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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머리말 II. 삼척의 역사 및 위치 III. 설화부문 (1)내력담(유래담) (2)지명담 (3)점복. 풍수담 (4)장수담 (5)효열담 (6)동물담 (7)인과응보담 (8) 기타
IV. 민요부문 (1)아라리 (2)메나리 (3)회다지 노래 (4)난봉가 (5)어랑타령 (6)뱃노래 (7)베틀가 (8)자장가 (9)시집살이요 (10)농부가 (11)상여소리 (12)청춘가 (13)노래가락 (14)잡가 (15)사설 (16)기타
V. 민속부문 (1)민간신앙 (2)관혼상제 (3)세시풍속 (4)의식주
VI. 방언부문 (1)연구목적 (2)방언 어휘 자료 (3)자음의 음운현상 (4)모음의 음운현상
VII. 문헌지명부문 (1)문헌 (2)지명 (3)기타 |
I. 머 리 말
우리 국어국문학과가 매년마다 펼치는 학과의 행사인 ‘학술답사’가 13회째를 맞았다. 그간 강원도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생생한 현장자료를 채록하여 민족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또 학문연구의 자료로 제공한 공이 크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다.
금번의 보고서는 삼척지역을 조사하여 이루어낸 성과이다. 하나라도 빠질세라 발품을 바쁘게 팔았지만 지나고 나면 역시 아쉬움이 남는다. 빠진 것은 또 지속적으로 보충할 것이다.
95년도의 답사일정과 반별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o 기간 : 1995년 8월 30일(수) - 9월 2일(토)까지
o 장소 : 삼척군 일대
o 반별 구성
* 방언반 : 최윤현, 남기탁
최홍렬, 임두정
2학년 :최순영 강지은 김영숙 진은정 이종숙 박희균 문지성 원경선
김유영
3학년 :이호성 안상태 김경숙 정미영 김현임 이수만
* 설화반 : 최웅, 김용구
김동현, 김복순
2학년 :이효숙 최득영 전남재 김인정 이연정
3학년 :최덕영 전연숙 정민영 홍영진 이현진 전유순 조오연 신현희
한송이 최승진
4학년 :전광표
* 민요반 : 김훈,정금철,유태수
이대범,허준구,허금녕,
2학년 :이영수 문숙원 강현주 황숙희 김금숙 이은정
3학년 :이광형 이승환 최홍식 구성호 이정아 김혜경 이한영
* 민속반 : 전상국,김의숙
정윤수,이광진,김효진,
2학년 :유기숙 박혜진 최지연 유은정 김민호 김종월
3학년 :윤석기 신윤희 반지영 정태영 염수희 채은주 한상현 최정연
* 문지반 : 손주일, 이경수
정성미,조성준,북산
2학년 :박탄 김정아 이창수 민연숙 이미영 박미영
3학년 :신기현 김은주 김은숙 홍종석 최성희 성혜영 고은경 김은하
II. 삼척군 역사 및 위치
삼척시에서 선사시대의 유물이나 유적이 발견된 바는 없다. 삼한시대에 이곳에는 진한의 실직국(悉直國) 또는 실직곡국(悉直谷國)이 자리했는데, 102년(파사왕 23) 신라에 병함됨으로써 일찍부터 신라의 영향 아래에 들어갔다. 468년(장수왕56) 장수왕의 남하정책으로 일시 고구려의 영토가 되기도 하였으나, 505년(지증왕6) 이사부가 다시 회복하여 실직주가 설치되고 이사부가 군주로 파견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삼척군으로 개칭되어 태수가 파견되었으며 죽령(竹嶺), 만경(滿卿), 우계(羽溪), 해리(海利) 등 4개의 현을 영현으로 두었다.
고려 995년(성종 14) 지방관제가 개편되어 전국이 10도로 나누어지면서 삼척군은 척주(陟州)로 승격되어 단련사가 파견되고 삭방도(朔方道)에 편입되었다.
1018년(현종 9) 지방제도가 다시 5도 양계로 개편되자 동계 소속의 삼척현으로 강등되는데, 이때 속현이던 우계현도 강릉부고 넘어갔다. 충렬왕 때는 이승휴(李承休)에 의하여 관동팔경의 하나인 죽서루(竹西樓)가 지금의 남양동에 세워졌으며, 조선 숙종으 어제시(御製詩)를 비롯한 많은 명사들의 시가 이곳에 남아 있다. 1373년(공민왕22) 현령 대신 안집중낭장(安集中郎將)이 파견되다가 1377(우왕 3) 지군사(知郡事)로 승격되었으며 별호를 진주(眞珠)라 하였다.
조선조에 가서 삼척현은 이태조의 5대조인 목조(穆祖)의 외향(外鄕)이었던 까닭으로 1393년(태조 2) 부로 승격되어 부사가 파견되었다. 1398년 지금의 교동에 향교가 세워지고, 1413년(태종 13) 다시 도호부로 승격되면서 인구가 불어나기 시작한 삼척은 <세종실록>지리지 편찬 당시 강원도내 4대 도호부 중 인구가 가장 많았다. 1731년(인조9) 부사 이준(李埈)이 삼척도호부의 관내를 부내(府內), 매곡(邁谷), 노곡(蘆谷), 덕번(德蕃), 북평(北坪), 박곡(璞谷), 미로(眉老), 소달(疏達), 장생(長生)의 9개리로 나누었는데, 읍성을 중심으로 동쪽을 부내, 서쪽을 매곡이라 한 것이 현재 삼척시를 이루고 있는 지역이었다. 1660년(현종1) 부사 허목(許穆)이 매곡을 말곡으로 고쳤다가 다시 매곡이라 하였다. 허목이 부사로 있을 당시 삼척은 조서간만의 차가 격심한 해파(海波)로 조수가 읍내까지 올라오는가 하면, 여름에는 홍수로 삼척의 오십천이 범람하여 피해가 극심하였는데, 허목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를 세우니 재해가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이 비는 현재도 정상동에 남아 있다. <여지도서 (與地圖書)>에 의하면 1759년(영조35) 당시 삼척도호부는 부내, 노곡, 근덕(近德), 원덕(遠德), 매곡, 미로(未老), 소달(所達), 상장성(上長省), 하장성(下長省), 견박곡(見朴谷), 도상(道上), 도하(道下)의 12개면 3985호 1만 8102인을 관할하였던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현재의 삼척시인 부내면과 매곡면은 934호 3,802인이었다. 1840년(헌종 6) 매곡면은 말곡면으로 고쳐졌다.
1895년(고종 32) 전국이 23개부로 나뉠 때 강원도지역에는 춘천, 강릉의 2개부가 생기면서 삼척도호부는 강릉부 관할의 군으로 편제되었다. 1896년 전국이 다시 13도로 편제되자 강원도관할로 바뀌게 되었다. 1914년 군면통폐합시에 부내면, 말곡면이 통합되어 부내면으로 불리면서 현재 삼척시와 동일한 행정구역이 결정되었는데, 부내면은 1917년 삼척면으로 개칭되었다. 3.1운동 당시 삼척에서는 삼척보통학교 학생들의 시위가 두드러졌다. 김기덕(金基德)교사의 지원으로 176명의 학생이 참여하였던 만세운동은 이웃 북삼면(北三面:지금의 동해시 용정동)의 송정보통학교 만세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1938년 삼척면은 읍으로 승격되어 성내리에 읍사무소를 두고 27개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6.25사변 때 삼척지역을 지키기 위하여 싸우다 죽은 전몰장병과 경찰청년은 모두 1,552명에 이를 정도로 삼척은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들 호국영령을 위로하기 위한 충혼탑이 1966년 5월 지금의 남양동 황산(皇山) 꼭대기에 세워져서 매년 6월 6일 현충일에 합동위령제가 거행되고 있다. 1986년 1월 삼척읍이 시로 승격되었다.
III. 설화(說話)부문
1. 제보자 : | 1) 김영민(64세), 삼척시 근덕면 덕산1리 | |||
| 2) 민병관(71세), 삼척시 원덕읍 | |||
| 3) 우재홍(82세), 삼척시 근덕면 용화2리 | |||
| 4) 염연선(68세), 삼척시 근덕면 용화2리 | |||
| 5) 이강호(78세), 삼척시 원덕읍 기곡리1반 | |||
| 6) 이복순(70세), 삼척시 근덕면 덕산2리 | |||
| 7) 이용진(75세), 삼척시 원덕읍 갈남2리 | |||
| 8) 이친교(67세), 삼척시 근덕면 재동리(교가2리) | |||
| 9) 장헌경(73세), 삼척시 원덕읍 호산3 | |||
| 10) 최경자(66세),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 | |||
| 11) 홍표연(67세), 삼척시 원덕읍 호산2리 2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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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용분류 : | (1) 내력담(유래담) - | ① 묘정비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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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공양왕릉의 유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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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동해 척추비 (퇴조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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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④ 금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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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⑤ 소공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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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⑥ 해신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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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명담 - | ① 산양팔경(용암에 얽힌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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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용굴, 바닷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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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지도바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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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④ 최씨장군과 떡(덕)봉산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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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⑤ 근덕의 지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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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⑥ 애바위 전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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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⑦ 용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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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⑧ 말구리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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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⑨ 봉잠=조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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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⑩ 해망산(삼형제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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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⑪ 해신당(해성황당), 애바위전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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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⑫ 해망산의 부용설화(삼형제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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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⑬ 마천폭포=이천폭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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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⑭ 산양팔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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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⑮ 노고집뒤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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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점복, 풍수담 - | ① 큰할머니, 작은할머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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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여울 성황에 얽힌 얘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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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맹방 해수욕장 묘지 얘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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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④ 근덕의 지형-나비형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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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장수담 - | ① 최씨네 아기 장수 설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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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아기 장수 설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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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효열담 - | ① 열녀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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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이천리 김씨부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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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강릉 김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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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④ 잉어 각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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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동물담 - | ① 호랑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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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꾀 많은 토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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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인과응보담 - | ① 도깨비 방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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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기타 - | ① 반쪽이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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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성황당 얘기 |
(1) 내력담(유래담)
① 묘정비각
묘정비각이 또 있어요. 한 8km 됩니다. 그 황희 정승의 그옛날 국도 옆에 지금은 국도가 달라졌습니다.(근데 여기다가 황희 정승의 사당을 세웠어요?) 예 그 유래를 말씀드릴까요 (예) 황의정승이 그 고려말이죠. 최영 장군이 혁명을 이룰 때 하기야 이태조 이성계가 혁명을 했지. 최영이야 최영장군이야 참 고려조의 마지막의 충신이 아니었습니까? (예) 근데 그 때 이조좌랑하던 분이 황의 그러다가 이성계가 도읍을 해가지고 고려를 치고 도읍을 할 때 두문동 77인 저기 역사에 나오죠? 원주 치악산에 거 와서 은거했다가 다닌 사람들 그런데 황희만은 이조 좌랑을 하다가 이조에 그 협조를 했거든요. 그러다 결국 세종 대왕 때는 이제 그 의정까지 했잖아요. 전에는 강원도 관찰사로 와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에 이제 청백리에는 황희 정승이 제일 먼저 꼽히잖아요. 그 분이 이제 그 청백리로 이 양반이 충절에 못 올라 왜 변절을 했거든. 고려조에 비록 일의 자리에 있었지만 절개는 못 지킨게 충절에는 안돼. 그러나 이 … 이 … 그 … 충절은 안되더라도 정치 그 담에 소박하게 민을 위해서 정치를 한게 가령 이제 백리, 청백한데 5대 청백리 중 제일로 으뜸으로 꼽히는게 아닙니까? 담에 난데 우스운 얘깁니다만 사서 의병이라던지 정부인을 보낸 그 머 그저 그 양반 이름이 뭐야 그런 분들이다 참 5대 청백리로 꼽히는 그분들에 한 분이다 이게야 그래 그 분이 이제 강원도 관찰사로 있을 때 관동에 여개 통천서부터 경북 영일 저저 영해까지가 강원돕니다. 옛날에는 그게 이제 아주 대 기근이 들었어요. 기근이 들어서 자기의 아이를 못사니까 배가 고프니까 불에 올려놓고 구워먹은 자료가 있습니다. (황희 정승이요?) 그거 강원도 관찰사로 있을 당시에 그런 시절에 이 양반이 쭉 여기 이제 나오다가 그땐 말을 타고 왔는지 걸어 왔는지 가마를 타고 왔는지 몰라요. 여기 강원도 관찰사가 그땐 지서 아닙니까?
팔봉이면 그땐 옛날이면 높은 봉우리입니다만 여기 와 보니까 사람들이 부스럼 나서 다 죽어 그래서 영해까지 통천서 저 수로들 말하자면 그때 군수죠 불렀어요. 야 그때 간 대마다 그저 영창이 있거든요 그땐 지세를 받아 가지고 국가의 땅을 경작세라 해가지고 베를 받아서 맞는 창고가 있습니다. 그다음에 파발을 갈 때 공문이 갈 때는 말타고 가면 거서 말 먹이고 자고가는 그저 저역이지요. 역 요새 그 기차가……
역촌에 있는 상놈을 역놈이라 얘기 들었었겠지요. 역놈의 촌이다 못 들었어요? 할아버지들은 얘기 했을텐데. 그래 이 양반이 온게 여기를 와가지고 탁 불러 가지고 안되겠다. 상감한테 주사를 해가지고 결재가 받아 가지고 내려오지 않으면 사람이 다 죽어. 부스럼나가지고 퉁퉁 부었는데 빨리 창을 열어서 창고를 열어서 기미를 멕여라. 구유를 해라. 쌀레 멕여라. 내가 올라가서 상감한테 주달을 했을때 네 이놈 왜 니 임의로 했는냐 니 역적 도모한거 아니냐 목 하나 내치면 나 하나 못 치는 대신에 수천명의 인명을 내가 구했다. 베라. 그래 이 양반이 올라가지고 세종한테 주달해서 이래서 국가의 저정 창고를 곡창을 열어서 기미를 멕였습니다. 절 목을 쳐주십시요. 목을 떡 니밀어야하 가상하도다. 참 이런 신하가 있어 그래 내직을 들어갔습니다. 저 황희가 그래 이제 요샌 국무총리죠 영의정 했잖아요 그래 이래서 여기 사당이 서있습니다. 비각이 대단한 비각이 있어요. 그러한 그 분의 위패를 모시고 여도 민가도 일익을 했습니다. 학원도 일본 놈들이 들어와가지고 학원이라는게 지금 학교 아닙니까. 삼척군에서 이 학교가 제일 먼저 생깁니다. 북평까지 합해가지고 근데 일본놈들이 불태우고 그래서 비석비각만 비석만 있다가 당일 만들어가지고 다시 복구해서 학교는 못세웠습니다만 비는 비자체는 비는 안 맞도록 만들어 놨세요. 그래 이제 묘정비각입니다. 임금의 영위를 모신거는 이제 정묘가 아닙니까 근데 영의정을 모셔 이건 묘정이요. 고 다음가는 묘정비각이 바로 여기 한 7km 있습니다.
② 공양왕릉의 유래
궁촌은 여기서 20리 나가면 있어요. 에, 거기가면 공양왕릉이 있어요. (왕릉이요?) 고양왕릉 (고양왕릉?) 고려말 왕 (공양왕) 공양왕릉이 거기 있는데, 일부 전설은 경기도에 있다 그래요. 경기도 광주에, 있다그러는데, 우리가 봐서는 그건 허위야. (아--) 왜냐하면, 흠, 고려말 때 이성계가 등극을 하고 이 공양왕을 원주로 귀양을 보냈단 말이야.. 원주로 귀양 보냈는데, 원주에서 또 에, 양양쪽으로 갔다가 이게 이제 궁촌갔거든 그래서 지명이 궁촌이야. (아--) 그 능이 있던 마을, 옛날부터 내려오는 지명이 궁촌이야. 궁의 마을이라, 궁촌이야. (예, 예.) 그리고 거 가면 마리방, 말을 매놨다는 마리방도 있고, 뭐 구마, 말을 아홉필을 이제 기르고 있었거나 하는, 구마라는 지명도 있고 뭐 여러가지 지명이 있고 또 이런걸 봐서 생각을 해봐, 그 당시에 여기서 분명이 돌아가셨거든, 여기서 돌아가신 그 시신을 그 옛날에 또 더구나 이조에 초기에 모셔갈 수가 없어, 어떻게 모셔간단 말이야. 갈 수가 없어요. 그럼 왜 경기도에 이제 응 이제 응 그런 거도 능이 있어요. 그런데 거기는 문화재 관리부에 등록이 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여기는 시골이 아니야? 시골이니까 거기보다 빨리 서둘러서 등록을 못해 거기는 빨리 등록을 했는데 왜 그러면 거기 그 공양왕릉이 거기에 있느냐 하면 거 그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그 당시에 여 이제 공양왕 딸 그 이제 본 왕후의 딸은 이제 응 공주라 하고 그 이제 작은 으으 처첩들의 인제 비의 딸은 옹주라 하잖아? (예, 예. ) 그 옹주 하나가 거기에 있었다 그래요. (경기도 광주에요?) 그렇지. 옹주가 거기 있었는데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그래니 시신을 모셔 갈 수가 없고, 혼백을 모신다 그래서 거기다 이제 그 혼백을 모시고, 묘를 쓰고 거기 만날 제사를 올리고 그랬단 말이야. (그럼 실제 무덤이 여기예요?) 그렇지, 실제 무덤은 여기지. 생각을 해봐. 그 당시 여기서 돌아가신 양반의 시신을 그 까지 어떻게 모시고 갈 수 있느냐. 그건 말도 안돼. 그래서 요즘와서 요즘와서 인제 음 이 공양왕릉이 맞을 것 같다. 근데 아직가지 확실한 근거가 없으니까. 이걸 이제 에 앞으로 여기 인제 에 지질학에 대한 교수들이 와가지고 확실한 검증을 해서 이제 응 할려 그래요, 언젠간 곧 이뤄 질거래요. 그렇게 돼도 이제 확실한 증거가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까 뭐를 못하고 잇는거야. 저쪽은 하마 등록이 돼 있고 그래서 지금 이, 있는데, 우리가 봐서는 틀림없어요. (예) 그리고 또 이 과거의 역사학을 이게 응 들쳐보면, 간혹 어떤 사람이 지은 그 역사 책을 보면 여기가 공양왕이 맞다고 나와 있기도 하거든. 그런데 여기서 또 이제 한 여기서 한 30리 이상 요 이제 서쪽으로 동막에서 저쪽 에 서쪽으로 들어가면 마읍이라는 데가 있어요. (아, 마읍이요?) 마읍.응, 마읍이라는 데가 있는데 거기 그 마읍에서 에 조금 에 거기도 마을인데 마읍에 또 궁터라고 하는 터가 있어요. (궁터요?) 어, 아주 산 올라가서 산 꼭대기에 으 분지. (네에) 분지, 거 가 사람의 집이 한 여섯 일곱 집이 있어요. 있는데 거기를 어 지명을 궁터라 그래요 그 왜서 궁터냐 하면 거 나도 실제 올라가 봤는데, 거기 밭에, 인가가 있으니까 밭이 있을게 아니야? 산 꼭대기인데도 거 이제 편편해요. 널찍하니까 집이 이제 한 일곱 대 여섯 집이 있는데 그런데 그 사람들이 경작하는 밭에서 지금도 기와장이 나온다고 그래요. (아--) 밭을 좀 깊이 파면 기왓장이 나온다는 걸 봐선 틀림없이, 거 또 역사책에 보면 그 공양왕의 아들 왕석을 그러니까 한데 같이 부자를 같이 있게 하지 못하고, 따로 있게 했다 이기야. 그러니까, 공양왕의 아들은 거기다가 따로 있게 했다 얘기야
거리가 멀지 않으니까. 있고 아버지는 이제 여기 궁촌에 있었고, 공양왕 그래 있다가 나중에 인제 뭐 죽을 때 한데 모아서 죽였다는 이런 얘기도 있어요. 그래서 요 저 궁촌 발 가다보면 재가 있는데 고 재를 예날에는 살해재라 그랬는데, 거기서 공양왕을 살해를 했다 그래서 (그래서 살해재예요?) 어, 살해재라 그랬는데 또 일부에는 또 사리재라고 또 그리고 (사리재요?) 어, 사리재. 사리재란 뭐냐 하면 고기를 잡을 때 왜 이렇게 나무가지고, 가는 나무를 가지고 이제 엮어가지고 고기를 나가지 못하게 이제 막는 그걸 사리라 하거든.
③ 동해 척추비와 퇴조비
o 척추비
(저기요, 동해 척추비 있잖아요, 삼척에. 거기 내려가면 허목 선생이 지은 그거.) 어어, 허 미수 선생. (거기에 대한 얘기 혹시 아세요?) 그거는 저 허미수 선생이 원래 나이 쉰여섯인가 늦게 이제 부사로 인제 등관했다 그래요, 그래 그 양반 젊어서는 자기 과를 보지 않고 별로 관심이 없었으니까 벼슬하는 걸 별로 염두 안 두고 나이 이제 그렇게 많아서 벼슬가에 올랐어요. 그래서 여기 삼척 부사로 와 있으면서 옛날에는 그 바다에서 물이 그 올라오면 그걸 조수라고 그래요. 요즘은 별로 없는데 요 몇년전에 밍원에서 그 조수가 올라왔어요. 그 전대통령 당시니까 한 80년대 중반쯤 될꺼야. 근데 옛날에는 그렇게 그 조수가 바닷물이 차서 올라오는 것을 조수라 그러니까 보통 옛날 사람들이 말하기를 바닷물이 끓어 올라서 이제 넘쳐서 육지로 올라온다 그래서 조수라 그랬는데 그 허 미수 선생이 이제 그러니까 아까 말한 그 양반이 여기에 부사로 와있으면서 자주 조수가 올라오니가 그 그것을 막기 위해서 비를 세웠다 그래요. (비의 내용은?) 비의 내용은 자세히는 기억하지 모르지. 그래서 퇴조비. 그래서 그 비를 세우고 다음부터는 조수가 안 올라왔다. (육향산에 있는?) 그래 육향산, 그래서 그 비 이름을 퇴조비라 그래. (퇴조비요?) 조수를 물리쳤다, 그래서 퇴조비라 그래. (동해 척추비라고 그러잖아요?) 척추비, 퇴조비라고도 그래요. (할아버지, 여기 산이 있든데, 산 이름이 뭐예요?) 이 산은 관후산이라 그래요. (관후산이요? 관후.) 관후산, 뒤에 있다 그래서. 왜 관후산이라. (아-- 관 뒤에. 관후산.) 그래 저 가면 관덕정이라는 정자가 있어요. 그래서 이 그전부터 그런 뭐이가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관덕정을 짓고 이 산을 그걸 뒤쪽에 있다 그래서 관후산. (관덕정은 무슨?) '관'은 이 ‘關’자 관계할 ‘관’자 (관덕정은 어떻게 해서 만들게 됐어요?) 관덕정은, 그건 이제 그래 오래 안 됐어요. 오래 안됐는데, 옛날에는 ‘계’라는 모임을 선대들이 이제 그런 모임을 가졌기 때문에 그걸 이제 그대로 계승한다는 뜻이예요. 뜻을 모아서 인제 관덕정이라는 조금나 정자를 지었어요.
o 퇴조비
옛날에 허미수란 분이 있었는데 허미수(허미수?) 성이 허라카이 허씨인데 미수 눈썹 미자에 눈썹 수자 허미수 선생이 있었는데 삼척부사로 왔어요 삼척은 지금은 군수지만 그때는 부사라 했는데 부사로 와 가지고 떡 부임해 오니까 조수가 들어와 가지고 말이야 동해안에도 그 옛날엔 조수가 서해안 모양으로 조수가 들어왓다고 조수가 들어와 가지고 그 죽설루 말이야 그 그 원이 있는 말이야 그 향교 마루 밑꺼정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그러이 그 사람이 살 수 있나 말이야 얼매나 곤란하나 말이야 그래가지고 미수 선생이 말이야 지금도 거 삼척 육해운봉이아 힌데 거 가면 말이야 퇴조비란게 있다고 물러갈 퇴자에 저 저 삼수변에 아침 조인데 퇴조비란 그 비가 있는데 그 비 비문은 말이야 이 보통 사람이 봐도 몰래요 전부 전자로 써놨는데 그 대리석이 아주 높아요 우리도 여 살아도 잘 저 잘 안가봤는데 거 전자로 써놨는데 옛날에 말이여 그 각처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거다가 말이여 눈을 가지고 막 이렇게 해가지고 더러운 아주 이 돌에다가 음각으로 팠거든 팠는데 누를 칠해놓고 그 다음날 돌을 딱 붙이면 말이야 거 공간으 말이야 글자가 제대로(?)그래 가지고 퇴조비로 그래 인제 합판해 가지고 갔는데 지금은 말이야 그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철조망을 딱 돌려쳤어 지금도 정나진 가면 거 있어 허미수 선생이라 그런게 있어(허미수란 사람이 부사로 왔을때 바닷물이 그렇게 들이쳐갔고 그 비를 비석을 세워서 바닷물이 더이상 들어오지 않았어요?) 응 그래 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와 가지고 말이야 이 전설 이게 쓸데없는 미신이지 이럴수가 있나 그래가지고 그 퇴조비를 말이야 빼치 웠대 빼치우고 나니 조수가 여전히 들어오더래 그래 말이야 그 원 있는 저 거처하는 공사천이 있는데 도헌마리라 그러거든 도헌마리 밑을 파니까 거 역시 퇴조비를 하나 떡 그란걸 묻어놨드래 그기를 갔다 세우니가 바닷물이 여전히 못 들어오더래
④ 금 표
금표라고 있어요 금표 (금표?)응 금표라고 있는데 금할 금자 금할 금자 표시란 표자 응 도로 표시한다는 뭐 금표라고 있는데 이 비석이 있어요 있는데 이것을 삼척군에서도 뭐 김응규 교수라고 산업대학교수 그분이 이분들도 그렇고 뭐 하여간 모두 다 못 찾았어요 내가 찾았다고 찾았는데 그 어떻게 그 지방사람이 청탁을 하고 하다보니까 그 이장을 묻는 사람이 옛날 한 그 한국 수상집 인제 글을 읽을 때 선생님한테 들었던 얘기가 그러면서 인제 있다그래 그래 내가 올라 갔지 근데 금표란 뭣이냐 그지역 그 들어가면 위험하다 금수가 맹수가 있고 옛날 뭐 그럴거 아니야 그러니까 인제 그런 그 위험한 곳에 가선 사람이 살 수 없다 그러니깐 요 구역 이쪽만 살고 그쪽은 못 들어간다 인제 그게 인제 부사가 말해 그땐 부사가 상권 다 가지고 있었잖아 그래 부사가 그것을 표시해놔논 그 법이야 자연석인데 불과 뭐 못되야 그저 한 칠팔십 되지 자연석에 그기 하나 (비석을 자연석으로 ) 거 자연석에다가 (글씨를 쓴 거예요?)새겨서 금표라고 새겨서 그렇게 해 놨드만 (거기서 더 가지 말라)
⑤ 소공대
이건 원덕 요 호산하고 임원 고 사이 (호산하고 임원사이요?)옛날 국도야 아주 옛날 신작로가 나기전의 국도 변이야 국도변인데 옛날 아주 그 국도변이야 내 인제 책을 한권 주지 -장헌경 할아버지께서 조사자들에게 소공대 책자를 주셨다 -(그 소공대 비가 있는데 지금도 거기 그 비가 있어요 비각도 다 지어놨다고 ) 이 비의 유래를 말하면 옛날 세종 5년이야 세종 5년에요 마카 쓰여있어요 세종 5년에 그 의정 영동일대에 아주 대흉년이 들었어 대흉년이 들어가지고 전부 기사상태에 있는 것을 세종대왕이 황희 정승을 강원도 관찰사로 임명을 해가지고 여기에 인제 그 백성들을 구제하기위해 일루 보냈단 말이야 보내가지고 그때 요 인제 여기 여 농협 요새 뭐 쌀 창고 한가지로 요 언제 거저 오근리란데 국고에서 인제 나라에 창고였던 곡창이 있었지 곡창이 있었는데 거개에 쌀을 왕한테 가서 윤하를 얻자면 그때 뭐 왕한테 왔다 갔다 해야 되니까 그러다보면 백성들 다 굶어죽는단 얘기야 자기 독창적으로 응 자기 독창적으로 그 창고문을 열고 쌀을 꺼내가지고 줄을 서서 전부 다 먹였단 얘기야 그란데 한 사람의 이상자도 없이 다 구해냈어요 그래서 이 백성들이 그래 가지고 이 양반은 인제 내중에 들어가는데 요새 말하자면 내무부로 들여 내중으로 들어갔는데 그래 여기에 인제 구제를 받은 백성들은 이 은혜를 잊지 못해가지고 사모불망을 했단 말이야 그래 인제 그게 옛날 국도변이고 또 인제 그 부락 사람들이 산에 가서 나무 채취하는 그땐 뭐 그저 열녀란 남대도 없었잖아 나무 채취하고 오고 가는 그 바로 길가란 말이야 그다가 의석축대 돌을 모아가지고 대를 만들었어 만들었는데 그 증손이 그래 인제 사모불망을 하고 늘 인제 그 은덕을 잊지 못하고 기리고 있는데 이 양반 증손이 정식이란 분이 말이야 애 인제 강원도 감찰사로 또 왔어요 또 와가지고 백성들이 그렇게 자기 선대를 위해 가지고 그렇게 정성을 다한다고 하니까 그냥 무심히 있을 수 없다 이래가지고 자기 그 대를 보수를 하고 또 인제 그 저거를 세웠어요 비를 세웠다고 비를 세완게 그 양반이 비를 세운후에 61년 만에 그게 인제 이주 바람이 쎈 곳에 아주 정상이야 그래 고만 쓰러져서 뿌려졌어 뿌러졌어 뿌러져가지고 그래 그후에 또 6대손이 삼척부사로 왔어요 참 좋은 집안이 아니야 그 인제 삼척 부사로 와 가지고 또 그걸 보니까 도저히 안되겠어 그래 언제 그 양반이 비를 세웠어 지금 세왔는데 비가 지금 280여년 된 비가 현재 있어요 있는데 이게 인제 86년인가 강원도 지방문화재 107호로 지정되어 있어요
⑥ 해신당
신남에 애기바위란게 있다 (애기 바위요?) 애기바위란게 있는데 애기바위의 그 유래가 어떻게 됐냐면 지금 저 롯데월드가도 그게 있대 그 저 신남 애기바위 유래가 있더라고 아주 그 모형도 막 만들어 놓고 (모형이 어떤데요?) 근데 거기에 인제 그 저 남녀 처녀 총각이 있었는데 그 남자가 인제 그 고기 잡으러 나갔다 이기야 나가가지고 파도가 갑자기 붇으니까 사람은 뭐 돌아오질 않고 그 그 인제 그 지금 성황당이 있는데 그 성황당 그 끝이 아주 돌출되어 있어요 돌출되어 있고 거기서 그 바위를 바래보고 그는데 그 사람은 신랑은 인제 그 바다 가운ㄷ데서 바위에서 인제 거기 표류 뭐 그리니까 파도가 불고 이래니 바람은 불고 오지 못하고 그 형체는 보이는데 서로 바라보면서 그 갈방을 하고 있다. 결국은 죽었어 죽어가지고 [성황당 끝이 돌초, 돌추가 뭐에요? (돌출되어 있다고) 돌이 이렇게 나와있다고요?] 근데 그 육지에 연해있는 지금 성황당이 있는 그것이 돌출되어 있고 남자는 인제 고기잡으러 나간 것은 그 (바다에서) 섬에 섬바위에서 서로 인제 보면서 인제 저걸하다가 죽어 애타게 죽었지 죽고 이 처녀가 그 총각을 위해서 결국은 죽었어요 (사모하다 죽었지) 사모불망하다가 인제 죽었단 말이야 죽었는데 그것이 그 부락에서 인제 그 전설이지 부락에서 아무리 제사를 올래도 제사가 그 효험이 없고 자꾸 재앙만 부락에 재앙만 오고 말이야 인제 이러더란 얘기야 그래서 어떤 그 남자가 인제 술을 마시고 그 의혹을 하다가 하다가 이제 열날 그 아까도 내가 자꾸만 얘기했지만 청어 어장은 십년동안 해도 고기 한번 안잡히고 망한단 말이야 물자하고 인력하고 뭐 말게 아니야 그니까 하루아침에 뜨면 고만 그게 몇십년 저거 한것도 복구가 된다 인제 이런 그 어업 어로법이 있는데 그니까 인제 뭘하다가 하다 해도 안된다 이런 얘기야 그래 이제 그 성황을 모셔놓고 인제 그 제사를 올린데 그리다 그만 방뇨를 했다 말이야 (어휴...) 예끼 뭐 이랬자 저랬다 안되나 말이야 하지뭐 방뇨를 했단 말이야 방뇨를 하고 난후에 그렇게 고기가 참 잘 잡혔단 얘기야 (어 왜 그렇죠?) 그리니까 그 처녀가 총각을 사모불망하고 애태우다가 어 죽었는데 그리니까 방뇰 했다는건 오줌을 넣다는 것이 여자한데는 부부생활 뭐라할까 이제 그 저런게 있단 말이야 그래 가지고 그래서 비로소 거기다 남근을 제사를 올릴때는 남근을 깎아가지고 아주 아주 그 역아요 나무를 깎아가지고 엮어서 거 달아매놓고 그래 제사를 올리면 아주 풍어가 된다 그래 참 웃지못할 얘기가 있어요.
(2) 지명담
① 산양팔경(용암에 얽힌 이야기)
(할아버지 저기 올라가면 산양리라고 있죠? 산양팔경이라고 그러던데요 거기에 얽힌 얘기 없어요?) 거기가 바로 우리 민가가 정착한 곳이고 아까 그 황희 정승의 학원은 서당을 모신자리가 바로 그 동넵니다.(산양리에요?) 거기에 내렸습니다. 거기 가면 거 사당은 학원은 일본놈들이 불태워 뿔고 고기에 비각만 다시 복구를 해가지고 모시고 길가에 있습니다. (팔경에 얽힌 얘기 같은거 없어요?) 팔경 있지요. 첫째는 이제 용암이고 정봉, 창영 적어보시오. 내가 적어 드릴까? (아뇨, 적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제 칠성댑니다. 그 다음에 용암 그 다음에 승암 승은 이제 중 그 다음에 천마봉, 천마봉은 좋은 산소 옆에 있어요. 그 다음에 정봉 솥정자 정봉, 창영 병풍암 일곱이죠. 아 반월산 반월산 아주 산이 딱 반월 같이 되어 있세요. 그래 이 그 팔경입니다. 그 다음 조금 더 보태면 10경이라고 돼요. 2개 더 보태는데 그건 괜히 자랑하느라고 한거기 때문에 팔경이요. 지금은 물이 이짝으로 저짝으로 이래가지고 했지만 거 평풍암 같은 건요 아주 평풍을 친거 같습니다. 용암 같은건 용이 승천하러 가만 있어봐 내일 아침에 여 가까우니까 거가면 이제 국민학교 고 밑에 있는데 그 산이 묘하게 됐는데 전부 암이예요. 옛날에 큰 소가 있었어요. (소? 연못이요?) 소 큰 소가 있었어요. 옛날에 그 인제 우리는 모르지 전설이지 마구란게 있죠 마구 할머니 그죠? 건 우린 보지 못해 도깨비하고 같은 그런 이제 손자를 데리고 빨래를 하러 왔는데 큰 소에 이제 용이 올라가지고 승천 할라고 꾸불텅거는데 이놈의 손주 딸년이 자꾸 말을 일개니까 자 여기 용이 승천한다고 이랬시면 승천했을 텐데 저 구랭이 봐라 떡 떨어져 죽었다 하는 전설이 있습니다. 근데 그러면 아주 여개 구멍이 양쪽에 뚫려 있쌔요. 순 암입니다. 비늘이 주루룩 해가 나면 번쩍번쩍합니다. (아하) 근데 이제 한쪽은 꼬리를 넣고 한쪽은 머리를 넣고 이제 뒤틀어 가지고 이제 용이 될려고 하는데 저 구렁이 봤다 하니 딱 죽었다는게요 거. 하나의 전설이죠. 지금도 보니 이래 구멍이 있고 산에 못 올라 갑니다. 그래 지금도 해가 날때는 번쩍번쩍한거 뭐 거저 고기 비늘 같은 그런 감이 있어요. 순 암입니다. 고 밑에 국민학교가 있는데 요새 국민학교는 분교가 되어버렸어요. (승암은요?) 승암은 이제 중승자 (모양이 그런거예요?) 근데 아주 중이 바랑전 같은 그런 형상입니다. 막대기 짚고 그 왜 저기 설악산 가면 그 뭡니까? 김시습 … 그 저 있지 않습니까. 울산서 오다가 … (울산바위요?)
② 용굴, 바닷굴
신남에서 배를 타고 한 1km가면 남쪽으로 가게 되면 굴이 있는데 그 굴을 용굴이라고 그래. 옛날에 용이 등천했다고 해서 용굴이 하나 있고, 여기 신남 애바우쪽으로 한 500m가면 거기에 굴이 가 또 하나 있는데 거게 뭔 굴이 있나하면 바닷굴이라는 굴이가 있는데, 배를 타고 가면 거게는 돌기가 말이야 까뭇까뭇 흑색인데 천장에서 떨어져 근데 모냥은 아주 있어. 옛날에는 인공 바둑돌이 없잖아. 그 돌을 채취해서 흑을 씌워 바둑돌로 썼지 여게서 쪼금만 가면 조해(조개)가 있는데 그 조해를 줘다가 백을 씌워 또 바둑돌로 썼어. 그래서 여 신남에는 굴이가 용굴하고 바닷굴이가 두개 있어.
③ 지도바위
한국지도를 닮은 바우가 또 하나 있는데 그 바우에 ‘쫙’금이 있어 금이 났는데 지도바우가 맞긴 맞아. 금이 좌우로 갈렸으면 38선이 거졌으니까 맞는데 금이 상하로 거졌으니까 뭣땜에 거졌는냐
우리가 어렸을때 물어봤어(어른들 한테). 물어 보니께 옛날에 아귀가 도망을 쳐서 그 바우위에 올라 앉았는데 중국에 진시황이가 아귀를 잡을려고 뒤를 쫓았거든. 아귀가 그 지금의 지도바우에 올라 앉았는데 진시황이가 그 아귀를 잡을려고 매를 쳤다는게야. 그래서 금이 쫙 놨다는게야. 그래서 그 바위를 지도바위라 그래.
④ 최씨장군과 떡(덕)봉산 얘기
아 저길 빼먹었구나. 여기 이제 최씨 얘길 하나 빼먹었어. 여어 거 떡봉산이 하나 있잖아. 이 떡봉산에 최씨 장군을 낭은 아버지가 떡봉산에 올라가라 해서 아주 옛날이죠 그러니끼니 한 사백 오백년이 되죠. 올라갔더니 여 떡봉산에 올라갔더니 난데없는 이 쇠가마니가 있더래요. 근데 바가지가 떠있더라 이거야. 그래 이제 그 물을 한바가지 떠서 딱 마시고 내가 이걸 많이 먹으면 뭐하나. 그래서 사람이 눈에 안보이는 거에 그게 나타났으니까. 아들을 먹여야 되겠다 그래가지고 그 장수 날개 나왔다는 그 사람을 먹였대요. 그래서 그 아들을 먹이고 나서 올라갓더니 아무것도 없더래요. 그 희안하잖아요 아들 메길려고 다음에 도 먹으로 갔더래니 아무것도 없더래요. 그래서 여기가 명산이래요.
⑤ 근덕의 지명
근덕이라는 이 지명 자체가 (예) (음-) 저기 바닷가에 보면 높은 산이 산봉우리가 하나 있어 동떨어진 산봉우리가 덕봉산이라고 그래 (아-- 그 삼형제 뭐 떠내려온 그거요) 옳지 옳지. 옳지. 그래서 이 근덕은 삼척 옛날 삼척군 소재지에서 가까운 면이거든. 예 그래서 그 가아누 ‘근’자하고 (아-) 덕봉산이라는 그 ‘덕’자를 따서 그래서 근덕이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아--) 그래 근덕면 (가깝고 덕봉산이요?) 가까울 근 시,군소재지에서 가까운 곳이고 덕봉산이 있다. 그래서 근덕이라 했지.
⑥ 애바위 전설
(신남?) 신남. 신남이라는 데가 있어요. 신남이라는데가 있는데 거기가면 지금 신남분교가 절가에 있어요. 거기서 조금 가면 에 선황이 있는데 그 선황에 가면 그 참 나무로 이제 남근을 깎아서 엮어서 놓고 제사를 지내요. (그거 왜 그러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런 전설이 있어요. 그 마을에 인제 처녀 총각이 있었는데 둘이 이제 서로 좋아하는 사이였는데 그 처녀가 하루는 옛날에 바닷가에서는 이제 배를 타고 조그마한 바위에 가서 인제 거기에 가서 뭐 이제 미역따고 뭐 여러가지 뭐 뭐 이제 딴단 말이야. 그래 해초도 따고 인제 따러 물살이 참 나갈때는 파도가 밸로 없었으니까 배를 타고 이제 나갔단 말이야. 나갔는데 그 돌아오기 전에 갑자기 파도가 쳐서 고만 그 처녀가 거기서 죽었어요. (거기 애바위 거기?) 그렇지. 그래서 이제 죽었기 때문에, 처녀가 이제 어휴 처녀가 죽었으니까, 처녀가 죽었으니까. 처녀는 옛날부터 말이 있잖아. 처녀가 처녀죽음하면 몽달귀신이 된다 그래서 그 한을 풀어준다는 그런 뜻에서 이제 남근을 깎아서 이제 매달아 놓고 제사를 올리지.
⑦ 용굴
굴이 이렇게 저 그 뭐야 댐마가 하나 이렇게 더 더가 졸망한 데가 그런데가 있어 노를 저어서 이렇게 이렇게 들어가면은 바우틈으로 이렇게 들어간다고 이렇게 들어간다고 이렇게 굴 모양으로 이렇게 이렇게 된대로 글루로 들어가는 데 그게가 이제 여기서는 용궁이라 그래 (용이 살았다고 그러나요?) 응 그게서 용이가 옛날에 우리들은 보지 못했지만 이제 전설에 옛날에 인제 용이가 그제서 인제 등천해서 인제 하늘로 올라갔다 해 가지고 그게를 용굴이라 이래는 가봐 그런 바으가 있거던 그래 있고 또 인제 그래서 옛날에 참 용굴부터 얘기 해야지 그 용굴에 난 들은 얘긴데 그전에 가뭄이가 되게 오고 이러면은 개를 잡아가지고 그 용굴에 가사 저새(제사)를 지냈데 저샐지내면 비가 왔대 그전에 그런 인베 전설이가 있지 (용굴에서 제사를 지내요?)용굴에 들어가서 거가서 인제 거가면 물이가 퍼 또 여는 데 비하면은 그게 물은 이렇게 들이다보면 퍼런게 생겼다고 물 색깔이가 이 위치가 좀 좀 좀 다르게 비캐. 여는 이래 물 하고는 거개가 좀 퍼렇게 비캤지 그래서 인제 거개서 가뭄이가 되재 오고 곡식이가 막 다 죽고 이래면은 이 마을 사람들이 다 거개서 가뭄이가 되재 오고 곡식이가 막 다죽고 이래면은 이 마을 사람들이 다 거기 들어가서 저새를 지낸가봐 옛날에 -(할머니)
그래니까내 그게 인제 (그래면 비가 왔대)용굴이라 이래가지고 인제 기우제를 지낸다 이기야 기우제 우리 뭐 한국에서도 여개뿐 아니라 딴데도 가무면 기우제를 지내자내 인제 비가 좀 와주십시오 하고 인제 그랬는데 그게 인제 옛날 용인들이 지금은 안그랜다고 그전에는 날이 가물고 인제 할머니 말따나 날이 가물고 달고 하면 동내 사람 개를 한마리 싸가지고 살안 놈 묶어 가지고 (그냥 갔다 너뿌러) 그냥 갔다 넣는단 말이야 이제 그래 추원하지 비가 와 주십시오 하고 그래 왜사 그걸 갔다가 거다 넣냐하면 기우제라 이래 가지고 용굴이라 이래가지고 그 용 용으는 그 개를 아주 싫어한다 이기야 아주 응 아주 싫어하기 땜에 그자를 시체낸다 해 가지고 이제 산도함이 비가 온다 이래가지고 그전에는 그게 기우제를 지냈다고 재사가 지금에는 안 지내지 또 그란 전설이가 있고 그리니까 그 바우를 보면 바우가 이렇게 돼 있는데 요 끝에 조짝에 끝에가면 높은 쪽 다 뵈캐 요기사 인제 우리 죠 새우장 그래 새우장 가지만 하다고 바다서 그굴로 들어가는 기가 그래 둘이가 이라크 댔다는 그 금이야 그란데 그가 그 직자 직자이기도 앙하고 그란 전설이가 있고-할아버지
⑧ 말구리재
여개 말구리재다 저기 재가 (여기선 안 비캤구나 ) 말구리재 말구리재다 왜 이름은 지언고 하니 애 옛날에 저대 가다가 말이가 올라가는 길에 말이지 지금은 신작로가 저래 있지만은 옛날에는 저 신작로가 나기전에 이도로가 나기 그러니까 구한국때지 구한국때 일본하고 합병안되고 우리 한국만 인제 살 적에 구한국때 그때 질이가 저 가면 절루 질이 안나고 저 마을 끝에 가서 올라가는 그 질이 있다 이기야 글루로 올라가서 삼척을 들가는데 옛날에 그 저게 선왕이 용왕 선왕이가 아주 망김이 있다는 기라 그래가지고 애 저 말구리재 올라가다가 말이 굼부라서 죽었다고 말이 금부라서 그래 그지를 보고 말구리재라 인제 이름을 이라크 지었는 데 거개 이 가심장새들이가 인제 옛날에는 (포화장사) 포목장새들이가 말등에다가 그포목을 실고 댕갰거든 좀 질마지고 말에다가 실고 이래 댕개 우리도 알아 그랜거는 우리도 아는데 그래 댕갰는데 절루 지나갈적에 이면 이면아는가 이면 여기사 남으로 나가면 항구에 있는데 요기사 한 20리 쪼끔 더 되는데 거 이면한데 있는데 거기사 이면 거게 가면 황희 정승 그 비가 인제 거게가다가 쉬었다고 황희정승이가 그래가지고 그 길루해사 저우에 동네 그 남으로 가는 그질로 와 가지고 절루 올라갔다고 이제 삼척으로 올라갈직에 그게 아주 옛날에는 큰 길이야 그이면사 인제 넘어오는기가 그래 저게 올직에 용왕선왕이 저기에 있는 거 수풀에 지금보면 도로옆에 있단말이야 그 선와이가 가심을 ㄲ나서 인제 가가에놓고 가야 말이지 말 자국이가 붙어가지고 말이 걷지 못한대 걸어가지 못한대 그래서 인제 그만침 용왕 선왕이가 맹김이 있었다 인제 이란 설이 있다이기야 [(맹김이가 뭐예요 ?)<저 인제 그만한 인제 말하자면 그걸 뭐라 그러나 맹김이를 가지고 저 서울 사람들은 뭐라카나>아주 인제 뭐이나 <싫은이 싫은이 하지> 맹금이라 이라면 아 그게 뭐 아무것도 아니야 이건 참 맹금이 있다<아주 그건 맞아 이랜 말이 맹김이라> 아주 맞다는 말이야 그건 틀림없다는 얘기야 그래 그 맹금이가 아주 응 무섭다 <아는기가 많다는거> 그래 그런 설이 있다고
⑨ 봉잠=조잠
우리 이짝 건너에는 저짝이 아니고 우리에는 옛날부텀 봉잠이라했단 말이야 조잠/ 새조자에 묏부리 잠자(여기를요?)<용화하고 이 마을하고 이름이 달랐어>(근데 지금은 같이 용화라고 불러요?)<지금으는 인제 시대가 인제 약아가지고 용화1리 용화2리 이렇게 붙이지만 그전에는> 인제 9년째나 9년 1,2구가 분구핸제가 9년째 난다고 9년인가 10년인가 요라크 밖에 안댔어 그 전에는 당구라고 구가 한 획이야 용화 이라크 된데 용화라 해도 이짝 건너에는 예전보텀 새잠ㅂ이라 인제 이랜기가 그기 봉잠이거던 새봉자에 뫼부리 잠자 그래 새잠 새짬 고 인재ㅔ 한재 두재를 가지고 번역을 한다 이래온 새잠이라께 새조자에 묏부리 잠자 이니까네 그래 요 지형이가 새같이 아매 된는 모양이야 그래게 봉잠이라고 이름을 지앴다고 이 동네가 그래 가지고 저근데 이제 저게 여 건네다 보면 아주 제일 씬 자리가 있지 저근네 신작로가 <예선 안 뵈키지 길이 맥혀 가지고> 저 신작로가 제일 돌을 만힝 끊아내고 그 젤 삔당이 있는 고 위에 인제 간수를 묻어놨다 이기야 간수 (간수가 뭐예요?)간수라 하는건 바다 이 물 간물<간수라 하는건 저기 서울 사람들은 그걸 가지고 저기 뭐야 더브(두부)할적에 이제 물을 멕예가지고 서울사람들은 그걸 가지고 이제 더브하지만 우린 예기 사람들은 이제 간물 떼다가 더브하지 그래야 더브가 맛있지 > 그래 인자 간수 간수를 넣었거든 간물을 간물으 단지를 묻아놓고 파가지고 묻아놓고 인제 간수를 넣는거는 이 봉잠이가 화산이라 말이여 화산 인제 저게사 보면 이뭐이나 뭐이라고 화산 인제 지형이 생기기를 인제 불이 일난다 군사람은 그래서 저 건너에 여기에 불이 나는걸 예방한다 그래 그 근넌 나도 멧분 갔다 넣단 말이야 그래 인제 한4경이고 5경이고 이래 있다가 가면 그 물이 좀 마를게 아니야 더 아무래도 건조가 안될 수 없다 이기야 그래 갔다가 또 물을 붓고 그기 물이 없으면 불이난다 동네 화산이 빈추와 가지고 말이야 저근너 어디 저기 화산인 모양이야 화산 저근너 산이가 그게 그래서 화산이 빈춘다 해가지고 저 간수를 묻어다가 거다가 파서 넣어놓으면 인제 불이 안난다 해가지고 그래 저 근너에 그 응 단지를 묻아놓고 이래 나오는데 지금은 하마 저게 안댕기는 자가 하마 오래라고 하마 내가 알기도 안 댕기는 재가 한 30년 가까이돼 <30년 넘을거야>30년 나가 구장할 직에만 해도 저 갔다가 넣고 이랬는데 지금은 뭐 인제는 30년 꺼진되는 마 이상 되믄 됐지 미만은 안돼 그야 마 넣지도 않고 그거는 거 시방 가믄 있다고 단지가 단지는 거기 있다고 (단지가 크기가 어느정도 되요? 크기가?) 크기는 얼마안돼 크기는 한 다까사 요만하고 다까사가 다까사 요만하고 요만한게이 묻어놨지 물 약 한 열 댓되 열댓되 되는 단지를 갔다 묻어놓고 그래 거기다 돌을 돌을 여까지 덮아놓고.
⑩ 해망산 (삼형제산)
삼형제산에 있었어 삼형제산이 있었는데 요 근덕에 가면 덕봉산이라고 있어요 (근덕에 덕봉산이라고요?)응 덕봉산이라고 이 산보다 더 웅장하고 크지 응 크고 또 인제 그게 맏형제 맏형제산이고 요게 인제 둘째산이고 요 울진 저 죽변 죽변 지나서 울진읍에서 나가면 수산이라고 고 못미쳐 나가면 비래봉이라고 있어 비래봉 (비래봉이요?)날비자 올래자 비래봉 묏보리 봉자 비래봉산이라고 있는데 (이게 막내산이예요?) 응 고게 막내산이라고 그 저 울진 가다보면 응 바다쪽으로 보면 울진읍에서 지나서 다르 다리 건너서 보면 이쪽 보면 보여요 비래봉이라거 있는데 그래 이 산 삼형제산이 옛날 언제 전설에 의하면 저 속초 인제 옛날 저 속초우에 옛날 머 워낙 참 어려운 곳이니까 속초가 젤 여 먼 곳을 생각했겠지 그니깐 어디서 떠내려 왔는지 하여간 북쪽에서 떠내려 왔다고 떠내려 와가지고 오다가 덕봉산이란 맏형산이 그 근덕에 기착이 됐고 둘째형산이 여기 인제 호산에 기착이 됐지 비래봉이란 막낭 인제 그 산이 울진 그 수산에 울진 수산이야 거기가 수산에 기착이 됐다고 그래서 그 유래가 인제 그렇게 되었고.
⑪ 海神堂(海城隍堂)과 애바위 전설
해신당 유래를 들어보자는 자네들 얘기제. 지금부터 확실한 기록은 없지만 이마을이 생긴 것이 말이야, 한 천년쯤 된단말이지. 그걸 뭘 가지고 입증을 하느냐 하면은 요게 가면 해신당에 올라가는 길 옆에 행낭기(향나무)가 이렇게 있어, 큰 이런게 있는데 그 수경을 전문인이 감정해 보니 천년이상 됏다는거야 그러니께네 마을이 생긴지가 한 천년이상 됐지 않느냐 하는게지. 그래 마을 이름은 행정구역으로서는 갈남2리인데, 본명은 동면 신남이야. 그전에 옛날에 이 신남을 중심으로해서 남쪽에 숲이 많았다는거야. 나무가 많았다는거지. 요넘에가면 갈남1리가 있는데 옛날에는 갈남리, 여는 신남리 이레 불렀어. 한일합방되고 난 후 갈남2리가 됐단 말이야. 갈남이라는 것은 마을 바깥에 5백미터쯤 가면 큰 섬이 있는데 그 섬에 칠기가 많았어, 갈근말이야. 칠기가 많다고 해서 갈남, 여는 숲이 많다고 해서 신남이라고 했어.
그때 처음 신낭메 동네를 처음 동네를 맹그는 분, 그분이가 음씨라. 음씨란 말이야. 저 가운데 제당이 있는데 저게가 신남의 성황당이란 말이야. 저 성황당 신주가 음씨야. 그래 음씨가 살아있을 때 동네 가옥이 형성돼 갔다는 기야. 내가 태어났을때도 30집 정도였어.
o 신남에서 전해오는 <해신당 설화>
성은 성가라는 분이가 느들같은 여자딸아를 가지고 살았는데, 바다물이 잔존하니께 배를 타고 말이야 바우에 풀나물, 미역도 나물이요, 짐도 나물이요, 그러니까 바다 나물 해초작업하러 그분이 딸 처녀를 실어다 지금의 애바우 그바우에 내려놓고 아버지는 왔다는 말이야.
그처녀는 그바우에서 해초작업을 하고 아버지는 배를 타고 왔는데 그 순간에 풍랑이 일어났어. 풍냉이 일어서 말이시 배을 타고 나갈수도 없고, 뭐 애바우에서 말이지 그처녀가 말이야 구사일생으로 살려고 발버둥쳐도 살수가 없었던거야. 파도 많이 치니까 말이야. 그 처녀는 파도에 쏠렸단 말이야. 물에 빠져 가지고 실종됐단 말이시. 그런데 그후에 그처녀 혼이 마을에 있는 지도급되는 인사겠지. 그런분의 굼에 나타나 현문하기를 내가 애바우에서 해초하다가 죽은 아무개집 딸 아무의 혼이다 그러니 내가 고민하는 것은 뭐냐하면은 내가 지금 수중에 있을때 내 혼을 해신으로 모셔주고 그래 한다 하면은 마을에서 고기도 많이 잽히고 풍재 우재 뭐 여기 재는 전부다 막아 준다 말이시. 마을에 생산이 많이 되도록 해 준다 그랬단 말이야. 그 죽은 처녀가 마을에 그 처녀혼을 해신당이란 이 장소에다가 모셨는데 지금은 당이, 집이 있지만 예전에는 몇백년전에는 집이 아니라 이 끝에다가 조그마케 만들어 놓고 위패를 부치고 그런데 그 제사를 지낼대는 어물에다가 뭐 음식준비를 하는 것도 똑같이 하겠지만은 특이한 것을 말이시, 제사의 규정을 나무로 만든 남근, 남근 그걸 가지고 꼬박꼬박 제사를 지낼때 세개내지 다섯개를 엮어 가지고 제사를 지냈는데 그후 부터는 마을에 풍재, 우재, 마을에 재앙은 없고, 고기도 많이 잽혔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것이 지금 해신당의 유래란 말이지.
그 바우가 애바우가 된 것은 그 처녀가 살라고 ‘애시다 애시다’하다가 죽었기 때문에 그 바우 이름을 애바우라고 지었다는 게야.
o 임원에서 전해오는 <해신당 설화>
처음에 애바우는 왜에서 애바우나 하면 옛날에는 짐뜯으러 물복판에 바우가 있는데 처녀를 바우위에 올려놓고 그 전에는 배가 없었잖아요. 오동나무라고 있어 오동나무로 떼배를 만들어서 노를 저어 가지고 총각이 처녀를 내려놓고 짐을 뜯어라, 뜯으면 데리러 갈꺼마. 그래가지고 육지로 왔다가 델려 갈라고 하니 바람이 불고 파도가 처 어떻게 가, 못가지. 처녀를 데리러 갈 수 없거든.
바람이가 자 가지고 처녀한테 가니까 처녀가 죽었네. 추와서 짐은 언제든지 눈비오면 뜯거든, 해사(고기잡이를 주로하는 바다가의 일)가 아무리 해도 안되더레. 신남에 바위에다 옛날 어른들이 부엌모양(아궁이)으로 맨들어 빌었어. 꼭 남정들만 나무를 깎아서 빌었어. 그래도 아무리 해도 고기가 안잡히더래. 그래서 남정네 한 사람이 ‘되면 되고 안되면 안되는 게지’하면서 부엌모냥의 거게다 오줌을 냅다 쌌더래. 헷고지를 했겠지. 오줌을 싸고 나니까 그후에 고기가 잘 잡히더래. 그래서 결혼을 안한 처녀혼을 달래기 위해 남근을 깍아다 성황당에 걸어 놓고 제를 지냈다는 게야. 우리 할아버지도 그 사람이 성이 뭔지 모른데, 거게가 비도 안새게 아궁이 맨치로 맨들어서 고기를 잡으면 첫고기를(제일 좋은 걸로) 거기다 걸어놔. 그러면 재수도 있고 그 성황당 올라 가는 곳에 앞에다가 사람을 그려놨어.
할아버지(음씨를 모시는 사당을 말하는 것 같음)한테는 젊은이들이 먼저 가서 제사를 지내고 난 다음에 꼭 남정네만 가서 지내. 할아버지한테는 남근을 안 가지고 가. 남근모냥으로 깎은 걸 가지고 가서 성황당에 걸어놓고, 제사를 지내는게야.
o 삼척군에서 정리된 <해신당 설화>
일명 해랑당 또는 해성황당이라 불리우는 이곳 해신당은 신남리 병풍같이 둘러 싸고 있는 바닷가 가장자리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약 400여년전 옛날 이마을에 사는 한 처녀가 어느날 장래를 약속한 젊은 사공이 노를 저어 데려다 준 미역바위에서 미역을 따다 심한 풍랑을 만나 애를 쓰다가 죽었다 하여 그 바위를 애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또한 처녀가 죽은 후 부터는 이 마을에 고기가 전혀 잡히지 않고 바다에 나가는 젊은이들이 자주 변고를 당하는 일이 발생하였으므로 마을 사람들은 죽은 처녀의 혼을 이곳 해신당에 모시고 정결한 몸으로 신성한 곳의 나무를 잘라서 남근모양으로 정성껏 깎아 왼새끼를 엮어 두었다가 매년 정월 보름과 시월 축일에 제단에 받히고 풍어와 평온을 빌게 되었다고 한다.
⑫ 해망산의 부용芙蓉설화(삼형제산) - 淨來島전설, 해양 설화
지역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유래지요. 그 섬이 원래는 바다 안에 있었습니다. 섬입니다. 우리가 국민학교 시절 때는 아주 큰 바다 아래는 소가 큰 소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케이팅을 하고 그랬습니다. 이게 자꾸 토사가 내려와서 묻혀서 육지가 되버렸지요. (예) 그전에 옛날에는 바답니다. 섬이었어요. 그래 그 유래에 보게 되면은 국문학과는 거 꼭 알아두세요. 유래가 정선암인데 전설에 있습니다. 우리 그 원덕읍에 그 뭐라 그러니까 (오늘 술 좀 먹었습니다.) 전설이 아니고 사기가 자양양에서 스스로잣자 양양에서 3형제島가 부래했다. 3형제가가 섬이 3개가 3형제가 섬이 떠내려 왔다. 정설이 될 수는 없지요. 하나의 전설이죠. 흘러 내려 와서 기 1은 그 중의 하나는 제일 맏이, 근덕면 덕산에 있는 덕봉산 - (아하) 고게 이제 큰 형이고, 기 2는 유래하야 원덕의 해망산이고, 세번째는 울진에 척산이 있습니다. (울진이요 ?) 쭉 내려오면 그런 유래가 있고 여기 이 호산은 섬이됐고 경치가 아주 좋았대요. 우리가 스케이팅 할 때도 한 열살 국민학교 열살 때 다녔어요. 그 때 보면 참 아름다웠습니다. 원래 여기가 부혼데 일본 사람이 들어와서 호산이라고 했어요. 부호는 대죽 밑에
전설에 보면, 그 앞에 연못이 있었어요. 부용이 내요하야 부용이 부용이라고 하면 옛날에 좋은 아름다운 새가 부용이라고 했지요. 요새는 학, 백조, 부용은 못밨는데 좋은 새가 있었어요. 부용이 내요하야 부용산이라 했는데
학생들 아시지요. 남사고라는 분 아시지요. 남 격암 호는 격암이고 역사학자고 도학이지요. 그분이 여기 있었어요. 근데 이 산이 완전히 섬이고 저쪽엔 바다고 이쪽 작은 물이 내려와 섬이 되버렸지요. 그보니 아주 아름답습니다.
⑬ 마천폭포 = 이천폭포
이천폭포라고 여기에서 서쪽으로 한 8킬로미터 가량 가면 그 폭포가 있어요 폭포가 있는데 그 폭포위에 보면 아주 저 반석이 돼 있어요 반석이 돼 있을때 인제 맑은 물이 흘러서 그게 십장 가량 인제 애 옛날부터 그 소가 얼매나 깊었는지 옛날 그 저 명주꾸리 있잖아 명주 명주짜는 그 꾸리 그 길이가 굉장히 길거던 그걸 넣어도 끝이 없다고 그랬어요 그렇게 풍치가 인제 풍치도 좋고 또 그 전날 옛날 우리는 모르겠는데 전하는 말에 의하면 폭포가 내리쏟는 그 우에 반석이 있는데 반석 양쪽가에 그암자에 있었대요 암자가 있어 가지고 그 도사가 저 소공대라고 인제 소공대 애기를 또 내가 하지 소공대라고 거서 건네다 보니까 보통 사람눈엔 안보이지 도사니까 인제 눈에 보인다 그 폭포가 내리쏟는 그 우에 반석우에 흰선이 착 거져 있더란 얘기야 그래서 인제 옛날 그 용이르 놀았다 인제 그렇게 전설이 돼있고 그 암자에서는 지금도 그 논이 돼 있는데 지금도 논을 갈다보면 기와장이 나와요.
⑭ 산양팔경
팔경으로 첫째 칠성때 또 반월산 용암 (그냥 용암이에요?)응 용암(용처럼 생긴) 용용자 용암. 또 성봉 성은 승려라고 중이라는 중승자 승봉, 또 천마봉 하늘 천자 말 마자 천마봉 또 병암 병풍이란 (예 병풍처럼 생겨서) 병암 또 정봉 정봉 (중봉요?) 응 정봉이 (바를 정자?) 아니 아니 아니냐 어려운 자야 더할 정변에 기와와 자 한 잔데 (정봉이에요?) 응 또 한가지는 창암.
o 칠성대
산양팔경이 인제 이렇게 인제 있는데 애 산양 팔경이 인제 칠성대라고 칠성대라고 인제 그 저 산양리하고 기곡리하고 가는 그 경곈데 아주 높은 산이래요 높은 산인데 그 산에서 인제 그 올라 가보면 기곡 인제 이웃마을 기곡이 인제 보이는데 그기 언제 뭐 옛날 그 장군이 그기 뭐 장군정이라 해가지고 그 장군이 그우물의 물을 마시면 뭐 장군이 난다 인제 등등 이런 얘기가 전설이 있어요 그래 인제 그게 칠성대고 (칠성대 부근에 우물이 있었어요?) 칠성대 응 그리고 (할아버지 칠성이?) 칠성이란 일곱칠자 저거 별성재 그래 칠성대야
o 반월산
반월산이라고 반월산이라고 인제 부락에서 왼쪽으로 저 북쪽으로 보믄 인제 산이 요렇게 반월처럼 요렇게 아주 그렇게 되있어요 그부락을 보면 팔경이 빽 돌여 쌓여있어요 쌓여있다고
o 용암
용암이라고 내가 애기 또 한가지 해줘야겠네 아주 그 암석이 웅장하게 돌출되어 있어요 그 밑에 국민학교가 있는데 그 아래 선믄 우리가 육안으로도 보이는데 가다가보믄 왼쪽켠은 큰 인제 그 구멍이 이렇게 (동그랗게요?) 있고 저쪽의 인제 동쪽을 보면 인제 좀 구멍이 적고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그 앞이 내가 돼 있어요 큰 아주 강이 돼있단 말이야 그 강이 돼 있고 또 소가 돼 있어 아주 그 깊이가 깊고 (강도 있고 소도 있죠?) 응 그래 인제 강은 우리가 보니까 그 멈춰가 소가 된거지 그 용화앞에 그란데 그 노파가 나가서 저 빨래를 하다니까 그 이무기가 인제 큰처럼 인제 나왔다 이기야 (이무기가 소에서요?) 응 이무기가 인제 나왔는데 그 이무기를 그때 그 노파가 아 그 저 용봐라 했으면 용이 승천해서 올라갈텐데 저 뱀봐라고마 이랬다고 그래니 고만 이 회전을 하면서 꼬리를 딱치고 마 그 노파꺼정 소안에 들어가서 정 체를 감췄다 이거지 (그런데 그 돌을 탁 치고요?) 그렇지 아니 돌을 친게 아니고 돌은 얘기가 까꾸로 됐어 돌은 이짝 큰 구멍은 머리 쪽이고 적은 구멍은 인제 그 꼬리쪽으로 인제 이렇게 구멍을 뚫는데 그걸 노파가 보고 말이야 야 그 용봐라 이제 등천해 올라간다 이랬으면 그 참 등천이 되고 이렇게 됐을텐데 저 굴이 봐라 뱀봐라 뭐 이런식으로 얘길해가지고 그 구멍은 파다말고 굴에치고 돌아치고 해서 인제 그만 노파를 안고 고만 소에 빠져 죽었다.
o 성봉
성봉이란 것은 인제 중처럼 생겼다 해가지고
o 천마봉
천마봉은 산이 이렇게 인제 둘로 되가지고 복판이 길죽하고 한쪽은 나와서 조금 뵈져서 그래 인제 발형태라 그랜거지
o 정봉은 가마걸어논 형상이라 (아 시루 시루요?) 응 시루봉
o 창영 … 창영 (창암 창영이에요?) 응 영 재영자 (이거는 왜 창영이예요?) 남쪽 분이 되고 딴데보다 일월이 더 비춰준다. 창영구라 해가사 조금 저기좀 번화간 시
⑮ 노고집뒤산
옛날에 요 밑에 큰 호수(옹)에 임장군이 나가지고 장수가 나면 용마가 난다고 하잖아 그래야 장수가 타야 용마가 훨훨 날아다니지
그래 가지고 이놈의 김해김씨가 임장군을 잡으려고 이래 한(양손으로 크게 그리며) 땅을 파가지고 거기다 이래 뭐 돌아가지고 묻어오니 임장군 가는 길에 임장군이 빠져서 죽어버렸대.
용마가 솟아서 임장군 태우고 날아다니려고 했는데, 아마 자기 싣고 다니는 임장군이 죽어오니 주인을 못 찾아가지고 저 뒷산에 노고집뒤라는 뒷산에(노고집뒤요?)
노고집뒤라는 산의 이름은 용마자 장수를 찾아서 “집뒤”“집뒤”, 지가 죽을 판이 되니 장군 찾 으려고 “노고집뒤”“노고집뒤”라며 찾아다녔어
(3) 점복, 풍수담
① 큰할머니,작은할머니
할머니 두 분이 있어. 그 가운데 할어어지가 있는 초상을 모시는 거야. 그 할아버지가 작은할머니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데 할머니는 쪽도리를 쓰고 할아버지는 갓을 쓰고 있어. ‘성황님 요, 고기 많이 잽히고 재수 있게 해 주셔요’하면서 재를 지내 호산하고 초곡하고 강릉 단오에 가 면 똑같은 제사를 지내지. 동네 어르신들은 옛날에 대우하잖아. 우리가 아는 할아버지들도 거게 가면 이름이 있어. 작은 할머니한테, 고개 돌리면 큰할머니가 질투를 할거 아냐. 그러니까 크게 못돌리고 쪼만치만 돌리는거야. 아무튼 빌면 잘돼. 잘 된다니까.
② 여울 성황에 얽힌 얘기
(신남에서 임원으로 넘어오는 고개에 소재)
우물에서 고기를 잡아다가 옛날 임금한테 바쳤으니 그 임금이가 그 고기를 볼기 않나. 그래 그 고기를 또 한번 바쳐 놓고 우물에다 바쳐 놓고 잘 되도록 해 주세요 빌었데. 그 동네가 여물 동네 부정을 했다하면 물이 하나도 없어, 그래서 지금도 어물을 바쳐. 옛날이나 지금도 변한게 없어. 처녀가 부정한 짓을 하고 가면. 물이 없어 얼마 전에도 빌러 갔더니 물이 없고, 개미가 왔 다갔다 하데. 그 이틀날 갔더니 물이 시렁시렁 한게야, 그러니까 그 자리가 맹당자리라, 거서(우 물 연못)나는 고기를 임금이 한테 바진게야. 거게 가면 돌이가 참좋아, 반들반들해.
③ 맹방 .해수욕장 묘지 얘기
(할아버지, 여기 오다 보니까 맹방 해수욕장 솔밭에 묘지가 많던데요. 그건 어느 가족 묘진가요?) 그기 공동묘지라고 그렇기 생각했었던기지, (가족묘 같던데요? 가족묘 아닌가요? 집안 대대로 내려 오는 것이 아닙니까?) 어데 여 해수욕장 바닷가에,(예) 거죽 올라가면 두두두두 있지.어ᅳ
그 묘지는 여기 맹방 홍씨네들 묘가 많지요. 홍씨네들하고 강릉 김씨네들이. 공동묘지가 두개 가 있는데, 여 위 하나 있고 저기 아래에, 공동묘지 두 군데가 있어요, 두 군데 있는기가 엄청나 게 많지요 시신이 묻혀 있는기가. 그래서 저기 공동묘지, 맹방 해수욕장 솔밭에 있는기 왜그러냐 께네 이 산에는 사람이 죽으면은 산 지리를 이 풍수들이 말이요 우리가 옌날 아버지가 돌아 가 시거나 어머니가 돌아 가셨다면 말이요 우리 어무이가 지금 나이 89 인데 지금 살아 계시는데, 아버지는 95세 돌아 가셨어요. 그린데 우리 집안에는 70대 미만으로 죽은 사람이 없어요. 전부 이 백 맺살까징 살았대요, 증조 할아버지는 백네살까지 살았대요. 어허. 이래 살아왔는데,그래서 기 장수하는 집안이 해논기로 그래 살아요, 여 공동묘지라는건 왜 그리 쓰는가면은 순풍이 온단 얘기야 덕도 안보고 해도 옵고(없고) 그러게 그건 지리박사도 필요업꼬 풍수도 필요업꼬, 그지 거기에 쓸 시신이 들어갈 자리만 있어 딱 묻으면 되는기라 그래 찌가 (지들이) 막 쓰잖아요,상에 같은데 쓸라 하니께네 잘못 쓰면은 저런 산에 같은데는 물이 그 그 이상하네, 산이 이렇게 높은 산에도 여기를 깎고 묘를 써놓으면은 여기 뭐가 난데 물이 생기겠어 여기가. 이런데는 물이 생긴다 이기야. 그래서 이거 산겉은(같은)데는 참 풍수들이 잘 파악해가지고 주간(죽은)사람 시를 맞쳐서 돌아가신 분들 그래 거 쓰면 아주 잘 묻으면은 이제 자손들이 인제 학자가 나고 문자가 나고 부자가 되고,우리나라는 조선사람 한국 사람들은 이제 묘덕을 보잖아요 묘덕을, 자손이가 잘되고 안되고, 예, 일본 사람들은 집터고, 일본에는 물어봐요,일본나라는 집이 잘 앉아야 그 자식이 번성하고 크게 큰 사람이 나오고,우리 한국에는 묘를 잘 써야 큰 사람이 나온다고 하잖아요. 그리 인제 내가 우리 낼모레면은 성묘를 하는데 그래 묘가 지리 박사들이 쓸 적에 옛날에 쓸적에 이 묘를 여기에 딱 쓰면은, 아니 우리 동네에서도 그런 묘자리가 없지요. 저 앞에 줄기 산이가 쫙ᅳ이렇게 있는데 그 산봉우리가 이렇게 이렇게 여덟개 딱 되있어요. 그러면은 이 묘를 쓰면은 몇대에 가면은아들 팔형제 나온다. 우리 시대야 바로 그기가 인제, 그 묘를 쓰고 맻대에 와서 우리시대에 와서 아들 팔형제 낳았다 이기여. (진짜 팔형제를 낳어요?) 예. 이래 팔형제를 놓고,그래 고 묘 앞에 저쪽 건너 산에 거 산봉우리 이렇게 되는 산 줄기에 앞에 이런 산태가 쫙 탁 돼있어, 산태가 딱 이렇게 떨어져 있는데 묘 앞에 나무 숨고 뭐 이러면은 거 묘하고 저쪽 건너 있는 산태가 이렇게 일자가 딱 돼있어요. 이렇게 가로 이자 아니고 일자가 딱 돼있는데, 풍수 양반이 뭐라 얘기 하냐면은, 우리 할머니 인제 고 지금 우리 7대면은 조상묘 고 아래다가 우리 아부지 난 우리한테는 할머니죠 공동묘지다가 시신을 옮겼어요. 옮길때 내가 딱 보니까네 1950 한 60년도 되겠다.내가 딱 시신을 파내 보니까네 이 공동묘지가 왜사 그리 좋냐 순풍이 없다는 거시가 좋지도 않거 나쁘지도 않으니까네 덕도 없고 이래 해도 없고. 우리 할머니를 6대 7대나는 조상 묘 앞에다가 쓰기 위해서 파내 보니까, 이 빼(뼈)가 다 낙골됐는데 빼가 아주 황금이야. 이 공동묘지가. 이야, 참 좋더라구요. 자리가 나쁘면은 이 시신을 보면 빼골이 보면은 꺼멓고 찐득찐득해요. 나도 어렸을때 내가 집에 와서 우리 할머니를 이장하는 거를 내가 봤는데 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누-렇다 차-암 깨끗하더라구. 그러 우리 아부지가 나이 95살에 돌아 가셨지만 자기 어무니 시신을 참ᅳ 묘라면은 암만 좋은 자리라 해도 공기가 들어가면 안된대요, 바람만 드가면은 덕 못본대, 그래 이 옮기기 위해서 파냈으니까 그래가지고 거 인제 내가 풍수지리박사를 어데서 모셔왔냐하면은 저 미로면 미로 도계역에 내리면은 저 쪽 면소재지 지나서 그 철로 따라서 저 도계 방면으로 올라가면 남쪽으로 이성계묘가 있어요 우리나라 이성계묘요. (이성계요?) 예 이성계왕 말이요. 거기에 지리박사 할아버지 하나가 잘 아신다 이래가지고 딱 모셔다 가지고 우리 할머니가 딱 모셔왔는데 이 양반이 뭘 말하느냐 했냐면 이러더라구요. 이 묘를 왜 이 묘를 쓸 적에 팔형제중 별자리가 하나 낳는데 벼리가 벼리가 낳는다 이거야. 별을 낳는데 공부를 많이 해야 별이 되지요 안그래요? (그렇죠) 이런 시골에서 살기도 죽을 지경인데 자식에게 무슨 공부를 시키겠어요. 우리 아버지가 거기서 몇대 흘러가면은 또다시 자식이 또다시 일어날 자손이 난다. 그래서 이 묘안에 시신은 하나도 없고 그 아이가 아주 아주 한 겁(?)이래 아주 그 안에 불덩거리래(?) 그렇게 좋대. 그런 좋은 자리를 내버리면 멸망당한대. 그래가지고 우리 동네에서 이 노인네가 33년간이나 이 동네일을 봤데. 그래서 그만큼 열심히 했다고 그 공덕비를 딱 세워놓은거지, (혹시 그 어른이 하신 일 중 훌륭한 일은 없었나요?) 문필이지요. 아주 글을 참 많이 배운 할아버지죠. (그분이 남기신 건 없구요?) 그건 잘 모르겠는데 우리 제일 막냉이 동생이가 올해 오십세살인데 저 삼화동 쌍룡회사 다니는데 종칠이가 얘가 할아버지한테 글을 많이 배웠다구요. 한 삼년이상 배웠는데 대충 이 지리를 본다구요.
④ 근덕의 지형ᅳ나비형국
(그 덕봉산에 관련된 무슨 얘기 같은 건 없어요?) 덕봉산에, 덕봉산엔 잘 모르지만 그 삼형제 산이 산봉우리가 있다가 이제 흩어져 나와 (어디서 있었어요? 그게) 응? (어디에 있던 산이에 요?) 어디 저 경상도 쪽에 있던 모양이야 (떠내려 왔어요? 세개가?) 그 산이 실려 떠내려 오다가 (쯤ᅳ) 하나는, 저 울진쪽에 하나가 있고,(아) 그 다음에 요 원덕,호산에 하나가 있고 (해망산) 어, 해망산, 거기에 하나 떨어지고, 그 다음에 여기 이제 하나 있교 그래서 그 산 삼형제가 이제 떠내려와서 만든 전설이 있어요, (저기 삼형제산 그 얘기를 더 자세하게 좀 해 주실수 있으세요?) 그 아주 자세하게는 나도 잘 몰라 (모르세요? 그냥 떠내려와서 그냥 하나씩 생긴 거예요?) 그렇지 (이게 저 첫번째 산이에요?) 그게 전설이니까,전설이니까 그런 뭐 확실한 그런 건 뭐 별로 없지, (근데 저 내려오는 전설이니까 얘기가 있잖아요) 있어도 그 이상은 별로 자세한 얘기는 없어요. (모양이 비슷하게 생겼나요?) 모양이 좀 다르지, (달라요?) 요 호산에 있는 해망산은,고건 좀 작고(에헴) 그리고 이 근덕의 형국이 말이야. (예) 옛날 노인들이 무슨 형국이다 그런 어느 지역은 무슨 형국이기 때문에 뭐이 저 가령 에-- 장군이 많다든가, 또는 이 학자가 많다든가 뭐 이런 말이 많이 나오거든 그래 여기는 근덕은 이 지형 형국이 나비 형국이라 그래 (나비요?) 어, 나비,나비형국이라고 옛날 노인들인데, 할아버지들인데 애길 들어보면 나비형국이, 나비형국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나는 사람은 외지로 나가야 이제 출세를 한다,(아--) 왜냐면 나비는 꽃을 찾아가야 먹을 것을 먹을 것을 구하니까, 그러니까 나가야 된다. 그런 뚯이야. (예) 그 또 그래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지역에서 나가 있은 사람은 다 출세했어(아--) 나 가 있은 사람은 다 출세했는데 과거 젊었을 때 그냥 그런대로 그냐 지나고 맡았어. 그리 보면 이상하지. (예) 그걸 보면, 그래서 우리들 (예) 이제 옛날부터 인제 노인 할아버지들께서 자꾸 인제 가급적이면 젊어서 어디 나가야 (예) 나도 나이 열 여섯살에 일본가서 한 5년 있다 왔어요. 와서 막상 해방되던 해에 이제 봄에,이른 봄에 왔는데, 와 보니까 뭐 어디 뭐 자연히 가게 안됐지 뭐 오자마자 해방되고 그해 8월에 해방되었으니까 그리고 이제 뭐 하다보니 나가지 못하고 이제 또 직장을 교직을 택해서 있다보니 어디 나갈 수가 없지 뭐. 그래 뭐 이 부근에서 있다가 정년퇴임했지.
(4) 장수담
① 최씨네 아기장수 설화
이 동네가 생기고,그 다음에 최씨가 들어오고,그 다음에 이제 여기에 저 저 김해 김씨 우리 가 들어오고 그래서 이제 어- 내가 나이 60인데 내 조카가 삼척에 문화재 관리를 히고 있어요. (이 지방에 유명한 이야기 없나요?) 내가 6.25사변 났을 때 나이 열다섯 먹었으니까요,그런 거 는 내가 대충 알지마는 이 지방에 제일 먼저 성가지고 들어 온 사람이 이씨가 제일 먼저 들어오 고, 그 다음에 이제 최씨가 들어오고,세번째 김해 김씨가 마지막으로 들어 왔다는 얘긴데, 그래 가지고 에- 우리 작은 할아버지가 여기 들어 오다보면 비석이 있잖아요, 여 어, 비석 불망비라고 딱 써 있는거. 이 동네에 역사가 깊어요, 리장(이장)을 통장을 30년간 했대요. 그 분이 우리 작은 댁 할아버진데 그런데 여기 최씨네에서 장수가 나와 가지고, 나도 잘 모르는데 최씨네 집안 사람이 나보다 다섯살 더 먹었대요, 그 양반의 할아버지가 몇대 할아버진지 모르지요.
장수가 낳는대요, 왜놈들이 그저 옛날에 들어 와가지고 여기에 이 장수나는 산을 다 철을 박았잖아요. 요새 우리 지리 박사들이 다 쏙쏙 알아서 뽑아냈잖아요.
그런데 그때, 최씨집안에서 장수가 하나 낳는데 이 날개가 있는데 그 자리밑에 그 언네(어린애)가 세살 네살 먹은게 눈 깜짝할새 지가 탁탁탁탁 올라 붙드라 그 얘기야. 그러니끼니 이걸 소문을 안냈대요,그러니끼니,소문만 내면 왜놈들이 그 집안을 멸종시키니까, 이래가지고 고마 그 - 그 집안 최씨네 집안들이가 이렇게 야(애)를 이렇게 앞으로 놔두다 보면은 일본놈들한테 우리가 다 전멸당하겠다 그리니 억지로 죽여야된다 그래가지고 이것이 세월을 잘 만나야 활동을 하겠는데 왜놈의 지배를 받으니까 활동을 못하잖아요. 장수가 나면 모해요? 나라는 다 왜적의 손안에 들어가 있는데. 그래가지고 내가 얘기 들어 보니까네 이 재당(?)밑에 날개가 났는데 날개 를 강제로 칼을 가지고 베 버렸대요. 그래서 이 날개를 베 버리니까 죽잖아요. 그런데 그 죽은걸 여기 묻엇다든가,저 노곡면 거기에 묻었다든가. 그러니 이 남대천에서 남대천이 우리가 쪼만할 때 볼때랑 이제는 개발을 해 가지고 이 강이 한개가 되어 버렸잖아요. 그 전에는 강이가 두개나 다리가 이렇게 15m 다리가 있었고 나무다리 놔 놓은게 사람이 이쪽끔에서 저쪽끔으로 가도록 놔 났는데 이쪽 큰 내(냇가)다리는 60cm되고 그 강 옆에 버드나무가 확 - 솔가 있었는데 그러니까 최씨네 집에서 장수를 죽이고 나니까 며칠 안 있다가 이 백마가 임자가 없으니까 하늘에서 내려와서 몇맺칠을 울더래요, 임자가 없으니까, 이 사람이 커서 나라의 큰 장수가 될텐데 그 사 람을 죽였으니까,때가 안 됐으니까 때가 됐으면 백마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그 사람을 싣고 가 버렸겠지. 어디서 뭐하고 있는지 모르지,왜놈이 무서워 가지고 그 장수를 고마 그 집안에서 죽 여 버렸으니까는 이 남대천에서 밤에 백마가 나타나가지고 그리 울더래요 몇맺칠을. 그래 울더 니마는 사라져 버렸더래요. 그 최씨라는 사람이 태어나서 몇살을 먹었는데 그렇게 힘이 좋더래 요,이런 선박같은 배 한척은 그까짓것 한쪽 손을 가지고 사람 백명이 끌어도 안돼는걸 최씨 장수 그 어린애가 한손을 가지고 댕기니까 올라 오더래요,
그 다음에 이름 난 일은 없더래요,
② 아기장수 설화
아이 세상에 발끝에 가서 돌맹이초-- 멧짐되는거로 되게 끈아나져 살쭉거리 갔다가 막아서 이레 갔다놨다가 아침이 자고나서 그 돌맹이를 제자리 갔다놓고 깡그리 내달아내 (처음부터 장였어요?) 옹 이래이 어무이 아부이가 보니 기가 막해 그러믄 깡그리 이대리 그 돌맹이를 들어다 가 살쭉거리를 막으니까 살쭉거리를 사람들이 다닐수가 있는가 막아놨다가 덜 새벽에 일어나서 그것 들어내 제 자리에 갔다놓고 이래 이래 이상하다. 장수가 나믄 애미애비 잡고 장수가 난다하더니(하품소리) 자식이가 애미 애비 잡고 장수난다고 말을 낸다고 이래 하룻밤은 자다가 (이래 이래) 자탄 밑을 보니까 양쪽 자탄밑에 (저 뭐시긴가) 날개가 요만큼 한게 양쪽에 났더라니 어미 아부이가 이래 대문에가 문깐하고 보니깐 기가 막히더래내. 잠이 한참 들었는데 야,그래 애미 죽는거 보다가 자식인 장수가 나는 걸 꺾는게 낫겠다고 와 그러나 그냥 놔돠도 되는데 애비 애 비, 애미 애비 죽였놓고 지가 장수가 난다 거말이다. 그래가지고 그 깎개를 가지고 양쪽 자탄밑 을 깎으니까 힘을 못써기고는 실름시름 앓드니만 그래 죽어가지고 장수가 그래 죽었부렸어, (근 데 죽었어요) 안 그러믄 애미 애비 잡아놓고 지가 장수가 나는데 애미 애비가 자식을 살릴여나, 부모가 죽을려나 하믄 죽겠는가? 자식을 죽이는게 낫지. 그래 죽지는 안하고 날개를 끈은께 힘 을 못켜 가지고 그랬잖은가. (그래 이제 마쳤으니 이제 한잔 잡고 또 하고, 이게 뭐인데 음료수 예요. 나 술은 못 먹는데 술 아니에요,음.) 지카 참 이뻐 (웃음소리) (야,아들 다 이뻐) 그 장수 가 덕봉산에서 했다구요? 덕붕산이가 아직도 명산이여, 그렇지만 시방 그래가지고 이젠 군대가 들어와가지고 군인 부대 차려 놔가지고 덕봉산에 흙을 다듬어 가지고 집을 질라고,군대들이 망 을 볼라구. 집을 질라구 하니깐은 송장 모가지가 길어졌어. 두재여, 딱 두자 네자. 모가지가 쑥 빠졀 놔와 보니깐 모가지여, 임자 찾으려구.
(5) 효열담
① 열녀비
(그럼 여기 열녀비 같은 건 없었어요?) 열녀비는 여기서 한 1,000m 나가다 보면 개울가쪽에 하나가 있어요, (거기에는 무슨 내용이에요?) 거기는 며느리가 시부모를 아주 극진히 모셔서 관 에서 열녀비를 세웠어. 그런건 많이 있었어.
② 이천리 김씨부인
한 이백년 될거야 되는데 그 인제 시아버님 병중에 계시는데 때는 엄동설한이야 아주 그런데 자꾸 잉어를 잡숫고 싶다이기야 잉어고기를 잉어 (잉어요?) 잉어고기를 잡숫고 싶다고하니 이 며느님이 어떻게 하더라도 그 시아버지를 봉양을 해 드려야 되는데 이건 도저히 참 방법이 없단 얘기야 그래 앞에 냇가가 있는데 그 냇가에 가서 이렇게 옛날엔 이제 치마를 입을 시기니까 치 마를 벌려가지고 혼자 그 추운데 무릅쓰고 하느님들 기도드리고 잉어 잉어를 잡게 해달라고 기도를 그리다 보니깐 난데없이 얼음이 딱 얼언데 얼음이 딱 깨지더니 잉어가 툭 튀어나 치마자락 에 안기더란 얘기야 그래 가지고 그 잉어를 가지고 와서 다려 가지고 그 시아버님을 대접했는 데 시아버님이 그 병이 완쾌를 힜다 그리고 또 이래다보니 남편을 일찍 여의었어 그래가지고 그 그 인근 뒷산에다가 묘를 썼는데 이 남편을 그 참잊지 못해 가지고 묘에 가가지고 시묘살이를 하고 그 눈물을 흘린 그눈물이 그 묘를 썼는 그 잔디가 말라 죽었던 이런 얘기라 그래서 나라에 서 가상하다 해가지고 나라에서 홍실문을 하사했지
③ 강릉 김씨
강릉 김씨라고 교관공 했는 벼슬은 교관공을 했는 해반인데 역시 옛날엔 참 가난하게 사니까 뭐 조반석죽 아침 점심은 굶고 아침 그저 밥에다가 저녁 죽이라 이라믄 잘사는 사람들이야 굶는게 보통이니까 아버지가 그렇게 병중에 계시는데 그렇게 참 밥한톨 쌀한톨 가지고 밥한개 못해드린 이 참 불효자를 한탄스러워 가지고 저 산골에 들어가서 쌀을 구해가지고 오는데 갑자기 뭐 폭우가 떨어져 폭우가 내려가지고 강물이 막 범람한 건너갈수가 있나 말이야 그전 같으면 집에서 그저녁 하머 저녁달이 됐는데 연기가 날텐데 밥을 짓는 뭐 굴뚝 연기가 날텐데 연기가 안 나 이제 아이고 우리 아버지가 지금 막 돌아가셨다 지금 굶어서 돌아가셨다 하고 한탄하고 있는데 갑자기 물이 짝 갈라지더란 얘기야 그래서 도강을 해와 가지고 그 쌀을 가지고 밥을 해서 그 아버지를 대접했다
④ 잉어각시
옛날에 옛날에 어느시대인지는 몰라도 천지도읍할 적엔지 참 한 사람이 부모도 없이 혼자 살 았대 만날(맨날) 낚시질 하러 댕겼다는 구만 하루는 낚시대가 묵-직 하다래요 그래서 그것을 잡 아당겨보니 잉어가 아주 큰 잉어 한 마리가 낚아 올려지더래요
잉어을 살리기 위해서 잘 들고와서 물동이에다 “이렇게 생긴거”(큰 단지를 그려보이며) 넣어 왔더니 만날(맨날) 살아있어 그래놓고 만날(맨날) 자기 볼일도 보고,낚시대에다가 고기도 낚고 이러다보니 날짜가 지났겠지 한달 두달이 갔기나 하루는 어디를 갔다오니 아랫목에다 밥상이 한 상 있는데, 열어보니 김이 잘잘 끓는 밥을 해 왔더래 그래 ‘이상하다’하고 그 밥을 먹었대요. 그 이튿날 또 나갔대 나갔다 들어오니 또 그래 밥상을 해서 아랫목에 왔더래 김이 말랑말랑 끓는 밥을 해서 왔더래 ‘이상하다’ 그러고 또 먹었대 그 이튿날은 가는 척하고 자기 다락에 올라가 숨 어서 가만히 자기 올 시간이 다 되어가니 물속에서 “화다닥”하니 아주 참 예쁘고 잘난 처녀가 아주 참 절세미인이 나오더래
손을 걷고서는 손도 씻고서는 물을 부어가지고는 앉쳐가지고,밥상을 들고 들어가더래 이 사 람이 얼른 내려와서 손목을 확 잡으니까는 “서방님 나를 너무 일찍 잡으십니다”그러더래
그래 둘이 부부가 되어 살게 됐대 그런데 잉어가 뭔가하니 용왕님의 딸이라 유람 차 보러왔다 가 낚였대. 그래가지고 둘이 골짜기에서 살며는 어데 사람이가 각시를 만났는데 천하미인이라 소리 안하겠어? 그래 소문이 나서 고을 원님이 알았단 말이야 그 남편을 불렀어 웬일인가? 하고 가보니까 원님이 하신 말이 "자네 처가 그래 천하미인, 절세미인이라 하던데 내가 장기를 둬가 지고 내가 이기면 자네 처를 나 주고, 내가 지면 고을 재상을 다 준다” 자네 처를 나 주고 약속 을 하더래 그래 그 사람은 장기도 못 둬 봤지만 어떻하나? 고을 원님이 하라고 하는대로 “그럼 그럽시다”대답하고 왔대요 그래 와가지고서는 그래 가니 “뭐라 하대요?” 다른게 이니고 나를 장 기두기내기를 해가지고 장기내기를 지며는 자네를 주고, 또 내가 이기면 고을원님이 재산을 다 준대요 이러더래 그래 각시가 이리뛰고,저리뛰고 가르쳐 주더래 그래가지고 장기를 가르쳐 주는대로 가서 원님하고 마주앉았더니 이 사람이 이겼다 그럼 천재지 용왕님 딸인데 용왕님이 하늘에다 얘기하니 그렇게 되는 거지 이사람아 자네 집에 말이 있는가? 내일은 우리가 해가지고 내가 이기면 재산 다 주고, 한번이면 고만인데 이놈이 그러더래,지가 이기면 여자 달라고..... 말도 없는데 내일 시합을 하자니 어떻하니? 그래 각시가 그래요 쪽지를 써서 용왕에게 보이니 말이 하나 휑하니 솟아왔어 이걸 타고 가라하더래 그래 그말 타니 이 사람 원님 말은 뭐 번들번들 하지뭐. 웬만치 가다가 돌아오기로 약속을 했거든 이사람이 먼저 갔다 돌아온거야 이겼다 이기면 이사람이 가만 있어야 하는데 이 사람이 하도 두번 이겨놓으니 기뻐서 “허치미!(허치미요?)” 좋다고 하는 말이야
했더래 자네집에 허치미라는 짐승이 있는가? 막 땀이 나게 지랄을 하더래 온 마을 사람들이 다 그러더래 하도 땀이 나게 그러니까 있다고 그랬어 있다 그래놓고는 이 사람 수심이 가득 찬 거야 이젠 각시를 뺏길 참인데 어떻게 하나? 수심이 가득 차 집에 돌아왔는데 각시가 “당신 오 늘 이겼소?”“이겼다네”“왜 오늘 얼굴에 수심이 가득 차 돌아왔는가?”그러니까 내가 두번 이겨 말한다기에 두번이겨 좋다고 허치미 말하니까 당신 집에 허치미있다고 했네 자네는 이제 원님 아내가 되네 그러니까 욕지거를 하더래나 내일부터 원님의 아내가 되니 자네는 흔자 살아라 이기면 고만이지 왜 허치미하고 했느냐 하며 욕지거리를 하더래 난 내일부터 원님의 아내가 돼 간 다 이 사람이 잠도 못 자고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그래 있다보니. 아침에 원님에게 허치미를 몰 고 갈 판인데 자기 아내가 쪽지를 써가지고 뒷산을 보고 뭐라고 지껄이니까 허치미란 짐승이 산 에서 내려오더대 이거를 가지고 가라고 고을 원님에게 몰고 갔다. “자네 이름이 허치미인가?”했 더니,허치미라고 하니,자네 “허치미”하라고 해보게 “허치미”해라 하니 “허치-미!” 입에서 불이 막 나오는거야 “허치-미!” 불이 나와가지고 고을 원님 집에 불이 다 붙는다. 막 불을 쏘지 막 탄다 “아이구 이 사람아! 고만 그쳐라”하게 하니,“고만 그쳐라!”하니 불 안나오더래 고을 원님집 한 반이 다 탔대 고을 원님 재산 다 뺏겨보리고 원님도 못하지뭐 그 사람이 원님 돼 버렸지 그래서 잘 먹고 잘 살았지
(6) 동물담
① 호랑이
처녀가 인제 밤으로 해질후에 머리를 감지마라 그러거던 응 (왜요?) 왜 그러냐 호식을 해간다 호랑이 잡아간다 이 얘기야 그래 인제 그 처녀가 그 뒤란에서 인제 그 머리를 감더니깐 호랑이 가 고만 그참 전설이니까 그렇지 호랑이가 삼켜버렸단 말이야 그래 인제 그런 적도 있고 또 뭐 인제 사람을 하나 삼켰는데 그 사람이 뱃속에 들어가가지고 깜깜한데 아무리 찾아도 나갈 구멍 은 없고 그 호랑이 잡는 집안 사람이 인제 뭐 그랗단 그런 뭐 아주 전설에도 허설에도 아주 그 거지 그러니깐 찾아보니깐 쪼만한 칼이 자기 주머니에 들었단 얘기야 배 호랑이 뱃속에 들어가 찾아보니까 그래가지고 나갈 구멍을 찾아보니 구멍이 안보이드란 에기야 그래 자꾸 이래끄나보 니까 인제 그 항문이 보였던지 그래 인제 자꾸 끊으니깐 호랑이가 고만 쓰러자 빠졌단 얘기야 (하하) 그래서 모두 인제 고향 찾아갈 도중에 인제 그 호랑이 죽었다 그라니깐 호랑일 해부해볼 때 속에서 안에서 사람소리가 자꾸 나니깐 그 총각이 살아났단 그런 전설도 있어 그건 뭐 허무 맹랑한 전설이지.
② 꾀많은 토끼
호리란 놈이 응 사람, 참 아저씨 하낙이 소가지 하러 가니까나, 소가지라고 또 아는가 (솔가지요?) 응응, 소가지하러 가보이까 이눔으 호래이가 그 추믈 끌뜩끌뜩 늠그므 잡아먹겠다고 좋다고 직직댔어, 지 혼자 드러와 직직댔지. 그러다가 보이니까 아달치게 와 가 내가 너를 잡아먹겠다 이래. 그래 이눔이 능글 내기를 내가 낼 모레 생일 인까나 생일 지내가거든 내가 오께 잡아 먹어라. 이리이 호래이 그만 사람한테 그마 속았어. 그날 대분 바아 먹았음 잡아먹었는데. 오다 보이깐 퇴끼란 놈이 깡중깡중 뛰어 가는데, 아이고, 옛날에는 싹 짐승도 말했대. 돌미도 싹 그르고, 뭐 나무두 그르고 말했대. 토끼 아저씨 내 말 좀 들으오. 나는 오늘 호래이 아저씨가 날 잡아 먹을라 하는 거 낼모레 내 생일이니, 모레 아침에 내 생일이까나 생일 재니가고 내 그날 오끼 잡아 무라켔다 이래. 토끼가 으세 많아 토끼 본 으세가 많잖아. 으세 많아가지고 요놈 토끼가 뭐이라 시켰나 하믄 아이고 저 보루막모자 쓰고 뭐시기 저저 비네 적삼 입고 본대라고 있어. 또 비끊는 본대. 본대 그거 둘러 미고 오라 하더래. 그 끈 아저씨 다 갈고 아주 마른 돌끈고 하니 갈아가지 오믄 호래이한테 오믄 응, 지를 그래 한 벌 갖다주믄 지가 인제 그래 인제 본대 가지 쓰고 인제 토끼가 인제 인제 저 호리 하믄 소리 지를 판이야. 호리, 그 저저 소가지 하는 아이씨요. 아이씨요. 서울서 내가 포수가 내려 왔는데 아이씨 호리 한 마리 봤나 무르니 이놈으 호래이 한단 소리 몬 봤대요, 몬 봤대요. 그기 그라 씨기(시키) 아저씨를 씨깄다고. 몬 봤다 하라 하끼니 그땐 내가 그 앞에 껀 뭐이나 하믄 저 놈으 호래이 떠끄지(떠껑지?) 하라 씨깄다. 이렇게 알고 (웃음) 그럼 그거 강포수가 내려 왔다 하니 그러이까나 몬 봤..이 호리이 있다 그 소가지 하는 아이씨보고 몬봤다 하라 하니까네 호리 몬 봤다 하니까네 그럼 그 당신 앞에 그그 뭐요. 앞에 있는 거는 뭐이나 하니까네 이눔으 호래이가 떠끄지하라 떠꺼지요. 이러이까 인제 포수는 싹 갈라하는 거는 되는기 아이고, 떠꺼지믄 니 그 한 분 내리 찔러봐라 이래났거든. 그래 첫차로 고마네 호래이 장대이 썩어빠진 놈으 장대기 고만 그래 호래이 한 바리 잡아 가지고 잘 살았대. 호래이 소가지 하던 사람 잡아 먹을라 하다가... 이얘기 구수하제. (네-) 토끼한테 토끼가 그래 꾀가 많대. 그리께 인제 용왕굴에서 잡아가지고 오란 놈 토끼가 뭐 초하루 보름은 속에 간이 있고 초하루 보름 넘으며는 간이 없다고 그래 꾀를 그래 피우잖나.(전주옥)
(7) 인과응보담
① 도깨비 방망이
옛날에 옛날에 어떤 시대인지는 모르지 우리나라가 대한민국이 다 설적에 그랬지 몇백년 전인 지 몇천년 전인지 뭐 옛날에는 백리 십리에 집하나씩 있었지 그런데 사는데 가난해 가지고 소금 을 사가지고 팔러 댕기는 사람이야, 그래 소금장사가 날씨는 덥고 오래오래 가다보니 그늘에서 쉬다보니 깨금나무에서 깨금(열매)이 하나 떨어지더래. 그사람이 얼른 그걸 주었대. “이거는 우 리 할배 주고”그러고 있다보니 또 하나 뚝 떨어지더래 “요거는 우리 아베 주고”
그러니 또 뚝 떨어지더래. “아 이거는 내가 먹고”했더니만 다신 안 떨어지더래. 세개를 가지고 가니 어둑어둑 해져서 나무도 없고,집도 없고 그래서 그래 이 양반이 개똥벌레 같은 불빛이 빤 들빤들 불이 모이더래. 그래 그래서 커다란 떨재집(?)이 있더래. 집에 들어가 암만 소리를 질러도 주인이 없더래. 날은 저물고 갈대 없어서 들어가 봤대. 그랬더니 참 방도 여러개고 인기척도 없고 해서 어떻하나 하다가 그집 다락에 올라가 이렇게 있다보니 한 밤중 되어 산도깨비, 장승 들이 마구 오더래. 막 와가지고서는 장수(호랭이)는 아무 말도 안해쓴데 밑의 께들은 “아이구야 인내(사람냄새) 난다. 인내다. 야들아 인내는 무슨 인내야 밖에 나가서 떠드랑 방맹이 가져오니 뭐 밥 나와라 떠드랑 하면 밥나오고 쌀나와라 떠드랑 하면 쌀 가져 와라, 떠드랑 나오고,온갖 것이 다 나오더래. 고기나와라 떠드랑 하면 고기 나오더래. 그래 이 사람이가 저 먹는다 하던 깨금을 입에다 물고 깨무니 “쿵쾅다당” 소리가 벼락치는 소리가 나더래. 이놈의 짐승들이 마 이 천 녀먹은 집이 무너진다고 산도깨(?)가더라고. 그래 내려오니 고금이고 나발이고 또드랑 방망이 가 지고 자기집에 돌아갔다. 각시고 아들이고 모두 불러가지고 그래가지고 쌀나와라 떠드랑 해서 쌀을 씻어 밥을 해먹고 며칠이 지나서 옷나오라 하면 옷나오고 돈나오라 하며 돈 나오고 별게 다 나오더래 또깨비 방망이가 그래 뭐 부자되어 사니까네 이웃 사람이가 그걸 물어 봐 가지고 그래가지고 그 사람도 소금 한 포 있단 말야. 사가지고 팔러 가다가 그늘에 나무 이리 둘리보니 깨금하나가 뚝 떨어지더래, 이놈은 다짜다짜 이놈은 “내가 먹고”했더래. 그래 다음 뚝 떨어지더래.
그제서야 이건 우리 할배 주고 하고 3개 있더래. 이 사람이 이걸 가지고 오래오래 가니까 불 빛이 빤들빤들 보이더래 떨재집이 있는데 다락에 오라갔더래. 짐승들이 온갖 짐승들이 다와가지 고 달려 들이더래. “인내난다. 인내난다”큰 호랭이가 “전번에 왔던 놈이 왔다”올라가 청가랭이(청가랭이요? 팔들고 다리들고 목들어)
씌어 가지고 내려왔지. “문지방에 놓아라” 떠드랑 방맹이 가져온다. 그래 가져오니까네, 야들 아 야들아 우리 이 자를 잡아먹으며는 한 사람도 안 돌아간다, 이 많은 숫자에 먹어봤자 한 사 람도 안 돌아가니 떠드랑 방맹이 가지고 이 사람 자지를 늘구자. (아들 데리고 앉아서 뭐하나?) 한발 늘어나 떠드랑하면 한발 늘어나고 두발 늘어나 떠드랑 열다발 늘어나 떠드랑 하니 열다발 까지 늘어나 그래가지고 이 사람이 올수 없거든. 그래서마 팔에다가 시리시리 안고 감아가지고 자기집에 찾아가는 거야 각시가 아침에 날이 이래새어가지고 소 여물 끓이러 불을 사러니 문가 에 벌건게 나와 있더래. 그래 작대기 가지고 뱀이라고 할 수 없어서 이놈의 독사가 세상에 부엌 께 왔냐 딱 때리니까 이이고마 그게 안 없어져 그래 또 때렸대. 그러니까 어디서 “아야” 그러더 래. 그래가지고 뱀을 따라가니까 자기 남편까지 왔더래.
그래 왜 그러냐 그래가지고 그랬데,그래 아그 집에 가서 떠드랑 방맹이 빌려오라 해서 각시 가 새벽에 가서 떠드랑 방맹이 가져 왔대요 그래 각시가 한 발 줄여라 떠드랑, 두발 줄여라 떠 드랑 그래보니 열다섯발 다 줄였더니 딱 줄어 본 모습이 돌아왔어, 그래가지고 살다가 살다가보 니 대부자가 되어 잘 먹고 잘 사는데,뭐 이것들은 천지조화(천지조화)로 지 먹는 것은 뭣하고 남이 잘 사니까니 부러워서 흥부놀부 한가지지. 그래서 다 망하고 그 사람들은 참 잘먹고 잘 살 아서 이웃 도와주고 그렇게해서 번성해서 잘 살더래.
(8) 기 타
① 반쪽이 아기
옛날 그게 어딨냐 하면 대궐에 숙이네라구 대궐에 옛날 함마니 틴정집이란 말이다. 옛날 할맘 이 친정집이 이리 살았냐 하믄 저 자식 볼라구. 하루는 중이 오더래 동냉 왔더래. 그래 와 가지 고 뭐라 하나 하믄 뭐시 자손을 못봐가지고 그게 뭐이라 될까(재떨이 누 저가 가져 온다,웃방 가 가지고) 예을 하나 주더래, 옛을 하나 주는거를 이거를 바가가 딸 송아나 보라 그래 그 이틀 날 아침에 갔는데 하나 누라는걸 가지와 가지고 한냥 했으면 괜찮은데 고만에 그걸을 노나가지 구 할바이아가 반갈라 가지구 먹었는데 열날 차 가지구 얼라를 낳았는데 반반 쪼가리를 낳았대.
② 성황당 얘기
내가 이 성황당 얘기 좀 하죠. 이 동네 성황당이가 어디 있었냐면 저 마을 귀퉁이에 있었어 요. 저 아래 거기 있다가 인제 세월이 흘러가지고 거기 성황당 옮긴 지가 지금 한 사십년이 될 겁니다. 사십년이 되는데 안옮기고 마을 부락귀퉁이에 있을 지(때)도 1년에 한번은 그걸 했어요. 굿을 했잖아요, 어- 농사 잘 되게 해달라고 하고 고기 많이 잡아 달라고 거기에 이제 분향제를 지냈잖아요. 지내는데 그래가지고 몇년간 그렇게 하다가 요즘에는 젊은 사람들이 그래서 그런지 잘 안할려고 그래요. (거기엔 어떤 신을 모시죠?) 여기는 남신이죠. 남신인데 내가 들어보니 우리 할아버지가 성황님댁에 갔다 이런 소문이 누가 꿈을 꿨는지 그 이름이가 김창연이래요. 그 할아버지 이름이가 김창연. 그런데 이 노인네가 돌아가셔 가지고 덕산 성황님댁에 왔다. 이런 소리가 있더래요. (그분이 뭐하시던 분이시죠?) 동네에서 리장을 33년간이나 했으니끼니 돌아가셔 가지고 그 귀신이 성황당에 갔다 누가 나이 많이 드신 분이 꿈을 꿨다 하더래요
IV. 민 요 (民諸)
1. 제보자-- 강대규(62세) 삼척시 노곡면 하월산리 2구
김맹열(67세) 삼척시 원덕읍 호산4구
김상철(81세) 삼척시 노곡면 하월산리 2구
김월매(74세) 삼척시 원덕읍 용화리
김재봉(70세) 삼척시 도곡면 상천기리 1반
김정회(56세) 삼척시 노곡면 하월산리 2구
김필선(78세) 삼척시 원덕읍 용화리
남정욕(65세) 삼척시 원덕읍 호산1구
박능이(78세) 삼척시 원덕읍 호산4구
박준억(73세) 삼척시 근덕면 동막2리
박하연(78세) 삼척시 노곡면 하월산리2구
신혜선(76세) 삼척시 노곡면 하월산리2구
윤순년(66세)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
이순여(66세) 삼척시 노곡면 상천기리1반
이순희(71세) 삼척시 원덕읍 호산4구
2. 내용 분류 -- (1) 아라리
(2) 메나리
(3) 희다지 노래
(4) 난봉가
(5) 어랑타령
(6) 뱃노래
(7) 베틀가
(8) 자장가
(9) 시집살이요
(10) 농부가
(11) 상여소리
(12) 청춘가
(13) 노래가락
(14) 잡가
(15) 사설
(16) 기타
(1) 아라리
o <아라리>
① 사람살기 좋기는 양강논 이란데
노곡면 하월산 삿갓봉이 밑에서
다 늙어 왔네
② 놉시다 놉시다 절기 젊어 놉시다
늙고 병이 들면 다 못 노리라
③ 왜 가실라오 왜 가실라오
꽃같은 날버리고 왜가실라오
④ 정선읍네 물레방아는
물살안고서 사시장철
돌아가는데 우리집에
저 낭군은 날안고 돌줄을 몰라요
⑤ 허공중천에 달뜬것은 구름없는 탓이요
젊은여자 맘들뜬것은 임없는 탓이요
⑥ 저건네 저묵밭은 작년에도 묵더니
올해도 날과같이 또묵어지네
⑦ 세월아 봄철아 오고가지 말아라
목넘어 둘적에 총각낭군이 가자고 할적에
나 왜못갔나
⑧ 아아 봄철아 오고가질 말어라
알뜰한 이내청춘이 다 늙어가요
⑨ 귀딱머리 자총자총 목넘에 들적에
총각낭군이 가자할적에
내 왜 못갔느냐
o <아라리>
① 방석자리는 깊으네 정만든듯
속처리 아무리 하여도
깁중만 떠언다
인병이 돌아서
떠덜이 수우고
금옥만 질라 ~ 도
실속이 좋오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이요
② 얼었다가 살작녹으니
또 봄이 왔네
개우장가이 푸른푸른
날가잡고 하더니
온산천이야 어우래저도
가잔말이 없구나
③ 신정성 아라리는 구강난조요
신갈보 흘개기는 만만찮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를
나를 넘겨 주소(아이히히----재밌다)
o <엮음아리랑>
① 에우라지 뱃사공은 배좀건너다오
싸리밭골 익은 내 동박이 다쏟아진다
----박자변화
우리네야 서방님은 잘났던지 못났던지
한짝눈은 새카맣고 한짝팔이 곰배팔이
한짝다리 찔찔끌고 참나무 오질개
걸마 질어지고 삼척뒤뜰이 장으로
----박자변화
소금받으러 왔는데
백봉령 굽이굽이를 조심조심 하시와
② 앞난산이 뭉청뭉청 디딜평전 고급평지
전차마차 기차자동차 인력거 똘똘딸딸
뚤뚤잘도 돌아만가는데
우리집에 낭군님은 왜 날안고 돌줄 모르와
③ 울타리 밑에다 산갈아 놀고서
작년 오셨던 정든 내 낭군은 고대고대 안오나
우연이 싫더냐 남의 말을 들었소
날만나 보기만 하며는 생짜증 내와
가는데 쪽쪽에 정을 들여 놓고서
이별이 자꾸 잦아서 정말 나는 못살아
개우롱가에 미나리 채소야
니 무슨 죄를 지어서
큰아들 열손끝으로 칼침을 맞나
개우롱가에 오는 푸름에
날가시다 하시더니
이온산천이 다우거져도
날가잔 말이 없소
④ 청자하니 뒷동산에는 푸른청자
가지가지 꽃화자하니 구비구비는 내천자라
동자야 먹갈아라 이 먹에다 답장쓰자
한자쓰니 눈물이요 두자쓰니 한숨이라
눈물은 흩어져 한강수되고
한숨은 흩어져 동남풍되리
o <정선아리랑>
임이 없는 이 강산에는 어야
돈이나 벌면은 살으리오
임이없는 이강산에는 누구야 믿고 사나
총각이 오심라면은 초저녁에나 오지
대번에 잠든 사람을 깨어놓니
생골머리가 아파
요놈의 총각아 내손목을 놓아라
물같은 손목이 급히도야 뛴다
강건너 떼뱃사공아 날 실어다 강건너 주소
산천에 오동익어 다 쏟아지네
쏟아지는 동박은 갈잎에 묻히지마는
나날이 기다리던 우러님은 어느 시대 올라요
ᄋ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나주소
아리랑 고개다 주막을 짓고
나날이 바랐고 기달래도
우러님은 안오시고 팔로행각이 다지나가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나주소
ᄋ <삼척 아라리>
설중에 매화는 몽중에도 피는데
우리가 요로콤 만내기이 천만이로구나
월백에 설백에 천지백을 하니-
산삼 야심하니나 겹소심이라
당신이 갈라면 제 진작이나 가지
남의 청춘 다 늙히고 왜 가실라오
아리랑 고개는 열두나 고개-
정든임이 오실 고개는 한고개로다
실리야 앞산에 줄밤나무야 많이 자꾸 널어라
작년에 봤던 유정님을 또 다시 만나자
산에야 올라서 임의 생각을 하니
풀잎이 메두메두야 눈물이 인다
우네우네 누견새 우네
두시농산 참머루 밭에 누견새 우네
못가느니 못가느니 못가느니
심아심경 정들여놓고 못가느니
아리아리 스리스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같이 넘세
임야로 하여금 빙빙 몸만
삼신산의 불사약도 무효로다
아리아리 스리스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같이 넘세
술아니 먹자니 맹서를 하고
술보고 친구보니 할 수 없네
아리아리 스리스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같이 넘세
(2) 메나리
o 〈메나리〉
① 아침이슬은 금빛이슬이요
저녁이슬은 외빛그늘이라
이히히히 우 -----
② 명사십리 해당화여 꽃진다고 스러마라
동삼월 섣달을 다 두었다가 명년 춘삼월이면 다시 오느냐
돌아왔네 돌아왔네 오색물새들은 다 돌아왔는디
인생한번 죽아지면 다시 몬오느니라
신작로 옆에다 줄모를 숨어 자동차 바람에 고개질한다
o 〈메나리〉
① 녹음방전이 성하시느냐 해는 수이노 가건마는
동지섯달 긴기나밤은 왜 길기도 기나
(이거 시내에서 하는 소리여) 。
② 산천초목이 물과 육지도 임자가 있는데
이 내몸은 무엇을 생기사 임자도 없나
암능선 싱그리 단풍은 구시월 한때나 뜨지만
이 내몸의 속단풍은 시시때때로스 는다
③ 신정선 아라리는 구강난조요
신갈보 홀개기는 만만찬구나 오헤헤 〜
④ 이 논빼매 줄모를 심어 금실 그음실 영화로다
정천밭에 〜 여울매도 두고온 매니 증섬참(점심참)이 늦어간다
증섬참만 참일런가 담배참도 참이로다 우후후
⑤ 수여이 머이야 다 모인고데 맘가고 뜻간고든 한고지로다(좋다)
아침뱉테 만난친구 저녁 그늘에 이별일세 우후후
⑥ 물어무어라 청성물어 ~ 야 무이 바빠 이리가나
고사 이리 적막해서이 대합실로 늘어간다
⑦ 넘청넘청 저 별이 있거태 부자없는 양오라배
난도 죽어서 남자가 되여 아내부텀 건자보세
⑧ 저울(정월) 소학 덜구바라
이강저강 속녹강에 신선노던 소학이라
공상이십 덜구바라 야월중청 너른바다 둥실 뜨는 달이구나
⑨ 색시 색시 할적에 총각의 원이나 풀거를
나무 가문에 가고 보니는 그것도 후회가 되는데
⑩ 가이기야 거겨하니야
가이벗는 내 신세 그지없이도 되얐구나
⑪ 오라바니 장개는 정우 명년에 가고
검은개 팔아서 날 시집보내 주오.
o 〈미나리〉
① 오돌독이 춘야월에 달도 밝고도 명랑하다
아침나절 만낸 친구 저녁나절에 이별이요(이후)
② 구용붕에 꽃을 꺾어 들고 보니는 상사화요
만수산에 잘있약채 먹고 보니는 불로초라(이후)
③ 월출봉에 달뜨거든 옹녀봉으로 임 찾아가고
일출봉에 달뜨거든 성님뜰로야 밭메러 가세
④ 칠년때언 가뭄날이 빗발 같이로 사랑하고
고연 지수 장인날이 해볕같이로 도와주데(이후)
⑤ 나물먹고 물마시고 호미 청사밭을 가니
대장부 살림살이 그만하면 행복일세
⑥ 천하장사 힘을 빌어 만리장성은 쌓으지만
만고영웅 큰도량이 어찌하여 그만일까(이후)
⑦ 삼사제로 배운 교육 사서삼경의 교육인데
불효 부모 불경 존장 반포새만도 못하더라
⑧ 달을 이고 호미차고 집에라고야 들어가니
대문안에 청삽살이 몰래 보고서 짖고(이후)
⑨ 우네우네 소가우네 또리인 뜰에서 소가우네
(이후)녹음불량
⑩ 관동제일 죽서루를 귀경하러야 오섰는지
⑪ 남양 뜰네 넓은 밭에 밭갈라고야 오셨는지(이후)
⑫ 이왕지사 왔던길에 한골밭이나 갈아보자(이후)
녹음불량
o 〈미나리〉
① 명사십리 해당화여 어이 꽃이 진다고 서러마라
내년 삼월 봄에 오며는 어이 너느 다시 피느니라
우리 일상은 한번가면 어느천년에 다시 오나 이후후
② 반달같은 아주머니가 새벽같은 점심밭코
점심밭고리 떠 돌아온다
담배참도 참이라는데 점심참이 늦어간다 이후후
③ 오늘갈란지 내일갈란지 병수병마가 없는데
굴다리 밑에서 줄복승아 어느 누가 심었나 이후후
⑶ 회다지 노래
o <회다지 노래>
강원도로 몰아드는 금강산이 명산인 데
그 산 경기도 이 산으로 몰아 주 어하 덜구야
경산도로 내려 가서 태백산이 명산인 데
그 산 정기도 이 산으로 몰아 주 어하 덜구야
전라도로 내려 가서 지리산이 명산인 데
그 산 정기도 이 산으로 몰아 주 어하 덜구야
함경도로 올라 가서 백두산이 명산인 데
그 산 정기도 이 산으로 몰아 주 어하 덜구야
o <회다지 노래>
에헤야 덜구야 강원도라 금강산이 팔도에도 명산이라
에헤야 덜구라 충청도 계룡산이 팔도에고 명산이라
전라도라 지리산이 팔도명산 제일이라 에헤야 덜구야
이 산 정기도 아사오자 에헤야 덜구야
경상도라 태백산이 팔도에도 명산이라 에헤야 덜구야
평안도라 묘향산이 팔고에도 명산이라 에헤야 덜구야
그 산 정기도 아사오자 에헤야 덜구야
이절씨구 삼년안에 아들나면 정승이요
에해 구년만에 정승판사 점지하고 에헤야 덜구야
자저고향 잡은 자리 아들나면 효자낳고
에헤 딸을 나며 효녀낳고 에헤야 덜구야
그 산정기도 아사오자 함경도라 태백산이 팔도에도 명산이네 에헤야--
그 산정기도 아사오자 에헤야 덜구야
우리나라 삼천리 강산 에헤야 덜구야
방방곡곡 퍼진운생 에헤야 덜구야
꽃이 피고 잎이 베끼자 에헤야 덜구야
만세만세 만만세야 에헤야 덜구야
부국강병이 되어보자 에헤야 덜구야
(4) 난봉가
o <난봉가>
자 저 좋을씨고 지화자 〜 좋을씨고
어찌나 좋은지는(존지는) 모르겠네 (좋오타)
화락중생 만화방천
때는 좋오타 벗님네야
죽장막대 단포자로
천리강산을 들어가니
폭포도 자리좋아
여산이 여기로구나 (좋오타)
얼씨구나 좋다
저절씨구 아니노지는 못하리라
돈잘쓰면 한량이요
돈못쓰면 젖망나니
얼씨구나 좋오타
저절씨구 아니노지는 못하겠구나
(아는데 숨이차 그 해수욕장 주변에……)
(5) 어랑타령
o <어랑 타령>
산이 아무리 노파도 소나무 밑으로 돌고요
여자 일생이 아무리 좋아도 남자 밑으로 돈다네
어허야 디여라 허송세월을 말으라
한짝다리 덜렁 들어서 연락선에다 실고요
고향산천 놀아다보니 눈물 저절로 나누나
에헤야 디여라 허송세월을 말으라
ᄋ <어랑 타령(김재봉)>
허령타령에 본조장은 신고산 나루짝이요
시사시까미 본조장은 경사십리 마찌로다
어렁어렁 어허야 에효 좋소
이것도 내사랑인가(이렇게)
에헤 강건너 저쪽에 소첩을 두고서
니 못오고 내못가니생이별이로구나
어령어령 어허야 어효 좋소
이것도 내사령(사랑)인가
o <어랑 타령>
산나물하러 갈거나 물나물하러 갈거나
우리오빠를 데리고 저 불놀이를 살거나
어랑어랑 어야 어야디여라 사람이 많아서 좋구나
갈바람이 솔솔 불어 낙엽이 우수수지고요
귀뚜라미 우는 소래 사람의 간장이 다녹네
어랑어랑 어야 어야디여라 사람이 많아서 좋구나
에 건네 불도다 에 불이오 영선에 길닦기 좋고요
일본대판 전기불은 영사진찍기가 좋구나
어랑어랑 어야 어야 디여라 사람이 많아서 좋구나
에 참깨 들깨가 노는데 아주까리는 못노나
어랑어랑 어야 어야디여 사람이 많아서 좋구나
아주까리 노는데 우리청춘은 왜 못노나
어랑어랑 어야 어야디여라 사람이 많아서 좋구나
에 함흥차 유리는 햇살에 번쩍거리고
우리오빠 금니는 웃음에 번쩍거리네
어랑어랑 어야 어야디여라 사람이 많아서 좋구나
(6) 뱃노래
o <뱃노래>
어야디야 어기야디야 어기야 디야 ~ 어어어어
숭님바다가 배다칠라 이구야야 염려마라
어야 디야 어기야디야
달은 밝고 명랑한데 고향생각이 절로난다
어야디야 어기야디야 어기야 디야
허랑강풍 불지마라 아까운 청춘 다 늙는다
어야디야 어기야디야 어〜 야
o 〈뱃노래〉
에야노야 노야 어야노 야노 어기여차 뱃놀이 가잔다
어스름 날밤에 단둘이 만나서
울리고 달랠적에 왜말을 못했나
에야노야 노야 어야노 야노 어기여차 뱃놀이를 가잔다
일본 동쭈니 얼마나 좋아서
꽃같은 나를 두고서 연락선을 타느냐
어야노 야노야 어야노야노 어기여차 뱃놀이를 가잔다
작년같은 슝년에도 이밥을 먹었는데
올같은 색시풍년에 왜 장가를 못가나
에야노야 노야 어야노 야노 어기여차 뱃놀이를 가잔다
저 건네 저 묵밭이가 작년에도 묵더니
올 금년 날과 같이 또 묵어지누나
에야노야 노야 어야노 야노 어기여차 뱃놀이 가잔다
(7) 베틀가
o <베틀가>
베틀다리 양주다리 눈썹대는 두성제요
이옛대는 삼형제라 울림대는 호불애비
울아버지 세울양반 울어머니 진주이가
우리형님 대궐각시 우리오빠 세울선배(선비)
울아버지 동전댕기 울어머니 바담댕기
우리형님 저반댕기 내하내기 뒤른댕기
담안에다 누를놓고 담밖에다 춘천(추천)메고
누를한번 떼어보자 춘천한번 떼어보자
댕기함상 이라꾸나(잃었구나) 올라가는 신광성아
니라오는 팔광성아 댕기함상 저였는가
저였기사 저였네만 각시많아 몬주겠네
봉갑실네 봉갑실네 이천년에 물라주게
각시많아 몬주겠네 삼천년에 물라주게
그 댕기를 돈을 주고 받아가 주어라
그 아가씨 뒤른 댕기 〜
(그렇게 잘먹고 잘살고 그래서 이 세상에 너도, 나도 사람이
이사람 저사람 생겨서 세상이 생겼다는 얘기지)
*산천년을 주고서야 그댕기를 다시받아
머래다가 디디고서 그제서야 잘살았네
옛날에야 잘먹구야 잘살았네
ᄋ <베틀가>
베틀을 노세 베틀을 노세
옥랑칸에다 베틀을 노세
낮에 짜면은 일광단이요
밤에나 짜면은 월광단이라
일광단 월광단을 다짜가지고
어느 서방님의 와이셔스나 지어나 줄까
(않하다 하니 안되는데요) '
o <베틀가>
오는 날은 하 심심하여 베틀이나 놓아볼까
에헤야 베짜는 아가씨 베틀노래 사랑노래 수심만 끼노라
이베는 삼형제요 이내몸은 독신이라
에헤야 베틀짜는 아가씨 베틀노래 수심만 끼노라
낮에 짠것 일광단에요 밤에 짠것 야광단이라
일광단 야광단 다짜가지고-어느 낭군에 시집을 가나
에헤야 베짜는 아가씨 베틀노래 사랑노래
수심만 끼노라
ᄋ <베틀가>
베짜는 아가씨 베틀노래를 불러나 보자
이엣대는 삼형제요 눌림대는 독신이요
밤에 짜는 건 야광단이요 낮에 짜는 건 일광단이요
일광단 야광단 다짜가지고
어떤 곧으로 시집을 갈거나
(8) 자장가
o <자장가(박하연)>
자장자장 우리아가 멍멍개야 짖지마라 우리아기 잘도 잔다
부모님께 효자동아 형제간에 화목동자 나라님께 충성동아
자장자장 우리아기 우리아기 잘도잔다 잘도놀고 잘도잔다
나라님께 충성동아 자장자장 우리자장
o <자장가>
자장 자장 자자장 아가야 자장자장 아가야 자장자장
우리엄마는 니를 두고 어데로 갔나
자장자장 우리아가 잘도 잔다 자장자장
울지마라 울지마라 니가 울면은 내눈에서 피가난다
자장자장 자장가를 불러주나 잠자거라 자장자장
아가야 자장자장 잠자거라
(9) 시집살이요
o <시집살이 노래(김정회)>
들꽃치마야 돌돌 말아서 옆옆이 끼고
총각낭군이 가자할적에 나무 왜 못갔나
황금모지야 신대신대 길닦아나 놓구요
우리도 죽어여지면은 어디로 가나
형님아 사촌형님아 친정이라 안가고
친정이라 갈라고 하니야 쌀이 있어야 가지요.
앞뜰에는 찰배갈고 뒤뜰에는 미배갈고
미떡치고 찰떡치고 영기 잡아 우찜치고
친정친정은 친정으로 어서어서 갑시다.
성님성님 성님성님 시집살이 어떻다오
성님으는 잘 사니야 노랑칠기 끝에 메고
나는 나는 못사니야 황사실로 끝에 메고
성님성님 잘 사니야 행주치매 죽바니여.
나는 나는 못사니야 행주치매 쑥중지어
친정으로 갈때며는 성님으는 잘사니야
찹쌀으넌 서말치고 메쌀으넌 두말치고
나는 나는 못사니야 찰떡으는 서말치고
나는 나는 못사니야 메떡으는 두말치고
반찬으는 ~~~ 성님으는 잘사니야
드릅밥에 드릅해야 얼루밥에 고사리야
------- 콩나물에 ------- 콩나물
소복소복 담았다오 가는나는 못사느니
음지짝에 음고사리 양지짝에 양고사리
소복소박 산나물 한푼두푼 돈나물
------ 미나리채 소복소박 찬나물
헐 꼬자 헐나물 소복소복 담아다오
------이후 제보자 생략------------
o 〈시집살이〉
시어머니 잔소리는 슬비상 같고
시맏동서 잔소리는 골속에 맺힌다
아고 우리엄마 날 곱게 길러서 시집이 무엇인지
이렇게도 엄하느냐 시어머니 잔소리는 슬비상 같고
요사시런 시누들이 말도 많네
아고 팔자야 여자 팔자는 일부종사를 못하면은
여자가 아니란다 울 어머니 울 아버지
날 곱게 길러서 한양어데다가 준다더니
왜ᅳ 왜ᅳ 농사집에 주었나
아고 어마야 아고 아부지여 시집살이 말도 마소
시집살이 말마소 행주치마 열두폭에 눈물 젖어 답답고오
한숨만 나오니 어찌 살거시냐
시아버지 잔소리는 호랭이 잔소리, 시누이의 잔소리는 요사시런 잔소리
(10) 농부가
o <농부가>
한톨의 종자 싹이나서 막꽃지니 열매맺는
창조생산 이 농사도 하늘 땅에 조화로세
어하 농부 일꾼들아 어하 농사 장하도다
온갖 부정 거름 삼아 오곡백과 꽃을 피어
천하 만민 살릴 것은 농사 밖에 더 있는가
어하 농부 일꾼들아 어하 농사 장하도다
낮이면 해를 지고 밤이면 달을 이고
땀을 흘려도 즐거울사
어하 농사 일꾼들아 어하 농사 장하도다
o <농부가>
여보시오 농부님들 이내 말을 들으시오
여하 농부야 말 들으요 저건너 달리봉에
비가 묻어오니 우리 농부님들 어랑 삿갓을 준비하오
어혀여여 상사데여 어럴럴럴 상사디여
여보시오 농부님들 이 내 말을 들으시오
이논 떼네다 모를 심어
장리빚 헐헐 장하뢰되 우리 사천만 동포들이
태평성대로 놀아나 보세
얼헐여헐 상사디여
(11) 상여소리
o <상여노래>
나무여 미리미리 타보오
세상천지 만물중에 사람밖에 또있는가
이세상에 나온사람 뉘덕으로 나왔는가
석가여래 공덕으로 아버님전 뗴를 베고
어머님전 살을 빌어 이세상에 탄생하니
한두살에 철을 몰라 부모은공 몬떼가고
이삼십을 당도하여
(맥히니 안된다 이제그래 나가는게 있어,
상대가 받아줘야하고)
ᄋ <상여소리>
너느느--너화 넘청 너후
구사당을 하직하고 신사당을 떠나본다
나무나무 아미타불 저승길이 물다게도(멀다해도)
대문밖이 저승일세 나무나무 아미타불
인제가면 언제오나 새벽닭이 헤쳐오니
실실동풍이 불어온다 나-무나무 아미타불
북망산천 머다게도 대문밖이 저승일세
나무나무 아미타불
(12) 청춘가
o <청춘가>
이 파란 청춘에 할머니 되거든
백발이 노인보고 오지를 말아라
o <청춘가>
놀아여 젊어서 놀아 늙어지며는 못노리라
花無는 十日紅이오 달도 차며는 기오나니
인생은 일장춘몽이니 아니놀고서 무엇하리
꿈아 무정한 꿈아 오신님을 왜 보냈소
오신님을 보내지 말고 잠든 이몸을 깨워주지
일후에 또다시 만나서 연분 아니면 원수로다
(13) 노랫가락
o <노랫가락>
아하- 백두산 저근마두지 하니 두만강서는 엉망이라
남아 이십 몇해 거기요 구십수천은 대장부란다
아마도 놀기 좋은건 아마장군이 분명쿠나
아하- 말은 가자니 겁을 주고 임은 날 잡고 놓지를 않네
임아 임아 날 잡지 말고 서산에 지는 해를 잡아내라
아서라 괄새를 말어라 늙어진다고 괄새를 말어라
o <노랫가락>
바람불어 누신 낭기 눈비 온들이 일어날까
송죽같이 굳은 마음이 매를 친다고 어허 절할까
나 비록 기성에 몸을 절기조차도 실소나
새천지 한바다 우에 불이 없느냐 낭기서성 가지는
열두가지요 잎은 피어서 삼백예순
그낭개 열매가 열어서 일월이든가 명월인가
(14) 잡가
o <잡가>
① 에헤
해는 지고 저무는 날이 옥같아시고
어리로 가오 첩의집을 가실라거든
나를 죽이고 가려무나
첩의 집은 꽃밭이요
나의 이집은 연못이라
꽃과 나비는 봄한철이오
연못의 잉어는 사시장철이라
② 에라 만수어라
한 대신이야 성주본이 어디메냐
성주본이 어데멘가
경상도 안동땅에 제비원이 오닐러라
제비원에 솔씨를 얻어
소천대천 던졌더니
그 솔이 점점 장성하야 청장무지나 되고
황장무지나 되고 도리 기둥이 되었구나
앞집에 김대모가 뒷집에 이대모가
먹대자통을 갖쳐나들고
금도끼로 찍어내어 옥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칸 집을세워 한칸은 양친부모
한칸은 선녀주고 또한칸은 옥녀주고
옥녀야 잠들어라 선녀방으로 놀라만 가자
선녀야 잠들어라 옥녀방으로 놀라만 가자
옥녀선녀야 니 잠들어라
정든님 방으로 잠자러 가잔다
에라만수
천지개벽 천왕신왕 태고형제 열두사람
일만이천 연월이요 가가마다 사람있고
당우천지 요순성군 강구연월 구경하고
억조만년 하신후에 금은고문 하여입고
만고영웅 진시황도 만세토록 살자더니
동남동녀 오백인에 불사약을 못구하고
만승천자 한무제도 삼만세도 살자더니
백운신선 못만나사 죽은후에 허사로다
아롱아롱 서산반조 아왕년에 눈물이요
요지청조 없샀으니 무상선녀 못보겠다
질루소식 없었으느 노곡성이 어디매나
일궁선녀 대차하니 청천이 구만리요
월궁선녀 대차하니 약수가 삼천리라
부유같은 이천지에 이슬같은 우리인생
아니나 놀면 무엇하나 어라만수
o <에라만수>
고 구천봉 내리온후 부산에 둥실 높이 떠
양고기 자진 낭개내는 어훨 봉구르 돌고
어장촌 개짖고 화양봉 구름이 떴다
노화는 다논데여 철새는 날아들고
동전 몇천에 파시축 금새축파가 이아니든가 에라만수
앞발로 백방글 찡그 당기면 뒷발로 창낭을 팡탕
요리조리 조리요리 양금당실 높이떠 동남을 바라봐
지광은 칠백리 파광은 천리세
저내 무산 십리봄은 구름밖으로 떨어있고
해는 서산에 일천리 안나해 경계로다 에라만수
o <잡가>
어진 내양반이 어디메로 갔소
화촉대 진담배대 손에들고
문에 대전북들고 첩의방에 놀러가서
밤으로 가는거는 자러가고 낮에 간거는
첩의방에 사랑두고 놀러갔소
한송이가 피는 꽃이 낙화가 진다꼬 슬허마라
한번폈다가 시들어 질줄은 나도 번연히 알면서도
모진 내 손으로 꺽어다가 시들기 전에도 내버리지라
별들도 그걸알으니 낸들아니 슬플쏘요
숙명이 짧아 운명이라면은 너무너무 설바도 못살겠네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태평성대가 여기로구나
얼씨구나 좋네 정말좋네 어쩌나 좋은지는 모르겠네
짐승만 못한 김일성아 죽으러오는 중국놈아
쓸데없다 스탈린아 모조리 죽이는 모택동아
맥아더 하고야 미군들아 재주도 좋다
전투기는 자주자주 꼿꼿이 간다.
한시 바삐 한국땅에 주저말고 물러가라
얼씨구나 오케이 절씨구나 헬로우
대한독립이 나는 좋소
이 논베미 모를 심어 장리빚 훨훨 장하로구나
이 물고 저 물고 다 열어놓고 주인네 양반은 어데로 갔소
장터 거래다 첩을 두고
첩의야 방으로 놀러간다
무스나 첩이가 그리도 유정하여
밤에가고 낮에가고
밤으로 자러가고 낮으러는 놀러간다
뿌여한 저달은 창밖에 밝고여
살라는 인간이 더 살라 하노라
정천의 청춘이 언제 지내가고
나의 이 백발이 왠말이드냐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싶어 지느냐
나를 두고 가는 님이 가고싶어 가느냐
청성봉 꼭대기 외로운 그소나무
날과야 같이오만 멀거야 섰구나
우연히 이던 연이 호수에나 맺혀서
이길에 멈춰가어루와 명들경자라
오돌독이 춘향의 춘추절은 달뜨나 밝고나 밝고나 임에 집을 밝혀나
이리리리 열구 절사 말도 많소 사라므이 심신간장 에가 타노리
가네가네 얼화 내 돌아가네 덜덜거리고 에화 내 돌아가네
이리리리 열구 절사 말말어오 사람의 심신간장 애가 타노니
안동땅 안선배는 몸틀 좋다고 소문나고
하남땅 유처재는 인물좋다고 소문나고
가리다가 가리다가 명년 삼월 춘삼월에
열이튿말 날이 났는데 한다라가고 두달가고 삼석달이 가더가니
열이튿날 날이 다외왔네 방울 씰어 정을 주고
정을 썰어 더러거 주고 떠럭 씨러 마당주고 마당씨러 마구엮어
마당우에 덮석 피고 덮석우에 처속피고 처속우에 지상노고
지상우세 암닭 장탉 꽂감 대추 물리놓고 열두폭 개암밑에
안동땅 안선배가 가매치를 채리 가주 떠날적에 큰어머니 하는 말이
동네 밖에 나가거든 새짐승이 지져들고
산모롱이 돌거들랑 까막까지 진동하고
동네밖에 합지늘랑 가마채가 부러지고
해이청에 들거들랑 사모관대 내려앉아
첫날밤에 들거들랑 겉머리야 속머리야 머리알게 앓아주고
하만땅에 유처재가 첫날밤에 들어가니 안선배 하는 말이
저게 앉은 저 신부요 머리 조금 짚어주소
언제봤던 이네라고 머리조참 짚어조요
저게앉은 저 신부요 다님 조금 풀어주소
언제봤던 이네라고 다님까정 풀어조요
저게앉은 저신부요 허리방을 풀어주소
언제봤던 이네라고 허리방을 풀어조요
아이구 답답 내신세야
안동땅 안선배가 숨이 꼴딱 넘어가는데
삼단 같은 이내 머리 산발하기가 우얀일이고
(15) 사설
o 〈사설〉
천재천난대천하 월기동동 세상부야
검측이 남아 여와나 생금이나 사러왔나
청태상 자진골에 푸른청청 떡방아니 까막까치 깍깍재여
잰니당에 내리달러 비내팔아 감주사고 댕기팔아 유자사고
올로다가 석로 사고 부모님전 매앞에야 연꽃이가 자자진네
그 연꽃에 이숙받아 고동맹진에
푹빠자 눈물닦아 다차졌네
반내사오우방우밑에 슬피우는 수낭자야
육신은 어디두고 강산에야 윤이났나
나라동동 이승사야 이부관대 누워졌나
양양골 증존옥달 수낭자의 솜씨로다
수풍도야 좋거냐와 기도수풍 대우좋다
이산저산 낭글베어 청태산 자진골에
푸르청청 떡방아니 까막까티 깍깍재여
잰니당에 내리달러 비내팔아 감주사고 댕기팔아
유자사고 올로다가 석로사고 부모님전 메앞에야
연꽃이가 자자진네 그 연꽃에 이슬받아 고동맹진에
푹빠자 눈물닦아 다차졌네
o 〈사설:글자풀이류>
기이없는 이내 몸이 그지없이 되었구나
고교구규 고생하던 우리낭군 구관하기가 짝이없네
나냐너녀 날아가는 저기러기 소상강을 가거들랑
이내속을 정코가소 로료루류 노루장하 잉개율이
처첩마담 있건마는 다댜더뎌 아사다다
다듬던 손이 인정없이 끊어졌네 도됴두듀
모지도다 모지도다 하양낭군이 모지도다
날아가는 저기러기 하양서울 가거들랑 이내소식을 전코가소
(16) 기타
o <담바구 타령>
시작일쎄 시작일쎄 담바귀 타령이 시작일쎄
귀야 귀야 담바귀야 에헤라 울산에 실담바귀야
너의 귀이기 좋다더니 조선의 고구려 왜 왔느냐
우리야 국도 좋건마는 조선의 고구려 유람왔다
은을 주려고 나 왔느냐 금을 주려고 나 왔느냐
은도 금도 안가지고 담바귀 씨 한톨 가지고 왔네
저기저기 저산 밑에 담바귀 씨 한톨 심었더니
낮이면 찬이슬 맞고 밤이면 찬이슬 맞아
겉잎나고 속잎 날새 점점 자라서 왕성하다
네모 번듯 장두칼로 어숙버숙 썰어놓고
영감의 쌈지도 한쌈지요 총각의 쌈지도 한쌈지라
소상반죽 부산죽에 담배나 한대야 붙여야 보자
목구멍 안에서 시장기 떤다
저기저기 저 아주머니
딸이나 있거든 사위나 삼으소
딸은 하나 있건만은 나이가 어려서 못삼겠네
여보 할머니 그말씀 마시오
참새가 적어도 알만 낳소
여보 할머니 그말씀 마시오
제비가 적어도 강남을 가요
여보 할머니 말씀을 마시오
(더이상 기억이 안남)
o <쾌지나칭칭나네>
노세노세 젊어놀아 쾌지나칭칭나네
늙어지면 못노나니 //
왕대밭에 오니도 많다 //
잔솔밭에 고니도 많다 //
치다봐라 안남창(안창남) 비행기//
내려다봐라 엄복동 자동차//
오날저녁에 여기서 놀고 //
내일 저녁은 어디가 노나//
우는 애기 젖달란다//
앉은 자기는 밥달란다//
-------
양반의 집에는 글도많다//
상놈의 집에는 욕도 많다//
문앞에는 신도 많나//
둥기야 입으나 벗으나
둥기야 먹으나 굶으나
둥기야 둥둥 둥기야
우리아이 잘도 논다
(잃어뿌려서 안되잖아………)
o <달구질 노래>
산지조조 권련산아 수지요수 황하수야
어훠 덜구야
함경도라 백두산아 어허 덜구야
그산정기 이산으로 돌아오라 어허 덜구야
함경도라 압록강아 어허 덜구여
그산정기 이산으로 돌아오라 어허 덜구여
평안도라 묘향산아 어허 덜구여
그산정기 이산으로 돌아오라 어허 덜구여
함경도라 대동강아 어허 덜구여
그 강정기 이산으로 돌아오라
(팔도명산 팔도명강 이산으로 돌아와서 잘살게
해달라는 이런거야)
o 〈권력가>
후이야호 여차소리 후 이야호
앉았다가 후이야호 일다서면 후이야호
한치두치 후이야호 뒤나과도 후이야호
앉았다가 일다서면
타박타박 후이야호 대고갠가 후이야호
왈칵덜컥 후이야호 솔고갠가 후이야호
한치구치 후이야호 뒤나과도 후이야호
동서울역 후이야호 넘어간다 후이야호
만고강산 보나
두메장사 후이야호 앞줄에도 후이야호
김장군아 후이야호 뒷줄에도 후이야호
이장군아 후이야호 앉았다가 후이야호
일다서면 후이야호 우렁구슬 후이야호
잘도간다 후이야호
o <목도소리>
으여으여 으여차 으아 으여차
으여 으여차 으아
으여으영 으여 으여차
보나니 으야 알았다 으여 으여차 이야
여기야 으야 가는해 으야 두발로 으아
힘을쪽 으아 알았다 으야 더 힘내라
힘난다 으여 으여차 으아 으영차
o <창부타령>
아니 아니놀지는 못하리라
너를 잡으러 나 아니간다
서산이 바로 숲이야 널 쫓아 내가 왔네
나물먹고 물을 마시고 팔을베고 누웠으니
장부의 살림살이가 이만장면은 넉넉하구나
얼씨구 절씨구 얼씨구나 좋네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ᄋ <도라지>
도라지 도라지 도라지 강원도 금강산에 백도라지
한두뿌리만 캐어도 꾸니반실만 되는구나
에헤요 데여라 청춘아 시절에 놀아보자
석탄백탄 타는 배는 연기만 폴송 나구요
요내 가슴 타는 것은 한품의 임도 몰라주네
에헤요 데여라 청춘 시절에 놀아보자
국화꽃이가 고와도 춘추한절 이고요
남의 분이 과와도 이삽십일만 이로다
에헤요 데여라 청춘 시절에 놀아보자
꽃으는 꺽어서 머래다가 꽂구요
잎으는 뜯어서 제금으로 불자
아사히 담배초는 불따라야 물고요
요끌목 저골목 임찾아야 가자
거랑가에 미나리 채소는
니무슨 죄를 지어서
다 큰처자 손끝으로 칼침을 맞나
산천초목에 올라서서 일생각을 하니
풀입으는 매도매도 찬이슬이 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를 단둘이야 넘자
아홉성제 오라버니 풀좋다고 재세마라
울어머니 돌아갈적 부고한장 없었다라
함무러니 돌아가니 행상소리 진동하고
함무러니 돌아가니 곡소리가 진동했네
댕기풀어 낭개걸고 비네빼서 땅에꽂고
앞에가는 성상꾼아 행상틀을 놓아보소
우리부모 얼굴이나 다시보자
아홉성제 오라부댁이 길쌈좋다 재세하니
각수는 한끌 안끊어놓네
(잘 기억이 안남)
V. 민 속(民俗)
1. 제보자 --- 김기남 (65세) - 삼척시 원덕읍 갈남2리
김기일 (88세) - 삼척시 원덕읍 갈남2리
김연희 (80세) -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김정옥 (80세) -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김필녀 (46세) -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양춘자 (61세) - 삼척시 원덕읍 갈남2리
이선우 (33세) -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이종순 (46세) -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이준달 (85세) -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전주옥 (68세) - 삼척시 신기면 서하2리
최영옥 (71세) - 삼척시 원덕읍 갈남2리
2. 내용 분류 --- (1) 민간 신앙 - ① 원덕읍 갈남2리
② 신기면 대이리 윗마을
③ 신기면 대이리 아랫마을
④ 정라진
⑤ 신기면 서하2리
(2) 관혼 상제 - ① 원덕읍 갈남2리
② 신기면 대이리
③ 신기면 서하2리
(3) 세시풍속 - ① 1월
② 2월
③ 3월
④ 4월
⑤ 5월
⑥ 6월
⑦ 7월
⑧ 8월
⑨ 9월
⑩ 10월
⑪ 11월
⑫ 12월
(4) 의식주 - ① 개관
② 본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