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로 담은 월지 사진을 보고 마이 디카를 구매했으나 사용법을 몰라 아직도 무용지물로 내방에서 대기중에 있다.
오늘 같은 날에 더욱 아쉽다는...
폰으로나마 찍고 또 찍어본다.
조선의 어느 시인이 어느날 천년의 수도 경주를 찾았으나 신라 멸망 후 버려진 도시로 그 찬란했던 명성은 어디 가고 연못에는 기러기와 오리만 노닐고 있어 기러기 雁 오리 鴨자를 따서 안압지라 부르게 되었는데, 1980년대 안압지에서 발굴된 토기 파편에서 신라시대 이곳을 월지라고 불렸던 사실이 확인되었고 경복궁의 경회루처럼 연회를 베푸는 장소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수십 개의 전각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지금은 1.3.5호만 복원되어 있고 지금 가장 좋은 위치에 가장 크게 7호 건립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담달쯤 완공을 앞두고 있어 가을쯤에 다시 오면 완공된 동궁 & 월지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해설사님의 설명이다.
지금은 공사가 한창 진행 중...
대나무 숲이 월지를 찾은 관람객의 여름밤을 식혀 주는 듯하다.
하늘에는 보름달은 아니지만 반달보다는 넘치는 달이 떠 있음에도 호수에 비취는 달을 사진으로 담아내진 못했다. 공사중이라 포토죤도 한계가 있고 누각 근처로도 갈 수가 없어 달을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쉽지만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순 없어, 보이는 그대로를 마이폰에 담아놓고 휴식이 필요할 때 한 번씩 꺼내 보기로...
사진속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어느 유행가의 가사를 떠올려본다. (아~신라의 바~~암--이---야)
근데 일행이 왜 아무도 보이지 않지...? 갑자기 불안 불안...
다행히 신애와 정호 발견...
다시 한 번 여유를 가지고 찰깍...와 멋지다---
제대로 하나 건진 듯... ^^
뒷 배경을 아우르는 신애의 포즈...(좋아요)
불안불안한 가운데 드디어 올게 왔다. 팀장님의 전화소리... 정문 밖에서 모두가 기다리고 있단다.
옆도 보지 않고 서둘러 나왔으나 많은 눈들이 한꺼번에 쏠려...(쏘리 쏘리...)
1962년에 국보(제31호)로 지정된 첨성대는 인왕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이 9.17m, 밑지름 4.93m, 윗지름 2.85m이다. 밑에서 4.16m 지점의 남쪽 허리에 한 변이 1m인 정사각형 문이 달려 있다. 모양은 원통형으로 남쪽 문에 사다리를 걸었던 자리가 있다. 30cm 높이의 돌 362개로 27단을 쌓아 만들었다.
내부는 12단까지 흙이 차 있고 19단에서 20단까지 와 25단에서 26단까지 두 곳에 井자형 長大石이 걸쳐 있는데 그 양끝이 밖으로 나가 있다. 27단 내부의 半圓에는 板石이 있고 맞은편에는 板木을 놓았던 곳으로 보이는 자리가 있다. 판석은 길이 156cm, 너비 60cm, 두께 24cm이다.
꼭대기에는 정자석이 2단으로 짜여 있는데 그 위에 관측기구를 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渾天儀와 같은 관측기구를 정상에 설치하고 춘분. 하지. 추분. 동지 등의 24절기를 별을 통해 측정하였고 정자석을 동. 서. 남. 북의 방위를 가리키는 기준으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첨성대가 제단이었다는 학설도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선덕여왕(632~647) 때 건립된 것으로 기록.
타임 오버 10분으로 입장 불가... 이걸 워쪄~왠지 내 탓인 듯했으나 쏘리 쏘리 한 기분은 애써 감추었다...
첨성대 라인 밖에서 거리를 두고 첨성대를 담아 본다. 카메라에 잡힌 저 여인은 민희인 듯...
저 언덕 넘어가 경주역사유적 월성지구란다.
서기 101년(파사왕 22년)에 신라의 왕성으로 축성되어 신라가 망하는 935년까지 궁궐이 있었던 곳이다. 지형이 초승달처럼 생겨 新月城 또는 月城이라 불렸으며 임금이 사는 성이라 하여 在城이라고도 했으나 조선시대부터 半月城이라고 불려 오늘에 이른다. 월성의 성은 돌과 흙을 섞어 싼 토석 축성인데 길이가 1,841m이며 성내 면적이 193,585 제곱미터이다.
동에는 동궁과 월지가 연결되고 북으로는 첨성대가 있으며 남에는 남천의 시내가 방위선 역할을 했다.
지금도 월성 지하에는 청동기시대의 문무 토기부터 통일신라시대의 토기, 기와, 건물 초석 등이 깔려있다.
신애가 무슨 생각을...
옆에서 누가 받혀 줘얄듯... 넘어질까 불안불안...
교동에 자리한 월정교는 통일신라의 수도 서라벌에 설치된 다리로 南川 위에 지어졌으며 일정교와 함께 국왕이 사는 궁궐인 경주 월성과 건너편의 남산 지역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신라시대에는 깨끗할 정자를 쓴 月淨橋 였으나 고려시대에 정할 정자를 쓴 月精橋로 바뀌어 현대까지 이르고 있다.
문루 2층에는 출토된 유물과 교량의 건축 역사를 보여주는 디지털 전시관을 설치하여 월정교 역사와 복원 과정 관련 영상도 상영한다. 신라 왕경 8대 핵심유적 복원 정비사업 중에서 첫 번째로 완성된 월정교 복원사업은 이후 진행될 황룡사, 신라왕궁, 쪽샘지구. 신라방 등의 복원 정비공사에도 참고가 되고 있다.
월정교란 이름은 <삼국사기>에 경덕왕 19년 "궁궐 남쪽 문천에 월정교, 춘양교 두 다리를 놓았다"는 기록을 통해 알려졌다.
조선시대에 유실되어 없어진 것을 10여 년간의 조사 및 고증과 복원을 진행해 2018년에 복원을 완료했다. 2013년에 교량 복원을 끝내고 다리 양쪽의 문루를 마저 지었다. 월정교 앞에 설치된 징검다리에서 바라보면 강 위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월정교를 한 컷에 담을 수...
숨은 그림 찾기... 채원이가 보이나요...?
같은 자리에 민희도 있어요^^
민희랑 태숙 언니도 한 컷...
첫댓글 작가님 수준으로 남겨주신 작품사진들
감사드리고 계속해서 또바기와 함께 화이팅입니다 ~
우와~~사진찍는 기술이 장난아니예요 ㅎㅎ
정말 멋진사진 남기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