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놀이 크고 바닥 깊은
큰 바다의 후박나무”
- 김종훈 선생님
학교 파하면 교문 통은 도떼기시장이 됩니다.
어른 장딴지만한 칡덩이를 종잇장처럼
서너 번 싹싹 베어서 1원.
보리차에 사카린과 식용색소를 넣고
신나게 돌리는 얼음냉차 1원.
북새통 속 짐바리 자전거 위로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솜사탕 한 송이도 1원.
빈 호주머니 속 오래 만지작거리던 내 1원의 결심은
마침내 담벼락 밑으로 쪼그려 앉은
저 달고나 띠기 국자 앞에서 걸음을 멈춥니다.
김이 솔솔 올라오는 뻔디기 한 고깔로
가난한 주둥이들 다 몰려드는데도 1원.
겨울방학 책 받아오던 날
단팥죽 한 깍쟁이 포장마차 속에서
홀짝거리던 그 달콤한 향 맛이 1원이라니!
한여름 광주천 하늘을 가로지르는 철길 밑으로
물 미끄럼을 타던 깨복쟁이 고추잽이들과
장마 걷히고 햇살 그윽해지면
하얀 바위 위로 올라와 등을 굽는 자라 남생이들.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따옥 따옥 따옥 소리 처량한 소리
떠나가면 가는 곳이 어디메이뇨
내 어머니 가신 나라 해 돋는 나라.
<저 하늘에도 슬픔이> 영화를 보고
우린 또 얼마나 울었던가.
아, 광주학강국민핵교를 배경으로 찍은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꿈속 같은 영화입니다.
양림동을 끼고 아랫동네 웃동네를 대강 쫌 놀았던
김종훈과 김진수 어린이의 입놀이 용
그 무궁화 그려진 1원 짜리의 행복과
추억의 조각들을 공유한 것으로도 어딘디
이렇게 또 쿨럭쿨럭 고향 초가집 영감님처럼 만나다니요.
그때에 장성 논바닥을 털털거리며 갓 전학 온
학강학교 제 3학년 9반 2층 교실 김종훈 어린이는 글쎄
광주 와서 2층집을 처음 봤다네요.
아, 그리 허면 이건 좀 어떠신가요?
“함머니 함머니 저것이 미국이여?”
할머니 등에 업힌 내 손가락이 다그친 집은
제중병원이라 부르던 지금의 양림동 기독병원이었다죠.
도랑 이랑 도긴개긴 입니다.
나는 지금도 1층 사는디 아우님은 그러면 몇 층 사신가?
썩이나 높아서 퍽이나 외롭지는 않으신가?
우스갯소리 틈으로 언능 말하지만
실은 종종 자네가 미안하다네.
그대의 단 한 개 친구 승민과 승민 씨의 유일무이한 동무
종훈 씨 간에 오가던 길을 뭣헌 날 내 시골 동네로 걍
땡겨와 버렸잖은가.
이영 한가롭고 가물며 띄엄띄엄하고 조금 졸릴 수도 있으며
바른생활 책 같고 길가의 삘구 나숭개 망근이 꽃바지 같은
인생 도반의 필름을 내가 중간에 딱 끊어놨잖은가 말이네.
그간 참교육운동의 긴 우정도 있고
오늘이 예순 두 사발 퇴임 기념 날이기도 하니
관서하시게.
아우님들 체질이야 맥놀이 크고 바닥 깊은
큰 바다의 풍랑일테지만 내 풍신은 아무래도 한물 간 맛.
호젓한 도담마을에서 티 나지 않게 오순도순 잘 살겠네.
두 사람의 담담한 대화법을 익히며 후박나무 그늘 같이
선선하고 늘 푸르고 잠도 쫌 올 것 같은 일상으로 말이지.
이 사람, 김종훈입니다.
겉은 두텁되 속은 맑디맑은 후박나무 선생님
남도의 포근하고 싱그러운 해변 같고
부는 바람 따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좌복으로
너그럽게 또는 보드랍게 또는 한가롭게
모래톱을 뒹구는 소라 껍데기 같은 가슴 속 공명으로
조용조용 교단을 바꾼 사람.
그리하여 목포 앞바다에서 싼 해직보따리로
허위허위 순천만 갈대 포구를 포옹한 우리의 순천가족.
천지개벽 세상에서 촌티 가난 다 벗더니
인자는 교단도 말끔히 벗었군요.
이제부터 당신의 참교육 긴 긴 노고는 다 잊고
참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들로만 딱딱 뽑아서
여생의 간식거리로 감춰두세요.
그대의 태생적 착함으로 이룬 필생의 선업
그대 소싯적 바름으로 일군 건강한 생태세상
내 집 마당귀에서 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고
내 식솔의 식탁 우에서 이웃의 고난을 살폈나니
자식 됨, 아빠 됨, 남편 됨, 친구 됨 국민 됨의 참살이로
오늘 여기 참교육 선배 동지들 앞에서 보무당당합니다.
쾌히 돌아오셨습니다.
바다의 바닥을 닦는 안정으로
교육운동의 새 지평을 넓히고 참교육의 산을 크게 높였습니다.
그대의 개선과 노고와 봉공의 덕을 위로하고
감사하고 높이 축하드리며 오늘,
순천 참교육 원년 동지들의 큰 박수 받으시길...!
단군기원
2568년 2월 23일
김진수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