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미지의 일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어딘가로 떠났다가 오는 버릇(?)이 있다. 나가서 혼자 세상의 여느 후미진 곳을 들여다보고 오면 마음이 편해지고 일할 태세가 갖춰지는 것은 참 희한하다ㅎ
편히 놀았던 한 백수가 다시 분주한 일상으로의 복귀...,
작은 일은 아니잖는가.
적어도 나는 그 떠나고 돌아옴의 낭비에 대하여 나 자신에게 긍정받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떠남도 그런 일환이다.
지금 난 양주휴게소를 지나 터널 쪽에 차를 세우고 메모를 하고 있다.
어딘가로 이 몸을 끌고 갈 것인가, 오늘 나는..
11:47, 양주매표소 북쪽방향에서 소태산의 고향 '영광' 행과 홍천의 박상설옹을 저울질하다가 후자를 좇기로 결론내렸다.
퇴계원IC에서 빠져 마석방향을 향해 달린다.
서울-양양간 전용도로를 가평군 설악면 쪽에서 낑궈 타려고 하는 것.
멀리 마석 우측의 백산과
좌측의 천마산이 보인다.
12:54, 가평휴게소
휴게소 도착 전,
흰색의 궁전이 진행방향 우측산밑쪽에 세워지고 있었는데
굉장히 강렬했다.
통일교관련 건물이 아닌가 생각한다.
가평휴게소는 누나가 인천오셨다가 주문진 갈때 들르는 곳.
인천에서 이곳까지 꽤 멀구나!
화장실 벽면,
운악산 동쪽사면의 암봉이다.
나두 저 실물 앞에 서 보았었다. 멋진 주상절리를 연상시킨다.
신라면하나
김치.양파반쪽 넣어 끓여먹다.
라면 한 젓가락 흘리다.
동홍천IC 나와서
서석방향으로 가야하는데
방향을 헷갈렸기로 10분여 카알바하다.
'솔치재'
서석면 면소재지를 지난다.
이 깊은 협곡에 저정도의 도시조성이 놀랍다.
내 뒤쪽으로는 논과 맑은 하천이 흐른다.
서석을 한참 지나 길고 높은 산협의 고갯길을 오르면 율전리.
율전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다시 또 상뱃재 고개를 넘는다.
율전고개에서 올라온 계곡을 사진찍으려고 등성이를 올랐다가 좁은 눈길에 바쿠하지 못하고 비잉돌아 다시 율전삼거리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협곡마다, 세컨하우스로 보이는 건물들이 새로 들어서 있는모습이 흔하게 눈에 띈다.
그것은 샘골까지 이어진다.
창촌마을 입구 분기점에서 본 안내지도
노란색 원이 오늘 가려고 하는
'샘골'이다.
창촌 뒤에 솟은 바위암봉은 낯이 익었다. 어디서 봤을까?
그렇다! 몇해전 계방산 오르면서 본 암봉.. 이 틀림없다.
되돌아내려갈 때 창촌의 농협에서 찌개꺼리(오뎅.두부.콩나물)를 샀다.
'강원홍천내면광원리산1번지' 는 창촌을 지나자 목적지에 다왔다고 멘트한다. 하지만 전혀 모르겠기에 독립가옥에 들러 물어봤다. 주인은 이곳 토박이라고 하면서 박상설옹에 관련해서는 전혀 모르겠다고 말하였다. 굉장히 어리둥절한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이곳의 지명은 '원당삼거리'
몇번이나 지났던 길이다.어쩌면 그 옛날 장사장과 천렵왔었던 근처일지도..
도로변의 코스모스가 차바람에 뒤채던 스산한 모습 또한 선하다. 상남가는길이기도 하다.
거기에서 '내면공인중개사사무실'의 여자에게 물어봤더니 남자의 음성이 여자에게 모른다고 말하는 소리. 역시 박상설옹을 모른다는 것이다. 다만 샘골을 예기했더니 8킬로 더 가야한다고 했다. 암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조기 서 있는 여인이 내 은인이다. 감사합니다!!
박상설옹을 아느냐고 물어보자 "돌아가셨잖아요!" 라고 말했다.
생전에 만났었다면서 샘골휴게소 못미쳐 '오대산내고향' 집을 지나자마자 다리를 건너가라고 말해준다.
비로소 마음이 편해진다.
'오대산내고향'
하아~ 그토록 찾아 헤메던
샘골가는길이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16:54,
펠리녀가 눈에 맥 못춰 바쿠로 다시 내려가 파킹한 후 걸어 올라간다.
비닐하우스라고 했는데
저건 집 같고..
그랬는데
아하~
나무판넬로 박옹께서
런던.미국.인천.서울의 방향과 거리를 적어놓은 설치물이 눈에 띄었다.
쇠사슬과 자물통이 녹슬어 간다.
주인이 떠난 빈자리는 표나게 쓸쓸하다.
주인이 떠나자 사람의 왕래가 끊겼다.
박옹은 생전에 2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오토캠핑의 선구자이면서 러시아의 다차(주말농장)를 국내에 이식하려 했다.
늙어서 죄책감속에 나날이 피해자로 살지말고 자신의 치닥거리는 자신의 손으로 하라고 웅변했다.
자연을 가까이 하라.
한결같이 매일을 똑같이 소비하는 삶이 아니라 창조적으로 세상에 이익이 되는일을 해야만 한다고 강조하셨다.
지식을 얻으려면 독서를 하고,
지혜를 얻으려면 사람을 만나고,
더 큰 자유를 위해서는 자연에서 뒹굴어야한다.
2021.12.23
향년 94세로 타계
비닐하우스를 지나 더 위로 올라가다 뒤돌아봄.
그 길의 끝에서 셀카 하나
껍질벗긴 나무에 폰얹고 셀카
그 길의 막다른 곳
봉우리 끝의 노을을 일별하고
뒤돌아선다.
박옹의 금강송
THE ASIAN 4주년 기념식수
산의 육체가 고스란히 윤곽을 드러내는 일몰시간.
눈에 보이는 하우스 맞은편 다리건너에 펠리 파킹.
펠리를 돌려 왔던길을 되돌아
샘골을 뜬다.
20:46,
서석면 풍암리
곰배령탁주와 콩나물김치찌개놓고 위로주를 주고받다.
비소식에 술한잔했슴에도
차를 끌고 산협을 통과하여
동홍천으로 나와 차박.
눈을뜨니 빗소리 야물게 나다.
04:07
빗속을 뚫코 가평휴게소 도착
다시 코잠.
07:55,
깨어 바라본 펠리 천장
아침食
어젯밤 남은 찌게와
햇반을 데워
느지막히
안개와 빗속에 천천히 귀로에 들었다.
ㅡ끝.
첫댓글 2024/6/24, 13:28
에어컨으로 시원한 사무실, 내 휴게실의 냉장고가 아무래도
온도를 상승시킨다는 인식이 들어 아침에 전주임에게 말했다
"부엌쪽으로 냉장고를 옮겨도 될까요?!"
점심은 조마루뼈다귀에서, 내몽고 여행 때 고생하신 두 분을 위해 baughtㅎ
이 파트에 들어오겐 된 건 밀린 폰의 업무관련 그림을 기록하기 위하여
그것은 1월의 한겨울에 멈춰져 있고, 그렇다면 6개월치가 밀린 셈ㅜㅜ
가슴께의 둥근물질이 얇은 셔츠에 가려져 있는 걸 보자
가슴이 조금 들릴락말락 한다 그러나 조심히 곁눈으로 보아야 한다
어쨌든 쉰하나는 아직은 젊다 그런면에서 나는
행복한 사나이다 문득 점심먹으로 가는 길에 양산쓰고
치마 입은 아래로 가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