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편 화엄부
제8장 보현보살의 행과 원
1 부처님이 사슴의 동산에서 기사굴산으로 돌아와 많은 대중과 함께 계실 때에, 보현보살은 이렇게 말하였다.
"불자여, 보살은 모든 법이 이름이 없고, 제 성품이 없고, 오고 가는 것이 없고, '나'라고 할 주재가 없는 것을 잘 압니다. 그리하여 세상 법에 집착하지도 않고 제일의第一義 법에 얽매이지도 않으며, 허망하게 모든 법을 고집하지도 않고, 글자 생각을 일으키지도 않고, 고요한 성품을 따르면서 모든 원을 버리지 아니하며, 참다운 제일의를 따라서 좋은 방편으로 모든 법문을 말하지만, 변재가 다하지 않습니다. 글자가 없는 경계에서 글자를 마련하여 내지만, 글자의 성품을 깨뜨리지 아니하며, 여러 가지 말을 알아서 중생을 지도하며, 의심을 없애고 때를 잃지 않고 법의 비를 널리 내립니다.
불자여, 보살이 진실한 법을 듣고도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믿고 알고 받아가져,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 들어가 닦아 익히고 편안히 머물면, 이는 소리를 따라서 수순하는 음향인音響忍을 얻는 것입니다.
또 보살이 고요함을 따라서 모든 법이 평등함을 보고, 바른 마음으로 법에 어김이 없이 깊은 법성에 들어가면, 이는 법의 성품에 일치하는 순인順忍을 얻는 것입니다.
또 나아가서 모든 법이 생기는 것과 없어지는 것을 보지 아니하면, 이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 것이니, 모든 것이 나지 않으면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없어지지 않으면 다함이 없고, 다함이 없으면 때를 여의고, 때를 여의면 망가짐이 없고, 망가짐이 없으면 흔들리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면 고요한 곳이고, 고요한 곳이면 욕망도 없고 행할 것도 없으리니, 이 곧 큰 원력이요, 장엄에 머무는 것이니 이것이 셋째 무생법인입니다.
불자요, 또 여래의 음성이 안으로도 밖으로도 안팎으로도 나는 것이 아닌 줄을 알고, 음성을 듣는 이도 안과 밖과 안팎에 있지 않으면서 지혜를 내어 모든 소리가 인연으로 생기는 줄을 알면서도 법으로 보시함을 쉬지 아니하고, 음성의 비밀에 들어가 뒤바뀌지 아니하고 온갖 것을 배우면, 이는 여향인如響忍이라 합니다.
모든 물건이 마음으로 생기어 허망하기 요술과 같은 것,
요술쟁이가 모든 물건 만들어 사람들을 홀리나 실상은 없다.
부처님과 모든 것이 요술이지만 한량없는 행원으로 도사導師도 요술,
넓고 큰 자비로 중생을 깨끗하게 깨끗함도 요술이나 원력으로 나타나.
지혜는 허공같이 원만하여서 가지가지 장애를 덜어 버리나
허공의 제 성품 섞인 것 없어 세간의 모든 일도 허공과 같아.
허공은 성품 없이 끊을 수 없고 지혜도 허공과 같아 차별이 없으며,
허공은 처음도 끝도 중간도 없어 지혜도 그와 같아 다름이 없다.
아주 작은 털끝에도 보현 있듯이 하나하나 털끝마다 세계가 있고
한량없는 보배로 그 세계 장엄 많고 많은 이름으로 법문 말하다.
말할 수 없는 부처님들의 노래 그 노래에 말할 수 없는 진리가 있고
소리마다 말할 수 없는 법륜이 구르고 법륜마다 말할 수 없는 경전 설하다.
훌륭한 성품 말할 수도 없고 부처님 뵙는 것 말할 수 없고
가지가지 방편도 말할 수 없으나 그대로 따르면 불성에 들어가리.
2 불자여, 부처님은 안으로 큰 자비를 품고 모든 중생들을 버리지 아니하며, 마음이 항상 고요하면서도 중생을 잘 살펴서 때를 잃지 아니하며, 공교한 선근으로 중생을 조복합니다. 또 부처님은 여러 가지 악마의 떼를 깨뜨리며 외도들을 항복받고 중생을 교화하여 기쁘게 합니다.
부처님을 참으로 바르게 생각하는 중생이 있으면, 그 앞에 나타나서 대승을 말하며, 중생들의 선근을 길러주며, 교화할 시기를 놓치지 아니하며, 자재한 신력이 끊일 때가 없으며, 청정한 법계에서 중생을 위하여 법을 연설합니다.
또 부처님은 눈으로 봄으로써 귀로 듣는 불사를 지으며, 들음으로써 코로 맡는 불사를 지어, 이와 같이 여섯 기관이 서로 넘나들며 여러 경계에서 불사를 짓습니다. 또 부처님은 그지없는 공덕장功德藏이시므로 중생으로 하여금 믿는 마음을 내어 즐겁게 하며, 보리심을 내지 못한 이는 보리심을 내게 하고, 마음을 낸 이는 지혜를 갖추게 하되, 다른 이를 말미암지 않고 깨닫게 하며, 혹은 중생으로 하여금 세상을 싫어하고 부처님 마음을 따르게 하며, 혹은 목숨이 짧을 것을 말하며, 혹은 세상이 즐거울 것 없음을 말하며, 혹은 깨끗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면 부처님을 본다고 말하며, 모든 고통을 없애고 깨끗이 불도를 구하게 하며, 여러 세계의 중생을 거두어 부처님의 깊은 경계에 들게 하며, 방탕한 중생을 거두어 깨끗한 계행을 가지게 합니다."
3 부처님은 보수寶手보살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보살이 도솔천에서 큰 광명을 놓아 여러 세계에 비추면, 지옥의 중생들이 광명을 받고 크게 기뻐하고, 목숨을 마친 뒤에는 도솔천에 태어나 하늘의 아름다운 음성을 듣는 것이니 여러 하늘 사람들이여, 비로자나 부처님 계신 데 가서 공경하여 예배하라. 마치 겁이 끝날 때에 수미산을 태워 버리듯이, 다섯 가지 욕심도 부처님만 생각하면 모두 소멸된다. 그러한 은혜를 생각하고 부처님을 공경하라. 만일 은혜를 알지 못하면, 이 목숨이 마친 뒤에 다시 삼악도에 들어가게 되리라. 너희들이 지옥에 있다가 광명의 은혜를 입고 천상에 태어났으니 그 선근을 잘 길러야 하리라."
그때 하늘 사람들은 이 소리를 듣고 매우 기뻐서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허물을 뉘우칠 수 있겠습니까?"
그 대답은 이러하였다.
"하늘사람이여, 업장이란 것은 다른 데서 와서 내 마음에 모이는 것이 아니고, 잘못된 소견에서 생기는 것이다. 중생의 탐냄 · 성냄 · 어리석음으로 생긴 업은 진실한 자체가 없으므로, 여러 곳으로 구하여도 찾을 수 없다. 소리란 것은 나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님과 같이, 모든 업도 나는 것 없어지는 것 아니거니와, 다만 업을 따라서 과보를 받는 것이다. 마치 내 음성이 오랜 세월을 지내도 다하지 않음과 같이, 만일 음성이 가고 올 바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한편에 치우치는 것이니라.
또 깨끗한 거울 속에 여러 세계의 모든 물건이 나타나더라도 그 그림자는 밖에서 와서 거울 속으로 들어간 것도 아니며, 거울에서 나와서 다른 데로 가는 것도 아님과 같이, 모든 업보도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지만, 여러 가지 과보를 내는 것이다. 이렇게 아는 것이 참으로 허물을 뉘우치는 것이리라."
지나간 세상 부처님들이 광명을 놓아 시방에 비추었으니
나도 세상의 등불이 되어 공덕과 지혜를 얻으려 하네.
이 세계 중생들 삼독불 성하여 나쁜 곳에 받는 고통 없애 줄까나,
이러한 서원 안 물러가면 보살행 닦아 큰 힘 얻으리.
4 그때 부처님이 미간 백호상에서 '여래의 법 밝히는 광명'이 나와 한량 없는 광명으로 권속을 삼고 모든 세계에 비치었다. 부처님의 자재한 신력으로 여러 보살의 마음을 깨우쳤으며, 모든 악도의 고통을 없애고, 모든 대중을 두루 돌고는 여래성기묘덕보살如來性起妙德菩薩의 정수리로 들어갔다. 묘덕보살은 대중을 대신하여 보현보살께 물었다.
"불자여, 여래의 성품이 일어난 법을 말씀하여 주소서."
보현보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불자여, 여래의 성품이 일어난 법은 말하거나 생각할 수 없으니, 그것은 한량없는 인연으로 정각을 이루고 세상에 나신 까닭입니다. 한없는 보리심을 내어 모든 중생을 버리지 아니하며, 한없는 오랜 세월에 깊고 바른 마음으로 선근을 닦았으며, 한없는 자비로 중생을 구호하였으며, 한없는 수행으로 큰 서원을 버리지 않았으며, 한없는 방편과 지혜를 내어 모든 법의 참된 이치를 연설한 탓입니다. 큰 구름에서 비를 내릴적에 어떤 중생도 그 방울 수효를 알지 못합니다. 만일 그 수효를 헤아리려면 마음이 미칠 지경인 것같이, 부처님이 세상에 나시어서 여래성기如來性起의 비를 내리심도 그와 같아서, 온갖 중생과 성문과 연각들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불자여, 구름이 꼭 같은 비를 내리더라도 그 오는 곳에 따라서 각각 다르듯이, 부처님의 자비하신 법의 비도 교화를 받을 근기를 따라 같지 아니합니다. 이 여래성기의 법은 여러 부처님의 평등한 지혜광명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부처님의 꼭 같은 지혜에서 한량없는 공덕을 내는데 중생들은 이 모든 공덕을 부처님이 내시느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부처님의 신력으로 내는 것이 아닙니다. 불자여, 한 보살이라도 일찍 부처님께 선근을 심지 아니하였으면 부처님의 조그만 지혜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은 중생들의 선지식이 되었으므로, 중생은 그로 말미암아 큰 지혜를 얻을지언정, 짓는 공덕도 없고 짓는 이도 없습니다.
불자여, 대자大慈는 중생의 의지할 데며, 대비大悲는 중생을 구제하므로, 대자대비로 중생을 이롭게 하니, 대자대비는 여래의 방편과 지혜를 의지하였고, 방편과 지혜는 여래를 의지하였거니와, 여래는 의지한 데 없이 걸림이 없는 지혜 광명으로 시방세계를 비추는 것입니다.
불자여, 여래의 성품이 일어나는 법은 그 행이 한량없으므로 공덕이 한량없고, 오고 가는 것이 없으므로 시방에 가득하고, 몸이 없으므로 마음과 뜻을 여의었고, 모든 것에 평등하므로 허공과 같고, 끝나는 일이 없으므로 모든 중생들은 '나'도 없고 '내 것'도 없습니다. 또 옮아감이 없으므로 모든 세계가 다하지 아니하고, 물러감이 없으므로 오는 세상이 끊이지 아니하고, 생멸하는 법과 생멸하지 않는 법을 평등하게 관찰하므로 여래의 지혜가 걸림이 없고, 본래의 행과 원을 회향하여 자재하고 만족하므로 중생들을 평등하게 이롭게 합니다.
모든 물건 변하여 달라지지 않음은 그 성품이 공하여 지음 없는 탓,
부처님의 성품도 허공과 같아서 있는 것도 없는 것도 모두 아니다.
바른 법의 성품을 말로 할 수 없으매 어느 곳에서든지 항상 고요해,
부처님 경계도 말로 할 수 없으매 고요한 모양 허공의 새 발자국.
끝없는 원력으로 깨끗한 몸 이루어 열 가지 공덕으로 큰 신통 나투니,
여래의 깊은 법문 알려는 이는 그 마음 깨끗함을 허공과 같이.
허망한 생각과 나쁜 소견 떠나서 청정한 도를 닦아 마음 깨끗하게,
부처님의 큰 공덕 말할 수 없건만 중생을 깨우려고 조금만 연설.
5 불자여, 마치 해가 뜨면 어둠이 없어지고 모든 물건을 자라게 하며, 찬습기를 없애고 허공에 비쳐서는 중생을 이롭게 하고, 못에 비쳐서는 연꽃을 피게 하고, 온갖 모양과 빛깔을 나타내며, 모든 세상일을 이루게 하니 한량없는 광명을 놓아 보내는 까닭입니다.
부처님 해도 그와 같아서 나쁜 것을 없애고 착한 것을 기르며, 지혜의 빛으로 중생의 어둠을 없애고, 큰 자비로 중생들을 이롭게 하여 저 언덕에 이르게 합니다.
해가 처음 들 적에는 높은 산에 먼저 비치고
차례로 낮은 산과 높은 땅 필경엔 평지까지 비치느니라.
부처님 지혜의 해도 그와 같아서 보살들에게 먼저 비치고
그 다음엔 연각과 성문 중생들까지 모두 비치느니라.
지혜의 해는 비친다는 생각 없지만 믿음 없는 이에게도 이익 주나니,
앞 못 보는 소경들도 해가 뜨면 밥도 먹고 저 할 일을 모두 하듯이.
부처님 음성이 법계에 가득하며 간 곳마다 들리지 않는 데 없어
중생의 인연으로 나는 것이니 듣기만 하면 나고 죽음 벗어나리라.
골짜기에 울려서 메아리 나듯 인연으로 나는 소리 듣는 이 각각,
부처님 음성은 세상의 메아리 교화 받을 중생들 듣고 기뻐해.
6 불자여, 부처님의 마음을 보살들이 어떻게 아는가? 그것은 부처님의 지혜가 한량없으므로 마음도 한량없을 줄을 아나니, 마치 허공이 모든 물건의 의지할 데가 되거니와, 허공은 다른 데 의지하지 않듯이, 부처님의 지혜도 모든 지혜의 의지가 되지만, 다른 데 의지하지 아니합니다.
또 큰 바다가 사천하의 땅과 팔십억 섬들을 축여 주므로 중생들이 파는 데마다 물을 얻지만, 바다는 중생들에게 물을 이바지한다는 생각이 없듯이, 부처님 지혜도 모든 중생의 마음을 축여 주므로, 중생들이 제각기 가지가지 법문을 의지하여 선근을 닦으면 모두 지혜의 광명을 얻지만, 부처님은 중생에게 지혜를 준다는 생각을 하지 아니합니다.
또 불자여, 부처님의 지혜는 이르지 않는 곳이 없나니, 그것도 모든 중생이 부처님의 지혜를 갖추지 못한 이가 없는 까닭입니다. 다만 중생들이 뒤바뀐 생각으로 부처님의 지혜를 알지 못하거니와, 뒤바뀐 생각을 여의기만 하면 일체지와 스승 없이 듣는 지혜와 걸림 없는 지혜를 일으키게 됩니다.
또 불자여, 삼천 대천세계와 같이 큰 경전에 삼천 대천세계의 모든 사실을 기록한 것이 티끌 속에 있어서 중생에게 이익을 주지 못하는데, 어떤 지혜 있는 사람이 그것을 가엾이 생각하고, 티끌을 털어 버리고 경전을 꺼내어 중생을 이롭게 하듯이, 중생의 몸 가운데 부처님의 한량없는 지혜가 있건만, 잘못된 번뇌가 가려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데 부처님이 보시고 탄식하기를 '이상하다, 중생들의 몸속에 여래의 지혜를 두루 가지고서도 알지 못하는구나! 내가 저들에게 가르쳐 성인의 도를 닦게 하여, 잘못된 생각을 여의고 몸속에 있는 여래의 지혜를 깨닫게 하리라.' 하고 중생을 교화합니다.
진여는 다함없고 생멸도 아니며 있는 데 없어 찾아 볼 수 없듯이,
부처님 경계도 다함이 없고 삼세를 여의어서 항상 그러해.
새들이 허공에 백천 번 날아도 간 곳 안 간 곳 알 수 없듯이
부처님 행하심 백천 번 말하여도 말 한 것 못한 것 헤아리지 못하리.
가루라가 허공에서 용궁을 엿보고 죽게 된 용들을 차다가 먹듯이,
여래 행에 머무시는 부처님들도 선근이 익은 중생 건져내시다.
해와 달이 허공에 두루 다니며 사람을 이익하나 그런 생각 없듯이,
부처님은 법계에 다니시면서 중생을 건지시나 건진다 아니하네.
7 불자여, 부처님의 지혜는 이치를 알아 의혹을 없애며, 양 극단을 여의고 중도에 머물며, 모든 글자와 말을 알고, 중생의 마음과 마음 수효를 알며, 근기와 번뇌와 습성을 알고, 한 생각에 삼세의 모든 법을 압니다.
마치 바다 속에 모든 중생의 모양이 나타나기 때문에 해인海印이라 하듯이, 부처님의 지혜 바다에는 모든 중생의 마음과 감각하는 기관이 나타나면서도 나타나는 바가 없으므로, 부처님을 일체각一切覺이라 합니다.
불자여,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을 적에 방편으로 모든 중생들과 같은 몸을 얻으며, 모든 법과 모든 세계와 모든 삼세와 모든 여래와 모든 말과 모든 법계와 열반계와 같은 몸을 얻으며, 음성과 걸림이 없는 마음도 역시 그러합니다.
불자여, 또 모든 글자와 말들은 모두 법륜을 굴리는 것임을 알 것이니, 여래의 음성이 이르지 못하는 데가 없는 까닭이며, 모든 음성이 한 음성임을 알 것이니, 여래가 이것으로 법륜을 굴리지만, 부처님의 법륜 굴리심이 주재가 없는 까닭입니다.
불자여, 여래는 중생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세상에 나시며, 중생으로 하여금 근심하고 슬퍼하고 사모하게 하기 위하여 열반에 드는 것을 보이거니와, 여래는 참으로 세상에 나는 일도 없고 열반에 드는 일도 없습니다. 여래는 항상 계시는 것이 법계와 같은 까닭에, 해가 세상에 비칠 적에 여러 가지 물그릇에 그림자가 나타나지마는, 해는 '내가 여러 물그릇에 비친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만일 어느 한 그릇이 깨어지면 해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데, 그것은 해의 허물이 아니고, 그릇이 깨어진 탓입니다.
불자여, 여래의 지혜해가 한 생각 동안에 나타나서 모든 세계의 여러 중생에게 비치어 번뇌의 때를 없앨 적에, 깨끗한 마음에는 비치지 않는데가 없지만, 마음이 흐리고 깨어진 중생은 여래의 법신 그림자를 보지 못하므로 부처님이 열반에 드심을 보고야 비로서 놀래어 제도가 됩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열반에 드심을 보이거니와 실상은 여래는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고 영원히 열반에 드심이 없습니다.
또 큰 불이 일어나서 모든 세계에서 초목 따위를 모두 태우다가도, 만일 초목과 마을이 없는 곳에 이르면 저절로 꺼집니다. 그러나 사실은 온 세계의 불이 모두 꺼진 것이 아니듯이, 부처님이 모든 세계에서 중생을 제도하다가 한 세계의 중생을 제도하여 마치고는 열반에 드는 것이고, 모든 세계에서 열반에 드시는 것은 아닙니다.
8 불자여, 보살들은 과거 · 미래 · 현재를 통하여 중생의 행에 들어가며, 그의 선근행과 불선근행에 들어가며, 번뇌와 습기의 행에 들어가며, 깨끗한 세계와 부정한 세계에 들어가며, 큰 세계와 작은 세계에 들어가며, 젖혀진 세계와 엎어진 세계에 들어가며, 부처님 있는 세계와 없는 세계에 들어갑니다.
또 보살이 사랑하는 마음을 내는 것은 모든 중생을 구호하려 함이고, 어여삐 여기는 마음을 내는 것은 모든 중생을 대신하여 고통을 받으려 함이며, 보시하려는 마음을 내는 것은 가진 것을 버리려 함이고, 모든 지혜를 얻을 생각을 내는 것은 불법을 구하려 함입니다.
또 생각하기를 '법을 증득證得하는 것은 마음이 근본이니, 마음이 깨끗하면 모든 선근을 모아 쌓을 것이며, 마음이 자재하면 위없는 지혜를 얻고 큰 행을 닦고 큰 원을 이루어 중생을 교화할 것이라'고
불자들이여, 보살은 경계에 자재하니 깨달은 경계를 나타내고, 고요한 경계에서도 산란한 경계를 버리지 아니하며, 또 자비와 지혜와 원력으로 중생을 불쌍히 여기어서, 번뇌가 흐린 나쁜 세상에 일부러 들어가서 다섯 가지 쾌락을 받느라고 처자와 권속을 기르니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까닭입니다.
또 보살은 여러 가지 손이 있습니다. 불법을 끝까지 받아 가지기 위해서는 믿는 손이 있고, 구걸하는 이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재물에 애착하지 않는 손이 있고, 끊임없는 공덕을 쌓기 위해서는 부처님께 공양하는 손이 있고, 중생의 의심을 덜기 위해서는 많이 아는 손이 있고, 번뇌의 흐름에 떠도는 중생을 건지기 위해서는 저 언덕에 보내는 손이 있고, 번뇌를 없애고 불법의 광명을 보이기 위해서는 지혜의 손이 있습니다.
9 또 보살에게는 열 가지 악마가 있습니다. 오음 마五陰魔는 오음을 탐하는 것, 번뇌 마는 번뇌에 물드는 것, 업마業魔는 장난을 일으키는 것, 마음 마는 교만하는 것, 죽는 마는 태어난 데서 떠나는 것, 하늘 마는 교만하고 방탕한 것, 선근을 잃는 마는 뉘우치지 않는 것, 삼매 마는 선정을 맛들인 것, 선지식 마는 스님네에게 집착을 내는 것, 보리를 모르는 마는 큰 소원을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는 좋은 방편으로 빨리 여의어야 합니다.
또 여러 가지 마업魔業이 있는데, 보리심을 잃고 선근을 닦는 것과 나쁜 마음으로 보시하고, 성내는 마음으로 계행을 가지고 나쁘고 게으른 중생을 버리며 산란하고 지혜 없는 중생을 업신여기는 것, 불법을 아끼고 법기法機가 되는 이를 꾸짖으며, 이양을 탐내어 법문을 말하며, 법기가 아닌 이에게 묘법을 말하는 것, 선지식을 멀리하고 나쁜 이를 가까이하며, 소송을 좋아하는 것, 바른 법을 비방하여 경전을 듣지 않거나 들어도 찬탄하지 않는 것, 법사가 법을 말하더라도 공경하며 하심下心하지 아니하고 그 말을 그르다는 것, 세간 학문을 좋아하고 자격이 없는 이에게 묘한 법을 말하는 따위가 모두 악마의 업입니다.
보살은 또 마군에게 붙들리는 일이 있는데, 게으른 마음을 내거나, 부처님 법을 버리거나, 탐심이 많거나, 자기만 해탈하기를 생각하거나, 큰 원력을 내지 않거나, 번뇌를 여의고 고요한 데를 즐기거나, 나고 죽는 번뇌를 끊으려거나, 중생을 교화 성취하려는 마음을 버리거나, 바른 법에 의심을 내어 불법을 비방하면 마에게 붙들립니다. 이런 일은 빨리 여의어야 합니다.
또 보살이 만일 모든 법이 무상한 줄 알면 법에 붙들리고, 고통인 줄 알면 법에 붙들리고, 온갖 법이 '나'라고 할 것이 없는 줄 알거나, 열반이 고요하다거나 하면 법에 붙들리고, 또 정당치 못하게 생각하면 무명無明 · 행行 내지 노사老死가 일어나고, 정당치 못한 생각이 없어지면 무명 · 행 내지 노사도 없어진다 하면 법에 붙들리고, 모든 세계와 법과 중생과 세간 따위가 부처님 경계라 하면 법에 붙들리고, 모든 생각을 끊고 고집을 버리고 열반을 따르면 법에 붙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법전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