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왜 특별한가?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과 비교할 때 무엇이 특별하고 새로울까요? 기독교가 태동하던 1세기에는 이미 수많은 종교들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기독교는 처음 출발 때부터 거의 300년 이상을 로마제국의 극심한 박해를 당했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을 박해했던 로마제국이 기독교화되더니 복음은 유럽 전역을 넘어 전 세계에 이르도록 요원의 불길처럼 전파되었습니다. 과연 기독교에는 어떤 특별한 점이 있기에 로마제국의 집요한 박해를 뚫고, 그것도 기독교와 경쟁하는 다른 종교들의 견제와 박해를 뚫고 온 세상에 전파되었을까요?
유대 땅 변두리에서 시작된 기독교
(1) 기독교는 유대 나라의 변방인 갈릴리, 게다가 갈릴리에서도 한참 더 들어가야 하는 나사렛이란 작은 마을에서 이름 없는 목수의 아들로 일했던 한 젊은 청년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름은 예수였습니다. 예수님은 30세에 대중들 앞에 나설 때까지 제대로 된 공교육을 받은 흔적이 없습니다. 또한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 밑에서 랍비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고 또한 그들에게서 무슨 신임장을 받아 활동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사렛이란 외진 동네에서 이름 없는 목수의 아들로 지내던 예수님은 30세가 되어 갈릴리를 무대로 대중들 앞에서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으니 사람들마다 회개하고 그 나라에 합당한 백성으로 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할 때 수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고 기사와 표적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예수님 주변에는 구름 떼와 같은 군중들이 몰려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예수께서 인기 높은 대중적 설교자로 활동하기 시작하자 이를 가장 못 마땅하게 여긴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바로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전에 그들은 백성의 지도자들로서 대중의 존경을 받는 자리에 있었지만, 예수의 말씀과 기적 행위들을 보고 그에게서 민족적 희망을 발견한 군중들이 예수님에게 쏠려가자 시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가르친 말씀들이 유대교의 종교전통을 벗어났다고 생각하여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기회를 엿보다가 군중들을 매수하여 예수님에게 “유대인의 왕으로 행세한다”거나 “로마제국에 세금 내지 말라고 대중을 선동하고 반란을 획책했다”는 등의 정치적인 누명을 씌워 로마 총독에게 고발했습니다.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에게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으면서도 종교 지도자들의 억지 강변과 매수된 군중들의 아우성에 못 이겨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시키고 말았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한 후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빌라도 총독은 기독교가 사그라들 것으로 여겼겠지만,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의 제자들과 특별히 사도 바울의 전도로 팔레스틴 뿐만 아니라 소아시아, 마케도니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에 이르기까지 복음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갔습니다. 주후 2세기 이후가 되면 로마제국 전체 인구의 약 10%, 그리고 소아시아 지역 인구의 50% 이상이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제국의 거의 전체 도시에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2) 로마제국은 아우구스트 황제 때부터 제국의 모든 신민들에게 황제를 신으로 숭상하게 만드는 황제숭배를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미치광이 황제 네로 때는 로마에 대화재를 일으켜놓고 그것을 기독교인들이 한 짓이라고 누명을 뒤집어씌우는 바람에 대대적인 기독교 박해가 시작되었으며, 네로 황제 때의 박해로 인해 기독교의 두 대표적인 사도인 베드로와 바울 사도가 체포되어 로마에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네로 이후 카리귤라, 도미티안, 트라잔 황제를 거쳐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할 때까지 무려 300년 이상을 극심할 정도로 끈질기게 박해를 당했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주후 284년에 발칸 반도 출신의 장군 디오클레티안이 황제가 되면서 그는 기독교를 “위험 세력”으로 간주해 탄압을 계속했습니다. 계속되는 박해와 순교에도 로마제국 내에 기독교가 널리 퍼지자 303년 디오클레티안 황제는 기독교도들이 로마 신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존의 박해를 더 심화시켰습니다. 하지만 310년 10월 27일 로마 근교 밀비안 다리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콘스탄틴 황제가 갈레리우스, 막시미안, 또 다른 막시미안을 차례로 제압하고 312년에 막센티우스까지 격파하면서 로마로 입성하여 로마의 황제가 되었는데, 뜻밖에도 이 싸움의 승자는 기독교가 되었습니다. 밀비안 다리에서 전투할 때 “십자가의 깃발로 싸우라”는 꿈을 꾼 후에 자신의 병사들에게 십자가 깃발을 들게 하여 결국 전투에서 승리하는 바람에 이로 인해 콘스탄틴은 하나님을 믿기로 결심하고 주후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하는 놀라운 발표를 했습니다.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던 유대 땅의 북쪽 변방 나사렛에서 예수님을 통해 시작된 기독교는 결국 300년에 걸쳐 극심하게 박해하던 로마제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든 후 급기야 유럽 전역을 기독교화시켰고, 그리고 미국을 건너 복음은 전 세계로, 심지어 한국에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에는 어떤 특별한 면이 있길래 로마제국을 변화시키더니 전 세계에까지 전파될 수 있었을까요?
종교의 이름으로 인권을 억압하는 종교들
오늘날에는 수많은 세계 종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그런 종교들과 차별화시키는 새로운 어떤 면이 있었을까요?
(1) 최근에 TV 프로그램을 통해 오늘날 인도의 주류 종교인 힌두교의 역사에 대해 시청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힌두교는 사람들을 4가지 카스트로 분류하고, 오직 상층 계급인 브라만들만 기득권을 누릴 수 있도록 종교의 이름으로 사회를 구조화시켜 놓았습니다. 힌두교가 내세우는 인생의 목표는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 것, 쾌락을 많이 누리는 것, 그리고 성생활을 만끽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무슨 종교가 이런 저급한 가치들을 인생 목표로 세우느냐고 반론이 생기자 여기에 명상을 후대에 더 추가해서 마치 힌두교는 명상을 하는 고급스러운 종교인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힌두교는 카스트 제도가 만들어 놓은 4개 계급에도 들지 못하는 3억명 이상의 사람들을 “불가촉 천민들”로 묶어놓고 노예처럼 수천년 간 부려먹었습니다.
얼마 전 인도 남부의 한 주에서 힌두교 광신자들이 카톨릭 신부를 때려서 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6개월 전 호주에서 온 침례교 선교사 가족의 집을 불태워 그 가족 전체를 죽인 끔직한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힌두교 광신자들은 개신교든 카톨릭이든 기독교 선교를 훼방하고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살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인도 정부는 이런 일들을 눈감아 주고 있어요. 힌두교를 민족주의 이름으로 부활시키고, 힌두 문명을 재생시키려는 정책을 펼치는 자나타 당이 현재 인도 정권을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기독교를 반대하는 줄 아십니까? 힌두교 지도자들과 인터뷰한 기사를 읽어보니 그들의 감추어진 속내가 드러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도에서 기독교 선교가 계속 되면 누가 우리의 논과 밭을 갈 것인가?” 기독교 선교사들은 인도 땅에서 낮은 계급의 사람들에게 평등과 자유의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에게 새로운 신념과 세계관을 갖게 하고, 글을 가르치고 기술을 배우게 했습니다. 그들의 눈을 뜨게 하여 더 이상 높은 신분의 사람들의 경작지나 갈면서 일생을 노예와 같이 살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힌두교의 가스트 제도에 따라 지주요 자본가들인 높은 카스트의 사람들은 종교의 이름으로 3억 이상의 인구를 “불가촉 천민들”로 규정하고 그들을 자신들을 섬기는 노예로 계속 묶어두려고 하는데, 기독교가 자유니 인권이니 평등이니 하면서 떠드니까 그것을 막으려 하는 것입니다.
(2) 더욱이 오늘날 이슬람 종교는 또 어떻습니까? 그리고 그들의 독재체제들을 보세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들은 분명 너무 극단적이었습니다. 미군정 시절에 여인들이 미군과 연관된 시설에서 노동을 했다는 이유로 탈레반들은 여성들을 채찍질하고 구타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옥에 처넣고 고문했습니다. 제가 독일에 잠시 들렸을 때 터키계 한 젊은 여성이 대학에 들어가 이교도 독일 남성과 부모 허락도 받지 않고 결혼했다고 무슬림 가족 식구들이 알라신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자신의 딸 또는 여동생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시체를 독일 강변에 던져넣은 사건이 지역 신문에 대서 특필된 적이 있었습니다.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이슬람 국가들 사이에 무슨 근본적인 차이가 있나요? 종교의 이름으로 테러를 자행하고 여성들뿐만 아니라 다수 시민들의 인권을 억누르고 부정하는 이슬람 문명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렇게 세계의 한쪽에서는 신의 이름으로 여성을 굴종시키고 테러를 일삼는 이슬람 혁명이 계속 세력을 얻어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종교의 이름으로 수억 명을 노예화하는 힌두교의 복고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종교들을 참 종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유대교도 이와 비슷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함께 식탁교제를 나눈 것을 비난했습니다. 자신들을 의인으로 여겼던 그들은 죄인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식사도 하지 않았으며 그들을 천대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율법을 가르치기를 좋아했지만, 그들 스스로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의 말씀을 자신들의 편의에 맞도록 왜곡시켜 사람의 계명들로 변질시켰으며, 뒤로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면서 종교 지도자로 대접받기만을 좋아하던 위선자들이었습니다. 백성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온갖 계율들을 만들어 놓고 그들의 자유를 억압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육적인 종교인 유대교를 맹렬히 비판하셨습니다.
메시아 혼인잔치의 주인공이신 예수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탁교제를 나눈 사건을 설명하는 이야기 속에서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식탁교제가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나눈 예수님의 식탁교제는 무엇보다도 천국잔치의 예표입니다. 잔치하면 금방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풍요로움과 배부름과 기쁨입니다. 서로 나누고 권하는 사랑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마치 잔치와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잔치 중에서도 기쁨이 가장 충만한 혼인 잔치로 그렸습니다. 18-19절을 해보세요. 사람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어떻게 답변하셨습니까?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19절).” 그렇습니다. 지금은 혼인잔치의 시대입니다. 예수님을 신랑으로 삼고 춤을 추고 노래하며 기뻐하는 그런 잔치 말입니다.
사탄이 지배하는 나라는 결핍의 나라입니다. 항상 욕구 불만이 있고, 풍요와 부요 대신 가난과 궁핍이 있으며, 기쁨 대신 아픔과 슬픔이 있고, 사랑 대신 아귀다툼이 있습니다.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서로 많이 차지하려고 아귀다툼을 하는 나라, 그것이 바로 사탄의 나라입니다. 토마스 홉스는 인간 사회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간주했습니다. 서로 으르렁거리고 물고 뜯는 늑대들처럼 다툼과 착취가 지배하는 나라가 사탄의 나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세상에 천국이 임하였다고 선포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풍요로움과 배부름과 기쁨이 넘치는 혼인잔치의 때입니다. 우리들의 삶이 마치 혼인잔치에 참여한 자처럼 이런 영적 부요함과 기쁨이 넘쳤으면 좋겠습니다. 사죄의 기쁨과 구원의 감격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정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모든 기쁨의 원천은 신랑 되신 예수님을 우리 가슴에 모시는 데 있습니다. 예수를 만난 우리들의 삶에 마치 혼인잔치처럼 기쁨과 환희가 넘쳐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고 말했습니다.
세리와 죄인들, 창기들,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자들이 하나님 앞에 죄 사함을 받고 그의 보배로운 백성의 반열에 들어올 수 있다면, 이것보다 기쁜 잔치가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고대사회를 분열시킨 남녀 간의 성적 차별의 벽, 부자와 가난한 자의 벽, 노예와 주인의 사회계층의 벽, 유대인과 이방인 간의 인종차별의 벽을 다 허물고 누구든지 예수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 동일한 하나님의 가족으로 환영하시니 어찌 이보다 더 기쁜 잔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새포도주는 새가죽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전에 낡은 종교 계율들에 얽매였던 자들을 자유롭게 하여 천국잔치의 기쁨과 자유와 행복을 누리게 하시니 어찌 이보다 기쁜 잔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오프라 윈프리라는 미국 흑인 여성을 잘 아시지요? 흔히 그녀를 가리켜 Talk Show의 여왕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1년에 1억 2천만 명이 시청하는 인기 프로그램의 진행자입니다. 개인 재산만 4억불 정도가 된다고 하네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여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프로그램의 참여자로 나오면 꼭 TV, 냉장고 등을 선물로 주곤 하는데, 선물로 증정한 물품마다 대박이 터져서 회사들마다 자기 회사 제품을 선물로 증정하라고 서로 보내온다고 합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 후보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을 했는데 선거 전문가들은 아마도 200만 표 정도가 오바마에게로 이동했을 거라고 추정을 하더군요. 그녀의 Talk Show가 이처럼 인기를 끄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녀도 어릴 때는 불행한 아이, 버려진 흑인 소녀였습니다. 미혼모의 딸로 태어났지만 그녀는 엄마에게도 버림을 받아 5살 되던 해에 외할머니에게 맡겨져 살게 되었습니다. 아빠도, 엄마도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에 오프라 윈프리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때 마약까지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아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체중은 한 없이 불어나 문을 드나들기도 어려울 정도로 고도비만에 걸렸습니다. 어느 날 오프라 윈프리는 빨래를 하다가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면서 외할머니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할머니, 나 이렇게 살다간 조만간 죽을 것 같아.” 몸은 엉망이 되고 마약에 중독이 되어 도저히 살 희망까지 잃어버린 외손녀 딸을 지켜준 것은 그래도 침례교도였던 외할머니의 신앙이었습니다. 외할머니는 절망에 빠져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손녀딸에게 늘 이런 말로 위로를 했다고 합니다. “죽기는 왜 죽어! 너는 장차 큰 사람이 될 거야. 모든 일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기만 한다면 너는 어떤 일도 할 수 있어. 네가 이다음에 커서 큰 사람이 된다면 그 때는 꼭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도록 하거라!” 외할머니가 불어넣어준 격려와 소망의 말이 절망에 빠진 오프라 윈프리를 다시 일어서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을 개똥벌레에 불과한 무가치한 존재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심 깊은 외할머니를 통해서 그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치와 희망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개똥벌레와 같은 인생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새로운 가치와 희망을 발견하는 일이 우리들을 통해서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이렇게 세계의 한쪽에서는 신의 이름으로 여성을 굴종시키고 테러를 일삼는 이슬람 혁명이 계속 세력을 얻어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종교의 이름으로 수억 명을 노예화하는 힌두교의 복고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종교들이 참 종교일까요? 유대교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함께 식사한 것을 보고 유대 종교계율을 어겼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들은 대중들에게 이거 해라 저가 해라 하면서 율법을 가르치기를 좋아했지만, 스스로는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않는 위선자들이었습니다. 율법을 자신들의 편의에 맞도록 작의적으로 해석하면서 그것을 사람의 계명으로 변질시켜 놓았던 자들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종교적인 인물들처럼 보였지만 속에는 온갖 위선과 탐욕들이 꿈틀댔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까다로운 종교 계율들을 만들어 대중들을 옥죄는 일을 일삼았습니다.
기독교는 왜 특별한가?
하지만 예수님은 천국이 옛 종교적 계율들에 묶여있지 않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제 천국은 옛 시대의 종교계율들을 뛰어넘는 은혜의 나라, 새 질서가 되었습니다. 천국은 용서받은 죄인들이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17절에서 자신의 메시아 사명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가난한 자들을 사랑하셨고, 병든 자들을 치유하셨으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신 예수님은 영혼의 치유자요 참 구원자가 되십니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기다리는 모든 지친 영혼들을 우리 예수님은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질병을 고치시고 하나님의 가족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질병 치유는 이런 의미에서 죄 사함을 얻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결과로 주어진 은혜의 선물이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바리새인들처럼 예수께서 친히 허무셨던 종교사회적인 차별의 장벽을 쌓아 올리는 종교가 아닙니다. 인간적인 종교 관습들이나 이념들을 가지고 버림받은 죄인들이 경험하는 천국의 기쁨을 질식시키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인권이 신장되고 모든 사람이 신분계층을 뛰어넘어 평등과 자유를 향유하며 치유와 죄용서의 은총이 나타나게 하는 것이 다른 종교에 없는 기독교만의 독특한 특징입니다. 용서받은 죄인들이 한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서로 어울려 먹고 마시고 사랑으로 교제하는, 예수님의 식탁교제의 정신을 실현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 복음입니다. 이 복음의 정신을 몸으로 실현한 미국의 한 간호 선교사의 이야기로 끝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예화의 주인공은 엘리자벳 쉐핑입니다. 그녀의 한국 이름은 서서평입니다. 1912년 32살의 나이에 미국에서 조선으로 건너온 처녀 간호 선교사였습니다. 당시 조선은 나라를 잃은 슬픔 속에 제 백성 돌볼 엄두도 못 내던 나라였습니다. 그녀는 끊임없이 병고에 시달리는 몸으로 광주 제중원 등을 중심으로 전라도 일대와 제주도를 끊임없이 순회하며 아픈 사람들을 돌보고 가난한 여인들을 가르쳤습니다.
서서평이 바라본 조선 땅은 고난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한 번 순회 진료와 전도 여행을 나서면 한 달 이상 말을 타고 270㎞ 이상 거리를 돌았습니다. 진흙탕에 말이 쓰러지면 머리에 이고 백릿길을 걸었다고 합니다. 쉐핑은 1921년 Nashville 선교부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500명 넘는 조선여성을 만났지만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열 명도 안 됐습니다. 조선 여성들은 ‘돼지 할머니’ ‘개똥 엄마’ ‘큰년’ ‘작은 년’ 등으로 불립니다. 남편에게 노예처럼 복종하고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아들을 못 낳는다고 소박맞고, 남편의 외도로 쫓겨나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팔려 다닙니다. 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한글을 깨쳐주는 것이 제 가장 큰 기쁨 중 하나입니다.”
1929년 조선간호부협회를 세계협회에 가입시키기 위해 갔던 미국에서, 서서평은 갓 1살 된 자신을 할머니에게 버려두고 떠났던 어머니를 다시 만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니 몰골이 내 딸이라 하기에 부끄러우니 썩 꺼지라”라고 서서평을 내쳤다고 합니다. 평생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서서평은 수양딸 13명과 나환자의 아들 1명 등 14명의 한국 아이를 입양해 기른 ‘조선의 어머니’이기도 했습니다. 그냥 데려다 기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좋은 곳으로 시집가도록 돕고, 소박이라도 맞으면 자활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그의 역할이었습니다.
1933년에는 서서평은 조선인 목회자 등 동역자들과 함께 50여 명의 나환자를 이끌고 서울로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강제 거세 등으로 나환자들의 씨를 말리는 정책을 펴고 있던 일제 총독부에 나환자들의 삶터를 요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소식을 들은 전국 각지의 나환자들이 이 행진에 합류했습니다. 서울의 총독부 앞에 이르렀을 때 동참한 나환자들의 숫자는 530여 명에 달했습니다. 결국 총독부도 두 손을 다 들었습니다. 소록도 한센병 환자 요양시설과 병원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서서평은 1934년 만성 풍토병과 과로로 숨졌습니다. 그녀가 남긴 것은 동전 7개와 강냉이가루 조금, 그리고 담요 반 장이었습니다. 그나마 있던 담요 한 장마저도 길거리 거지를 위해 반을 잘라주었기 때문입니다. 서서평의 장례식에는 도움을 받은 수많은 이들이 찾아와서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 하고 외치며 통곡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조선을 사랑한 미국 선교사가 아니라 스스로 조선인으로 살다가 간 사람, 조선을 섬긴 행복을 누리고 간 선교사였습니다.
서서평이 간호 선교사로 한국땅을 밟은 지 100년을 맞은 수년 전에야 기념사업회가 세워졌습니다. 기념사업회에서 설교를 맡은 홍정길 목사님은 피를 토하듯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수 애양원에서 나환자를 섬겼던 손양원 목사의 삶, 그리고 서서평 선교사의 삶.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이게 원본입니다. 지금 기독교는 대응되는 실제가 없는 공허한 단어로만 말해지고 있습니다. 믿음은 논리가 아닙니다. 삶이며 생명 그 자체입니다. 믿음은 늘 구체적인 삶의 용솟음입니다. 손양원과 서서평이라는 믿음의 원본을 다시 갖게 된 것을 감사합시다. 한국교회는 이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비참한 조선 땅에 들어와 누구보다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당했던 조선 백성을 사랑했던 엘리자벳 쉐핑 선교사의 삶 속에서 기독교가 다른 종교들과 달리 왜 특별한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쉐핑 선교사의 삶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정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를 특별하게 만드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삶에 지치고 소외된 인생들, 죄의 무거운 짐 때문에 고단한 인생들이 예수께서 전한 천국복음의 말씀을 듣고 삶의 새로운 의미와 희망을 갖게 만드는 것이 기독교를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 아니겠습니까?
첫댓글 기독교의 특별함을
다시 보게 됩니다~
소중한 에세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어주셔서^^
타 종교와 기독교 비교조차 할 수 없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