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와 꽃뱀 40
동철은 내처 잠에 취해 있었다. 그가 잠에서 깨어 일어났을
때는 오후 1시쯤이었다. 동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두
리번거렸으나 황여사가 보이지 않았다. 언뜻 침대 머리맡을
보니 급히 휘갈겨 쓴 듯한 메모지가 있었다. 그녀의 메모였
다.
─`너무나도 좋은 동생에게
지난 이틀 통안 너무 행복했어요. 내 생애를 통해 최고로.
잠든 당신을 깨우기가 미안해서 당신 볼에 사랑의 키스 마
크를 찍어 놓고 갑니다. 전기 밥솥에 밥 있어요. 식탁에 반
찬 차려놓고 가니 국 데워서 식사하세요. 혼자 있을 때라도
식사는 가급적 거르지 마세요. 그리고 다음 내가 올 때까지
인감 1통과 주민등록등본 1통을 떼어놓으세요. 여기 아파트
등기 이전에 필요한 서류니까 바쁘더라도 꼭 준비해 놓으세
요. 그럼,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안녕. 잘 있어요.
─`사랑하는 누나가
동철은 얼른 거울을 보았다. 양쪽 볼에 붉은 루주로 선명하
게 찍혀 있는 자국을 확인하고는 씩 웃었다. 화장실에 들어
간 그는 샤워를 하고 그녀가 차려놓은 식사를 아침 겸 점심
으로 때웠다. 그리고 다시 부족한 수면을 취하다 스탠드바
로 출근하였다.
동철의 생활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스탠드바는 항상
이것저것 처리할 일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오늘 당장 춤을
배우려던 계획을 며칠 뒤로 미루었다. 황여사와 만난 지 3
일쯤 지난 날이었다. 동철은 춤 선생 오창환의 댄스 교습소
로 찾아갔다.
동철은 그때 그날 밤 박여사와 오창환의 일도 자못 궁금하
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동철은 본격적으로 춤을 배
우겠다고 작심하고 갔다. 동철이 교습소에 들어서자 춤을
배우는 사람들은 열 명 남짓 되어 보였다.
오창환은 서른 중반쯤 된 여자를 잡고 열심히 돌리고 있었
다. 오창환은 동철을 보자 한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잠시
후 음악이 바뀌자 오창환은 그녀의 손을 놓고 동철에게로
다가갔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난 사람처럼 반갑게 악수를 교환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악수를 하면서도 서로의 마음을 읽으며
의미 있는 웃음을 주고받았던 것이다. 오창환은 동철을 원
장실로 데리고 들어가서는 차를 시켰다. 동철이 먼저 궁금
해서 입을 열었다.
「오선생님, 그날 어땠습니까? 재미 좋았어요?」
「아, 좋았지요! 물론 2차까지는 안 갔지만 애프터를 신청
하더군. 그래서 다음주 토요일에 무학성 카바레에서 6시에
만나기로 했어요. 근데 그 여자 대단해 보이데요? 모든 일
에 자신 있어 보이고 배포가 대단해. 술도 잘하고 춤도 한
참 놀아줄 만하더라고요. 나이에 비해 젊음이 있어 좋고.」
「오선생님, 역시 춤 싸부는 싸부구먼. 잘해 봐요. 큰 손해
는 없을 겁니다.」
「그건 그렇고. 강지배인 오늘부터 춤 배우려고 온 거지?
낮 시간이 많으니까 하루도 빼놓지 말고 나와요. 일단 두
달만 꾸준히 나와요. 그럼, 내 책임지고 일년 이상 수준으
로 만들어 놓을 테니까. 그래야 같이 다니며 놀 것 아니오.
자네는 얼굴 마담으로도 절대 필요하거든. 하하하.」
오창환은 동철보다 다섯 살 위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나이
에 크게 개의치 않고 오랜 동료처럼 지내기로 했다.
「난 프로 냄새가 나서 여자들이 경계를 많이 합니다. 그래
서 강지배인이 중간에서 적당히 완충 작용을 해가며 함께
작품을 만들어 가는 거야. 알겠소? 하하하.」
둘이는 결의인지 야합인지 모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연신
웃었다.
동철은 이날부터 매일 땀을 흘리며 사교춤을 배우기 시작했
다. 하지만 동철은 춤을 배우는 시간에는 오창환을 ‘오싸
부’로 불렀다. 그리고 깍듯이 선생 대접을 했다.
동철은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우기 시작하였다. 오창환은 동
철이 전부터 알고 있던 기본 스텝을 대충 해보이자 감탄을
하는 것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동철은 원래 태권도로 단련되었기 때문에
동작이 무척 민첩하고 몸의 중심 이동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런 동철인지라 춤의 한동작 한동작을 태권에서 형을 익히
듯 하며 회전 동작에서도 몸의 중심을 완벽에 가까울 정도
로 소화해 냈다. 오창환은 동철의 성실하면서도 흔들림없는
자세를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거기에 동철은 예전에는 음
악을 전혀 몰랐으나 업소에서 매일 음악과 함께 살다보니
박자 감각도 뛰어났다. 오창환은 더욱 놀라며 칭찬을 아끼
지 않았다.
「내 오늘에야 수제자를 만났구먼. 자네는 춤의 천재야. 딱
춤 체질이야, 체질. 이 사람 그 동안 어디 갔다 이제야 나
타났나? 이렇게 숨은 재주꾼이 눈앞에 있는 줄은 정말 몰랐
네. 후계자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먼.」
「오싸부, 놀리지 마세요! 남은 지금 발 맞추랴 음악 맞추
랴 정신이 하나도 없구만. 진땀 쏟아지는데요.」
동철은 첫날부터 맹연습을 하였다. 특히 어릴 적부터 집중
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동철은 공부든 운동이든 어려서부터
승부욕이 유독 강해 남에게 지는 것을 싫어했고, 자기가 하
겠다고 한번 마음먹은 일은 그 누구도 말리지 못할 정도로
열성을 다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배우자 음악을 맞추는 데 여유가 생겼
다. 지르박을 10여 가지 이상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