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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박순화의 시 세계
안동을 그리워하는 묵향의 노래
이 인 우(소설가. 시인. 한국문인협회 이사)
Ⅰ
박순화 시인은 안동의 경계인 예천 직산에서 태어났지만 순수한 안동사람이다. 안동의 곳곳을 소개하는 문화관광해설사로, 시ㆍ서ㆍ화에 능한 화가로, 안동의 맥을 이어가는 안동내방가사전승보존회 회원으로 정력을 쏟고 있다.
그의 첫 번째 시조집은『안동 간 고등어』이다. 두 번째 시조집은『창밖의 풍경』으로 80여 편의 시조를 담고 있는데 세 분야로 제시될 수 있을 것 같다. 그 하나는 시조집 전편에서 발견되는 안동의 그리움이고, 둘째로는 화가로서 가슴으로 그리는 안동이며, 세 번째는 가족 사랑과 전통의 맥을 노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시조가 안고 있는 문제는 양적 팽창 못지않은 질적 향상에 있다고 하겠다. 시조가 잘 읽히지 않는 까닭은 독자를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어법에 맞지 않는 정형률만 고집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시조의 형식미는 중요하다. 그러나 현대적 호흡법으로 담아내야 할 상징과 이미지, 삶의 철학적 깊이 등을 소화하기에는 형식의 제약이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박 시인의 시조는 절실한 느낌을 일상적인 언어로 구체화하여 자연스럽게 읽힌다. 그는 시조에 대한 애착심이 남달라서 객기를 부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혼신의 열정을 쏟아 안동사람의 본질과 자연을 보는 재치가 숨어 있다.
Ⅱ
안동하면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단어들이 있다. 선비, 양반, 하회마을, 봉정사, 퇴계, 서애, 도산서원, 병산서원, 원이 엄마 편지, 제비원 석불, 임청각, 학가산, 훈민정음해례본, 차전놀이, 놋다리밟기, 하회별신굿놀이, 안동댐, 안동식혜, 안동소주, 안동 간 고등어, 안동포, 안동찜닭, 안동역 등이다.
유홍준은 문화유산 답사기 3권에 안동의 소호헌, 조탑동 전탑, 동부동 전탑, 임청각 군자정, 법흥동 전탑, 제비원 석불, 봉정사 영산암, 학봉 종택, 풍산 들판, 하회 마을, 병산서원, 소산 삼구정, 오천 군자리, 후조당, 탁청정, 도산서원, 퇴계 종택, 퇴계 묘소, 태사묘, 내앞 종가, 무실, 박실, 지례 등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割愛)했다.
안동은 선비의 고장이며 양반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유교문화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추로지향(鄒魯之鄕)」의 도시로 우리나라 유일의 지역학인 「안동학(安東學)」이 존재한다. 선비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도시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40여개의 서원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최다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성지」이며 훈민정음해례본이 발견 된 곳 또한 안동이다.
박순화 시에는 안동을 연상하게 하는 단어들이 제목으로 주제로 소재로 등장한다. 두문불출, 병산서원에서, 두향이, 선비순례길을 가다. 봉정사, 임청각, 광흥사, 하회마을 풍경, 제비원 미륵불, 하회탈, 안동 간 고등어, 헛제사밥, 안동식혜, 양반, 초랑동에서 만난 권정생, 어느 종부의 삶, 금소마을, 학가산, 천주마을, 석동횟집, 구경, 달팽이 뒷간 등이 그러하다.
1. 그리움의 노래
인간의 끝없는 그리움은 새로운 예술을 창조한다. 연어도 모천회귀의 그리움이 없다면 몸을 찢으며 물을 거슬러 올라가겠는가? 신이 인간에게 선사한 최고의 선물은 그리움이 아닌가 한다.
박순화 시인은 문화관광해설사로 안동의 곳곳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시 속에 안동의 그리움이 스며있다. 그의 데뷔작도 안동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병산서원에서」 이다. 안동을 그리워하는 것은 과거지향의 그리움이 아니라 오랫동안 간직한 인간애의 순수함이다. 그리움이라는 관념적인 세계가 안동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을 통해 보편성을 획득 했다고 볼 수 있다.
지척에 무너지는 선향의 깊은 숨결
누워 잠든 병산 안에 산 물빛 펄럭이면
떠난 님 속 끓는 소리 하늘빛이 고웁다.
수절한 세월 살며 솟아난 만대루여
해탈문 무명 밝혀 그 기개 타오르면
오실 님 편히 쉬일 곳 모래 빛이 새첩다.
「병산서원에서」 전문
진솔한 문장으로 단순한 언어적 조합이 아니다. 사람의 내면을 울리는 가락이 있다. 심사평을 보면『운율이 완벽하며 단순히 풍경이나 임이 떠난 것을 영탄함에 그치지 않고 오실 님을 기다리는 염원을 담고 있다. ‘떠난 님’은 유성룡일 수도 있고 ‘오실 님’은 새 시대를 구할 백마 탄 기사가 될 수도 있다』고 하였다.
안동을 정신적인 것과 이를 드러내는 표현적인 것을 동시에 중시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으로 매우 좋은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천연대 낙강 속으로
거스르는 은어 떼를
석빙고에 갈무렸다
수랏상에 오를 때면
이자(李子)는
완락재(玩樂齋)에서
책만 읽어 두문불출.
「두문불출」 전문
7행의 단시조로 마음을 집어넣어 펼쳐 보여줄 수 있는 시적 능력을 드러내고 있다. 낙강, 석빙고, 완락재(玩樂齋)라는 구체물은 인간다운 품위를 잃지 않는 안동의 선비 정신이 숨어 있다. 또한 언어의 감각이 독특한 여운을 주어 자유시 못지않는 감성이 독자를 사로잡는다.
부처님 복장 속에 해래본이 출산되어
학가산 국사봉에 세종대왕 행차하여
가나다 한글 읊으며 태(胎)를 묻어 오른 길.
「광흥사」 전문
훈민정음해례본(간송본, 안동본)은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되었다. 2008년 상주에서 발견된 훈민정음해례본도 광흥사 부처님의 복장유물이라는 설도 있다. 광흥사는 고려시대 불경인 「취지금니묘법연화경」과 「백지묵서묘법연화경」 등을 인쇄한 목판문화의 산실이었다. 광흥사 판각전에서 훈민정음 판각 15장, 월인석보 222장을 남겼다는 대목이 있다. 월인석보와 훈민정음해례본을 인쇄하여 부처님 복장유물로 남기고, 나머지는 안동의 각 문중과 타지에 배포했을 가능성이 있다.
박순화 시는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현실을 시적 감성으로 승화하고 있다. 화려한 표현보다 솔직하고 순수하며 진솔함이 배어 있다. 그것은 문화관광해설가의 체험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초면에 서먹함을 미소로 소통하여
당당하게 인솔하여 우쭐대다 보면
어느새
마음 통하여
가족이 된 관광객
멋진 척 해박한 척 아는 척 최고인 척
문화재 앞에서 우쭐대어 해설 하다보면
어느새
명소의 지기로
불끈 솟는 자신감.
「해설을 하면서」 전문
2. 가슴에 그리는 묵향(墨香)
시가 언어 예술이라면 그림은 선과 색채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과 화가는 삶을 우려내는 그리움이 있으며 미적 추구의 대상을 찾고 있다. 화가는 묵향(墨香)이 묻어나는 그리움이다.
묵화(墨花)는 동양화에서 수묵으로 그린 화훼(花卉)화로 특히 송ㆍ죽ㆍ매의 세한삼우(歲寒三友)나 매난국죽(梅蘭菊竹)의 사군자는 문인의 정신과 기상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즐겨 그려졌다.
박순화 시인은 화가로 안동의 겉모습을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세계로 시야를 넓혀가고 있다. 무형의 내면적인 것들에 형상을 부여하여 그림으로 펼쳐 보여 주고 있다. 사람에게 꿈과 추억이 없으면 무엇으로 살겠는가? 라는 반문이라도 하듯 안동에 대한 그리움을 무심의 미학 속에 그려 놓는다. 그는 안동의 정신을 고스란히 간직한 안동사람이기에 안동을 노래하고 스케치 할 수 있는 것이다. 안동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감성적인 눈으로 기교를 부리고 있다.
학가산 천주마을 송신탑 우뚝하고
예천의 하리마을 토담집 아담하여
당신이
떠난 빈자리
등꽃으로 걸려 있다.
「그림 속으로」 일부
표현적으로 단순한 스케치 같지만 풍경에 머물지 않고 안동을 발견하고 안동에 동화되고 있다. 학가산의 송신탑을 통하여 우주를 보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떠난 빈자리가 등꽃으로 걸려있다’는 감각적인 재치를 엿 볼 수 있다. 글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나며 언어를 식별할 줄 알고 운율을 고를 줄도 안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이미지를 형상화 시킬 줄도 안다. 한 폭의 수채화나 풍경화를 대하는 듯하다.
안내소 바로 앞에
불법주차 하고서
반바지 차림의 아저씨
차에서 내리더니
담배도
모자라는지
하품까지 해 댄다.
「창밖의 풍경 3」 전문
매일 반복되는 풍경과 일상은 권태롭기까지 하다. 시적 화자는 지금 그 삶의 고개에서 하품하는 반바지 아저씨를 통해 도시 풍경을 감각적인 언어로 그리고 있다. 남다른 언어로 생동감 넘치는 이미지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창을 통한 풍경이 시로 표현되면서 동양화 속을 거니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창밖의 풍경도 안동을 통하여 보면 안동의 그리움이 되는 것이다.
다부진 입술과 듬성한 흰머리에도
고만한 목적지와 일할 수 있다는 행복감에
아저씨
어깨 넘어로
아침 햇살 정겹다
이마의 주름과 거머쥔 낡은 가방 안에도
고만한 삶의 지혜와 인생철학이 담겼을
아주머니
거친 손등에
스카프가 날린다.
「46번 버스를 타는 사람들」 전문
시적 화자는 입술, 흰머리, 어깨, 이마, 손등으로 시선을 이동하면서 정서를 그려 나간다.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시골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모습이 선연하다. 듬성한 흰머리, 이마의 주름, 낡은 가방, 거친 손등에서 고단한 삶을 보고 있지만 정겨운 아침 햇살과 날리는 스카프를 보며 희망을 읽고 있다.
이런 풍경을 시로 형상화 할 수 있는 것은 정서에 스미는 정감이 풍부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박순화 시인은 자신이 체득한 내면의 실상을 겸허하게 전달하는 설득력을 보여 준다. 자신의 목소리를 정제된 빛깔로 우려내고 있는 것이다. 행갈이를 하여 시각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시조의 격식을 자유롭게 극복하여 정형이 비정형이란 말을 생각하게 한다.
3. 가족 그리고 전통의 맥
박순화 시에 나타난 가족사랑은 나를 감추고 대상을 앞세우는 은근함이 있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은 격정을 지나 고요한 경지에 까지 닿아 있어 세월의 강에서 가족을 보듬고 있다. 가족의 사랑만이 다름과 이질을 연결할 수 있는 따뜻한 씨앗이 되고 있다. 시의 표현 대상이 아닌 생명을 이어 가는 원동력으로 볼 수도 있다. 그 원동력은 내방가사의 고향인 안동의 맥을 잇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고 하겠다.
가만히 있어도
콩죽 같은 땀을 쏟는데
우리 아들 불혹에
장가를 간다고
폭염도
아랑 곳 없이
귀에 걸린 저 큰 입
「우리 아들」 전문
가족애를 그리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아름답지만 아들만큼 아름다울 수 있을까?
초장부터 범상치 않다. 불혹에 장가드는 아들이 애처롭기만 한 것이 아니다. 아들의 콩죽 같은 땀은 애처롭지만 폭염에도 좋아서 귀에 걸리는 입을 보고 사랑을 확인 하고 있다. 아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가슴 저리는 그리움이라 할 수 있다.
퇴근 중 어머님 생각나서
차 세워 놓고 전화한다는
어머님 건강 하시지요
별일은 없으시지요
조 서방
안부 전화에
장모님은 힘이 불끈.
「전화 한 통」 전문
늘 그리워하는 가족, 보고도 또 보고 싶은 대상이 가족이다. 조 서방의 전화 한통에도 힘이 솟는 장모이다. 장모에 대한 사위의 아름다운 가족 사랑이 전화를 통하여 승화되고 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그리움은 혼자 자라고 있다. 그리움이 울타리를 타고 올라가 사방을 살피고 있다. 비유가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워서 편하게 읽을 수 있다.
맥(脈)은 경맥을 통해 기가 흘러 하늘의 기운이 나타나는 곳이다. 안동의 맥도 안동을 지탱하는 인물이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 석주 이상룡을 들 수 있다.
우물방 역사에는 비장한 각오 있어
조상혼백 안동 땅에 고이 묻고 떠난 석주
돌아와
태극기 날려
군자정을 거닌다.
지맥을 끊기 위해 철길로 막았지만
나라 잃은 분통가의 석주마음 끊었으랴
돌아온
개목나루에
황포돛배 오간다.
「임청각(臨淸閣)」 전문
임청각(臨淸閣)은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의 생가이다. 일제가 민족의 정기와 안동의 맥을 끊기 위해 생가를 가로질러 중앙선 철길을 놓았다. 우물방, 안동 땅, 태극기, 군자정, 지맥을 끊다. 등의 구체물은 임청각의 아픈 역사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이 시에는 민족사의 줄기가 담겨 있다. 우리 민족이 걸어온 질곡의 역사와 함께 토속적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 시의 분위기가 새로운 의지를 읽을 수 있어 정적인 고아함을 느낄 수 있다.
Ⅲ
이상으로 박순화 시인의 두 번째 시조집『창밖의 풍경』을 세 영역으로 나누어 제시하고 조명하였다. 읽기에 따라서는 다른 영역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안동이라는 공간과 연계 시켜서 해석 할 수도 있지만, 시인의 사상이나 감정을 통한 시적 성과로 나눌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본 해설은 시에 담고 있는 것들을 시인은 어떻게 드러내려고 했느냐는 것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다. 그것은 시편 속에 스며있는 정제된 시어의 이미지는 시인이 앓아온 심적 고통에서 얻어진 수확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정신지향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표현을 중시하면서 이를 형상으로 이끌어 내거나 끌어 올려주어 시적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시조집『창밖의 풍경』이 문학적 디딤돌이 되어 탐미적 개안을 밝혀 가리라고 확신한다.
시를 한 폭의 그림으로 본다면 무슨 색깔로 칠을 할 것인가는 시인의 개성에 따라 다르다. 시인은 성장 환경에 따라 사고의 유형이 다르고 표현에 차이가 있다. 박 시인은 안동의 환경에서 그 만의 개성을 구축하고 있다. 그는 현실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긍정적으로 본다. 그러면서 올곧은 삶으로 독자들을 인도하여 희망을 버리지 않게 한다. 그것은 시조가 지닌 미덕이기도 하다.
박순화 시인의 시조집이 좋은 반응을 일으키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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