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에서 보내는 '그리운 꽃편지'
★...1월이 한해의 시작이라면, 3월은 봄의 시작입니다. 봄은 새 출발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것들과의 만남. 그것은 곧 기다림 끝에 다가오지요.
새로운 것들에 대한 설렘. 3월은 그 설렘을 가져 다 줍니다. 새로 입학한 학생들에게는 새로운 학교에서 새 친구, 새 교실과 만나는 것이 3월입니다. 그리고 3월이 되면 겨우내 잠들었던 동물들이 땅속에서 기지개를 켜고 깨어나기도 하지요. 어디 그것뿐입니까. 꽁꽁 언 땅에서 새싹을 틔우며 얼굴을 내미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만큼 봄은 아픔을 견디고 올라옵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지금 바깥세상은 아직 꽁꽁 얼어 있습니다. 제주 산간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한라산은 다시 겨울 속에 잠겨 있습니다.
너무 답답한 나머지 5일마다 한번씩 장이 서는 재래시장으로 나가보았습니다. 재래시장의 생선가게 아주머니는 꽁꽁 언 손을 비비며 손님을 기다립니다. 장터에 앉아계신 할머니도 하품을 하며 손님을 기다립니다. 세상이 꽁꽁 얼어 있으니 손님이 없을 수밖에요. 과일 가게 주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봄의 화신이 기지개를 켜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꽃시장입니다. 천리향 향기에 마음을 주듯, 그 꽃향기를 따라 가 보았습니다. 꽃구경을 나온 사람들의 마음은 벌써 봄으로 달려갑니다. 묘목을 구하러 나온 사람들, 야생화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 식탁 한가운데 봄꽃을 꽂기 위해 꽃을 구하러 나온 사람들, 재래시장 꽃가게는 벌써 봄으로 가득합니다. 아니 기다림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겠지요
★...꽃시장 할머니는 봄을 예쁘게 다듬고 있습니다. 할머니 손끝에서 묻어나오는 봄 냄새. 죽은 듯한 가지 위에 새싹이 돋아남을 우리는 왜 몰랐을까요?
★...재래시장 한구석에는 붉은 목련이 이제 막 꽃봉오리를 터트리려 합니다. 우리들의 겨울이 지겨웠듯이 목련은 얼마나 봄을 기다렸을까요. 붉은 목련의 얼굴은 봄기운으로 상기돼 있습니다. 목련꽃 앞에 서니 김용택님의 '그리운 꽃 편지'가 생각납니다.
봄이어요 바라보는 곳마다 꽃은 피어나며 갈데없는 나를 거둡니다. 숨 막혀요.
내 몸 깊은 데까지 꽃 빛이 파고들어 내 몸은 지금 떨려요. 나 혼자 견디기 힘들어요. 이러다가는 나도 몰래 나 혼자 쓸쓸히 꽃피겠어요.
싫어요. 이런 날 혼자 꽃피긴 죽어도 싫어요. 꽃피기 전에 올 수 없어요. 고개 들어 잠시 먼 산 보셔요.
꽃 피어 나지요 꽃 보며 스치는 그 많은 생각 중에서 제 생각에 머무셔요
머무는 그곳 그 순간에 내가 꽃 피겠어요 꽃들이 나를 가둬 갈 수 없어 꽃그늘 아래 앉아 그리운 편지를 씁니다 소식주셔요
★...머무는 그곳, 그 순간마다 꽃을 피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아직 꽃샘추위에 몸을 떨고 있으니 꽃들이 나를 가둬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침햇빛을 받으면 다시 얼굴을 내민다는 복수초에 ‘영원한 행복’을 물들입니다.
★...무리를 지어 아름다운 것들이 있습니다. 홀로 피어 아름다운 것이 '청초'하다면 무리를 지어 아름다운 것은 ‘소박함’이겠지요. 세상의 모든 것은 양극화 현상으로 가는데, 하나로 묶어져서 아름다운 것들. 그것들은 바로 키 작은 꽃들입니다
★...서로 얼굴을 비비기도 하고,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서로 비밀을 털어놓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작은 꽃들처럼 무리 지어 ‘함께 해서 아름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직 몸과 마음이 겨울 속에서 깨어나지 못했다면 자리를 훌훌 털고 재래시장 꽃가게로 달려가 보십시오. 앉아서 봄을 기다리지 말고 봄 마중 나가 보십시오. 바라보는 순간마다 봄꽃이 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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