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이
서부길
순정이는 만화 같은데 나오는 눈이 크고 마음씨 여린 소녀이름 같다. 부모를 여의고 어느 집에 맡겨져 시련을 극복하고 드디어는 훌륭한 배필을 만나는 신데렐라 소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순정이는 생긴 모양과는 달리 「밴댕이」를 지칭하는 인천지방의 방언이다, 작은 몸체 에 비해 눈이 커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서양에서도 “Big Eyed herring" 이라고 부르며 눈이 큰 물고기로 분류하고 있다. 우리나라 서해안과 일본, 동남아등에 분포하며 지방에 따라 뒤포리, 납시구, 자구리 등으로 부른다. 1년 중 5~7월이 산란기라 기름지고 맛이 좋아 이때가 횟감이나 구이로 좋은 계절이다. 요즘같이 해가 일찍 저물어 스산한 저녁이면, 대포생각이 간절하여 따끈한 청주에 몇 점의 생선회와 서덜탕이라도 곁들이면 하루의 피로를 쉽게 잊을 수가 있다.
시장기가 돌 때나 불현듯 먹고 싶은 음식이 생각날 때 나는 주로 생선회가 떠오른다. 어려서 부터 먹어본 음식의 소화효소가 몸안에 축적되어 자극하는 현상이라는데 양식하는 어류도 치어 (稚魚)때 먹이만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생선을 즐겨먹었고 나이가 들면서도 연하고 담백한 맛을 잊을 수 없어 회를 비롯한 생선조리 음식을 습관적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얼마 전, 즐겨 찾던 신포시장 내 여러 횟집을 둘러 보았다. 그런데 둘러봐도 중국산 홍민어뿐, 흰 빛깔의 순수 우리 민어는 보이지 않고 자연산 광어도 제철이 아니라 도무지 마음에 드는 횟감을 구경할 수가 없었다. 그저 한두 마리 횟감이 있는 것이 천정부지로 비싸 입맛만 다시며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시사철 저온창고에 보관하 여 쉽게 먹을 수 있는 밴댕이 전문집이 있어 우리 같은 서민들에게는 그나마 위안이 될 수 있다. 15㎝밖에 안 되는 몸체 양측편의 살쪽을 기술 좋게 저며서 회로 푸짐하게 내놓고 간장과 계자, 초고추장과 상추에 싸서 먹는데 아무래도 밴댕이 고유의 맛을 즐기려면 식초 탄 매콤한 풋 고추 간장에 살짝 찍어 먹는 것이 비린내도 가시고 훨씬 고소한 맛을 느낄 수가 있다.
그 조그만 놈이 어디에 살이 있을까? 하지만 솜씨 좋은 손놀림에 윤기 자르르 흐르는 은백색의 매끈한 피부는 보기에도 먹음직스럽고 입맛을 당기기에 충분하다. 예전에는 배타고 바다에 나가면 밴댕이는 인천 앞바다 어디에서나 그물마다 넘쳤다. 때로는 너무 많아 신선도가 조금 떨어진 것은 바다에 그냥 던져 버리면 갈매기 떼가 끼룩대며 배 꽁무니를 쫓아오다 날쌔게 채간다. 노을이 곱게 지는 하늘아래 사람과 자연이 빚어내는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이었다.
일을 마치고 귀항할 때면 우리들은 갑판위에 앉아 물 좋은 밴댕이를 골라 숭덩숭덩 썰어 손으로 집어 먹곤 했다. 양재기에 부은 소주가 몇 순배 돌고나면 혀끝이 알싸하고 눈가가 맵싸한 것이 몇 점의 밴댕이로는 성이 안차 벌겋게 버무려 물회로 벌컥벌컥 들이키기도 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취기가 덜했고 숙취도 없었다. 아마도 신선도가 좋은 밴댕이 물회에다 맑은 공기, 부드러운 바람이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여 그러지 않나 생각된다. 어떤 친구는 대통령도 먹을 수 없는 싱싱한 맛이라고 극찬하기도 하고 누구는 예술이라고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우리 서민이 즐기는 특미로 “집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가을전어, 아욱국을 끓이는 냄새와 더불어 밴댕이 굽는 냄새 또한 근사하다. 둥그런 드럼통 연탄화덕 불 위에 굵은소금을 훌훌 뿌려가며 구워지는 밴댕이 몸에서 노란 기름이 배에 나오고 지글지글거리며 익어간다. 그러면 연탄불에서 나오는 가스를 반은 입으로 반은 코로 마시며 노르스름하게 구워진 밴댕이 꼬리를 잡고 후후 불어가며 살을 발라먹는다. 달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이때쯤 둥그렇게 앉은 주당들은 서로 더 먹으려고 부산스러워 지는데 마음 터놓고 회포 풀던 서민들의 정겨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요즘도 흔히 하는 말 중 “밴댕이 속알딱지나 속알머리, 밴댕이 X구멍”이라고 하여 마음이 넓지 아니하고 속이 좁은 사람을 밴댕이에 비유하고 있다. 아마도 몸체가 적고 측편인데다 아래턱이 얄팍하여 풍성하지 못해 그런 것 같은데, 실제로도 겁이 많고 성질이 급하여 그물에 걸려 나오자마자 죽어버리는데서 유래된 것이 정설인 듯싶다. 밴댕이한테는 미안한 노릇이지만 뭇사람에 게 교훈을 주는 뜻으로 위안을 삼으면 어떨는지.
예전부터 밴댕이는 잡어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래서 냉장고가 없던 시절 우리집 앞 마당에는 오뉴월 볕에 밴댕이 말리는 일이 연례행사처럼 벌어졌다. 이 가운데 알이 불거져 살찐 놈만을 골라 구어먹곤 했는데 서민들 초여름 입맛 돋우는데는 제격이었다. 그러나 기름이 많아 오래 보관할 수 없던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또한 일시에 많이 항구에 들어온 밴댕이는 어묵공장에서 밀가루, 전분 등과 섞어 고기풀을 만들고 덴부라용 어묵으로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일 많이 쓰인 곳은 전통적으로 만들어오던 젓갈로 쌈장용이나 김장양념 그리고 겨우 내 밑반찬으로 보관하였다. 지금은 액젓으로도 숙성시켜 상품화하고 있는데, 특히 강화도에 전 승되어오는 순무섞박지는 액젓과 젓갈을 넣어 한 번 먹어본 사람은 그 맛을 잊지 못해 자주 찾는 강화 특미의 하나다. 순무김치와 밴댕이가 어우러져 겨우내 잘 삭아 싱싱하게 감칠맛을 더해 주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잡어로 취급되던 밴댕이도 점차 용도가 많아진데다 매립과 환경공해 등으로 인천연안에 서는 자취를 감췄버렸다. 그래서 먼 바다에 나가 험난한 파도와 싸우며 잡아오다보니 그 값도 웬만하여 이제는 인기 있는 생선이 되어가고 있다. 때문에 예전처럼 포식하지 못하는 요즘 서민들에게는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최근 서해상에 새로운 밴댕이 어장이 발견되었다니 그나 마 다행이다.
어느덧 밴댕이도 귀하신 몸이 되어 곱게 맞이할 차례가 되었나보다.
꽃게
서부길
봄철이면 한창 살이 오르고 장(알)이 꽉 찬 꽃게를 나는 좋아한다.
어느 날 덕적도에 있는 친구 K의 초청도 있고 휴식도 취할 겸 꽃게 집산지인 그 섬을 찾았다. 그가 낚싯배를 운영하니까 처음에는 낚시놀이가 생각났지만, 실은 싱싱한 꽃게 맛을 보자는 저의가 짙게 깔려있음을 섬에 도착할 무렵에야 깨달았다.
덕적 북리포구에 내리니 방파제와 물양장 그리고 선착장 등이 오래 전 그대로 변함이 없다.
지 금은 서해 꽃게잡이 하는 전진기지로 변했으나 예전에는 덕적도에서 ‘배운 체하지 말라’는 말처럼 중선(안강망)어업이 활발하여 여유 있는 선주들이 많아 육지로 자녀들을 유학 보냈던 부자동네였다.
1960년대 후반까지 덕적 해역을 포함하여 연평도에서는 속칭 ‘3떼’라는 말이 유명했다. 그러니까 조기떼를 따라 어부가 떼를 지어 올라오고, 그 뒤를 술집 색시떼가 쫒는다는 말에서 유래된 것. 그만큼 조기어장이 파시(波市)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어선의 대형화로 조기 월동지인 제주도 남쪽 2백 킬로미터까지 쫒아가 조기를 잡아내니 ‘3떼’는 어느덧 사라지고 말았다. 게다가 어선 납북 등 북한과의 관계가 첨예화되어 서해어로보호본부가 덕적도로 축소, 이동하게 되었다.
어느 해 봄, 본부요원으로 다른 동료 다섯 명과 함께 육지에서 파견된 적이 있다. 기간은 대략 2개월 정도였는데, 나만 총각이었고 나머지는 3, 40대의 기혼자들이었다. 야간에는 전기가 없어 호롱불 밑에서 라디오를 청취하는 것뿐이니 그야말로 귀양살이처럼 갑갑하였다. 때문에 저녁에는 모여 앉아 막걸리잔을 기울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마침 그곳에는 남편이 태풍 사고로 그만 홀로 된 비슷한 처지의 여인네들이 몇 명 있었다. 우두머리격인 여인한테 저녁에 모이자고 슬쩍 연락해놓으면 모두 모여들었다. 그럴 때 우리들은 미리 어느 집에다 보리막걸리와 생고구마 말린 것, 생선구이 등을 준비해 놓고 기다렸다. 서넛의 여인들이 모이곤 했는데, 처음에는 고개도 못 들고 수줍어하다가도 막걸리 몇 잔에 그만 홍조 띤 얼굴이 되고, 이내 시름을 잊고 함께 즐기곤 하였다.
특히 재주가 많은 장 선배가 주선을 담당했다. 그는 만취가 되면 고의적(?)으로 쓰러져 자버렸고 그런 때를 제외하곤 거의 내가 부축하거나 업고 하숙집으로 데려왔다. 20대 초반인 내가 그 자리에 낀 것은 순전히 선배들 뒤치다꺼리 때문이었으나 내 딴에는 어느 여인을 위로하고 싶은 순진한 마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외로운 처지의 남녀들이 고요한 달빛과 반짝이는 물결, 취기에 파묻혀 서로의 마음을 달랬던 것. 흔들리지 않을 수 없는 낭만의 시절이었던 것이다.
3월부터 시작된 꽃게잡이가 금년에는 유난히 흉작이었다. 현지에서도 킬로그램 당 3만원이나 되니 쇠고기 값의 두 배에 이른다. 실컷 먹기는커녕 탕으로 대신하였다. 새삼 어물도 많았고 인심도 후하던 그 시절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때만 해도 꽃게가 흔하여 조기그물에 덤으로 붙어 오르면 갑판 위에서 삽으로 짓마버리기도 했는데 이제는 귀한 식탁에나 오르는 진품이 되었으니 아쉽기만 하다.
꽃게란 놈은 희한하게도 투박하고 각(角)진 딱딱한 등딱지에다가 일곱 마디로 짜여진 하얀 복부에 다섯 쌍의 발로 횡보(橫步)하는 꼴이 우습기도 하다. 집게발은 무섭고 사나운 그들의 무기로 한번 물렸다하면 눈물이 찔끔 날만큼 아프다.
그러나 그 껍질 속의 희고 탄력 있는 속살은 맛있고 영양가가 풍부한데다 ‘익스트랙트’라는 단맛 성분 때문에 남녀노소가 다 좋아하는 수산물 중의 하나다. 수산물 가공회사에서는 그런 성분을 이용, 앞 다투어 북양명태살에 향료와 착색제를 넣고 ‘게맛살’이라는 어묵을 개발하여 국내외에서 크게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꽃게는 단백질, 당질, 무기질이 풍부하고 가식부(可食部)가 40퍼센트로 다른 종류에 비해 2, 3배나 많다.
어린 시절 초여름 석양녘, 콩나물 두부행상이 지나간 동네어귀로부터 볏짚가마니에 꽃게를 가득 실은 아저씨의 걸직한 목소리가 들려오면 온 동리가 한바탕 소란스러워진다. 저녁준비에 부산하던 내 어머니와 같은 동네아낙들은 앞치마에 손을 훔치면서 재빨리 문을 나서고 우리 같은 애들은 양재기 한 둘씩 들고 쏜살같이 뒤쫓는다. 보다 싱싱한 놈을 고르기 위해 리어카 앞자리 쟁탈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집게발을 하늘로 벌린 채 눈을 잔뜩 세우고 공격 자세를 취하는 놈을 순간적으로 부채발을 낚아채 양재기에 던져 넣는 것은 스릴이 넘치는 일이었다. 아차 실수하는 날이면 비명소리가 여기저기 들리고 남의 아픔을 재미있어라 했던 악동 시절이 그리워진다.
지금은 별로 못 느끼지만 그때만 해도 더위가 시작되면 여름을 타느라 입맛을 잃곤 했는데 영양공급이 여의치 못하던 시절이었으니 물 좋은 꽃게탕이야말로 밥맛을 돋우는데 제격이었다. 물론 애호박과 풋고추를 넣은 매운탕에 불과하지만 서민의 음식으로 별미 중 으뜸이었던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 집안 대소사 때 빠짐없이 준비되는 것은 우리 어머님의 꽃게요리였다. 지금은 연만(年滿)하시어 형수의 손길로 이어져오고 있지만, 예전 맛을 느끼지 못하니 피난길 임금님의 ‘도루묵’ 반환소동 같은 것으로 치부하면 어떨는지.
그러나 두 분을 통하여 보고 듣고 알게 된 꽃게요리 방법을 생각하면 더욱 친근해져 마음의 위안을 얻게 된다.
꽃게요리 중 으뜸으로는 게장을 쳐준다. 게장은 4~6월 중 노란 장(卵)이 꽉 찬 살아있는 놈을 골라 담근다. 등껍질을 떼고 끓인 간장에 수회 적신 후 반나절 재운 뒤에 생강, 마늘, 고추장 양념으로 버무린 것으로 끝이 난다. 게장은 뜨거운 쌀밥과 먹는 게 제격, 한 마디로 밥 서너 공기는 거뜬히 넘기게 한다.
꽃게장 백반으로 유명하여 내가 자주 찾는 ‘골목집’이 있는데, 주인아주머니는 점심 때 준비한 하루 분량이 다 나가면 영업을 끝내버린다. 내일 팔 거라도 조금 달라고 사정을 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이유인즉 숙성시키는 시간과 맛이 배어나오는 시간의 조절 때문이라고 하는데 음식에 대한 고집스런 장인 정신이 손님을 그치지 않게 하는 비결인 듯싶다.
꽃게매운탕도 별미다. 매운탕은 먹기 좋게 토막낸 후 호박, 무, 풋고추, 붉은 고추, 대파 등을 준비한 후 고추와 고춧가루 끓인 물에 함께 넣고 간을 맞추면 된다. 얼큰하고 단맛이 일미다. 그러나 탕은 역시 대파와 쑥갓에 후추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한 백숙(白熟)이 으뜸이다. 소래포구 어느 집에서 아주 시원하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꽃게찜은 산 채로 찜통에서 찐 후 모든 살을 빼내 양념하고 계란과 버무린 다음 등딱지에 담아 실고추 등으로 꾸며 약간 구운 후 먹는데 맛은 좋지만 손이 많이 가는 것이 흠이다. 또한 살아있는 게살로 회를 즐기기도 하는데 배를 타고 나가면 살을 도려내기 힘든 어선 위라 도마에 꽃게 전체를 잘게 쪼아 즉석에서 초간장에 버무려 먹기도 했다. 그러나 장이 가득 찬 암놈을 김(수증기)으로 쪄서 겨자간장에 찍어먹는 맛이 최고라고 하는 이도 있다.
늦은 가을에는 싱싱한 놈을 소금가마니에 통째로 박아 두었다가 게장이 익은 한겨울 따뜻한 방에서 먹는 꽃게맛도 제법이다. 그 종류만큼 조리방법도 다양하다.
그러나 이 같은 꽃게요리는 살아있는 놈으로 해야만 제 맛을 낸다. 죽은 놈은 그만큼 값어치가 떨어진다. 이렇듯 미물(微物)마저도 生과 死의 가치는 엄연하다.
산 같이 큰 고래도 둥둥 떠서 물결에 흘러가고, 한 치가 못되는 피라미는 산 같은 여울을 거슬러 올라간다. 하나는 죽었고 하나는 살아있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지극히 모험적이다. 생명의 발견은 곧 모험의 역사다.
친구의 낚싯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갔으나 꽃게는 별로 잡지 못했다. 꽃게가 점점 귀해지니 덩달아 추억도 새로워진다. 내년에는 꽃게 풍년이 들겠지.(1992. 10)
서부길 : 1949년 인천 출생.
1998년《수필문학》에 <월미도>,<꽃게>로 등단.
수필집으로『바다, 그 영원한 꿈』(2007)이 있음.
갯벌작가상(2012) 수상.
첫댓글 밴댕이구이가 참 일품이지요. 전어구이와 쌍벽을...
그게 '순정이'라니...소녀 이름 같으니 남자들이 밴댕이를 좋아할 수 밖에
등단작 <꽃게>라는 작품도 보내주시구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서부길 님하고 같이 다니면 감칠맛 나는 회 많이 먹을 것 같은 기대.
아, 송정님 선물을 읽으며 눈이 가슴까지 내려갔습니다. 부인에 대한 사랑이 애틋합니다.
그 빈자리에 훈훈한 바람이 불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벤뎅이 마지막 줄에서 저 맥주 한 캔 땄습니다.
비록 육포에 땅콩 씹지만, 저 순정이가 내 입술 간럽힌다 생각하면서요. 잘 읽었습니다.
사람냄새, 비릿한 냄새, 물씬 풍겼습니다.
밴댕이 먹고싶어염 ㅎㅎㅎ
송정님께 멋진 선물 기대합니다.
건강하십시오. 건강이 최고랍니다
저도 밴댕이 회 좋아합니다. ㅎㅎ 가끔 비린 게 먹고싶을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땐 연안부두에 가서 밴댕이 회에 무침 한 그릇 뚝딱 먹고 오곤합니다.
ㅎㅎ 순정이...이렇게 예쁜 이름을 가진 생선이었네요^&^
아, 순정이... 그물에 건져 올리자 마자 제 성질 못 이겨 숨을 거두는 밴댕이 이름이 순정이라니. 아이러니군요.
서부길 선생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서부길 님 허락없이 <꽃게> 올렸습니다.
이게 더 구체적이고 진한 맛이...
선생님 글을 읽으니 강화 선수포구
에서 밴댕이 먹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좋은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건강하십시오.
@@@ 꽃게탕 @@@
딸아이가 강화도에 근무할 적에 꽃게탕으로 유명한 집을 갔었다.
왜 그리도 사람이 많은지. 아마 꽃게탕의 진미는 담백함에 있지 않나 한다.
밴댕이, 꽃게'가 이렇게 좋은 글로 펼쳐지다니.(2014-11-9)
좋은 수필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부족한글 좋게봐주시니 부끄럽습니다 잊혀졌다 이제사 댓글 올리니 송구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