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만덕산에서 땅끝까지 46Km

[pharansan]

   

 

만덕산-땅끝 산행길잡이

만덕산에서 사자봉 땅끝까지는 도상거리 46킬로미터다. 산행에만 5박 6일은 잡아야 한다. 전구간을 야영하며 산행을 하기에는 배낭의 무게가 부담스럽고 주릉에서 물을 구하기 어려워 곤란하다.
계곡 안부에서 10분 정도 내려가면 물을 구할 수 있지만 가시덤불을 헤쳐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물을 구하기 쉬운 구간을 표시해 산행계획을 짜야 한다. 백련사, 바람재 기도원, 봉황천, 덕룡산의 427봉 부근, 관악전, 오소재 등에서 물을 수월하게 구할 수 있다.

만덕산~땅끝
종주 안내도

배낭 무게가 부담스러우면 민박을 이용해 구간별로 끊어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백련사, 석문, 봉황천, 관악전, 오소재, 딱골재, 417봉 근처는 차량접근이 가능하다.

길은 두륜·대둔산 구간과 달마·도솔봉 두 구간만 상태가 양호하다. 나머지 구간은 주로 싸리나무와 가시가 많은 명감나무, 산딸기나무 등이 숲을 이뤄 길을 만들다시피하며 가야한다.

한여름이라 하더라도 꼭 아래 위로 긴 옷을 입고 산행에 나서야 한다. 또 이 구간에는 옻나무가 많으니 옻이 오르지 않도록 주의한다.

교통

땅끝리지를 하려면 우선 강진이나 해남으로 가야 한다.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강진행 고속버스가 첫차 06:30, 막차 18:30으로 1시간 간격으로 있다. 5시간 30분이 걸리며 요금은 9,600원이다.
해남행은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09:30, 10:30, 14:40, 16:30에 있다. 5시간 30분이 걸리고 10,400원이다. 일단 광주로 가서 강진이나 해남으로 가는 방법도 있다. 강진행은 첫차 05:00 막차 22:00, 해남행은 첫차 05:00 막차 21:30으로 10~20분마다 있다.
강진까지는 1시간 20분이 걸리고 요금은 3,400원이며, 해남까지는 1시간 30분이 걸리고 요금은 3,900원이다. 해남이나 강진에서 광주로 나가는 차는 05:45부터 21:15까지 10~20분마다 이끨.

해남에서 땅끝마을로 가려면 통호리행 군내버스를 탄다. 첫차 07:00, 막차 20:20로 1시간마다 운행된다. 요금은 1,800원이고 1시간이 걸린다. 땅끝마을에서 해남행은 첫차 06:40, 막차 07:30에 있다.

해남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서울행은 08:00, 09:10, 09:40, 11:20, 12:40, 14:00, 15:00에 있다. 강진 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첫차 06:50, 막차 18:10으로 1시간마다 있다.

벧엘가든의 별미. 조개국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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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

강진·해남읍에 여관과 여인숙이 있지만 남도의 운치를 느끼려면 산자락 근처에서 숙박을 하는 것이 좋다. 숙소를 정해놓고 구간등반을 할 경우는 북평면 남창마을이 좋다. 만덕산∼땅끝종주의 중간지점이기도 하지만 다른 데 비해 물가도 싸다. 5일장(2, 7일)에 싱싱한 해산물이 나온다.
홍순심씨가 운영하는 벧엘가든(☎061-33-1387)에서 민박과 식사를 할 수 있다. 두륜산 민박시설지구에는 우리장(☎35-1008) 외에 많은 숙박시설이 있다.
민박은 2인실에 1만 5천원, 여관은 2만원 한다. 등반을 마친 후에는 땅끝마을에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하룻밤 지내는 것도 운치있다. 동백민박(☎34-7376) 외에 많은 민박집이 있다. 요금은 2인실에 1만원에서 1만5천원이다.

별미

강진의 흥진식당(☎061-34-3031)은 한정식전문집이다. 대하국이 일품으로 30여가지의 먹거리가 딸려 나온다. 1인분에 1만5천원과 2만원. 남창의 벧엘가든에서는 시원한 조개국이 나오는 백반과 소머리를 우려서 만든 곰탕으로 부담없이 식사를 할 수 있다.
1인분에 3,500원. 토말 최남단횟집(☎061-33-4291)에서는 아나고에서부터 광어, 도미, 우럭, 농어 등을 맛볼 수 있다. 시기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1킬로그램짜리 1마리에 4만원이다.

                                                                                    이땅에도 리지가 있다

 강진 만덕산에서 땅끝까지 46Km

석문산을 내려서다 만난 리지. 먼저간 최종이 기자가 일행을 조심스런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바다로 빠지는 마지막 암릉 우리나라 육지의 남쪽 끝자락에는 대륙의 땅심이 바다로 빠져들기 전에 마지막 자존심을 세우는 암릉이 있다. 이는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품은 강진 만덕산(409m)에서 시작된다. 석문산(272m), 두륜산(673m), 달마산(481m), 도솔봉(421m)에서 땅끝 사자봉(145m)까지 도상거리로 장장 46킬로미터나 이어져 있다. 하지만 지역 산악인들조차 이 구간을 종주한 사람은 몇 안 될 정도로 인적이 뜸해 아직 거치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5월 5일, 날이 흐린 가운데 일행은 백련사 만경루 앞뜰에서 출발준비를 한다. 김태호(34세·전남악동회), 강동수(26세·순천대산악회), 장애란씨(25세·순천 한울산악회) 등 5명이다. 천기철씨(36세·해남 땅끝산악회)와 순천의 최종이, 목포 김흥규기자는 석문산에서 만나기로 한다.

숲길로 들어서니 온통 동백나무다. 마지막 남은 붉은 동백 몇 송이가 땅 위에 떨어져 있다. 얼마를 가니 쌓인 낙엽의 촉감이 푹신한데 산길 아래로는 불에 탄 나무가 보인다. 산 남쪽 자락에는 고사동마을이 조용하다.

산 모롱이를 도니 바람재 안부에 서너 채의 집이 나타난다. 기도원인 듯하다. 고갯마루에 올라선다. 바람이 거세다. 멀리 북으로 월출산의 암봉이 아련하고 동남으로는 구강포가 푸르다. 뒤로는 만덕산이 성채같다.

10시 30분, 무인통신시설과 헬기장이 있는 261봉에 도착한다. 잠시 휴식을 취한다. 하늘은 짙은 회색으로 낮게 내려앉아있다. 산은 짙푸른 빛을 내품고 있다. 가녀린 가지 하나에 여러 송이의 탐스런 꽃을 피운 철쭉이 한가롭게 흔들린다. 숲속에서 장끼 울음소리가 들린다. 초여름 산하의 활기참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두륜산의 명물인 바위 구름다리. 앞선 김태호씨의 발걸음이 신선처럼 가볍다.

달마산 리지 도중에 만난 암봉을 김태호씨가 오르고 있다.

일행은 앞의 작은 봉우리를 넘기 위해 큰길을 버리고 오솔길로 들어선다. 희미하게 이어지던 산길이 이내 사라진다. 295암봉이 눈앞에 빤히 뵈건만 내려가는 길이 없다. 잡목숲을 헤치고 얼마를 내려서니 고사동에서 영락마을을 오가는 고갯길이다.

295봉으로 오르는 길로 들어서자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길 가운데 사람 크기만한 바위가 떡 버티고 있는데 생긴 게 영락없이 남성을 닮았다. 얼마간의 걸음품을 팔아 295봉을 오르자 갑자기 바람이 달려든다. 앞의 암봉과 이루는 안부는 완전 바람골이다. 하늬바람이 미친 듯이 골을 타고 넘어온다. 빗방울은 만유인력을 무시하고 수평으로 능선을 넘는다. 나뭇잎은 찢어질 듯이 떨고 가지는 부러져 나갈 것만 같다.

이기자가 사진을 찍자며 일행을 세우자 바람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모두 바위를 움켜잡는다. 안부에서 벗어나자 바람이 잔다. 돌아보니 골에는 여전히 미친 바람이다.

일행은 한숨을 돌리고 석문천이 내려다뵈는 암봉에 올라선다. 건너 석문산이 우뚝 서있는데 정상으로 올라가는 세 갈래의 암릉이 힘차다. 인적이 없는 바위를 오르내리거나 우회하며 석문에 내려서니 1시 40분이다. 도로 양쪽에 우뚝 선 바위는 말 그대로 석문(石門)같다.

도로를 따라가다 최기자를 만난다. 천씨와 김기자는 일행을 기다리다 갔다고 한다. 마침 한국유리공업 함바집이 비어있어 일행은 그곳에서 점심을 한다. 때가 다소 지나서인지 모두들 게걸스럽게 먹어댄다. 석문산 초입에 든 시간은 오후 3시. 최기자도 합류를 한다.

처음엔 잡목숲을 헤치다가 나지막한 암릉을 탄다. 하늘은 여전히 낮다. 석문산 정상을 지나 잡목숲을 헤친다. 내려서는 길은 여러 갈래의 암릉이다. 제일 왼쪽의 남쪽으로 뻗은 칼날같이 생긴 암릉이 눈길을 끈다. 일행의 발길은 그리로 향한다.

리지와 리지 사이의 협곡은 너덜지대다. 칼날 같은 리지를 오르며 건너편 리지를 바라보니 틈이 성긴 곳에 돌로 성을 쌓았던 흔적이 보인다. 리지는 멀리서 보듯 그리 날카롭지 않아 자일을 사용치 않고 그냥 넘어선다. 내려서는 계곡길에는 두릅나무가 많이 있지만 벌써 대부분 쇠었다.

봉황천에 내려서니 오후 6시 10분. 물이 아주 맑다. 일행은 오늘 산행은 여기서 마치기로 하고 숙소로 정한 북평면 남창리 벧엘가든으로 향한다.

 

석문 근처에서 멈춘 만덕산 마지막 암봉. 건너편에 석문산 암봉이 푸른 숲에서 솟아났다.

길없는 암릉의 표지기

5월 6일, 다행스럽게 날이 아주 맑다. 최기자와 강씨, 장씨는 순천으로 돌아가고 남은 인원은 김씨를 비롯한 세 명이다.

도암중학교 근처 신리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희미하게 이어지던 산길은 여지없이 묘지가 있는 곳에서 길이 끊긴다. 길을 만들어가며 첫 봉우리에 오른 시간은 9시 40분.

바위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쐬다보니 빛바랜 붉은 표지기가 눈에 들어온다. 반가움에 벌떡 일어나 다가가 이미 희미해진 글귀를 읽는다. '강진 산악동우회 백두지간 만덕 달마 종주'
아! 그래도 이 구간을 뛰어본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표지기가 바람에 흔들리는데 김씨가 "그거 몇십년은 된 거 같소"한다. 그 정도야 됐을까만 근래의 것은 아닌 듯하다.

암릉에 핀 붉은 철쭉꽃에 초여름의 따가운 햇살이 내려앉는다. 어제 미친 듯이 불던 바람은 꼴도 보기 싫더니 오늘은 뙤약볕이라 바람이 그립다.

덕룡산은 길이 없는 리지와 잡목이 섞여 길게 이어져 있다. 대부분의 바위에는 이끼가 있고 담쟁이덩굴이 붙어 있다. 무릎 정도 높이의 잡목을 지나 아기자기한 암릉을 얼마간 오르내리니 정상인 듯한 봉우리다.

달마산 종주 중에 만난 산철쭉 군락지. 오랫만에 좋은 길이 나와 일행의 걸음이 여유가 있다.

덕룡산은 그만그만한 봉우리가 연이어 있어 어느게 상봉인지 가늠하기가 힘들다. 시원한 바람이 나물 캐는 아낙들의 목소리를 싣고 불어온다. 산행중에 처음 듣는 사람 목소리라 아주 반갑다.

바위 틈새로 길을 찾다가 쉬는데 김씨가 절뚝거리며 나타난다. 조금전에 보았던, 철쭉이 소담스레 핀 아담한 하늘벽이 예쁘다고 생각했더니 김씨는 그곳을 오르다가 오른손으로 잡았던 돌이 빠지는 바람에 한바퀴 덤블링을 한 것이다. 떨어질 때 나뭇가지에 긁혔는지 허벅지에 길게 상처가 있다. 김씨는 절룩거리면서도 계속 괜찮다고 한다.

오후 1시 25분. 점심을 먹기 위해 전망 좋은 바위에 자리를 잡는다. 점심이라고 해야 빵 몇 조각과 사과 몇 알이 전부다. 동쪽에서 날아온 제비가 산마루를 넘는 바람을 타고 하늘로 높이 솟구쳐 오르더니 구강포쪽으로 날아가 버린다.

산의 서남쪽 사면은 검게 탄 나무들이 곧게 뻗어있다. 마치 저승사자 같다. 그래도 어디선가 산새소리는 피리릭 피리릭 그치지 않고 울린다. 앞을 가로막는 바위 연봉은 등반하기가 까다로워 보여 우회한다. 불에 탄 싸리나무 가지가 힘없이 뚝뚝 부러져나간다.

산딸기나무와 명감나무는 이번 산행의 최고의 적이다. 이미 불타버렸음에도 그 가시와 넝쿨은 끊임없이 일행을 괴롭힌다. 새싹도 길을 방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산행의 적 가시덤불

30분만에 숲에서 벗어나니 누구라 할 것 없이 얼굴에 숯검댕이칠이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가리키며 마음껏 웃어 젖힌다.

능선으로 올라서자 시원한 바람이 분다. 상쾌하다. 나물꾼이나 약초꾼이 다닌 흔적이 있는 억새능선이 밋밋한 선을 그리고 있다. 누런 억새밭에 불탄 시커먼 소나무가 서 있는 광경은 추상화를 보는 듯하다. 30분을 걸었는데도 여전히 억새밭이다. 키를 넘는 억새밭을 헤집고 지나는 맛은 다른 잡목의 그것보다 각별하다.

키 작은 철쭉 군락지를 따라 425봉을 오른 뒤 불에 탄 나무를 베어내 초원처럼 변한 470봉을 넘어 대작골 펑퍼짐한 안부에 도착한 것은 4시 25분. 남쪽 계곡으로 30미터 가량 내려가니 물이 있다. 갈증을 속인 다음 피트병으로 물을 받고보니 탁하다. 이상하게 생각하며 계류를 자세히 보니 가재란 놈이 물을 흐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기자가 그놈을 잡아든다. 우리는 그 가재를 5미터 아래쪽에 강제 이주시키는 벌을 주고는 고갯마루로 올라온다. 잡목을 헤치느라 힘이 빠진 일행은 둔덕에 등을 기댄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다 .바람이 건 듯 불자 억새가 앞뒤에서 끼이익끼익 하고 운다. 멀리서 뻐꾸기가 응답을 한다.

달마산 정상인 봉화대에 돌탑이 솟았다. 작은 소망을 담아 돌을 하나 얹어본다.

5시에 자리를 뜬다. 이끼가 많아 등반이 어려운 바위는 우회하고 연이어 있는 리지를 오르락 내리락 한다. 육산인가 싶으면 암봉이 나타나 리지인가 싶으면 잡목이더니 동남으로 주작산이란 이름으로 산줄기가 갈러지는 곳부터 솟아난 봉우리는 바위로만 되어 있어서 리지등반에 적당하다.
그러나 아주 어려운 구간은 없어 안자일랜은 하지 않고 산행을 한다.

6미터 가량의 바위를 올라치자 서쪽으로는 해가 뉘엿뉘엿한다.
원래 오늘 오소재까지 끊기로 했는데 길도 없고 초행인 리지를 랜턴을 켜고 산행하는 것은 위험할 것 같아 도림마을과 금동을 넘던 고갯길에서 하산을 결정한다. 관악전이 있는 동남쪽길로 내려서는 일행의 등뒤로 붉은 해가 얹힌다.

5분을 내려서니 관악전이다. 물이 아주 풍부하다. 5분을 더 내려서니 승용차도 다닐 수 있는 너른 비포장도로가 나온다. 이 도로는 어관마을까지는 비포장이다. 어둑한 칼을 내려오다 뒤돌아보니 고주파 같은 하늘금이 황홀하다.

해질녁에 본 황홀한 하늘금

5월 7일 8시 30분, 일행은 관악전에 도착한다. 수통에 물을 채운 뒤 산행을 시작한다. 고갯마루에서 쉬지 않고 바로 싸리나무가 빽빽한 능선을 오른다. 길도 없는 초입에 부산 태극산악회 표지기가 하나 걸려있다.

잡목숲을 1시간 정도 허우적거리자 427봉 정상이다. 오소재 너머 능허대와 가련·두륜봉이 손에 잡힐 듯하다. 이후의 길은 작은 암봉과 흙길이 이어져있지만 가끔 그물 같은 잡목숲에 파묻혀 고생을 한다. 401봉이 가까워지면서 소사나무가 부쩍 많이 눈에 띈다. 401봉을 넘어서니 낫으로 나뭇가지를 쳐내고 낸 길이 산 오른쪽 어깨로 이어져 있다. 산길이 갑자기 널럴해진다.

일행은 신이나서 걷는다. 그러나 내려가다 베어진 나무를 자세히 보니 대부분 소사나무다. 길에서 한참 벗어난 곳에 있는 것도 잘려있다. 누군가 분재로 사용하기 위해 전초작업을 한 것이다. 일행은 분통을 터뜨린다.

오소재로 내려서는 길은 키 큰 철쭉이 숲을 이루었다. 앞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이파리에 앉아있던 송홧가루가 먼지처럼 풀썩인다.

3시 25분, 오소재에 내려선다. 용동리쪽으로 3분 정도 내려가니 길가에 풍부한 석간수가 있다. 일행은 물을 실컷 먹고 마침 아무도 없어 등물까지 하고는 간식을 먹는다.

거센 하늬바람에 나뭇잎이 허옇게 뒤덮인 만덕산에서 땅끝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거친 암릉과 한발 내딛기 어려운 잡목이 번갈아 있다.

석간수 바로 아래에서 우측으로 오른다. 길이 잘 나있어 이전의 고생은 모두 잊은 듯 즐겁다. 1시간 가량을 오르니 오심재 고갯마루다.

빽빽한 철쭉 틈에 성글게 솟은 억새가 바람에 흔들린다. 북으로는 고계봉에 오르는 길이 실타래처럼 풀어져 있다.

잠시 땀을 식히고 가련봉을 향해 오른다. 울울창창한 산죽길을 지나니 능허대라 하는 685봉이 길을 막는다. 개구멍바위를 지나 10여분 오르니 꼭대기는 50여명은 너끈히 둘러 앉을 수 있는 너럭바위다. 다소 험한 암릉을 20여분 오르내리니 가련봉(703m) 꼭대기다.

가련봉에서 암릉과 너덜을 지나 억새가 깔린 헬기장이 있는 만일재 고갯마루에 내려서니 6시 30분이다. 서쪽길로 내려서 1시간만에 돌담을 운치있게 쌓은 삼성마을에 도착한다. 벧엘가든으로 가 짐을 챙겨 밤늦게 두륜산민박시설지구로 향한다.

동백이 온산을 뒤덮은 두륜산

5월 8일, 날은 여전히 맑다. '두륜산 대둔사'라 쓰인 일주문을 지나 경내에 든 시간은 오전 9시. 대흥사는 지난 92년에 절집 이름을 대흥사에서 대둔사로 바꿨는데 현재는 서류상의 절차만 남아있는 상태다.

서산대사와 사명당의 영정이 봉안된 표충사 앞 갈림길에서 진불암쪽으로 들어선다. 산길은 제법 넓고 주위는 온통 아름드리 동백나무다.

두륜산은 동백나무로 뒤덮인 산이다. 동백꽃이 지기 시작하는 3월 중순께 오면 아주 좋을 것같다. 그러나 지금은 5월, 꽃은 이미 오래전에 졌다. 붉은 표지기를 동백꽃으로 혼동하기도 하며 30분만에 진불암에 다다른다. 고즈넉하고 아늑한 풍경의 암자다.

진불암을 나서 코가 땅에 닿을 정도의 가파른 길을 30분 정도 오르니 두륜산의 명물인 바위로 된 구름다리다. 폭 2미터, 길이 5미터 정도의 이 다리는 풍화작용에 의해 구멍이 뚫려 생긴 것이다.

두륜봉에서 남쪽으로 난 길로 내려서다 너른 길을 버리고 암릉으로 붙는다. 표지기를 따라 희미한 암릉을 조심스레 내려서니 해림령까지는 키작은 철쭉이 흐드러지게 핀 부드러운 길이다. 이어 나오는 산죽밭을 헤치며 50미터 정도에 연달아 있는 헬기장을 두 개 지나니 갈림길이다.

잡목숲을 헤치고 나가는 일행. 만덕산에서 땅끝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거친 암릉과 한발 내딛기 어려운 잡목이 번갈아 있다.

대부분의 표지기는 오른쪽에 붙어있지만 그건 대흥사쪽으로 빠지는 길이다. 길을 잘못 들어 10분 정도 허비한 후 다시 왼쪽길로 든다.

바람도 구름도 한점 없다. 덥다. 땀을 잔뜩 흘리고 507봉 바위 그늘에서 휴식을 취한다. 바람은 없지만 해가 들지 않아 살 것 같다.

하늘색 산불감시소를 지나 대둔산 중계소 정문 앞에 다다른 시간은 12시 30분. 대둔산은 도솔봉이라고도 한다. 중계소 철망 둘레의 순찰로를 통해 정상 근처로 오른다. 3∼400미터 정도의 암봉이 오밀조밀 길게 이어진 능선을 바라본다. 우리의 목적지인 땅끝은 가물가물 아직 멀기만 하다.

390봉을 향해 막 내려설 때는 길이 있을 듯하고 바우도 사람의 손을 탄 듯하더니 이내 잡목숲이다. 다만 간간이 보이는 꺾인 나뭇가지와 잔가지를 쳐낸 낫자국이 등산객이 지나간 흔적이란 것을 알려줄 따름이다. 390봉을 지날 무렵에는 아예 그런 흔적도 없어진다.

김씨는 잡목을 헤치는 데 선수다. 등산로가 끊기면 노릇길을, 노릇길이 없어지면 토끼길을 따라간다.

오후의 땡볕이 머리 위에서 짓누른다. 능선이라 뜨거운 햇살을 피해 쉬기가 적당치 않더니, 오후 1시 30분경 앞을 가로막는 높은 바위 벽 동쪽으로 제법 너른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거기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점심을 먹고 30분 가량을 내려서니 큰 암봉이 길을 가로막는다. 마지막 큰 봉일거라고 생각하고 가까이 다가가보니 뒤로 다시 암봉이 있다. 그 암봉도 연결된 것이 아니라 자주 끊기고 그 사이는 잡목이라 아주 곤혹스럽다. 그대로 드문드문 휴식하기에 적당한 곳이 있어 다행이다.

도솔봉 근처의 작은 암봉을 조심스레 내려서고 있다

그물같이 엉킨 가시넝쿨 속을 빠져나와 만난 작은 벽을 얼른 넘어선다.

4시 50분에 동해리와 조산리를 잇는 고갯길에 닿았지만 이 옛길은 잊혀진 지 오래인 듯 잡풀과 가시나무로 뒤덮여 흔적이 희미하다. 여기부터 바위는 제법 리지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잡목을 피해 바위로 달라붙는다. 1시간 가량 가니 야골과 신기마을을 넘나드는 고갯길이다. 태양사는 동쪽으로 5분 가량 내려가면 된다.

작은 암봉을 하나 넘으니 발 아래 태양사가 자리하고 있다. 태양사를 흘금흘금 바라보며 판자 같은 바위가 포개져 이어진 아슬아슬한 암릉을 지난다.

297봉부터는 다시 잡목이다. 드문드문 나타나는 암봉은 이끼가 있어 등반이 곤란하다. 227봉으로 갈라지는 능선에서부터는 길이 전혀 없다. 빽빽한 소나무 숲 사이로 빠져나오는 것은 명감나무나 산딸기 가시만큼 고통스럽다. 147봉을 거쳐 공동묘지를 지나 딱골재로 내려서니 땅거미가 지고 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내집 같은 벧엘가든으로 향한다.

5월 9일, 날은 여전히 맑다. 딱골재에 도착한 시간은 8시 40분. 능선으로 치고 오른다. 흐릿하지만 길은 그런대로 잘 나있다. 그럭저럭 봉우리를 하나 넘어서니 농로가 나온다. 길을 따라 40분 정도 가니 270봉과 달마산 능선으로 이어지는 안부다.

백련사 만경두 앞에 모인 일행. 왼쪽부터 김홍규목포주재기자, 장애란씨, 한사람 건너 김태호씨, 최종이 순천주재 기자, 마지막이 강동수씨다.

10시 정각에 본격적으로 달마산 산행을 시작한다. 부드러운 산길을 가다 모퉁이를 도니 불쑥불쑥 솟아오른 달마산 암릉이 길게 이어져 잇다. 길이 잘 나있어 기분이 좋다. 호흡을 가다듬고 그간 빼앗긴 시간을 보충하고자 철쭉이 만발한 능선에서 잰걸음을 한다.

능선 좌우사면은 넓고 긴 너덜이다. 동쪽으로는 잔잔한 호수 같은 바다 건너 완도의 최고봉인 상황봉(644m)도 보인다.

안개가 피어나는 바닷가의 섬들이 깊은 산중에 와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담쟁이가 붙은 바위를 오르내리고 바위 사이로 난 길로 가는데 앞에 달마산 최고봉인 봉화대가 봉긋하다. 정상에는 사람들이 서있는 듯한데 움직임이 없다. 이전에 길이 없는 구간에서는 족히 3시간 이상 걸릴 거리이건만 반도 안 걸려 봉화대에 도착한다.

기묘한 절경이룬 달마·도솔리지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봉화대는 둘레가 60보, 높이는 2∼3미터 가량된다. 정상에는 사람 키만한 돌탑이 서너 기 있는데 멀리서 보면 사람같이 생겼다. 이기자도 염원을 담고 돌탑을 하나 쌓는다. 서쪽 아랫자락에는 미황사가 자리하고 있다.

봉화대를 떠나 암릉을 따라 20여분 정도 가니 예닐곱 개의 높다란 암봉이 빙둘러 있는데 조물주의 장난인 듯 기묘한 형상들이다. 제법 짭짤하고 재미있는 두 마디 정도의 바윗길을 수십 개 낼 수도 있겠다.

바위 틈새로 난 길이 아슬아슬하다. 달마·도솔 리지중에 가장 아름다운 곳인 것 같다.

미황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문바위라 하는 작은 개구멍을 지나 도솔봉 안부에 도착한다.

앞을 보니 도솔봉이 우뚝하다. 표지기가 있는데 자일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구간이다. 서남쪽으로 도는 우회로는 길이 5미터 가량의 굴을 높은 포복으로 지나가야 한다. 근처에는 팥알 같은 수정이 드문드문 보인다. 도솔봉을 내려선 12시 40분에 일행은 점심을 먹는다.

도솔봉에서 중계소가 있는 417봉까지도 산길은 비교적 평탄하다. 417봉 근처의 마련마을과 금산, 서호마을을 잇는 안부를 지나니 길쭉한 돌에 둘러싸여 길에서는 보이지 않는 도솔암이라는 조그만 암자가 오른쪽에 있다. 그리로 올라가는 이십개 가량의 돌계단이 없다면 암자의 존재를 눈치채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건 암자라 하기엔 다소 어색한 움막이다. 흙묻은 작은 탑과 독경소리가 암자임을 암시할 뿐이다.

암봉에 싸인 비밀스런 도솔암

우리나라 최남단인 갈두리에 세운 토말탑.

3시에 송신소 정문께서 간식을 먹고 송신소 도로에서 땅끝으로 가는 능선으로 내려선다.

땅끝으로 내달리던 암릉은 417봉을 지나며 육산으로 바뀌어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동남으로 방향을 틀어 윤도산을 거쳐 바다로 빠지고, 하나는 곧장 갈두리 사자봉 땅끝으로 치닫는다.

마련마을과 통호리를 잇는 고개까지는 길이 잘 나있지만 그 다음부터의 길은 희미하니 보이지 않는다. 잡목을 헤치다가 오솔길이라도 나와 따라가다보면 그건 영락없이 주릉에서 벗어나 묘지로 빠지는 길이다. 몇 번을 속은 후에 지정골로 빠져 산판길을 따라 송호리가지 걸어가기로 한다.

5월 10일, 산행 6일째로 마지막 날인데 날이 궂다. 계획한 날보다 하루가 더 걸렸지만 남은 길이 도상으로 20리 정도밖에 되지 않아 편안한 마음으로 통호리 넓골로 향한다. 오늘 구간은 표고 200미터 내외의 야트막한 야산이지만 능선을 덮고 있는 구름은 제법 깊은 산중에 있는 느낌을 준다.

넓골 초입에 들은 시간은 10시. 일행은 지도에 표시된 마을 뒷길로 간다. 마을 사람들의 길이 없다는 말에도 '설마 이 낮은 산에…'하며 밭두렁을 따라 계곡길을 오른다.

그러나 길은 이내 사라지고 대신 뱀 잡는 그물이 나타난다. 그것을 따라가다 능선으로 직접 올라치기로 한다. 1시간 정도 오르니 능선이다. 하지만 키를 훨씬 넘는 잡목숲과 안개 때문에 독도가 불가능하다. 나무에 올라 현위치를 파악하려 해도 소용이 없다. 길이 나와 좋아라 하고 가보면 묘지로 가는 길이다. 이건 완전 가시투망에 걸린 고기꼴이다. 길 없는 잡목숲을 헤치다가 225봉 근처에서 계곡을 타고 산 아래로 내려서는데 우르릉 천둥소리가 들린다.

바다가 시작되는 땅끝

해안도로를 타고 동남으로 내려와 점심을 먹은 뒤 147봉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30분. 잡목을 헤치다가 높은 소나무에 올라가보면 남쪽으로 사자봉에 우뚝선 전망대가 손에 잡힐 듯하고, 바다에는 고기잡이 나가는 배가 흑일도 백일도 사이로 물결을 가르고 있다. 미로 같은 무덤 사이의 가래길에서 숨바꼭질하듯 2시간을 헤맨 후에 일행은 갈두에서 사자봉으로 올라오는 고갯마루에 선다.

일행이 첨탑같이 솟은 토말탑 아래에 선 시간은 6시 정각. 토말탑은 비에 젓은 채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다.

땅끝, 백두에서 뻗어내려 길게길게 이어온 끝. 거기서 땅은 함몰하고, 거기서 바다는 시작하고 있다. 여느 해안처럼, 눈을 들어 흐릿한 수평선을 바라본다. 저건 흑일도, 저건 어룡·장구도, 저건 노화도, 저건… 점점이 이어진 섬들, 이곳은 끝이되 끝이 아니었다. 하늘 낮은 해안 바위에는 파도만 흰거품을 물고 철썩인다.

                     '사람과 산' 글 민병준 기자 사진 이한구 기자

제공:오케이마운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