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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강 습작픔 합평작 (9월 25일 용)
1. 이름 / 김경일
어느 날 아내와 같이 TV를 보고 있었는데, 드라마 속 여종의 이름이 삼월이었다. 사극에는 여종의 이름을 삼월에 태어났다고 삼월이라 부르고, 오월에 태어났다고 오월이라 불리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아내를 보고 “당신은 이월에 태어났으니까 이월이네” 라고 하면서 “이월아” 하고 부르면서 놀렸다. 아내는 잠시 생각하더니 갑자기 나를 보고 “십쇠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웬 욕을 하는가 하고 보니까, 아내는 “당신은 시월에 태어났으니까 사극에서 사내종들은 돌쇠야, 마당쇠야 이렇게 불렸으니까 당신은 십쇠가 아니겠나” 하면서 “십쇠야” 라고 부르면서 놀렸다.
그 후로는 난 아내에게 “이월아” 라고 부르면서 놀릴 수가 없었다.
2. 3막을 열다 /금우동
늘 흔들리며 살았다. 생계를 위해 젊은 시절 꿈꾸던 것과는 다른 길을 묵묵히 참고 견디었다. 나의 재능이나 역량과 자원은 특별하지 않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갈증과 목마름은 늘 살아 있었다.
오래 다니던 직장이 금융 위기를 맞아 파산하면서 내 삶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실직하고 보니 막막했다. 평생직장이라 생각하고 다른 길은 돌아보지도 않았기에 할 줄 아는 거라곤 신협 금융업무밖에 없었다. 급류에 휘말린 것처럼 내가 나를 내몰며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나의 학력은 공업고등학교 화공과가 최종학력이었다. 제일합섬 염색가공과 현장 사원으로 6년간 일한 것 외에 18년간 신협 금융업무가 경력의 전부였다. 세상은 금융위기와 함께 대단위 구조조정과 명퇴 바람, 고용 없는 성장 등 암울하고 냉혹한 사회 분위기가 시대의 삶을 지치고 주눅 들게 했다. 밀레니엄의 희망을 노래한 지가 엊그제인데, 이태백, 사오정, 오륙도가 화자 되면서 대규모 실업자 군단이 쏟아지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대로 무너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각오로 취업과 실직을 반복했으나 하루살이 인생 같아 자괴감이 몰려들었다.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학벌이 대단한 것도 아니니 쓰일 곳이 많지 않았다. 고정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는 뭔가 특별한 재능이나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보를 모으며 공부할 방법을 찾아 기웃거렸다.
마침 고용보험제도가 시행되면서 내일배움카드를 통하여 직업능력개발계좌제 훈련을 통하여 먼저 직업상담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이것이 절망적으로 허물어져 가던 자신감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만학으로 청소년 복지를 전공하면서 사회복지사, 청소년지도사, 평생 교육사 등 자격을 취득했다. 한 번 공부를 시작하니 연관된 자격증을 따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야 더 많은 기회가 생길 거라는 계산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공부하는 즐거움이 너무 크기도 했다. 특수재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학사가 되면서 장애인 재활상담사, 장애인 활동 지원사,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이러한 배경에는 장애인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의 고충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밑바탕이었다.
아내가 파킨슨으로 투병한 지 20년이 넘는다. 양쪽 무릎과 왼쪽 발목 그리고 왼쪽 고관절이 인공관절이다. 오른쪽 발목은 아파서 50m 걷기도 힘들다. 허리도 아프고 숨이 차서 침대에 누워지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아내는 스물두 살의 꽃다운 나이로 나에게 시집을 왔다. 8남매 맏이였다. 처가에서는 첫 개혼이었다. 내가 혼자서 홀어머니 병구완을 할 때였다. 나의 처지는 중풍으로 쓰러진 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호구지책이 막연한 스물다섯 살 청년이었다. 연탄값이 부족하여 어머니방과 살림방의 연탄을 하나로 밤새 번갈아 피울 때였다. 결혼 직후 장인어른께서 처음 사돈댁을 방문하여 하룻밤을 지내셨다. 돌아가시면서 아내에게 몰래 연탄 100장 값을 주고 가셨다는 걸 훗날 알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딸 셋을 낳아 둘을 출가시켰다.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중년의 딸은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아 보육교사,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하였으나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딸은 나와 함께 만학으로 특수재활교육을 전공하고 학사가 되었다. 장애인 재활상담사, 장애인 활동 지원사, 요양보호사자격을 추가로 취득하였다. 지금은 꾸준히 약물치료를 병행하면서, 생활 지원사로 활동한다. 가정에서 나의 재가 가족 요양보호사 일을 돕고 있어 든든하다.
집안일을 건사하는 건 대부분 아내의 몫이었다. 인형 눈 붙이기, 밤까기, 재봉틀 삯 바느질까지 안 해본 게 없었다. 나와 본인의 옷은 물론 아이들의 의복까지 직접 만들고 고쳐 입혔다. 시장에서 사서 입힌 것보다 훨씬 많았다.
아내의 노고와 희생은 인생의 선물 같은 사랑이었다. 우리 가정을 위한 수많은 헌신을 모두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겪어낸 어려움은 무엇으로도 보상받은 바 없다. 말 못 할 숱한 고생에 대하여 나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아내가 일궈온 모든 삶의 자산은 우리 것이 되었다. 작고 일상적인 것 속에서 함께하는 삶의 소중함을 끊임없이 나에게 깨우쳤다. 이제 아내는 파킨슨과 관절통 그리고 잦은 숨 차는 고통 등 지병이 깊어지면서 앞으로 얼마나 고통과 아픔을 함께하게 될는지 모를 일이다. 내가 옆에 없으면 불안하다고 말한다. 나와 함께 살아왔다는 이유만으로 지금의 아픔을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게 얼마나 억울한 일일까. 그래도 원망을 속으로 삭이고 참아주고 견뎌내면서 나와 함께 지금의 삶을 동행하고 있다.
이제야 아내와 동행한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지금의 아내가 건사해온 가정과 아이들의 성가 이후 오늘까지의 삶의 가치를 알 것 같다. 아내의 땀으로 지키고 가꾸어 온 우리 가정의 행복을 황혼에 이르러서야 느낄 수 있다.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부족한 나를 만나 갖은 고생을 뒤로하고 요만큼이라도 지킨 우리 가정이 너무 귀하고 소중하다.
아내는 세상 모두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나의 대지이고 하늘이다. 어머니이고, 누이며, 동반자이고, 친구이다. 참으로 염치없고 미안한 일이지만, 수많은 구비의 인생살이에서 알게 모르게 저지른 잘못을 사랑의 언어로 치유하고 싶다. 안타까운 회한의 심정으로 후반기 인생을 갈무리하고 싶다. 아내에게 사랑을 전하고 지금까지의 과오에 대한 용서를 서둘러야 할 일이다.
반성하자면 안타까운 일이 한둘이 아니다. 젊은 시절 함께 하지 못하고 내 생각에만 빠져 있었던 것이 후회된다. 젊은 시절에는 좀 더 자상하게 살펴주지 못한 것에 불만이 많았다. 변명하자면, 나 자신을 추스르기에도 바쁜 나날이었다. 업무로 이리저리 움직여야 했고, 혹여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면 동분서주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였다.
함께하는 시간뿐만이 아니었다. 인정하는 말에도 너무 서툴렀다. 별것 아닌 사소한 것에도 감싸기보다 상처 주는 말이 훨씬 많았다. 의사소통 과정에서 내가 불편한 심기를 보일 때, 웬만하면 아내는 참고 또 참았다. 그에 비해 나는 조그만 불만에도 불편한 심기를 금방 드러냈다. 나를 위한 일상의 작은 조언에도 옳고 그름을 떠나 짜증부터 냈다. 고함치고 닥치는 대로 화풀이했다.
지금까지 빈약한 영혼을 되돌아보지 못하고 살아온 세월의 더께만큼 퇴행해온 노슬아치의 욕망을 푸념해본다. 관료들을 낮추어 부를 때 벼슬아치라고 한다. 이에 빚 대어 노인들을 조롱할 때 노슬아치라고 하기도 한다. 과연 나는 노슬아치가 아닌가 하고 스스로 성찰해 본다. 나이가 들면서 나이 이외에는 도무지 내세울 게 없는 척박한 인생살이였다. 사고는 협소하고 폐쇄적이며 경직되어간다. 도무지 세상에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한 군데도 없다. 모든 게 지겹고 답답하다. 내가 보기에는 세상 사람이 몰염치하고 몰상식하고 몰지각한데 세상은 나를 그렇게 취급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노슬아치임이 분명하다.
인생 100세 시대, 초고령사회가 눈앞에 와있다. 무한정 확대되는 요양병원과 요양원에 수용되는 노인들을 일상으로 보면서, 노령화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앞선다. 9회 말 투아웃의 종반전 인생이 절박하다.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같은 길을 걷는 벗들이 함께하니 가능하지 않을까. 피폐해 있던 나의 토양에 거름도 주고 물도 주며 실한 결실을 보기를 갈망하지만 빈약한 들 어찌하겠는가. 회한으로 얻을 마지막 수확이 될 것이다.
이제 재가 가족 요양보호사를 하면서 잘 사는 일보다 잘 죽는 일이 정말 필요하지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실히 느낀다.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고 남은 삶을 얼마나 잘 엮어 나갈는지가 노년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 것이다. 지난날을 반성하고 속에 맺힌 것들을 배설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쌓아두기만 하면 절대 소화되지 못 하는 일도 있는 법 아닌가.
인생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나, 결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임을 나날이 깨우쳐 가는 중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몸은 지치고 닳을 것이고, 육신의 불가피한 소멸을 맞이할 것이다. 지금까지 삶의 여정을 함께 해온 배우자에게 내 존재 자체가 깊은 두려움을 진정시키는 위로가 된다면 얼만 좋을까. 퇴행해 가는 내면을 일으켜 세워 성찰을 깊게 하여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 필요한 시간이다. 요양보호사를 하며 느낀 것들과 회한의 감정들, 용서와 화해가 필요한 일들을 되새겨 지나온 삶을 잘 갈무리하리라.
사랑하는 후계 세대인 내 아이들에게도 부담되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삶으로 좋은 인품과 영혼을 지닌 인격으로 거듭나야 하리라. 성숙한 품성으로 잘 갈무리되고 다듬어지고 훈련된 내공을 키워야 겠다. 마음의 밭을 열심히 갈고 시대적 소명과 사회적 양심에 부합하는 삶이 되도록 좀 더 말랑한 사고를 가지는 노력이 필요할 노년이다.
3. 새의 몸짓/박남숙 1
헉, 헉, 헉
거친 호흡이 몰려온다. 태양은 서서히 고도를 높이고 이마를 비추는 아침 햇기는 이내 따갑다. 무거운 다리는 지면을 스치다 달리기를 멈춘다. 가쁜 숨을 몰아쉬다 정면을 바라보던 시야에 강변의 풍경이 들어온다. 새하얀 백로 한 마리가 물속을 주시하고 있다. 과녁을 향한 한 치의 흔들림 없는 자세로 하루의 양식을 얻기 위해 인내의 시간을 견디는 중이다. 저 집중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생존을 위한 치열한 투지의 현장에 선 나는 부끄럽다. 한 곳에 마음을 두지 못하고 흩어진 삶의 부스러기들이 아무런 결과물을 담지 못한 채, 생의 중턱을 넘는다.
작년 여름, 저녁 산책을 하다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을 달렸다. 얼마를 뛰자 입안이 바짝 말라 단내가 나고, 오른쪽 상복부가 묵직해지면서 옆구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근막 속에 둘러싸인 장기(臟器)들은 때아닌 봉변을 토로하고, 몸의 무게를 감당 못 한 발은 바닥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달리는 건지 걷는 건지, 지면에 닿은 발의 감각은 무디기만 했다. 내 몸이 이렇게 무거웠구나, 염분 기 진한 땀방울이 모공을 비집고 흘렀다. 그것은 몸 구석구석, 응어리들이 찐득하니 달라붙어 숙변처럼 찝찝한 냄새를 풍기며 베여 나왔다.
머리만 무거운 생활을 몇 년째 하면서 아무런 진척도 없는 삶을 남들과 비교하느라 비난의 화살은 고슴도치처럼 가시 장막을 둘러쳤다. 고인 물처럼 썩어만 가는 알량한 지식 나부랭이를 제 자랑처럼 포장해보려 해도 한계는 너무나 빨리 찾아들었다. 숫제 책은 읽어 무에 하는가, 세상은 책 속에 있지 않은 것을. 오래 앉아 있기 위해 달려야 하고 잘 쉬기 위해 고된 하루를 축적해가는 우리네 생은 모순덩어리다. 두서없이 쟁여지는 도돌이표는 우열을 가리지 못한 채, 우리 삶에 무엇이 중요한지 잊어버리게 만든다. 잊어버린 것보다 잃어버린 것이 더 쓰린 법이다.
거친 물살도 아랑곳없이 부동의 자세로 감내하는 백로를 오래도록 지켜본다. 사냥의 팔 할은 완벽한 순간이 오기를 고대하는 기다림이라는 데, 흡사 조각상인 듯 도도하다. 아침 햇살 가득 찬 강줄기를 따라 드디어, 백로가 날아오른다. 물 위를 스치듯 비행하는 백로의 푸른 날갯짓을 넋 놓고 바라보다 실없는 생각 한 줄기가 들어온다. 새가 나는 이유는 머리가 가벼워서일까. 묵직한 머리는 이런저런 계획을 늘어놓느라 행동을 방해하고 정보를 수집한답시고 책상머리를 떠날 줄 모르는데, 새는 저리 가벼이 날아간다.
새의 몸짓처럼 양팔을 흔들며 아스팔트 바닥을 내딛는 발밑의 감각을 일깨운다. 제자리에서 발을 굴려 점프를 한다. 쿵쿵, 힘 빠진 다리의 근육들이 미세하게 떨린다. 앞을 보며 오른발을 박차고 달려 나간다. 어깨에 힘을 빼고 팔을 굽혀 주먹을 살짝 그러쥔 채 몸의 중심축을 향하여 흔든다. 양팔을 가볍게 흔들면 완만한 속도로 나아가고, 세차게 흔들면 달리는 속도는 빨라진다. 어깨와 팔의 움직임은 새의 날갯짓이다. 턱을 당겨 시선을 고정시키고 안정적인 착지와 도약을 위해 팔다리의 움직임에 집중한다. 바닥을 박차는 다리에 힘이 실린다.
후, 후, 후
고른 숨소리에 오늘의 속도와 거리를 어림짐작해본다. 손수건으로 흘러내린 땀방울을 훔치며 멀리 목적지를 가늠한다. 무덥고 습한 여름날의 달리기는 위안이 된다. 몸의 무게를 온전히 받아낸다는 것은 색다른 희열을 준다. 첫 달리기의 찝찝하고 짠내나던 땀방울이 이제는 개운하다. 하루치의 묵은 군더더기가 온몸을 타고 흐르면 새 옷을 입은 듯 맑아진다. 오늘도 나는 달리기로 힘을 얻는다. 삶은 실행에 있다.
4. 출산장려책 /변미순
1) 세계적으로 저출산은 심각한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이미 암울한 수준이다. 젊은이들이 출산하고 육아하고 또 직장을 다니는 것에서 제일 먼저 결혼을, 다음은 출산을 포기하게 되었다.
2) 오천만이라는 인구가 육, 칠천만 수준으로 증가되어야 국가가 선진국과 같은 경제적 수준으로 올라 갈 수 있는데 머지않아 오히려 삼천만명이될 지경이니 심각한 사태에 대한 긴급 조치는 그 어떤 정책보다 우선 내어놓아야 한다.
3) 최근 필리핀에서 가사도우미 100여명이 올해 안으로 국내에 들어온다는 뉴스가 났다. 이런 졸속한 정책은 도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며, 누가 제안하고 누가 확정하는지 묻고 싶다. 게다가 필리핀 가사도우미가 영어로 아이를 돌볼 수 있다는 부가적 기능까지 있다는 설명에 까무라칠 지경이다.
4) 심리학 및 정신건강학 분야 강의를 몇 개 들으면서 몰랐던 정보를 알게 되었다. 태어나 만 오세까지의 아이를 어떻게 돌보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정해진다고 하였다. 사이코페스, 정신분열증, 대인 기피증 등 사회적응력이 떨어지거나 상상치 못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분석해보면 어릴적 성장이 평범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5) 평화롭고 행복하며, 바른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였지만 결국 너무 어릴 때부터 어린이집, 유치원을 다니면서 부모로부터 분리공포를 느껴야하는 현실도 크게 한 몫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만 오세전의 아이를 이제 타국의 사람에게 맡기는데 국가가 지원하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
6) 뇌세포는 어릴 때 부모와의 소통에 있어 어떻게 대꾸해주고, 놀아주고, 이야기를 해 주느냐에 따라 긍정적인 세포로 자라거나 부정적인 세포로 증식하게 된다고 했다. 만 오세에 뇌의 사고방식 색상이 완성된다는 이론은 무척 놀라웠다. 그러면 반드시 오세까지 부모가 자식을 키워야한다는 것을 정책으로 내어놓아야 한다. 육아에 의해 경력이 단절되고, 지출은 증가하고 수입은 감소되는 그 현실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
7) 짧은 나의 소견은 이렇다. 출산과 동시에 육아는 5년간 아빠와 엄마가 책임진다. 그때 현재 필리핀 가사도우미게에 주는 월 200만원을 육아책임자에게 월급처럼 국가가 지불한다. 아빠와 엄마가 돌아가며 육아할 수 있다. 또한 만 오세가 지나고 복직할 경우 육아기간을 복무경력으로 인정해 준다.
8) 아이의 부모가 육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또 그 육아를 경력인정해 주는 주체가 국가가 되면 된다. 그리고 월 200만원은 현재 시세로 적지도 많지도 않지만 내 아이를 내가 케어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게 하는 최선의 금액이다. 여기에서 더 많은 출산과 육아를 하는 가정이 이어질 수 있게 하려면 이보다 많은 지원책을 개발해나가야 젊은이들을 조금이라도 설득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9) 필리핀에 대한 거부감정이 있어 이러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타국의 사람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긴다는 것인지 작금의 임시방편에 대한 정부의 대책에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뉴스에 여야의 정치인들이나 뇌과학자, 유아전문가, 심리학자, 정신의학자, 교육자들이 왜 함구하고 있는지 무서운 생각마저 든다.
10) 기성세대로서 젊은 세대들이 결혼하고 출산육아하는 것을 위해 어떤 지원이라도 하겠다면 대 찬성이다. 그러나 이런 졸속한, 치졸한 정책으로 나라의 정체성을 잃어가며 좁쌀같은 묘책을 내어놓는 정치인들에게 크게 실망이다. 출산률 증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혼을 타국에 팔아버리겠다는 것이다. 또 육아의 중요성을 진심으로 이해한다는 생각은 1도 없는 국가라는 생각에 한숨이 먼저 나온다.
11) 그림은 크게 그려야 한다. 대책은 긴 안목으로 내어놓아야하고, 큰 문제는 더 큰 대응으로 해결해 가야한다. 고작 100명의 필리핀 가사도우미가 무슨 해결책이 될 것이며 그곳에 사용된다는 서울시의 1억5천만원이라는 지원금도 피같은 세금을 그냥 버리는 것이다.
12) 우리나라의 저출산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젊은이들에게 물어보고, 그들이 진심으로 무엇을 아파하는지 들어보아야 한다. 이런 큰 문제를 위해 생각해 낸다는 것이 겨우 튿어진 치맛단을 옷핀 하나로 막음하듯 대응하는 것은 아니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성껏, 제대로 연구하여 이 아름다운 대한민국에 젊은 피가 활기차게 돌아가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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