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글을 쓰기시작하면서 느꼈던 초심이 눈길이 갔습니다.
P218~220) 나는 아직 내 소설 쓰기에 썩 자신이 없고 또 소설 쓰는 일이란 뜨개질이나 양말 깁기보다도 실용성이 없는 일이고 보니 그 일을 드러내 놓고 하기가 떳떳하지 못하고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고 내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쓰는 일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읽히는 것 또한 부끄럽다.
나는 내 소설을 읽었다는 분을 혹 만나면 부끄럽다 못해 그 사람이 싫어지기까지 한다.
만일 내가 인기 작가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면, 온 세상이 부끄러워 밖에도 못 나갈 테니 딱한 일이지만, 그렇게 될 리도 만무하니 또한 딱하다. 그러나 내소설이 당선되자 남편의 태도가 좀 달라졌다. 여전히 밤중에 뭔가 쓰는 나를 보고 혀를 차는 대신 서재를 하나 마련해줘야겠다지 않는가. 나는 그만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서재에서 당당히 글을 쓰는 나는 정말 꼴불견일 것 같다.
요 바닥에 엎드려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뭔가 쓰는 일은 분수에 맞는 옷처럼 나에게 편하다.
남편을 보내고 느낀 소회도 모두 공감했습니다.
P250~252) 남편이 세상을 뜨고 나서 1년도 채 안 됐을 때, 내가 혼자된 슬픔을 잘 극복하지 못하고 힘들게 사는 걸 보다 못한 어떤 친구가 나를 위로한답시고 그 집에 데려간 적이 있다. 여전히 쪽진 아주머니가 손수 반찬을 만들고 숯불에 장어를 굽고 있었다. 나는 그 아주머니가 내 남편의 안부를 물을 까 봐 속으로 전전긍긍했지만 그런 일 없이 그냥 넘어갔다. 그래도 장어를 먹을 생각은 조금도 나지 않았다. 그 굽는 냄새도 싫었다. 친구의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 조금 먹는 시늉만 했는데도 토할 것 같은 걸 참느라 진땀을 흘렸고 결국은 얹힌 게 오래갔다.
그리고 20년 동안 가지 않던 동네로 K교수가 접어들었고 정확하게 그 기와집으로 가는 게 아닌가. ~ K교수는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이 집은 장어구이와 쏘가리탕이 일품이라고 그걸 시켰다. 나는 혹시 그걸 먹을 수 없으면 어떨까 걱정했는데 그 두 가지가 차례로 나오자 건강한 식욕을 느꼈고, 그 옛날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달게 먹었다. 그리고 남편을 떠나보낸 고통이 순하게 치유된 자신을 느꼈다.
시간이 나를 치유해준 것이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소중한 체험이 있다면 그건 시간이 해결 못할 악운도 재앙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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