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의 굴레 파일 올립니다.
단편 소설 Rev.2024.06.11. /첫 원고:첫원고 2021. 7. 15.~8.10.
제목: 허영의 굴레
조영래
정윤수는 중동 사우디 아부하 연락사무소장 Ahba Laision Manager 리야드 지점과 홍해 담수공사현장 중간에 위치한 주Province 수도Capital Ahba공항을 통해 첫 해외 임지에 부임한다. 홍해 동쪽 해발 2500m가 넘는 고원지대 공항 아브하Ahba에 트랩을 내려오는 순간 그는 사막의 후끈한 열기가 주는 느낌은 달랐다. 올무에서 벗어난 늑대가 지배하는 영역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야망을 이루려는 근성을 가진 자가 되는 것이다. 두 팔을 힘껏 위로 펼쳐 후덥지근한 열기와 모래 먼지가 폐부 깊숙이 들어온다. 담수공장 수주와 발전소 건설 수주의 젊은 일꾼으로 태어나겠다는 포부를 다짐한다. 집중하는 인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는 전사같은 수주꾼이다. 스폰서 왕족들과 코넥션을 긴밀히 유지하는 비법을 교과서 문구같이 막 타자되어 텔렉스 전송되는 것이다. 종이 테입프 모양의 스립이 타이핑되자마자 날아가는 듯하다.
프랑스 남부 해변 니스여행이 계획된 여정이 미리 잡혀있었다. 스위스 다국적 기업 ABB 멤버들이 ‘사이드’를 주빈으로 초대하는 중동왕족을 상대로 하는 관례이다. 고급정보는 그 때에 흘러나오기 마련이기 때문에 함께 유럽나들이로 늘 상 동행하는 파트너이다. 그들의 정보와 크로스 체크하는 모임은 늘 비밀스럽고 고립되어 있다. 중동 귀족들이 가는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호텔에 초대하는 겉모습과 달리 암투가 번쩍거리는 정글이다. 젊은 비즈니스맨들에게 인생을 즐기는 비즈니스는 여기서 출발한다. 지금부터이다.
고독한 도시생활 부적응 샐러리맨은 항상 혼자 일어나고 혼자 걷고 혼자 여행하는 외톨이가 점점 되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껍질을 박차고 나올 수 없는 현실은 나긋나긋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초상이 나 문상에라도 가서 실컷 울고 싶은 정윤수의 심정을 어루만져 줄 사람은 없었다. 시청역 주택복권을 산 기억이 나서 토요일 하숙집에서 빨래하는 것 멈추고 텔레비전 당첨 방송에 눈이 갔더랬지 하지만 조 추첨부터 전부 다 맞았는데 끝 번호 하나가 틀리는 바람에 아무것도 아닌 꽝이 되는 순간에 그러면 그렇지 나에게 그런 행운하고는 먼 것이다. 중얼거리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결혼이나 해서 가정을 이루어 알콩달콩 살아야 하는 인생인가. 만약 정윤수 자신이 선택한 상대와 결혼하여 이러한 상황에 처한다면 어떤 심정일까라는 생각에 고개를 흔들며 아직 이르다는 결론으로 떨쳐버리고 말았다.
그가 가질 수 있는 것은 할 일이 마무리 되면 기회는 항상 열려있다는 믿음을 굳게 가지는 수밖에 없었다. 더 늦기 전에 할 일이란 입사 동기 말처럼 경영대학원이라도 들어가서 좀 쉬운 방법을 선택해야 하나라도 달성하는 것이 우선이다. 일차 목표로 바람직할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결혼 후에 공부하는 사위나 남편은 세상 어떤 여자편의 가족은 원하지 않는다는 현실이 무서웠다. 자신이 손수 학자금을 부담해 끝내는 길이 유효한 방법일 뿐만 아니라 공부하는 동생들을 돌보아야 할 짐은 또 어떻게 해야 하는 복잡한 생각에 술잔을 연속으로 들이키며 술에 울분을 풀고 있는 것이었다.
지방출신 신입사원인 정윤수는 번잡한 거리를 벗어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겨 걷는다. 잠실 석촌호수 언저리에 있는 주공 4단지로 가고 있다. 김중호 선배가 혼자 잠실에 월세 방을 하나 얻었다는 말하는 것을 듣고서 그 쪽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그는 하숙집을 구하려고 주위 서울 토박이들을 통해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었다. 동료들이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었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하숙을 얻지 못한 상태다.
누구보다 회사에서 출세를 하고 싶은 욕망 큰 신입사원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사장자리에 오르고 싶다고 실행하기 위해서는 장차 어떤 일이라도 할 것이라고 염두에 두고 결심했었다. 저녁에 회사에 남아 토플을 공부하는 동기와 함께 학원도 다닌다.
하루하루가 피곤의 연속이지만 장래를 위해 인내하고 희망을 가지고 있는 젊음이 자신에게 활기를 찾아가는 돌출구가 될 것이라 믿고 있다. 달콤한 사랑에 빠져 젊음을 즐기기보다 인생의 기로에 내린 자신의 선택에 충실하기로 결심을 한 순간부터 더 자신을 학대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자신의 발전을 위해 카이스트 석사과정을 위해 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는 요즘에 불쑥 한 후배를 만난다. 회사동료 중에 어떤 낌새를 알았는지 그것은 마땅치 못함을 지적하며 그냥 쉽게 갈 수 있는 경영대학원을 직장생활과 겸해서 다니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고 늘 주장해서 정윤수도 마음이 많이 바뀐 상태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족을 돌보아야 할 의무와 직장생활, 출세를 해야 할 포부 양 갈림길에서 놓인 새파란 젊은이가 극복해 나가기엔 험난한 앞길이 버겁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결혼해서 쉽게 직장만 충실하게 다니길 바라지만 이대로 안주하기엔 불안한 미래에 대한 보장이 아무것도 없는 현실에 늘 자신을 억누르는 압박에 눌려 지낼 수밖에 없는 청춘이었다. 나날이 자기 자신의 행복으로 향한 발걸음 보다 출세가 무언가에 의문부호를 던지고 순응하기도 어려운 그에게 무거운 하루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 주말에 직접 알아보기도 여의치 않았다. 오늘따라 삼성동 회사 근처에서 저녁 한 끼를 해결하고 나서 마땅한 잠자리나 찾아 여관에 갈까하다가 그럭저럭 잠실 한양쇼핑까지 걸어오게 된 것이다.
처음 김중호 선배를 만난 것은 외자부의 같은 팀원이기도 하지만 큰 키에 외모가 굵직하고 울산 출신이라 동향 같은 느낌이 들어 믿음직하기도 했다. 그는 군 생활은 해군 장교출신으로 해외 원양선의 마도로스였기도 하며 결혼한 선한 유부남이기도 하였다. 그가 임시 거처하는 잠실4단지 14동은 정문에서 호수방향으로 위치해 있었다. 4개동이 정방형으로 둘러싸인 중간에 공간이 뚫려있는 구조이다.
수목 아래로 밟힐 듯 모래땅이 수북한 게 손질이 덜 된 화단을 보니 단박에 조촐한 서민아파트라고 느꼈다. 서민들이 그럭저럭 살아가는 보금자리가 그는 부럽기도 했다. 거기 살아가는 사람에게 연민을 느낄 수조차 없다고 말하기엔 자신의 처지가 서글픈 만큼은 고달픈 생각이 들었다. 4단지 4층 한 현관문을 두드리자 초등 4~5학년쯤 되는 아이가 문을 열고 나왔다. “어디서 오셨어요?”라고 묻자, 곧 “회사 직원이다.”라며 답한다. 아이는 목성을 돋꾸어 큰소리로 “아저씨! 손님 오셨어요.” 김중호는 “방금 들어왔다”면서 방으로 인도하여 마주 앉았다. 마실 것을 내오고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다가 연락도 없이 어떻게 왔나 하길래 “아직 하숙을 못 구했는데 지금 월세방에 한 방같이 있을 수는 없냐?”고 제의했다.
그는 싱끗 웃으며 흔쾌히 집주인에게 동의를 구해하러 할머니 방으로 갔다. 4단지 주공아파트는 서민주택이라도 평수가 17평이 꽤 공간이 넓어 보인다. 방이 셋이고 안방과 작은방이 둘이었다. 건너 방 할머니에게 갔다 와서 할머니가 월세를 혼자이면 5만원이지만 둘이면 6만원으로 올리고 월 3만원씩 내면 둘이 있어도 좋다는 조건으로 승낙을 받아 왔다. 선배가 미리 말씀을 드려 두었는가 보다. “여기 할머니는 여주토박이 분이시고 오래 전에 남편을 일찍 여의고 큰아들과 며느리는 조그만 사업상 인천 나가 살고, 손자 둘을 혼자 돌보고 계신다.”고 말해 주었다. 할머니께서 나오시며 “새로 올 총각이냐?”고 물으시어 통성명을 하면서 인사를 드렸다. 오늘은 여기 자고가라며 주인 할머니가 잡으셨지만, 염치없는 행동이라고 보이지는 않을까? 란 생각이 들어 그냥 나와 버렸다. “내일부터 와도 되냐?”고 말씀드려야 하는데, 그렇게 못 한 것을 금방 후회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거리를 방황하다가 가까운 새내 새마을 허름한 모텔로 들어섰다. 그는 서울 객지 생활을 이미 각오한 바였다. 하이지만 숨이 턱 막히는 심정으로 도시 모텔 방 한구석에 밤잠을 뒤척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이제 숙부 내외에게 ‘다음 주부터 잠실로 옮겨 간다’고 쏘아붙이고 싶어졌다. ‘서울 발령 받은 동료 직원과 같이 지내게 되었다.’고 말씀드려야 도리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내외는 잠시라도 보기 싫은 시간을 줄이고 싶고, 아직도 그 을 마주하기 역겨운 얼굴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동이 틀 무렵에서야 눈을 잠시 붙이고 낯선 길을 알아 둘 겸 높은 빌딩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하필 서울에서 대구 고등학생일 때 기억을 떠오르는 사건을 불쑥 머리를 스친다. 아버지 어머니가 부부싸움을 하시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불쌍해서 혼자 울분을 떠 올려볼 때마다 속이 울컥했다.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진 상황에바닥인생을 이를 악물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 끝에 버럭 화부터 내었다. ‘형제간에 우의 있게 지내라.’고 당신 시어머니가 하시는 말씀도 못 들었느냐고 반박이 돌아오면 싸움이 시작되었다. 마침내 아버지는 그의 어머니를 윽박지르고 마을 과부 막걸리 집으로 횡 나가버리면 집안 분위기가 싸늘하게 변하고 말았다. 오남매 맏아들은 어머니를 달래주며 동생들에게 엄숙하게 “너희들은 너희들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엄격한 상관처럼 명령하곤 했다. 그는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싫어져 어머니의 잔소리도 정도를 넘어서는 경우에 실망하곤 했다. 다행히 그의 아버지는 어질고 심성이 부드러워 남에게 싫은 말씀을 못하시는 성품이라 늘 손해보고 살아가는 분이었다. 반대로 어머니는 친정붙이들에게 손가락 받는 일이 참기 어려워했다. 그녀의 남동생이 쌀말이라고 가져오면 받을 때마다 올케 얼굴이 떠 올리며 동생이 혹시 구박받을까 노심초사하곤 했다. 친정에 더 손 내밀기가 죽기보다 싫어했기 때문이다. 마침 마춤한 월세 점포가 하나 나온게 있었다. 수중에 가진게 없으니 바가지 긇는 어머니를 향한 외마디가 집안분위기를 설렁해진 원인이다. 곧 어머니는 행동에 옮기는 생활력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마지못해 마지막으로 친정아버지에게 차용증까지 써달라고 아무 말씀도 않고 허허거리며 부처같이 앉아서 입맛만 다시는 외할아버지를 졸라서 차용증을 받아냈다. 그 차용증을 담보로 친적에게 융통해 가게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차용증을 담보로 돈 빌린 것은 가족들에게 차라리 죄악이었다. 피나는 노력 끝에 갚고서 몫 좋은 가게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집지을 땅 한 뙈기를 눈독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모친은 힘들게 고생하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 첫 과정은 부자 지주집안 셋째 딸이 격어보지 못한 눈물 나는 행상으로 시작이 된다. 손수 방물장수를 하여 살림 밑천을 마련한 생활력이 강한 여성이었다. 당시 대구시 경계를 넘어 시골 곳곳을 돌면서 화장품, 노리개, 비녀, 브롯지 등속을 가지고 시골 아낙이나 처녀들에게 팔았다. 대금은 곡물을 받아와서 쌀가게에 되팔아 수익을 이중으로 올리는 억척이었다. 하루는 어린 딸을 등에 업고 시골 인심 좋은 아주머니 토방에서 유숙하러 갔는데 그 집 바깥어른이 퉁명스럽게 꿍얼거리며 바깥으로 나가버리자 머쓱해진다. 비를 맞으며 행상을 하는 처지가 서럽기도 하지만 하루 그 경우에 외간사람을 집에 들이어 이를 옮긴다고 집주인이 아낙에게 타박을 하는 소리를 들었던 신세였다. 그 말을 듣고서 눈물을 흘리시며 ‘약해지면 안 된다.’고 이를 악물고 살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숙연해지기도 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버지가 어린 일곱 살 무렵에 관절염으로 왼쪽 다리를 절단한 수술을 서울대학 병원에 받았다. 큰 형님이신 그의 맏아버지가 서울대학교 혜화동 근처 여관에 방을 얻어두고 동생을 업고 병원 치료를 받았다. 꼭 ‘너의 다리를 고쳐 놓고 말리라’ 하시며 수술을 받은 눈물겨운 형제애를 말씀을 하셨다. 그의 백모로부터 전해들은 말씀이 귀에 쟁쟁하게 기억이 났다. 이토록 동생을 아끼는 형에게 동생은 그 갚음을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은 까닭이었다. 모든 것을 형님에게 주어도 아깝지 않는 것이 그의 부친 마음속에 있는 것이었다. 그의 백부는 일제 강점기 때 무슨 사업인 줄은 모르지만 큰돈을 벌어 들었다. 총독부에 할머니 친정붙이가 출세하여 조선사람 중에 가장 높은 직책에 있었다는 알려진 비밀이 전해져 내려왔다. 당시에 그의 백부가 조상 토지며 산지를 상속받아 지주계급에 속하는 부자였다. 백부가 17세부터 사업에 눈을 뜨고 마을 밭을 논으로 개조하기 위해서 소설 ‘혼불’에 나오는 저수지를 조성하기도 했다. 아직도 온 동네 논과 사과밭에 중요한 수자원이다. 임하천을 건너 들녘까지 수로가 연결되어있다.
집 뒷산 파재 넘어가는 고개에 골짜기를 막은 것이다. 저수지 둑 쌓는 절구 공이 찧는 노동요가 수개월 동안 마을에 들렸다고들 말이 전해 내려온다. 그의 부친이 받은 과수원에 얽힌 이야기는 청송 임하천 하천부지 자갈밭을 일구어 만평 가까운 과수원을 만들었다. 일본에서 수입한 후지 사과나무 묘목을 심어서 청송에서 제일 크게 값나가는 과수원이라고 소문이 짜했다. 백부가 “이 과수원은 너의 몫이다.”라고 불구인 동생에게 주겠다는 약속을 미리 해두어 훗날 분쟁을 없앤 셈이 되었다. 거기에 식량하려면 논밭이 있어야 한다고 스물 마지기와 함께 결혼하면 주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렇게 받은 귀한 과수원과 논밭을 숙부가 중고폐지를 재생하는 공장을 지어 사업을 하겠다고 숙부가 동생인 그의 아버지에게 과수원과 땅을 잡혀 달라고 졸라 대었다. 반대한 그의 부친은 담배건조장 지붕 아래에 숨어서 여러 날을 내려오지 않고 고심을 하다가 결국 보증을 쓰고 말았다. 결과는 뻔한 것이라 여겼지만 허탈하게 마감되고 말았다. 숙부가 사업을 시행하기도 전에 숙부 가족의 생활자금으로 탕진한 것이다. 제자리에 앉아 숙모가 사치와 살림 낭비에 돈을 물 쓰듯 한 것이다. 작은 숙부 가족은 변명할 틈도 없었는지 빚을 갚지 않고 서울로 도망갔다. 이렇게 전 재산을 털리고 맨손으로 대구로 월세를 얻어 갈 수 밖에 없었던 기막힌 사건이 있었다.
그의 가족은 자연히 남의 손에 넘어간 속임수에 억장이 무너지는 사건을 그의 어머니가 용서하기는 어려운 이치였다. 하여간 이런 연유로 서로 원수를 보듯이 구원이 되어 끝없이 부딪치는 것이었다. 집안 몰락을 알게 되고 부터 소원해지고 끝 모를 싸움의 연속에 지쳐있었다. 그 원인이 숙모의 낭비와 사치에 덧붙여 무책임한 행동거지였던 것으로 판명이 되었다. 다른 사업한다고 사기 치는 두 형님 앞에 듣고 있는 아버지를 본 그의 모친은 불구대천 원수라고 원망을 퍼부었다. 숙부 두 분이 대구 동네 여관에 와서는 한 달간 숙식을 하고 아버지 앞으로 지불하라고 여관 주인에게 말하고 가버려서 어머니와 다툼이 벌어졌던 일이 있었다. 어머니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형님이 하시는 일에 도움이 되는 아우가 되어야만 인간 도리를 다하는 것이란 생각을 가지신 분이다. 어머니는 그 반대이다. 자신의 일을 깨끗이 못 처리하고 여기저기 손을 내미는 숙부를 이해하지 못하는 성정이니 자연히 의견이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집안이 시끄러워지고 두 분이 싸우니 이제 어머니도 중년이 되어서 싸우는 말도 거칠어지고 욕설도 막 썩어서 듣기에 거북해서 그만하라고 해도 시집 온 후로 여러 가지 억울한 일을 떠 올리며 오히려 아들에게 한풀이 하듯 넋두리를 하는 것이 화를 풀어내는 방법이었다.
늘 상 그의 직장생활에 대한 고민도 깊은데 그들 내외의 음성을 듣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일어나는 모든 일이 역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는 괴로웠다. 그들 내외를 원망하는 마음이 가슴 깊이 박혀있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또한 그의 고등학교 시절 어느 날 벌어진 사건은 숙부 두 분이 대구에 와서는 동네 여관에 들어 한 달간 숙식을 하고 아버지 앞으로 지불하라고 여관 주인에게 말하고 도망치듯 가버렸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당연히 형제간에 금전 문제로 싸우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형님이 하시는 일에 도움이 되는 아우가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의 소유자이다. 그래야 인간 도리를 다하는 것이란 생각을 가지신 분이다. 어머니는 그 반대이다. 어머니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자신의 일을 깨끗이 처리 못하고 여기저기 손을 내미는 숙부를 이해하지 못하는 성정이니 자연히 의견이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의 아버지는 집 지으려고 사두었던 땅뛔기를 잡혀서 아버지에게 사업에 투자할 돈을 요구했던 것이다. 백부의 사업자금으로 변통을 해주었다. 한전 원자력 고리발전소 공사장에 골재를 납품하는 사업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함께 장안면 고리마을에 정육점을 운영 사업허가를 얻어주는 조건으로 설득했다. 그래서 첫째 여동생과는 대구에 남아 자취를 하며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나머지 동생들 셋과 함께 경남 바닷가 공사장 마을로 떠나가면서 그의 가족은 둘로 갈라지는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다. 이제 그의 어머니도 중년이 되어서 말도 거칠어지고 욕설도 막 썩어서 듣기에 거북해서 그만하라고 해도 그만둘 리가 없다. 집안이 시끄러워지고 동네 이웃에게 부끄러울 지경이 된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시집 온 후에 두 형제들에게 당한 여러 가지 억울한 일을 떠 올리는 날이면 더 시끄러워진다.
하여간 2년이 넘어서자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공사장 납품대금을 수금한 자금을 들고 백부는 잠적해 버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중간에 숙부가 끼어들어 수습하는 일을 하였다. 바로 땅을 급매 처분하여 빚을 갚아야 할 처지에 놓여 날리게 되었다. 하여간 피 같은 돈을 형제 두 분에게 빼앗기게 된 이후에 아버지는 무척 소심해지고 어머니는 황망해지게 된 것이다. 그 때도 그녀는 아들에게 한풀이 하듯 넋두리를 하는 것이 화를 풀어내는 방법을 찾은 듯 여기게 된 것이다. 다시 대구로 올라오면서 지난 시절에 처음 대구에 갔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다행히 팔아버리고 내려온 그 가게를 인수한 사람이 되팔려고 내어놓아 그의 아버지가 인수해 제자리로 다시 돌아왔던 것이다.
어머니로부터 정윤수가 집에 갈 때 마다 “너는 집의 기둥이니 처신을 잘하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곤 했다. 하지만 그는 직장생활에 우선 집중해서 회사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 의욕이 남보다 강했다. 집안 살림에 보태기 위해 봉급을 어머니께 드렸다. 그의 모친은 계를 들어 제일 뒤 순번을 받았다. 뒷 번호 일수록 높은 이자를 받으니 산통 마지막 날 돈은 늘어나게 되어있다. 그 재미가 솔솔 한 것은 물론이고 아들을 떠받들고 딸들을 구박하는 모친의 행동이 늘 못 마땅했다. 그것이 어머니에게 드리는 제일 큰 효자 노릇이 될 진 모르지만, 그는 왠지 답답하기도 하고 밖에 나가면 위축되기도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젊은 청년인 그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혼돈한 시대에 태어난 세대는 부모와 다르다. 그의 아래로 막내 남동생 하나에 여동생 셋을 공부도 시키고 거두어야 했다. 그의 의무이자 책임이었다. 동생들을 학교공부라도 제대로 시켜 출가 싶은 것이었다.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부닥치는 사정은 비교가 되었고 입장이 달랐다. 가난과 가족들을 포함한 그의 암울한 미래를 짊어져야 하는 당위성은 그를 짓누르곤 했다. 사소한 것조차 자유스럽지 않는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이다. 아버지 가게 일을 도와야 하므로 친구들이 붙잡아도 급히 집으로 가야 된다는 말을 뱉고 가야만 했던 중고시절부터 그에게 서글픔이 차곡차곡 쌓여 왔던 것이다.
한편 정윤수 그는 신입동기들 보다 어렵게 지방대학을 2년이나 늦게 졸업하였다. 대기업에 5.18사태 나기 전 해에 1입사해서 군포에서 기본교육을 마치고 지방 경남 창원에 현장기술부서에 배속되어 현장기술엔지니어로 근무하게 된다. 신입교육과정을 수료하고 기술부서에 신임 엔지니어로 배속 받았다. 서울로 전출하게 된 동기는 외자부에서 엔지니어를 차출하여 서울 외자부로 온 경우는 흔치 않는 사례이다. 그 과정에 자의반 타의반 고등학교 선배의 추천이 한몫을 했다. 외자부 직원들 대부분이 법상경 계열이다. 상대적으로 기술적인 용어라도 이해하는 엔지니어가 필요하다고 했다. 임원들의 방침에 따르는 부서장의 요구가 반영된 인사조치였다. 주로 해외 수입 자재 구매 엔지니어를 키우기 위한다고 면담 전에 선임선배에게 미리 들었다. 그래서 외자부의 같은 부서에 근무하고 싶어 하는 사원들의 부러움을 쌌다.
회사의 방침에 따라 새로운 본부제도가 생기면서 서울로 객지 생활을 시작한 처지에 생활비가도 늘어나는 편이였지만 그런대로 견딜 만 했다. 좀 궁색하기는 하지만 직장도 얻었고 고정수입이 들어오니 차츰 나아질 일만 남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겪고 있는 도시생활과 고뇌는 그의 어머니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일이다. 그의 생각이나 의견은 쓸데없는 호사스런 일이라도 되는 듯했다. 매사에 아들은 잘 듣는 숫말처럼 부지런한 살림밑천이라 생각하니 그에게는 위로받을 곳이 없어진 것이었다. 처음부터 그의 아버지와 손위 형님인 두 숙부들과 악연이었다. 인생 단추가 잘 못 끼워진 탓이다. 어긋난 인생을 살아가는 숙부 내외가 그의 모친에게 험담하는 자리를 잠시라도 있기 싫었고 자존심을 박살내고 비웃거나 흉을 보는 것이 마땅하지 않았다. 그런 시간을 인생에서 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로 인한 갈등이 깊어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다. 두 숙부와 관계는 청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집착과 아직 공부하는 동생들을 돌보아야 할 의무감이 늘 그를 짓누른다.
그는 회사에 입사한 후 임원까지 승진해야 되겠다는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있었다. 또 김형석 교수님께서 하신 강연내용이 우연히 강의 노트에 적혀있어 ‘경쟁사회에 남보다 앞서기 위한 무기는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평범한 진리라는 말씀을 염두에 두고 중얼거리기도 한다. 두뇌를 쓰는 창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말에 느낌을 받아 회사에 제일 먼저 출근해서 가장 늦게 까지 일하는 성실하게 노력하는 직원이 된다면 이 회사의 사장도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키워가는 것이다. 자신이 결혼을 해서 안정된 가정을 꾸린다는 소박한 생각은 우선 접고 목표를 위해 매진해야 한다고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창원 공장 하급 엔지니어의 근무는 별 변화가 없다는 현실에 적응하는 속도도 느리고 답답하던 차에 외자부로 전출되면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변화되어 갔다. 세상이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김우중 사장의 말처럼 자신의 인생을 가꾸어 가리가 결심한다. 나름대로 목표를 설정하고 나니 만족한 직장생활에 활기차게 나날을 보내고 있는 기회를 잡은 것 같았다. 서울 전출이 되면서 주위 환경이 급변하여 서울 객지생활에 적응하는데 에너지를 쏟는데 허비한다는 나약한 생각을 버리고 좀 더 단단해지고 굳게 나아가는데 정신을 집중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한편 불광동을 다음 날 나와 잠실로 옮긴 후 김중호 선배와 합친지 한 달도 안 되어 그가 전셋집을 구했다. 가족이 이사를 온다고 들떠 있는 주말이다. 그의 가족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보금자리를 얻었다는 것은 행복에 넘쳐 보였다. 토요일 이사 온 집에 들려 이삿짐 나르는 데 즐거운 동참이란 명분을 걸고 부천까지 갔다. 이삿짐 나르는 일보다 동료들이 모여 한 잔하는 즐거운 시간이 보내기 위함이다. 가슴을 열고 동료애가 생겨나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였다. 흔쾌히 동참하는 정윤수도 그 날은 취하도록 마시고 떠들며 즐거웠다. 푸근한 선배가 부럽기도 하고 가정을 가진 그가 회사 말뚝이가 되어버린 것 같아 제대 앞둔 선임하사 같은 생각이 불쑥 들기도 하는 하루였다. 부천에서 출퇴근하기도 쉽지는 않지만 지방과 서울 사이에 전세가 갭이 크기 때문에 멀리 부천으로 밖에 구할 수 없는 월급쟁이 벌이가 어쩔 수 없는 선택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그가 부럽기도 하다.
박순심 전화를 기다리고 있던 차에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빠 제대하고 한 번도 못 만났는데, 이제 대학 졸업하고 직장 얻어 서울서 근무하게 되어 기쁘다고 자주 만나요.”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에게 쉼표가 되는 여유가 갑자기 생겨난 듯 여간 고마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생활과 복잡한 가족과 친척 간 관계에서 좀 떨어진 거리에 쉴 수 있는 마음의 휴식처가 필요한 것은 당연해 보였다. 분명 그녀는 정윤수에게 한 템포 명상의 숲을 주는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녀가 “영등포 직장에서 퇴근해 강남 갈 테니 오빠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전화를 받고 심쿵해졌다. 그녀도 이제 20살 난 여고 졸업 풋내기가 아니다. 4년이나 지났으니 성숙한 여성이 되었을 터인데 어떤 모습일까 궁금증이 더해졌다. 강남지리에 익숙하지 못한 시골 놈에게 어디서 만나자는 말을 한다. 삼성동 무역센터로 오겠다는 것을 회사위치를 묻기에 회사 커피 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회사 영어시험 성적이‘해외지사 직원발령’에 참고한다고 공고가 붙었다. 먼저 해야 할 일을 찾아보자. 사내 도서실에서 영어 회화 테이프를 대출해 저녁마다 2시간 이상 듣기를 한다. 토플 학원에 빠짐없이 예습 복습을 한다. 혼자 자취방 책상머리에 앉아 종이에 적어본다. 아침 출근하여 데스크 다이어리에 오늘 할 일을 적어 계획적인 업무처리에 집중해 보자. 먼저 원자력 7,8호기용 워터 스크린 계약서 작성이 우선이다. 영문계약서는 선배들이 마련한 표준틀이 있어서 상업용 영문계약서는 필요한 제품명과 납기와 선금지불조건 등을 집어넣어 완성하면 그런대로 쉽게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견적지원 업무는 다양한 품목에 조건도 다르고 각 나라별 수입조건도 까다로워 골머리가 아픈 경우가 많았다. 처음으로 견적지원 업무를 맡으니 업무만족도가 높아지고 상사의 칭찬도 받았다. 인도의 봄베이 항구의 부두크레인설치 공사용 크레인 견적을 해외 제작회사로부터 전체베이스로 견적을 받아 기술부서인 해외 입찰 프로포절 기술부에 전달하는 과정이다. 품목별로 개별목록별 가격을 녹다운한다고 쓴다. 이 경우는 크레인 각 부품마다 제조사를 표시하고 기술검토가 끝나면 품목별 녹다운 가격을 받아야 한다. 해외 업체이다 보니까 잘 오픈도 하지 않고 업체를 가르쳐주지도 않고 거절회신이 올 때는 김이 빠진다. 답장이 늦어지거나 오지 않는 경우는 독촉도 한다. 마냥 늘어지면 기술부서에서 독촉해 오니 무능력하다고 손가락질 받을까 두려워진다.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오후가 되면 뒷골이 당기는 경우에 담배 한 대 피우는 것으로 날려 버린다.
미래 유망 프로젝트로 해상입찰 기술영업실로부터 해상석유 시추선 견적 지원 업무가 떨어졌다. 해상에 석유시추선을 제작해서 인도 납품하는 시스템 입찰 사전 작업 중에 하나인 것이다. 그의 회사에 이 업무에 전문부서도 없고 처음 떨어진 견적 지원 업무라 미국, 영국, 노르웨이, 스웨덴, 이탈리아, 덴마크 등지로 카탈로그에 의존해서 주소와 텔렉스번호, 전화번호를 찾아 견적의뢰서 영문 레터를 기안지를 올린다. 그러면 과장, 차장, 부장도 기술내용이나 품목이나 모든 것이 처음 보는 것이다. 그래서 영문 레터의 자구를 보고 수정을 받아 결재를 득하면 기술사양서 바인더를 첨부해 DHL이나 특급항공우편을 발송하는데 손품이 많이 들어간다. 하여간 익숙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을 하는 자부심을 가지고 임하는 보람도 있다. 석유시추선의 약 70%는 소방 설비비용으로 보통 책정된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아마 그의 회사에서 정윤수가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그는 저녁에 퇴근시간이 지나도 남아서 해상석유시추선 사업 자료를 읽으며 하나하나 익혀가는 재미를 붙였다. 소화설비업체가 어느 나라 어느 업체 목록을 작성하고 영문 레터를 쓰고 기술사양을 첨부해 마감시한을 정하여 보내준다. 마감시한 2주전에 텔렉스 영문 초안을 작성하여 텔렉스 실에 보내면 영문 텔렉스 스립이 첨부되어 내 책상으로 돌아오면 오류가 없는지 검토해서 목록에 적고 파일에 철하여 보관한다. 반대로 답신이 오면 상부에 보고하고 참고사항을 메모해서 상관들의 이해를 위한 작업도 중요하다. 그들을 지속적으로 리마인드 시켜야 부르지 않고 사인을 받을 수 있어야 자신의 업무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반복적인 메모전달은 공유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원자력 돔dome에 들어가는 캐스크 핸들링 크레인 Cask Handling Crane* 구매업무가 떨어져서 스웨덴 A&H회사에 견적의뢰를 보내고 답신을 기다리는 데 난데없이 미국 GE사에서 견적서와 기술사양이 날아왔다. 물론 기술사양은 모두 스웨덴 A&H회사에서 작성한 것이 낯설었다. 나중에 프로젝트 매니저로부터 안 사실은 전체기술보증은 미국 GE사이므로 대표 책임회사이고 견적서는 GE의 업무가 되고 기술사양 제출 즉 크레인 제품 및 기술은 스웨덴 A&H회사이므로 미국 원청 설계회사 벡텔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꼭 이렇게 정형화 된 것은 아니고 그 때마다 프로젝트마다 계약조건에 따라 업무분장이 달라지므로 숙지해야 할 사항인 것을 알았다. 조금씩 전진한다는 느낌이 몸과 머리로 익혀가는 것에 만족하는 요즘이 그는 신이 났다. 회사 일에 몰두할 때 정윤 수는 가장 자유스럽다는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개인의 능력이 신장해 간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끼고 자부심이 커져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영업본부에서 부장 한 분이 정윤수를 보자마자 책상에 꽂혀있었던 메모를 들어 올려 흔들었다. 본부장이 잠시 보자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해외기술 프로포절실이라면 몰라도 영업실이면 자신의 업무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니 무슨 일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해외영업본부 비서에게 언제가면 될까? 전화를 넣었더니 퇴근 시간 10분 후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퇴근 전이라면 몰라도 퇴근 후 시간도 의아하긴 했지만, 그 쪽 사정을 알 수도 없지만 알 필요도 없었다. 퇴근 시간 후에도 남아 일해야 하는 정윤 수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아라비아 카펫트가 깔린 영업본부실에 가서 담당비서를 찾아 안내하는 방으로 들어갔다. 부장님은 본부장실 앞에 책상이 있었으며 아무도 없이 혼자 앉아 서류를 보고 있었다. “제가 외자구매부의 정윤수입니다.”라고 말씀드리자 고개를 들면서 국제 영업맨 다운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단도직입적으로 “자네 해외 근무할 수 있는지? 가족이 있는지?”를 물어서 당황하고 말았다. “거기 외자구매부도 일이 매우 바쁠 것인데 불러서 미안하다. 지금 해외지사에 결원이 생겨서 급히 두 사람을 뽑아 보내야 한다.”는 요지로 호출 목적을 말해 주어 좋았다.
사실은 결원이 아니라 새로 티오(T/O)를 늘려서 실무자 2명을 추가로 파견해서 당해 공사수주영업에 투여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을 해 준다. 다음 날 외자구매부장과 차장이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호출을 해 부장 방에 들어갔더니 일 좀 할 만하면 사람 빼간다고 툴툴거리며 “정윤수, 너! 해외지사에 나가고 싶어?”라는 질문은 윽박지르는 것이지만 이미 대세는 정해진 듯 했다. “어제 저도 퇴근 후에 호출 받고 가서 황당했습니다.”라고 답변을 했다. “알았어, 그간 열심히 견적지원 잘 해주어서 널 데리고 가고 싶다고 하더라.” 기쁘다기보다 가족과 회색도시, 얽히고설킨 친족과의 타박과 이해관계라는 족쇄에서 풀려난 기분이었다.
순심은 서울여상 중에 제일간다는 여상졸업생 중 1,2 등을 다투었던 우수한 졸업생이었다. 학교추천으로 합격한 나름 수재 급이었다. 그녀 동료들이 똑 부러지는 여사원이라고 자랑한다. 판매기획부의 유일한 여사원이고 일찍 출근하고 부지런한 여성이었다. 커피 집에 나타난 그녀는 입술에 루주만 바르던 풋내기는 아니었다. 녹색 바바리에 하얀 머플러를 한 서울 멋쟁이에 표준어를 쓰는 인텔리 모습이었다. 늘 책을 가까이 한다는 편지내용에서도 나타난 문학소녀를 꿈꾸던 상상력이 풍부한 여성이었다. 아마 그녀의 글 솜씨가 옷차림에도 여지없이 나타낸 것이다. 미적 감각보다는 자신감이 넘치는 멋이 풍겨지는 성숙한 여성이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커피 잔을 감싸 쥔 그녀의 하얀 손가락이며 반듯한 하얀 이마며 긴 머리가 잘 빗겨져 아름답게 빛났다. 잠시 눈만 껌벅이는 그를 빤히 쳐다보는 그녀의 눈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흡인력이 있었다. 숨 가쁘게 전해지는 입김을 느껴진다. 지난날을 회상하며 순간 그녀에게 흔들렸다. 정윤수가 현재 처한 상황은 다람쥐 쳇바퀴처럼 연속되는 압박이 죄어오는 직장생활에 코가 석자로 빠져있었으니 낯선 장면의 연극무대에 첫 출연자가 된 것이다. 덧붙여 객지생활에 온기가 전해지는 살내 음이 필요한 욕구가 불쑥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며 순순히 일어서는 커피숍을 나와 나란히 영동교를 건너 뚝섬유원지 밤 풍경 속으로 청춘남녀는 빨려 들어간다. 안락한 침대에서 사랑을 나누고 싶은 충동에 약간의 스킨쉽으로 터치하는 짜릿한 감각이 신선하다. 그녀와 감정이 일치하는 순간이다. 걷고 있는 걸음은 템포가 아다지오조 메로디가 흐르는 음악이요. 한강 유람선은 소중한 밤을 밝히는 조명발 받는 남녀 주인공이다. 부드러운 뺨을 한강 바람이 감고 두 연인을 뒤로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서울 밤을 즐기는 데이트는 마냥 아름다웠다. 강가 바람이 불어오는 이 순간을 즐기는 영화의 주인공 되었다. 한강 수면에 반사하는 조명은 물결에 일렁이고 불어오는 바람에 그녀의 두 뺨은 흰빛으로 반짝인다. 그녀는 비누냄새가 아닌 샤넬5도 아닌 향수 냄새가 풍겨왔다. 파릇한 싹이 돋아나는 젊음이고, 분명 아름다운 청춘이다. 두 사람 각자의 인생에 드리워진 장애를 넘어 결연한 결심이 언제 어떻게 결정될지는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여기 이 시각에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현장에 서로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두 사람은 복잡한 머릿속처럼 얽히고설킨 계산을 버리고 도회생활에서 탈출할 사랑을 즐길 기회가 온 것이다. 언제 삼켜 버릴지도 모르는 회색도시에 저항하는 젊은 청춘은 넘치는 사랑을 다 나누기에도 부족한 밤이다. 현재 밤하늘 별빛 나라로 카페트를 타고 별이라도 따러 가는 로맨스 가득한 밤은 깊어가고 있다.
책상에 돌아온 정윤수가 이제 넓은 세상으로 나간다는 사실을 앞으로 박순심을 어떻게 설득해 안정을 시킬 수 있나 머리에 가득 찬 미결문제로 고심한다. 2~3년 후가 되면 그녀는 노처녀가 되는데 부모가 가만둘 일이 없을 것이다. 벌써 비행기 타고 하늘을 날아가는 생각과 함께 가르마가 정연히 빗겨지질 않고 뒤섞여 헝클어진 혼돈이 종일 떠나지 않았다. 그의 부모에게 의논하고 말고가 없는 일이다. 이것은 해외에 나가고 안 나가고는 나 자신의 일이요. 그녀가 기다리고 아니고는 그녀의 문제이지 나간다고 힘든 인생이 달라질까? 회의와 고심이 몇 날 며칠 계속되어 머리가 지끈 거린다. 물적 토대라면 허물수 있지만 사랑이란 감정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떨칠 수 없는 인연을 소중히 생각해야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돌아와서 동생들을 보살펴 학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월급쟁이가 화려한 직장생활이라 하더라도 평범한 직장인의 남편이 되어 그녀를 받아들이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결심한다. 이런 얽힘은 굴레이고 올무라 생각되면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 단지 결혼이란 달콤한 삶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뒤로 미루어 두기로 한 결정이 현재 할 수 있는 유일 답일 수 있다. 이런 마무리는 짧고 간단할수록 정답에 가깝고 서로에게 좋은 관계로 남을 수 있는 것이다. 수입원은 급료뿐인 평범한 생활인의 남편과 아내가 거실에서 단란한 식사자리의 인생 파트너로 자리할 것이라는 불확실한 기대를 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미국 유학 간 양조장 부잣집 딸보다 평범한 시골처녀가 더 편하고 고모가 지어준 바지저고리처럼 편하고 좋다. 만약 그녀의 결행이 선행되었을 경우 나와는 독립된 사고가 필요하다.
장남의 굴레는 심적 압박이 상존하는 가정 분위기 속에 가족사와 가정의 사소한 문제, 그의 어머니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한편 아들에게 의존하는 집안의 모든 소득을 독점하려는 집착에 가까운 아집으로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길인 셈이다. 아들을 물적 소유물 같이 취급하는 모친의 손아귀에 놓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물며 서울 하늘 아래에서 지긋지긋한 숙부와 숙모를 만나는 기회가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해외지사로 발령을 받으면 봉급 거의 1.5배로 불어나고 물적 토대도 쌓고, 2~3년 후 귀국하면 여유가 생기므로 매사가 잘 풀리리라 생각하면서 혼자 미소 짓는 것으로도 즐겁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여러 프로빈스province의 최고위자는 압둘라 왕의 동생이거나 아들이 다스리고 있는 까닭이다. ‘나임 사이드’와 짝이 되어 발주처의 내부정보와 인맥을 본사에 보고하는 핫라인의 역할이 윤우의 주된 임무이다. 연락소장은 겉껍데기이다. 수주정보와 해외네트워크를 담당하는 일선 세일즈맨인 것이다.
시멘트 공장 건설 수주, 담수공장 건설과 생활음용수로 공급 시설 개발 계획과 동반되는 발전소 전력생산은 현지 사우디 정부 산업부와 농축산부 산하기관이 계획하고 발주하는 주요기관이다. 그 알자배기 자리는 반드시 왕족이 차지하고 산업부 장관이나 농축산장관은 산하기관에 아들을 임명한다. 책임관리자로 두고 아버지를 업고 그 지원으로 경력을 익혀가는 그들 나름의 진로방식이다. 그 중에 ‘나임 사이드’는 특별히 가까운 사이로 발전하여 친구, 형제라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맺기까지 엄청난 노력과 자기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해외수주 창구 앞 게이트 주인은 콧대가 세고 자존감이 높으며 체격이 육중한 돌맨 이고 중동 장사꾼이다. 학부전공이 물리학이라 더 호감가는 친밀한 관계로 발전된 자신의 키 네트워크이다. 주말이면 사막 와디 별장에 가서 양고기 파티도 같이 지내는 형제가 된 것이다. 그의 저택이 있는 지방도소재지 프로빈스Priovince의 수도에 도착한 것이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카운트가 시작되는 날이 바로 오늘이다. 거대한 포석은 네 귀를 몽땅 내 집으로 키우는 것이다. 반드시 실현되는 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다. 잠시 전 착륙하는 비행기 창을 통해 까마득하게 먼 홍해를 항해 무역선이 가는 풍경이 뇌리에 스쳐지나 갔다. 사우디 현지 부하 직원 이민‘나임 사라니’와 인도인은 이민국 관련 업무를 보는 현지인과 함께 동행 비서역할을 하는 현지인이다. 리셉션을 나와 공항 게이트를 빠져나오니 실전에 들어간 정글이 바로 사막의 모래 폭풍이다. 홍해로 스노컬링하며 줄무늬 열대어 홍돔이 헤엄치는 산호바다에 흠뻑 만족감이 극도로 올라간다. 오리발을 좌우 번갈아 발움직임 느낌도 양 허벅지와 종아리에 전해지는 뻑뻑한 시저스 동작에 흡족 한다. 해초를 먹고 자라는 고등 등속을 잡아 망태에 넣고 차곡차곡 저금통 돼지배가 나온다. 모래사장에 헐떡거리며 널부러진 몸과 꿈을 던져두고 육체에 모래를 잔뜩 묻히고 먼 하늘을 쳐다본다. 신의 존재, 신앙의 깊이, 인간의 겸손, 이타적인 희생, 물질로부터 해방되는 자유, 모든 제도로부터 놓여나고 싶은 자유인, 강호의 고수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은 기념하는 비석이라도 세워보고 싶어진다. 이제 그는 해외영업의 일선 정보담당이다. 질곡으로부터 자유로와진 세일즈맨 월급장이가 사막에 녹색 잔디밭에 골프를 치는 접대 영업에 이골이 났다. 정보의 바다가 넓어질수록 심해가 깊어질수록 비밀은 꼭꼭 숨어서 거대한 파도 해일보다 더 무서운 메이저 투자자에게 밀려나는 운명이 세일즈맨의 인생인가 대부분의 인간은 가난하다. 월급쟁이 세일즈맨도 대체로 거부는 없다. 오히려 가난하다고 해야 하나.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 허영을 벗어던지면 홈리스로 일생을 마치는 사람이 오히려 행복감이 더 높다. 바닥에 침이라도 뱉는 홈리스에게 신의 은총이 내리기 바란다.
*캐스크 핸들링 크레인 Cask Handling Crane: 핵연료를 장입하거나 운반하는 공중작업을 하는 기중기 안전시스템이 핵물질을 운반하므로 초긴장 작업용 기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