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리안 신대륙발견 -
신라 향가 <헌화가>의 수로부인(水路夫人)과 고래와 혼인한 알라스카 원주민 여인
2010년 3월 15일자 <국제신문>에서 고기화 논설위원은 그의 <도청도설: 고래 바다>라는 칼럼에서 필자의 주장을 인용하고 있다. 그 내용은 <코리안 신대륙발견> 설악산 울산바위가 울산 반구대 고래암각화를 닮은 이유 의 내용을 소개한 내용이다.
설악산 울산바위를 울산 반구대 고래암각화와 연관시키는 이도 있다. 울산바위의 굴곡진 모양들이 고래떼가 올라가는 모양을 닮았다는 것. 고래떼가 동해안을 따라 알래스카까지 올라가면서 설악산 해안을 지나가는 모양이 울산바위에 상징적으로 새겨진 것이라는 상상력을 발동한다. 더 나아가 알래스카 원주민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오는 사람과 혼인한 흰 돌고래의 전설을 끌어들여 조상이 죽어 고래로 환생한다는 토템숭배의 양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고기화 논설위원. <도청도설: 고래바다> 국제신문 2010년 3월 15일자.
http://www.kookje.co.kr/news2006/asp/center.asp?gbn=v&code=1700&key=20100316.22031202457
<국제신문>은 울산 반구대의 역사가 서려 있는 부산 울산 경남 일대의 주요 일간지이다. 코리안 신대륙발견론은 점점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는 좋은 현상임이 틀림없다. 알라스카 원주민이 흰 돌고래와 혼인한 전설을 필자가 소개한 내용은 다음 글들에서 볼 수 있다.
<코리안 신대륙발견> '귀신고래'는 '조상귀신 고래'를 의미
<코리안 신대륙발견> 3천년 된 아막낙 섬 온돌과 함께 발굴된 고래뼈 탈(Whalebone Mask)의 유래
<코리안 신대륙발견> 처용탈춤의 역신과 고래 작살잡이의 성적 유감주술(Sympathetic Magic)
<코리안 신대륙발견> 석굴암과 대왕암, 망해사와 처용암은 한 세트의 암수 고래사당
그 외에도 <코리안 신대륙발견 아메리카 인디안들처럼 고래(龍)와 혼인한 신라 여인들>에서도 미국의 시애틀 인근 태평양 연안에서 고래잡이 전통을 지켜온 마카인디안들의 Wedding Rock 암각화가 고래와 사람의 혼인 이야기라는 것을 소개했다. 그것은 신라인들이 고래와 혼인한 동해안의 신방사(新房寺)에 이어져 있다는 것도 다루었다.
왕건의 할아버지 작제건이 바다의 풍랑에서 용왕을 만나고 그 딸을 아내로 삼은 것은 고래신화에 이어져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울산 앞바다를 '경해(鯨海)'라고 표현했듯이 동해바다는 고래와 함께 해석되어야 한다. 문무대왕의 비문에서 '고래나루(鯨津)'가 나오는 것도 동해 고래토템 숭배 문화를 보여준다.
울산(蔚山) 인근 장생포의 '장생'이란 토템폴을 의미하는 '장승'에서 나온 것이라고 필자는 주장했다. 장생(長生)이라는 말은 사람이 죽어도 고래로 다시 태어나서 오래도록 불노장생한다는 신선풍류도의 고래토템의 의미를 담은 한자인 것이다. 이러한 신선풍류도 어감을 불교적인 의미로 윤색시킨 것이 '장승'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고래토템폴이 장승의 원래 기능이라 할 수 있다. 귀신고래가 회유하는 장생포 앞바다는 1962년 천연기념물 126호로 지정되어 그 이름을 북극 고래가 회유하는 바다라고 하여 극경회유해면(克鯨回遊海面)라고 명명했다.
나는 이 글에서 신라 향가 <獻花歌>에 나오는 수로부인(水路夫人)과 그녀에게 철쭉꽃을 바친 소모는 노인은 고래토템 숭배의 잔흔을 보여주는 '귀신고래'의 신화적인 주인공들이었다는 것을 논하려 한다.
알라스카 원주민들 사이에는 흰 돌고래와 혼인한 여인 신화를 보다 구체적으로 소개함으로써 동해안와 알라스카 베링해의 고래잡이문화의 연계성을 비교하여 살펴보자.
1. 수로부인 신화를 통해 본 신라 신화의 해신(海神), 천신(天神), 지신(地神)
<삼국유사>의 헌화가(獻花歌)에서 '소 모는 노인'이 나온다. '소모는 노인'은 농부라는 뜻이 아니다. '소 모는 노인'은 '견우(牽牛)'와 같이 를 농사짓는 사람으로 볼 수 없다.
소 모는 노인이 수로부인(水路夫人)에게 철쭉꽃을 바치는 내용은 폭포수에 내려와 목욕하는 선녀 직녀에게 옷을 훔쳐 아내로 삼는 내용의 다른 버젼이다.
수로부인(水路夫人)에게 꽃을 바치는 이야기는 요즈음과 같이 프로포즈를 하는 신들의 생화(生花) 이야기이다. 헌화가는 제의적인 노래였다.
그 설화에 나오는 수로부인은 바다의 용을 따라 바다에도 들어갔다 나오기도 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水路夫人'의 水路란 물길을 의미하며 고래토템과 연관되어 있다. 수로부인은 알라스카 원주민 여인이 고래와 혼인하여 바다로 들어간 내용과 신화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원주민 고래잡이들의 문화를 다룬 영화 Whale Rider에서도 고래 따라 물속으로 들어가는 12소녀 이야기가 나온다. 뉴질랜드 동부 바다 노스 섬(North Island) 원주민 고래잡이 전승을 바탕으로 한 고래와 소녀 사이의 러브스토리 이야기로 시카고 선타임즈의 유명한 롸저 에버트를 비롯한 대부분 비평가들로부터 4 스타를 받은 명작으로 알려져 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piccom.org%2Fhome%2Fwhalerider%2Fimages%2Fsp-header.jpg)
* Whale Rider (2002) 포스터
Whale Rider는 2002년 뉴질랜드와 독일의 합작 영화로 니키 카로 감독으로Witi Ihimaera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12살 소녀 원주민 Kahu Paikea Apirana(Castle-Hughes 분)은 여자인데도 부족의 추장이 되고자 노력한다.
그 소녀의 할아버지 코로(Koro)는 추장은 남자만이 한다고 믿고 있다. 영화의 로케이션은 소설의 배경이 된 환가라(Whangara) 해안에서 이루어졌다. 이 영화로 주인공 소녀로 분장했던Castle-Hughes는 아카데미상 주연 최고 여자주연상을 받았다.
주인공 파이(Paikea Apirana, "Pai")는 소녀이지만, 부족의 추장을 계승할 수 있는 유일한 혈통이다. 그녀의 쌍동이 오빠와 어머니는 파이가 출생할 때 모두 죽었다. 전통에 의하면 그들 부족의 추장 자리는 추장 가문인Paikea 가문의 맏아들이 계승하도록 되어 있다. 그 추장 Paikea(Pai) 가문은 이른바Hawaiki 고래잡이들 가운데 ‘고래 타는 사람(Whale Rider) 혈통이다. 그러나 ‘파이’는 딸이었기에 테크니칼리 추장을 계승할 수 없다.
파이의 할아버지 코로 아피라나(Koro Apirana)는 추장이지만 그의 부인 내니 플라워스(Nanny Flowers)가 ‘늙은 파카(Old Paka)’라고 부른다.
추장은 손주인 파이와 쌍둥이로 태어났으나 죽은 손자를 잃은 것이 못내 분하기만 하여 딸 손녀는 그저 쓸모없는("worthless")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할아버지 추장은 손녀와 친하게 지내면서 그녀를 매일 자전거로 학교까지 데려다주곤 했다. 그러던 중 파키아 추장은 마을에서 추장 계승에 대하여 자신의 손녀에 적절하지 못한 분위기 때문에 그의 아들과 손녀를 마을에서 내보내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그녀는 바다 마을을 떠나려고 하니 고래가 자신을 부르는 것만 같아 떠날 수가 없는 마음이다. 그래서 떠나던 도중에 아버지에게 차를 돌리도록 하여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 파이의 아버지는 스스로 추장이 되기를 거절한 사람이다. 그는 독일고 가서 아티스트가 되고싶었기 때문이다. 파이는 그래서 자신이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 마을의 추장이 되고싶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해오는 노래와 춤을 배우려고 힘을 쓴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그녀의 뜻을 받아주지 않는다. 여자가 추장이 된 적은 전에 없던 일이지만, 파이는 그녀가 추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할아버지 코로는 마을의 소년들을 위한 문화학교를 조성하기로 결정하고 거기에서 새로운 추장감을 고르려고 마음 먹는다.
그는 소년들에게 타이아하(taiaha: 창술)를 사용하는 것을 가르친다. 이것은 남자들만이 배우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할머니 내니는 파이에게 그녀의 두째 아들이며 파이의 삼촌이 어렸을 때 몸은 약해도 타이아하 경기에서 우승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때부터 파이는 비밀히 삼촌에게 타이아하 기술을 배운다. 그러면서 할아버지 코로의 클라스에서 가르치는 방식까지 비밀히 연습한다. 그러나 그러한사실을 코로 할아버지가 알았을 때 그녀의 타이아하는 헤미(Hemi)를 상대하여 이기고 있을 정도의 실력이 늘었을 때였다.
파이와 할아버지 코로 사이가 학교의 소년들 중에 아무도 레이 푸타(rei puta: 고래 이빨)에 대한 전통적인 일을 따라 하지못하여 그것을 바다에 던져 버렸을 때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레이 푸타 일은 전통적으로 추장이 될 수 있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그런 전통적인 특별한 일이었다.
파이는 그러한 사실을 파악하고 할아버지 코로를 어느날 그녀의 학교에서 기획한 마오리(Maori) 웅변대회에 특별히 초대했다.
그녀가 원주민 마을 출신으로서 학교대항 웅변 컨테스트에서 우승하게 된 줄은 그때까지 아무도 알지 못했을만큼 코로 할아버지도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웅변대회에 가게 되었다. 학교로 가는 도중 그는 수많은 참고래(right whale)가 파이의 집 근처 해변으로 떠밀려 와 있는 것을 목격한다. 온동네가 그 참고래들을 물속으로 되돌려 보내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트랙터를 사용해도 밧줄이 끊어져 헛수고였다. 코로는 그 상황을 보고 자신의 실패의 징조로 여기고 어떤 액땜을 하려고 힘을 쓴다. 그는 손녀 파이에게 가장 큰 고래에게 파이가 손을 대는 것은 “부정탄다”고 생각하여 손을 못대개 한다. 전통적으로 가장 큰 고래는 전설적인 파이키아 자신만이 손을 댈 수 있다. 그러나 코로가 잠시 뒤로 물러나 있는 동안 파이는 가장 큰 고래 등에 올라가 그 고래를 다독여 바다로 들어가게 했다. 파이키아는 그러한 과정에서 파이키아는 물에 빠져 죽을뻔까지 했다.
파이가 바다로 들어가던 바로 그때 할머니 나니 플라워즈는 남편 코로에게 파이가 고쳐둔 레이 푸타의 고래 이빨을 보녀준다.
고래를 따라 바다 속으로 들어가 사라진 파이를 마을 사람들이 얼마 후 찾아내서 병원으로 보냈는데 코로는 그때 그의 손녀 파이가 추장이라는 것을 선언하면서 그녀에게 받아들이기를 요청한다. 영화는 그렇게 마을에서 파이 아머지, 삼촌, 할아버지 할머니가 파이가 추장이 된 것을 축하하는 자리를 만든다. 그때 새로운 여추장 파이를 위하여 다 만든 와카(waka, 카누의 일종)를 바다에 진수시키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File:Whangara panorama.jpg](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upload.wikimedia.org%2Fwikipedia%2Fcommons%2Fthumb%2F8%2F8d%2FWhangara_panorama.jpg%2F800px-Whangara_panorama.jpg)
*Whale Rider 영화 로케이션 지역인 뉴질랜드 동부 노스(North) 섬의 환가라(Whangara) 포구 전경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lh4.ggpht.com%2F_JrsLPoYKp5A%2FRwSzsNYvOxI%2FAAAAAAAAAHQ%2FatwzuF9A36Y%2Fs720%2FP8150039.JPG)
*Whale Rider를 촬영했던 환가라(Whangara) 포구의 어느 지붕.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lh3.ggpht.com%2F_JrsLPoYKp5A%2FRwiUAJh2DhI%2FAAAAAAAAAbc%2FsvtMd4MELRc%2FBOP%2520tauranga%2520059.jpg)
*환가라(Whangara) 포구에서 영화 Whale Rider에 사용한 와카(Waka) 고래잡이 배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lh6.ggpht.com%2F_JrsLPoYKp5A%2FRwSzCtYvOpI%2FAAAAAAAAAGQ%2FX44BCjdeRCc%2Fs720%2FP8150031.JPG)
Whangara Marae where Whale Rider was filmed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moviemail-online.co.uk%2Fimages%2Flarge%2Fwhale-rider.jpg)
*영화 Whale Rider를 촬영했던 환가라(Whangara) 포구의 바닷가의 노스 섬.
고래를 닮아 있다고 하여 여기에서 주로 많이 촬영했다고 한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lh4.ggpht.com%2F_JrsLPoYKp5A%2FRwSynNYvOiI%2FAAAAAAAAAFU%2FK2G_7YPZPQg%2Fs720%2FP8150024.JPG)
*환가라 포구 앞바다의 고래닮은 노스 섬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evelynrodriguez.typepad.com%2Fphotos%2Funcategorized%2F2008%2F03%2F12%2Fcliffofmoher.jpg)
*소설 Whale Rider의 표지. 수로부인의 철쭉꽃이 핀 동해바다 절벽을 연상하게 한다.
Whale Rider By Witi Ihimaera, Cliff Curtis Bio,
![File:EarleWarSpeech.jpg](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upload.wikimedia.org%2Fwikipedia%2Fcommons%2Fc%2Fce%2FEarleWarSpeech.jpg)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의 1827-8년 즈음 전투 카누(Waka taua) 위에서 추장이 연설을 하느 장면
이 영화를 주로 찍은 환가라 포구 앞의 노스 섬은 고래를 닮아 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알라스카 고래잡이 원주민이 케이코(Keiko)라는 고래를 따라 그리고 수로부인(水路夫人)은 '용'을 따라 바다로 들어가는 구조와 거의 일치성을 보인다.
바다의 용은 고래였다. 고래토템은 용토템보다 선재한다는 것을 앞선 글에서 충분히 다루었다. 수로부인에게 철쭉꽃을 바친 '소모는 노인'은 수로부인을 바다 속으로 끌고들어갔던 바로 그 '용'이었다는 것을 <삼국유사>의 다른 '용' 설화에서 찾아낼 수 있다.
수로부인은 신라 성덕왕(聖德王) 때 강릉태수 순정공(純貞公)의 부인으로 등장한다. 강릉태수는 동해안 바닷가의 태수로서 고을을 다스리려면 그 시대의 동해 용왕과의 교류와 연고를 보여주어야 했을 것이다.
신라시대 지도자들은 그 자신의 신성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부인이 신화적 배경이 있다는 분위기에서 활동했다. 그것은 신라 왕실에서 왕권의 권위와 그 계승이 황후의 신성한 여신적인 배경 파워에서 이루어져 온 '신국의 나라' 신라의 무속적 전통을 배경하고 있다. <화랑세기>에서 말하는 신라 왕계의 계승에 영향력을 가지는 '대원신통'과 '진골정통'은 왕실의 모계라인에서 나온다는 것을 이미 알려졌다.
강릉 태수는 그래서 그 부인 수로부인이 동해바다 용왕과 교감하게 되어 있도록 또는 그렇게 무속적인 의식을 가졌던 것이 <삼국유사> 수로부인편의 설화구조의 근본 배경으로 생각해야 한다.
태수가 그곳 해안가에서 행차하였을 때 수로부인은 용과 함께 바다로 들어가버렸다. 사람들이 지팡이로 바닷가 언덕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자 도시 바다의 용은 수로부인을 데리고 나와 태수에게 '바쳤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무속적인 구조이다.
용은 동해 바다의 '용왕'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수로부인이 그 용을 따라간 바다 속 궁전을 '칠보궁전(七寶宮殿)'이라 표현한데서 볼 수 있다. 강릉태수의 아내인 수로부인이 동해용왕과 교류한다는 내용은 신라시대에 지도자들의 부인이 바다의 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종교적으로 암시하고자 한 큰 틀에 일치한다. 왕건의 할아버지 작제건(통일신라시대 인물이다)의 부인이 용왕의 딸이며 우물 속으로 사라져 바다로 가는 내용이 작제건 신화에 그대로 일치한다는 것에서도 볼 수 있다.
삼국통일의 출정을 떠나는 김유신 장군이 그 아내 재매부인과 연관된 재매정 우물에서 물을 한 바가지 마시고 떠난 것은 그의 아내 재매부인을 통하여 바다 용왕의 힘을 빌어 삼국의 바다의 해신들의 도움을 받고자 한 무속적인 의미가 있다고 나는 해석한다.
따라서 수로부인에 대한 기록은 신라시대의 여신숭배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그 여신은 바다의 해신을 의미한다. 해신의 딸을 보통 <삼국유사>에서는 '용녀(龍女) 또는 '여룡(女龍)'으로 표현했다. 바다의 해신의 딸이란 대왕고래 또는 범고래 토템에서 나온 용왕의 딸을 의미한다. 그래서 부인이 해신이며 남편은 천신이라는 것에서 천지 음양합일을 의미하는 신화적인 구조가 이러한 신라시대 신화의 기본 혼인 구조를 볼 수 있다.
<삼국유사> 만파식적편에 김유신이 '천신(天神)'으로서 지상에 내려와서 삼국을 통일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 김유신의 부인 재매부인(財買夫人)은 바다와 연관된 재매정(財買井) 우물을 통하여 바다와 교신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나중에 작제건 신화에서 작제건의 아내인 용녀는 남편 작제건에게 자신이 우물로 들어가 바다로 가서 용궁으로 오가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뿐만 이나라 <삼국유사> 진성여왕대의 거타지 신화에서는 거타지의 아내는 용왕의 딸로서 연못을 통하여 오가는 내용으로 표현된다.
재매정(財買井)의 구조는 첨성대(瞻星臺)를 닮아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 선덕여왕이 첨성대를 만든 것은 여왕 자신이 바다의 해신으로서 하늘의 천신과 혼인하는 천신 해신의 교통로의 의미로 첨성대(瞻星臺)를 만든 것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전통 신라시대 왕은 물론 지도자들은 신으로 숭앙되었으며, 고래(용)와 인간의 반신반용의 고래토템 신화를 가지고 있었다. 천신과 해신(海神)의 혼인한 부부 지도자를 모시는 역할을 열두 지신(地神)이 그 역할을 했다. 김유신 장군묘의 구조는 천신인 김유신이 해신(海神)인 재매부인과 혼인하였는데 땅의 짐승토템 신들인 열두 지신이 호위하는 것으로 되어 있것은 전형적인 신라시대 신화 구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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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장군 아내 재매부인의 이름을 가진 재매정(財買井)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donga.com%2Fdocs%2Fmagazine%2Fshin%2F2007%2F01%2F08%2F200701080500052%2Fimage%2F200701080500052_1.jpg)
*선덕여왕이 해신으로서 천신과의 교류의 의미로 세운 첨성대(瞻星臺)
김유신 장군 집의 재매정(財買井)과 일치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isilla.co.kr%2Fver_2006%2FB_06_Cultinfo%2Fimage%2Fimg_seak%2Fkimyushin02.jpg)
*'천신'으로 기록한 김유신 장군묘를 수호하는 땅짐승 토템인 십이지신상
재매부인(해신)과 김유신(천신) 장군과 수호하는 지신이 십이지신 의미한다.
신라의 신의 권위는 해신>천신>지신의 순서였다.
신라시대 토템신화의 신의 지위는 여신인 해신이 최상위에 있었다. 천신으로 지상에 왔다는 김유신이 전장에 나가면서 그의 처인 재매부인의 이름을 가진 재매정 우물에서 물을 한 바가지 떠오게 하여 마시고 떠났다는 것은 해신에게 보호를 기원한 것이다.
수로부인 신화에서 남편인 태수는 수동적이며 수로부인이 더 권위를 가진다. '소 모는 노인'은 소신 이른바 십이지신에서 두번째 나오는 축(丑) 토템지신을 의미한다. 소 모는 노인이 철쭉꽃을 따다 바친 내용은 일면 지신이 해신인 수로부인에게 꽃을 바치는 의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태수는 지방 관아인 강릉태수라는 면에서 지나치게 자신이 '천신'임은 드러낸 내용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김유신 장군과 재매부인 내용에서 태수의 위치는 천신의 이치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고대의 신화구조는 지배자들의 권력의 신화적인 신성감을 부여하려 한 것이다. 인간의 부인이지만 해신(海神)의 딸이라는 것을 강조하여 자신은 '천신(天神)'이라는 것을 암시하려는 것이 이러한 수로부인 스토리에 숨어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수로부인 신화에서 '소모는 노인'은 바다의 '용왕'의 둔갑신이었다는 것을 <삼국유사>의 어산불영(魚山佛影)편의 기록에서 볼 수 있다.
2. 수로부인 신화의 무속적 구조
철쭉꽃을 수로부인(水路夫人)에게 바친 '소 모는 노인'의 노래인 <獻花歌>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紫布岩乎邊希執音乎手母牛放敎遣.
吾 不喩 伊賜等 花 折叱可獻乎理音如
자줏빛 병풍바위 가에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 않으신다면 저 꽃 꺾어 바치오리다.
이 노래는 사실상 '신들의 혼인 노래'이다. 꽃을 바치는 것은 물론 수로부인(水路夫人)도 바다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은 물론 노인 또한 다른 종자들은 하지도 못한 일을 수직 벼랑을 오르내리면서 꽃을 바친 것은 수로부인과 같은 바다의 해신과 관련된 신선이었기 때문이다.
수로부인(水路夫人)에게 나타난 소 모는 노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은 바다의 '용'으로서 해신에 속해 있었다는 암시적인 기록이다. 꽃을 바친 이틀 후 수로부인과 그녀의 남편 강릉태수 일행이 임해정(臨海亭)에 다다랐을 때에 바다에서 용이 나타나 수로부인(水路夫人)을 끌고 바닷 속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그것은 그 '소 모는 노인'이 꽃을 바치고 '혼인'을 했으므로 부인을 바다로 데리고 들어갔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임해정(臨海亭)이란 바다에 임한 정자란 뜻이기 이전에 '해신이 임하는 곳'이라는 의미로서 <삼국유사>의 불교적인 기론 이전에는 정자가 아니라 본래는 무소적인 사당으로서 임해(臨海祠堂)이었을 것이다.
신라에는 경주의 임해전(臨海殿)은 물론 바닷가에 이와같은 '臨海'의 이름들이 많이 나오는데 모두 무속적인 해신 신당에서 유래한다고 보아야 한다. 나중에 불교의 사찰로 변한 감은사나 이견대는 모두 수로부인 신화의 '臨海' 사당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臨海'는 동해안의 여러 오래된 무속적인 사당이었던 망해(望海) 또는 해망(海望)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곳들과 같은 해신 즉 고래토템 숭배사당이었다고 볼 수 있다.
![haemangsan1[1].jpg](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afe.chosun.com%2Fimg_file%2Fclub_file%2F96%2Fdreamview%2Fbbs%2F66%2Fhaemangsan1%255B1%255D.jpg)
*동해안 삼척시 해망산(海望山). 서낭당 올라가는 입구. 금줄이 처져 있다.
소나무 뒤로 서낭당이 보인다.
관련글: <코리안 신대륙발견> 용왕을 기리는 망해사(望海寺)를 신방사(新房寺)라 하는 이유
![haemangsan4.jpg](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afe.chosun.com%2Fimg_file%2Fclub_file%2F96%2Fdreamview%2Fbbs%2F66%2Fhaemangsan4.jpg)
*해망산의 안내표지판. 산이 바다로 떠내려와 해망산이 되었다는 것은
바다의 고래가 큰 바위들이 되었다는 <삼국유사> 만어산 신화와 같은 수신 고래토템과 지신인 산신의 융홥을 보여준다.
![haemangsandang3.jpg](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afe.chosun.com%2Fimg_file%2Fclub_file%2F96%2Fdreamview%2Fbbs%2F66%2Fhaemangsandang3.jpg)
*해망산. 무속인들의 기도 흔적.
지금도 무속인들에게 용궁치성을 하는 곳이다. 용궁이란 고래토템 숭배의 무속적 바다속 궁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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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산, 서낭당 모습.
본래 고래사당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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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서낭당은 바다의 해신인 고래를 모신 사당이었다는 것을 동해안에 남아 있는
여러 무속적인 사당과 망해사(신방사) 등의 사찰들의 전래 이야기에서 추측할 수 있다.
<헌화가>에서 용이 소모는 노인으로 표현되었다고 필자가 주장하는 것은 <삼국유사>에서 일련의 의미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모는 노인이 용이 되는 내용은 <삼국유사> 어산불영(魚山佛影)편에 "용이 소치는 사람이 되어 왕에게 소의 젖을 올리는"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다.
수로부인과 소모는 노인 즉 고래와의 혼인관계를 묘사했던 것을 불교식으로 기록한 <삼국유사>에서 龍으로 표현한 것이다. 같은 <삼국유사>의 진성여왕(眞聖女王)과 거타지(居타知) 편에는 연못에서 나온 용왕의 딸이 거타지와 혼인하고 용 두 마리가 당나라로 가는 신라 배를 양쪽에서 호위하여 가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두 마리 고래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앞선 글 <코리안 신대륙발견: '신라 배를 끌었다는 두 마리 용'은 인디안 고래잡이배의 시세열(Sisiutl) 에서 논했다.
소모는 노인의 <헌화가>와 함께 바다로 들어간 수로부인을 불러내는 무속적인 노래가 해가(海歌)는 신라 전통의 고래토템 신화에 연결된 무가(巫歌)였다. 고래에 대한 기록에서 불교적인 '龍'이라고 표현한 것은 후대의 기록에 의한 것이다. 그 해가(海歌)에 나오는 '거북'은 사실상 바다의 고래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가락국기의 김수로왕 이야기에 혼융된 감이 있다.
龜乎龜乎出水路. 掠人婦女罪何極. 汝若 逆不出獻. 入網捕掠燔之喫.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 남의 부인 앗아간 죄 그 얼마나 크랴.
네 만일 거역하고 내놓지 않는다면,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
신라시대의 여신은 바다의 태양의 여신 '明神' 또는 '東神聖母'로 표현되었다. 일본의 천조대신(天照大神)은 이러한 신라의 태양의 여신을 모시는 것이다. '天照'란 태양의 빛을 의미한다. 일본에서는 수천 곳에 박혁거세 신사와 더불어 '新羅明神' 을 모시는 사당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해양수렵시대의 태양은 풍랑을 이기는 여신이다. 태양이 바다에서 목을 내미는 것으로 여신이 나타나는 것으로 여겼다. 거북이 바다에서 나오도록 무속적인 <海歌>를 부른다는 것은 태양이 솟아나오게 한다는 해맞이 굿에 속한다.
수로부인(水路夫人)은 태양의 여신을 상징하고 있었다. 水路란 바다로 들어가는 의미인 동시에 뱃길(水路)을 의미하는 것으로 뱃길을 안내하는 태양의 여신이 水路夫人인 것이다.
거북이 나오도록 하는 것은 거북의 등에 태양(수로부인)을 싣고 나오는 것이다. 고대 인도 신화에는 우주가 거대한 거북의 등에 하늘이 얹혀 있는 것으로 묘사했다. 고래잡이로 대표되는 해양활동은 태양의 여신에 관한 내용이 '거북'과 여신으로 표현된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판소리 문학의 <별주부전> 또는 <수궁가>에서 거북이와 토끼에 대한 내용이 수로부인 신화에 이어져 있음을 본다. <수궁가>의 내용은 토끼가 거북에게 끌려가 용궁을 다녀오는 이야기이며 수로부인 신화도 '칠보궁전'의 용궁을 다녀오는 이야기이다.
수로부인을 용궁으로 데려간 용을 거북으로 보고 거북을 위협하여 수로부인을 데리고 나오도록 <해가>를 불렀다는 것은 <수궁가>의 프로토타입이 <해가>였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수궁가>에서 거북은 토끼를 꾀어 용궁으로 데려갔고 토끼는 '간'을 빼앗기기 전에 산에 두고 왔다고 속여 거북 등에 올라타고 다시 땅으로 돌아온다. 수로부인 신화에서는 거북은 <해가>의 노래로 위협을 당하여 수로부인을 데리고 다시 바다에서 돌아와 바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토끼는 신화적으로 신선의 상징이다. 달나라에서 떡방아찧는 토끼는 바로 수로부인과 같은 신화적인 존재로서 거북 등을 타고 다니는 태양이나 달의 상징 토템이다.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은 해신(海神) 즉 바다의 용왕여신의 가호를 받는 함선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순신은 해신이 탄 거북선을 지휘하는 용선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거북선에는 용두에서 불을 뿜도록 하고 있다.
아메리카 인디안들은 고래와 태양새를 함께 묘사하고 있는 것은 신라에서 수로부인(水路夫人)을 태양의 여신에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태양과 고래는 아메리카 인디안 고래잡이 토템신화에서는 서로 가족(혼인 부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디안 토템폴은 우리 민족으로 말하면 족보와 같은 것이다.
소 모는 노인이 용(고래)으로 표현되어 수로부인을 데리고 바다로 들어가거나 철쭉꽃을 바치는 것은 상호 무속적인 혼인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남편 강릉태수가 있는데도 바다의 고래(용)와 혼인을 하는 것으로 표현된 것은 무속적이다. 한국 전통 무속에서는 부모가 있는데도 보통 맏아들은 '무당의 아들로 팔았다'는 의식을 행한다.
<화랑세기>에는 화랑의 부부가 혼인을 하면서도 산속에서 화랑의 우두머리 상선(上仙)에게 '혼인했다'는 의식을 석달동안 치르는 내용이 나온다. 화랑도가 무속을 바탕하고 있으며 상선(上仙)은 무속적인 상위 무당이었다. 수로부인이 남편이 있으면서도 해신인 용왕에게 혼인했다는 '굿'을 보여주는 것이 수로부인 신화의 기본 구조인 것이다.
노인이 모는 소 또한 원문에는 여신과 관련된 '어미소(母牛)'로 표현되어 있다는 것은 여신 중심의 신라 신화의 면모의 일면을 보여준다. 풍물놀이에서 지신밟기를 하는 그 지신이란 地神을 의미한다. 地神은 대자연 어머니로서 음양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바로 그 땅 명당의 주인공 대지지모(大地之母) 地神을 의미하는 것이다.
십이지신(十二地神 또는 十二支神)들은 한 마리씩 표현되어 있다. 그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 지신들의 성별은 무엇이라고 생각해본 일이 있는가? 암컷이며 새끼를 낳은 어미라 할 수 있다. 십이지신은 말하자면 '母子 母丑 母寅 母卯 母辰 母巳 母午 母未 母申 母酉 母戌 母亥'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소 모는 노인'은 다시 말해 농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어미소(母牛)'를 모는 것을 의미했다. 지신을 다스리는 해신의 의미가 '소모는 노인'의 의미였다.
소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및 로마시대의 미드라(Mithra)교로 대표되는 기독교 이전 중동 및 서양 고대 신화에서 신으로 받들어졌다.
견우직녀 신화에서 견우가 '소를 모는' 사람으로 등장하는 것은 수로부인이 직녀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는 수로부인과 폭포로 들어가는 직녀는 그래서 같은 신화적인 구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폭포에는 용이 산다고 믿었고 수로부인은 용에 끌려 바다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구조는 일치하는 것이다.
견우직녀 신화는 수로부인 신화에서 용왕 대신에 옥황상제(玉皇上帝)로 대치되어 있다. 玉皇上帝 또한 남성이 아니라 신화적인 성별은 여성이다. 玉은 옥녀(玉女) 선녀에서 보듯이 여성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玉皇上帝에서 여성성을 없애려 후대의 남성지배자들은 玉을 빼고 신선사상의 上을 뺀 채 玉皇上帝(옥황상제)를 황제(皇帝)라고 한 것이다.
사람들이 지팡이로 강언덕을 치면서 <해가>를 부르자 용은 다시 수로부인을 데리고 나왔다. 이때 남편이 수로부인에게 바닷속에 대하여 물었더니 "칠보궁전(七寶宮殿)에 음식은 맛있고 향기롭게 깨끗한 것이 인간의 연화(煙火)가 아니었다." 라고 말한 것을 보면 납치가 아니라 용(소모는 노인)이 수로부인을 신부로서 데리고 용궁으로 들어갔다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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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부인의 <헌화가>와 <해가>의 고장으로 추정되는 동해안 삼척시 인근
여기에서 '인간(人間)의 연화(煙火)'란 '이 세상의 연기와 불'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은 현세상의 것이고 물은 저 세상의 것으로 여긴 것이 용궁신화의 우주관이었다. 천당이나 천국사상보다 용궁신앙이 무속에서 더 강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여신숭배의 여자 무당의 전통이 더 오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천국이나 천당은 남성중심의 신화 구조를 가지는 중동의 불교 기독교 문화에서 상대적으로 나중에 나온 것이다.
'소 모는 노인'이 철쭉꽃을 수로부인에게 바쳤다는 것은 지신의 위치에서 이 세상의 불(철쭉꽃)을 바다의 해신인 수로부인(水路夫人)에게 바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은 여신인 陰이고 불은 지신 또는 천신인 陽이다.
<삼국유사>에서 수로부인은 "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도 여러 차례 신물(神物)에게 붙들려 갔다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무속적으로 지신이나 해신과의 교류를 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그만큼 남편의 권위가 '천신'으로서 권위를 가지기 때문이다.
신을 불러낼 때 '지팡이로 때리면서 노래를 불렀다'는 것은 신라인들에게 대자연의 용과 아름다운 여인이 혼인을 하는 '무속적인 의식'을 굿거리 주문을 외우면서 '신을 불러내는' 굿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때 수로부인을 내놓으라고 '거북'을 위협하여 불렀다는 것은 신을 불러내려고 위협하는 무속적인 굿에서 비롯된다. 작두를 타는 무당은 귀신을 불러내거나 쫓을 때에 무섭게 보이게 하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삼국시대 이래 전통 비문은 거북 등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용과 같은 이수를 새겨 올린다는 것은 수로부인 신화의 구조에 일치한다. 이수는 바다의 용왕과 혼인한 수로부인을 의미하고 거북은 그들을 태우고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3. 수로부인(水路夫人) 신화의 '소 모는 노인'과 만어산(萬魚山) 신화의 '소 모는 노인
수로부인(水路夫人) 신화에서 소 모는 노인이 올라간 바위 절벽은 바다의 물고기가 변하여 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삼국유사> 어산불영(魚山佛影)편에서 볼 수 있다.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지금도 남아 있는 가라국 인근 만어산(萬魚山)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어산불영(魚山佛影)편의 기록은 거대한 물고기들이 수많은 바위들로 변했다는 내용이다.
"동해바다의 물고기와 용(龍)이 마침내 화(化)하여 골짜기 속 가득 바위가 되어서 각각 쇠북과 경쇠의 소리가 났다." <古記>를 인용한 <삼국유사> 어산불영(魚山佛影)편
동해바다의 물고기와 용이 산 속의 바위가 되었다는 것은 신선풍류도에서 해신이 산신과의 교류를 위하여 화신(化身)하여 만어산(萬魚山)의 유래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산신은 지신이 아니라 산신이 된 해신을 의미한다.
어산불영(魚山佛影)편의 기록은 만어산(萬魚山)에 나찰녀(羅刹女)가 독룡과 사귀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나찰녀란 불교적인 표현인데 본래는 수로부인과 같은 바다의 여신을 의미하는 선녀(仙女) 또는 옥녀(玉女)를 의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어산불영(魚山佛影)편 기록에는 '나찰혈(羅刹穴)'이라는 '구멍'은 나찰녀 다섯이 머무는 그로토(여신이 거하는 구멍)를 의미한다. 穴(혈)이란 음양풍수에서 여신의 명당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섯 나찰녀(선녀)들은 하나의 여룡(女龍)으로 변화여 독룡과 교접한다"고 <삼국유사>는 기록했다. 박혁거세와 알영부인의 왕릉이 '오릉'인 것은 이러한 해신신앙에 이어져 있을 것이다. 여룡(女龍)이란 알영부인의 어머니 '계룡(鷄龍)'의 다른 표현이 아니겠는가.
이어서 여룡과 독룡이 교접할 때 독룡(용왕)은 우박을 내리고 여룡(女龍)은 기근과 역질을 일으켜 왕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제사를 지냈다고 했다. 이것은 그대로 수로부인이 '소모는 노인(용)'과 무속적인 혼인의식으로 바다의 '칠보궁전'을 들어갔을 때 제의적인 <海歌>를 불러 다시 땅으로 불러내는 것과 같은 구조를 가진다.
"그 구멍에는 나찰(羅刹) 다섯이 있어 이것이 여룡(女龍)으로 화하여 독룡과 교접하는데, 독룡은 다시 우박을 내리고 나찰(羅刹)은 난폭한 행동을 하니 기근(飢饉)과 역질(疫疾)이 4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왕은 놀라고 두려워하여 신기(神祇)에게 빌어 제사지냈다. <삼국유사> 어산불영(魚山佛影)편.
불교적인 관점에서 기록한 <삼국유사>는 여기에서 "용왕(龍王)과 나찰녀(羅刹女)는 온몸뚱이를 땅에 던져 부처에게 계(戒)를 받기를 청했다."고 쓰고 있다. '오체투지'로 부처앞에 항복했다는 것이다.
'용왕'은 독룡을 말하는 것으로 수로부인을 바다의 '용궁'으로 데려간 바로 그 '소모는 노인'이 독룡이며 용왕이었다는 것을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여룡이 독룡과 교접하니 천재지변이 일어나 왕이 제사를 했다는 것은 수로부인이 용을 따라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해가>를 부르자 용이 나와 수로부인을 그 남편에게 다시 바쳤다는 것과 같은 신화적인 구조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수로부인 신화에서 바닷속의 '칠보궁전(七寶宮殿)'은 여기 어산불영(魚山佛影)편에서는 "용왕이 칠보대(七寶臺)를 내어 여래(如來)에게 바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칠보궁전과 칠보대는 같은 의미를 지닌다. 소 모는 노인이 바친 '철쭉꽃'은 '칠보'가 아니겠는가. 함경도 바닷가에 있는 칠보산(七寶山)이란 철쭉꽃이 피는 신라의 수로부인 신화와 같은 동해안의 연장선에 있다.
전국적으로 여러 곳의 산 이름으로 나오는 칠보산(七寶山)에는 철쭉꽃이 많이 핀다. '철쭉의 어원은 '자주빛 꽃'을 의미한다고 생각된다. 철쭉의 '쭉'은 남색을 의미하는 '쪽빛'의 '쪽'에 '철쭉'의 '철'은 '칠보'의 '칠에서 와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헌화가>에서 철쭉꽃이 피어 있는 바위 절벽을 '자주색 병풍바위(紫布岩)'라고 표현했던 바로 그 뜻은 자주색 철쭉꽃이 많이 피어 병풍바위가 자주빛이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삼국유사>는 이어서 쓰기를 성자함(星字函)의 <서역기(西域記)> 제2권을 인용한다는 설명과 함께 "용이 소 모는 사람이 되어 소의 젖을 왕에게 바치다가 질책을 받자 꽃을 사서 부처에게 공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앞서 수로부인편에서 '소모는 노인이 철쭉꽃을 바쳤다"는 내용이 이곳에서는 '부처'로 대신 바꾸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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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래좌상이 앉아 있는 석굴암(石窟巖)은 신라 계룡(鷄龍)이 거했던 석굴(石窟)
나는 <신화이야기> 시리즈 글 <신화이야기 167> 석굴암 동굴 자리 불교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에서 석굴암 자리는 불교 이전 신라의 선덕여왕을 모셨던 여신숭배의 그로토 자리였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힌 바 있다. 그 사실은 <삼국유사>의 내용으로 증명할 수 있다.
먼저 주목할 것은 석굴암 자리는 신라시대 음양풍류 사상에서 명당자리였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신라시대에 '새해'의 의미를 가진 동짓날에 새해가 돋는 방향으로 놓인 석굴암 방향은 해중능을 향하고 있다는 것은 석굴암이 본래 바다의 여신인 태양신과 관련된 것이며 그 자리는 태양의 여신인 '東神聖母'로 표현된 선도성모 여신이 자리한 곳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東神聖母'는 동쪽의 태양의 여신으로서 박혁거세 어머니이며 알영부인의 어머니인 계룡(鷄龍)과 같은 태양의 여신이다. 동쪽 태양신을 부르는 닭룡인 계룡(鷄龍)은 박혁거세 알영부인의 어머니만이 아니라 모든 신라인들의 대자연 태양의 여신을 의미한다.
이제 석굴암의 석굴이 본래는 신라인들의 시조 계룡(鷄龍)의 사당이었다는 필자의 주장은 명백해질 것이다. <삼국유사> 어산불영(魚山佛影)편 기록인 '나찰혈(羅刹穴)'은 불교적인 '나찰' 표현이 들어가지만, 나찰녀(羅刹女)를 '여룡(女龍)'으로도 표기하고 있다는데서 석굴암에 모셔진 존재는 여성적인 여신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나찰혈(羅刹穴)'은 '여룡(女龍)이 거하는 곳'으로 기록한 <삼국유사>는 이어서 "나찰(羅刹)이 거하는 석굴(石窟)"로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석굴암이 불교 이전에 '여룡(女龍)' 즉 여신이 살던 곳이라고 하는 것은 <삼국유사>의 흩어져 있는 여러 다른 내용들을 조합해 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수로부인 신화에서 소모는 노인은 꽃을 바치고 수로부인을 바다로 데려가는 용이지만 <해가>를 부르고 지팡이르 땅을 치는 무속에 의하여 굴복하는 내용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같은 <삼국유사>의 어산불영(魚山佛影)편에서 소 모는 노인은 바위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 것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도록 묘사했다. 죽은 그 영혼은 대룡왕(大龍王)이 되어 석굴(石窟)에 거하면서 나쁜 마음을 일으키는 존재로 기록했다. 불교 이전의 신라의 토속 신들을 격하시킨 기록인 것이다.
"소 모는 노인은 솔도파(솔堵婆)" 여인에게 '부디 악룡(惡龍)이 되어 나라를 깨뜨리고 왕을 해치게 해 주시오'하고는 석벽(石壁)에 가서 몸을 던져 죽자, 드디어 굴 속의 대룡왕(大龍王)이 되어 악한 마음을 일으켰다." <삼국유사>의 어산불영(魚山佛影)편
대룡왕(大龍王)이 되어 석굴(石窟)에 거한다는 것은 삼국을 통일하고 죽어서 동해바다의 '해중대룡(海中大龍)'이 되었다는 문무대왕이 대왕암에 묻힌 것과 같은 맥락을 지니면서도 석굴암의 배경을 추정하게 해주는 단서가 된다.
이것은 석굴암의 불교적인 제단 이전에는 용을 모신 사당이었다는 단서를 보여준다. 석굴암의 기원을 단지 인도나 중국의 석굴 불교의 영향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석굴암이 불교와는 다른 동짓날 해돋는 방향으로 놓여 있다는 것과 토함산 명당에 세워져 그 일출 방향에 일치하는 대왕암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삼국유사>에는 석굴암의 불교 이전 여신사당의 배경을 없애기 위하여 여러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수로부인 신화에서 소 모는 노인이 철쭉꽃을 따온 그 석벽 위로 올라가 소 모는 노인은 거기에서 몸을 던져 죽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신라의 토착적 신화들의 주인공들은 모두 죽이거나 아니면 굴복시키거나 나찰화 시키는 과정을 밟은 것을 볼 수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나찰녀'란 신라 토착 무속에서는 '여룡'이면서 여신이었다. 기존 여신사상은 남성중심의 불교의 부처나 나찰이 남성중심의 신격화된 내용에서 그 성별이 혼동되게 표현되기도 한다.
죽어서 용이 된 소 모는 노인은 "석굴 속에서 대룡왕(大龍王)이 되어 악한 마음을 일으켰다"고 비하되어 있다. 그 석굴 속에 모셔진 용을 굴복시키기 위하여 악한 존재로 먼저 비하시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런 다음 그 "석굴 속의 용은 부처를 만나서 악한 마음을 버리고 부처에게 공양하기를 자처했다"고 이어서 쓰고 있다.
결국 수로부인 신화에서 '소 모는 노인'은 바다의 '용'이 둔갑한 것을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수로부인 신화에서 수로부인에게 철쭉꽃을 바친 '소 모는 노인'과 수로부인을 바다 속으로 데리고 들어간 '용'은 같은 신화적인 해신이었음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여룡(女龍)이 나찰녀(羅刹女)와 동일시 된 기록에서 다시 그 여룡(女龍)이 부처에게 굴복하는 내용은 신라의 토착종교를 불교화하는 윤색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래의 기록은 석굴암에 대한 직접적인 연유를 말하지는 않고 있지만, 석굴과 태양의 여신에 이어져 있는 석굴암의 배경을 충분히 알 수 있게 하는 기록으로 보아야 한다.
여래(如來)가 이것을 보고 몸을 변하여 신통력(神通力)을 가지고 여기에 오니 용(龍))은 부처를 보자 독한 마음이 드디어 그쳐져서 불살계(不殺戒)를 받고 청하기를, '부처님께서 항상 이 굴(窟)에 계시면서 저의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했다. <삼국유사> 어산불영(魚山佛影)편.
자신이 거하던 석굴에 부처가 항상 거하면서 공양을 받아달라고 요청하게 되었다는 것은 석굴을 빼앗긴 여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부처는 정신을 가다듬어 홀로 석실(石室)로 들어갔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이내 나타나고 가까이서 보면 나타나지 않았다. 또 돌 위를 발로 차서 칠보(七寶)로 삼았다. <삼국유사> 어산불영(魚山佛影)편.
석굴 신앙은 바다의 해신 신앙에서 중요한 사당의 위치에 있었다. 불교 이전 동아시아에서나 기독교 이전 서양의 토속 종교에서 석굴(grotto) 신앙은 여신을 모시는 사당이었다.
신라의 여신신앙이 건너간 아마테라스 태양의 여신을 모시는 천황가의 종교로서 신도(神道)가 중심이었던 일본에서 불교가 강력하지 못했기에 일본의 토속 여신 신앙은 지금도 길상천녀(吉祥天女) 또는 벤자이텐(弁財天) 남아 있다.
동굴 신앙은 고래가 해안가에 새끼를 낳기 위하여 찾아오는 바위 섬 지대에서 시작한 것이다. 고래토템 숭배 사당의 바위섬들은 여신숭배의 이름을 가졌으며 불교가 들어와 미륵이나 여래가 안치된 석굴신앙으로 변한 것이다.
*고래 입을 닮은 바위 섬의 그로토(grotto)
사가미현의 에노 섬의 동굴 사당에 있는 길상천녀 벤자이텐(弁財天) 여신을 순례 참배하는
여인들. 안도 히로시게의 그림. 1850년경.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blogfile.paran.com%2FBLOG_197672%2F200810%2F1225031721_SUC30111.JPG)
*미륵골 석조 여래좌상. 경주남산불곡석불좌상 (慶州南山佛谷石佛坐像) 보물 198호
*관련글: <코리안 신대륙발견> 남산 미륵골 바위 속 여래좌상은 고래숭배 영향이었을까?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solomontimes.com%2Fnews%2Fimages%2FSkull%2520Island_1_250s.jpg)
*솔로몬제도의 해골 섬(Skull Island). Solomon Times Online.
상어닮은 관 안에 모셔진 원주민들의 조상 두개골
관이 상어나 고래를 닮아 있다.
http://www.solomontimes.com/news.aspx?nwID=2541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sailblogs.com%2Fmember%2Fswinginonastar%2Fimages%2Fdscn8057_scale.jpg)
*해골섬의 상어사당에 모셔진 조상들의 해골 진열 모습.
http://www.sailblogs.com/member/swinginonastar/?xjMsgID=74925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pds1.egloos.com%2Fpds%2F1%2F200512%2F10%2F75%2Fb0052375_113647.jpg)
*1913년 석굴암이 해체 수리되기 직전의 모습.
대왕암을 향하여 동짓날 해돋는 일출방향이 이어져 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hankyung.com%2Fphoto%2F200501%2F2005010112318_2005010137931.jpg)
*해중능(대왕암)
<삼국유사> 어산불영(魚山佛影)편에서 기록하는 만어산(萬魚山)기록들은 모두 바다의 용이 부처로 대치되는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어산불영(魚山佛影)'이라는 말 자체가 바다의 물고기(용, 고래) 산이었는데 부처의 그림자로 변했다는 뜻을 담고 있다.
만어산(萬魚山)이 본래 해동(海東) 사람들이 아나사(阿那斯)라고 했으나 바다의 물고기를 의미하는 어(魚)의 뜻이 있는 마나사(摩那斯)라고 해야 한다고 기록한 것에서도 바다의 용 즉 고래 이야기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5. 용왕의 딸과 혼인한 거타지(居타知) 신화와 작제건 신화의 일치성 뒤의 큰 차이
<삼국유사> 진성여대왕(眞聖女大王)과 거타지(居타知)편에는 또 한 편의 여인이 용이 되는 신화가 나온다.
신라 사신단으로 수행하여 당나라로 가는 도중에 후백제의 해적을 막고 풍랑을 잠재우기 위하여 진도 인근 곡도(鵠島 또는 骨大島)에 남게 된 거타지(居타知)는 그 섬의 신지(神池) 연못에 제사를 지낸다. 그때 갑자기 노인 하나가 연못 속에서 나오는데 서해약(西海若) 즉 서해 바다의 용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서해의 용의 부부와 그 자식들은 위험에 처하여 거타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나는 서해약(西海若)이오. 해가 뜰 때면 늘 중 하나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다라니(타羅尼)의 주문(呪文)을 외면서 이 못을 세 번 돌면 우리 부부와 자손들이 물 위에 어쩔 수 없이 떠올라 오게 되오. 그러면 그 중은 내 자손들의 간(肝)을 빼어 먹는 것이오. 그래서 이제는 오직 우리 부부와 딸 하나만이 남아 있을 뿐인데 내일 아침에 그 중이 또 반드시 올 것이니 그대는 활로 쏘아 주시오." <삼국유사> 진성여대왕(眞聖女大王)과 거타지(居타知)편
우선 이 내용은 불교가 들어와서 불교 이전의 신들과의 싸우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 내용이 고려시조 왕건의 할아버지 작제건과 용왕의 이야기와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다.
작제건 신화는 분명 거타지 신화를 모방한 것으로 필자는 생각한다. 용왕은 부부와 자손이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신선풍류도의 고래토템숭배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만어산 신화에서 보듯이 용왕은 악한 존재로 묘사되고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부처에 의하여 굴복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위의 거타지 신화에서 불교의 중이 용왕의 가족의 간을 빼먹는다고 표현하고 있다.
<수궁가>를 이번에는 거타지 신화에 대입해 보자. 앞서 논한대로 판소리 <수궁가>의 거북이와 토끼에 대한 이야기는 수로부인 신화와 거타지 신화에서 조금씩 연결되어 있는 구조를 볼 수 있다.
<수궁가>에서는 용왕이 토끼의 간을 빼먹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거타지 신화에서 중이 용왕의 간을 빼먹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전통 신화와 새로운 불교의 싸움을 이들 신화의 기록과 그것을 바탕하여 판소리 문학화한 스토리 구조의 일치성에서 볼 수 있다.
작제건 신화의 배경은 바다이고 거타지 신화에서 배경은 바다의 섬 안에 있는 연못이지만, 둘 모두 용왕을 다룬 것이다. 작제건 신화에서는 황룡(백룡)과 흑룡이 싸우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거타지 신화에서는 용왕과 중이 싸우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거타지도 작제건도 용왕의 부탁을 받고 용왕을 해치려는 상대를 해가 뜨면 활로 쏘아주기를 바란다. 거타지도 작제건도 활의 명수로 나온다. 거타지에게 활로 중을 쏘아주기를 바라면서 노인(용왕)은 다시 연못 속으로 들어간다.
이튿날 동쪽에서 해가 뜨자 과연 중이 오더니 전과 같이 주문을 외면서 늙은 용의 간을 빼먹으려 했다. 이때 거타지가 활을 쏘아 맞히니 중은 이내 늙은 여우로 변하여 땅에 쓰러져 죽었다.
<수궁가>에서 육지의 '토끼 간 빼먹는' 내용은 여기에서 바다의 용왕의 간을 빼먹는 존재는 육지의 여우로 나온다. 토끼에게는 적이 되어 있던 용왕이 거타지 신화에서는 여우가 적이다. 해신과 지신의 싸움이라는 걳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늙은 여우 지신은 중으로 변신하여 용왕의 간을 빼먹으려 했다는 것이 주목된다. 불교가 부정적인 존재로 묘사된 면이 있는 것이 흥미롭다. 거타지 신화의 주인공은 용왕의 딸과 혼인한 거타지이지만, 불교의 중은 나쁘지는 않은데 다만 여우가 중으로 위장하였다고 하여 불교는 아무런 죄가 없음을 변호하고자 한 것이다. 이것은 토속 신라신화에서 불교가 처한 위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작제건 신화에도 바위 섬이 나오고 용왕이 나타나 도움을 요청하고 부처로 변장한 여우를 활로 쏜다. 작제건 신화는 거타지 신화를 차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수로부인 신화와 작제건 신화 및 거타지 신화 그리고 만어산의 용왕신화는 시대적으로 전통 해신신앙이 불교화되는 변천 과정을 읽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수로부인 신화에서는 불교가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여성인 수로부인이다. 거타지 신화와 작제건 신화에서도 불교가 등장한다. 그러나 아직은 주인공인 '소 모는 노인' 격인 거타지나 작제건이 주인공으로 남성화된다. 거타지신화와 작제건신화에서 용왕은 약하지만 그 딸과 혼인 상대로 나오는 친용왕신화이다.
거타지 신화와 작제건 신화는 친용왕신화이지만 불교를 옹호한다, 거타지신화는 중이 오해받고 있다는 불교 옹호론이 개입되어 있다. 사실상 불교의 중이 용왕을 죽이고자 하는데 '늙은 여우'로 변명하고 있다. 이렇게 '위장술로 위장했다'고 볼 수 있는 불교적인 프로파겐다 구조는 그 뒷시대로 보이는 <삼국유사> '어산불영(魚山佛影)'편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어산불영(魚山佛影)에서는 용왕은 '여룡'으로 표현되고 용왕인 소 모는 노인은 나쁜 존재로 묘사되어 자살하거나 부처에게 "석굴을 시주한 대룡왕(大龍王)"으로 묘사되어 용왕은 그 '칠보궁전' 석굴을 부처에게 빼앗기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서 수로부인신화를 기본으로 용왕신화의 구조를 지키고 있는 거타지 신화와 작제건 신화를 좀더 살펴봄으로써 신라 토속 해신의 구조를 살펴보자.
수로부인은 지상에 거점을 두고 바다의 용과 혼인하는 의미로 구성되어 있지만, 후대의 기록인 거타지 신화와 작제건 신화는 주인공이 남자이면서 바다의 용왕의 딸과 혼인하는 것으로 대치되고 있다. 불교적인 남성 중심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신화적인 전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수로부인이 여신으로서 강조된 면이 있다. 그러나 남성중심화 된 거타지 신화와 작제건 신화에서는 용왕은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고 힘약한 용왕의 딸을 아내로 삼는다.
수로부인 신화에서도 용왕은 <해가>를 부르자 수로부인을 내놓고 굴복하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어 <삼국유사>의 불교적인 기록에서 수로부인신화도 엄격히 말하여 용왕신화를 제어하고 굴복시키는 불교적인 기록의 의도를 보여준다. 다만 그 신화적인 구조에서 불교 이전의 신화적인 내용을 미루어 추출해 낼 수 있다.
용왕은 작제건을 용궁으로 데려가 용왕의 딸을 그의 아내로 준다. 거타지 또한 용왕의 딸과 혼인하여 이 두 신화는 완전히 일치하는 구조를 가진다.
여기에서 작제건 신화에는 버드나무 지팡이를 신물로 얻어나오는데 거타지 신화에는 딸을 한 가지의 꽃으려 변하게 하여 거타지의 품속에 넣어주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소모는 노인이 수로부인에게 철쭉꽃을 바치고, 거타지의 용녀는 꽃가지로 변하고, 작제건의 용녀는 버드나무 지팡이를 가지고 나오는 일치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거타지를 당나라로 가는 사신을 수행하는 의무를 다하여 잘 다녀오라고 두 마리 용을 거타지가 탄 배를 호위하도록 하고 있다. 당나라 사신 수행 의무를 다하고 신라로 돌아온 거타지는 꽃가지를 가슴에서 꺼내어 다시 여자로 변하게 하여 잘 살았다는 것이다. 그 여자는 '용녀'이며 수로부인이자, 어산불영(魚山佛影)에서 보면 '여룡(女龍)'인 것이다.
거타지 신화는 거타지가 용녀와 사는 것으로 끝나지만, 작제건 신화에서는 용왕의 딸 용녀가 우물 속으로 드나들면서 서해바다 용궁으로 자주 오가기도 한다. 그것을 남편 작제건에게 보지 말라고 했으나 작제건이 보았더니 용녀는 우물로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으로 끝을 내고 있다.
이러한 신화의 마지막 스토리의 차이는 고려시대의 불교문화에서 고려왕조의 시조 신화를 정리하면서 고려시조가 용왕계보와 완전히 결별했다는 것을 천명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거타지 신화와 작제건 신화가 일치하지만, 그 마지막은 '용녀와 잘 살았다'는 것에서 "용녀를 우물을 통하여 바다로 이별했다"는 것으로 커다란 차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작제건 신화에서 용녀가 남편을 버리고 간 것이 아니라 우물 속으로 드나드는 것을 보지 말라고 용여가 당부했는데도 작제건이 그것을 일부러 봄으로써 '이별'을 스스로 만든 것으로 한 것이다.
사실상 작제건 신화의 마지막은 어쩌면 용녀를 '우물에 밀어넣어 죽였다'는 것을 그렇게 우물 속으로 사라져 바다로 간 것을 표현했다고 할 수도 있다. 어산불영(魚山佛影) 신화에서 소 모는 노인이 절벽에 올라가 스스로 떨어져 죽는 것과 용녀가 스스로 우물 속으로 '떨어져 죽는 것'은 일치하는 것으로 불교적으로 용녀 계보들을 '자살했다'고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삼국유사>에서 나는 불교 이전 신라시대 우리 민족의 전통 해신신앙의 뼈대를 찾아낼 수 있었다. 수로부인이 소모는 노인으로 둔갑한 바다의 용과 혼인하는 내용은 분명 고래토템숭배시대의 고래와 혼인하는 인간의 신화 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수로부인 신화는 <삼국유사>의 그 뒷기록들에서는 불교화되어 갔지만, 고래잡이 배를 타고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고래를 따라 간 코리안들은 아메리카 신대륙의 인디안들에게 전해져 오는 고래와 혼인한 이야기에서 보다 원천적인 '수로부인의 혼인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다. 필자가 주창한 코리안들이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이론은 선사시대 코리안들과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고래토템숭배 문화의 일치성을 통하여 그 역사적 연원을 찾아내는 일이기도 하다.
![koryakkamchaka.jpg](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afe.chosun.com%2Fimg_file%2Fclub_file%2F96%2Fdreamview%2Fbbs%2F86%2F20110122_110715_3c536cf546a1561dd8c2ed2bbb50e3.jpg)
*코리안 신대륙발견 고래와 온돌 유적
6. 수로부인 신화와 고래와 혼인한 알라스카 원주민 여인 이야기
알라스카로 간 고래잡이 코리안들은 고래와 혼인한 여인 수로부인 이야기의 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필자가 <코리안 신대륙발견> 3천년 된 아막낙 섬 온돌과 함께 발굴된 고래뼈 탈(Whalebone Mask)의 유래 등에서 이미 소개하여 <국제신문> 논설위원 칼럼 등에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여기에 고래와 혼인한 알라스카 원주민들의 토템 혼인에 대한 전승을 보다 상세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알라스카 원주민 여인이 고래와 혼인하면서 고래뼈 탈을 쓰는 내용이 나온다. 그것은 알류산열도 아막낙섬에서 코리안 온돌과 함께 발굴된 고래뼈 탈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고래와 인간 사이에 토템 문화로서 상호 혼인도 하고 고래가 조상이라고 믿은 '귀신고래'의 기원이 '조상귀신고래'였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래의 영문 원문의 번역문과 괄호 안의 코멘트는 필자의 것이다.
Totem marriage (고래와 혼인한 알라스카 원주민 여인 신화)
북극해 일대의 전통 원주민들 사회에는 여인과 벨루가 고래 사이의 토템 혼인에 대한 내용이 전해져 온다. 한 젊은 처녀가 어느날 그녀의 마을을 떠나 새가 둥지에 낳은 알들을 모아 돌아오면서 고래 해골 뼈(whale skull)를 머리에 쓰고 돌아왔다.
A myth told by traditional people across the Arctic describes a totemic marriage between a woman and a beluga whale. A young maiden left her village one day searching for bird eggs, and returned with a whale skull which she wore like a hat.
그녀가 쓰고 온 고래 해골의 혼은 그녀를 바다에 사는 '케이코'라는 이름을 가진 벨루가 고래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서 그 고래의 아내로 삼았다. (이 신화에서 수로부인을 데리고바다로 들어간 용의 유사한 구조를 볼 수 있다)
The spirit in the skull eventually pulled her out to sea where it turned into a beluga whale, named Keiko, who made the woman his wife.
그녀의 오라버니가 가문의 영예를 보존하기 위하여 배를 하나 만들어 그의 누이를 구하기 위하여 바다로 나아갔다. 케이코 고래는 그 배가 그 고래의 집으로 찾아오자 겁을 먹었으나 그의 아내는 찾아온 그의 오라버니를 반기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의 고래 남편인 케이코를 안심시키고자 했다. (오라버니는 그의 누이를 탈출시키고자 한 것이다. 수로부인 신화에서는 용이 바다로 수로부인을 데리고 들어가자 막대기로 땅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러 용을 위협하여 수로부인을 다시 물 밖으로 데려와 바치도록 했다는데서 위의 알라스카 고래 신화와 유사한 일치된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The woman's brother was bound to preserve his family honor so he built a boat and sailed out to rescue her. Keiko became frightened when the boat stopped directly over his home. His wife had grown fond of him, and now she tried to calm Keiko.
그녀는 찾아온 손님인 오라버니를 위하여 절벽가로 수영을 하여 가서는 새 알을 모으고 새를 잡아 잔치를 준비했다. 그녀가 준비한 음식을 오라버니는 조금밖에 먹지 않고 케이코를 손짓으로 불러 그 음식을 그 고래가 많이 먹게 했다. 그런 뒤 그 오라버니는 누이에게 귀속말로 "네 남편이 음식을 아주 많이 먹었으니 그에게 자장가를 불러 잠이 들게 해라!" 그래서 그녀는 자장가를 불렀고 케이코 고래는 생각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She swam to the cliffs to gather eggs and birds for a feast to serve their guest. The brother ate little, while beckoning Keiko to eat more than his share. Finally, the brother whispered to his sister, "your husband has eaten too much. Sing to him now, that he may rest." So she sang a lullaby, and Keiko slept.
고래가 잠에서 깨오보니 그의 아내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 고래는 아내와 그 오라비가 떠난 뱃길의 물결 자국을 따라 두 남녀가 있는 마을까지 찾아갔다. 그런데 케이코 고래는 그곳 마을의 여러 사람들에게 찔려 죽었다.
(수로부인의 남편 강릉태수는 알라스카 원주민 신화에서는 '오빠'로서 누이를 구해내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수로부인 신화에서 철쭉꽃을 수로부인에게 바치고 다시 수로부인을 바다로 데려갔던 소 모는 노인(용)이 다시 수로부인을 데리고 나와 사람들에게 바쳤다고 했다. 그런데 위의 케이코 고래가 사람들에게 찔려 죽은 것처럼 '소 모는 노인'은 앞서 살펴본대로 어산불영편에서는 절벽 위에서 떨어져 죽는 것에서 일치성을 보인다.)
When the whale awoke, he saw his wife was gone. He followed the boat's wake, and soon caught up to the pair on the village shore where many people arrived to stab Keiko to death.
그 여인은 그후에 임신하게 되었는데 조그만 숫고래를 낳게 되었다. 그 고래 아기는 부족들 모두에게 아주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녀는 그 아들을 작은 사발에 담아두었는데 어느사이 재빨리 자라 그 고래는 큰 물통에다 자신을 넣어주기를 바랬다. 그러더니 그 아이는 바다로 내보내주기를 원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바다로 내보내진 그 고래는 아주 다 큰 거대한 고래로 재빨리 커버렸다. 어느날 밤 외부사람들이 찾아와 잡아먹기 위하여 고래를 죽였다.
(고래는 고래잡이들과 토템혼인을 하고 인간의 조상이 된다는 것은 수로부인신화 외에도 문무대왕이 고랫나루에 분골 장사하는 것에서도 유추가 가능하다. 고래와 여인의 혼인과 고래를 낳는 것은 바이킹 지역의 백해 암각화에도 나타난다.)
The woman eventually gave birth to a tiny whale who was much beloved by everyone in the tribe. She kept him in a little cup. But he grew quickly and soon asked to be put into a pail. Finally he pleaded to be set free into the ocean, where he quickly grew to a full-sized whale. One night strangers arrived who killed the whale for food.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interspecies.com%2Fimages%2Fpetro05.JPG)
*여인이 고래를 낳는 신화를 새긴 이로 오티오의 벨루가 암각화
Eero Autio’s original interpretation of the beluga glyph
http://www.interspecies.com/pages/beluga%20spiral.html
관련글: <코리안 신대륙발견> 처용탈춤의 역신과 고래 작살잡이의 성적 유감주술(Sympathetic Magic)
이렇게 죽은 고래로 끝나지 않고 이 신화에 대한 야쿠트(Yakut) 시베리아 신화 버젼에서는 원주민 부족들이 그 외부 살인자들을 공격하는 것이 부가되어 있으며, 이 신화 이야기가 어떻게 인간 집단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해준다고 말해지고 있다. 이 신화에 대한 허드슨만 버젼 신화에는 그 외부인들이 최초의 유럽인 고래잡이들이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In the Yakut Siberian version of the myth, the tribe responds to this murder by attacking the strangers. This story is told to explain how warfare first came to the human beings. In a version from Hudson Bay, the strangers were the first European whalers. http://www.interspecies.com/pages/1008news.html
위의 벨루가 고래와 알라스카 여인의 혼인 이야기의 허드슨만 버젼에서 고래를 죽인 "외부 살인자들이 최초의 유럽인 고래잡이들"이라고 한 것은 흥미롭다. 그것은 유럽인들이 들어오기 전에 고래와 사람 사이의 토템결혼 이야기가 동아시아 코리안 고래잡이들의 고래토템숭배가 알라스카로 올라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수로부인에게 꽃을 바치고 바다로 데려간 '소 모는 노인'으로 표현된 바다의 '용' 이야기는 고래와 수로부인의 혼인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삼국유사>의 수로부인 이야기는 동해안의 바다와 용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 모는 노인이 꽃을 꺾어 수로부인에게 바치고 바다로 들아간다는 것은 남녀 사이의 프로포즈와 혼인 관계를 보여준다. 수로부인이 소 모는 노인이 둔갑한 용을 따라 바닷속을 들어가보니 "칠보궁전(七寶宮殿)에 맛있는 음식이 있었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고래와의 혼인 이야기인 것이다.
이러한 '칠보'가 나오는 혼인 이야기는 앞서 논한 거타지 신화와 작제건신화에서 똑같은 용궁 이야기에 용왕의 딸과 혼인하는 이야기에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논했다. 이로써 동해바다 수로부인 신화는 명확히 알라스카와 북극해 일대의 원주민 여인의 고래와의 혼인 신화에 그 구조적인 일치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최초로 비교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선사시대 코리안 고래잡이들이나 알라스카 원주민들 및 남태평양 솔로몬 군도의 전통 고래잡이들에게는 고래나 상어가 부족의 조상이라고 믿어온 토템숭배의 근거로서 그들의 조상 토템혼인 전승이 있다는 것을 더 명확히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고래를 따라 다른 세상으로 간 이야기는 미역을 따던 연오랑과 세오녀가 '바위'를 타고 바다 건너 왜국으로 간 이야기에서나 이태백이 고래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는 동아시아 물로 간 사람들의 신화에 남아 있다. 수로부인이나 작제건이 용궁을 다녀온 이야기는 모두 용왕이나 용왕의 딸과의 혼인 관계로 이어져 있다.
울산 영축산 망해사(望海寺)가 신방사(新房寺)라 불리는 것은 고래와 혼인한 고래사당이었다는 것도 이미 <코리안 신대륙발견> 용왕을 기리는 망해사(望海寺)를 신방사(新房寺)라 하는 이유 에서 논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ibulgyo.com%2Fpds%2Fnews%2Fphoto%2F88399%2F200806101213140196.jpg)
*경북 상주 남장사 극락보전엔 이백이 고래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을 벽화로 남기고 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manghaesa.or.kr%2F0308%2Fimg2.gif)
*영축산 망해사 벽화. 헌강왕이 고래를 보는 것 같은 장면이다.
*관련글: <코리안 신대륙발견> 용왕을 기리는 망해사(望海寺)를 신방사(新房寺)라 하는 이유
원시적인 고래잡이 전승에는 바다의 고래나 상어가 조상들의 혼인의 대상이면서 조상 그 자체로 표현된다. 솔로몬군도 원주민들에게 상어는 그들의 '할아버지'로 묘사되고 있다.
앞선 글에서 논했듯이 전통 신화시대의 고래잡이에게 '고래'라는 개념은 오늘날의 과학적으로 세분화된 분류와는 달리 고래, 범고래, 상어, 고래상어 등등 거대물고기들을 포함하고 있다. 비늘이나 날치류의 거대한 갈기비늘을 단 바다 동물들을 두루 '고래'라는 이름으로 숭배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 외에도 망치상어, 톱상어, 외뿔고래 등은 모두 '고래' 카테고리에서 숭배되어졌을 것이다. 그러니까 상어에 대한 숭배는 '고래숭배'의 하나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알라스카 및 태평양 연안의 아메리카 인디안 고래잡이들에게는 범고래가 그들 토템숭배의 중심에 있는 바다의 신이었다. 그런 반면에 하와이 원주민들에게 상어를 신으로 숭배한 흔적이 남아 있다.
These gods are said to be able to transform from human to shark at will! Many of them are said to be originally human.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ravelnooks.files.wordpress.com%2F2008%2F04%2Fph016b.jpg%3Fw%3D214%26h%3D258)
*하와이 상어숭배 토템신상.
태평양 섬들에는 상어를 신으로 숭배한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인간이 상어로 둔갑할 수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코리안들에게는 신라시대 문무대왕이 동해바다 해중대룡이 되기를 바라면서 고래나루에 분골된 것에서 고래토템 숭배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동해바다를 낀 코리안들의 고래잡이 문화는 동아시아 최대의 고래잡이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세계 최대 최고의 울산 반구대 고래 암각화에서 증명하고 있다.
문무왕이 동해의 해중대룡으로 태어난다고 말한 <삼국유사>의 기록은 그래서 태평양 연안 고래잡이들의 고래-상어토탬과 역사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것이다. 고래토템에서 고래들을 잡아 먹는 범고래가 그 중심 고래토템이었듯이 무서운 공격력을 가진 상어들 또한 범고래와 같은 범주의 '고래토템'으로 숭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상어신들에 대한 전형적인 스타일의 이야기는 상어가 사람 모습을 하고 해안가에 간 사람들에게 바닷가에서 고래에 대하여 경고를 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럴 경우 사람들이 그 '인간의 탈을 쓴 상어'의 말을 무시할 경우 그 '상어 인간'은 그들을 잡아먹어버린 뒤에 다시 상어로 둔갑하여 바다로 들어가버린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당신에게 바다의 상어에 대하여 조심하라고 말할 때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혜의 이야기이기도 한 셈이다.
A common type of story about these gods goes like this: the shark in human form warns beach-goers about sharks in the water. They ignore him, and are later eaten by the human who warned them, who had turned into a shark. When someone warns you about sharks in the water, follow it! http://travelnooks.wordpress.com/2008/04/16/5-things-you-didn%E2%80%99t-know-about-sharks/
7. 솔로몬군도의 조상귀신상어와 코리안들의 조상귀신고래
상어신 숭배는 솔로몬군도에서 많이 남아져 있다. 상어는 단순한 신이 아니라 그들의 조상신으로 여겼다. 이것은 코리안들의 귀신고래가 조상귀신고래라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원시고래잡이 문화의 유사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아래는 Andrew Wright와 Lance Hill 공저 Nearshore marine resources of the South Pacific (1993)의 pp. 298-300의 제 III장 부분에 나오는 솔로몬군도 원주민들이 상어를 그들의 조상으로 여기는 내용을 필자가 번역해 주석을 달아 옮긴 것이다.
III. PACIFIC REGION FISHERY INFORMATION
SHARKS IN TRADITIONAL BELIEFS AND FOLKLORE
III. 태평양 지역 조업 정보: 상어에 대한 전통 믿음과 전설
상어는 남태평양의 섬나라들과 조각으로 만들어져 남아 있는 호주 원주민들의 상어 전설 사이에에 전해오는 여러 전승과 그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Sharks form an important role in the culture and folklore of many South Pacific islands states, and amongst the Aborigines of Australia, where they appear in carved form.
상어숭배는 멜라네시아 섬들 특히 솔로몬 군도와 파퓨아 뉴기니아에서는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관습이었다. 그 지역의 많은 문화들이 보여주는 것은 그들의 죽은 조상들의 영혼이 상어의 몸에 들어가 살고 있다고 믿어 왔다.
Shark worship is common in the Melanesian islands, especially Solomon Islands and Papua New Guinea, where a number of cultures believe sharks to be the living embodiment of the souls of deceased ancestors.
비록 그 섬나라들에서 상어의 문화적인 중요성이 상어를 잡아먹는 식문화사이에 전승되어 왔지만, 상어숭배에 대한 문헌적인 기록은 제대로 남아 있지 못하다.
Although the cultural importance of sharks in the island countries may out-weigh their value as a food source, there is a paucity of documentation of such matters.
피지의 전설에는 40피트(약 13미터) 크기의 상어인 다쿠와카 신화가 전해져 온다. 그 상어는 사람이 타는 배를 수면 위로 들어올려버리는 힘을 가진 상어로 묘사된다. 폴리네시아 사람들에게도 상어를 신으로 여긴 상어 신화가 전해져 온다. 그 상어신의 모습은 상어와 사람이 합쳐진 모습이다. (삼국시대 십이지신상이 인간과 동물토템이 합쳐진 반신반수의 지신토템의 모습이라는데서 바다의 수신토템에는 고래나 상어도 포함되었을 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In Fiji, a legend is told of Dakuwaqa, a mythical, 40 feet long shark which could lift boats out of the water. The peoples of Polynesia have built up a mythology in which sharks, shark-gods and beings in whom the features of sharks and men are combined (Whitley, 1940).
상어숭배는 솔로문군도의 전통에서 일반화된 관습으로 전해져 왔으며 솔로몬군도의 몇몇 섬들에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믿어오고 있다. 휘트리(G.P. Whitley)의 1940년대 저술에 의하면 상어숭배는 말라이타, 울라와 및 마키라 섬들에서는 공식적으로 지금까지 금지되어 있다.
Shark worship has traditionally been a common feature in Solomon Islands and continues to this day in some islands. Whitley(1940) states that shark worship was formerly prevalent on the islands of Malaita, Ulawa and Makira and continues to this day.
상어숭배는 이들 섬들에서 두 가지로 분류된다: 상어들은 조상들로서 상어숭배자들에게 상어는 해를 끼치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 상어 중에 아무도 주술적으로 '소유'되지 않은 야생 상어들은 인간의 조상으로 수육되지 않은 상어로서 누구에게나 공격할 수 있다고 믿어 왔다. (여기에서 조상은 죽어 바다의 상어가 된다는 전승을 가지고 있는 솔로몬군도의 상어토템은 코리안들에게 고래가 죽은 조상귀신으로 믿었을 개연성을 보여주고 있다.)
Shark worship on these islands may be divided into 2 classes: sharks associated with ancestors, where sharks are worshipped and considered harmless by the worshippers, and ‘wild’ sharks, wherein the shark in not ‘owned’ by anybody, not being incarnations of ancestors, and will attack anyone.
상어숭배를 위한 사당은 서양 기독교 문화가 들어오기 이전의 솔로몬 군도의 해안 마을들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이들 상어숭배 사당들은 바다에서 가져온 산호초들을 엮어 둥글게 둘러친 해안가의 큰 나무 아래에 모셔져 있는 공통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해안가 바다 물밑에는 동굴이 있을 것이고 상어들이 그곳에 산다고 믿었다. 살아 있는 희생물들은 먼저 죽인채로 바다 가까이 그 동굴 안으로 들여보내져 상어에게 바쳐지기를 기원했다.
Altars dedicated to the worship of sharks were common in coastal villages in these islands of the Solomons in pre-christian times. These altars were uniformly composed of a ring of coral stones gathered from the shore and placed beneath a large tree on the shore. In the sea nearby would be an underwater cave in which the sharks were believed to live, and victims would be first strangled then shown into the sea near the cave by those who wished to employ the sharks’ services.
(동해안 수면 아래 바위 동굴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필자의 앞선 글 <코리안 신대륙발견> 용왕을 기리는 망해사(望海寺)를 신방사(新房寺)라 하는 이유 에서 동해안 삼척시 해망산(海望山)이 전통 금줄을 쳐놓은 '고래사당'이었음을 밝힌 바 있다. 울산의 망해사(望海寺)가 신방사(新房寺)라 불리는 것은 고래와 혼인한 고래사당이었다는 것도 이미 논했다. 장생포에는 고래잡이들의 고래사당인 神明神祠 사당터가 남아 있다.)
솔로몬군도의 전통적인 상어숭배는 죽은 사람들의 영혼들이 상어의 몸에 신들려 들어가 살아간다는 믿음과 더불어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죽어서 상어가 되어 살아간다고 믿었다. (무속의 강신 믿음이 토템숭배의 반인반수의 동물숭배에서 나온 것임을 보여준다)
Traditional shark worship in the Solomons is based on the belief that at death the souls of certain men inhabit the bodies of sharks, or rather, after death certain men actually become sharks.
휘틀리(G.P. Whitley)의 1940년 저술에서 나누아우(Nanu Au)에는 두 곳의 상어 사당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바닷가에 있었고 또 하나는 약간 언덕 위에 있었다. 바닷가의 사당에서 제사되었던 상어(상어귀신)들은 마을에 살던 사람들이 죽은 귀신들로 받아들였다. 두번째 사당에서 모셔진 귀신들은 죽은 여자 가족들의 귀신들이 모셔졌다. 그들 여자 귀신 사당들에는 남자 귀신들보다 더욱 무속적으로 힘이 강한 잠재력이 있는 것으로 여겼다. (동해안 귀신고래는 '조상귀신고래'라는 것을 충분히 유추하게 하는 내용이다. 더불어 동해안 해망산 고래사당에서 '할매당'이 산 언덕 위에 남아 있는 것은 석굴암과 바닷가의 대왕암이 고래사당의 두 유형이었다는 것을 추측하게 해준다.)
Two shark altars at Nanu Au are described by Whitley (1940): one at the waters edge and the other a short way up a hill. The shark ghosts worshipped at the first altar were ghosts of men belonging to the village; the ghosts worshipped at the second altar were those of women members on the family who had died, and were believed more potent of magical purposes than male gho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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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전승에 따르면 상어숭배자들은 무속적인 의식을 통하여 죽은 사람들을 불러올 수 있다고 여겼다. 예를 들어 부싯돌 조각이 상어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무구로 사용되었는데, 코코넛 안에 부싯돌을 집어넣어 바다에 띄워 보내는 식이다. 어떤 사람들이 그 코코넛을 건져올려 그들의 카누에 올려놓게 되면 그들의 손과 팔이 상어에게 찟어지게 되는 것으로 믿었다.
According to local belief, shark worshippers are able to bring about the death of people through black magic. For example, a piece of flint is charmed by an appeal to the sharks, then is inserted in a coconut and left to drift at sea. Any person attempting to pick the floating nut up from a canoe would supposedly suffer from having his hand or arm torn off by a shark.
과거 바누아투에서는 '상어 제의'가 매년 한번씩 열렸는데 일주일간 지속되었다. 상어의 몸은 흰색을 칠한 나즈막한 무덤에 안치하여 한동안 보호되도록 했다. (고래뼈 탈은 흰 색이며, 신라의 선도성모상은 흰색으로 칠해진다)
In Vanuatu in past times, the ‘festival of the shark’ was held once every year, lasting for about a week. The body of a shark was placed in a shallow grave with white pigment, and this would be constantly guarded for a time.
뉴질랜드의 '포우나무(pounamu: 녹색돌) 믿음은 오래된 폴리네시아인들에게 상어의 몸 안에 대대로 전해져 오는 돌이 있다고 믿는 전통이다. 그 돌은 상어의 몸 안에서는 아주 부드러운 돌이지만, 바깥 공기에 노출되면 딱딱해지는 돌이라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전설이 중국의 옥돌 기원 전설에 나오는데 그 옥돌은 물고기에서 나오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포우나우 녹색돌 전설은 옥돌이나 진주 신화에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조개가 아닌 물고기나 거북의 입에서 진주가 나오는 것으로 기록한 내용은 <삼국유사> 신라 원성대왕(元聖大王)편에 묘정(妙正) 스님이 거북으로부터 '사리'와 같은 '구슬'을 얻었다는 기록은 뉴질랜드의 포우나무 녹색돌과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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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군도의 전통 배
http://stylepacifica.blogspot.com/2007/06/pounamu-aotearoa.html
The much sought-after pounamu or greenstone of New Zealand was believed by the old Polynesians to have been generated inside a shark and at that time was quite soft, only hardening upon exposure to air. A similar legend concerning the origin of jade from fish occurs in China.
키리바티 라인 섬들에서 상어는 그 지역의 물고기들마다 영혼이 있다고 여기는 신화들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상어의 영혼을 노로니칸탄(Noronikantan te antin te bakoa)이라고 칭하고 있다. 키리바티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어떤 면에서 상어가 인간과 똑같은 지혜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상어를 인간과 함께 서로 영혼이 오고가는 일체신으로 본 것이다)
In the Line Islands of Kiribati, the shark plays a leading role in mythology, where it is believed that of all the fish spirits, Noronikantan te antin te bakoa(The Shark-Spirit) is most important. The people of Kiribati have in some parts traditionally credited the shark with intelligence equaling man’s.
위의 솔로몬군도의 원시 상어숭배 전통를 볼 때 동해안의 선사시대 코리안들의 고래토템숭배가 어떠했을지를 충분히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수로부인 신화나 알라스카 원주민 여인의 고래와의 혼인이나 '신방사'로 불리는 해망사, 그리고 삼척의 해망산 할매당 문화가 바다의 고래(상어 등을 포함) 숭배의 전통에 그대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알라스카와 북극해 인근의 고래와 혼인하는 여인 이야기는 우리의 전통 무속에서 죽은 귀신과 혼인을 시키는 굿과도 일치되며 단군신화의 교감주술을 바탕한 토템혼인 등에도 이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신라시대 신국의 도(神國의 道)는 산천경계의 신들은 물론 바다의 해신인 고래토템 숭배를 바탕하고 있다.
신라시대까지 남아 있던 고래토템숭배 전통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불교와 유교의 1천년 문화의 그늘 아래 약화되고 무속화된 것으로 변형 전이되었다. 그러나 <삼국유사> 등에 남아 있는 문헌사적인 내용의 연구를 통하여 고래토템숭배의 전통은 상당히 많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고고학적으로 근년에 찾아낸 '문무대왕 비문'에서는 '문무대왕이 죽어 고래나루에 분골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에서 고래숭배는 보다 분명하게 신라시대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금석문 잔재는 물론 신라시대 왕실 문화였던 처용탈춤이나 금관 장식, 첨성대, 석굴암 등의 유적 유물들에서 고래숭배의 잔재들을 필자는 찾아내 앞선 글들에서 소개해 왔다. 보다 많은 고래조상숭배와 관련된 문화들이 동해안 전통 무속 유적지들과 함께 불교적으로 남아 있는 사찰의 전승이나 불교 시각으로 기록된 <삼국유사> 등의 기록문헌에서도 고래숭배의 오리지날 흔적들을 찾아낼 수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수로부인 신화와 거타지 신화 그리고 작제건 신화가 모두 고래와의 혼인을 다룬 것으로 분석할 수 있었다. 신라시대에 남아 있었던 그러한 고래조상 혼인 신화들은 코리안 고래잡이들이 고래를 따라 신대륙 아메리카로 옮겨갔다.
오늘날까지 알라스카 원주민들이나 시애틀 인근 마카 인디안들의 '혼인바위 고래 암각화'에까지 남아 있다는 것을 필자는 현지 답사를 통하여 알아낼 수 있었다.
동해안의 망해사(望海寺)가 신방사(新房寺)의 신방(新房)이란 시애틀 마카 인디안들의 혼인바위(Wedding Rock) 고래 암각화와 같은 고래와의 혼인한 '조상귀신고래' 사당이 불교사찰화되었다는 필자의 주장은 이제 우리 민족 문화사의 통시적인 시대구분에서 전통 문화 인식과 그 혼합된 구분에 보다 새로운 시각을 던져주게 될 것이다. (02/12/11 오두 김성규 odunamsan@hanmail.net )
*관련글: <코리안 신대륙발견> 석굴암과 대왕암, 망해사와 처용암은 한 세트의 음양 고래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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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화 논설위원
[도청도설] 고래 바다 입력: 2010.03.15 20:25 / 수정: 2010.03.15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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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222.97.86.10%2Fnews2000%2Fphoto%2F2010%2F0316%2F20100316.22031202457i1.jpg) |
|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울산 앞바다를 '경해(鯨海)'라고 지칭하고 있다. '고래 바다'다. 경해에는 19세기 들어 유럽 포경선들이 몰려와 '고래 싸움'을 벌였으며,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 포경선들이 장생포항으로 들어와 '고래사냥'에 나섰다. 광복 후 비로소 한국인들에 의한 고래잡이가 본격화했으며, 장생포에서는 전성기인 1970년대 말을 거쳐 포경이 금지된 1986년까지 최대 21척의 포경선이 고래를 잡았다.
장생포 연안은 귀신고래가 많이 회유하는 것으로 조사돼 1962년에는 이 일대가 천연기념물 제126호(극경회유해면)로 지정됐다. 1906년 일본의 한 기행작가가 쓴 탐험기 '실지탐험 포경선'에는 동해안에 혹등고래 수염고래 등 대형 고래류가 떼를 지어 다녔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해안 고래 포획의 기록은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의 선사시대 바위그림인 반구대 암각화에는 300여 점의 동물상이 그려져 있는데 그 중 긴수염고래 귀신고래 범고래 등 9종, 58점의 고래가 새겨져 있어 '가장 오래된 고래도감'으로 불린다. 더욱이 그림에는 창에 찔린 고래, 그물에 걸린 고래 등 옛 포경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놀라움을 안겨준다.
설악산 울산바위를 울산 반구대 고래암각화와 연관시키는 이도 있다. 울산바위의 굴곡진 모양들이 고래떼가 올라가는 모양을 닮았다는 것. 고래떼가 동해안을 따라 알래스카까지 올라가면서 설악산 해안을 지나가는 모양이 울산바위에 상징적으로 새겨진 것이라는 상상력을 발동한다. 더 나아가 알래스카 원주민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오는 사람과 혼인한 흰 돌고래의 전설을 끌어들여 조상이 죽어 고래로 환생한다는 토템숭배의 양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고래도시 울산에서 고래를 주제로 한 영화 '고래를 찾는 자전거'가 제작될 모양이다. 장생포 고래문화특구, 반구대 암각화 등에서 촬영해 올 추석 연휴 때 개봉 예정이다. 시나리오 구성이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하니, '백경'이나 '올카' 등 과거의 고래영화들과 비교해가며 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 국제신문 고기화 논설위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