 읽기가 부담되는 큰 두꺼운 책이지만, 평소에 하나님이 늘 저에게 부담을 주셨기 때문에 이번 여행 때 그걸 다 읽었습니다. 물론 렌디 알콘의 책을 고대로 제가 설교할 건 아니긴 하는 데 정말 그렇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행복에 대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 눈이 뜨여야 할 게 굉장히 많고 또 놀라운 진리가 그 가운데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성령집회 말씀 주제로 이 씨리즈를 하기로 마음에 정했습니다. 오늘 그 첫 번째 시간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 행복해집니다. 여러분 중에는 아니던데, 그런 분도 있을 거예요. 나 예수 믿었는데 안 행복해. 그런 분에 동의합니다. 저는 목사의 아들이었는데 목사의 집도 불행한 일이 많이 일어나더라고요. 단순히 예수 믿으면 행복해지는가?
그 점에 대해서는 아마 대부분이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 예수를 믿고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전도를 해야 해요? 안 해야 해요. 예수 그리스도 행복의 시작입니다. 말을 해야 합니까? 예수 믿어도 행복 안 됩니다. 라고 솔직히 고백해야 합니까? 이런 문제가 우리 안에 고민이 됩니다.
이 문제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전도의 문이 내 속에서 막혀 있는 것이지요. 도대체 예수를 믿으면 어떻게 행복해집니까? 그리고 진짜 예수 믿으면 행복해지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물론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누구나 다 행복해지게 됩니다. 행복해지게 됩니다. 우리가 아직은 구원의 때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조심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온 세상이 완전히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그런 때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 안에는 늘 끊임없이 고통스러운 일, 불행한 일이 일어납니다. 426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영접하면 그런 형편 속에서조차 말할 수 없는 행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놀라운 증인이 다윗입니다. 시편 23편에서 고백했던 이 고백, 여호와는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부족함이 없다는 그 고백이 행복입니다. 나는 부족함이 없어. 여러분 예수 믿으시고 이제 그런 마음이 되셨습니까? 몇 분은 그렇고 대부분은 아니신 것 같은데 금방 아멘이 안 되면 아닌 거요.
자! 이번 시리즈 설교의 목표는 이번 설교가 계속되는 중에 오늘부터라도 난 너무 행복해. 이런 고백이 나오게 됩니다. 다윗의 고백만 아니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우리도 다 똑같잖아요. 그 뒤가 같아야 됩니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까요? 아니 10년 믿어도 안 되었는데, 요 몇 주 들어서 될까요? 지난 30년을 믿어도 안 되는데 설교 3~40분 들었다고 되겠어요? 그래서 믿음의 도전을 해 봅니다. 하나님 말씀은 정말 진리니까.
다윗만 그럴까요? 다윗은 그랬는데 대부분 기독교인은 그럴 수 없을까요? 그럴 리가 없지요. 그렇다면 성경에 기록할 리도 없지요.
다윗이 그저 나는 그랬다는 것만으로 성경에 기록할 리가 없다는 거지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는 거지요.
그동안 우리가 이 내용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누리는 것 또한 아니었어요. 예수를 믿어도 나는 불행해요. 너무 고통스러워요. 이제는 말씀 앞에 정직하게 서 보는 겁니다.
하나님!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다 누려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누리고, 어떤 사람은 누리지 못하는 게 있을 수 없습니다. 특히 저도 이 말씀에서 예외가 될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저에게 이루어지게 해 주옵소서. 다윗의 고백이 내 고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 내가 예수를 믿어도 성경을 믿어도 어설프게 믿지 않게 해 주소서. 일부는 이루어져도, 일부는 이루어지지 않는 그런 수준에서 내가 예수 믿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내게 이루어지는 삶을 원합니다. 이것이 이번 시리즈 설교의 목표입니다.
저도 기도하겠지만, 여러분도 기도하고 이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윗의 처지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형편이 좋아서 이런 고백을 하는 게 아닙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다윗도 그렇게 고백했어요.
아마 이 자리에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왕이 자기를 죽이려고 쫓아다닙니다. 왕이 자기의 원수지간이 되었습니다.
자기는 왕을 두 번이나 살려주었지만, 사울은 자기를 죽이려고 끝까지 쫓아다닙니다. 이런 살벌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부족함이 없었어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다윗이 진짜 알았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이것이 다윗의 고백이었어요.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이것이 다윗의 고백입니다. 이점에 대해서 우리와 똑같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주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이 평생 나를 따르는 것에 대해서 예외가 있는 분! 한 사람도 없어요.
이미 우리 안에 주님이 오셔서 그 좋으신 주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늘 동행하고 계십니다. 오늘 여기까지 여러분을 인도하셨어요. 그러니 다윗의 고백이 우리 고백이 되어야 맞지요.
만약에 문제가 있다면 어디에 문제가 있는 건지? 이 말씀이 이루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이 엉뚱한 데서 행복을 찾지 않아야 합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나 환경이 행복하게 해 주는 게 아닙니다. 우리 안에 오신 예수님, 그분으로 충분합니다. 954
1%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이 믿어지는 순간에 우리는 다윗처럼 확 바뀌어집니다. 믿음이 달라지고,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하나님 기적의 주인공이 됩니다.
이번에 미국에 갔더니 미국이 참 살기 좋은 나라더라고요. 공기도 좋고 모든 게 풍족하고 정말 살기 좋은 나라더라고요. 왜 미국, 미국 하는지 가서 지내보면 아! 그렇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건 여행하는 제 생각이고 그곳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거기도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더라고요. 알레르기도 많고 미국에서 오래 살면 알레르기로 다 고생한다고 그래요.
그렇게 살기 좋은 것 같고 풍족할 것 같은 미국도 그렇게 불안해요. 그래서 교민들도 어지간히 총 하나는 가지고 있더라고요. 심지어 교회 올 때도 총을 차고 오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교회 안에 총 가지고 목사님 보호하는 분들도 계신다고 해요. 그러니 얼마나 무서워요? 혹시 오늘 예배에 총 가지고 오신 분계세요? 우리는 상상도 안 되는 일인데 총을 가지지 않고는 자기를 보호할 수 없는 나라라고 그럽니다.
그러니 겉으로 보기에는 풍족하고 다 좋아 보여도 속으로는 다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게 여행하는 사람하고 거기서 사는 사람하고 차이예요. 한국도 여행하면 살기 좋은 곳입니다. 여기서 살려니 고생인 거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속에 깨우침을 주셨어요. 그건 여행객과 그곳에 사는 사람의 차이가 아니고, 좋은 곳은 항상 작게 여겨지고 힘들고 어려운 것은 항상 크게 보인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분명히 미국과 한국은 부러울 만한 곳이에요. 와 보면 다 부러워할 만한 곳입니다. 우리 자신은 그렇게 못 느껴요. 너무 힘들기만 해요. 하나님 우리는 왜 이렇게 어려운 삶을 살아야 하나요? 우리 입에서 이런 탄식이 나와요.
여러분, 북한에 있는 우리 성도를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이번에 미국 갔을 때 여러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요청해 와서, 방송국에 가서 프로그램에 나가기도 하고 기자가 와서 인터뷰하기도 했는데 꼭 그런 질문을 하더라고요.
미국에 있는 우리 교포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참, 말 잘해야 합니다. 그때는, 하나님 어떤 말씀을 해 주기를 원하십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제 마음속에 아무리 살기 좋은 나라라도 여기서 고통스럽고 힘든 일 많으실 겁니다. 그런데 꼭 기억하셔야 해야 합니다.
북한에 우리와 똑같은 믿음을 가지고서라도 말할 수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지하교회 성도들이 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우리가 함께 서게 됩니다. 중국에서 고난당하는 성도, 북한에서 말할 수 없는 핍박으로 순교한 성도. 거기에 우리가 같이 서게 됩니다.
한국 성도, 미국 성도도 같이 서게 됩니다. 그때 부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한국 성도에게는 한국 성도의 기준, 미국 성도에게는 미국 성도의 기준, 북한의 성도에게는 북한 성도의 믿음은 북한 성도의 기준을 가지고 보시지 않을 것은 분명합니다. 한 가지 기준으로 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속에 너무 힘들어, 살기가 너무 힘들어. 그 자체가 죄입니다. 북한 교회 성도가 보기에 어떻게 느껴지겠어요. 아니 당신들이 힘들어요? 당신들이 죽겠어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와 말할 수 없는 복은 얼마나 적게 여기는지, 그리고 힘든 일, 고통스러운 일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도 너무 그것만 크게 보는 거지요.
어느 책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달이 있데요. 열두 달 중에 어느 달일 것 같아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달, 교회 오기 가장 싫어하는 달이 몇 월일 것 같나요?
5월이래요. 5월. 가정 부흥회를 했던 지난 5월을 가장 싫어한 데요. 어린이 주일은 자식이 없는 사람이 고통스러운 주일입니다. 어버이 주일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분들에게는 고통스러운 달입니다.
부부 주일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고통스러운 겁니다. 이혼한 사람도 고통스러운 달입니다. 그래서 5월 한 달은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그달은 가정의 달이니까.
한편으로는 그럴 만도 하지요. 가장 행복해야 할 그 오월. 겉으로는 가장 행복한 5월. 그런데 한 사람, 한 사람, 파고 들어가 보면 그 속에는 아픔도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잘 분별해야 합니다. 내게 있어서 고통스러운 것만 주목하니까, 축복의 달이 고통스러운 달이 됩니다. 우리가 그래요.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을 주목하고 행복해하지 않고 내게 없는 것, 내가 겪고 있는 어려운 일에만 온통 우리 마음과 생각이 거기에 가 있는 것입니다. 1621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주목해야 합니다. 다윗이 그렇게 기가 막히게 어려움 속에서도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했던 이유는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알게 될 때 그 상황에서 다윗은 부족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믿음의 눈이 우리에게 열려야 합니다. 여러분 만약에 아주 상류층, 중산층, 빈곤층이 있다면 여러분은 이 셋 중에 어디에 해당되십니까? 손들라고는 안 하겠어요. 그냥 마음으로 손드세요.
나는 상류층이지, 중산층이신 분, 손 들지는 마세요. 빈곤층이라고 생각하시는 분, 나는 너무 가난해, 너무 어려워. 그런 분들도 이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도넬란 메도스라는 환경 전문가가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100명이 사는 마을로 축소한다면, 80명은 적정수준 이하에 살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집이 없다는 겁니다. 전 지구상에 80명이
모든 인구를 100명이라고 한다면 80명이 적절하게 잠을 잔다거나 집이 없다는 거요. 70명은 문맹입니다. 글자를 읽을 수 없어요. 50명은 영양부족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거의 먹지 못해서.
한 명은 지금 거의 죽어가고 있어요. 한 명이 대학 교육을 받았습니다. 한 명이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어요. 은행에 예금이 있고, 지갑에 얼마라도 돈이 조금 들어 있고, 집안 어디에 잔돈이 굴러다니고 있는 사람은 그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8명 안에 드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집에 동전 굴러다니고 있나요? 그러면 8명 안에 들어가는 부자예요. 자가용을 소유한 사람은 7명 안에 드는 사람. 냉장고에 먹을 게 있고 몸에 옷을 걸쳐서 머리 위에는 지붕이 있어서 잠잘 곳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의 75%의 사람보다 풍요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만약에 고통 체포 고문, 나아가서 죽음에 대한 공포 없이 매주 교회를 다닐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세계 인구의 최상류층 사람입니다. 제가 보기에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상류층이에요.
우리나라에서 우리끼리 비교하고 사니까, 아유 나는 빈곤층인가 봐, 중산층인가 봐. 그러나 전 세계에 있는 사람을 다 통틀어놓고 보면 우리는 정말 몇 안 되는 사람에 들어갑니다.
아마 이 이야기를 듣고 그래. 나는 상류층이야. 그럴 사람은 기대를 안 해요. 그렇다는 것만 말씀드리지요.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확 바뀌어서 아, 나는 정말 전 세계 인구에 비하면 나는 정말 잘 사는구나. 이렇게까지 팍 마음이 바뀔 거라고는 생각 안 합니다.
그런데 알기는 바로 알아야 해요. 우리가 얼마나 없는 것에 대해서 주목하고 살았는지, 있는 것에 대해서 너무 작게 생각하는 거요.
김화중 장로님 우리 교회 와서 집회하실 때 그분이 하셨던 말씀 중에 마음에 아주 오래 남는 게 있습니다. 그분은 중국 최장수 대사를 지냈고, 장관도 지냈고, 대통령 보좌관도 했고, 외교관으로, 공무원으로서 최고의 위치까지 올라갔었지요.
그런데 자기가 장관 총리 돈 많은 사람, 명예가 높은 사람, 다 만나봤는데 그런 사람에게는 특징이 있더라는 겁니다.
소위 말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최상류층 사람입니다. 그들은 자기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 돈을 갖기 위해서 얼마나 불안해하는지? 불안해한다는 겁니다. 자기의 위치를 지키고 자기의 경제적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겉만 번지르르하지, 마음에는 근심과 걱정이 가득하고, 그들 대부분은 마음이 강퍅하고 아랫사람에 대해서 교만하고 함부로 아랫사람들을 대하고 욕하고 비판한다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통해서 돈을 벌 수 있나, 지위가 높아질 수 있나? 저 사람을 만나면 내가 더 승진할 수 있나? 권력을 가질 수 있나? 그 생각만 하면서 사람을 본다는 겁니다.
맨날 학교 타령만 한답니다. 좋은 학교 나오는 것만, 같은 학교 출신하고만 어울리려고 하고, 대부분 이기주의자고 자기 이익 출세에만 신경 쓰고 있고, 나라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 없이. 위치는 나라의 지도자지만, 나라보다는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더라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인격 네트워크를 잘 맺어서, 좋은 차 타고, 비서가 있는 사무실을 계속 쓰고, 공금으로 좋은 음식을 계속 먹고. 그 생각만 하지 남을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2315
좋은 아파트, 좋은 차, 좋은 음식만 이야기하고 머릿속에는 항상 시기 질투 불안 근심이 가득하고 그렇더라는 거요. 자기가 만나보니까. 아주 최고의 위치에 있는 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렇더라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 실상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불행한 느낌, 이게 어디서부터 온 건지를 잘 알 필요가 있어요. 나는 제대로 눈이 뜨인 사람인지? 감사할 것은 감사하고, 기뻐할 것은 기뻐하고 나는 그런 정상적인 마음이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해요.
사람들은 다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어디서 행복이 오는지를 몰라요. 행복을 줄 수 없는 곳에 끊임없이 매달려요. 행복을 줄 수 없는 곳에 매달리니까 항상 두렵고 불안하고 근심되고 욕심 되고, 다른 사람은 눈곱만큼도 생각 안 하고, 끊임없이 나만 생각하고 그렇게 사는 거요. 여러분 사람에게서 소유에서 또는 지위에서 행복이 오는 게 아닙니다. 행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거요. 우리는 그 예수님을 영접했잖아요.
여러분 최고의 결혼 준비는 배우자를 잘 만나는 것 아닙니다. 좋은 사람 만나고도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들 많습니다. 좋은 사람 만나고도. 자기가 행복하지 않으니까, 결혼해서 행복하려는 사람은 다 불행한 생활을 합니다. 왜냐하면 결혼이 행복을 주는 게 아닌데 결혼해서 행복하기를 기대했으니, 그 결혼생활이 얼마나 어렵겠어요.
행복한 결혼은 결혼하기 전에 이미 행복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행복한 사람을 만나서 결혼해야 비로소 행복한 결혼을 하는 거요.
자! 결혼하기 전에 어떻게 행복하지요? 결혼하기 전에 있는 청년들 진짜 고민일 거예요. 지금 내가 불행해서 결혼하려는 건데 결혼하기 전에 행복 하라니.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남편이 행복하게 해 주는 것 아닙니다. 이미 자매들은 다 알아요. 아내가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한다는 것 형제들도 이미 다 압니다. 결혼하기 전 사람만 몰라요. 그러니 이제 정신 차려야 해요.
예수 그리스도로 이미 행복한 사람이 결혼하면 행복한 가정생활을 해 나가게 돼요. 내 마음에 누리는 이 행복을 배우자에게 흘려보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실 분이 그리스도라고 요4:1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기 내가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말씀이 예수 믿는 사람에게 그대로 다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에게 나도 예수 믿었는데 내 속에서 목마르지 않은 샘물로 주님이 역사하지 않으신다면 이 말씀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이제는 초점을 정확하게 둬야 해요. 초점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야 합니다. 이번에 미국 집회 일정 중에 많은 목사님들을 만났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불행한 상태에 계시더라고요. 목사님들인데도.
이유는 목회가 어려워요. 교회가 성장하지 않고 교인은 없고, 그래서 많은 목사님들이 행복하지 않아요. 제가 그 목사님들에게 드렸던 말씀은 하나입니다. 이제는 목회를 보지 마시고 교회를 보지 마시고, 예수님을 보시라고.
목사님들이니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목사님들도 그렇게 설교를 수십 번 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게 안 되면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가 부흥할까? 어떻게 하면 우리 교인이 많이 늘어날 수 있을까?
그러면 그 목사님은 교인이 늘어나도, 안 늘어나도 거기서 너무너무 불행해져요. 왜? 거기서 행복이 오는 게 아니니까.
목사님!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주님을 바라보세요. 주님만이 목사님을 구원하시고, 목사님의 목회를 구원하시고 목사님 삶 전체를 기쁨으로 감사로 채우십니다. 2824
그러고 난 다음에 목사님의 목회가 잘 되는 거요. 행복한 목회자가 목회하니까 행복한 목회가 되는 거지요. 목회가 잘 돼서 행복해지려고 하니까 어려워지는 거예요.
여러분, 예배를 드리고 집회 참석하고 다 은혜받기를 사모하잖아요. 그런데 예배드릴 때마다, 집회 참석할 때마다 다 은혜받으시나요? 그런 때도 있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은 은혜가 안 돼요. 예배를 드려도 은혜가 안 되고, 집회에 참석해도 별로 은혜를 못 받고 이런 일이 왜 생길까요?
여러분! 예배드릴 때마다 또는 무슨 집회에 참석해서든지 항상 은혜받는 비결을 가르쳐 드릴까요? 정말 하시겠습니까? 순종하시겠습니까? 정말 예배드릴 때마다 집회 참석할 때마다 은혜를 받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이 예배드리러 갈 때, 또는 집회를 갈 때 항상 예수님 이름으로 가시는 거요. 주님이 약속하셨어요.
마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두세 사람만이라도 예수님 이름으로 모이면 내가 그들과 함께 있느니라.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예배드리러 갈 때 설교자의 이름으로 가요. 오늘 누가 설교하신대. 설교자의 이름으로 가요.
또는 교회 이름으로 가요. 나도 잘 알아. 그 교회 크고 은혜로운 교회래. 여러분 오늘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셨나요? 아니면 유기성 목사의 설교를 들으러 오셨나요? 이제부터 여기에 대해서 정직하게 반응하셔야 해요.
여러분이 어떤 목사님을 바라보고, 또는 부모님이 그 교회 다니니까, 부모님의 이름으로 그 교회 담임목사 이름으로 그 교회 이름으로.
친구가 나를 데려갔으니까 친구의 이름으로, 장로라는 이름으로, 권사 집사라는 이름으로 여러분이 그렇게 예배 참석하고 집회 참석해서 설교하시는 분이 내게 은혜 주시기를 그렇게 사모하면, 여러분은 은혜받을 수도 있고 못 받을 수도 있어요. 아마 은혜 못 받는 시간이 더 많을 거예요.
저는 여러분들과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은혜는 설교자가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은혜롭게 설교하시는 분, 그런 분을 초청하고 싶었고, 그런 목사님 설교하는 곳에 가서 은혜받기를 사모했습니다.
그럴수록 항상 더 실망이 커요.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면 오늘 설교자가 문제가 아니에요. 어느 목사님의 이름으로 가는 것도 아니에요. 나는 예수님 만나러 가는 거예요. 나는 예수님을 찬양하려고 갑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 보세요. 주일이 또 오지요. 선한목자교회 이름으로 오지 마시고, 유기성 목사 이름으로도 오지 마시고, 설교자의 이름으로도 오지 마시고, 또는 장로 권사 집사의 이름으로 오지 마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는 거요.
나는 예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기 위해서 갑니다. 오직 그 외에 다른 이름이 없어요. 그러면 반드시 그 예배 때, 주님이 주시는 은혜가 반드시 있어요. 3247
어느 예배도 은혜가 없는 예배가 없어요. 내 초점이 주님께 있지 않고 딴 쪽에 있으니 은혜를 못 받는 겁니다. 주시는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겁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예수님을 초점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오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지금 이 시간에 여러분의 초점을 바꾸세요.
행복은 환경과 사람이 주는 게 아닙니다. 지금 이 집회 분위기나 설교하는 유기성 목사가 은혜 주는 게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바로 주님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시고, 깨우치시고, 여러분을 변화시키시고, 씻으시고 치료하시고, 새롭게 하세요.
그러니까 이제부터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시기를 바랍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내 마음속에 왜 나만 이런 어려움을 겪는 거야? 여러분이 그렇게 하지 마세요.
롬 8:35~3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6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3449
환경과 여건이 비록 나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그런 처지에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람에서 내 마음의 심령을 끊어버릴 수 없다는 겁니다. 오늘 여러분이 정말 예수님 믿으면 정말 행복해지는가?
예수님을 진짜 믿어야 돼요. 사마리아 여인, 수가성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 만나고 말할 수 없이 행복해졌어요.
삭개오. 돈밖에 모르던 삭개오. 예수님 만나고 말할 수 없이 행복해졌어요. 돈, 다른 사람에게 다 나눠줬어요.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게 가능할까요? 예수님 안에서 완전한 행복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솔직하게 자기에게 물었다고 하시더라고요. “나는 행복한가?” 그런데 참 고통스럽게도, 행복하지 않다고밖에 고백할 수 없더래요. 그동안 그렇게 설교했지만, 진지하게 자신을 점검해 보지 않은 거예요. 왜 그런가?
나는 목산데 예수를 믿는 정도가 아니고 목산데, 왜 나는 행복하지 않는가? 그 목사님이 내린 결론은 너무 목회에만 바쁘게 지내느라고 정작 예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했다는 겁니다.
아주 목회를 성실히 하는 목사예요. 그런데 그러니까 목회도 잘 돼요. 교회도 부흥되고, 정작 목사님 자신은 행복하지 않은 거요. 예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고 나면 어떤 형편에서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요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이게 우리 주님의 부름이에요. 예수님 안에서 정말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여러분을 오늘 주님이 부르시는 거예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12년 전이지요. 2010년 10월 9일 국민일보에 실린 기사입니다. 울산에 있는 어느 영어학원을 하는 교인 집에 어떤 분이 상담을 하겠다고 저녁에 약속하고 왔어요.
그분과 상담하려고 하는데 애들은 다 갔고, 그분과 둘이 있는데 강도로 돌변한 겁니다. 품에서 칼을 꺼내서 얼굴에 상처까지 내면서 위협하면서 돈을 내놓으라는 겁니다.
얼마나 당황하고 놀랐는지, 그 순간에 당신 왜 그러느냐? 자꾸 말로 달랬습니다. 그래서 앉자. 서서 이러지 말고 앉자. 얼굴에는 피가 흐르지만, 앉았어요. 그러면서 당신 이렇게 살면 안 된다. 지금 강도당하는 심정에서 이런 말이 나오기 쉽지 않는데 당신 정말 망하고 죽을 길로 가느냐?
당신 이게 정말 필요한 것이 있다. 그 앞에 있는 성경책을 보여주면서 이 성경에 당신을 향한 완전한 구원이 있다. 당신이 강도짓을 해서 당신 오래 못 견딘다.
그랬더니 강도가 칼을 슬며시 내려놓으면서 자기도 옛날에 교회를 다녔었노라고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아내와 이혼하고 경제적으로 말할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하고 그래서 자기가 이렇게 강도짓을 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면서 울먹이더래요.
그러면서 칼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고 나를 용서해 달라.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내가 이렇게 들어왔는데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정말 잘못했다. 이제야 정신이 차려진다. 내가 너무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 같다. 빨리 경찰에 연락해서 나를 잡아가게 해 달라.
나는 경찰에게 연락 안 하겠다. 조용히 가고, 반드시 예수를 믿어라. 아니다. 나는 벌을 받아야 된다. 그러면서 자기가 전화를 뺏어서 신고해 가지고 경찰이 왔어요.
경찰이 와서 보니 영 이상한 광경입니다. 강도로 들어온 사람이 돌변해서 경찰이 잡으로 온 거예요.
출동한 경찰이 지금까지 경찰 생활을 했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 본다고 두 사람의 말이 거짓이 없는 것 같고, 진실해서 불구속으로 사건을 처리하겠다고 사건이 기사로 실렸어요. 4010
여러분, 이 학원 원장이었던 집사님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지요. 그 속에서 정말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못 하는 겁니다.
그냥 예수 믿었다고 이렇게 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라. 예수님 안에 거하라. 나도 네 안에 거하리라. 이 말씀이 실제로 이루어진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어요.
상황이 우리 안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정말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게 되어지는, 실제가 되는 순간에 우리 반응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정말 간증이 있는 삶이 되는 거지요.
그래서 저는 중요한 시간에 제가 원하는 것은 주님 안에 시간을 갖는 겁니다. 이렇게 예배 나오기 전에 주님 안에 거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 안에 거하는 생활입니까?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도 있어요.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뭘 어떻게 해요? 앉아 있는 거지. 여러분 다 앉아계시지요. 저는 이렇게 서 있고, 앉아 있는 게 얼마나 편해요?
주님 안에 있는 것이 그렇게 하는 거요. 예수님 주님 안에 거합니다. 나를 완전히 맡기는 겁니다. 내 형편과 처지 문제 다 주님 앞에 맡기는 겁니다. 내 문제 그대로 가지고 주님 앞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주님 앞에 앉아 있습니다.
그냥 앉아 있기가 심심하면 나는 죽었습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내 생명입니다. 주님 내 안에 계신 게 너무 감사합니다.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니까, 주님이 내 안에 계신 게 너무나 분명하니까. 그렇지 않으면 주님 앞에 나오지도 않지요.
제 안에 계심을 너무나 감사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찬양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평생 찬양하고 싶습니다. 그런 고백을 하는 거요. 그러면 참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어디서 그런 평강이 오는지? 담대함이 오는 건지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오는지, 어디서 그런 사랑이 부어지는지? 평강 위에 서는 거요.
여러분, 이 자리에 서는 게 보통 담력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은 나와 보세요. 여기 한번 서 보세요. 무슨 말이든지 해 보세요. 주님께서 이렇게 설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거예요.
주님 안에 거하는 것, 그 힘이 여러분의 가정생활, 여러분의 일터에서 만날 때 다 필요합니다. 목사에게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 우리가 어떤 형편에서도 행복한 길로 나가는 길이예요. 여러분이 정말 예수님 안에 거하기를 원한다면 주님 안에 거하기를 힘쓰고 그때 주님이 주시는 음성으로 반응하는 겁니다.
2009년에 금융 위기가 한국에 왔습니다. 저희 교회는 그런 어려움이 오면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건축비 부채가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2009년 부채가, 금융 위기 때 부채가 214억이었습니다.
그때는 원금 갚는 것은 전혀 생각도 못 하고 이자 갚는 것만 급급히 생각할 정도로 어려운 때였어요. 그런데 2008년 추수 감사 헌금이 교회 예산보다 많이 적어졌어요. 경제적 어려움이 막 오니까, 교인들도 헌금할 힘이 적어진 거지요.
그때 내 마음속에 두려움이 몰려오더라고요. 또 이 교회 부채를 갚아가고 원금도 갚는 게 쉽지 않은데 재정이 줄기 시작하면 이게 정말 교회로서는 파국인 거지요. 얼마나 마음이 두려운지! 2009년 우리 교회 건축헌금은 어떻게 하나? 그때 17년째 건축헌금을 하고 있었어요. 교인들도 보통 아니지요. 17년간 건축헌금을 해요.
그런데 2009년 건축헌금을 하자. 벌써 지난번 추수 감사 헌금이 목표에 미달합니다. 이거 어떻게 하나? 제가 생각해도 교인들도 끔찍할 것 같아요. 경제 위기는 왔지요. 헌금은 해야지요. 예수 믿는 게 어떻게 기쁨이 와요? 그때 하나님께 정말 맡기는 기도를 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너무나 근심과 걱정과 염려가 내 마음속에 꽉 차 있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주님 안에 거하는 거요. 그냥 앉아 있는 거요. 주님께서 내 안에 거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저는 방법이 없습니다. 길이 없습니다. 교인들에게 또 헌금하자고 해야 될지 내가 난감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제게 주셨던 말씀이 있어요. 주님 안에 거하기만 하니까, 나는 죽었다고 고백하니까, 헌금이 기쁜 사람만 하면 된다는 거요. 왜? 헌금이 힘든 사람에게 헌금하라고 하느냐? 헌금이 부담되는 사람에게 왜 헌금하라고 하느냐? 하나님은 그런 헌금 안 받는다는 거예요.
부담스럽게 내는 헌금. 억지로 내는 헌금. 하나님은 그거 기쁘지 않아요. 헌금할 때 기쁘게 내는 사람. 하나님 아시잖아요. 지금 헌금할 때 기쁨으로 내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그래도 하나님은 그 사람의 헌금으로만 내가 이 교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제 마음속에 갑자기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렇구나. 몇 사람이 헌금하더라도 기쁨으로 헌금하는 사람의 헌금으로 이 교회 부채가 해결되겠구나. 하나님이 하신다면 하시지.
그래서 장로님들에게 우리 건축헌금 전 교인에게 하자고 하는 것 이제 끝입니다. 헌금하고 싶은 사람만 하십시오. 그것도 기쁨으로만 헌금할 수 있는 사람. 그렇지 않으면 헌금 안 하셔도 됩니다. 4646
그래서 헌금하는 주일을 2009년 2월 22일 주일 저녁에 헌금이 기쁜 사람만 오십시오. 그때 우리 장로님들도 여기 계시지만, 몇 사람이나 오겠나? 한 300명쯤 오겠나? 300명쯤 생각하고 모였는데 천 명이 넘게 왔어요.
그때 헌금이 80억 원 이상 작정되었어요. 이 건축헌금, 본당 건축할 때 헌금이 32억이었습니다. 그날 80억 원이 작정 되었어요. 그때부터 원금이 갚아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이렇게 온 거요. 때때로 정말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임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그때 꼭 기억하셔야 해요. 우리 주님은 어떤 처지와 형편 속에서도 다윗도 그랬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 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는 눈만 뜨이면,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주목하고 하나님이 온전히 함께하심을 주목하기만 하면 그다음에는 평강 주시고 믿음 주시고 담대함 주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을 갈망하셔야 해요. 여러분이 앞으로 집회를 오거나 예배드릴 때도 설교자를 주목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에게 은혜 줄 분은 설교자가 아니에요. 예수님이십니다.
미국 LA가면 church on the way 도상의 교회가 있습니다. 그 목사님이 그 교회를 개척할 때 그 교회가 너무너무 안 됐어요. 그런데 그 옆에 아주 큰 교회가 있었습니다. 제일 침례교회. 그 교회는 그 교회 들어가는 입구가 네 군데 신호등이 있을 정도로 교인이 많은 교회입니다. 4917
그 목사님이 그 교회를 개척하고 그 큰 교회를 바라보고 마음에 힘들었어요. 하나님 어째서 이렇게 차이가 납니까?
저 교회는 교인이 많이 가고 우리 교회는 교인이 없고, 100명도 안 되는 그런 조그만 교회. 그런데 어느 날 기도 중에 너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네 교회만 부흥되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야.
모든 교회가 다 부흥되어 이루어지는 거야. 그렇습니다. 하나님 모든 교회가 다 부흥되어야지요. 그런데 왜 너는 그 교회가 부흥된 거에 대해서 그렇게 속상해하냐? 그때 헤이포드 목사님이 마음에 내가 그동안 너무 잘못 생각하고 있구나. 깨달았어요. 5014
그리고 그가 진심으로 그때부터 제일 침례교회를 축복하기 시작합니다. 차를 타고 그 옆을 지나갈 때 교인들이 그 옆을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기뻐지기 시작했어요. 저렇게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그 교회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감사하고, 더 부흥되게 해 달라고 축복하고, 그렇게 교인이 많은 것을 그렇게 기뻐하고 목사님 마음이 완전히 바뀌기 시작하니까, 쳐치 온더 웨이 그 교회가 교인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100명도 다 차지 않았어요. 토요일이면 전도 대상자 그 이름을 종이에 써서 하나님 앞에 올려놓고 이 사람들이 이 의자에 와서 예배드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렇게 기도했는데 어느 날 100명이 다 찼더래요.
그래서 200명의 좌석을 깔아놓고 그렇게 기도했는데 어느 날 200명이 다 차더래요. 그렇게 해서 수천 명까지 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일 침례교회가 너무너무 부흥되어서 더 큰 예배당을 짓고 이전하게 된다고 이 예배당을 매물로 내놓았어요. 도상교회가 그 교회를 인수해서 들어가게 된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동안 어디를 축복한 거예요? 자기 교회를 축복한 거예요. 생각이 확 바뀌고 나니까, 이 교회도 하나님의 교회지. 이 교회 부흥되는 것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지. 행복한 사람은 생각이 달라요.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세요.
그렇게 축복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 예배당이 자기 교회가 되었어요. 주께서 자기 생각과 마음을 주장하셨어요.
여러분 한해 생각을 완전히 바꾸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괴롭다. 너무 불행해. 주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생각이면 주님이 완전히 바꿔주시기를. 그리고 여러분이 누리고 있는 은혜 그중에서 제일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주님에 대해서 눈이 열리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살아계신 주 찬양하고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 주 예수님 이름으로 여러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생각과 감정들을 이 시간에 다 내어 쫓기를 바랍니다. 나는 불행하다. 나는 무엇이 없다. 나는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가운데 산다. 나만 외롭다. 나만 불쌍하다. 우리 주님과 어울리지 않는 생각, 주님이 주시지 않는 생각. 이 시간에 예수님 이름으로 담대하게 내쫓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붙잡고 있으니 여러분 속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분별해서 저주하고 내쫓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여 부르짖고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할렐루야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 저주스러운 마음, 불행한 마음, 그런 생각들 이 시간 예수의 이름으로 떠나갈지어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주의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불행한 생각 미움 원망 질투, 부정한 생각, 죽고 싶은 생각들 다 떠나가게 해 주시옵소서.
주의 영으로 역사하시고, 성령으로 함께 하셔서 그동안 힘들고 어려웠던 일, 하나님 앞에서 붙잡았던 생각, 우울한 생각, 원망하는 생각, 하나님이여 이기게 도와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풀어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안에서 마음의 심령에 그림자를 거두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빛으로 임하소서. 빛으로 임하소서. 빛으로 임하소서. 우리의 마음과 심령을 완전히 사로잡으시고 고치시기를 원합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놀라우신 주여, 감사합니다. 역사하시고 주관하시고, 함께해 주소서.
이 시간에 예수님 안에 거하시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제가 그냥 있겠습니다. 내 안에 있으라 하셨으니, 내 안에 죽음을 고백하고 예수님 내 생명이신 것만 고백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찬송하며 그저 주님 안에만 있겠습니다. 주여! 역사하여 주옵소서.
주님 받아주옵소서. 주님 부르짖고 기도합시다. 주여! 놀라우신 하나님, 다윗에게 허락하신 것처럼, 온전히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 함께 하심을 청원합니다. 주님 함께 하심을 청원합니다. 주님 함께 하심을 청원합니다.
주님 한 분이시면 충분합니다. 오직 주님 안에만 거합니다. 주님 안에 있기만을 원합니다. 놀라우신 하나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함께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 찬양합니다. 주님만 믿습니다. 주님만 의지합니다. 주님만 주목합니다. 누리게 하시는 주님. 평안 주시는 주님, 기쁨 주시는 주님. 주님만 바라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 주님만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안에만 거하게 하시고, 주님 살려주시고,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로 구원해 주시고, 주님의 이름으로 풀어주시고 하나님 섬기는 힘을 더하시고, 주의 권능으로 도우시고, 하나님 능력으로 보호하소서.
주님 역사로 함께하시고 주님 은혜로 나가게 하옵소서. 주님 나를 사로잡아 주시기를 원합니다. 놀라우신 하나님!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시는 하나님, 축복하시는 하나님, 기쁨으로 함께하여주심을 감사합니다.
오 주님 찬양합니다. 안수기도 받으실 분은 내려오셔서 안수기도 받으시고, 여러분의 심령이 불행에서 행복으로 완전히 바꿔지기를 원하시는 분들, 강단 위로 올라오셔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합심해서 기도할 제목은 행복한 성도가 되게 해 주시고,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하는 성도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내 안에서 생수의 강이 터져 나오게 해 주시옵소서. 주여! 세 번 부르짖고 기도합시다. 주여! 주여! 주여!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 하나님 찬양합니다. 찬양합니다. 은혜를 더하여 주시는 하나님 찬양합니다. 오늘도 하나님 사랑하는 성도들. 하나님 행복한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행복하게 하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행복을 주 예수 안에서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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