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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동일한 주제의 연속 : 순수한 신앙 상태에 대하여 또는 신의 활동에 내맡김에 관하여(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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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순수한 믿음의 열매는 전혀 썩지 않습니다. 열매 껍질이 너무나 딱딱하고 그 안은 너무나 텅 비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잔뿌리와 같은 내 마음이여, 하느님 품 안에 숨어 무명인(無名人)으로 살아가십시오!
그분의 비밀스런 능력에 힘입어, 그대는 볼 수 없으나 다른 이들에게는 자양이 되고 기쁨의 원천이 될 가지와 잎, 꽃과 열매를 밖으로 피워내고 맺으십시오! 그대의 그늘 아래 휴식을 취하러 와서 뭔가 시원한 음료를 찾을 모든 영혼들에게, 그대의 입맛이 아닌 그들의 입맛에 따라 열매를 내어 주십시오!
은총이 그대로부터 떼어낼 모든 접목들 하나하나에, 바로 이 동일한 접목들이 영혼들에게 이식되었을 때에만 비로소 명확하게 나타날, 불분명한 인장(印章)이 하나씩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모든 접목들에게 모든 것이 되고 그대 자신은 오로지 내맡김과 무관심 속에 머무르십시오! 보잘것없는 누에여, 은총의 열기가 그대를 자라게 하고 그대를 부화시킬 때까지 비좁고 어두운 지하 감옥 같은 그대의 비참한 고치 속에 계속 머무르십시오!
그리고 나서 은총이 그대 앞에 내놓는 모든 잎사귀들을 먹고, 이 내맡김의 활동을 하는 동안 그대가 상실한 평온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이 신적 본성이 그대를 멈춰 세우면 그때 비로소 멈추도록 하십시오! 거듭되는 활동의 중지와 불가사의한 변모들을 통해,
그대의 모든 옛 형태와 방법과 수단들을 잃어버리고, 죽어 부활함으로써 이 신적 본성 자체가 그대에게 가리켜 보일 모습을 띠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나서 남모르게 그대의 명주실을 뽑아내어, 그대가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일을 하십시오!
그대의 온 능력 안에서, 그대 자신 스스로가 못마땅하게 여길, 은밀한 동요를 느끼십시오. 그대는 물론, 죽어서 꿈쩍도 하지 않는, 그러나 아직도 그대가 다다른 종착지에 이르지 못한 그대의 동료들을 은근히 부러워하면서, 그 동료들을 능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에게 감탄을 금치 못할 것입니다. 내맡긴 채 부단히 몸을 놀려 교회의 우두머리들과 세상의 고관들 그리고 모든 종류의 영혼들이 영광스럽게 입고 다닐 명주실을 뽑아내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난 후, 보잘것없는 누에여, 그대는 무엇이 될 것입니까, 어디로 빠져나갈 것입니까? 오, 놀라운 은총이여! 이것이 한 영혼으로 하여금 그렇게 많은 다양한 모습들을 달리 지니게 하는 방법인 것입니까? 은총이 영혼을 어디로 이끌고자 하는지 누가 압니까? 만일 보지 않았다면 자연이 누에를 가지고 무엇을 만들어 내는지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누에에게는 그저 잎사귀들만 보여주면 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 나머지는 자연이 다 알아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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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영혼들이여, 이와 같이 여러분은 여러분이 어디에서 왔는지, 여러분이 어디로 가는지,
여러분이 하느님께 대해 갖고 있는 생각으로부터 거룩한 예지가 여러분을 어떻게 끌어내는지, 어떤 종착지로 여러분을 인도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남겨진 유일한 일은 완전한 수동적인 내맡김으로서, 이는 성찰하지 않고, 본보기도, 실례도, 방침도 없이, 자신을 되는대로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행동해야 할 때에 행동하고, 그만둬야 할 때에 그만두고, 잃어야 할 때에 잃으면서, 그리고 이런 식으로, 부지불식간에 끌림 혹은 내맡김으로 인해 행동하거나 그만두면서,
우리는 책을 읽기도 하고, 책과 사람을 잠시 버려두기도 하고, 침묵하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하고 멈추기도 합니다. 그 다음에 무엇이 뒤따라올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말입니다.
그리고 여러 번의 변모를 거친 뒤 완성된 영혼은 날개를 부여받고 천상으로 날아오릅니다.
자신의 상태를 다른 영혼들 안에서 영속시키기 위해 번식력이 강한 씨앗을 지상에 남겨두고서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