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고근미(10/12)
어제 패딩까지 꺼내입은 사람을 보았다
날씨란 놈 미쳤다~~~
몇겹의 옷과 바람막이 준비가 무색하리 넘 날씨가 좋은걸 ㅎ
후기차례의 부담감 핑계등 오후 일정을 모두 접고 멤버들과 비로소 함께 식사도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단 생각에 간만에 설레이며 송악산주차장 정자를 향해 달렸다.
눈앞에 펼쳐진 풍광 더 미쳤다~~~~
우왕~~~
오늘의 하늘 그리고 바다
눈부신 윤슬
단산, 산방산, 용머리해안, 박수기정, 군산 너머로 한라산, 형제섬, 아름다운길 100선의 이름을 올린 형제해안로, 송악산, 마라도, 가파도까지
360도파노라마였다.
카야아아~ 다시봐도 정말 좋다.
교수님께서
귀를 기울여 파도소리를 들어보라신다
파도를 제주어로 '절' 이라고 하는데
저기 보이는 송악산은
오름 절벽에 부딪치는 절이 울리는 소리가 범상치 않아 절울이오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송악산이라는 이름보다 절울이오름을 많이 불러주라셨다.
이곳 주민들은 바람이라도 불어올땐 천둥소리보다도 더 크게 많은 원혼들이 사그라들어진 그들의 소리가 아닐까 느껴지기도 한다는 먹먹함을 시작으로 아름다움속에 숨겨진 해안진지동굴 설명이 시작되었다.
송악산 해안절벽을 훼손해가며 모두 15개의 인위동굴을 뚫었고 제주도민들을 강제로 동원한 곳이기도 하다. 동굴너비는 3~4m 길이는20여m로 우리나라에서는 쉅게 찾아볼 수 없는 일제강점기 군사시설이다.
태평양전쟁 패전에 직면한 일본군이 해상으로 들어오는 연합군함대를 향해 소형선박을 이용한 가미가재(신풍)식 배(어뢰정)를 숨겨두었던 곳으로 일본 해군이 제조한 유인유도 어뢰로 사람이 안에 타고 조종하여 표적에 들이 받는 자폭 병기 가이텐(회천)특공대 작전 공격형 진지동굴이다.
동굴안쪽에서 바라보면 희미하게 형제섬이 보이는것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던 기억이 있다
최근에는 붕괴위험으로 접근이나 출입이 금지된 상태라 그 풍광을 볼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수월봉,서우봉, 성산일출,삼매봉,송악산등 바다에 파놓은 진지동굴과 80여개의 오름에 파놓은 진지동굴까지 700여개가 발견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도민들이 동원되어 고초를 겪었을지 ~~~
이어 알오름을 향했다.
알오름은 총 3개의 화구가 나란히 있는데 서쪽 알뜨르비행장에 붙어 있는 오름은 섯알오름, 동쪽에 있는 오름을동알오름, 섯알오름과 동알오름사이에 있는 오름을 셋알오름이라고 부른다.
셋알오름 일제동굴진지가 나온다.
제주도내 동굴진지 가운데 가장 동굴이 크다고 한다.
동굴의 형태는 격자미로형으로 출입구가 6곳이며 연합군의 공중폭격으로부터 전투사령실,병사,탄약고, 연료고, 비행기수리공장, 어뢰조정고, 통신실 등 중요군사시설을 지하에 감추기 위한 용도로 쓰였다.
이곳은 제1동굴로 불과 몇년전만 하더라도 개방을 했지만 지금은 굳게 문을 잠궈 놓았다.
트멍으로라도 살펴보라셨지만 세상깜깜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붕괴위험에 따른것으로 보이지만 유산센터에 사전 접수하면 탐사 가능하다는 말씀에 언젠가 문탐팀들과 한번 날을 잡아보면 좋겠다.
문득 오래전 평화박물관 가메오름 견학당시 보았던 장면이 스치기도 했다.
일제의 침략성을 보여주는 전쟁유적이자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셋알오릉 정상부에는 일제고사포진지가 있다.
일제고사포진지는 태평양전쟁 당시 전략저으로 중요했던 알뜨르 비행장을 방어하기 위해 비행기를 쏘기위한 포를 설치한 진지로 항공기를 사격하는데 쓰는 앙각이 큰 포를 말하는데 달리 고각포라고도 한다. 고사포는 360도 회전가능하여 어느곳의 적이라도 조준할 숭 있다. 알뜨르 비행장을 공격하는 적기들이 원거리에 있을때는 40mm대공포를 이용했고 근거리로 접어들면 별도의 기관포 부대를 이용해서 공격했다고 한다.
태평양전재 말기에 수세에 몰린 일본이 제주도를 저항기지로 삼고자 했던 증거를 보여주는 시설물이다.
섯알오름으로 향해 분화구에 이르렀다.
섯알오름 학살터는 일본군이 1944년 말부터 대정읍 ‘알뜨르’ 지역을 군사요새화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폭탄 창고 터이다. 당시 일본군은 야트막한 섯알오름의 내부를 파내어 폭탄 창고 터로 사용했으며, 폭탄 창고 터가 있는 오름의 정상부에는 두 개의 고각포진지를 구축했다.
이 폭탄 창고 터는 일제가 패망하면서 제주도에 진주한 미군에 의해 폭파됐다. 이때 오름의 절반이 함몰되면서 큰 구덩이가 만들어졌는데 이 구덩이에서 학살이 이루어졌다. 학살이 시간 간격을 두며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기 때문에 암매장 구덩이도 두 개가 만들어졌다.
해방 이후 미군에 의해 폭파된 곳.
1948-1949년 '제주사건(4.3 사건)'이 진정 국면에 접어들 무렵에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치안국의 불법적 예비검속 광풍이 몰아쳐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경찰에 의하여 강제검속을 당하고
예비검속자들 중 약 천명으로 추정되는 제주인들이 무참히 총살되었다고 한다.
이곳 섯알오름 양민학살터에서는 252명이 2차에 걸쳐 총살당하고 암매장되었다고 한다.
끌러가며 표시해두었던 고무신과 서로 엉켜 알아볼수 없는 조상은 여럿이지만 몸은 하나로 묻힌 백할아버지한무덤은 사계리 공동묘지에 백조일손지묘로 모시고 있다.
유적지 정비사업에 의해 성역화가 이루어졌고 매해 음력 7월 7일 ‘섯알오름 예비검속희생자 합동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우리 문탐반도 잠시 바른자세로 눈을감고 고개숙여 예를 표하였다.
예비검속섯알오름유적지를 돌아 나오는데 펄럭이는 깃발이 내눈에 거슬린다.
사진에 넣었다.
저멀리 보이는 마시멜로(?) 알뜨르 비행장 활주로가 보인다.
일본군은 '알뜨르비행장'을 20만평에서
1945년까지 80만평으로 확장해 해군항공대 2500여명과 전투기 25대를 배치했으며, 폭탄이 장착된 비행기를 몰고 자살 공격을 감행했던 가미카제 일본군 조종사들도 이곳에서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이 시설물은 태평양 전쟁 당시에 중국본토를 공격할 목적으로 건설한 알뜨르비행장 주변에 전투기를 숨겨서 보관하고 정비목적으로 일본군이 제주도민을 강제 동원하여 만든 군용기 격납고이다. 모슬포 바닷가의 자갈과 모래를 철근, 시멘트와 혼합해서 만들었으며 폭 20m, 높이 4m, 길이 10.5m이다. 일제는 이러한 격납고 20기를 만들었는데, 현재 19기가 원형 그대로 남아있고 10기는 국가등록문화재로 관리하고 있다.
비행장을 만드느라 대대로 농사짓던 땅도 뺏기고, 주민들이 모래와 자갈은 져 나르며 격납고를 짓는 강제 노역에 동원 되었던 역사의 아픔이 느껴진다.
각 지역에서 군사비행장이 만들어졌다
일본 해군에 의해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육군에 의해 신촌 진드르 비행장과 정뜨르비행장(현재 국제공항활주로 일부)
교래 비밀비행장 모두 4곳에 설치되었다.
*.알뜨르(마을아래 들판)
*진드르(긴~들판)
*정뜨르(반듯하게너른 들판)
답사를 마치고 신나게 요망진밥상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던 우리~~
또하나의 교훈을 얻으며 요망지게 먹고 왔다.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태평양전쟁까지 일으킨 일본~
알뜨르를 비롯한 제주 전역을 요새화하고 연합군과의 일전을 준비했지만 일본의 예상은 빗나갔다.
연합군이 제주 대신 오키나와를 점령했으며(3개월 간의 오키나와 전투)
오키나와 전투에서는 미군과 일본군 사이에 격렬한 지상전이 있었고, 이과정에서 오키나와 주민 일본군 미군 조선인 등 20만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된다.
1429년부터 1879년까지 450년간 유지되던 류큐왕국이 1879년에 일본에 강제병합되었는 데다가
오키나와 전투에서 일본군에 의한 주민학살이나 집단자결이 자행되어
(적을 막지 못 하면 가족도 죽이고 모두 자결하라고 함. 반대하면 죽임 당함.)
10만 명 이상의 주민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니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고 한다.
오키나와 주민으로서는 일본에 대해 당연히 그런 생각을 가질 듯도 하다.
전쟁에서 수세에 몰리게된 일본은 본토사수를 위해 일본내 6개지역, 일본 외1개지역 제주도 등 모두 7개 지역에서 결호작전을 준비 이중 제주도에서의 작전을 결7호작전(옥쇄작전)이라 이름 붙여지고 결전을 진행하고 있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리틀보이 원폭을 투하함으로써 전쟁은 끝났다.
만약 일본의 예상대로 미군이 제주에 들어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미국과 일본의 전투가 제주에서 벌어졌을 것이고,
오키나와 전투가 말해주듯 그 희생자는 말할 수 없이 컸으리라...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일본이 여전히 밉다.
잔혹한 참상이 벌어진 장소나 재해,재난현장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위해 떠나는 여행을 일컫는 다크투어리즘 이정표가 맴돈다.
조만간 한번 정식 투어를 해 봐야겠다.
문탐을 통해 본 일제가 남긴 상흔과 군사유적
여러 비극적 요소로인해 마음아프고 암울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꼼꼼히 둘러보며 많은 역사적 사실을 깨닫고 몸소 느낄수 있어서 나름 뜻깊은 시간이었다.
시간이 여유로우니 절울이 오름 둘레를 걸으며
지질학적 관심과 곳곳에서 만나는 진지동굴 살피고 돌아왔다.
오늘에게 감사하며 글을 마친다.
첫댓글 요즘 후기들이 미쳤네요.('미쳤다'는 용어는 후기에서 인용) 역사적 정보와 글쓴이의 감정이 잘 버무려져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고무신이 감정을 울컥하게 하네요. 감사합니다.
우와!
후기 감동입니다.
그날 가을햇살에 눈부신 풍광과 평화속에 숨겨진 아픔을 공부했고,
후기 읽으며 복습합니다~
패딩입고 여러분을 웃게 한 사람, 나중에 벗고 가방에
메고 다닌 거 저 만이 아닐걸요!
후기쓰느라 수고 했어요~
전주는 4.3... 이번주는 일제의 상흔....
모두 암울했던시대,슬픈 시대를 공부했습니다..
교수님의 강의를 꼼꼼이도 정리하고 쓰셨네요... 다시한번 복습 잘했습니다.
아프고 슬픈역사지만 잊지말고 교훈으로 되새기며 미래로 나아가야겠습니다~
후기들을 넘 잘쓰셔서 다음이 걱정입니다...
아픈기억들을 하나도빠트리지
않고 세세히기록해주셨네요
몇번을가서보아도 그때마다
만행을저지른일본과 제주인
들의 힘들었을삶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후기작성에 진심이
느껴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하늘이 유난히 푸르렀어요.
정말 아름다운 우리 제주,
자랑스럽네요 ㅎㅎ
사진 편집이며 후기에 근미샘의 정성이
듬뿍 느껴집니다~^^
열심히 경청하시고 사진도 찍으시더니 훌륭한후기가 나왔네요.
가슴시리게 아픈 스토리를 들으며, 또 한편으론 눈이 시리게 푸른바다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이율배반적인 하루였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근미샘 특유의 문체 반갑습니다.
그날 강의 내용을 꼼꼼하게 잘 쓰셔서 다시 읽어보니 깊은 공부가 되네요.
맞아요.
슬픈 역사현장과 다르게 그날 날씨와 더불어 풍광이 미쳤습니다.
아름다운 제주에 아름다운 일만 있기를 ...
후기 읽으며 복습 잘 했습니다.
전쟁 용어는 항상 어렵고 잘 잊어버리는데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할 것 중에 첫번째가 전쟁이겠지요.
전쟁준비, 전재중, 전쟁 후에 소요되는 돈을 인류를 위해서 사용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안타까움에
세계평화를 위해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