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에의 길―Ⅳ, Orwell의 '1984'
Observer after observer, in spite of the contrary expectation with which he approached his subject, has been impressed with the extraordinary similarity in many respects of the conditions under "fascism" and "communism". While "progressives" in this country and elsewhere were still deluding themselves that communism and fascism represented opposite poles, more and more people began to ask themselves whether these new tyrannies were not the outcome of the same tendencies. Even communists must have been somewhat shaken by such testimonies as that of Mr. Max Eastman, Lenin's old friend, who found himself compelled to admit that "instead of being better, Stalinism is worse than fascism, more ruthless, barbarous, unjust, immoral, antidemocratic, unredeemed by any hope or scruple", and that it is "better described as superfascist"; and when we find the same author recognising that "Stalinism is socialism, in the sense of being an inevitable although unforeseen political accompaniment of the nationalisation and collectivisation which he had relied upon as part of his plan for erecting a classless society", his conclusion clearly achieves wider significance.
Mr. Eastman's case is perhaps the most remarkable, yet he is by no means the first or the only sympathetic observer of the Russian experiment to form similar conclusions. Several years earlier Mr. W H. Chamberlin, who in twelve years in Russia as an American correspondent had seen all his ideals shattered, summed up the conclusions of his studies there and in Germany and Italy in the statement that "Socialism is certain to prove, in the beginning at least, the road NOT to freedom, but to dictatorship and counter-dictatorships, to civil war of the fiercest kind.
Socialism achieved and maintained by democratic means seems definitely to belong to the world of utopias."
〈Friedrich Hayek, The Road to Serfdom〉
반대의 것을 예상하고 주제에 접근한 관찰자마다 모든 관점에서 “파시즘”과 “공산주의” 치하의 상태가 특별히 유사하다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이 나라와 다른 나라의 “진보주의자”들이 여전히 공산주의와 파시즘은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것을 대표한다고 스스로 속이고 있는 반면에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이 두 새로운 독재정치는 동일한 성향의 결과는 아닐까 라고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공산주의자들조차도 Lenin의 오랜 친구인 Max Eastman의 증언에 마음이 흔들렸음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Max Eastman은 스스로 “Stalinism은 파시즘보다 더 훌륭하기는커녕 더 무자비하고 야만적이며 불공정하고 부도덕하고 반민주적이며 희망이나 후회에 의해서 구원될 수 없는 것이다.”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또 우리가 그 동일한 저자(Eastman)가 “Stalinism이 그가 무계급 사회건설의 일부로서 의지하였던 국유화와 집단화의 예상은 못하였지만 불가피한 동반자라는 의미에서 Stalinism은 사회주의다.”라고 인정하는 것을 볼 때 그의 이런 결론은 분명히 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가지게 된다.
Eastman의 경우는 아마도 가장 주목할만한 것이겠지만 러시아 혁명에 대한 비슷한 결론을 내린 첫 번째 혹은 유일한 동정적 관찰자는 결코 아니다. 그 보다 수년전에 미국인 특파원으로서 러시아에 12년간 주재하면서 그의 모든 理想(이상)이 박살나는 것을 보았던 W H. Chamberlin은 러시아와 독일과 이탈리아에서의 연구에서 나온 결론을 “사회주의는 시초에는 적어도 자유로 가는 길이 아니고 독재와 반독재간의 가장 맹렬한 종류의 내란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확실히 증명해 준다. 민주적 수단에 의해서 성취되고 유지되는 사회주의는 분명히 유토피아의 세계에나 속하는 것처럼 보인다.”라는 진술로서 요약하였다.
* 해설:
사회주의는 개인보다는 집단을 우선시하는 집단주의이다. 집단주의는 그 속성상 전체주의로 귀결하게 된다. Stalinism같은 무자비한 독재사상이 인민들을 숨도 못 쉬게 만들만큼 폭압한다. George Orwell(1903-1950)의 소설 〈1984〉는 공산주의 악령들이 기만과 폭압으로 Oceania라는 나라를 생지옥으로 만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소설의 분위기가 너무나 어둡고 억압적이어서 읽기가 힘들고 괴로울 정도다. 빨갱이는 사람이 아니고 악령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사람이 공산주의 독충에 물리면 영혼이 변질이 되어 위선과 기만과 포악과 간교와 잔인성 등 상상가능한 모든 악의 화신이 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그리고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히게 된다. 소설에 나타나는 붉은 악령들이 인민을 폭압하는 가공할 수단들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개인숭배
“1984”의 무대 Oceania의 Big Brother는 간교하고 위선적인 악마와 같은 독재자이다. 악마는 善의 이름으로 惡을 행하기 때문이다. 천국을 약속하면서 지옥을 만드는 大사기꾼이기 때문이다. Big Brother는 기만과 폭압으로 권력을 향유하고 있으면서도 인민들에게는 자애로운 구세주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의 얼굴은 신비스러울 만큼 평온해 보였고 권능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인다. 그의 검은 머리와 검은 콧수염은 전통적으로 악마의 이미지이다. 그의 마력에 민중은 광적인 반응을 보여준다. 인민들은 그를 神적인 존재로 간주하고 숭앙하도록 세뇌되고 강요된다.
〈…피라미드의 최정상에 Big Brother가 있다. Big Brother는 무오류와 전지전능의 절대자이다. 나라의 모든 성공, 모든 성취, 모든 과학적 발견, 모든 지식, 모든 지혜, 모든 행복, 모든 미덕은 전부 그의 영도와 영감에서 나온다고 주장된다. 아무도 를 직접 본적이 없다. 그의 얼굴은 게시판에 반드시 나타나고 그의 음성은 Telescreen에서 들린다. 그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해도 좋을 것 같다. …Big Brother가 하는 일은 당을 대표해서 애정과 공포와 경애의 중심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런 감정은 조직보다는 개인에게 향할 때 더 쉽게 느끼게 된다.〉
〈…그러나 Big Brother의 얼굴이 몇 초 동안 스크린에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그 얼굴이 모든 사람의 눈에 일으킨 충격이 너무 생생해서 즉각 사라질 수 없는 것처럼. 갈색머리의 그 작은 여인은 앞에 있는 의자위로 몸을 던졌다. 떨리는 음성으로 “저의 구세주님!”이라고 중얼거리면서, 그녀는 양팔을 스크린 쪽으로 뻗쳤다. 그러고 나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녀는 분명히 기도를 하고 있었다. 이 순간 무리 전체가 깊고 느리고 율동적인 합창으로 “B-B!…B-B!…”를 연호하였다.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첫 번째 “B”와 두 번째 “B'사이에 긴 休止(휴지)를 두면서 매우 느리게 연호하였다(B-B는 Big Brother)…그것은 Big Brother의 지혜와 존엄을 기리는 합창이었다.…”〉
소설의 주인공 Winston은 이런 광적인 “B-B!…B-B!' 소리를 들으며 공포에 사로잡힌다. 물론 그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환호성을 지른다. 달리 행동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Winston은 당과 Big Brother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게 된다.
"The statesman who should attempt to direct private people in what manner they ought to employ their capitals, would not only load himself with a most unnecessary attention, but assume an authority which could safely be trusted to no council and senate whatever, and which would nowhere be so dangerous as in the hands of a man who had folly and presumption enough to fancy himself fit to exercise it."―Adam Smith.
The common features of all collectivist systems may be described, in a phrase ever dear to socialists of all schools, as the deliberate organisation of the labours of society for a definite social goal. That our present society lacks such "conscious" direction towards a single aim, that its activities are guided by the whims and fancies of irresponsible individuals, has always been one of the main complaints of its socialist critics.
In many ways this puts the basic issue very clearly. And it directs us at once to the point where the conflict arises between individual freedom and collectivism. The various kinds of collectivism, communism, fascism, etc., differ between themselves in the nature of the goal towards which they want to direct the efforts of society. But they all differ from liberalism and individualism in wanting to organise the whole of society and all its resources for this unitary end, and in refusing to recognise autonomous spheres in which the ends of the individuals are supreme. In short, they are totalitarian in the true sense of this new word which we have adopted to describe the unexpected but nevertheless inseparable manifestations of what in theory we call collectivism.
〈Friedrich Hayek, The Road to Serfdom〉
“민간인들이 자본을 사용함에 있어서 민간인들을 지도하려고 시도하는 정치인은 가장 불필요한 일을 떠맡을 뿐 아니라 어떤 지방의회나 국회에게도 안전하게 위임할 수 없는 권위를 취하려고 하며 그리고 그 권위가 자신이 그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환상할 만큼 충분한 어리석음과 뻔뻔스러움을 가진 사람의 손에 있는 것 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
―Adam Smith.
모든 집단주의 제도의 공통된 특성은 모든 학파의 사회주의자들이 애호하는 어구인, 명확한 사회적 목표를 위해서 사회가 가진 노동력의 의도적인 조직화, 라고 기술할 수 있겠다. 현재의 우리 사회는 단일 목표를 향한 그런 "의식적인" 지도가 결핍되어 있다는 것과, 사회의 활동이 개인들의 무책임한 변덕과 생각에 의해 이끌어 지고 있다는 것이 항상 사회주의 비평가들의 주된 불만 중의 하나였다.
많은 면에서 이것은 기본적인 이슈를 선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의 자유와 집단주의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는 곳으로 우리를 즉각 안내해 준다. 공산주의와 파시즘 등의 다양한 집단주의는 그들이 사회운동을 이끌어 가려는 목표의 성향에 있어서 다양하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이 단일 목표를 위해서 사회전체와 사회의 모든 자원을 조직화하기를 원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개인의 목적이 최고가 되는 자치적인 영역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와 개인주의하고는 다르다. 간단히 말해서 그들은 이론상으로 우리가 집단주의라고 지칭하는 것에 대한 예상하지 못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분의 징후를 묘사하기 위해 우리가 채택한 새로운 단어의 진정한 의미에서 보면 전체주의적이다.
* 해설
이중사고(doublethink)
Oceania 사회는 궁극적으로 Big Brother는 전지전능하고 당은 無謬(무류)라는 신앙에 의존한다. 그러나 실제로 Big Brother는 전능하지도 않고 당이 무류일 수도 없기 때문에 사실의 취급에 있어서 수시로 융통성을 발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二重思考(이중사고)라는 사고체계가 도입된다. 이중사고는 속임수의 광대한 체계이다. 이중사고는 상호모순적인 신념을 동시에 믿고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논리적인 것과 비논리적인 것을 동시에 의식하고 확신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믿으면서 동시에 당이 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것을 믿을 수 있는 능력이다. 당이 요구하면 흑이 백이라고 충심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것은 상황에 따라 흑을 백이라고, 또 백이 흑이라고 동시에 확신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상호 모순적인 것을 믿었었다는 것을 망각할 수 있는 능력도 의미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사실을 지속적으로 조작할 수 있어야 한다.
이중사고 능력은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서 體得(체득)하게 된다. 훈련을 통해서 모순이 자연스럽게 상호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훈련과정은 의식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훈련과정이 정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無의식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작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져오게 되고 그러면 罪의식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중사고는 오세아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바로 심장부에 놓여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