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모음
▶서울 광복교회 박요한 목사님의 체험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문학에 소질을 가지고 공부하다가 장성하여서는 케네디나 나폴 레온 히틀러 같은 영웅 상을 마음에 그리고 꿈이 바뀌었단다.
그는 군에 입대하여 병역을 마치고 제대한 후 정계에 투신코자 매스컴 계통에 종사하든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꿈을 가지고 언론기관에 뛰어 들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일반 언론기관의 길이 열리지 않고 우연히 기독교 언론계에 잠시 종사하게 되었다. 잡지나 신문사 기자생활을 했고 나중에 출판사를 차려서 교계 목사님들을 많이 속여 가면서 돈을 벌었다.
그런데 우연히 신현균 목사님의 설교 집을 내 가지고 돈벌이하기 위하여 신 목사님의 집회에 쫓아다녔다.
1971년 가을 서대문 S교회에서 신목사님의 부흥회에 영업적으로 참석했다가 마음에 성령의 감동이 되어 눈물이 쏟아지게 되었다. 통성기도시간에 성령의 뜨거운 체험을 했는데 그때 체험을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이 찌릿하고 뜨거워지며 몸부림을 치는데 마음은 순간적으로 변화되어 비겁하고 연약하던 나는 어디가고 담대하여 복음전하는 일을 시작하였다. 그 후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고 부흥사로서 복음 전하게 되었다.
▶동두천 감리교회 권중길 목사님의 체험.
목사님은 1952년 군목으로 입대하여 11년간 복무하여 동두천 감리교회에 담인 하였다.
그때는 사명감보다는 배운 지식으로 습관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하기 싫은 심방을 기계적으로 움직였었다.
목사님은 교회부흥이나 주에 일을 위해서는 철야하지 못했으나 오락을 위해서는 종종 철야도 하였다.
이런 생활을 하고 보니 교회에는 어려움이 겹치고 직원회 때는 서로 의견 충돌로 다툼과 분쟁이 일수였다 한다.
청년들은 임원회를 막걸리 집에서 한 잔 씩 하면서 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1964년 12월 21일 새벽 2시 30분경 원인 모를 불이 일어나 교회건물은 전소되고 교육관만 남게 되었다.
목사님은 그때부터 자신의 잘못을 느끼고 회개하기 시작하여 은혜를 갈망하였다. 1966년 어느 주간 동대문 교회에서 신현균 목사님이 사경회를 인도하실 때 한시간 참석하던 중 마음 문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 후 박장원 목사님을 모시고 본교회에서 성회를 하는 중에 교역자와 온 교인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였다고 한다. 그때부터 가지가지의 은사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교회가 부흥되고 성회를 인도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대방동 감리교회에 시무 하시는 엄재성 목사님의 은혜체험기,
그는 조모님께 부터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엄격한 신앙적인 지도와 진리의 가르침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엄치상 목사님이요 부친은 장로님이고 삼촌은 목사님이었다. 엄 목사님은 신학교 3학년에 6.25사변을 만나 군대에 입대하여 전쟁 중에는 269장 찬송을 부르기를 좋아했다.
군에서 제대하여 교회를 맡아 시무하면서 서울 불광동 뒷산 기도원 꼭대기에 올라가서 269장과 199장 찬송을 부르는데 17시간을 땀이 나도록 불렀다. 갑자기 몸이 뜨거워지며 음성이 변하더니 방언이 나오고 새 힘을 얻어 찬송을 부르는 중에 은혜 받았다 한다.
그래서 그때부터 가정예배나 예배시간에는 찬송을 많이 부르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금호 제일감리교회 장광영 목사님의 체험기.
시골에서 목회를 하다가 금호동에 와서 교회에 부임케 되었다.
그때 교회 형편은 3∼40명인데 주택도 없고 생활비도 제대로 줄 수 없었다.
그러나 목사님은 열심히 일하며 최선을 다하여 보았다. 3년간이나 얘를 써보았으나 별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후두염으로 6개월 이상을 살 수 없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절망이었다.
아내도 그 동안 콩나물죽으로 연명을 하여 영양부족으로 시력을 잃고 귀까지 잘 들리지 않았다. 이렇게 되니까 목회를 더 이상할 수 없이 자포자기 할 지경에 이르렀다. 아내와 의논하니 아내도 지쳤던지 12년간 목회 생활을 청산하기로 결정을 보았다. 그날 밤 이상한 꿈을 꾸게 되었다. 웬 형사가 찾아와서 신분을 묻는데 내가 감리교 목사요 하고 답변을 하고 자기의 떳떳함을 보였다.
글쎄 우리도 그런 줄 압니다만 신분이 이상해져서 그러니 경찰서까지 가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끝까지 신분이 정확함을 밝히고 응하지 않았는데 그 형사들은 가 버렸고 장목사님은 깨었다.
그때부터 이상한 꿈이라 생각하고 신분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 사실이다. 목사를 그만 두겠다는 사람이 정확할 수 있을 리가 있겠나 하고 사임을 보류하고 목회를 다시 시작하였다.
1968년 12월 30일부터 연말연시 집회를 동두천 제일감리교회 권중길 목사님을 모시고 한 주간 은혜 받기로 하였다.
집회를 하는데 손뼉을 치고 방언을 하고 진동을 하는 것을 보니 당황하여 교인들이 어리둥절하였다.
목요일 집회가 모두 마쳤는데 밤 9시 30분이었다. 장 목사님의 마음에 이제는 끝장이다 생각하고 기도하기를 시작했다.
「주여 주님이 살아 계시다면 바울과 같이 주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해주셔야 합니다.」하고 기도를 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뜨거워지더니 육체를 가눌 수 없이 뜨거워졌다.
밤 9시 30분부터 1969년 1월 3일 새벽 2시까지 기도를 계속했는데 기쁨 충만하게 되었다. 후두염과 관절염이 어디론지 달아나고 없었다. 이때부터 교회는 부흥되고 집회를 나가게 되었다.
▶현재 서울 중앙 침례교회 시무 하신 오관석 목사님의 체험기.
목사님이 태성교회에 시무 할 때 교역자산상 수련회에 약 120명이 참석하여 은혜 받는데 목요일 낮 시간에 강사목사님이 "삯군 목자"라는 호령에 바위덩이처럼 무거운 중압감에 눌려 통회에 기도를 하게 되었다.
"나는 삯군입니다." 고백과 "먹기 위한 목회냐? 사명을 위한 목회냐?" 스스로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오 주여 나는 삯군입니다. " 자신도 모르게 통회와 자복이 터져 나오며 지난날의 죄악들이 마치 기록영화같이 나타나 회개하기 시작하였다. 낮 공부가 끝나고 자유로운 시간이 됐지만 터질 듯한 마음의 안타까움 때문에 견딜 수가 없어 조용한 곳을 찾아 다시 무릎을 꿇고 아쉽게 끝난 통회를 다시 계속하려고 했으나 이미 마음은 싸늘하게 식어 속 시원한 기도가 나오지 않고 저녁 집회에 참석했었다.
모든 성도들과 동역 자들은 깊은 은혜의 경지에서 박수를 치고 손을 흔들며 단상에는 수많은 감사예물을 드리고 날을 듯 한 기쁨과 환희에 잠겨 있는데 유난히 자기 혼자만이 하나님께 버림받는 자 같이 무거움과 억눌림 속에서 저녁집회를 마치게 되었다.
금요일이 산상성회 마지막이었다. 그는 너무나 답답하여서 동역자 10명을 데리고 한적한 평지를 찾아서 그들에게 집중 안수를 부탁하였다. 그 순간 오목사는 이렇게 기도했다 한다.
"모세에게는 능력의 지팡이를 주셔서 하나님이 쓰셨는데 왜 나에게는 아무런 것이 없습니까? 더 지체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쓰시려면 쓰신다 말씀하시고 종으로 쓰는 것이 주의 뜻이 아니라면 아니라고 말씀하셔서 더 이상 나에게 몸부림치지 아니하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고 기도를 드릴 때 이상한 증세가 일어나며 혀가 말리면서 방언이 터져 나왔다. 안수를 받으니 새 힘이 솟는데 양어깨에는 산을 옮길 듯한 새 힘과 뱃속에서는 생수가 터진 듯한 기쁨과 날개치는 듯한 통회감이 솟구쳤다. 그는 두 손을 번쩍 들고 태산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로 외치며 7시간을 부르짖었다.
이런 체험이 있은 후 목회지인 태성교회에 돌아가 토요일 저녁을 새우며 기도하고 주일 낮 예배 때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고 하는 제목으로 약 15분 동안 설교를 했는데 이상하게 여반에서, 남반에서 통회가 터져 나오기 시작하더니 마치 오순절교회를 연상하듯 또 초상집 같이 통곡이 터지며 그야말로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
그 날 저녁 교인 3배로 증가하고 3개월간 집회를 계속하였다고 한다.
▶성심교회 박태운 목사님의 받은 은혜 체험기.
박목사님은 1964년 5월 갑자기 배창자가 뒤틀리기 시작하여 대학병원 응급치료실로 가서 혈청검사를 하고 X레이를 여러 장 찍어 보았으나 뚜렷한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
입원한 지 20일이 된 어느 새벽에 그는 침대에서 쓰러졌다. 의사들이 진찰해보고 이제는 틀렸다는 것이다. 가족들이나 자신도 사형선고를 받은 것으로 아찔하였다.
이때 목사님은 하나님께 결사적으로 매달렸다.「하나님 한번만 살려주시면 주에 일을 하겠습니다.」 하고 간곡히 기도하였다. 그 후 오후 5시부터 회복되기 시작하더니 기적적으로 일어나 퇴원하게 되었다. 1964년 10월 한용구 목사님을 모시고 부흥회를 했는데 첫 시간에 "징계는 다 받은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12:8) 이 말씀에 박목사님의 마음을 찔렸다. 그때부터 밤에는 다락에서 기도하고 새벽에는 교회 나와 기도하는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그렇게 감사하여서 찬송가 합동 192장을 부르고 기도하는데 영안이 열리고 은사가 임하게 되었다. 그러지 65년 3월에 아내도 은사를 받게 되자 5남매가 모두 은사를 받고 가정천국을 이루어 기적적인 신앙역사가 일어났다 한다.
▶현재 서울 성락교회 시무하시는 김기동 목사님의 체험기.
그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삶에 자신을 잃고 죽기 위하여 집을 나가던 길에 우연히 교회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날은 주일이어서 수백 명의 교인들이 예배당을 꽉 메운 가운데 오경린 목사님 (현 동대문 감리교회)의 설교가 있었다.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 되게 하리라." 그를 필요로 한 말씀은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감동이야 억제할 수 없었다 한다. 너무 기뻐서 소리 내어 울었다. 그 다음날 이웃교회서 집회를 했었는데 강사는 김형태 목사님이었다.
생전처음 참석한 집회였다. 찬송을 부르고 성경은 없었으나 설교를 열심히 들었다.
한참 설교를 하시던 김형태 목사님이 김 목사를 직시하더니 "청년 교회 나온 지 얼마 되었나?" "어제와 오늘뿐입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저 청년은 은혜 받았습니다. 젊어서 은혜 받아야 합니다. 두고 보십시오. 저 청년은 사람 낚는 어부가 될 것입니다." 하였다.
그때부터 그는 목사님의 말씀대로 되기를 기도하였다. 성경을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그 해만 수십 독하였다.
날마다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 전도하고 공부를 하여 목사가 되고 부흥사로서 전국을 다니며 현재 대방동에 한국에서 제일 큰 침례교회를 세우고 있다.
▶인천 숭의 감리교회 이호문 목사님의 체험기.
그는 고이만집목사 손자이며 부친 이성해 목사님의 장남으로 태어나 3대째 목사가 되었다.
그는 63년에 신학교를 졸업하여 부친이 시무 하시던 인천 숭의교회 전도사로 파송 받았다. 1백 명 모이는 교회에서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노력을 했으나 구원의 확신이 없고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성가대를 조직하여 지휘하고 청년회를 조직하여 인도했으나 잘 모이지를 않았다. 그리고 심방을 했으나 형식적이었고 하기도 싫었다. 그러던 중 유효진 장로의 딸과 결혼을 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처는 기도를 많이 하고 능력을 받았던 터이라 비교적 활발하게 신앙생활을 했다 한다.
그러나 이목사는 설상가상으로 병들어 눕게 되고 각혈까지 하게 되었다. 진찰을 받으니 요양원에 가서 요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적신호의 선고를 받았다.
생활비도 적고 요양을 할 형편이 못되어 목회를 포기하기로 하였다.
부친은 3대째 목회나 참고 기도하고 노력하면 성공할 것이니 낙심하지 말라는 권고를 했다. 그러나 권고도 거절하고 처가 결혼 전에 양장점을 하였는데 목회 7년 만에 인천중앙시장에 향이사라는 양장점을 차리고 장사를 시작했다.
당시 교회에서는 만 5천원을 받았으나 장사가 잘 되어서 한 달에 14만원을 벌었다. 이목사는 돈벌이에 맛을 들여 목회는 멀어지게 되었다. 1969년 11월에 부친이 갑자기 신병으로 눕게 되고 설교를 이목사가 해야 되게 되었다. 마지못해 할 수밖에 없이 되었다.
새벽기도회를 인도해야 되어 1969년 11월 마지막 주일 새벽에 예배를 간단히 마치고 곧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으나 이날은 기도할 마음이 있어서 준비기도실에서 간절히 매달려 기도하게 되었다.
그때 이목사의 기도는 단도직입적으로 "하나님이여 나에게 큰 은혜를 주시어 훌륭한 종이 되게 하여 주시든지 아니면 장사해서 잘살게 내버려두시든지 둘 중에 하나를 하게 해주십시오. 나는 심히 괴롭습니다. "하고 얼마나 부르짖었던지 몸에는 땀이 나고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가슴을 치며 소리쳐 부르짖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몸에 불을 끼얹는 듯 뜨거워지면서 입에서는 방언이 터져 나왔다. 내가 좀 미치려고 하는가보다 생각되어졌으나 마음속에 들려오는 음성은 "안심하라 성령의 방언이다"였다. 그때부터 방언이 터지고 마음에 평안이 오고 기쁨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외치기를 이렇게 좋은 것을 왜 내가 진작 체험을 하지 못했나 하고 후회스러웠다.
그 후 주일 설교는 힘이 있었고 양장점을 정리하고 목회 길로 다시 출발하여 지금은 인천에서 제일 큰 교회로 성장되었다.
▶어느 학생이 개근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학생이 지각을 했습니다. 선생님이 왜 지각했느냐고 물으니까 학교 오는 길에 어떤 아저씨가 동전을 잃어버려서 같이 찾아주다 보니까 늦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동전 찾아주는 것이 중요하냐 아니면 학교 가는 것이 중요하냐고 물으니 아이는 자꾸만 동전 찾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깁니다. 그리고 이 아이가 선생님이 한심하다는 듯이 “내가 그 동전을 한발로 밟고 있는데 어떻게 학교를 올 수 있느냐”고 말했습니다. 이 아이가 그 아저씨가 동전 찾기를 포기할 때 까지 기다리다가 학교에 늦은 것입니다. 그 아저씨가 참 고마운 아저씨입니다. 그 아이가 한발로 동전을 밟고 있는 것을 알았을 것인데 동심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모른 체 그냥 돌아간 것입니다.
▶여러분, “주객전도”라는 말을 아십니까. 아라비아 상인들이 낙타에 짐을 싣고 사막을 오갑니다. 사막은 밤은 춥고 낮은 덥습니다. 밤이면 도중에 텐트를 치고 낙타는 밖에서 자야 합니다. 밤이라 춥습니다. 그래서 낙타가 텐트에 주둥이를 슬며시 집어넣습니다. 주인이 나가라고 하니까 얼굴만 들여놓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인이 묵인해 줍니다.
그랬더니 조금 있다가 앞발이 슬며시 들어옵니다. 주인이 나가라 하니까 앞발만 넣고 자게 해 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묵인해 주었더니 조금 있다가 몸 전체를 들여 밀더니 주인보도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주객전도라고 말합니다. 처음에 딱 잘랐어야 하는데 우유부단하고 끊고 맺음이 없고 불필요하게 지나치게 인정을 베풀다 보니까 마침내는 자기위치를 빼앗기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실화입니다. 한 미국인이 프랑스 여행을 하다가 시골 가게에서 목걸이를 샀습니다. 목걸이의 모양이 특이해서 골랐는데 생각처럼 값도 비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미국 세관을 통과하는데 목걸이에 대한 의외의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거 비싸지도 않은 물건인데 그렇게 높은 세금을 매기느냐고 항의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세관이 하는 말이 이것은 손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고가의 물건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세금을 지불하고 나와 그는 보석상에 가서 보석 감정사에게 그 목걸이의 값어치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그런데 확대경을 가지고 한참동안 그 목걸이를 보던 이 감정사가 깜짝 놀랍니다.
‘손님이 가지고 오신 이 목걸이는 보통 목걸이가 아니네요. 좀 보시지요.’ 그래서 확대경으로 가만히 보니까 거기에는 이런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사랑하는 조세핀에게!/보나파르트 나폴레옹’ 그 목걸이에 나폴레옹의 사인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나폴레옹의 사인만 있어도 그토록 값비싼 보물로 취급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걸작 품인 우리가 왜 스스로 ‘별 볼일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존귀한 자입니다.
▶미국의 앤드루 존슨 대통령의 일대기를 읽어보면 참 기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참 가난했습니다. 아주 어려서 부모를 잃었습니다. 그는 공부를 하지 못했습니다. 14살 때 양복점 점원으로 일하고 18살 때는 구두수선공의 딸과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결혼해서 아내를 따라 교회를 다니게 됩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때부터 눈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기회가 주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는 뒤늦게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그에게 가지고 있던 능력이 일취월장하는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40세에 달변가가 되고 명필가가 됩니다. 그는 비로소 하나님을 알고 만나면서 내면의 세계에 눈이 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미래를 보는 눈이 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링컨대통령에 이어 17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리고 남북전쟁에서 갈라진 민심을 봉합하는 일을 해 냅니다. 그리고 알라스카를 러시아로부터 720만 달러에 사들입니다. 그때 아무 쓸데없는 얼음산을 비싸게 사느냐고 비난이 쏟아졌지만 그는 남들보다 미래를 보는 안목이 있어 그 얼음산을 의심하지 않고 사 들입니다. 그런데 그 얼음산이 오늘에 와서 얼마나 자원이 많이 묻혀있는 땅덩이리가 되었습니까?
▶진정한 만족
<벤허>를 읽어 보면 동방 박사 세 사람에 대해 재미있게 묘사를 했는데 하나는 철학을 대표하는 사람이요, 또 하나는 윤리를 대표하는 사람이요, 다른 하나는 종교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나옵니다. 참을 찾고, 선을 찾고, 미를 찾고, 즉 인간의 진선미를 찾아 땅 끝까지, 세상 끝까지 가보았습니다.
인간의 철학과 종교, 윤리가 추구하는 꼭대기까지 가 보니까 거기에서 구세주를 만나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구세주는 사랑인데, 그 사랑은 재능이 아니라 인격이었습니다. 그래서 별의 안내를 받아서 예수님을 만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썬다싱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죽어버리겠다고 하며 죽음이냐 하나님이냐의 양자택일을 놓고 기도하다가 십자가를 짊어지신 예수님이 나타나심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구하면 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됩니다. 진실로 주의 뜻을 구하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원하고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사모하면 배가 불러집니다. 물 한 컵 정도로 조금만 얻는 것이 아니라 오아시스 같은 생수의 홍수를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부족함이 없게 되는 것은 예수를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도덕을 추구하고, 철학을 추구하고, 종교를 추구하고, 열심히 하나님의 뜻을 묻고 물으면 예수를 발견하게 되어 거기서 만족함을 얻게 됩니다. '내가 주 안에서 쉴 때까지 내게 평안이 없었나이다'는 말처럼 진정한 만족은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 됩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요 3:13-15)
▶시기심에서 해방
헬라의 민화 가운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올림픽 경기에서 월계관을 차지한 일등선수의 기념비를 세워 놓았습니다. 그 라이벌 선수가 밤마다 몰래 가서 그 기념비를 부수려고 끌로 그것을 쪼았습니다. 며칠 밤을 몰래 가서 그것을 쪼았는데 마지막 밤에는 그 기초를 다 쪼았습니다. 그래서 그 기념비가 넘어지는 바람에 자기가 죽었습니다. 시기라는 것도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잠언 14장 30절에는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한다고 했습니다. 시기는 가시와 같아서 뻗치는 곳마다, 손이 닿는 곳마다 남을 상하게 하고 자기도 상하게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이 사회를 해롭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유익이 없습니다. 가시가 뻗치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이 잘되고 행복해지는 것마다 배가 아프면 어떻게 살아갑니까? 다른 사람이 잘될 때마다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할 조건이 많아지지만 다른 사람이 잘될 때마다 배가 아픈 사람은 잘 되지 못합니다.
성경을 보면 요셉의 형제가 요셉을 시기해서 못된 짓을 했고, 하만이 모르드개를 잡아 죽이려고 시기하다가 오히려 자기가 그 장대에 매어달려 죽었습니다. 어린이들의 세계에 시기가 있고, 여인들의 세계에 시기가 있고, 학생들의 세계에 시기가 있고, 사업하는 사람들의 세계에 시기가 있고, 예술계. 정치계. 학계에 시기가 있습니다.
종교계는 어떻습니까? 제가 목사지만 종교계에 너무 시기가 많고 너무 질투가 많습니다. 시기는 가장 원시적 감정이며 천한 감정입니다. 이 시기에서 해방받기 위해 어떤 사람에 대한 시기가 생길 때, 시기 발언을 하고 싶을 때, 시기를 보복하는 행동을 하고 싶을 때, 주님께 그것을 가지고 가서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습관이 되고 품성이 되고 나중에는 그것을 이기게 됩니다.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잠 14:30,32)
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요(잠 11:31)
▶구습을 벗자
또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제가 늘 지나다니는 골목에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가 구두를 수선하며 늘 앉아 있었습니다. 제가 구두를 수선하면서 그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언제부터 구두 수선을 하고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할아버지는 일생 동안 다른 직업은 가져본 적이 없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도 구두 수선을 했으며 전쟁이 나자 그 할아버지는 구두 통을 들고 다니면서 만주까지 가서 구두 수선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38선을 넘어올 때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고생을 했지만 그 할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기술 때문에 고생을 안했답니다.
전쟁 중에도 구두를 닦는 사람이 있더랍니다. 그래서 한 번도 다른 일을 해 보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지금까지 그 직업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에게는 한 가지 불만스러운 것이 있었습니다. 만일 다른 일을 했더라면 훨씬 더 잘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 고향에서 같이 38선을 넘어온 사람이 있었는데 자기처럼 무식하고 아무 것도 하는 일이 없어서 처음에는 자기 밑에서 조수 노릇을 하다가 그것도 기술이 없어서 나가서 거리에서 치약도 팔고 치솔도 팔고 수건도 팔고 하더니 구멍가게를 빌리고 나중에는 도매상점을 하고 지금은 아주 부자가 되었답니다.
한 사람은 구두 수선하는 할아버지이고 한 사람은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그 할아버지가 그때 그 구두 통에다 마음을 두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보따리장수가 되었더라면 큰 부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을 텐데 할아버지는 구두 통 하나에 자기의 전 생애를 다 걸었기 때문에 평생 구두 짓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겠습니까? 믿는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궤도가 있습니다. 아기가 어머니 배 속에 들어 있을 때 그 아기는 '아! 여기는 따뜻하고 좋다.'고 이렇게 어머니의 배꼽에 탯줄을 대고 있으면 얼마든지 먹을 것도 주고 아무런 노력을 안 해도 얼마든지 잘살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 아기가 어머니의 배 속에서 밖으로 나오려고 할 때는 굉장한 고통이 있습니다. 아기가 밖으로 나올 때 얼마나 깜짝 놀랐겠습니까? 그러나 아기는 고통과 진통을 겪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 찐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0-24)
▶무한대의 밀도
우리의 최초의 힘은 인력(인력)이었습니다. 거기에다가 마력(마력)이라고 하는 가축의 힘을 빌려서 노동력을 얻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화력(화력)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온천 지대에 가면 온천물을 가지고 밥을 끓여 먹고 난방을 합니다.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그 밀도가 무한합니다.
제가 언젠가 <리더스 다이제스트>지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중성자별에 갈 것 같으면 찻숟갈만한 물질이 10억 톤의 무게와 농도를 가질 수 있고, 온도는 1억 도가 넘는 그런 물체가 있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밀도가 훨씬 더 높은 것으로 블랙홀이라는 별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처럼 전파나 광선이나 중력을 모조리 흡수해 버리고 아무 것도 통과가 안 되는 무한 밀도의 물질이 있다는 말을 읽어 본 일이 있습니다. 물질의 세계 속에 이렇게 무한한 밀도가 있다고 하면 정신계의 세계에는 더 무한한 에너지가 잠재적으로 감추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활용을 못한 많은 에너지가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비상한 힘을 이 시대가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신념의 힘이나, 양심의 힘이나, 정신의 힘이나, 지식의 힘이나, 돈의 힘이나, 몸의 힘은 너무나 작아서 하나님의 놀라운 목적을 이루기에는 너무 부족합니다.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힘이 필요합니다. 마치 자기의 힘만으로 뛰어가는 사람과 자동차를 타고 가는 사람이 다르듯이 자기 자신만의 힘으로 사는 사람은 큰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힘에 의해서 사는 사람과 자기 힘의 극한에 의해서 사는 사람은 태평양을 뛰어가는 사람과 비행기를 타고 가는 사람과의 차이만큼 다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힘이 필요합니다. 굉장한 힘이 필요합니다. 옥스퍼드 대학이 기독교 학교로 변했던 때와 같은 특수한 힘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그 힘은 성령께서 주시는 힘입니다. 그 성령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기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대로 성령이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롬 15:18)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새벽에 사람들은 의미를 부여 합니다. 공자 삼계도(孔子三計圖)라 하여 ‘일생의 계획은 어렸을 때 하고(一生之計在於幼), 일 년의 계획은 봄에 하고(一年之計在於春),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하라(一日之計在於寅<晨>)’고들 합니다.
▶한 주일 학교 교사가 그의 반 학생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값없이 거저 주신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하여 그의 선생님의 은시계를 호주머니에서 꺼내어 학급에게 가장 나이 많은 학생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 시계를 거저 줄 것이니 받아 가지라." 고 했다.
그런데 이 학생은 앉은 채 씽긋이 웃었다. 학생은 선생님이 농담하고 있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 선생님은 다음 학생에게 시계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너 가져 이건 내 것이야." 그 소년은 속으로 생각하기를 만일 손을 내밀어 그 시계를 받으면 다른 학생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아서 역시 잠자코 앉아 있었다.
같은 방법으로 선생님은 학급 전체 학생들을 거의 한 바퀴 돌았다. 그러나 선생님은 제일 작은 학생에게 시계를 내밀었다. 그때 꼬마는 얼른 받아서 냉큼 호주머니에 집어넣어 버렸다. 모든 학생들이 그것을 보고는 깔깔 웃어댔다. "고맙다 꼬마야 넌 내 말을 믿어주었어. 그 시계는 네 것이 된 거야 잘 간수해야 된다." 하고 주었을 때 다른 학생들은 그럴 줄 알았으면 내가 받을 걸하고 짭짭했다는 것이다. 은혜의 선물이란 이와 같이 거저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1975년 8월 4일부터 일주 간 경기도 평내 반석기도원에서 성회를 인도한 적이 있었다.
이 때 감리교회에서 은혜 받으려고 올라오신 교인이 묻기를 목사님 은혜가 무엇인데 은혜 받으려고 합니까? 물으니까 기장교회 강 목사님이 대답하기를 "은혜가 무엇이라니 은혜란 여기 산상에 올라온 것도 벌써 은혜요 축복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은 것도 은혜라고 일러주었다. 과연 은혜란 산상에 올라오는 것인가?
▶대구에 어느 청년이 정신도를 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청년에게는 예수가 늘 나타났다. 이 청년은 예수도 모르고 교회라곤 나가지도 않고 어느 때 부흥회에 한 번 가서 교회 벽에 걸어 놓는 예수님의 사진이 늘 보였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정신도를 하였는데 이상하게도 길에 가도 예수가 나타나고 집에서 정신도를 해도 예수가 환상으로 늘 보였다. 그래서 예수 믿기로 결심하고 부모님께 예수를 믿겠다고 하니까 부모님은 절대로 반대하였으나 예수님이 강권적으로 역사 하여 은혜를 주어서 교회 나가서 진실한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 청년은 은혜 받은 자이다.
▶스코틀랜트 사람 하나가 자기가 예수를 믿게 되기까지 몇 사람이나 동원되었느냐는 질문을 받게 되었다.
"두 사람이 있었지요."
"두 사람이라니요? 어째서 두 사람만 동원되었습니까?"
"하나님과 나 자신이 예수를 믿게 하였지요." 하고 그는 당연한 듯이 말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를 안 믿으려고 온갖 수단을 다 썼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도 역시 나를 예수 믿도록 하기 위하여 온갖 일을 다 하셨구요. 결국 하나님이 승리하셨지요."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인천 성결교회 임집사의 간증이다.
임집사님이 예수 믿기 전에 피부병으로 고생을 했는데 몸이 헐어서 냄새가 나고 해서 폐인이 되었다.
아무리 고쳐 보려고 좋은 약을 써 보았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이로 인하여 남편은 방탕하고 술 마시고 들어오면 매질을 하고 가정이 벌집 쑤셔놓은 것 같이 불안한 상태였다.
이 자매님은 염려와 근심에 몸은 쇠약할 대로 약해졌다. 그런데 하루는 남편이 술을 마시고 와서 돈 10만원을 내 놓으면서 하는 말이 "너도 젊고 나도 젊었으니 할 수 없다. 너도 알다시피 돈이 없고 이것을 가지고 가서 좋은 사람 만나서 살아요. 나도 몸에 병이 없는 사람 얻어서 잘 살아 보겠어요." 하고 이혼하자는 것이다. 임자매는 원수 같은 피부병 때문에 소박맞아 쫓겨나게 된 것을 탄식하면서 보따리를 싸가지고 집을 나오는데 앞이 보이지 않더란다.
얼마쯤 정처 없이 걸어가다가 보니까 벽보에 심령 대부흥회라고 크게 쓴 광고를 보고 저기 가서 하루 저녁만 지내고 서울로 올라가리라 생각하고 교회로 들어가서 앉아 있는데 강목사님이 외치시기를 우리 주님은 좋으신 분이요 그는 포로된 자를 자유를 주시고 병든 자를 치료하신다고 외쳤다. 이 말씀에 크게 감동 받고 일주일간 교회에서 금식하면서 은혜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금요일 낮에 이상하게 자기 몸에 피부병이 완전히 나음을 받았다.
얼마나 기쁘고 즐거웠던지 위자료로 받은 10만원을 몽땅 헌금해 버렸다.
이 남편이 자기 아내를 보내고 5일간 홀아비로 살아 보니까 도저히 살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이 엄마를 찾으며 밤을 새워가면서 울어 살수가 없었다. 그는 아내를 찾아야 하겠다 생각하고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니 성결교회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거기에 찾아가 보았더니 마침 아내가 너무나 기쁘고 좋아서 춤을 추고 있었다.
남편이 생각하기를 저 사람이 이혼을 당하고 병들어 고생하더니 미치고 말았구나 하고 불쌍히 여겨 쫓아가서 "여보 진정하오. 내가 왔소." 하고 부여잡으니 그 자매님은 "여보 잘 왔오. 내 피부병을 예수님께서 고쳐 주었어요."
하고 기뻐 뛰면서 팔소매를 걷어 보이며 기뻐하였다. 남편이 "됐으니 집으로 갑시다." 하고 이끌었으나 임 자매는 "아니요 나는 집을 나왔고 돈 10만원까지 가지고 나왔는데 어떻게 들어갑니까? 나 그 돈은 하나님께 헌금하였어요." 하였더니 남편 되던 사람이 "여보 병이 나았는데 돈 10만원이 문제요 없어도 좋으니 염려 말고 집에 갑시다." 하고 서로 화해가 되어 예수를 잘 믿게 되었다고 한다.
▶김형표 목사님의 체험
서울 한일교회 시무 중에 있는 김 목사님은 20대에 경찰 간부로 활약했는데 30세에 경찰서장이 되고자 하는 부푼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27세에 어느 날 태백산지역에 전투를 지휘하던 중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왼쪽다리가 몽땅 없어진 것이다. 젊은 나이에 다리를 잃고 나니 모든 희망은 끊어진 것 같고 자포자기하며 만사를 부정적으로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고 싶었고 고민을 잊기 위하여 술을 마시고 취하곤 하였다. 진천 경찰서로 전임하여 1개월쯤 되던 어느 날 거리에서 심령대부흥회란 광고를 보았다.
진천 감리교회에서 손피득 목사님이 강사(현 서울삼양감리교회)였다. 마음에 심한 고민에 짓눌린 김순경은 저녁에 구경삼아 교회에 나갔다. 그런데 설교를 듣는 중에 그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만일 네 발이 너를 죄를 범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한 다리를 가지고 라도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 우는 것보다 나으리라." 이 말씀이 화살같이 마음에 부딪쳤다. 김순경은 계속하여 집회에 참석하여 뜨거운 불같은 마음이 터져서 한없이 소리쳐 회개하였다.
과거에 지은 모든 죄를 쏟아보니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 것을 알았다.
난생 처음 통곡하고 울었다. 그때부터 그의 생활은 변하기 시작하였다. 광명을 찾고 기쁨과 소망과 찬송의 생활이 되고 절망에 처하여 고민하던 것이 변하여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되었다.
후에 경찰직을 그만 두고 서울 신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목회자가 되었다.
▶신현균 목사님의 체험
부흥사로서 이미 명성이 떨쳐있는 신 목사님의 오늘에 있기까지는 그 동안에 하나님께 받은 은혜의 산물이다.
신 목사님이 진해 해군기지 군목으로 오랫동안 수고하다가 부산 시온교회를 찾아가서 정 목사님을 만나서 목회경험담을 듣고자 하였다. 정 목사님은 신 목사님을 반갑게 환영하여주고 여러 가지 목회경험담을 들려주어서 밤을 지새우고 새벽기도회에 전보다 많은 성도들이 참석하여 예배를 마치고 정 목사님이 안수기도를 해 주시는데 신 목사님 곁에 왔는데 갑자기 목사님의 가슴이 뜨거워지더니 견딜 수 없이 가슴이 불덩어리와 같이 되어 죽을 것만 같이 되었다. 그 후 신 목사님은 새 힘을 얻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