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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이기순 스크랩 아기 사슴의 눈물 소록도
13 이기순(浪山) 추천 0 조회 41 10.04.08 14:00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아기 사슴의 눈물 소록도

 

 

     

              단절의 땅 소록도를 이어주는 소록대교. 2009년 개통

 

 

  그 이름도 그지없이 예쁘고 귀여운 소록도(小鹿島). 아기 꽃사슴이 한가로이 초원을 노니는 천상의 낙원이란 이미지이러니, 땅 이름만으로도 무한한 동경과 그리움을 자아내게 하는 곳이 바로 소록도 섬이다. 허나 그 이름이 너무 고와 세상이 시기하고 질투를 했음인가, 한센인은 무엇이고 천형의 땅은 또 무엇이더냐. 일찍이 문둥이 시인으로 낙인찍힌 한하운의 시편들이 너무 애처로워 「보리피리」 소리가 닐니리 들려오는 계절이 되면 멀고 먼 전라도 황토길을 몸살처럼 달려야 했다.

  남도 땅 고흥반도의 맨 끝자락 녹동항까지 허위허위 찾아온 발길이 소록대교 앞에서 나도 모르게 그대로 굳어버린다. 물길을 건너야 했을 때는 더 이상 갈 수 없어 예서 멈추어 버리든, 지그시 눈을 감고 되돌아서야 했을 터이지만 저렇게 육중한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리다니. 지금 이 다리는 그냥 섬과 뭍을 연결해주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요, 차안과 피안을 구분짓던 경계선을 이어주고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었던 녹동과 소록도를 맺어주는 거룩하고도 숭엄한 인연의 가교라고나 해야 할까 보다.

건너다 뵈는 저기 사슴의 섬이 한 세기에 이르는 동안 눈물과 한으로 얼룩진 금단의 땅이었다니 그저 가슴이 먹먹해지고 무엔지 울컥 뜨거운 것이 목구멍을 치밀어 오른다. 하늘이 벌로 내린 불치의 병이라 몰아붙이며 절해고도의 작은 섬에 유폐되었던 한센인들의 절규가 아직도 해풍에 실려 들려오는 듯하다.

  소록도의 슬픈 운명은 1916년에 조선총독부에 의해 설립된 자혜병원에서 시작된다. 처음 100여 명으로 출발하여 국립소록도갱생원을 거쳐 일제 말기인 1940년대에 이르러서는 6,000여 명이나 되는 환자들이 수용되었다 한다. 해방 후 다시 ‘국립소록도병원’으로 시설 규모가 확장되면서 소록도는 세인들의 기억 속에 아득한 저편, 차마 들어가기 어려운 곳으로 각인되었다.

 

             

 

                           가지런한 송림이 섬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소록도병원 입구

 

 

  대교를 건너 새롭게 다듬어진 도로를 따라 주차장에 이르면 바닷가 절경을 따라 아름드리 해송들이 가지런히 늘어섰다. 병원으로 들어서는 입구다. 남실대는 저 쪽빛 물결이, 생기가 넘쳐흐르는 진초록 송림들이 고달팠던 이들의 얼룩진 생애를 어이 알까마는, 길 가운데쯤의 표지판엔 ‘수탄장(愁嘆場)’ 세 글자가 선명하다. 병든 부모들과 그 자식들이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만나던 곳이다. 살점이 문드러져 일그러진 얼굴을 뵈지 않으려 등을 돌려 바라보는 부모나, 그같은 부모를 안쓰러워하면서도 차마 손길을 내밀지 못하던 자식이 함께 비운을 탄식하던 자리다.

 

            

 

                                   한센인의 전문 치료 기관인 국립소록도병원

 

 

  산모롱이를 돌아 병원 앞에 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바로 애한의 추모비. 해방을 맞아 자치권을 요구하다 처참하게 살해당한 원생 84명의 원통한 영혼이 바다를 등지고 서있고나. 병원 건물을 끼고 뒤로 오르면 산자락 끝에 낡은 지붕의 자료관이 두 동(棟). 한센병 치료를 위해 쓰였던 치료 기구들과 그들을 옥죄고 고문했던 발틀과 대발 등이 전시되어 있다. 여기 전시된 한하운 시집과 소록도를 배경으로 한센인들의 아픈 역사를 그린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갱생원의 아픈 역사를 보는 것 같아 순간 강한 전율이 전신을 타고 흘렀다.

 

            

 

                                          참사 57년 만인 2002년에 건립된 나환자 추모비

 

 

  아름다운 소록도 경관의 백미는 병원 뒤뜰에 위치한 중앙공원이다. 6,000여 평의 넓은 터에팽나무, 종려나무, 삼나무, 팔손이나무 등의 다양한 관상수와 기암괴석의 정원석들이 잘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취를 자아낸다. 잘 단장된 정원으로 가꾸기 위해 이곳 한센인들의 피와 땀이 배어있음은 물론이다. 1933년 제4대 갱생원장으로 부임한 일본인 수호 마사키(周防正季)의 한센인에 대한 경멸과 혹독한 탄압은 극에 달했다. 정원 한복판에 자신의 동상을 세우고는 신사(神祀)와 함께 참배할 것을 절대적으로 강요하며 악명을 높여갔다. 그러다 수호 원장은 부임 9년 만에 환자인 이춘상의 칼에 찔려 최후를 맞았다. 지금이야 동상은 없어지고 대신 비석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일본의 한센병 잡지는 이토오를 저격한 안중근을 제1의 흉악범으로, 수호를 살해한 이춘상을 제2의 흉악범으로 지목했다 하니, 이춘상의 의거는 한센인만의 울분을 넘어 민족적 분노의 표현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중앙공원에 위치한 불운의 시인 한하운 시비

 

 

  수호 원장의 비 앞에 커다란 평반석이 있으니, 이것이 곧 시인 한하운의 자연석 시비다. 수직으로 세우지 않고 땅바닥에 누워있는 매끈한 돌판엔 그의 대표작 「전라도 과 더불어 뭇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보리피리 전편이 새겨져 있다.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꽃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늴리리

 

  한하운은 함경남도 함주 태생으로 북경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나병이 발병하여 소록도에 들어와 요양을 하며 많은 시를 썼다. 천형의 병고를 서럽도록 구슬프게 읊고 있는 그의 시편들은 애조 띤 가락으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공원의 몇 개 비석 중 또 하나 애련한 여운을 남겨주는 것은 오스트리아의 두 분 수녀님에 대한 공적비다. 간호학교를 나온 마리안느와 마가레트 두 사람은 조국을 떠나 머나먼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의 외딴섬에 와서 버림받은 한센인들을 위해 일생을 모두 바쳤다. 장갑도 끼지 않은 손으로 환자들의 피고름 상처를 어루만지고, 고국에서 보내온 생활비마저 환자들을 위해 내놓으면서 40년이 넘는 세월을 한센인들과 함께 하다 1960년대 초 이곳을 떠났다. ‘이제 나이가 들어 외려 환자들에게 짐이 될 수 있다.’는 쪽지 한 장만을 남기고 슬며시 떠나버렸다는 얘기에 마음이 숙연해 진다. 병들어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자신을 버렸던 것은 그들의 숭고한 인간애와 참된 신앙의 힘이 아니었겠는가.

 

       

 

                         한센인들의 인권 탄압 본거지인 감금실과 검시실

 

 

  두 분 수녀님들의 애정이 깃든 천주교회를 한 바퀴 돌아보곤 인권 탄압의 상징이었던 감금실과 검시실을 살펴본다. 방구석 한켠에 벽기가 함께 놓여있는 감금실은 감방 그 자체의 모습이요, 한센인들의 생체를 도려내던 수술대가 있는 검시실은 도살장의 분위기다. 벽면에 걸린 환자 이동(李東의 「단종대」 시 한 편이 통한의 과거사를 들려준다.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 사랑의 꿈은 깨어지고/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파멸해 가는 수술대 위에서/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있노라./ 장래 손자를 보겠

다던 어머니의 모습/ 내 수술대 위에서 가물거린다./ 정관을 차단하던 뜨거운 메

스가/ 내 국부에 닿을 때/ 모래알처럼 번성하라던/ 신의 섭리를 역행하던 메스를

보고/ 지하의 히포크라테스는/ 오늘도 통곡한다.

 

   한센인에 대한 정책은 치료에 있기보다 그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심지어는 후손의 출산을 막기 위해 남성에게는 정관수술을, 여성에게는 불임수술 강제로 감행하였다. 이른바 단종(斷種) 수술로 그들에겐 인권이란 단어조차도 사치스럽게 여겨졌던 것인가.

  유전적 질병으로 터부시했던 문둥병은 이제 미신이 아니고 과학이다. 현대의학의 발달로 감염이 거의 줄어들고 치료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완치 후에도 얼굴과 손에 나타나는 그 흔적으로 그들은 끝내 인간 속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찾고 싶은 가족도 가고픈 고향도 그들에겐 영원의 불귀의 대상이다. 지금도 소록도국립병원은 관사지대와 병사지대로 구분되어 저쪽 병사지대는 접근 불가능의 지역이다. 저곳은 창살 없는 감옥이요, 그들은 쉬 만나기 어려운 이방인이다. 그지없이 어질고 착한 저들이 바로 아기 사슴이러니, 소록도는 ‘당신들만의 천국’이 아닌 ‘우리들 모두의 천국’으로 기억될 수는 없을까.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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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4.08 21:29

    첫댓글 소록도 내게도 찿기어려운 곳인데 한번 방문하여 그들에 고통을 조금이나마 위로 할수있다면 ....세상엔 왜그리 병두 많은건지... 하나님 아푼자에게 평화을 주소서 ......

  • 2008년 6월 6일 선지자의 어머니 레지오 단원들과 함께 소록도를 처음 다녀왔습니다. 그동안 무거웠던 역사적 마음의 짐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이제라도 왔으니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역사적 참담함을 뒤로하고 아름답게 잘 정돈된 자연과의 조화속에 열심히 봉사하시는 분들에 대한 고마움에 가슴은 메어지고 눈시울은 뜨거워졌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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