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0일 토요일 14:00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비정기안내 후기
* 활동일시 : 2024. 1. 20. 토요일 14:00
* 활동장소 :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 날씨 : 아침기온 2도 낮 최고 5도 / 종일 아주 흐리고 바람도 꽤 불고 눈, 비, 진눈깨비
* 입소한 이 : 안창민 선생님, 장혜주
* 안내시간 : 13:58~ 15:33
* 관람객 : 예약 7명(양화진 외국인묘역 안내하시는 분들), 일반 시민 커플 2쌍(4인)
* 특이사항 : 지난 12월 말 경 예약하신 팀이어서 오붓하게 이어갔는데 2~4층 계단 참에서 전시 위한 공사 소리가 수시로 크게 나서 놀라기도 하고 안내에 방해가 되어 속히 자리를 뜨게 되었음.
작년 12월 창민샘께서 예약을 해주셔서 마음 속으로 꽤 긴장을 하다 지난 주부터 새로 책을 읽고 매뉴얼을 뒤적이며 이것저것 공부를 하는데 어째 많은 것들이 아주 새로운 것입니다. 해설한 지 오래된 것 같은데 하고 찾아보니 작년 9월 말에 하고 기회가 오지 않아 그 사이 진행만 한 번 더 하고는 오늘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밤새 뒤척이다 일찍 집을 나서니 날이 흐리고 어째 눈이 쏟아질 것 같은 날씨인데 다행히 온도는 영상입니다. 임정에 도착해 한바퀴 둘러보고 샌드위치를 먹으며 마음을 풀어보려 애썼는데 둘러보고 준비를 할 수록 더 걱정이 되었지만 그냥 하늘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할 수 있는 것만 잘 하자.
2시 5분 전 창민샘과 함께 오신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2시 2분 전에 곧장 시작했습니다. 예약하신 분 6분(1분은 오시는 중) 외에 남녀 커플이 함께 듣기 시작했습니다.(흠... 나쁘지 않아요) 길어질 것이 두려워 시작해 버렸는데 시작 지점에 떨려 단체 소개와 기념관 개관에 대한 설명은 완전히 까먹고, ‘악을 기념하라’ 책 겉표지부터 보여드리며 백신이야기로 곧장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양화진에서 안내를 하고 계신 분들이라 제가 긴장해서 마구 달린다는 걸 아마 눈치 채셨을 겁니다.
시작이 지지부진 길어질까 싶어 간단히 마무리하고 이동하는데 임정 도슨트의 정기안내가 2시에 시작되어 두 팀이 동시에 역사의 파도로 나가려 하자, 도슨트 팀이 양보해주었습니다. 이쪽이 인원이 좀 많아 그랬는지. 감사했습니다. 계획으로는 상황을 말씀드리고 5분 늦게 시작하려고 했는데 얼떨결에 폭주한 것입니다.
비인지 눈인지 모를 것을 맞으며 역사의 파도 사선의 글들을 살펴보는데 신기해 하십니다. 네 종류의 글들이 거기 새겨져 있다고 알려드리며 언젠가 전문을 다 꼭 읽어보자 했습니다. 2층으로 이동하는데 계단 중간 천정을 향해 뚫린 곳에 아시바와 포장이 쳐져 있는데 공사 소리가 들립니다. 군주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 앞에 섰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들리며 어수선합니다. 그래서 또 전개하는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대한민국 30년 관보 1호를 얼른 보여드리게 되었습니다. 말소리보다 시각자료로 관심을 모아 집중시키는 게 낫겠다 싶었는데 어수선한 것이 진정이 되지 않아 효과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돌아 들어가니 키네틱이 작동을 멈추고 있어 곧 시작할 것 같아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고 기다리는데 움직이지 않아 꽤 당황하다 포기할까 하는 순간 작동하니 좋아하시며 카메라에 열심히 담으십니다. 2분 40초 상영하고 2분 20초 쉰다는 것을 아는데도 이 친구와는 참 친해지기 어렵습니다. 자주 안내하며 루틴을 찾아야 합니다.
안쪽으로 들어가 좀 조용해지니 대동단결선언부터 그나마 차분히 전달할 수 있게 되어 통합임시정부와 아치 안으로 들어가서부터는 계획했던 페이스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연통제와 교통국 설명과 그것이 끊긴 후 임정이 어려워진 것을 연결해 설명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군사 파트에서는 3.1운동 관련 선언서들에서 육탄혈전으로 나라를 되찾겠다는 의지들이 공통적으로 담겨 있었고, 그리하여 임정에서 1920년을 독립전쟁의 해로 선포한 것이 연관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외교와 실력양성 모두 중요하지만 실질적인 무력을 기르고 행사하는 것의 중요성을 늘 견지하고 있었음을 공유했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무장투쟁이 있었고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도 그 선상에서 얻은 귀한 승리였음을, 그 속에서 특히 홍범도 장군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탄생과 더불어 일생을 재빨리 전해드리고 산포수에서 무관으로 성장하게 된 과정, 청산리 대첩에 대한 이범석의 왜곡, 축소, 러시아 혁명 후 레닌과의 만남과 오늘날의 음해, 육사 충무관 앞의 5개의 흉상 이야기, 신흥무관학교와 이회영 이야기까지 지루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빠르게 말씀드렸습니다. 1910 맥심 중기관총 이야기도 곁들였습니다. 박물관에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연결되는 역사적 증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성의 참정권과 광복군 참여에 대해 살펴보고, 사료편찬과 독립신문 편집을 맡았던 이광수의 얼굴을 함께 봤습니다. 박은식 선생의 진본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도 소개했습니다. 외교 파트에서 파리강화회의 사진을 보며 황기환 지사 유해를 뉴욕교회 목사님과 정부의 노력으로 돌아가신 지 100년만에 대전현충원으로 모신 이야기, 그 분이 무르친스크 노동자들을 어떻게 구해내셨는지에 대한 이야기 등을 미스터 선샤인 드라마와 엮어 해드리니 흥미있게 들으셨습니다.
카이로 선언 이야기를 하고 재정파트에서 미주의 안창호 선생님의 이름을 딴 거리와 동상 이야기, 미주지역의 노동자와 교회의 자금 모집, 독립운동 지원 이야기 등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임정에는 안창호 선생님을 비롯해 김구, 이동휘, 현순, 손정도 등 많은 기독교 인사들이 주요하게 활동하셨고 헌신하셨다는 말씀을 드릴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의열투쟁에서 이봉창 의사의 의거가 비록 실패했지만 일본 정계가 발칵 뒤집히고 상하이 사변을 일으키게끔 영향을 끼쳤다는 것과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중국 정부와 국민들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말씀을 드리며 그 때 사망한 상하이 사령관(일본 육전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와 같은 이름을 가진 우리나라 장군 백선엽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김효순 작가의 책 ‘간도특설대’)
만주의 독립군을 살상하던 간도특설대 이야기와 그가 100살 넘어 살며 전쟁기념관에서 그만의 전용 사무실이 있었으며 대전현충원에 버젓이 묻혀 있다는 것, 우리 육군에는 초대부터 10대까지 일본군 출신(무려 40여년 동안 일본군, 만주군을 했던 이들도 있음)이 육군 참모총장을 했고, 친일을 일삼던 그들이 독립군 출신보다 더 높은 자리의 현충원에 묻혀 있는 현실을 고발했습니다. 지난 1월 몇 주 동안 답사하며 알게 된 사실들에 분노가 깊었고, 진실을 알려 언젠가 그 친일파들이 파묘될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 3층으로 향하는데 벌써 50분 경과. 3층은 의정원 소개와 5차에 걸친 헌법 개정 이야기를 하며 이승만에 대해 짧게 사실을 알렸습니다. 탄핵 당하게 된 배경만 설명해도 많은 분들이 한숨을 푹푹 쉬셨습니다. 그리고 정당 계보도, 독립을 도운 외국인들, 대장정에 가까운 임정의 이동 시기 등을 빠르게 보고 올라갔습니다.
빛을 되찾다, 큰 유리창에서 서대문형무소와 남산, 독립문을 바라보며 이 곳 임시정부 기념관이 넓은 민중의 바다 위에 뜬 큰 배 같다고 제 소감과 전해들은 소감들을 섞어 보았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안내드리고 있다는 소개도 하구요.
4층에서는 대한민국 27년 9월 3일 발표된 국.내외 동포에게 고함을 9월 2일 일본의 항복문서와 붙여 설명드렸습니다. 그리고 11월, 12월 임시정부가 국내로 들어올 때 미군정이 개인자격으로 들어올 것을 요구한 것과 이듬해 1946년 3.1절 조소앙 선생 연설의 가슴아픈 심정을 함께 느껴보았습니다. 이 부분은 여전히 울컥합니다.
옥상으로 가니 돌풍이 불고 비가 흩뿌려 오래 있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싸우고 있음을 알려줘야지, 하는 암살의 대사를 인용해 마무리했습니다. 단체 사진도 찍었습니다. 1층 출발 때 있던 커플은 언젠가 사라지고 다른 커플(나이가 더 들어보이는)이 끝까지 함께 해서 사진에도 나왔습니다. 책갈피와 남산리플렛을 나누어 드리며 길라잡이가 되는 방법에 대한 질문에 답도 드렸습니다.
1층 카페에서 장로님께서 사주신 얼그레이를 따뜻하게 마시며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멀리 논산에서 오신 비관계자도 계셨는데 내용이 약간 깊긴 했지만 골고루 잘 다루어 주셔서 좋았다고 하셨고, 한 번에 다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큼 전시물이 많아 다음에 몇 번 더 오셔야겠다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창민샘께서 시민단체와 교회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나누어 주셔서 더욱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모두 진지하게 집중해 들어주시고 이야기에 공감해 주셔서 몹시 떨리는 중에 무사히 안내를 마친 것 같습니다. 중언부언 많은 걸 전달하려는 욕심이 앞설까, 너무 감정이 실려 듣는 분들이 부담스럽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끝까지 잘 들어주시는 분들 덕분에 많은 우려와 걱정을 뒤로 하고 뿌듯함과 다음을 위한 힘을 얻지 않나 싶습니다. 공부하고 고민해야 할 것은 날로 커지는데 안내를 계속 이어가야 동력을 얻고 실력도 키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창민샘이 사진 찍어주시고, 진행도 해주셨습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백선엽은 왜 윤봉길 의사가 죽인 '시라카와 요시노리'로 창씨개명했을까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309120500001?utm_source=urlCopy&utm_medium=social&utm_campaign=sharing
첫댓글 아시바
전문용어가 나와버렸네요 ㅋ
어수선한 상황에 안내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역시 안내는 자주하는수밖에 없는것 같습니다
ㅋㅋㅋ 전문용어인가요..?
언제쯤이면 흡족한 안내를 했다 할 수 있을까요.
쉽고
짧게
재미있게
이 날 안내 후 스스로 너무 마음에 안들어 쭉 고민하고 있습니다.
잘해보겠다고 책 읽으며 공부를 하고 답사를 하니 필요 이상으로 길어져 듣는 분들이 피곤하십니다.
과유불급
그러려면 자주 하며 계속 고민하고 고치고 시도하고 매만져야겠지요..?
격려 고맙습니다~^^
(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마음에 드는 안내 할 날이 오기를...)
혜주샘~~수고 많으셨어요~♡
후기 읽어내려가는데도 엄청난 양에 후덜덜한데 소화해서 안내한다는게 얼마나 힘들지 짐작이 되네요. 어느 일요일에 임정안내 꼭 들어보고 싶어요!
엄청난 양을 들으시는 분들이 다 소화하시면 참 좋겠지만, 돌아와 생각해보니 제 욕심만 앞섰다는 생각에 편치 않답니다.
최근 공부하며 분개하고, 답사하며 가슴 친 것들을 전하고픈 마음이 앞서, 처음 듣는 분들의 입장을 더 깊이 고려하지 않은 것 같아 죄송합니다. 해설 들으러 일생에 한 번 오신 것일 수 있는데 적정하게 맞추어 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하게 됩니다. 많이 하는 것보다 적절하게, 임팩트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재미도 있으면 좋은데, 그건 훨씬 어려워요. ㅎㅎ
희진샘처럼 여러 안내를 골고루 들어보면 그 적정선을 잘 찾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지역과 수도권 곳곳에서 활약하시는 희진샘의 임정 합류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