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작년 4월 시작한 백두대간 남진이 드디어 종착역에 닿았다..
백두대간이야 이미 지리산 천왕봉에서 끝을 맺었지만
천왕봉에서 남쪽으로 능선을 더 이어 웅석봉을 지나
남명 조식선생이 후학들에게 학문을 전수하던 산천재에서 완전한 마무리를 한다..
2주만에 다시 도착한 밤머리재..
대간완주를 축하라도 하듯 하늘은 더없이 맑다...
웅석봉과 밤머리재는 대간을 처음 시작하면서 접해 본 까닭에
아직도 남다른 감회가 남아 있고 언제 다시 또 이곳에 오게 될까 싶어
주변을 한 번 휘~이 돌아보고 마지막으로 들머리에 올라선다...
초반부터 한동안 가파른 오름길이 이어지고...
859봉에서..
안그래도 제일 꼴찌로 대원들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데 휴대폰의 GPS가 자꾸만 말썽이다.
휴대폰의 문제인지 앱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신형이라고 휴대폰을 바꿨는데
GPS작동이 자꾸만 끊긴다...
이럴줄 알았으면 괜히 바꿨다는 생각에 왈칵 짜증이 든다..
산행하면서 자꾸 휴대폰을 조작하다보니 점점 더 더디기만 하는데..
꾸물럭거리면서도 그럭저럭 능선에 올라서니 휴식을 취하고 있는 대원들이 보이고
서서히 조망도 터지면서 곧이어 헬기장에 도착한다...
헬기장
돌아보니 천왕봉이 구름에 싸여 정상부는 보일듯 말듯...
날씨는 맑은 데 시계는 그리 깨끗해 보이지는 않아 조금은 아쉽다...
웅석봉이 보이고...
계속되는 능선길에서 웅석봉도 바라보며 왕재를 지나고
쉬엄쉬엄 40분쯤 후 달뜨기능선 갈림길에 도착한다..
홍계리
왕 재..
처음 대간을 시작할 때 휴대폰을 잃어버려서
왕재까지 왔다가 다시 되돌아 가던 생각도 문득 난다...
다행히 뒤에오던 분이 주워오는 바람에 수월하게 찾았지만...
그러고보니 대간 첫날 부터 머리깨지고 휴대폰 분실하고...
유별나게도 시작했다 싶다...ㅎㅎ
지리산 천왕봉이 구름에 싸여있고...
돌아본 도토리봉..
웅석봉과 달뜨기능선 갈림길...
잠시 후 웅석봉이 코 앞에 다가오고...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 와야 하지만 모두들 웅석봉으로 향한다...
2년여만에 다시 올라 선 웅석봉...
이곳에서 보는 천왕봉의 조망을 기대했건만
아쉽게도 구름이 아직도 정상부를 떠나지 않고 있어 온전한 모습은 보이지가 않는다..
오늘이 대간 마지막 날이고 등로도 그리 어려운데가 없어 그런지 대부분 유유자적...
웅석봉에서 보따리를 풀고 한동안 쉬어간다....
웅석봉에서 본 지나온 능선...
웅석봉을 내려가는 길에 어천 갈림길을 지나고......
어천에서 처음 백두대간을 시작할 때가 생생하게 떠 오른다...
산행 시작도 하기전에 교통표지판 모서리에 머리가 부딪혀 깨지고..
웅석봉 아래 헬기장에서...
웅석봉에서 달뜨기능선으로 이어지는 등로는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전체적으로 고도를 낮춰가는 형국이라
별로 힘들이지 않고 진행한다...
큰등날봉...
달뜨기능선으로 들어선 지 40분쯤후 큰등날봉을 지나고
다시 15분쯤후 조망이 좋은 바위위에 선다..
하지만 지리산은 오히려 오전보다 구름에 더욱 가리워졌다..
홍계리..
가야할 감투봉이 보이고...
조망바위에서 10분쯤 내려선 홍계리(딱바실계곡) 갈림길..
선두그룹이 점심을 마치고 일어선 자리에서 우리도 점심식사를 한다...
점심식사후 곧바로 직진길로 갔는데 우측으로 진행했어도 나중에 만나는 것 같았다...
딱바실계곡갈림길에서 곧바로 가다가 감투봉, 이방산 방향은 우측으로 빠져야 하는데
등로가 희미한 탓에 앞서가던 일행들이 모두 고령토채취장으로 곧바로 간다....
이곳부터는 나도 처음 가는 길이라 등로가 맞는 지 확인하려고 혼자 잠시 내려가다가
진행해야 할 등로임을 확인한 뒤 대원들을 불러 올리는데
난데없이 선두그룹들이 나타난다... 역시나 선두도 예상(?)대로 알바...
한바탕 웃음과 소란뒤에 다시 선두그룹은 앞서가고...
잠시 후 마근담봉에 오른다..
마근담봉에서는 수양산과 이방산이 갈라지는 데
주의해야 할 곳이다...
마근담봉에서 완만한 등로를 따라 40분쯤 진행하면 감투봉...
역시나 마근담봉처럼 숲속에 싸여 조망은 없다...
하지만 대원들이 모이기를 기다리며 한동안 휴식...
감투봉에서 10여분 내려서면 세멘트포장이 된 임도를 만나고
임도에서 10여분후 묵은 헬기장을 지나
다시 20여분 후 제법 가파르게 올라서면 이방산이다.
헬기장...
이방산...
넓은 공터이지만 별로 조망도 트이지 않고
정상석은 조금 더 들어간 숲속에 있다.
이방산에서..
이방산에서도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20여분후 올라선 깃대봉...
그런데 내려서는 등로가 거칠기 짝이 없다..
간간히 시그널이 달려있고 등로의 흔적도 있지만
거의 산객들이 다니지 않은 듯...
어쨋든 산경표의 등로표시를 따라 한동안 내려서다 보니
사유지라고 철조망이 쳐져있고...
이곳에서 철망을 돌아가느냐 우측으로 가느냐 설왕설래 하다가
철조망을 좌측으로 돌아가니 묘지가 나오고 묘지 아래로 이어지는 등로가 보인다..
한동안 등로를 따라 내려가다보니 대원들은 따라 오지도 않고..
계속 등로를 따라 내려서니 아래에 농가가 보이는데 내려서고 보니 보암사 암자이다..
이후부턴 세면트 포장도로가 계속 이어지고
한동안 내려서니 지리산 둘레길과 이어진다...
주홍서나물...
문수암...
도로에서 올려다보이는 능선을 따라 마루금이 이어지는 것 같았지만
어차피 산천재를 목표로 하는 것...
그냥 도로를 따라 계속 내려서고 마침내
산천재에 도착하면서 41구간에 걸친 백두대간 남진을 모두 마친다...
남명 조식선생 기념관..
사적 제305호
소재지 : 경남 산청군 시천면 원리.사리
조선시대의 대표적 사상가이자 대학자인 남명 조식(南冥曺植, 1501~1572)선생의 유적이다.
선생의 자는 건중(楗仲), 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남명이다.
선생은 1501년 현재의 합천군 삼가에서 태어났다.
30세가 되던 해에는 처가가 있는 김해 신어천 아래에 산해정을 지어 학문을 연구하고 강론하였고,
48세부터는 삼가에 뇌룡사(雷龍舍)를 지어 찾아오는 제자들을 가르쳤다.
조정에서 선생에게 단성현감 등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과감한 비판과 임금의 잘못된 정치에 대하여 직언으로 상소하는 등
나라와 백성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내었다.
61세 때 지리산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이곳에 산천재(山天齋)를 지어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72세로 일생을 마쳤다.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정(文貞)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여기에는 남명선생과 관련된 산천재, 덕천서원, 세심정, 묘소, 신도비, 여재실 등의 사적이 있다.
산천재는 선생이 여생을 보낸 곳으로 마루 위 벽에는 밭가는 그림 등 벽화 3점이 남아있다.
덕천서원은 1576년(선조 9년)에 선생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것인데, 1609년 사액서원이 되었다.
그러나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20년대에 복원되었다.
세심정은 덕천서원 앞 강가에 있는데, 학문하는 여가에 휴식하는 곳이다.
묘소는 산천재 뒷산에 있는데, 선생이 생전에 손수 자리 잡은 곳이다.
신도비는 우암 송시열이 비문을 지었는데, 남명기념관 경내에 있다.
여재실은 문중에서 제사를 지내는 가묘(家廟)로 별묘(別廟)라고 일컫기도 한다.
산행도..
|
첫댓글 하나를 정리를 하는데 들이는 정성과 품을 생각을 해보면 어렵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이제 또 하나 스스로 만든 일을 정리를 하셨습니다. 수고하셨고요 무탈하게 대간을 마치셔서 같이 기쁨니다. 같이 하신 모든 분들께 축하를 드립니다. 축하합니다.
고맙심다... 졸업을 해서 좋기는 한데 고민임다...
인자 또 어데로 가나.. ㅎㅎ
인자 머 하노??? ㅎㅎㅎ
글씨.. 안 그래도 그게 고민임다.. 뭔 좋은 거 없슈~~